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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 엄마가 미워진다
저   자 : 배재현
출판사 : 갈매나무
출판일 : 2021년 07월




  • 일상을 갉아먹는 불안과 우울, 이유를 알 수 없는 신체 통증, 대인관계의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러한 문제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르고 무작정 참고 살아가곤 한다. 임상심리전문가인 배재현은 오랫동안 트라우마 치료에 매진해오면서, 이와 같은 괴로움에 시달리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찾아온 내담자를 만나왔다. 이 책은 지난 25년간 저자가 만난 내담자 중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털어놓은 이야기, 바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정서적 무관심과 방치, 학대의 상처를 알아봐 주고 위로해 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심리 치유서다.


    나는 가끔 엄마가 미워진다


    어린 시절 상처는 그냥 괜찮아지지 않는다 -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스몰 트라우마

    우리에겐 저마다 다른 모양의 정원이 있다

    생텍줴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는 아주 위험한 나무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바오밥나무입니다. 어린왕자에 따르면, 이 나무의 씨앗은 매우 작을 때는 장미 씨앗과 잘 구분되지 않지만 한번 자라기 시작하면 교회만큼 커집니다. 그래서 평소에 주기적으로 땅을 살펴보아야 하고, 이제 바오밥나무다 싶으면 얼른 뽑아주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정원에도 잘 살펴보면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떤 경험과 기억은 느티나무처럼 무성하게 자라 우리 삶에 든든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또 어떤 것들은 꽃과 풀로 아름답게 자라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요. 그런데 이 가운데 어떤 것은 바오밥나무처럼 무섭게 자라기도 합니다.


    내 마음속 바오밥나무

    어린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많은 일을 겪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그 과정에서 소중한 배움을 얻고 인생의 폭을 넓히며 살아가지요.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사건들은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고 내면에 하나둘 쌓아 두기도 합니다. 특히 어렸을 때가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어른인데도 어디를 가려고 하면 화장실을 여러 번 다녀와야 하고 혹시라도 배가 아플까 봐 늘 불안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에게는 어릴 적 이런 기억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배가 아파서 집에 달려왔는데 엄마가 문을 일찍 열어주지 않은 탓에 그만 바지에 실수하고 만 것입니다. 수치스러운 기억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엄마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심하게 혼내며 창피를 주었습니다.


    게다가 가족들은 종종 이 이야기를 꺼내 장난삼아 놀렸습니다. 누구도 그때 그 아이가 얼마나 당황하고 수치스러웠을지 이해하고 달래주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이 기억은 그의 마음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수치심으로 남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또 이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비가 오는 하굣길 우리 엄마만 오지 않아서 자주 비 맞고 혼자 집에 갔던 경험, 외모 때문에 가족에게 반복해서 놀림 받은 경험, 준비물을 안 가져가서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에게 맞고 창피당한 경험, 부모의 심한 다툼을 늘 지켜봐야 했던 상황 등등…….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경험으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운 상처로 남은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위로와 공감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이 기억들은 내 안에 평생 지속되는 고통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유난을 떤다고?

    ‘너무 사소한 일인걸? 시간이 약이야!’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험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그때의 감정, 생각, 신체 반응들이 고스란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쳐서 삶을 불만족스럽게 만들고 일상을 제약합니다. 이런 것들을 가리켜 ‘스몰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여기서 ‘스몰’이라는 단어는 경험의 부정적 영향력이 작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곳곳에 트라우마로 남을 소소한 자극이 널려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상처가 될 만큼 강력한 자극도 있지만, 제 삼자로서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자극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우마 경험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타인과 결코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가 두려워

    우리는 늘 뭔가를 느끼고 생각합니다. 주의를 기울여 알아채는 것도 있고, 의식의 뒤쪽에서 깨닫지 못한 채 흘러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을 행동으로 옮기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러한 정신 활동은 늘 일어납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잘 조절하려면 이 내면의 정신 활동을 잘 알아차리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은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적절히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반응을 회피하기만 한다면, 그것을 좋은 감정으로 회복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공포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포가 주로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체 모를 슬픔과 외로움, 갑작스러운 분노,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까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공포를 느낍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공포의 대상이 외부에 있다면 피하면 됩니다. 그런데 피하고 싶은 두려움의 대상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내면의 안 좋은 감정을 외면하고자 합니다. 늘 뭔가 일을 만들어 바쁘게 움직여서 내면의 그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하거나 다른 기억이 떠오를 새가 없도록 하죠. 내면의 고통을 의식 위로 떠올리고 알아차리는 일이 감당이 안 되고 너무나 두렵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피하는 겁니다.


    아, 내가 화가 나고 억울하구나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것을 대부분 부모의 반응을 통해 배워나갑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 일어나는 무수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고, 제대로 표현하고, 조절해 나가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죠.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시무룩한 아이에게 엄마가 다가갑니다. “너 아까 그 일이 마음에 걸려서 그렇구나, 그래서 화가 났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네 맘이 좀 편해지겠지?”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아이는 이러한 부모와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비로소 익히게 됩니다. ‘아, 내가 화가 나고 억울한 거구나, 이럴 때는 눈물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다른 사람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구나.’ 하고 말이죠.


    자기 내면에 대해 부모와 소통이 잘 이루어진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어려움 없이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나아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아는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이 과정은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감정의 뇌가 잘 발달할 수 있도록 부모가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외부에서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가능합니다.



    나는 왜 엄마가 가끔 미워질까? _ 나도 몰랐던 정서적 학대의 기억

    작은 일에도 엄마한테 너무 화가 나요

    20대 중반의 해수 씨는 자꾸 사람들을 피하는 등 대인관계가 힘들어 고민 끝에 제게 상담을 청한 분입니다. “남들은 다 이겨내면서 살아가는데 제가 유별나서 상담까지 하는 건 아닌지, 창피해서 한참을 망설였어요.” “우리 가족은 이상적이고 화목한 편이에요. 엄마 아빠가 크게 다툰 적이 별로 없고, 부모님을 따르며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우리 가족이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어린 시절 힘든 것은 없었는지 물어보자 어렵게 입을 떼었습니다. “부모님은 이성적이고 사회적으로도 유능하고 다 좋은데……. 정말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저한테 심하게 장난을 치고 놀렸어요. 집에 가서 울면서 엄마에게 말했는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걔네가 불쌍한 애들이니 네가 너그럽게 용서하고 참아줘라, 넓은 마음으로 잘 감싸줘라.’ 하는 거예요. 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제가 부족한 탓이고 엄마 말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말문이 터지면서 속마음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제가 이 세상에 혼자인 것만 같고 비참했어요. 이게 반복되다 보니 힘든 일이 있어도 전혀 말을 하지 않게 됐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내가 힘들 때 공감이란 것을 전혀 해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식이 힘들어하면 먼저 내 딸의 마음을 알아주고 편도 들어주고, 그런 다음 어떻게 할지를 가르쳐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한 번도 내 편을 안 들어줬어요. 지금은 작은 것에도 엄마에게 너무 화가 나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부모님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그녀가 겪는 고통은 어린 시절부터 누적되어온 공감의 부재가 낳은 결과였습니다.


    비난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

    연인과 부부 사이에 정서적 의사소통에 대해 교육할 때 바람직하지 못한 소통 방식으로 두 가지를 꼽습니다. 바로 ‘비난하기’와 ‘외면하기’입니다. 그리고 둘 중 관계에 더욱 치명적인 것은 ‘지속적인 외면하기’입니다.


    ‘비난하기’는 좋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화나 불편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출하는 일인데, 어찌되었든 이때는 드러난 그 감정들을 바탕으로 서로 무엇인가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면하기’는 상대의 반응이나 상대가 나에게 다가오고자 하는 정서적 시도에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시하거나 전혀 다른 데에 초점을 두는 태도입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다른 의사소통을 꾀하거나 회복할 기회를 찾는 일이 불가능해집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다가가 반응을 얻고자 하는 시도들이 반복해 무시를 당하고 외면을 받으면, 아이는 이를 “엄마 아빠는 너에게 줄 것이 없어. 너는 너무 요구가 많아. 우리는 네가 피곤하고 힘들어.”라는 신호로 받아들입니다. 부모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관심이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원래 다 그렇게 크는 거 아니었나?

    “학대는 내 가족의 일은 아니야.”하고 외면하기에는 일상 속에서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만나는 대다수 내담자가 어린 시절의 이런 고통이 아물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부모들은 가정에서 자녀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하는 훈육이 신체적ㆍ정서적 학대와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대하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흔히 하는 말이나 태도 그리고 행동에는 신체적ㆍ정서적 학대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심각할 정도로 많습니다.


    훈육이지, 그게 무슨 학대?

    우리 부모 세대는 아동의 권리에 대해서 잘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모가 반복되는 체벌이 신체적 학대가 될 수 있고, 다정한 위로나 공감 같은 정서적 상호작용 없이 무시와 모욕과 비난이 반복되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우리는 더 많이 맞고 자랐다. 그러고도 멀쩡하게 잘 자랐다. 요즘 애들은 너무 의지가 약하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이전에 경험해 보았다고 해서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동권리보장원의 2018년 아동학대 통계자료를 보면 가정 안에서 발생한 학대가 80.3퍼센트로 가장 높았고 학대 가해자는 부모가 76.9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학대들은 중복적으로 일어납니다. 특히 정서적 학대가 그렇습니다. 자녀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동시에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경우가 38퍼센트로 가장 높았습니다. 모든 학대에서 정서적 학대가 공통 요소일 수밖에 없는 것은 신체적 학대를 자행하는 부모가 자녀를 정서적으로 존중하고 공감해줄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른들 모두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에 무지했고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이 사회적으로 주요한 관심사가 된 지도 얼마 안 되었습니다. 1989년 유엔총회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비준되어, 아동학대 및 방임과 같은 아동 문제는 국가가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동학대가 특별히 이상한 부모나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평범한 가정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지금 보니 어릴 때 나는 참 힘들었구나

    20대 대학생인 정연 씨는 가족과 함께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가 “그러고 보니 너희 어릴 때는 먹고사느라 너무 바쁜 데다가 잘 몰라서, 함부로 대하거나 그냥 내버려 둔 적이 많았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네.”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정연씨는 “이미 다 커버렸지만, 이제라도 어릴 적 마음을 알아주고 사과하는 말을 들으니 가슴에 박혀 있던 가시에 처음으로 온기가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음은 그렇습니다. 가시가 아무리 깊고 아프게 박혀 있더라도 내 마음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전해지면, 시간이 좀 걸려도 언제고 새살이 돋을 수 있는 그런 회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가능성이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이 회복은 직접 부모에게 표현하고 사과를 받는 과정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이해해 주고, 상처받아 위축되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회복과 성장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 그 출발점

    우리가 최초로 경험하는 타인은 부모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보호와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해결하지 못한 내면의 고통이 있다면, 성인으로 자라 부모가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서 몰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자녀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가도록 도와주기보다 오히려 부모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자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충족되지 못한 내면 욕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지요.


    지금까지 살펴본 어린 시절 정서적 학대의 여러 흔적을 부모는 기억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인으로서 나는 어린 시절 부모가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원했던 다정함과 관심을 비록 부모가 주지 못했더라도, 이제 어른이 된 나는 부모와 다르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시작이 됩니다.



    엄마는 그때 왜 그랬을까? _ 내 부모를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기 위해

    우리 엄마도 그땐 어린 나이였다

    문득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왜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직 정리된 생각은 아니지만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 나를 좀 더 이해하고 내 부모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인데, 이 변화는 부모와 건강한 마음의 경계를 만들고 독립해 나가는 중요한 시작입니다.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 느끼게 된 것

    여러분의 부모 세대에게는 친숙한 가수 양희은씨가 오래전 방송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린 아버지가 용서되지 않았고 너무 미웠다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39세에 돌아가셨는데, 자신이 아버지 나이쯤 되고 보니 아버지도 사실은 어린 나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곁에 남아 있어준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부모를 다시 바라보는 것은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내담자를 통해 종종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되는 건 상상 이상의 도전

    부모가 되고 자녀를 기르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큰 도전입니다. 부모가 되기 이전에 삶에 별다른 굴곡이 없었고 안정감을 지녔던 성인도 부모가 되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눈물을 쏟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신체적 피로감과 정신적 어려움을 마주합니다.


    물론 모든 부모는 애정으로 자녀를 잘 키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엄마의 뇌와 몸에서는 아이를 사랑하고 보호하기 위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심각한 정신병적 상태에 있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의로 아이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줄 부모는 없습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는 뇌의 바탕

    인간은 포유동물입니다. 포유류가 파충류와 다른 점은 자녀 양육을 하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감정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정서적 공감이나 감정 조절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주요한 영역이지요.


    이처럼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핵심은 변연계를 중심으로 한 정서적인 과정으로, 우리의 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책임감과 의무감, 이성적인 노력 등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자녀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키워내는 데에는 뇌의 정서적인 부분이 훨씬 더 많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의 조건에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잘 조절할 줄 아는 자기조절감이 결정적 요소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 상태를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녀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불안정한 자녀에게 안정감을 주며 사랑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적용되는 말일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보자면, 부모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자신이 감정을 잘 조절할 줄 모른다면 본의 아니게 언제든지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정서적 학대를 하는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아이를 키웠는지도 모른다

    엄마도 트라우마의 희생자였다는 것을

    어릴 적 부모로부터 꼭 필요한 정서적인 지지와 보살핌을 받지 못한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 부모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모 역시 어릴 적 여러 이유로 자신의 부모로부터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자녀와 어떻게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지, 어떻게 마음을 알아주고 반응해 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신체적ㆍ정서적 학대를 당한 트라우마의 희생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불안하고 우울할 때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고 다시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지 방법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불안, 우울, 강박적 긴장감, 대인관계에서 민감성이 높았고, 부모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부정적 경험이 그의 내면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자신도 모르게 자녀를 학대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 번째는 부모 자신의 어릴 적 충족되지 못한 애정과 의존에 대한 욕구로 배우자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심리적으로 좌지우지되고 있었습니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애착의 상처와 좌절감으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건강한 경계를 만들지 못했고, 오히려 자녀가 부모의 감정을 위로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부모는 자녀의 감정에 공감하고 자녀의 성장을 이끌어줄 여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자녀 역시 안정적인 자존감과 정서조절감이 발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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