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대화법
 
지은이 : 임정민
출판사 : 서사원
출판일 : 2022년 01월




  • 어른이라면, 말로 상처 주는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힘과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교류분석’ 이론을 통해 내가 왜 그렇게 말하고, 상대방이 왜 그렇게 말하는 지 파악해 보고 바른 ‘어른의 대화’ 습관을 익히도록 도와줍니다.


    어른의 대화법


    우리의 말은 왜 제자리걸음일까?

    치우침은 소통을 가로막는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장르를 7만 6천 개로 세분화하고 고객 선호도를 2천 개 유형으로 분류해 개인의 성향에 맞춰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 그 결과 추천된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일반 콘텐츠 사이에는 두 배 정도의 전환율 차이가 발생했다. 지난 2년간 넷플릭스 이용자가 시청한 콘텐츠의 80퍼센트 이상이 추천 엔진이 제공한 콘텐츠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서비스에서 사용자의 선호도나 감정까지 분석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도입하는 등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KT의 OTT 서비스인 ‘시즌(Seezn)’이 사용자의 표정을 분석해 기쁨, 슬픔, 화남 등 기분에 맞는 최적의 콘텐츠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선보일 거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개인화, 초개인화 중심 사회로 바르게 바뀌고 있음을 알려 주는 대목이다.


    공통된 관심사나 취향을 기반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매우 즐거운 일이다. 더 마음이 가고 편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다만 초개인화 중심 사회로 빠르게 나아가는 시점에서 같은 관심사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로만 인간관계가 치우친다면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대화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비슷한 것에 안정감을 느낀다.’를 반대로 말하면 ‘다른 것에 불안함이나 불편함을 느낀다.’와 상통한다. 그래서 우리는 집단의식 속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유지함과 동시에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사회에서는 내가 선호하는 사람들만 선택해서 만날 수 없다. 그리고 나와 잘 맞는 사람보다 맞지 않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관계에서도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으려면 나의 관심사와 취향, 나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지라도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생각을 전환할 수 있다면 상대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설사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다만 그것은 ‘상대를 존중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아웃 오브 안중’이라는 말을 아는가? ‘Out of 안중’ 즉 ‘내 눈 밖에 나다.’ ‘전혀 관심 없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상대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소통의 장애가 된다.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거나 한집에 사는 가족이더라도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소통이 잘 될 수 있겠는가. 얼마나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했는가, 얼마나 서로의 기쁨과 아픔에 반응했는가, 얼마나 서로의 고민과 성장에 관심을 갖는지가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


    앞서 이야기한 초개인화 서비스도 이용자들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필터 버블이란 고객에게 맞춤형 정보만을 제공해 이들 개개인을 자신의 관심사와 비슷한 환경 속에 가두는 현상을 말한다. 필터링을 거친 추천 정보만이 사용자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사용자의 관심사에서 벗어난 다른 정보들은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매슈 O. 잭슨(Matthew O. Jackson)은 “우리는 점점 더 연결되고 있지만 동시에 분열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지만 나이, 경제적 수준, 교육 수준, 젠더, 신념이나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성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을 ‘동종선호(homophily)’라고 한다.


    나와 비슷한 집단과 어울리고 그 밖의 집단과 구별 짓는 현상을 조사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인종에 따라 친구 관계가 어떻게 나뉘는지 알아보았는데 그 결과 매우 가까운 친구, 즉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 함께 만나는 친구는 같은 인종일 가능성이 서로 다른 인종일 때보다 1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잭슨 교수는 이러한 사소한 편향이 만들어 내는 불평등, 불균형, 양극화와 같은 연쇄적인 파급 효과에서 동종선호의 심각성이 있다고 보았다.


    내가 비슷한 집단에만 머무르며 관계를 맺는다면 관심사와 취향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접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될 때 점점 더 그것들을 수용하기 어려워진다. 내 견해와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경계하며 갈등이 불거졌을 때 화를 내고 발끈하는 것이 그에 따른 부작용이다. 어떠한 일이든 의식적으로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상대와 소통을 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 표현이다.


    소통의 한 걸음: 다르게 말하면 관계가 달라진다

    ‘당신은 항상 좋은 사람입니까?’ 왠지 ‘항상’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리지 않는가. 이 질문에 “나는 항상 좋은 사람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과 사랑받고 싶은 기본 욕구가 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항상’ 좋은 사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닐 때가 있다. 이것은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유나 상황으로 인한 것이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금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한 마음과 자세로 다가가자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늘 좋은 일, 행복한 일만 있을 수 없다. 하물며 길을 가다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돌을 탓할 수 없지 않은가. 그 상황이 짜증 나서 순간 험한 말을 한들 돌부리에 넘어지기 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돌부리에 넘어져 다치고, 기분도 나쁘고, 험악한 말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런 나를 그대로 두지 말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하자. 내 입에서 나온 안 좋은 말은 가장 먼저 내가 듣게 되고 내 귀를 타고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우리의 삶도 인간관계에서 돌부리에 넘어지는 일들을 수없이 만나는데 상황을 탓하거나 상대를 원망하지 말고 내 마음을 다독이고 보살피며 상처 주지 않는 건강한 소통을 하자.


    왜 말의 주인인 내가 내 말을 다스리지 못할까? 뱉고 나서 후회하는 말들을 왜 자꾸 되풀이할까? 말로 상처 주는 일을 멈출 수는 없을까? 누군가의 말에 한 번이라도 상처를 받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말로 베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가슴 속에 평생 남는다. 반대로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말하고 나서 후회하고 사과하는 것보다 애초에 내가 하는 말 습관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익숙해진 내 말 습관의 고삐를 틀어 바꿔 놓으면 어떨까? 내 의도와 다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말을 통제할 수 있다면 분명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내 머릿속에 맴돌던 이러한 고민은 ‘교류분석’을 만나면서 해결되었다. 교류분석은 나의 성향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 놓인 나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 적절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인지하여 현명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탁월한 이론이다.


    그동안 나는 심리와 커뮤니케이션 이론, 언어와 인문학 등을 공부하고 그것을 교육에 접목시켜 사람들의 말하기와 소통의 변화를 확인했다. 그 가운데 실생활에 적용하기 쉬우면서 강력한 효과를 본 이론이 바로 교류분석이다. 교류분석의 기본 개념을 알면 나와 상대의 자아상태를 의식적으로 인지해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온, 오프라인으로 대략 10만 명, 일대일과 소그룹 코칭으로 3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났다. 평균적으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간 주기적으로 코칭을 받은 사람들의 변화추이를 확인할 때마다 교류분석 이론이 말하기와 커뮤니케이션 교육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관계’는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고 ‘소통’은 말을 통해 이루어지며 ‘말’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말은 단순히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이 겪어 온 문화와 사회화 과정의 총체적인 결과가 바로 ‘말’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과 행동에서 진정한 소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말과 행동은 마음을 반영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을 보고 나와 상대의 마음 상태를 올바르게 이해하면 상대방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대화의 기본 원리: 어떻게 말해야 할까?
    반응하지 말고 대응하기

    미국의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는 “우리를 혼란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를 합리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했으며 “인간의 행복, 불행은 언제나 마음 상태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임상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윌리엄 글래서(Willam Glasser) 역시 선택이론을 통해 “대부분의 행동은 선택된 것이며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기 전에 눈앞에 놓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 것인지 반응이 아닌 대응을 선택할 수 있으며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예시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나타난 J. 헐레벌떡 뛰어온 탓에 숨이 가쁘다. J는 친구 K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털썩 앉아 그의 눈치를 본다. 친구 K는 기분이 상해서 표정을 관리하기 어렵다.


    당신이 K의 입장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겠는가? 아마 누군가는 통제적인 부모자아(CP)로 J의 면상에 대고 그의 잘못을 지적하며 불같이 화를 낼 것이고, 누군가는 순응하는 아이자아(AC)로 감정을 숨긴 채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기도 할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므로 이런 상황에서 기분 좋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게다가 내 잘못이 아닌 전적으로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무의식적 반응은 ‘재채기’ ‘하품’ ‘딸꾹질’처럼 대뇌와 관계없이 자극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이와 달리 의식적 반응은 대뇌의 판단과 그에 따른 명령에 의해 일어난다. 이를테면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동, 더울 때 부채질하는 행동이 있다.


    이 상황을 잘 해결하고 상대와 교류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반응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 당연히 ‘의식적 반응’일 것이다. 나는 ‘의식적 반응’이라는 말 대신 ‘대응’이라는 표현을 쓴다. 반응과 대응이란 말은 얼핏 비슷한 뜻이지만 이 말을 사용하는 상황적 맥락을 보면 의미가 명료해진다.


    우리는 평소에 ‘과민반응’이라는 말은 쓰지만 ‘과민대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 어떤 위험한 상황이 초래했을 때 ‘초기대응’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초기반응’이라고 하지 않는다.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는가? 예를 들면, 화재 신고를 받은 소방관은 무작정 현장에 출동하지 않는다. 신고자의 말을 침착하게 들은 후 화재 상황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준비해 신속하게 대응한다. 한마디로 반응은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고, 대응은 의식적이고 선택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래서 ‘의식적 반응’의 대체어를 ‘대응’이라고 칭하겠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해 ‘반응-Reaction’이 아니라 ‘대응-Response’하기로 받아들이고 선택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만나게 되는지 살펴보자.


    반응하는 사람

    “너는 어떻게 맨날 늦냐?”

    “사람 무시하는 거야?”


    대응하는 사람

    “오다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거야?”

    “이번에만 내가 특별히 넘어가 준다! 다음에 늦으면 나 화낸다~”


    같은 상황이라도 대응화법(Response)으로 말하면 말의 결이 달라진다. 오히려 상대를 다독이고 배려하며 말하기 때문에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상대는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 더불어 이해해 준 상대에 대해 더 고마움을 느끼고 신뢰감을 갖게 된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하루하루 매 순간 우리는 수많은 자극에 놓여 있다. 이 말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Reaction이 무의식에서 나오는 즉흥적이고 습관적인 반응이라면 Response는 의식에서 나오는 이성적이고 선택적인 대응이다. 같은 상황일지라도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와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은 전혀 다르다. 습관적으로 반응할 것인가, 선택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당신의 선택이 대화 흐름과 상대와의 관계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대화의 목적 기억하기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이성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그러면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자책하는 분들을 ‘지금 여기(Now and Here)’로 초대하곤 한다. 교류분석은 인간관계가 존재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성격이론이자 심리기법으로 인간은 누구나 사고할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며, 자기가 내린 결정은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철학적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긍정성을 지닌 존귀한 존재이며 얼마든지 새롭게 선택하고 변화할 수 있다. 과거에 매여 있지 말고 지금부터 하나씩 선택하면 된다.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주나 기술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말 습관이 더욱 중요하다. 습관은 한자로 익힐 습(習), 익숙할 관(慣)자로 이루어져 있다. 배우고 익혀서 익숙해져야 하나의 습관이 형성되는 것이니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가.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차근차근 말 습관을 바꿔 나가면 된다.


    대화의 목적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상대와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 때 희열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상대를 굴복시키고 나의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말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물며 국가 간에도 국가적 분쟁을 막기 위해 동맹을 맺고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가정부터 직장, 다양한 조직에 이르기까지 갈등 상황에서는 한순간의 미숙한 말실수로 일과 관계를 그르칠 수 있으니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


    서로 불편하고 민감한 갈등 상황일수록 우리의 말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신중하다는 것은 바로 말하지 않고 ‘잠시 침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잠시 모든 생각과 행동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어 보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오은영 박사는 화가 났을 때 15초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이 욱할 때는 뇌에서 도파민이 올라오는데 도파민 수치를 1~10으로 가정해 보자. 도파민 수치가 10까지 올라가면 폭발해 버리지만 6까지 올라갔을 때 15초 동안 잠시 생각을 멈추면 분노가 사그러든다고 한다. 그래서 화가 나면 잠깐 숨을 멈출 것을 제안한다. 숨을 멈추었다가 내쉴 때 ‘아, 내가 숨을 다시 쉬고 있구나’라고 느끼면 차분하게 감정이 정리되고 이성을 되찾는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제안하고 싶다. 잠시 감정을 정리하고 호흡을 가라앉혔다면 상대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한때는 나에게 중요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지 아니면 아직도 신뢰가 남아 있는지 말이다. 그런 다음에 이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지, 끝내고 싶은지 ‘관계의 끝’을 생각해 보자.


    때로는 과감하게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러나 관계를 계속 이어 가고 싶다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떠한 문제나 오해로 갈등을 겪지만 상대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고 이 관계를 지키겠다는 단호한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순간의 감정 풀이로 관계가 틀어지고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고해야 한다.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물론 이들을 내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내가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를 떠올려 보자. 누구에게는 안정적으로 받는 보수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일 것이고, 누구는 어떤 타이틀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출근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이유를 떠올리면 겉으로 화를 표출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안을 찾으면서 해결 의지를 보이려고 노력하게 된다. 펄펄 끓는 냄비 뚜껑을 조금만 열어 두면 끓어오르던 내용물이 가라앉게 되는 것처럼 화가 치밀어오르는 갈등 상황에서는 호흡을 가다듬고 ‘대화의 목적’과 ‘관계의 끝’을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내가 지키고 싶은 관계인가’ ‘지금 끝내고 싶은 관계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뒤돌아 후회할 수도 있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늘 경계하자.


    인정 자극을 주며 말하기

    미국의 심리학 교수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는 인간과 94%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사랑과 애착, 모성애에 관한 심리 연구를 했다. 할로우는 갓 태어난 붉은털원숭이 새끼를 어미로부터 떼어 낸 뒤 가짜 어미 인형이 있는 우리에 넣었다. 인형 하나는 가슴에 우유병이 있는 철사로 만든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우유병이 없는 헝겊 인형이었다. 새끼원숭이는 젖을 먹을 때만 철사로 만든 엄마 인형과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헝겊으로 만든 엄마 인형과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특히 새끼원숭이는 천적의 사진이나 큰 소리 등 극단적인 공포와 위협을 받으면 즉각 보드랍고 따뜻한 헝겊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결국 새끼원숭이는 젖을 먹기 위해 엄마를 찾는 게 아니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접촉을 통한 애착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실험을 통해 사람은 생물학적인 배고픔보다 정신적인 배고픔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도 나에게 따뜻한 사랑과 인정을 베푼 사람을 잊지 못한다.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봐 주고 등을 토닥여 주며 아낌없이 칭찬을 해 주던 존재와 그 기억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살아가는 힘이 된다.


    교류분석에서는 인간의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를 ‘스트로크(Stroke)’라고 한다. 일종의 ‘존재 인정자극’으로 ‘인정의 한 단위(A Unit of Recognition)’로 정의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인정-기아(Recognition-Hunger)’라고 한다. 스트로크를 주고받으며 발생하는 ‘자극-인정’ 혹은 ‘자극-기아’에 의해 사람은 성장하기도 하고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스트로크는 동기 유발을 해 주고 행동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인정 자극을 주어야 하는 이유이다.


    스트로크는 6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언어적 스트로크’와 ‘비언어적 스트로크’, ‘긍정적 스트로크’와 ‘부정적 스트로크’, ‘조건적 스트로크’와 ‘무조건적 스트로크’이다. 적절한 상황에 적합한 스트로크를 능숙하게 사용한다면 업무 성과와 원만한 인간관계에 윤활유가 되어 줄 것이다.


    성공한 리더들은 공통적으로 긍정 스트로크를 많이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고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덥석 끌어안는 장면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아 있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 선수를 꽉 안아 주며 축하해 주었다. 평소에도 히딩크 감독은 “너를 믿는다.” “할 수 있다!”라는 언어적 긍정 스트로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 한국 여자배구의 주장을 맡은 김연경 선수의 긍정 스트로크도 인상 깊다. ‘10억 명 중에 1명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고 평가받는 월드클래스 김연경 선수는 이번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숙적 일본에게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세계랭킹 4위인 터키를 꺾으며 한국 여자배구팀의 4강행을 이끌었다. 그녀는 세계가 주목하는 부담감 속에서 코치진과 선수단 사이의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잘했고 경기 중에도 “해 보자.” “후회 없이 해 보자!” “가자!” “웃어!”라는 말로 동료들을 독려하고 하이파이브와 포옹을 나누면서 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집이나 학교에서 받았던 칭찬 스티커 혹은 ‘참 잘했어요’ 스탬프를 기억하는가? 담임 선생님에게 받은 참 잘했어요 스탬프는 동기 부여가 되고 더 열심히 하려는 행동을 강화한다. 이처럼 우리는 스트로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기도 하고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인생의 스탬프를 쌓고 있다. 이제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스트로크를 해 왔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고 자기 자신에게 스트로크를 해 주고, 자신이 원하는 상대에게 스트로크를 요청해 보기도 하자. “스트로크가 없는 것은 심리적인 죽음과 같다.”고 한 토마스 해리스(Thomas Harris)의 말처럼 스트로크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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