퍼스널 리셋
 
지은이 : 이라야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0년 09월




  • 어쩐지 내가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 이들과 견주어 봐도 딱히 잘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부모나 형제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탐탁지 않다.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 보면 모두가 목표의식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조급해지고 위축된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순간순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불투명한 내일 때문에 초조하고 외로워진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긴밀한 유대감이나 위안을 얻어 보려 하지만 나를 지지해 줄 한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퍼스널 리셋


    나를 일으켜 세워라

    나는 누구인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막막해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나를 설명할 꼬투리를 찾아 우리 뇌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숱한 경험들을 헤집는다. ‘나’를 한마디로 함축할 단어나 은유적으로 표현할 대상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가 쩔쩔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주체인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유는 왜일까? 외면하고 간과했던 만큼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도 그 해답을 쉽게 구하기는 어렵다. 포인트를 어디에 두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입체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자신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 철학자들이나 저명한 철학 교수, 심리학자들도 이 문제를 두고 몇 년씩 혹은 일평생 고뇌를 거듭했는지 모른다.


    쉽게 접근해 보자.


    먼저 나를 알기 위해서는 그 속에 포함되는 것들을 알아야 한다. 크게는 외적인 부분과 내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외적인 부분은 자기를 둘러싼 환경,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배경,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외모다. 나이, 키, 몸무게, 얼굴 생김새, 스타일, 사는 곳, 출신학교, 학력, 직업 등 사회에서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우리가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검색 사이트에 드러난 인물 정보도 여기에 치우쳐 있다. 그것들을 알고 나면 그 사람에 대해 꿰뚫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알만 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고는 사회가 정한 가치를 고스란히 대입시켜 상대를 대하고 평가한다. 외적 배경이 약소하다면 은연중에 무시하고 거리를 두기도 한다. 외적 배경이 탁월한 사람에게는 깍듯한 예우를 갖추고 친밀감을 가지려 애쓴다. 여기에 그렇지 않다고 극구 부인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기를 써서 외적 배경에 치중하고 집중하는 이유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보면 온전히 ‘나’의 기준으로 살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 기준에 맞추려고 고군분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적인 부분은 성향이나 성격, 사고의 깊이, 호기심, 창의력 등등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없는 항목들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답하려 할 때 자신조차도 판정하거나 단언할 수 없는 모호한 것들의 집합으로 나타난다. 성격을 예로 들면, 느긋한 것 같으면서도 급하고 적극적인 것 같으면서도 소심하다. 자기 스스로는 성격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친구가 “넌, 이기적인 사람이야.” 라고 말한다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 무너진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와 ‘난 썩 괜찮은 사람인데’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럽다.


    시중에 나와 있는 혈액형별 유형, MBTI, 에니어그램, 인적성검사등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을 측정하고 분석해 보지만, 그것은 통계치에 불과하다. 표본이 수백만 명이라 하더라도 표준오차는 존재한다. 결코 100% 정확하게 ‘나’를 제시하지 못한다.


    진정한 나를 찾는 방법

    스스로 객관적인 ‘나’를 찾아야 한다. ‘나’를 찾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쉽고 간단한 방법은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적어보는 것이다.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어디서나 가능하다. 메모지와 펜만 있다면, 목록을 구분 지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떠오르는 대로 낙서하듯이 쓰면 된다. 단, 많이 쓸수록 좋다.


    ① 영어를 못 한다.

    ② 책 읽기를 싫어 한다.

    ③ 잔소리는 더 싫다.

    ④ 틈만 나면 영화를 본다.

    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게 싫다.


    이렇게 자기의 모습을 찾아 두서없이 100가지 정도 적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 이게 나구나!’ 하는 순간이 온다. 일류 대학교를 나왔지만 영어를 못 할 수 있고, 수학 이야기만 나오면 도망치고 싶을 수 있다. 대척점에서 보면 고졸 학력이 전부이지만 수학 문제 풀이가 취미인 사람도 있다. 게으르지만 하는 일에서는 완벽할 수 있고 적극적이지만 사람 앞에서 자기 소개하는 순간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나’를 이해할 때 앞뒤가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 근거가 부족하다고 부인하거나 부정할 필요도 없다. 과학적 이치는 더더욱 들이대지 말자. 그냥 오롯이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라. 그러니까 내가 아는 ‘나’를 적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바라보는 내가 적는다고 여기자. 쉽게 말해 나의 동작과 생각을 관찰해 중계방송하듯 쓰면 된다.


    이렇게 자기를 나열하다 보면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발견한다.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상실감으로 이어진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게 해준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천재적 머리를 가지고 못 태어난 것이 한탄스럽다. 타고난 재능 하나 없다는 사실이 불만스럽다. ‘토익 480점’이라고 적고 한숨을 푹 쉰다. 세계 일주를 꿈꾸지만 아르바이트하며 그달 생활비 벌기도 빠듯하다. 유머를 감칠맛 나게 구사하고 싶지만 늘 진지한 말로 주위를 썰렁하게 만든다.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게 좋지만 술값은 부담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 종이를 쫙쫙 찢어 버리고 싶다. 냉정하게 보자.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자기’를 거부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차라리 인정하는 것이 좋다. ‘뭐 어때!’라고 생각하면 너무 낙관적인가. 정신과 의사 정해신 박사는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고 했다. 마음의 영역에선 ‘팩트’라고 한다. 그녀는 대중에게 인기 있는 스타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스타는 ‘나’가 원하는 삶을 사는 대신 ‘너’, 그러니까 ‘대중’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기에 자기 소멸로 들어선 사람이 많다고 한다. 자기성(自己性)이 소거된 채 대중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 가치 등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로 산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의 관찰자가 되어 자기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자. 이를 근거로 ‘나’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진정한 ‘나’로 살아야 한다. 아무리 못나도 ‘나’를 인정할 때 변화를 꿈꿀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 분명한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인정은 현실에 안주하는 나태함이 아니다. 변화를 이끄는 준비운동이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는 제자리 뛰기다.


    나를 믿는 마음이 삶을 지탱한다

    기대감은 우리를 흥분시킨다. 사람마다 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떤 기대든지 기분을 좋게 한다. 자동차가 걸린 백화점 응모권을 추첨하거나 냉장고가 걸린 마트 응모권을 쓸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복권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주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1등 당첨에 대한 기대가 꽝이 될 수 있는 어마 무시한 확률을 무시한다. ‘내가 당첨될지도 몰라.’ 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에 젖는다.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대 심리는 간절할수록 크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에 도전할 때면 믿지도 않는 신부터 찾는다. 하느님,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또 애타는 욕망으로 징크스를 피하려 노력하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군다. 잠도 편하게 못 잘 정도로 신경이 쓰인다.


    물론 기대 심리는 긍정적 요인이 많다. ‘되면 좋겠어.’ 의 기대가 ‘꼭 돼야 해.’로 전이되면서 ‘그래도 혹시 몰라.’ 하는 불안감을 몰고 오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돕는다. 면접에 가면서 자기 모습이 비치는 곳만 있으면 매무새를 단정하게 가다듬는다. 아닌 척 큼큼 헛기침으로 발성 연습을 하고 입을 크게 벌리는 등 얼굴 근육을 풀어준다. 머릿속은 더 분주하다. 예상 질문에 대한 답을 되새기고 예기치 않은 질문에 대한 답도 미리 준비한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은 ‘무엇에든지 이렇게 최선을 다한다면 뭐든 다 할 수 있겠다.’라는 또 하나의 기대이다.


    각종 공모전에 응모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감 날 마감 시간까지 보고 또 보고 다듬고 수정해서 보낸다. 노심초사하며 준비한 시간에 비해 심사 기간이 너무 길다. 남들은 잊고 있으면 좋은 소식 온다지만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기대감에 부응하는 성과가 나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러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는 크든 작든 상실감을 가져온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 마치 식빵에 잼 바른 쪽이 바닥에 떨어지는 머피의 법칙처럼 간절히 기대할수록 내 의지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99%에 육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들은 너무도 쉽게 척척 되는데 나는 너무도 어렵게 항상 안 된다. 서류를 통과했는데 면접에서 안 되고, 공모전은 최종심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탈락한다. 소개받은 이성은 첫눈에 반할 만큼 매력 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두세 번 만났더니 지적질만 한다. 로맨틱한 연애의 환상은 깨지고 이성에게 매력 없는 사람이라는 자괴감만 남는다. 언제나 자신이 선 줄이 더디게 줄어들고, 잘 차려입은 옷에 음식물이 튀는 것처럼 기대의 결과는 언제나 기대를 배반한다.


    이 현상에 대해 한화택 국민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는 실제 기대의 성공 확률은 50%지만 심리적 기대치가 높아서 실패했을 때 그 확률이 더 높게 인식된다고 했다. 선택적 기억에 기인한 결과로 일이 잘된 경우의 기억은 금방 잊히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받은 충격과 안 좋은 기억은 머릿속에 오래 남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기대의 초점을 나에게로 맞춰라

    기대하지 말고 살아야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다만 우리가 거는 기대의 초점을 조정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어떤 일, 어떤 현상, 어떤 대가에 기대를 걸었다. ‘~하면 좋겠어.’ 안에 모두 대입할 수 있는 조건들이다. 공모전에 당선되면 좋겠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좋겠어, 오디션에 뽑혔으면 좋겠어 등등.


    상대의 기준과 시선에 맞추는 타인 지향적인 기대였다. 결과에 자신이 행사할 권한이 없고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공모전의 경우 당신이 심사위원이 될 수 없고, 프로젝트나 오디션 심사관도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간절한 기대는 불안감만 가중할 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초능력을 발휘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거나, 당신과 같이 맞붙은 상대의 요건이나 실력을 자신보다 낮출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음을 비우는 길이 평온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러나 마음 비우기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일말의 기대에 따른 불안감은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결과에 따라 그 기대가 한바탕 욕으로 방출되거나 눈물로 얼룩지게 만들지라도 원하는 만큼 기대를 걸게 된다.


    기대를 포기할 수 없다면 기대의 방향을 바꾸자. 자신에게 믿음을 보내고 자기 가능성에 기대를 걸자. 자신에게 믿음을 보낼수록 내면이 더 강해진다. 자신에게 끝없는 신뢰를 보내고 기대를 거는 사람은 자기 외에는 단 한 명도 없다. 인간관계의 폭이 넓고 끈끈한 유대를 형성한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남이 되고 사소한 의견충돌로 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보내는 응원과 지지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믿는 마음은 삶의 기반이 된다. 장담컨대 세상에서 오롯이 자신을 믿어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각박한 사회 때문이 아니다. 절대 배신하지 않을 완벽한 우군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아직도 자기 가능성을 의심한다면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가 나를 믿겠냐.’는 반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곰곰이 생각하자.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향후 5년의 계획을 말해보세요”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을 담은 『오디세이』에서 따온 ‘오디세이 시기’가 있다. 사춘기에서 성인기로 진입하기 전 약 10여년 정도를 말한다. 끊임없이 탐색하며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는 시기이다. 더 넓게는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찾는 과도기를 일컫는다. 누군가는 ‘끝없는 사춘기 (endless adolescence)’라 칭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서서히 부상하는 성인기(emerging adulthood’라 명명하기도 한다.


    오디세이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름에 걸맞게 다른 세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직업윤리와 가치관을 보인다. 실제로 “3년 이내에 직업이나 직장을 바꿀 의향이 있느냐.” 라는 질문에 20대는 기업 규모나 직종을 불문하고 3명 중 1명이 그럴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이직을 원하는 이유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대답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한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보다 부모나 주위의 강권에 그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막상 그 일을 하게 되었지만, 자기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니었기에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고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다. 재미가 없는 것은 물론 매진할수록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꿈이 뭐냐,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지겹도록 받는다. 하지만 꿈이란 게 무엇인지, 길을 안내해주고 조언해 주는 어른은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꿈이라 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자신의 성적을 바탕으로 꿈을 정했으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당면한 현실에 살아야 하기에 꿈을 잊었다. 돌이켜보면 시험에서 한 문제 더 맞히는 게 꿈을 이루는 길이었다. 좋은 스펙을 쌓는 게 문제였고, 취업이 문제였다. 사회에 편승하기 위해 어찌 됐든 기를 쓰고 그런 것들을 충족시켜야 했다. 그래야만 그나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었다.


    주변에서 받는 질문도 대부분 이와 관련돼 있다. 어느 대학 갈 거니, 토익은 몇 점이니, 자격증은 몇 개나 있니, 어디에 취업할 거니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넌 뭐할 때가 가장 행복하니?’ 라든가 ‘네가 이름을 걸고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란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다. 꿈이든 목표든 이루고자 하는 것은 멀리서 반짝이는 별이었고 잡을 수 없는 무지개였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비켜 갈 수 없는 현실에 무릎을 꿇었다. 가로막힌 장벽에 자신의 목표는 감히 언급할 수 없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자신은 ‘될성부른 나무’가 아니라며 미리 포기해 버린다.


    우리가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은 목표를 이루어내는 과정에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는 그 결과를 즐기면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면접관의 질문

    일단 목표를 정해 보자. 목표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면 계획이라고 해도 좋다. 너무 목적 지향이라고 느껴진다면 꿈 또는 소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소소한 것부터 인생 전반에 걸친 것들, 단기간에 완성될 수 있는 것부터 생애를 걸고 완수해야 하는 것들까지 개개인의 포부와 삶의 가치를 반영하는 단어이면 가능하다. 목표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도 있다. 단계마다 다른 목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에 당황하지 않고 맞서려면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리처드 셸(G. Richard Shell)박사는 대학을 나왔지만 내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해 괴로웠다고 한다. 사회복지사로도 근무해 보았지만 삶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시간제 페인트 작업부로 일하던 그는 부동산 회사에 면접을 봤다.


    “향후 5년 계획을 말해 보세요.”


    면접관의 이 질문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에게는 5년은 고사하고 5일 계획도 없었으니 그가 받은 충격은 짐작이 간다. 현실에 대한 불만만 쏟아냈지 자신이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구체적인 설계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목적의식이 마음속 깊은 신념에 뿌리를 내리고 동기를 부여할 때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증명해 보기로 작심했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확고한 바람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역할모델을 찾고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연방 항소법원의 서기이자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꼬박 6년을 더 투자해 37세에 교수가 되었다.


    지금 그는 존경받는 법학 교수이자 인생학을 강의하는 교수이다.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페인트공이었을 당시 누구도 자신이 법학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수가 될 줄은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런 목표를 말했다면 틀림없이 미친놈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그는 ‘누구든 자기 삶을 놀랍게 전환할 힘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시간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되짚어 보자. 자신을 깊이 보고, 진정으로 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추구하는 가치를 느껴 보자.


    자신을 발견한 뒤 목표를 정해 보자. 그리고 운동선수들이 훈련일지를 쓰듯이 자신의 목표를 향한 도전일지를 써 보자. 맨 앞장에는 자신의 목표와 각오 등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는 것이 좋다.


    ․ 목적

    ․ 목표

    ․ 목표를 설정한 이유

    ․ 출발일

    ․ 도착 예정일

    ․ 동기부여

    ․ 목표에 관한 정보


    목표를 설정할 때는 최종적인 목표부터 세우고 그에 필요한 작은 목표들을 세워가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마흔 살에 인테리어 회사를 차리고 싶은 사람이 스물두 살인 지금 전혀 다른 학과를 다닌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과할 것인가, 학원에 다닐 것인가, 아르바이트를 관련 직종에서 할 것인가, 실무경험을 쌓을 것인가 중에서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자격증은 어떻게 취득하며, 인테리어 직군에는 어떤 분야가 있고, 자신은 어느 부분으로 갈 것인가, 또한 그 분야에서 필요한 자격이나 소질, 재능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분석하고 자신에게 대입해 봐야 한다.


    물론 목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더 원대한 목표가 생기기도 하고, 다른 방향의 전혀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한다. 그때마다 목표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돌아온 만큼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자신을 점검하고 목표를 정하자. 특히 당신이 지금 20대 초반이라면 목표를 바꾸는 다양한 직업이나 삶의 방향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가 목표를 정할 때, 무엇을 먼저 고려하는지 돌이켜 보자. 요즘 대세인 업종이나 언론에서 유망하다는 직군, 특별한 재능이 없으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좋겠다는 심산, 남들 하니까 ‘이거나 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특히 돈을 많이 번다는 일에는 누구나 고개를 기웃거린다. 고수익을 얻는 유튜버가 방송에 출연하자 너도나도 유튜버에 도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도전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자신이 어떤 영역을 담당할 것인가, 구독자들의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비슷한 콘텐츠들의 장단점은 무엇인가를 사전에 조사해야한다. 주먹구구식으로 시도한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해진다.


    안타깝게도 어떤 이는 딱히 할 일을 찾지 못해 떠밀리듯 자신의 목표를 정한다. 자신을 냉정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목표를 정할 때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도전 의지, 능력, 열정과 끈기를 타진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

    또한, 철저한 자기 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 후회하지 않고 자신이 끝까지 매달릴 목표를 정하는 비결이다. 자기를 분석한다는 것은 적성이나 소질, 재능, 성격과 취향까지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얼핏 드러나는 관심에 유의해야 한다. 적어도 목표한 일에 10년 이상을 투자할 의지가 있는지 각오가 서야 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긴 시간에 실현할 최종 목표를 설정한 뒤, 짧은 시간에 실현할 수 있는 성과들에 노력을 가한다. 소소한 일조차도 적극적으로 추진력을 작동시킨다. 작은 목표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자신이 진전하고 있음을, 발전하는 단계에 서 있음을 확인한다.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어느새 큰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운다.


    목표를 세우고 출발선에 섰다면 달리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장애물이나 달리기를 방해하는 맞바람에 맞설 각오를 하자. 끈기 있게 달리자. 이를 위해 내면에 있는 내적 동기를 찾고 외부에서 자극이 되는 외적 동기로 자신을 담금질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시련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달린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했던가. 평탄한 길이 보장되지 않는다. 좌절이나 걸림돌에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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