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은이 : 카를로 로벨리(역:김현주)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21년 05월




  • 과학자 로렐리는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의 통합이론으로 끈이론을 대신할 새로운 루프양자중력이론을 수립하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습니다. 과학을 향한 열정과 이 세계에 대한 매력적인 영감이 가득한 그의 물리학 여정을 함께 떠나보시죠!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막다른 길, 양자중력 앞에 서다

    기초물리학의 비극

    20세기의 과학적 대혁명은 두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양자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를 훌륭하게 서술해 물질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뿌리째 흔들었고,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의 힘을 명확히 설명하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두 이론 모두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으며, 현대 기술 발전의 많은 부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두 이론이 세계를 서술하는 방식은 언뜻 보기에도 양립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너무 다르다. 마치 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각 수립되었다. 양자역학이 사용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일반상대성이론과 모순되는 과거의 개념이고, 일반상대성이론이 사용하는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개념 역시 양자역학과 모순되는 과거의 개념이다. 두 이론을 동시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물리적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이와 유사한 상황들을 찾아볼 수 있다. 뉴턴이 여러 학문을 통일하기 전까지의 상황도 그러했다. 케플러는 행성과 별을 관측해 우주의 물체들이 타원 궤도를 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갈릴레이는 땅에 떨어지는 물체들을 연구하면서 이 물체들이 초물선 궤적을 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여러 행성 중 하나일 뿐,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뉴턴은 지구의 이론과 우주의 이론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 우주 속 행성이든 땅에 떨어지는 사과든 동일한 방정식을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놀라운 통일은 약 300년 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몇 차례 중대한 발전이 있긴 했지만 이 개념들은 제법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물리학 내부의 긴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의 첫 분기 동안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등장해 기존의 개념적 기반을 산산조각내버렸다. 결국 뉴턴이 이룬 놀라운 통일은 길을 잃고 말았다.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견고하게 확립된 지식의 일부가 되었다. 두 이론은 전통 물리학이 지닌 개념적 기반을 각각 일관성 있게 바꾸었지만, 두 가지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 결과, 중력이 양자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정도로 작은 규모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자연에도 존재한다. 우주 대폭발 때에도 존재했을 것이며, 블랙홀 근처에도 존재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이해하려면 이 규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이론을 연결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임무가 ‘양자중력’의 핵심 문제이다.



    공간, 입자, 그리고 장

    양자중력 문제의 기원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먼저 역사적으로 변화를 겪은 공간 개념부터 시작해보자. 가장 친숙한 세계관의 기반이 되는 공간 개념은, 공간을 세상의 거대한 ‘통’이라고 보는 방식이다. 이 공간 개념에서는 공간을 일정하고, 균일하며, 특정한 방향이 없고, 유클리드 기하학을 적용할 수 있는 거대한 상자로 보고, 그 안에서 세상의 일들이 일어난다고 여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체들은 이 상자 공간 안에서 이동하는 입자들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기술 및 공학 분야 전체에서 폭넓게 응용되고 있는 뉴턴의 만유인력이라는 강력한 이론 역시 바로 이 공간 개념 안에서 수립되었다.


    뉴턴의 이론이 발표되고 약 200년이 지난 19세기 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과 마이클 페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전하들 사이의 전기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는 공간에 대한 설명을 바꾸어 놓았다. 이들은 공간, 입자와 함께 ‘전자기장’ 이라는 제3의 요소를 찾아냈고, 새롭게 등장한 전자기장은 이후 물리학 전체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일반상대성이론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근본적인 혁신을 일으킨 사건은 1915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일어났다. 맥스웰의 업적에 깊은 감명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이번에는 중력(우리를 땅으로 끌어당기는 힘인 동시에 지구가 태양 주위에, 달이 지구 주위에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을 설명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전자기장과 유사한 형태의 ‘중력장’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하들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전자기장을 통해 전기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두 질량 사이의 중력 역시 중력장을 통해 작용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생각들을 정리해 중력장 개념을 도입하고, 맥스웰 방정식을 본떠 중력장에 대한 방정식 - 오늘날 아인슈타인 방정식으로 불리는 식 – 을 만들었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여기서 멈췄다면, 위대한 과학자이긴 해도 천재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중력장을 이해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장을 기술하는 방정식 형태를 해석하면서 놀랄 만한 발전을 이뤄냈다. 중력장과 뉴턴이 말한 상자 공간이 사실상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이 이룬 가장 위대한 업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순식간에 앞서갔다. 먼저 고전역학에서의 움직임, 즉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물체들이 보이는 움직임에 대한 설명을 상대화했고(특수상대성이론), 그다음에 중력이 있는 상태에서의 움직임으로 넓혀갔다.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이제는 물체가 공간 속에 어느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없고, 다른 물체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그 물체의 위치를 설명할 수 있으므로 ‘상대적’이다. 또한 중력이론으로서 탄생한 이론이지만, 공간 개념을 바꾸고 물리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전반적으로 뒤흔들어놓은 만큼 그 중요성이 일반화되었으므로 ‘일반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놀라운 이론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낸 것일까? 아인슈타인이 업적에서 직접적인 경험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론은 그때까지 인류가 세상에 대해 알게 된 지식에 집중해서 얻은 순수한 사유의 결과물이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낳은 창조물이었다. 그는 공간의 본질과 기존에 확립된 이론들을 고찰함으로써 시공간이 역동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적합한 방정식을 찾아냈으며, 개기일식 동안 별들의 시차를 계산했던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의 여러 예측 중 놀랍게 확증된 것 중 하나로 블랙홀의 존재를 들 수 있다. 실제로 블랙홀은 우주에서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또한 무수히 많은 응용 분야 중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GPS시스템을 들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물리학계를 뒤집어놓은 혁신적인 발견에는 일반상대성이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양자역학 역시 물체와 물질에 대한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았다.


    양자역학

    양자역학은 두 가지 발견으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는 미시적 차원의 세계에서는 항상 ‘알갱이’의 특성, 즉 불연속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이는 미시 세계의 물체는 임의의 속도가 아닌 한정된 특정 속도만을 가질 수 있으며, 이를 속도가 ‘양자화’됐다고 말한다.


    많은 물리량들은 이러한 불연속적인 양자화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일례로 원자의 에너지도 아무 값이나 갖는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을 통해 계산된 한정된 값(원자의 ‘에너지 준위’)만 가질 수 있다. 작은 에너지 덩어리들, 즉 ‘에너지 양자’들이 모여 에너지를 형성하는 것이다. 장도 마찬가지이다. 유동적인 선들의 집합인 전자기장도 매우 작은 규모에서 볼 때는 광자라고 불리는 불연속적인 작은 ‘에너지 덩어리’, 일종의 ‘알갱이’, 즉 ‘양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양자역학을 통한 도 다른 발견은 모든 움직임에 우연한 요소인 본질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뉴턴의 추측과 반대로, 어떤 한 입자의 현 상태는 다음 순간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결정해주지 않는다. 미시적 차원에서 볼 때 물체들의 변화는 확률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입자는 해당 입자의 위치를 통해 표현할 수 없으며, 입자가 발견될 수 있는 각 위치에 대한 확률 전체를 의미하는 ‘확률운’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결국 어떤 입자의 움직임은 ‘입자의 존재에 대한 확률의 변화’가 되는 것이다.


    양자중력

    아인슈타인은 공간이 전자기장과 같은 하나의 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한편, 양자역학은 모든 장이 양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양자는 ‘확률운’을 통해서만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 두 아이디어를 합쳐서 생각하면 공간, 즉 중력장은 정자기장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공간 역시 알갱이 구조를 띠게 된다. 결국 ‘공간 알갱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 알갱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 알갱이들을 지배하는 공식은 무엇인가? ‘공간 알갱이들의 확률운’이란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관찰과 관측에 어떤 영향을 가져다주는가? 결국 공간 알갱이들의 확률운을 묘사할 수 있는 수학적 이론을 세우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양자중력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공간과 시간은 따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간이 흐르는 방식 또한 물체의 존재와 움직임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공간만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고 확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 전체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유리의 일상적인 개념과는 동떨어진 새로운 생각의 도식을 그릴 필요가 있다.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는 연속적인 변수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여겨지는, 시공간 알갱이의 확률운에 기반을 두고 있는 어떤 세계를 상상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양자중력 문제를 풀 수 있는 여러 해답들이 존재한다. 물론 아직 완벽하거나 완전한 합의를 얻은 해답은 없지만 말이다. 내가 그중 하나의 이론을 수립하는 데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겐 커다란 행복이자 행운이었다. 그것은 바로 루프양자중력, 이른바 ‘루프이론’이라고 불리는 이론이다.



    루프이론의 탄생

    런던과 시러큐스

    크리스 아이셤은 양자중력의 스승이었다. 그는 양자중력에 대해 알려진 모든 내용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융의 정신분석학이나 신학 등 모든 주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주제를 유쾌하게 섞어가며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크리스 아이셤은 내 아이디어에 존재하는 모호한 부분과 오류들을 친절하게 짚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 아이셤이 내게 미국에서 연구 중인 아베이 아슈테카르(Abhay Ashtekar, 1949~)라는 인도 출신의 젊은 과학자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조금 다른 형태로 다시 기술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래서 나는 뉴욕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이 젊은 과학자를 만나기 위해 다시 한 번 사비를 털어 미국으로 떠났다.


    나는 시러큐스에서 아베이 아슈테카르를 만나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새 방정식을 연구하면서 두 달의 시간을 보냈다. 벌써 그를 중심으로 작은 연구팀이 꾸려져 있었고, 그는 섬세하고 끈질긴 성품으로 이 팀을 이끌고 있었다. 아슈테카르의 사고방식은 매우 분석적이었다. 이미 논증이 끝난 문제도 미세한 균열을 드러낼 때까지 다시 검토하였고, 그러면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방향을 찾아낼 때까지 고치고 가다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첫 번째 물리학 논문을 썼고, 양자중력과 관련된 학회가 열리면 지원금이나 초대장 없이도 꼭 찾아가 참석했다. 그중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아슈테카르의 일반상대성에 관한 새로운 형식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미국의 젊은 과학자 리 스몰린(Lee Smolin, 1955~)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는 테드 제이콥슨(Ted jacobson, 1945~)과 함께 휠러-다윗 방정식의 기묘한 해법을 찾아낸 인물이었다. 이 해법을 알고 싶었던 나는 리스몰린을 만나러 예일 대학교로 향했고, 우리의 오랜 우정이 시작되었다.


    루프의 의미

    스몰린의 사고 방식은 아슈테카르와는 정반대였다. 스몰린은 앞만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모호함을 돌파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미지의 벽 너머에 있을지 모를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측했다. 이상해 보이는 아이디어일지라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모조리 시도했다.


    스몰린과 제이콥슨이 찾아낸 해법이 기묘했던 이유는 각각의 해가 공간 속에 존재하는 닫힌 형태의 곡선, 즉 ‘루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루프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일대 캠퍼스에 모여 밤새도록 토론을 하며 이 문제를 계속 곱씹는 동안,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루프들이 양자중력장에서 ‘패러데이의 역선’의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었다.


    고전적 장에서의 역선은 연속적인 선의 형태이지만, 여기서는 양자적인 이론을 다루고 있는 만큼 불연속적인 선들이 쓰이고 있을 것이다. 양자전자기이론의 전자기장을 구성하는 광자와 마찬가지로, 양자중력이론의 중력장 역시 서로 분리된 선들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또한 공간은 중력장 그 자체이므로, 이 루프들이 공간 속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결국 ‘루프 그 자체’가 공간인 것이다! 루프들이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방정식을 통해 깨달은 사실은 바로 이것이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이 넘는 과학자가 연구하고 있는 바로 그 ‘루프양자중력’ 이론은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우리는 몇 주에 걸쳐 ‘루프’를 사용해 휠러-디윗 이론 전체를 열성적으로 다시 써 내려갔다. 이를 통해 본래의 방정식보다 더 명확하게 정의된 새로운 방정식을 얻을 수 있었고, 우리는 여기서 많은 해를 찾아내 그 의미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몇 주 후 아슈테카르와 논의하기 위해 시러큐스로 건너갔고, 그 후 런던으로 가 아이셤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인도의 고아 지역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해 처음으로 우리의 연구 결과를 공식 석상에서 발표했다. 루프이론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것은 바로 이 학회에서였다. 이 발표는 이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과학계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되기 10년 전,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각각의 개체라기보다는 한 개체의 두 측면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 발견을 특수상대성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우리는 보통 두 가지 사건(예를 들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존 레논 사망’)은 항상 시간 순으로 정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아닌 우주의 다른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정확히 어떤 시점’에 그 일이 일어났는지 묻는 질문이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사실 그러한 질문은 무의미하다.


    시간의 상대성

    시간의 상대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비유로 ‘쌍둥이 역설’을 들 수 있다. 사실 역설이라고 할 이유가 전혀 없긴 하지만, 어쨌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약 쌍둥이 중 한 명만 매우 빠른 속도로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면,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 사이에는 나이 차이가 생길 것이다. 여행을 하지 않은 쪽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흘렀으므로 더 늙어 있을 것이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들 중 우회하지 않고 직선으로 달리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인 것과 같은 원리이다.) 사실 이것은 역설이라기보다는 이 세계의 구조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시간은 각각의 물체에 따라 고유하게 나타나며 각 물체의 움직임에 종속되어 있다. 단 하나 역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점은, 각 시간 사이의 차이가 너무나 미미해서 인간의 눈으로는 관측할 수 없다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매우 반(反)직관적인 개념이긴 해도, 시차는 실제로 존재한다. 시차에 대한 구체적인 실험이 실제로 이뤄졌으며, 매번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초고속 항공기에 장착됐던 시계를 회수해보니 각각 서로 다른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장소에서 각각 다른 사건이 일어난 경우, 어떤 사건이 ‘먼저’ 일어났는지를 논하는 것은 대개 무의미하다. 예를 들어 안드로메다은하에서 무슨 일이 어떤 ‘시점’에 일어났는지를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간이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시간이 있고, 안드로메다은하에는 안드로메다은하의 시간이 있다. 두 시간을 보편적인 방식으로 서로 연결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시간에 대해 생각할 때 우주의 일생에 맞춘 우주 시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주 속의 모든 물체는 각각의 고유한 시간을 가지고 있으므로, 시간에는 지역적인 조건이 있다고 봐야 한다. 마치 일기예보 같은 상황이다. 각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날씨처럼 시간도 그렇다는 것이다.


    한편 각기 다른 시간을 가진 물체들이 조우하거나 신호를 주고받을 때, 우리는 그 시간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학적 서술을 통해 세상을 표현할 때 ‘시간’과 ‘공간’이라는 분리된 개념대신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시공간이란 일종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의 집합 같은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한 세기도 더 전에(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던 1905년에) 밝혀진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모든 사람들이 널리 알고 있는 지식이 되지는 못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만 봐도 그렇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한 후에도 사람들은 오랫동안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뒤따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전진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의 최종이론’을 향해

    오늘날의 루프이론

    프랑스에서 연구를 시작한 지도 거의 15년이 되어 간다. 나는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이곳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루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난 10여년 사이 대폭 늘어났다. 프랑스만 보더라도 마르세유, 파리, 리옹, 투르, 그르노블 등 각지에서 많은 연구팀들이 루프이론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 덕분에 루프이론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고, 더 확실해질 수 있었으며, 견고하며 명료한 이론이 되어왔다.


    독일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는 전통적인 루프이론 접근법은 시공간의 시간적 측면과 공간적 측면을 철저히 분리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 반면 프랑스, 캐나다. 영국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는 비교적 최신의 접근법은 시간적 측면과 공간적 측면을 비교적 균일하게 다루는 ‘공변(convariant)’적인 방법이다. 이 두 접근법 사이의 차이는 양자역학의 두 가지 표준공식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와 유사하다.


    가장 강력한 힘, 호기심

    오늘날 과학 분야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전 세계적으로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고 기술 응용이 가능한 학문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순수과학에 대한 지원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세상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한 걸음 도약할 때마다 늘 그 뒤에는 커다란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 예는 무수히 많다. 현대 공학기술은 달의 궤도를 예측한 뉴턴의 계산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농업 분야의 녹색혁명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유전 연구에서 출발했다. 현대사회의 모든 기술 분야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기초과학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과학 연구는 깨어 있는 지도자들이 기초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


    나는 ‘호기심’이야말로 문명을 빚어내고 인류를 동굴 밖으로 끌어내 파라오에 대한 찬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가장 강력한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유럽이 이렇게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닌 호기심을 지키고자 한다면, 대학들이 문화를 연구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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