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승리의 법칙
 
지은이 : 이성민
출판사 : 나무와열매
출판일 : 2019년 03월




  • 『작은 승리의 법칙』은 상식적이고, 실현 가능한 성공 방식을 소개한다. 이것은 상급학교에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 재취업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중년들,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노년들에게 모두 통용되는 인생 해법이다. 사소한 작은 승리를 쌓아가는 방식은 당신의 인생을 빛나게 할 것이다.  




    작은 승리의 법칙


    한 번의 작은 승리가 중요하다

    작은 승리란 무엇인가?

    성공 방정식 _ 한 번의 작은 승리는 큰 성공을 위한 시작이다

    대단한 일을 하려 하지 마라. 그런 마음을 품으면, 생각도, 몸도 무거워진다. 그래서 대단한 일은커녕, 작은 일조차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대단한 일은 대단한 일을 목표했던 사람이 이루는 게 아니라, 작은 승리를 계속한 사람이 이룬다.


    오로지 첫 번째 작은 승리만 생각하라. 첫 번째 작은 승리가 중요하다. 절대적이다. 첫 번째 작은 승리를 못하면, 두 번째 작은 승리도 없기 때문이다.


    작은 승리의 법칙을 기억하라.

    S=v1+v2+v3

    적어도 세 번 작은 승리(v)를 쌓으면, 큰 성공(S)을 이룰 수 있다.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부른다 (싸이)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부른다” 세계 최고 광고회사 옴니콤의 계열사 DAS의 회장 토머스 해리슨도 같은 말을 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 말을 무시한다. 거창해야만 제대로 된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012년 7월 15일 가수 싸이가 <강남 스타일>을 발표했다. 단순한 가사, 강력한 비트, 그리고 말춤이라는 독특한 안무를 곁들인 댄스음악이었다. 발표 즉시, <강남 스타일>은 한국 가온 디지털 종합 차트와 코리아 K-Pop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강남 스타일>은 유튜브를 통해 해외에까지 소개되었고,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캐내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등 30개국 이상의 공식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달 뒤인 9월 13일, 미국 빌보드 핫 100에 64위로 진입해서, 2위까지 올라간 후 7주 동안 그 상태를 유지했다.


    “처음부터 빌보드를 목표했고요, 솔직히 1위를 할 줄 알았어요. 2위라서 아쉬워요. 5년 만에 유튜브 조회수가 30억 뷰를 돌파했는데, 조만간 50억 뷰를 돌파할 겁니다.” 세계적으로 성공을 한 뒤에도, 싸이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특이하고 재미있는 곡이지만, 대중들이 외면하면 어떡하나?” <강남 스타일> 공개 전, 싸이는 국내 팬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할까 봐 염려했다.


    곡의 완성도를 보면, 어느 정도 성공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공을 100% 장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이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강남 스타일>의 공개 직전까지, 싸이가 한 일은 오로지 하나. 대중들이 최고로 만족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것이었다. 싸이는 갈고닦고, 또 다듬었다.


    대중들은 가수 싸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신랄한 세태 풍자, 거침없는 도발, B급 정서의 댄스음악이었다. 물론 싸이도 이런 대중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싸이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강남 스타일>이었다. 딱 싸이다운 곡이었다.


    <강남 스타일>은 싸이가 아니라면, 만들 수도, 부를 수도 없는 노래였다. 춤만 추기도 어려운데, 목청껏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 곡이었다. 꺼지지 않는 열정 배터리로 무장한 댄스머신 싸이만이 부를 수 있었다. 알고 보면, <강남 스타일>은 싸이 스타일이었다.


    공개 이후, <강남 스타일>은 대박이 났다. 신나는 리듬과 재미있는 댄스의 뮤직 비디오가 날개 돋친 듯 전파되었다. ‘신나서’, ‘웃겨서’. 이유는 달랐지만, 사람들은 <강남 스타일>을 따라 불렀다. 그렇게 해서 <강남 스타일>은 세계적인 히트를 했다.


    그렇다면 <강남 스타일>의 성공 포인트를 짚어 보자. 도대체 왜 <강남 스타일>은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을까? 간단하다. 따라 부르며, 춤추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정말 싸이는 <강남 스타일>의 성공을 예상 못 했을까? 물론이다. 만약 알았더라면, 성공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서 제대로 <강남 스타일>을 만들어 내지 못 했을 것이다. 또 성공을 예상하고 만들었다면, 그 정도 후속곡을 곧바로 발표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싸이는 <강남 스타일>의 세계적인 성공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냥 그때까지 해 왔던 자기 방식대로 <강남 스타일>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싸이는 2001년 <새>로 데뷔했다. 싸이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연예인답지 않은 얼굴과 통통한 몸매의 싸이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정장 차림으로 위협적인 랩과 엽기적인 춤으로 대중을 자극하며, 세태를 풍자했다. 이 곡은 공중파 3사 음악프로그램 1위를 석권했다. 듣도 보도 못했던 싸이는 갑자기 인기 가수가 됐다. 첫 번째 작은 승리였다.


    싸이는 <새>에서 맞이한 작은 승리를 이어 나갔다. 그것은 풍자성과 도발성이 강한 댄스음악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B급 정서로 무장된 싸이는 2002년 <챔피언>으로 SBS에서 1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 작은 승리였다. 2006년에는 <연예인>으로 SBS, M.net의 1위에 올랐다. 세 번째 작은 승리였다. 2010년에는 로 M.net 1위를 기록했다. 네 번째 작은 승리였다. 싸이는 계속 작은 승리를 쌓았다.


    물론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대마초 사건이 터졌고, 발표곡들마다 19세 미만 청취 금지 논쟁이 벌어졌으며, 입대에 이어 재입대까지 경험했다. 그러나 끝까지 싸이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물이 2012년 발표한 <강남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한 곡이 싸이를 바꿨다. <강남 스타일> 전까지, 싸이가 무명이라거나,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이제까지와 다른 차원의 성공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거창한 목표는 이룰 수 없다. 걷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달릴 수는 없다. 더하기, 빼기도 못하는데, 미적분을 풀 수 없다. 사람은 작은 승리로 큰 성공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은 작은 승리보다는 큰 성공을 가르친다. 꿈은 크게 가지는 것이라고 강요한다. 누구나 선망하는 중요 인물이 되라거나,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목표를 세우라고 강요하다. 그래야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가 거창하면, 절대로 이룰 수 없다. 이루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룰 수 없다. 목표는 작아야 이루기 쉽다. 목표는 작을수록 이루기 쉽고, 쉽게 목표가 이뤄져야 다시 다른 목표를 또 이루고 싶어진다. 목표가 크면 목표의 무게에 짓눌린다.


    그러므로 거창한 목표를 가슴에 품고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 작은 승리 하나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작은 승리들을 이어 나가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예상 못 한 큰 성공이 찾아온다. 싸이처럼. 그래서 기억해야 한다.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부른다.”



    작은 성공 경험을 습관화해야 한다

    성공 경험의 강화

    승리 경험 방정식 _ 작은 승리의 경험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

    작은 승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작은 승리를 기억하는 일이다. 작은 승리의 경험은 잊기 쉽다. 작은 승리의 경험을 잊으면, 작은 패배가 커 보인다.


    따라서 작은 승리를 경험할 때마다 기억하고, 수시로 떠올리며 감격해야 한다. 작은 승리의 경험을 잊어버리면, 작은 패배를 당했을 때 쉽게 좌절하게 된다. 큰 성공을 이룩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틈만 나면, 작은 승리의 경험을 상기하는 것이다.


    남들 말에 귀를 닫아라 (양방언)

    일본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음악가 양방언. 제주 출신으로 북한 국적을 가진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지닌 어머니 사이에서 2남 3녀 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바로 위의 누나와 8살 차이가 나는 막내라서, 성장과정 중에 양방언은 부모님과 형제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양방언의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자신처럼 자녀들도 전문직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인이 일본에서 귀화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방언의 형과 누나 모두 의사와 약사가 되었다.


    그러나 양방언에게는 음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배운 피아노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미국 팝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혼자서 연주를 하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양방언은 음악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극구 반대하며, 양방언에게 의과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양방언은 아버지의 의견대로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양방언이 의과대학에 진학하면 음악을 포기할 줄로 알았다.


    그러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뒤, 양방언은 기어이 음악을 선택했다. 마취과 의사로 수련생활을 하다가 내린 결단이었다. 아버지는 양방언의 선택을 반대했다. 하지만 양방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양방언은 1985년 집을 나왔고, 아버지와 의절했다. 양방언은 아버지와 끝까지 화해하지 못했다. 음악을 선택한 자신을 아버지에게 이해시키지 못한 일은 한이 되었다.


    아버지 타계 이후 양방언은 북한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리고 《The Gate of Dreams》라는 타이틀의 음반을 발표했다. 자기주도 인생의 시작이었다. 양방언은 자신의 의지대로 국적을 선택했고,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음반 발표 뒤부터, 양방언은 음악가로 승승장구했다. 12장의 음반 발표와 한국, 일본, 중국, 홍콩으로부터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게임 음악 등 18편의 사운드트랙을 의뢰받아 제작했다. 이와 함께 양방언은 매년 수십 차례의 공연활동을 강행하며, 강의, 강연활동도 병행한다.


    25살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해 33년간 활동한 양방언. 국경과 이데올로기, 클래식과 대중문화, 전통화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음악을 만들며,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중국 등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무대를 확장하고 있다.


    양방언은 항상 자신의 원하는 음악을 만들며,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의사를 포기하고, 아버지와 의절하고, 국적도 바꿀 정도였으니, 타협이나 양보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양방언은 늘 본인의 의지대로 선택을 해 왔다.


    세상에는 어떤 일을 하든지, 사람들의 평가를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평가를 무심하게 이겨 낼 수 있는 담력이 필요하다. 그런 담력이 있으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힘들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때로 부모, 형제자매, 친구, 심지어 자신을 가르친 스승과도 등을 져야 한다. 세상을 먼저 산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자식이나 동생, 친구, 제자들을 재단하려 들기 때문이다. 호리바제작소 회장으로, 학생 벤처의 개척자였던 호리바 마사오는 이렇게 말한다.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남의 말을 듣지 마라.”


    성공 습관으로 목표를 달성한다

    임계점 돌파

    성공 습관 방정식 _ 작은 승리 습관으로 임계점을 돌파해야 한다

    자기 한계를 극복했다고, 곧바로 성공이 찾아올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임계점이 있기 때문이다. 임계점을 돌파해야, 성공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물이 끓는 100도가 자기 한계 극복의 시작점이라고 한다면, 물이 수증기가 되어 완전 증발하는 374.2도가 임계점이다. 물이 완전 증발하려면, 물은 계속 끓어야 한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자기 한계를 극복해도, 작은 승리로 임계점을 돌파해야 한다.


    믿는 만큼 성공한다 (마윈)

    최근 은퇴를 선언한 세계 최고의 인터넷 유통업체 중 하나인 알리바바의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 마윈. 2018년 1월,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는 마윈의 재산이 47조 원이라고 밝혔다. 마윈은 아시아 최고의 부자이다. 2017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마윈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 50명’ 가운데 2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1965년생으로 55살인 마윈. 도대체 마윈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벌었으며, 경영인을 넘어 경영철학자로, 세계 2위의 리더로 불리게 된 것일까? 그것은 마윈이 실패라는 무기로 완전 무장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학 졸업 후, 마윈은 30가지의 다른 일에 도전했지만, 모두 낙방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24명의 응시자 가운데 23명이 합격한 KFC 면접에서까지 떨어졌다. 입사 면접뿐 아니라, 마윈은 그전에 학운도 없었다. 삼수 끝에 겨우 항저우 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마윈은 하버드 대학교에 10번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윈이 결국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탁월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마윈은 불타는 투지 하나만큼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마윈은 그 투지를 영어에 쏟았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 마윈은 외국인들을 직접 찾아 거리로 나섰다. 자신의 집에서 걸어서 70분 걸리는 항저우 호텔로 매일 가서,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을 붙잡고 길 안내를 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마인은 그렇게 9년 동안 영어공부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마윈의 영어는 유창하고, 발음도 정확하다. 마윈의 영어가 문법적으로 옳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윈은 의사소통은 물론, 대중연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 총명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영어 한 가지에 매달린 것이 오늘의 마윈을 있게 했다.


    영어를 통해서, 마윈은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의사소통에 부담이 없으니, 쉽게 미국에 갈 용기도 낼 수 있었고, 미국 기업을 벤치마킹할 생각도 할 수 있었으며,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요청 프레젠테이션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하지 못했다면, 마윈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실패는 마윈에게 행운이었다. 마윈이 군인이나, 경찰, KFC 직원이 되었다면, 알리바바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었다는 추상적인 말로 마윈의 실패를 합리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실패를 했기에, 마윈은 창업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알리바바 창업 이후에도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재정 위기에 부딪친 마윈은 투자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중국의 어느 누구도 마윈에게 투자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이, 마윈은 중국이 아닌, 해외 투자처를 찾아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마윈의 신의 한 수였다. 해외 투자를 받았기에 마윈은 성공했다.


    해외 투자를 받기 위해서, 마윈은 글로벌스탠더드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일본의 투자자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마윈은 그들이 원하는 기준과 방향을 알게 되었다. 중국 기업의 지원을 받았다면, 알리바바는 중국 기준에 맞췄을 것이다.


    마윈의 인생은 늘 난관이 이어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윈이 무수한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성공을 확신했다는 사실이다. 마윈은 뜻을 이루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부끄러움과 창피도 이겨 내야 하며, 거절도 당연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사 시험에서 떨어진 날도, 마윈은 항저우 호텔로 가서 외국인들을 붙들고 영어를 배웠다.


    마윈의 좌우명은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이다. 이 세상에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윈뿐일 것이다. 물론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해도, 모두 마윈처럼 성공할 수는 없다. 행동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마윈은 정말로 지난 55년간 그렇게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마윈은 중국 재산 서열 1위, 세계 재산 서열 10위가 되었던 것이다. 믿는 만큼 성공한다.



    성공 폭발력 모색

    성공 습관 방정식 _ 작은 승리 습관으로 성공 폭발력을 모색해야 한다

    성공에 관한 비밀이 하나 있다. 작은 승리를 계속하다 보면 비약과 상승의 순간을 맞게 된다는 사실이다. 산술급수의 세계에서 기하급수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흔히 ‘운’이라고 부르는 비약의 시간인데, 실제로는 ‘성공 폭발력’이다. 성공 폭발력은 투입하는 노력에 비해서, 산출되는 결과가 엄청나게 클 때 사용하는 말이다. 여러 이유로 성공 폭발력이 발생하지만, 결국 작은 승리를 쌓은 사람들이 맞이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결단하라 (요요마)

    7살부터 무대에 서서, 올해로 연주활동 57년째인 요요마. 이제 요요마는 첼로를 통해, 스스로 음악이 되어 가고 있다.


    2015년 9월 17일, 요요마는 현악 전문 매저긴 스트링과 인터뷰를 했다. 60번째 생일 20일 전이었다. 그날, 요요마는 자신의 음악적 포부가 ‘완벽’이라고 밝혔다. 지난 55년간 요요마는 100장이 넘는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50장 이상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반이었다. 요요마는 이 분야에서 최다 기록 보유자이다. 이 음반들을 가지고, 요요마는 전미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음반업계 최고 권위의 상인 그래미상을 18번 수상했다. 이런 기록을 가진 연주자는 요요마뿐이다.


    요요마의 수상경력은 화려하다. 23살 때인 1978년에는, 미국 최고 영예의 음악상 에이버리 피셔 프라이즈를, 51살 때인 2006년에는 댄 데이비드 프라이즈를, 52살 때인 2007년에는 국제 첼로페스티벌에서 어워즈 오브 디스팅션을 수상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요요마는 첼로를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고, 세상으로부터 그 노력에 합당한 평가를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요요마는 만족하지 않는다. 완벽을 추구하고, 가락에 맞춰 연주하고 싶다며, 아직도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현악기 연주자들의 공통점은 만약 우리가 잠시 동안 연주하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스트링과의 인터뷰에서 요요마는 죽을 때까지 첼로를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요요마가 추구하는 완벽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요마가 추구하는 완벽은 첼로 연주로 채워지는 삶이다. “첼로 연주자로 살아온 57년뿐만 아니라, 남은 인생도 첼로 연주 이외에는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요요마는 말한다.


    사실 요요마의 이런 열정은 지극히 예외적이며,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천재성을 발휘하고 난 뒤, 20년 혹은 30년 뒤에는 지휘자로 전향하거나, 악기 연주와 무관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의 경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정명훈도 지휘자로 전향했고, 첼로 연주자였던 장한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64살의 첼리스트 요요마는 평생 첼리스트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한다.


    요요마는 청중들의 눈을 바라보며, 연주를 하는 일에서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요요마가 추구하는 완벽이란 바로 이것이다. 악기를 통해서, 청중과 소통하는 것이다. 할 일이 분명하면 쉽게 이룰 수 있다. 문제는 할 일을 하느냐, 못 하느냐이다. ‘성공은 할 일을 언제까지 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한 가지 일을 10년 이상 매진하면, 먹고사는 일에서 초월한다. 20년을 정진하면, 칭찬을 듣는다. 30년이 지나가면, 대가 소리를 듣는다. 경쟁자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성공에 필요한 것은 재능과 지능이 아니다. 목표를 지켜 가는 고집과 반복을 지속하는 성실이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비약과 상승의 시간, 예측을 넘어서는 도약의 시간이 찾아온다. 성공 폭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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