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이게 하라
 
지은이 : 정창권(엮음)
출판사 : 이다
출판일 : 2019년 02월




  •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 그는 조선 왕들 중에서도 가장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했으며, 개혁 군주로서 정조는 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하지만 ‘정치가 정조’는 부각된 반면에 한 인간으로서 정조의 면모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일득록》은 정조의 어록을 신하들이 정리한 책으로, 이 안에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익힐 것인가에 대한 정조의 마음가짐과 그의 공부에 임하는 자세, 배우고 익힌 것을 실천하는 정조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나를 나이게 하라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익힐 것인가

    곁에 함께하는 모두가 배움이다

    공부는 별다른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이 모두 배움이어서, 옷을 입을 때와 밥을 먹을 때도 모두 배운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공부라는 말만 나오면 아득히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일로 여겨, 걸핏하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말들을 하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뜻이 견고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공부에 임할 때 뜻을 세웠는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뜻이 확고부동하면 비로 동요시키고 바꾸려고 해도 안 되기 때문이다. 공부가 매번 중단되는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오로지 뜻이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본에서 비롯하라

    주자가 일찍이 ‘공부는 넓게 배우는 데에서부터 간략한 쪽으로 돌아가야 하고, 정치는 간략한 데에서부터 넓은 쪽으로 이르도록 해야 한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공부와 정치의 첫 번째 중요한 법칙이다.


    나를 이긴다는 것

    극기(克己, 자기의 욕심, 충동, 감정 등을 눌러 이기는 것)는 극복하기 어려운 편벽된 성품부터 극복해야 하는데, 나의 병통은 편벽하고 조급한 데에 있다. 여조겸(중국 남송 시대의 유학자)은 논어의 ‘제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도 남을 책망하는 데에는 야박하다’는 대목을 읽고서 마침내 변화하는 공부를 해냈다고 하는데, 나는 항상 그것을 좋게 여기면서도 제대로 해내기 못하였다.


    우쭐함에 들뜨지 말라

    총명함은 사람마다 제각기 달라서 한 번 보면 즉시 외웠다가 곧바로 잊어버리는 자가 있고, 처음에는 둔한 듯해도 끝까지 지키는 자가 있으니, 끝끝내 지키는 자가 배움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밝힐 수 있다. 일시적으로 예리하고 빼어난 재능은 끝내 성취하지 못하고, 단지 일순간 사람을 놀라게 할 뿐이다.


    어찌 만족할 때가 있겠는가

    하루는 날씨가 몹시 더웠다. 상이 침실 남쪽에 계셨는데, 처마가 짧아 한낮의 해가 뜨겁게 내리쬐었다. 그때 한 신하가 아뢰었다. “이 방은 협소하여 한여름이면 더욱 불편합니다. 별도로 건물을 짓자는 신하의 간청은 비록 거절하셨으나, 시원한 곳에 가셔서 여름을 보내는 일은 안 될 것이 없을 듯합니다.”


    이에 상이 말씀하셨다. “지금 이곳을 버리고 다른 시원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거기에서도 참고 견디지 못한 채 필시 다시 더 시원한 곳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어찌 만족할 때가 있겠는가. 능히 이를 참고 견디면 바로 이곳이 시원한 곳이 된다.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만족할 줄 안다(知足)”는 말에 해당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배움과 다스림은 조그만 완성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더욱 힘써 나아가면서도 언제나 부족함을 탄식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음이 바로 서야 뜻이 바로 선다

    안개 속에서도 여전한 꽃처럼

    어느 날 임금의 가마가 대궐 안의 동산을 지나가는데, 이때 동산의 꽃들이 한창 만발한 데다 새벽비가 내린 뒤라 아침 안개가 옅게 깔려 있었다.


    그때 상이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봄에 만물이 처음 피어날 때 인간의 지극한 이치를 엿볼 수 있다. 꽃봉오리가 아직 맺히지 않았을 때는 색(色)과 상(相)이 모두 공(空)이나, 생명의 의지는 그 속에 들어 있다. 이는 바로 우리의 마음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와 같은 것이다. 이후 꽃잎이 비로소 열리면 홍색이나 자색이 구분되어 나무마다 각각의 꽃을 피우니, 이는 우리의 마음이 이미 발한 뒤의 기상과 같다. 안개가 꽃을 덮고 있어 안개 밖에서 꽃을 보면 희미해서 구분할 수가 없을 듯하지만, 가까이 가서 꽃을 보면 분명히 보인다. 이윽고 안개가 걷히고 꽃이 드러나면 꽃은 본래 그대로 있으니, 이것이 바로 꽃의 본래 모습이다. 여기에서 비록 사물이 때 묻고 가려져도 그 본성은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이치를 알 수 있다. 멀리는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것과 가까이는 마음이 고요하고 느끼는 것이 어느 것 하나 이 이치가 아님이 없으니, 저마다 몸소 깨달아야 한다.”


    나의 못남을 탓하라

    나는 평소 태양증이 있어서 남의 옳지 못한 점을 보면 문득 화가 치밀어 겉으로 드러나는 데까지 이르고 만다. 이는 제왕의 본색이 아니기에 근래 들어 비록 자신을 굳게 억누르고 모나지 않게 하려 애쓰지만, 기질이란 끝내 고치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이따금 충돌을 빚으면 또다시 이를 억제하지 못한다. 요즘 사람들은 대체 무슨 공부를 해서 한결같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후회된 일은 오래 담아 두지 말라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 두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실로 절실하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지난날의 잘못을 다스려 다시 잘못한 일이 없도록 하면 된다. 만일 잘못한 일에 대해 후회를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 둔다면 의기가 소침해서 진취적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대학》의 <정심장>에서 분명히 말한 네 가지 병통(분노하고, 두려워하며, 쾌락에 집착하고, 근심함)이다.


    남을 내 몸 대하듯 하라

    남을 책망하되 그 사람을 내 몸처럼 여기면 천하에 용서하지 못할 일이 없고, 남을 채용하되 그 사람을 내 몸처럼 여기면 천하에 얻지 못할 사람이 없다.


    명분보다 실제적인 삶을 살아라

    중국은 벼슬이 비록 재상이었다 할지라도 자리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지내게 되면 모두 행상을 하기 때문에 매우 가난한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대로 재상을 지낸 집안이라 하더라도 한번 벼슬길이 끊기면 자손들은 쇠잔하고 곤궁하며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심지어 걸식하는 자가 있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단지 압록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풍속이 이와 같이 다른 것이다.


    나아갈 때와 물러나야 할 때

    분명히 해야 할 일은 용기 있게 곧바로 하고, 분명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용기 있게 결단하여 곧바로 물리쳐야 한다. 할 만하기도 하고 하지 않을 만하기도 하는 일은 충분히 헤아리고 깊이 생각해서 해야 한다. 그것을 해야 할 한계와 해서는 안 되는 한계를 분명히 보면, 역시 용기 있게 결단하여 물리치고 가슴속에 남겨 두지 말아야 한다.



    모자람으로 나를 살찌게 하라

    넘칠수록 모자람을 경계하라

    지금 사람들은 일이 없을 때에는 한가하게 즐기고 느긋하게 날만 보내다가 일이 생기면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손발을 어찌할 줄 모르고, 다행히 일이 진정되면 곧바로 또 지난날 하던 버릇대로 하니, 이것은 대개 마음이 주재하는 바가 적어 평상시에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든 일이든 서두름을 인해 어그러지지 않겠으며, 무슨 폐단이든 탐욕 속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멀리 보고 일하라

    옛사람들이 일을 할 때에는 먼저 서너 단계 앞을 보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일을 할 때 한 단계나 반 단계 앞도 보지 못한다. 일이 발등에 떨어져서야 소란을 피우며 어찌할 바를 모르니, 이는 평소 독서를 하지 않은 탓이다.


    성급함을 경계하라

    기상은 마땅히 넉넉하도록 힘쓰고 촉박함을 경계해야 하는데 요즘은 이와 상반되고 있다. 관직에서는 빨리 성취하려 들고, 일을 할 때에는 지나치게 황급하며, 다급하고 불안한 나머지 남들에게 빼앗기지나 않을까 두려워 마지않는다. 이 습성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할 것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자란 듯 아끼고 다스려야 할 것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 하지 말라.’ 이 구절은 진실로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벽에 써 붙여 날마다 살피는 자료로 이용해야 하겠다.


    조용히 책을 읽고 싶을 뿐

    상이 작은 수레를 타고 예닐곱 명의 시중드는 이들과 함께 북쪽 동산의 깊숙한 곳으로 가서 작은 정자 위에 올랐다. 때마침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돌 틈을 흐르는 물소리가 들을 만했으며,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그늘진 가운데 노니는 새들이 보였다. 상이 이를 둘러보고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마음에 맞는 경치 좋은 곳을 얻어 세속의 일이 닿지 않게 해서 잡다한 생각을 말끔히 씻고, 방 하나를 깨끗이 정돈하여 자유로이 생각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경전과 책을 읽는다면 참으로 좋은 즐거움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십 수 년간 번잡한 사무만 가득 쌓여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익히고 깨우쳐 나를 나이게 하라

    오래될수록 우러나는 것

    외물(外物)의 맛은 잠깐은 좋아할 만하지만 오래되면 반드시 싫증이 난다. 독서하는 맛은 오래될수록 더욱 좋아서 싫증이 나지 않는다.


    언제 읽을지를 고민하지 말라

    독서는 언제라도 즐겁지 않을 때가 없지만, 겨울밤의 깊고 적막한 때가 특히 더 좋다.


    세 가지 유쾌한 일

    상이 말씀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평소 독서하는 시간이 드무니, 나는 이를 정말 이상하게 생각한다. 세상에 책을 읽고 이치를 구하는 것만큼 아름답게 여길 만하고 귀하게 여길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일찍이 경전을 연구하고 옛날의 도를 배워서 성인의 정밀한 경지를 엿보고, 널리 인용하고 밝게 분류하여 아주 먼 옛적부터 판가름 나지 않은 안건에 결론을 내리며, 호방하고 웅장한 문장으로 빼어난 글을 구사하여 작가의 동산에서 거닐고 조화의 오묘함을 빼앗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 가지 유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어찌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하는 공부나 옛사람의 글귀를 따서 시문을 짓는 것과 견주어 논할 수 있겠는가.”


    배움에 정해진 날을 두지 말라

    나는 하루에 어떤 글을 몇 번 읽고, 어떤 글은 몇 줄 읽는다고 반드시 과정을 정해 놓고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만둔 적이 없었다. 이는 배움에 유익할 뿐 아니라 마음을 잡는 공부도 된다. 승지가 승정원에 있을 때라도 공무를 보는 틈틈이 매일 일정한 규식을 두어 글을 보면, 비록 정신을 오로지해서 공부하는 것만큼은 못하지만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은 편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독서하는 사람은 매일매일 공부할 과정을 세워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비록 하루 동안 읽는 양은 많지 않더라도, 배움이 쌓여 의미가 배어들면 일시적으로 많은 책을 읽고 곧바로 중단한 채 잊어버리는 사람과는 천지 차이일 것이다.


    많이 읽음을 자랑하지 말라

    책을 많이 읽으려고 힘쓸 것이 아니라 집중하고 치밀하게 읽어야 하며, 신기한 것을 보려고 힘쓸 것이 아니라 평상적인 것을 보아야 한다. 집중하과 치밀하게 읽다 보면 저절로 환히 깨닫는 곳이 있고, 평상적인 내용 중에 자연히 오묘한 부분이 들어 있다. 지금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 모두 많이 보려고만 들고 치밀하게 읽는 데에는 힘쓰지 않으며, 신기한 것만 좋아하고 평상적인 것은 달가워하지 않으니, 이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道)는 점점 멀어진다.



    어디에 머물더라도 신중하고 공평하라

    부지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상이 말씀하셨다. “농민은 백 이랑의 농토가 잘 다스려지지 않은 것을 자신의 걱정거리로 삼지만, 임금은 만백성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자신의 걱정거리고 삼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한 번 비가 오고 한 번 햇볕이 나는 것에 모두 마음을 두는데, 다행히도 하늘의 신령함에 힘입어 농사가 큰 풍년이 든다면 마치 근심할 것이 없는 듯한데도 또 다음해에 대한 걱정이 생긴다. 하지만 그 걱정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니, 옛 선왕들이 감히 스스로 안일하게 지내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강이 바로 서야 사람이 따른다

    나라의 온갖 법도가 해이해진 것은 기강이 바로 서지 않은 데에서 연유하고, 기강이 바로 서지 않은 것은 시비가 공정하지 않은 데에서 연유한다. 시비가 공정해야 기강이 바로 서고, 기강이 바로 서야 온갖 법도가 올바르게 된다.


    익숙함에 물들지 말라

    상이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습을 그대로 따르는 데에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을 편안히 여겨 크게 고쳐야 할 부분이 있어도 번번이 그런 구습에 의해 꺾이고 만다. 반드시 먼저 이 병통을 극복해야만 무슨 일이든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하고 다시 의심하라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는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힘써 캐내어 의심할 것이 없는 곳에도 의심을 일으키고, 의심을 일으키는 곳에 또 의심을 일으켜서, 충분히 의심이 없는 경지에 이른 뒤에야 환하게 깨달았다고 할 만하다. 판결하는 것 또한 이와 같으니, 실정이나 법에 있어서 털끝만큼도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또 의심할 것이 없는 곳에서 의심을 일으키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곧 충분한 시점에 이르러 의심할 것이 없는 뒤에야 비로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미루어 나가면 잘못 처리한 부분이 드물 것이다.



    왜 구하지 않고 구하기를 바라는가

    중한 자리일수록 더욱 겸손하라

    장용영은 곧 임금을 호위하고 경비하는 군대이다. 내가 만약 너그러이 대한다면 교만하고 멋대로 굴어 제재하기 어려울 것이고, 또한 도성에 폐단이 될 것이다. 내가 이를 염려하여 혹 법을 범하는 자가 있으면 조금도 너그러이 용서하지 않고, 매를 칠 만하면 곤장을 치고, 곤장을 칠 만하면 유배시켜 다른 죄인보다 갑절 더 무거운 법을 썼다. 이제는 거의 나쁜 행동을 고치고 두려워할 줄 알 것이니, 때때로 위로하고 어루만져 은혜와 위세가 둘 다 행해지도록 할 것이다.


    왜 구하지 않고 구하기를 바라는가

    상이 말씀하셨다. “탐욕스러운 풍조를 바로잡고자 한다면 먼저 청렴한 사람을 발탁하여 등용해야 한다.” 그러자 경영하는 신하가 아뢰었다. “요즘 세상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상이 다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세상을 속이는 말일 뿐이다. 그 가운데 나아가면 또한 자연히 그러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혹 없다면 마땅히 그 아들이나 손자를 등용하여 권장해야 한다.”


    욕심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속담에 이르기를 ‘말을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고 하는데, 이 말은 사람의 욕심이란 점점 불어난다는 뜻이다. 요즘 벼슬하는 사람을 놓고 말하자면, 처음에는 비록 소원하게 지냈더라도 한번 마음을 열고 용납해 주면 그만 그 사람을 타고 오르려 한다. 이런 행동이 바로 ‘말을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슴에 서 말의 먹물이 담겨 있는가

    지금 사람들은 관직이 대관에 이르더라도 의견을 내어 곧장 행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는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일 뿐이다. 옛사람이 ‘사대부의 가슴속에 서 말의 먹물이 담겨 있지 않으면 어떻게 붓을 놀리겠는가?’라고 하였다.


    그 자리를 위해 공부했는가

    내가 심히 미워하는 바는 음직을 얻어 벼슬살이하는 사람들이다. 대개 똑같은 가문이요, 똑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힘껏 과거공부를 하여 공명을 얻으려 하지 않고 겨우 초사(처음으로 한 벼슬)자리 하나를 얻기만 하면 곧 공부를 아예 도외시하고 오직 수령 자리를 취득하려 하는가 하면 한가히 앉아서 비단옷을 입고 배부르기를 바랄 뿐이니, 그들의 뜻을 세움이 비열하고 저급하기가 또한 심하지 않은가.



    하늘을 우러러 땅을 편안케 하라

    보살핌에는 지나침이 없다

    상이 기근이 든 해를 만나 진휼하고 부역을 면제시키는 정사를 조금도 거리끼거나 아까워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 백성들에게 내리는 은택이 조금 지나치다고 말하였다. 이에 상이 말씀하셨다. “나라에 창고를 설치한 것은 홍수나 가뭄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지금 백성들의 실정이 다급하여 크게 진휼을 베풀더라도 백성들에게 미치는 것이 오히려 보잘것없을까 걱정스러운데 어찌 그 많고 적음을 따질 수 있겠는가. 게다가 부역은 정상적인 것일지라도 다 백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곤궁한 때를 당하여 저들을 위해 부역을 덜어 주지 않으면 또한 어찌 돌보아 보살피는 뜻이 있다고 하겠는가. 선대왕께서는 항상 ‘백성의 일에 어찌 살갗인들 아까워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내가 매양 그것을 외우며 흠모했는데, 배가 곡식 같은 것에 이르러서야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


    멀더라도 소외됨이 없게 하라

    탐라(제주도)는 곧 탄환(탄알)과 같은 서이다. 나라에서 가져다 쓰는 것은 몇 포의 귤과 공물로 바친 말에 불과한데, 그곳은 예로부터 기근과 흉년이 가장 잘 들어 배로 곡식을 실어다가 먹여 준 것만 해도 그 동안 몇 천 석에 이르는지 헤아릴 수 없다. 선왕들이 이 때문에 돌보아 보살펴 줌이 갈수록 더욱 부지런했던 것이니, 먼 데나 가까운 데를 소외시키는 일 없이 한결같이 돌보는 임금의 훌륭한 덕을 우러러 볼 수 있다. 작년과 올해도 정리소(정조의 수원행차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한 관아)의 남은 돈과 내탕고의 곡식이 또한 수만 포를 밑돌지 않는다. 해당 관서의 신하는 은혜가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는데, 내 어찌 한때의 적은 비용을 아껴 그 동안의 공적이 이 한 번으로 인해 이지러지도록 하겠는가. 더구나 자전(임금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은혜가 미쳤음을 아는 바에 어찌 이 백성들로 하여금 만년의 은택을 받지 않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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