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과 열정, 갈림길과 장애물을 모두 지나 지천명에 이른 나이, 어떤 책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소설을 즐기기엔 시간에 쫓기고, 인문서를 파고들기엔 겁이 나기도 한다. 못 읽은 책도 산더미인데, 읽고 싶은 새 책 또한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책의 망망대해 앞에서 망연자실했다면 이제 무엇을 왜 읽는지를 넘어 ‘어떻게’ 읽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저자 박균호
교사이자 북 칼럼니스트이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5년째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독서평론》,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웹진》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청소년을 위한 독서 칼럼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오래된 새 책》, 《아주 특별한 독서》,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 《수집의 즐거움》, 《독서만담》,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읽기》가 있다.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2019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된 바 있으며,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한 2019년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도 선정되었다.
포도를 찾아 남부로 떠난 농부들이 분노한 까닭은 - 《분노의 포도》 & 《1929, 미국대공황》
신의 공간은 중세에 어떻게 변모했는가 - 《수도원의 비망록》 & 《수도원의 역사》
로맨스 소설에 가려진 노예들의 삶 - 《맨스필드 파크》 & 《노예선》
《춘향전》 속 놓쳤던 고전의 여러 얼굴 - 《춘향전》 & 《한국의 과거제도》 《조선 시대 과거제도 사전》
칼 못 드는 사무라이의 비애, 에도부터 메이지까지 -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 《메이지의 도쿄》
스스로조차 속고 속여야 했던 스파이의 삶 -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비밀정보기관의 역사》
2부 복잡한 인간 내면의 소우주 이해하기
예술의 불멸하는 재료, 질투 - 《레베카》 & 《질투》
음식으로 표현된 ‘낭만주의적 몽상’ - 《마담 보바리》 & 《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
금기와 욕망의 흔적, 금서의 목록 - 《장미의 이름》 & 《금서의 역사》
사교계 매너에는 교묘한 의도가 있다 - 《면도날》 & 《영국 사교계 가이드》
운명과 본능의 외줄 타기, 꾼들의 중독사 - 《황금광 시대》 & 《도박의 역사》
3부 아는 만큼 빠져드는 일상의 인문학
고양이, 인류 이전 신의 대리인 - 《모르그 가의 살인》 &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세상에서 가장 문학적인 술, 위스키 - 《해변의 카프카》 & 《알코올과 작가들》
개는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했을까 - 《이별의 순간 개가 전해준 따뜻한 것》 &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종착점, 고서점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 《고서점의 문화사》
요가, 종교에서 시작해 문화가 되다 - 《세상이 멈추면 나는 요가를 한다》 & 《요가의 역사》
시대와 함께한 다이어트의 변신은 무죄 -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 《다이어트의 역사》
신들이 머물다 간 곳, 호텔의 역사 - 《매스커레이드 호텔》 &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참고문헌
북 칼럼니스트 박균호가 제안하는 문학과 인문을 넘나드는 ‘조금 다른’ 독서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못 읽은 책도 산더미인데, 읽고 싶은 새 책 또한 무수히 쏟아져 나옵니다. 책의 망망대해 앞에서, 이제 무엇을 왜 읽는지를 넘어 ‘어떻게’ 읽을지를 고민해봅니다.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
역사의 단면을 다룬 벽돌책 도전하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 시베리아를 담다
드미트리 표도르비치 카라마조프, 로댜 로마노비치 라스콜니코프, 카튜사. 이 세 인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면서 시베리아 유형소에 복역한 죄수들이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대표작 주인공들이 모두 ‘시베리아 유배’라는 결말을 맞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시베리아 유배지는 러시아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유배와 기회의 땅, 시베리아의 남자들
황금을 찾아 서부를 개척한 미국처럼 러시아는 ‘부드러운 황금’ 즉 모피를 손에 넣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이끌려 시베리아 벌판으로 향했다. 러시아인에게 시베리아는 모피와 지하지원을 조달하는 식민지에 불과했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시베리아 유배형은 여러 가지로 유익했다. 우선 죄수를 이용해서 시베리아라는 광활하고 척박한 땅을 사람이 살 만한 땅으로 개척할 수 있었고, 또, 러시아 권력 체제를 비판하는 도스토옙스키 같은 위험인물을 사회에서 격리할 수 있었다.
시베리아가 유형의 땅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죄와 벌>에서 유배지로 떠난 로댜의 친구 라주미힌도 그런 사람이었다. 라주미힌은 8년의 형기로 시베리아 유형소에 가게 된 친구 로댜를 따라 시베리아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땅은 비옥하지만 혹독한 날씨 때문에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시베리아로 가려는 결심이었다. 가난하지만 젊고 열정적인 사람에게 시베리아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리고 군주체제에 저항하는 혁명가에게는 훈장과 같은 통과 의례이기도 했다. 군주제와 농노제를 비판했던 도스토옙스키뿐만 아니라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또한 시베리아 유형을 거친 ‘시베리아’의 남자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르포르타주가 된 소설
고골, 도스토옙스키, 푸쉬킨에겐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라는 사실 이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민이었다. 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함과 웅장함보다 어두운 면을 조명한 작가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는 대부분의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44년을 거주하는 동안에도 가난과 빚에 쫓겨 스무 번이나 이사를 했다.
<죄와 벌>을 집필했던 센나야 광장 근처의 메산스카야 거리 7번지는 빈민가였으며, 그야말로 매춘과 온갖 범죄의 온상지였다. 소설의 소재뿐만 아니라 무더운 날씨, 혼잡한 거리, 악취, 먼지, 술취한 사람들, 도시의 어두운 모습을 서술한 대목은 작가의 상상이라기보다 그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면을 조명한 르포에 가깝다. 한마디로 <죄와 벌>은 첫 문장의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를 포함해 186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신문기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푸시킨은 <청동기마상>에서 이 거대 신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희생된 하층민과 하급 관리의 고달픈 삶을 지적했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수입도 쥐꼬리인 주인공 예브게니의 유일한 소망은 돈도 모아 집을 마련한 다음 사랑하는 파리샤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홍수가 나는 바람에 그의 꿈은 산산이 무너진다. 망연자실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을 명령한 표트르1세의 동상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어디 두고 보자”라고 내뱉는 것뿐이었다.
1682년 열 살의 나이로 차르국의 차르에 오른 표트르 대제는 서구 문화를 적극 수용한 한편, 새로운 수도를 건설해 러시아 제국을 탄생시키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늪지대가 궁전과 찬란한 도시로 변모하기 위해 수십만 명의 농노와 죄수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15만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상트페테르브루크는 인간의 뼈 위에 건설된 도시였다. 푸시킨은 청동 기마상과 같은 대공사에 동원된 하층민의 고통을 두고 “참으로 공포스러운 시대”라고 시로 읊었다.
고골만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밀히 관찰하고 여러 작품을 발표한 작가는 드물다. 고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낭만을 완전히 제외하고 러시아 역사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제거해버렸다. 푸시킨과 마찬가지로 고골에게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무서운 도시였다. <광인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외투>, <코>에서 고골은 자신이 경험하고 관찰한 도시 하층민의 뼈아픈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 중 <네프스끼 거리> 주인공인 화가는 네프스끼 거리를 걸으면서 아름답게 꾸민 한 여인에게 반해 따라가다가 여인이 창녀임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겉으로는 화려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사실은 속임수와 허상으로 가득 찬 곳이라는 현실을 깨닫는다.
<외투>의 주인공은 무려 6개월동안 모든 돈으로 겨우 새 외투를 장만하고 관청의 동료들은 축하하는 파티까지 열어준다. 그러나 새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기고 마는데, 너무 상심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고골은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동정하는 한편 당시의 빈부격차를 비판했다. 당시 하급관리가 겨울 외투를 한 번 장만하자면 몇 달을 굶주리고 아껴야 했다. 도스토옙스키나 고골 같은 교육을 어느 정도 받은 지식인도 사정이 이랬다. 교육을 받았어도 재산이 없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처럼 살았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비롯되었다”라던 도스토옙스키의 극찬이 결코 과찬이 아니다.
포도를 찾아 남부로 떠난 농부들이 분노한 까닭은
<분노의 포도>는 미국이 대공황의 늪에 빠져 허둥대던 1930년대에 주인공인 톰 조드 가족이 소작하던 땅을 빼앗기고 66번 고속도로를 지나 일자리가 넘친다는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여행 중에 겪는 일이 전부다. 그런데도 독자들이 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이 책이 가진 뛰어난 상황 묘사, 당시 사회를 겨냥한 날카로운 문제의식 덕분이다. 왜 그들은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 66번 도로를 타고 서부로 향했을까? 미국인들은 이 소설의 중요한 무대인 66번 도로에 어떤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까?
톰 조드 가족은 66번 도로를 타고 더스트볼, 천둥 같은 트랙터 소리, 태풍과 가난을 탈출한다. 66번 도로는 서부 대척 시대에는 금광을 쫓는 사람들의 길이었고, 대공황 시기에는 일자리를 잃고 굶주린 사람들이 포도와 오렌지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66번 도로는 시기마다 이주민이 운전하는 차로 가득했다. 이들은 누구나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여정을 떠났지만 불행하게도 66번 도로는 꿈의 허상과 냉혹한 현실로 그들을 인도했다.
존 스타인백은 66번도로를 “마더 로드”라고 불렀지만 어머니의 길을 따라간 수많은 농부는 대부분 냉대와 멸시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66번 도로는 미국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이 도로는 도피의 길이 아닌 자유의 길로 남아 있다. 대공황 시절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의 탈출구였던 66번 도로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도로이다.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66번 도로는 황금기였던 1920년대 고급차들이 오가고 새로운 즐거움과 꿈을 찾아서 서부로 이동하던 시절의 기억이자 미국이 전 세계 제조업의 80퍼센트를 차지하던 산업화 시대의 기억이지, 오렌지와 포도를 찾아 남은 트럭에 온 가족이 위태롭게 이동하던 소작농들을 기억하는 데에는 소홀하다.
<춘향전> 속 놓쳤던 고전의 여러 얼굴
<춘향전>은 19세기 민중의 로망이 담긴 판소리계 소설이다. 비록 기생의 딸이기는 하나 결혼도 하지 않은 남녀가 1년 동안이나 자유롭게 성행위를 즐긴다는 설정, 장래를 촉망받는 명문가의 자제와 기생의 딸이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연애를 하는 설정, 결국 기생의 딸이 사대부 집안의 정실부인이 된다는 설정은 모두 조선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철저한 신분 사회에서 살아가던 조선의 민중들은 <춘향전>을 돌려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독자에 따라 연애 소설로 읽히기도, 신분 사회를 비판하는 풍자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는 매력이 있다.
춘향과 자유연애를 즐겼던 이몽룡은 식솔을 이끌고 한양으로 이동하라는 부친의 지시를 받고 한양으로 향한다. 그리고 과거 합격에 집념을 불태운다. 얼마 뒤에 나라에 경사가 있어 태평과를 실시할 때 응시한다. 이는 정보에 어둡고 이동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지방 수험생들은 참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수도권학생에게 유리했고 응시자가 식년시에 비해 적어 경쟁률이 낮았다. 이몽룡의 부친은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로 한양에서 내근직으로 근무했다. 따라서 당연히 수험 정보도 빨리 얻었을 테다. 이몽룡은 원래 천재이기도 하지만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덕을 툭툭히 본 셈이다.
어쨌든 이 도령이 아무리 총명하고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가면서 공부를 했다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자유연애를 즐기던 자가 별시에 장원급제하는 일은 삼국지에 수시로 등장하는 ‘백만 대군’만큼이나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조선의 과거는 그런 식으로 공부해서는 합격할 수 없었다. 더구나 이 도령은 장원급제하자마자 암행어사로 임명되는데 이는 기생이 정경부인이 되는 것만큼이나 사실과 다르다.
과거에 급제하고 경력을 쌓아 암행어사가 되기까지 대략 10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변학도의 임기는 3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춘향전>의 이 도령이 급제하고 암행어사를 제수받아 변학도를 응징하는 장면은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과거제도는 이 도령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자제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고 이런 저런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전 세계를 통틀어 근세 시대에 시험으로 관리를 선발한 국가는 중국, 베트남, 그리고 우리나라뿐이라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칼 못 드는 사무라이의 비애, 에도부터 메이지까지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이어진 에도 막부 250년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전쟁이 없는 사무라이의 효용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황혼의 사무라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미지와 사뭇 다른 사무라이의 삶을 그린다.
영화는 메이지 유신이라는 근대화의 물결이 다가오기 직전 막부 정권말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구치 세이베이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사무라이이다.
주군의 창고지기로 일하면 쥐꼬리만 한 급여를 받는다. 게다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사무라이들의 실질 소득은 감소했다. 영화는 먹고사느라 목욕도 하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는 사무라이의 모습과 “칼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대사로 사무라이의 시대에 임박한 종말을 암시한다.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는 메이지 시대를 옹색하게 살아가는 사무라이의 생활을 본격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신 초기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무라이들의 현실을 세밀히 묘사한다. 메이지 유신은 실질적으로 나라를 통치했던 쇼군 정치 질서가 붕괴한 시기이기도 하다.
천황이 실절적인 권한을 행사한다고 해서 메이지유신을 ‘왕정복고’라고도 부른다. 막부의 사무라이들은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오랜 평화에 익숙해진 나머지, 메이지 천황의 지휘 아래 근대화된 무기를 장착한 정부군에게 속절없이 패배했다. 사무라이에게 지급되던 급여가 중단되었고 퇴직금이 일시금으로 지급되었다. 대기업 임직원이었던 사무라이가 졸지에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무라이들은 퇴직금을 밑천삼아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평생 사무실에서 서류만 만지던 대기업 임원이 갑자기 권고사직을 당해서 치킨집을 하다 퇴직금을 날리는 상황과 비슷하다. 어쨌든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의 일환으로 가스등을 설치했고 음력대신 양력을 사용했다. 무엇보다 당시 일본 관리나 군인들은 새로 도입된 요일과 시간 개념을 가장 어려워했다.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일을 끝내는 방식으로 살아왔던 일본인들은 아침 9시까지 출근하라는 지침에 시간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고 1분이라는 시간이 어느 정도의 길이인지 가늠하기 어려워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시계탑이다. 시계탑은 시민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관공서나 학교에서 정확히 시간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빠른 속도로 설치된다. 무사들이 신정부 관리가 된 후 기념 촬영을 무서워해 도망치던 모습 또한 서양식 근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허둥대던 무사들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에 언급되는 개조 지팡이야말로 메이지 시대에 애매한 위치에 놓였던 무사들의 심정을 잘 대변한다. 말 그대로 지팡이를 개조해서 속에 칼을 넣어 다녔다. 평생의 습관을 버릴 수 없었고, 무엇보다 격변의 시대에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단이 필요했다. 개조 지팡이는 사무라이의 씁쓸한 처지를 상징하지만 만화에서는 재야의 고수를 상징하던 개조 지팡이가 궁색한 사무라이들의 마지막 흔적이었다니 재미난 일이다.
복잡한 인간 내면의 소우주 이해하기
예술의 불면하는 재료, 질투
<레베카>는 대프니 듀 모리에가 1938년 발표한 작품으로 질투라는 감정을 첨예하게 다룬 위대한 소설이다. ‘레베카 증후군’이란 신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전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주인공은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로 지칭될 뿐이다.
레베카는 남편의 전 부인이다. 본인이 레베카보다 예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레베카를 향한 끊임없는 질투심에 시달린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모든 언행이 레베카 증후군의 모범 사례이다.
주인공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전 연인을 자신보다 더 아름답고 지적인 사람으로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레베카>를 읽을수록 질투는 타고난 본성이기도 하지만 상황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기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주인공이 고아로 자란 것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며 생계유지를 위해 귀부인의 하녀노릇을 한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녀는 출신과 처지 때문에 저택의 여주인이 되고 나서도 마치 하녀처럼 눈치를 봐야했고 레베카가 썼던 펜을 집어 들어야했고, 레베카가 선택한 그림과 장식품을 보아야 했으며, 레베카가 앉았던 자리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레베카>의 주인공인 ‘나’는 자신이 레베카보다 사교성과 교양이 부족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늘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수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남편과 레베카가 서로를 미워했다는 사실과 교활하고 사악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괴롭히던 질투심은 말끔히 사라진다. 레베카의 불행이 ‘나’에게는 행복이었다. 질투라는 감정의 스펙트럼에는 남의 불행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심리, 즉 샤덴프로이데가 존재한다. 질투는 사람을 완전히 망가트리기만 하는 감정은 아니며 엉뚱하게 행복감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확실히 질투심을 들키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인간 사회의 오래된 전통이다. 줄곧 질투가 곧 약점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아일랜드의 대표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가 쓴 <율리시스>는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지만 아내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감정을 숨기려고 고군분투하는 레오폴드블룸의 하루를 그린 소설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질투라는 감정의 권위자이다. 본인이 질투심에 폭발한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위대한 명작을 남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질투라는 감정을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본인의 의도와 달리 질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의 질투로 트로이의 전쟁은 시작되었고 질투 때문에 계속되었다. 평범한 인간이 질투심을 느낀다고 수치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식으로 표현된 “낭만주의적 몽상”
<마담 보바리>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샤를 보바리는 유산이 많은 과부와 결혼하지만, 곧 회의를 느낀다. 그러던 중 미모의 엠마에게 반해 아내가 죽자마자 엠마와 재혼한다. 엠마는 두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큰 빚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한다. 샤를 보바리는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녀의 불륜 사실을 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만다.
줄거리는 이토록 간단하지만, 음식만큼은 작가 플로베르의 섬세한 상징화 작업에 따라 소설 곳곳에 배치되었다. 이 소설에는 유난히 식사 장면과 음식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주로 부엌에서 처음 만나는데, 플로베르는 이 장면에서 음식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다.
기실 <마담 보바리>를 제대로 읽으려면 당대 프랑스 요리 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중세 프랑스 사람들은 인간, 동물, 식물 순으로 신과 가깝다고 생각했다. 귀족들은 신과 가장 먼 흙에서 자라는 채소를 하찮게 여기고 멸시했고, 농민들의 위장에나 어울리는 식품으로 생각했다. 고기는 사냥이 허락된 귀족들만의 식품이었고 채소는 저급한 식품이었다. 그러니 양파 수프를 맛있게 먹는 보바리는 엠마의 눈에 얼마나 초라하고 한심하게 보였겠는가? <마담 보바리>에서 요리는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의 결정적인 심경의 변화와 욕망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낭만주의자 엠마는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요리의 이름을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프랑스 요리의 또 다른 장점은 엠마의 고향 마을에서 열린 결혼식에 등장하는 음식과 귀족들의 저택에서 요리된 음식에 교집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요리는 지역별, 계급별로 다양하게 발전했다. 프랑스 요리야말로 ‘음식을 다양하게 변형할 줄 알고 때와 장소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먹는 유일한 포유류’라는 사람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한다.
프랑스 요리가 미식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대략 1851년에서 1856년 사이인데, 이 시기에는 설탕이 본격적으로 소비되었고 칠면조가 연회 요리 테이블의 주빈으로 등극했다. <마담 보바리>도 비슷한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으니, 설탕과 칠면조의 잦은 등장에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귀족과 서민이 먹는 설탕은 질도 차이가 크게 났다. 소설에는 엠마의 집에서 허드렛일하는 하녀가 질지 좋지 않은 흑설탕을 수시로 훔쳐 먹고 설탕을 마치 약처럼 물에 타서 마시는 풍습이 묘사된다. 그만큼 설탕은 당시 서민들에겐 귀한 음식이었고 귀족들에겐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는 도구였다.
금기와 욕망의 흔적, 금서의 목록
움베르토 에코가 1980년에 발표한 <장미의 이름>은 수도원에서 발생한 일련의 살인 사건들이 모두 책 한 권에서 비롯했다는 독특한 설정이 눈길을 끈다. 문제의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을 주제로 썼다는 <시학> 제2권으로, 수도원 도서관이 유일한 필사본을 보관했다. 수도원 도서관 관장이 되고 싶었던 수도사 호르헤는 다른 수도사들이 이 불순한 책을 절대로 읽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급기야 책장에 독을 발라 책을 읽으려고 시도한 수도사들을 살해한다. 호르헤는 왜 불태우거나 없애지 않았을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호르헤는 ‘개인적으로 <시학> 제 2권을 금서로 지정한다. 이렇듯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은 지식을 얻는 장소가 아니었고 오히려 해로운 지식을 차단하고 감추는 곳이었다. 책을 금지하는 것은 사회가 규정한 불온한 생각을 금지하는 것과 같다.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들이 목숨을 걸고 <시학> 제2편을 읽으려던 것처럼 금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살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어 인쇄와 영업이 일절 금지되었다. 언론이 이 책이 불온하므로 읽어선 안된다고 선전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질수록 대중들은 더욱 관심을 가졌고 마침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일 문학 최초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869년 런던에 자리한 공동묘지인 하이게이트의 한 사내가 흐릿한 램프를 켜고 죽은 아내의 무덤을 파헤쳤다. 아내와 함께 묻은 작은 상자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시인 단체 가브리엘 로세티는 아내가 죽자 세상을 모두 잃어버린 듯한 슬픔에 잠겨 그동안 쓴 시 원고를 상자에 넣어 아내와 함께 묻어버린다.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시를 오로지 그녀에게 헌정한 것이다. 하지만 로세티는 세월이 지나자 자신의 시를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결국 로세티는 아내의 관을 열고 시를 구출한 다음 시를 세상에 내놓았다. 카프카는 죽기 직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일기, 원고 편지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육체가 소멸한 후 원고 속에서만 살아 있기를 거부했다. 다행히 카프카의 친구이자 유산 관리자이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았다. 자신의 원고와 편지를 소멸하고자 했던 카프카는 문단의 대선배인 찰스 디킨스에게 한 수 배웠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원고와 편지를 꾸준히 부지런하게 불태웠다.
괴테도 자기 검열에 성공한 작가였다. 괴테는 친구가 유언을 지키리라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고, 수시로 과격하게 자기 검열을 하며 원고, 편지, 서류를 태웠다. 괴테는 이 생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을 때 과거를 청산하는 습관이 있었다. 괴테가 자신의 기록물과 원고를 얼마나 많이 태워버렸는지, 우리는 도대체 괴테의 위대한 저작이 얼마나 유실됐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괴테는 사생활을 지켰지만 인류는 위대한 자산을 잃었다.
운명과 본능의 외줄 타기, 꾼들의 중독사
누구나 잘 알듯이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도박 중독자였다. 빚 독촉과 형수와 조카의 등쌀에 못 이겨 도피 삼아 시작한 유럽 여행에서도 그는 도박장에 가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했다. 도스토옙스키가 돈을 잃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 그는 도박장에서 손꼽는 미다스의 손이었다. 도박장을 떠나자는 어린 아내의 부탁을 무시하고 집안 재정을 넉넉히 늘릴 수 있으리란 생각에 원금과 딴 돈을 모두 ‘올인’해 버렸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쪽박이었다. 도박꾼이 카지노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승률은 낮아진다. 도스토옙스키는 시시각각 줄어드는 돈을 초조하게 세면서 갈수록 위험한 도박을 시도했을 테고 그 결과로 빈털터리가 되었다.
일찍이 도스토옙스키는 노름꾼을 취미형과 생계형으로 나누고 자신을 생계형 도박꾼으로 분류했다. 취미형 도박은 무료함을 달래거나 특별한 시간을 만끽하려는 사교적 도박이다. 고대 중국, 로마 제국 그리고 스페인의 왕들은 취미형 도박 정도는 즐겨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생계형 도박꾼이었지만 아내가 재물을 팔아서 마련해준 도박 밑천을 날려버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도박을 즐기는 사람을 비난하곤 했다. 당시 도박은 마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주식 투자만큼이나 흔한 일상이었다. 복권 사업도 이 시기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톨스토이 또한 도박에 미쳐 큰돈을 잃고 낭패를 봤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소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고자’ 도박을 한다고 공언했는데,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실력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운’이 도박에서 돈을 딸지 잃을지를 좌지우지한다고 믿어 신중을 기하지 않고 황당무계할 정도로 대담하게 베팅을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바덴바덴에서 여비까지 모두 도박장에 바치고 최후의 보루였던 투르게네프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그에게는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50루블을 빌리고 갚지 않았는데 투르게네프는 이 일을 잊지 않고 <연기>라는 소설에 100루블을 빌리고선 갚지 않은 채 유유히 바덴바덴을 떠나는 한 배은망덕한 인물을 등장시켰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인물의 모델이 자신이라고 확신해 <연기>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질세라 <악령>에서 투르게네프를 비꼬고 비판하며 복수를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투르게네프의 친유럽적인 사고를 풍자한 것으로 모자라 그의 성격까지 꼬집어 비판했다. 도박 때문에 온갖 치욕을 겪은 도스토옙스키는 구세주나 다름없는 두 번째 아내 안나 덕분에 도박이라는 고질병을 치료하고 글 쓰는 일에만 집중하며 다시는 도박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는 만큼 빠져드는 일상의 인문학
고양이, 인류 이전 신의 대리인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이 온몸이 새까만 고양이를 들여오자 미신을 적잖이 신봉했던 아내는 검은 고양이는 마녀가 위장한 모습이라는 민담을 넌지시 건넨다. 과연 서양에서는 한때 고양이를 마녀로 생각했다. 반면 고대 이집트인에게 고양이는 국보 그 자체였다. 곡식 창고를 호시탐탐 노리는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가 이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을지 충분히 상상이 간다. 이집트인에게 고양이는 충직한 호위무사였다. 고양이를 신으로 섬기진 않았지만, 키우던 고양이가 죽으면 온 가족이 눈썹을 밀고 애도한 것으로 모자라 파라오처럼 미라로 만들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라는 보물을 나라 밖으로 반출하기만 해도 사형에 처했다.
유럽인들이 여성과 고양이를 마녀나 요물로 삼는 관행은 16세기까지 만연했다. 소설 <검은 고양이>에도 고양이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묘사한 구절이 있다. 주인공이 고양이를 죽이려다 실수로 아내를 죽이고 벽 속에 숨기는데, 도망간 줄 알았던 고양이가 벽 속에서 아내의 시체와 함께 발견된다. 날카롭게 울기까지 한다. 고양이를 진짜 마녀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고양이를 마녀로 치부했던 시절에도 여전히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중세 교회 문헌에는 고양이를 친숙하게 묘사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던 수도사들에게 고양이는 더없이 소중하고 좋은 친구였다. 중세 후기 고양이를 마녀로 생각하는 악습이 생기고 나서도 고양이와 수도사의 애정 전선에는 문제가 없었다.
개는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했을까
<이별의 순간 개가 전해준 따뜻한 것>에는 아름답기보다는 눈물겨운 사연이 많다. 선천적으로 콩팥에 문제가 있어서 평생 인공 투석을 해야 하는 견주와 사고로 뒷다리가 마비된 반려견의 이야기가 그렇고, 일흔 여섯의 견주와 열여섯 살 반려견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연도 감동을 준다. 암 환자 견주는 자신이 입원하면 반려견은 주인을 잃고 외로움에 고통받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패배주의에 절어 있던 한 청년이 우연히 학대를 받아서 자신처럼 무기력한 반려견을 키우게 된 이야기도 있다. 이 책은 반려견이 죽었을 때 쓰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다’라는 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원작자는 알 수 없지만 <무지개다리>라는 작자 미상의 영문 산문시는 미국 전역에 전파되었고 이제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산문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천국 바로 앞에 걸린 ‘무지개 다리’
이 땅에 있는 누군가와 특별한 사이였던 동물들은
멀리 여행을 떠난 뒤, 이 다리로 향합니다.
인간과 가장 먼저 친구가 된 개는 야생의 본능과 감각이 무뎌진 대신 인간과 의사소통하는 다양한 수단을 갖추었다. 인간과 개의 친분은 지구상 어떤 동물과의 친분보다 확고한 ‘영원성’을 지닌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모두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보다 사랑을 더 많이 베푼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개 앞에 서면 2인자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개는 인간에게 맹목적이고 영구한 사랑을 베푼다.
인간과 개의 유대는 정말 기이하다. 호랑이가 주인을 위협할 때에도 개는 주인의 생명을 단 몇 초만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승산이 없는 싸움에 기꺼이 몸을 내던진다. 고귀한 인간애와 사랑은 윤리나 이성보다는 감성과 본능에서 나올 수 있다고 개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복잡한 판단에서 도출된 인간애보다는 개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온 본능적인 사랑이 사람을 더 잘 움직이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가장 문학적인 술, 위스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재즈 바를 7년이나 운영한 전직 바텐더로 술을 음악 못잖게 사랑했던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술을 잠시 잊은 걸까? 과연 이 소설에는 다양한 종류의 술도, 하다못해 등장인물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술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드라마틱한 장치로 등장한다. 어렸을 적 겪은 의문의 사고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며 기억력이 매우 나쁜 나카타는 이웃 주민들이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의뢰받은 고양이를 찾다가 만난 큰 개의 안내를 따라 한 저택에 도착하는데 저택에는 길고 검은 모자와 지팡이를 든 이상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카타는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검은 모자 신사를 죽인다. 이 검은 모자의 신사가 바로 ‘조니 워커’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고양이 심장을 꺼내 먹는 흉악한 범인은 바로 위스키 브랜드 ‘조니 워커’의 로고 속 그 신사다. 긴 모자와 지팡이를 들고 날렵하게 걸어가는 ‘조니 워커’의 로고를 의인화해서 소설에 등장시킨 것이다. 이 얼마나 위스키를 향한 독특하고 숭고한 애정 표현인가?
영국의 뛰어난 소설가인 그레이엄 그린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음주 장면 하나를 남겨다. 1958년 발표한 <아바나의 사나이>의 주인공 제임스 워몰드는 낮에는 진공청소기 영업 사원으로, 밤에는 유능한 간첩으로 활동한다. 어느 날 한 사람과 체커를 하면서 위스키 미니어처 병을 말로 사용한다. 워몰드는 이렇게 내뱉는다. “상대 말을 따먹으면 그 말로 쓴 술을 마시기로 하지요.” 이 장면에 등장한 위스키가 조니 워커 레드다. <해변의 카프카>에 나오는 조니 워커보다 확실히 문학적이고 기발하지 않는가.
위스키가 페미니즘의 형성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50년대 중반 그레이스 메탈리어스가 발표한 <페이턴 플레이스>는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정주부가 위스키를 즐겨 마시기 때문이다. 가정주부가 버젓이 위스키를 즐긴다는 소설의 묘사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큰 파문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숨을 죽이고 살던 여성들은 <페이턴 플레이스>의 애독자가 되었고 여권 신장에 눈을 떴다.
시대와 함께 한 다이어트의 변신은 무죄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에 나오는 인물들은 절박하게 살을 빼야 해서 단식원에 입소한 사람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몸무게 때문에 좌절하고 인생의 쓴맛을 보았으며 몸매가 곧 계급이라는 현실에 피해를 입는다. 주인공 봉희는 진학 대신 취업을 목적으로 선택한 여상에서 큰 좌절과 치욕을 겪는다. 전교 1등을 했음에도 떼놓은 당상처럼 보였던 은행 취업에 실패한다. 그러나 전교 100등 안에도 들지 못하던 예쁘고 날씬한 친구는 당당히 합격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누구나 예상했다는 것이다.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살을 빼려고 처절한 노력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이어트 산업의 어두운 면을 조명한 책이기도 하다.
다이어트 문화가 문명의 탄생부터 인류와 함께했을 리는 없다. 운노 히로시는 <다이어트의 역사>에서 다이어트 문화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다이어트는 원래 지극히 ‘서구적인 문화’였다. 뚱뚱한 몸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다이어트 문화가 등장한 시기는 19세기 말쯤이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한 미국은 1890년부터 중산층을 중심으로 살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뚱보로 지목되면 무서울 정도의 반감과 차별이 뒤따랐기 때문에 날씬한 몸매를 향한 열정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장식은 죄악’이라는 신조 아래 복작한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현대적이라고 여겨 주목하는 풍조와 함께 이때 비만 또한 악으로 간주했다. 단순한 디자인과 날씬한 몸매는 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두 번째는 ‘미국적인 문화’라는 점이다. 19세기말 미국 식탁은 경제 성장기와 함께 갑자기 식탁이 풍요로워졌고 기름진 음식은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미국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야말로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탄생시킨 주범이란 사실은 하와이의 예로 증명된다. 수백 년 전 하와이 주민을 촬영한 사진에선 뚱뚱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마지막 키워드는 ‘여성’이다. 19세기 미국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한 시기이기도 하다. 여성에게 날씬한 몸매와 단정한 외모를 강요하는 문화는 여성을 감상의 대상으로 취급하려는 욕망, 즉 여성을 에로틱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려는 남성의 이기심에서 비롯한다. 연예계 데뷔를 앞둔 가수 지망생도 단식원에서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는데, 이는 직업 사회에 진출하는데 요구되는 몸매가 있음을 역설한다.
19세기 말 기성복의 출현은 미국 여성이 마른 몸매를 선망하게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고객들은 회사가 정한 사이즈라는 틀에 구속되었고, 자신의 몸에 옷을 맞추지 않고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는 시대가 도래했다. “난 44 사이즈를 입는 여자”라고 공언하고자 필사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20세기 들어서고, 1920년 미국의 경제 활황기와 맞서 다이어트는 개인의 체형 변화를 넘어서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다이어트>의 무대가 되는 고급 단식원의 모태가 발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다이어트가 극한까지 치달아 유아 다이어트와 태아 다이어트까지 등장했다. 날씬한 몸매를 교주로 모시는 신흥 종교가 새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 신체에 씐 환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신들이 머물다 간 곳, 호텔의 역사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일본 도쿄 중심가에 자리 잡은 특급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경찰의 예측으로 시작한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는 다양한 진상 고객이 등장한다. 노련한 호텔 직원은 고객의 속임수와 진상을 뻔히 알지만, 결코 손님이 무안하게끔 대놓고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며 고객의 가면을 지켜주려는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와 형사 특유의 합리적인 의심과 추리력으로 무장한 닛타 고스케는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서로를 존중하고 도우면서 범인을 잡고 사랑도 키워낸다.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서는 현대의 문물로만 생각되었던 호텔이 사실 고대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기원전 9세기경에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는 신들이 여행자나 이방인으로 변장하고 인간 세상을 방문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니까 서양인에게는 이방인이나 손님이 자신이 섬기는 신일지도 모르니 그들을 정성을 다해 환대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연스러웠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손님을 홀대하는 행위는 신을 모독하는 일과 같으므로 벌을 받게 된다는 속설이 여기에서 비롯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에는 다양한 진상 고객이 등장하지만 호텔 직원들은 언제나 “고객이 곧 규칙이다”라는 신조 아래 어떤 경우에도 반발하지 않고 고객을 신처럼 떠받든다.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고급 호텔은 19세기 산업 혁명을 계기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창기 호텔은 여행도중 쉬어가는 숙박시설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이용되었지만,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경제가 풍요로워지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호텔을 자신의 사교와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근대적인 고급 호텔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호텔은 신분 상승의 욕구를 표출하는 장이었다.
호텔은 고객의 오감을 자극하여 호텔에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노력한다. 서울 조선 팰리스 호텔은 ‘라스팅 임프레션(lasting impression)’이라는 향을 자체 개발하여 고객이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이 향을 계속 경험하게 만든다. 호텔의 시그니처 향을 고객이 기억하고 추억하게 함으로써 호텔에 호감을 느끼게 한다. 한 번 묵은 호텔에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일등 공신은 역시 객실이다. 집보다 더 편한 공간을 만들고자 최선을 다한다. 호텔은 고객이 모르는 사이에도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하인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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