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김의 심리학
 
지은이 : 이창주 (지은이)
출판사 : 몽스북
출판일 : 2024년 07월




  • 이창주 박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모 고민을 넘어서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단순히 외모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의 건강을 챙기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요. 외모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분들께 큰 위로와 도움이 될 책입니다.


    못생김의 심리학


    정신과 의사가 외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어느 고등학생에게 찾아온 삶의 변곡점

    손바닥을 들여다보면 손금이 크게 엇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나온 삶의 궤도를 되짚어 보면 누구에게나 변곡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10년 여름인데, 외모로 고민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쓰는 이 책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외모심리학 저술가인 저에게도 한때 외모는 쉽지 않은 문제였는데, 전두 탈모가 발병한 고교 시절부터입니다. 전두 탈모증은 면역세포가 모낭을 공격해 머리카락과 눈썹이 한 올도 남김없이 빠지는 질환입니다. 고등학생이던 발병 초기부터 재수, 의대 재학 기간 동안 대학병원에 다녔으나 치료에 실패했을 정도로 난치병이기도 하고요.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는 것 이외에 별도의 건강 문제가 있는 건 아니나 심적으로 버거웠습니다. 의대를 졸업한 후 대학병원에서 인턴,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지금이야 의사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마음이 단단해졌지만 당시에는 흔들림의 폭이 컸습니다. 여느 고등학생처럼 학교에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놀면서 공부하던 평범한 학생이었고 이런 병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으니까요. ‘왜 하필 나일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었을까? 머리카락이 나지 않으면 어쩌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저 절망적이고 세상이 원망스럽고 ‘머리카락이 나지 않으면 내 인생은 끝이다’하고 크게 낙심했었죠.


    이후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거쳐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의예과를 수료하고 본과 과정을 거치는 동안 대학병원 피부과와 한의원에서 약물과 면역치료, 한방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는 전무했고 종내에는 치료를 그만두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난다는 보장도 없는 데다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치료를 지속하고 싶지 않아서였죠. 또한 외형과 달리 정신적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모습과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으나 내가 나를 바라보는 형상인 신체 이미지가 치유된 덕분이었죠. 의과대학생이던 당시에는 외모 스트레스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치유되었는지 인지하지 못했으나, 레지던트 수련 기간에 외모심리학을 공부하며 비로소 치료 인자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치프 레지던트로 승급한 3년 차 겨울부터는 교육 정신분석을 통해 외모 스트레스를 무의식적 관점에서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요.


    얼마 전 강연을 마치고 가진 식사 자리에서 후배 정신과 의사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10대 중후반 어린 나이에 탈모증이 발병했고 여전히 치료가 되지 않아 속상하지 않으냐고. 어린 나이 탈모증으로 인한 힘듦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삶의 희비를 좌우하는 건 단순히 ‘좋은 일, 나쁜 일’이 생겼는지가 아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라는 점을 깨우쳤으니까요.


    물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탈모증이 발병하지 않아 엇갈린 손금의 반대 측 선로를 따랐다면 이후의 시간이 보다 평탄하게 흘렀을 텐데, 외모로 위축되지 않았다면 대학 시절 훨씬 다양한 경험을 하며 보냈을 텐데 싶으니까요. 그럼에도 지금 삶에 만족감을 느끼는 건 유명한 격언대로 하나의 문이 닫혔지만 또 다른 문이 열렸고, 그 과정에서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서입니다. 마음이 여리고 정서적으로 미숙했던 10~20대 초반에는 닫힌 문을 여는 데 매달리다 보니 새로이 열린 문을 감지하지 못했지만요.


    삶의 희로애락과 성패가 단순히 ‘좋은 일, 나쁜 일’의 발생 여부로 결정된다면 전두 탈모가 발병한 고등학생은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좋든 나쁘든 일이 생긴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게 삶의 본질입니다. 로또에 당첨되었으나 유흥과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려움을 주춧돌 삼아 의미 있는 도약을 이뤄낸 사람도 더러 존재하니까요. 동서고금의 이름난 현인들이 길흉화복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적잖은 경우 행운과 불행을 판가름하는 건 사건 자체라기보다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못생김은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니다

    외모 스트레스의 원인이 외모라는 생각에 대하여


    언젠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성형률이 가장 높은 국가라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2011년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 조사에서 단위 인구당 성형률이 가장 높았는데요. 자료의 신빙성을 감안해야 하나 썩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외모에 불만을 느낀다는 방증이며 일부 전문가는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자살률과 성형률 간 상관관계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외모 스트레스의 원인을 물으면 대부분, 체감상 90~95%이상 “외모가 못생겨서 스트레스가 생겼다”라고 대답합니다. 만일 견해가 일치한다면 이번에는 다음 문장의 진위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외모 스트레는 외모가 바뀌지 않는 한 계속될 거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질문에도 대부분 “그렇다”고 답하며 사실상 둘을 동일한 의미로 간주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신체 이미지 회복의 첫 번째 난관입니다.


    외모심리학의 프레임에서 두 문장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나 옳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지금 신체 이미지가 건강한 사람의 상당수가 한때 외모로 스트레스를 받았으나 생김새의 변화 없이 회복했으니까요. 남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인해 위축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고충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고요. 무엇보다 외모 스트레스의 원인이 외모라는 생각에는 결정적인 반례가 있습니다. 동일한 유전 형질을 물려받아 겉모습에 차이가 없는 일란성 쌍둥이임에도 외모 만족도가 천양지차인 경우인데요. 외모와 신체 이미지가 비례하지 않는 현상인데 단순히 외모가 원인이라면 설명 불가능한 일이죠.


    해답은 신체 이미지라는 용어의 정의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몸에 관한 이미지인데 외모와 달리 밖이 아니라 안에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으로 외모와 달리 당사자만이 인식하는 영역이지요. 신체 이미지가 중요한 이유는 자존감, 웰빙 지수와 긴밀한 연관을 보여서인데 놀랍게도 외모보다도 영향력이 더 컸습니다. 타인의 눈에 맺히는 객관적인 모습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주관적인 상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인데, 신체 이미지를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거울이나 셀카 사진을 지그시 들여다보거나 빈 종이에다 자신의 모습을 그리면 되는데, 중요한 건 비치는 모습이나 그림체가 아닙니다. 거울과 사진, 그림을 보고 내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데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다면 신체 이미지는 양호합니다. 반대로 유의하게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면 신체 이미지 문제를 의심해야 합니다. 설상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객관적으로 예쁘게 잘생겼어도 말이죠.


    외모심리학적으로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할 점은 신체 이미지가 외모라는 단일 요인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외국에서 진행된 유수의 신체 이미지 연구에 의하면 외모 외에도 개인사, 미디어, 심리적 특성의 영향을 받는데 이를 신체 이미지의 4대 요인이자 외모 스트레스의 4대 원인이라 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지금껏 외모에 관하여 들은 얘기들, 미디어에서 전달하는 메시지, 성격과 자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결과적으로 일란성 쌍둥이여도 자존감, 성향, 관련경험 즉, 외모로 놀림, 차별 무시를 받았는지 여부 등에 따라 신체 이미지에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는 세간의 맹목적 믿음과 달리 외적인 부분이 변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외모가 충분 요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체상은 외모가 바뀌지 않아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신체 이미지는 타인의 눈에 담기는 상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내면의 거울입니다. 설령 다른 사람의 눈에 부정적으로 비쳐도 내가 그 모습을 수용한다면 신체 이미지는 양호합니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으면 외모 스트레스에 취약해집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과 무관하게 외부 시선과 말에 위축되고 사소한 변화에도 예민해집니다. 정도가 심하면 사회 불안을 느끼다 종국에는 고립에 이르게 되고요. 만일 신체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형성되었다면 대부분 차악과 최악 두 지점에 있을 텐데 외모심리학적으로 목표는 간명합니다. 외모가 아닌 다른 변인들을 조절하여 스트레슬ㄹ 줄이는 원리이지요. 신체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형성되는 원인을 보다 다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외모가 변하지 않으면 외모 스트레스를 줄일 수 없다’라는 편중한 관점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합니다.


    외모심리학 카운슬링&심층상담

    현저성: 예쁜데도 외모가 신경쓰이는 속사정


    충격적이게도 외모 스트레스를 호소한 연예인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여배우라 게스트들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는데요. 얼핏 이해가 안 가는 현상입니다. 연예인은 4대 요인에서 외모가 만점이고 어릴 적에 놀림을 받았을 가능성도 전무합니다. 뷰티, 패션 광고를 독점하는 미의 표준이기도 하고요. 남은 건 자존감인데 정말 자존감이 낮아 스트레스를 받은 것일까요? 해당 연예인의 자존감은 시청자로서 알 수 없는 정보입니다. 다만 외모 콤플렉스를 호소한 연예인이 한둘이 아닌데 이들 모두가 자존감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외모심리학적으로 자존감보다 현저성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언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일컫는 말인데 모두가 알다시피 연예인은 외모 현저성이 극도로 높은 직종입니다. 대중의 눈에 비치는 이미지의 중요성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보니 스트레스에 취약한데, 전교 1등의 엄살과도 일정 부분 유사합니다. 객관적으로 빼어남에도 당사자의 성에 차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헤아려 보면 전혀 터무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외모가 인지도, 캐스팅, 수입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보니 보통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 미미한 흠을 곱씹는 것이죠.


    외모 현저성은 직업 외에도 성별과 성적 지향, 연령, 환경 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현저성이 높은데 “여자는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 “10분 더 공부하면 아내 얼굴이 바뀐다”와 같은 메시지가 이를 방증합니다. 외모심리학적으로 여성이 신체 이미지 건강의 고위험 성별임은 틀림없는데, 여기에는 성적 지향이 이성애자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 여성은 이성애자보다 외모 스트레스가 적은 편이고, 반대로 남성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보다 신체상이 부정적일 확률이 높습니다. 연령으로는 M세대 일부와 Z세대가 속한 10대, 20대 그리고 30대 초반이 가장 높은 시기입니다.


    현저성은 사회 트렌드의 영향도 받는데 외모지상주의라 불리는 현재 시류는 당연히 부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가정 환경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또래에 비해 현저성이 높은 사람은 어린 시절에 외모가 중요하다는 사상을 주입 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당사자들이 체감하기 어려우나 가정마다 외모를 중시하는 정도에는 차이가 큽니다. 관심이 없고 언급이 전무한 집안부터 직간접적인 피드백, 예를 들면 형제자매 간 외모 비교 및 차별, 외모가 중요하다는 뉘앙스의 말과 행동이 일상화한 가정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편입니다. 만일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외모보다 중요한 게 많이 있다’는 가르침을 받았다면 현저성이 낮을 확률이 높으며, 반대로 부모가 다이어트나 성형에 혈안이 되었다면 위험 징조입니다. DNA뿐 아니라 외모를 바라보는 관점도 유전된다는 뜻이죠.


    정신의학적으로 외모와 신체상이 비례하지 않는 가장 극단적인 예시는 신체이형장애입니다.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 강박장애로 분류하는 질환을 미미한 결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게 핵심 진단 기준입니다. 객관적인 모습이 정상임에도 시지각 편향으로 자신을 비정상이라 인식하는데, 뇌 회로의 결함으로 특정 부위에 꽂혀서입니다. 거울을 볼 때 전반적인 형상을 지각하지 못하고 콤플렉스 부위에 집착하여 신체상이 훼손되는 것이죠. 신체이형장애의 치료는 일반 강박 장애와 마찬가지로 항우울제를 고용량으로 쓰고 인지행동상담을 병행하는데 까다로운 편입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병식(病識)부재입니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외모에 할애함에도 스트레스가 줄지 않는 이유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여 정신과가 아닌 성형외과, 피부과를 찾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자칫 성형 중독에 빠질 우려가 큰데 외모가 아닌 마음의 문제이다 보니 수술을 해도 효과를 보지 못해 의학적으로 성형 금기에 해당합니다.


    일과표 밸런스를 조정하기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삶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과 놀이, 사랑의 비중이든 외면과 내면의 균형이든 평형 관계가 깨졌다면 문제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특히 연예인이 아님에도 외모 집착이 심하다면 현저성을 줄이는 게 올바른 해법인데요. 그러기 위해선 외모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과 주변 사람보다 현저성이 높은 이유부터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 상처받은 기억, 외모가 아니면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심리적 취약성, 외모지상주의 사상의 복합체가 아닐까요?


    만일 현저성이 높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다면 우선 변화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성별과 성적 지향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변화가 가능한 요인도 있는데 그 부분을 최대한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원인이 아니라 결과부터 바꾸는 것도 고려 가능한데, 이유를 불문하고 일단 외모에 쓰는 시간부터 줄이라는 권고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 일과표를 그린 다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시각화하여 살피는 파이 차트 기법을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일과표 그림을 통해서 외모에 들이던 시간을 구체적으로 측정했다면 다음 단계는 재분배인데, 가령 3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라면 1시간을 떼어 다른 활동을 해보는 식입니다. 파이 차트는 현저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종의 나침반인데 핵심은 실천입니다. 적어도 3개월 이상 실생활에서 적용해야 효과를 보는 기법으로, 당장 큰 변화를 주기 어렵다면 하루 1분이라도 좋으니 조금씩 교정해 가길 권합니다. 변화의 폭은 미세할지언정 점진적으로 불안감이 줄어들 겁니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마음 처방전

    상처받은 기억을 씻어내는 방법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을 창시했습니다. 정신의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으로 마음의 기능, 구조를 체계적으로 설명해 노이로제 치료에 크게 기여했는데요. 정신분석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크게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류합니다. 후자는 말 그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을 가리키는데 흥미로운 건 비중입니다. 무려 90%이상이 무의식이고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이는 억압 기제와 관련이 깊은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위협적인 기억을 의식 너머로 밀어내는 작용입니다. 매 순간을 인식하기에 사람살이가 너무 고달프니까요. 유감스럽게도 억압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아픔이 무의식으로 가라앉으나 웬만큼 멘탈이 강하지 않은 한 상처가 곪은 채입니다.


    외모에서 비롯된 상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표면은 시간이 흐르며 잠잠해졌을지 모르나 심층부는 여전히 밀도 높은 감정으로 응어리진 채입니다. 아픔을 씻어내고 싶다면 마음속 깊숙이 내려가 억압된 기억을 탐색해야 합니다. 환부가 깊을수록 근본적인 처치를 요하는데 문제는 심층부로 가는 과정이 만만찮다는 점입니다. 외모로 힘들었던 기억을 파헤쳐야 하는데 깊이에 비례하여 불안이 밀려듭니다. 상처가 깊으면 공황에 이르기도 하여 신중하게 다가가야 하는데요. 실제로 전문가들은 스트레스 치료 시 최적의 개입 시점을 산출하기 위해 상처의 심각도에다 내담자의 정서 상태, 치료 기간을 두루 살핍니다. 흡사 양파 껍질을 벗기듯 섬세하게 핵심부로 접근하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작업에는 중요한 선행 단계가 있습니다. 상처 자체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진 내담자를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해하는 일인데, 실제로 유형에 관계없이 모든 심리치료의 첫 단계는 개인사 파악입니다. 나이, 학력, 직업, 종교 같은 기본 정보부터 주요 방어기제, 가족 관계, 학창 시절, 가능하다면 발달력까지 세세히 조사하는 게 원칙입니다. 거의 모든 경우 내담자의 어려움이 성장 과정과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이죠. 신체 이미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사와 연관이 깊은데 특히 부모, 형제, 친구가 영향력이 큰 인물입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신체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했고 다른 누군가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인데, 신체 이미지도 말과 행동을 통해 계승되기 때문입니다.


    심리치료 예비 면담 때 개인사를 청취하다 보면 핵심 저점이 드러납니다. 현재 내담자의 어려움과 직결되어 유독 불안이 심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시점이 있는데 신체 이미지는 청소년기가 취약 기간입니다. 외모심리학적으로 사춘기는 4대 요인 모두가 변동하는 시기입니다. 본격적으로 SNS를 접하고 이차 성징을 외형 변화가 크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데다 여느 때보다 또래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니까요. 반대로 상처의 근원을 치료하고 싶다면 특히 중고등학교 시절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외모 때문에 힘들었던 순간, 당시 들었던 얘기와 감정 반응, 신체 이미지에 유의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생각나는 대로 끄집어 내기 바랍니다.


    만일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한 무엇이 더 이상 대수롭지 않다면 상처가 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여전히 힘겨움, 먹먹함을 느낀다면 마음속 어느 깊숙한 부위가 곪았다는 증거입니다. 외모와 관련한 대인 관계 경험이 4대 요인에 포함된 이유도 ‘쉽게 잊히지 않아서’이고요. 얼핏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무의식에는 아픔이 뿌리째 잠겨 있으니 한 번쯤 마음을 점검해 보길 권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

    심리치료에서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원리 중 하나는 환기입니다. 모두가 아는 대로 탁한 공기를 맑은 공기로 전환하는 과정을 뜻하는데 상담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쓰입니다. 억제된 생각,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작업으로 단연코 강력한 치료 인자로 꼽히는데요. 단순히 일상에서 맞닥뜨린 어려움과 갈등을 털어놓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줄어들기 때문인데 치료적 환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외부 대기가 내부보다 맑아야 통기 효과가 나타나듯 말하기 힘든 얘기를 애써 했는데 귀담아듣지 않거나 비수용적 반응을 보이는 등 반응이 부적절하면 역효과를 볼지도 모릅니다.


    수년 전부터 심리학계에서는 쓰기를 치료 옵션으로 주목합니다. 환기의 핵심은 케케묵은 생각, 감정을 내면에서 배출하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건 구어가 아닌 문어도 효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보스턴의대 정신과에서 쓰기 노출치료법이 기존 트라우마 치료법보다 효과가 열등하지 않고 중단율은 더 낮았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진료 현장에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도구로 활발히 쓰이는 추세이고 개인적으로도 내담자들에게 적용 시 효과가 괜찮았습니다.


    신체 이미지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점은 아픔 자체보다 그것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는 게 더 유해하다는 점입니다. 고인 물이 썩는다는 말처럼 정체된 생각은 반추를 거쳐 종국에는 인지 왜고, 자기 비하로 귀결되니까요. 그러니 적절한 시점이 되었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판도라의 상자를 개봉하길 권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가장 큰 고통은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는 외로운 고통입니다.


    힘들었던 시간이 가르쳐준 삶의 지혜

    연민과 자비를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이유


    자기 연민(self-pity)이라는 말을 들으면 개인적으로 의대 정신과 실습 때 뵈었던 노교수님이 떠오릅니다. 본과 3학년 과정이 막바지에 다다른 눈 내리던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도심에서 택시를 타고 40분이 더 걸리는 교외 정신병원으로 실습을 나갔는데 꽤 오래전의 일임에도 노교수님 특유의 차분하지만 또렷한 중저음 목소리, 진중한 분위기는 여전히 눈앞에 선연한데요. 국내 정신과 의사들은 전문 지료분야에 따라 20여 개의 학회에 뿔뿔이 가입하는데, 그중 최고 권위인 신경정신의학회 회장을 역임하신 분이었습니다. 실습 나온 의대생의 입장에서는 마치 인생의 모든 걸 통달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고, 실제 회진을 돌 때 환자분을 대하는 언품이 남다르셨습니다.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명문대 출신 전문의, 연구 업적이 탁월하여 학계에서 대가라 불리는 교수님들을 여럿 뵈었지만 단언컨대 그 교수님만큼 통찰력이 뛰어난 분은 없었는데요.


    노교수님이 자기 연민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신 건 실습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어떠한 질문이든 궁금한 게 있으면 해보라는 말씀에 저와 동기들은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리다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즉문즉답이 너무 명쾌한 나머지 나중에는 자존감을 키우는 법, 정신적으로 건강함의 기준 같은 잡다한 질문까지 나왔고, 질의응답이 끝나갈 무렵 가장 궁금했지만 망설이던 질문을 드렸습니다. “지인 중에 외모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조심스레 여쭤보았는데요. 김이 오르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교수님께서 말문을 떼셨습니다.


    “우선 어느 정도로 힘들어하는지부터 파악해야겠지. 그러고 나서 그에 걸맞는 치료를 해야 할 테고. 하지만······세상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 갖고 좌절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네. 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얘기가 상처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일세.”


    이전 답변과 달리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의학도이기 이전에 외모가 고민이었던 20대의 입장에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게 당시 솔직한 심정입니다. 서운함을 느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우선 인생사를 통달한 듯한 교수님이라면 외모 스트레스를 단번에 해소할 비법을 알고 있으리라는 마술적 기대가 있었고, 두 번째는 10대 후반부터 겪어온 어려움을 공감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의대생의 생각이 달라지게 된 건 인턴, 레지던트 기간 수천 명이 넘는 환자를 지료하고 학회에서 공부하며 사람의 정신에 대한 이해도가 나름 갖춰지면서입니다.


    자기 연민은 자기 자비(self-compassion)와 유사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둘의 결정적 차이는 객관성입니다. 전자는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일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야, 나도 주변의 누구처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힌 반면, 후자는 균형 잡힌 관점을 견지합니다. ‘분명 내 처지가 주위 사람들보다는 안 좋지만, 그렇다고 최악은 아니야. 주변에는 없지만 어딘가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어.’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도 많으니 나는 힘들어해서는 안 돼’ 내지는 ‘타인의 불행에 안도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그보다는 불행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던 머릿속 현미경을 내려놓고 보다 성숙한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하라는 권고입니다. 고통의 보편성, 심도를 헤아리는 건 사람을 겸허하고 초연하게 만드는데 물에 빠졌을 때 깊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평온함이 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반면 ‘왜 하필 나일까? 왜 나만 이럴까/라는 한탄은 인간의 정신이 헤어나오기 힘든 늪지대이고요.


    글을 마치며 문득 든 생각인데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교수님께서는 실습 나온 의대생의 질문이 친구가 아닌 당사자의 고민이라는 점을 간파하셨으리라 추정합니다. 전문의이지만 아직 부족함이 많은 저조차 정신의학을 배우며 어느 정도의 분석력을 갖추게 외었는데,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교수님이라면 100% 확률로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진의를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은 교수님의 말씀을 겸허히 수긍하는데, 어쩌면 살면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이 별거 아닌 듯 여겨지는 것. 회피할 수 없었던 역경과 태생적 불공평성에서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의미를 생성하여 그것을 삶의 일부로 통합하는 것. 이것이 치유의 마지막 관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모이든 아니면 다른 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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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