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
 
지은이 : 카트린 파시히 외(역:장윤경)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1년 05월




  • 이 책은 시간 여행과 인류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신개념 여행 안내서다. 시간 여행자는 익룡이 하늘을 나는 시대로도, 스톤헨지의 비밀이 숨겨진 현장으로도, 혹은 우주가 탄생하는 찰나의 순간으로도 갈 수 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스스로 잘 안다고 믿었던 장소와 사건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이 제격이다. 주류 역사의 편견을 깨는 새로운 시각과 시간 여행에 필요한 방대한 양의 충고와 조언이 시간 여행을 더욱 재미있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138억 년이라는 기나긴 우주의 역사 속 어느 낯선 곳에서 길 잃은 미아가 되기 싫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바란다.


    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


    취향대로 떠나는 테마 여행

    잊을 수 없는 주말을 위한 원 포인트 여행지

    그라나다, 1350년~1450년

    8세기 초 북아프리카의 전사들은 오늘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 일대를 정복하여 그곳에 오랫동안 정착한다. 나중에 무어(Moor)라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도로, 그때까지 이슬람은 유럽에 존재하지 않는 아주 새로운 종교 중 하나다.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가 사망한 지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무어인의 비호 아래 이 지역은 오랜 기간 안정을 누리며 문명화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11세기경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하여 이 땅을 다시 그리스도교로 탈환하려는, 과도한 열망을 품은 세력들이 이웃 국가에서 속속 등장한다. 그리스도교 세력에 기반을 둔 군대들은 길고도 복잡한 전쟁에 무어인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며,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이들을 밀어낸다. 13세기 중반에 이르러 무어인이 세운 거의 대부분의 대도시는 그리스도교의 지배 아래 놓인다.


    그럼에도 무어인들은 마치 불사조처럼 1232년에 새로운 국가를 하나 세운다. 무어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Nasr)가 지배한, 그라나다 토후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토후국은 오늘날의 그라나다(Granada)와 말라가(Malaga) 그리고 안달루시아(Andalucia) 동부의 알메리아(Almeria) 등의 도시를 포함하며, 높은 산맥의 보호와 비옥한 평야 그리고 지중해 연안에 갖춰진 항구로 풍요와 번영을 누린다. 그라나다 토후국은 생각보다 오래가며 250년 넘게 지속된다. 서유럽의 마지막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 토후국은 시간 여행자들에게 매우 탁월한 여행지로 꼽힌다.


    나스르 왕조를 보다 풍부하게 경험해 보고 싶다면 약 650년 전의 과거로 떠나야 한다. 1333년 유수프 1세가 권력을 잡으면서 그라나다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이후 20년 내에 알람브라가 완공된다. 이 시기에 그라나다는 번영의 절정을 맞이한다. 뉘른베르크 출신의 지식인 히에로니무스 뮌처는 15세기 말 이 도시를 방문하고는 크게 열광하며 극찬한다. ‘장담하건대 전 유럽에 이와 비슷한 도시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심히 휘황찬란하고 장엄하며, 너무도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어 지상 낙원이라 착각할 정도다.’


    도시의 중심에는 100미터 곱하기 60미터 넓이의 거대하고 환상적인 이슬람 사원, 모스크(Mosque)가 있다. 1492년 이후 이 이슬람 사원은 새로운 대성당으로 대체되므로, 사원의 실제 모습은 과거로 가서만 관람할 수 있다. 모스크 곁에 위치한 알카이세리아 시장에선 이 도시의 주요 생산품 중 하나인 비단이 수백여 개의 가판대 위에서 활발히 거래된다. 시내 중심뿐 아니라 다른 여러 외곽 지역에도 크고 작은 시장들이 즐비하며, 어딜 가든 늘 시끌벅적하고 분주하다. 하지만 이슬람 사원은 예외다. 기도 및 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날마다 수차례 미나레트(minaret) 탑에서 울려 퍼지며,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사원 안을 드나든다.


    오래전에 정착한 유대교도와 일시적으로 머무는 그리스도교인 소수를 제외하면 주민의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그라나다 토후국은 무척 진보적인 나라다. 이들의 공용어는 오늘날 ‘고전 아랍어’라 불리는 언어로, 현재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현대 스페인어 단어 몇 개로 통하는 경우도 가끔 있겠지만 그 이상의 원활한 소통은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나라

    생경하고 기이한 세상을 발견하는 이색 여행을 원한다면 굳이 먼 과거로 떠나지 않아도 된다. 한 가지 예로 1990년부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 흔히 동독이라 불리는 독일 민주 공화국이 있다. 1949년과 1990년 사이에는 ‘독일’이라 이름 붙은 나라가 둘이나 있다. 둘 중 하나는 1990년에 다른 하나에게 삼켜진다. 이 삼켜진 나라, 동독은 20세기 후반의 독일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모습과 여러 면에서 정확히 일치한다. 나쁜 공기, 상자갑처럼 보이는 자동차들, 고르지 않은 도로, 어디에서도 터지지 않는 휴대 전화, 맛없는 아이스크림 콘, 찾아보기 힘든 컬러텔레비전,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입고 다니는 칙칙한 바지. 여기까지만 보면 동독은 그저 과거의 어느 평범한 나라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동독은 마치 미래에서 온 나라 같은 인상을 준다. 1960년대부터 그곳에선 유리, 종이, 금속을 수집하여 재활용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직장 생활을 하며,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집이 없는 노숙자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며 연금 수급권을 가진다. 진료를 받거나 병원에 입원을 해도 모두 무료다.


    동독을 여행하다 보면 곧바로 세 가지가 당신의 이목을 끌 것이다. 첫 번째는 냄새다. 공기에서 이상한 타는 냄새가 날 것이다. 동독은 국내산 갈탄으로 에너지 생산의 대부분을 조달한다. 일례로 집집마다 벽난로에서 갈탄을 태우며 난방을 유지한다. 두 번째로 나라 안에서 화려한 색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품질이 나쁜 건축 자재로 지어진 집들은 대개 잿빛이며, 암석 사막 같은 이 땅은 간간이 붉은 현수막이나 깃발로 꾸며져 있다. 세 번째로 지방에는 거대한 규모의 농경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농업 생산 협동조합(LPG)이 경작하고 관리하는 농지가 대부분이다.


    제로 수집

    원자재가 부족한 동독에서는 자원을 수집하여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가동하는데, 동독의 언어로 이는 제로(SERO) 수집이라 불린다. 오늘날의 재생 센터와 비슷해 보이지만, 재활용 가능한 물건을 가져오면 대가로 돈을 받기 때문에 이는 오히려 고물상에 더 가깝다. 지역의 청소년 단체에 속한 십 대 아이들이 손수레를 끌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신문지 더미와 낡은 빈병들을 주워 모으는 대규모 수거 활동의 날도 적지 않다.


    상점 앞의 대기 줄

    특정한 날이면 동독의 여러 상점들 앞에는 영업시간 전부터 기나긴 줄이 늘어서곤 한다. 다시 말해 어떤 상품은 정해진 날에만 구입할 수 있고 다른 날에는 살 수 없다는 뜻이다. 기본적인 식료품 및 생필품 공급은 대부분 보장되지만, 반면 이국적인 것들은 아예 얻을 수 없거나 간혹 극히 드물게 주어진다. 브렉시트(Brexit) 이후 영국의 모습과 조금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바나나, 커피, 오렌지처럼 외국에서 들여오는 식료품은 인기도 높고 수요도 많다.


    때론 바나나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무작정 대기 줄이 생기기도 하는데, 정작 어느 가게인지 정확히 몰라 아무 데서나 줄이 늘어서곤 한다. 앞에 선 사람들만 바나나를 얻는 날도 있고, 가끔은 줄을 선 모두에게 돌아가는 날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줄을 서기도 한다.


    공룡의 왕국에서 보내는 색다른 휴가

    공룡의 왕국으로 여행을 원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여러 문제를 안고 출발한다. 방학을 공룡과 보내고 싶은 아이들의 바람이 크기는 하지만, 소송과 상해 배상금을 피하고 싶은 여행 업체의 바람은 더더욱 크다.


    그러는 대신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들을 한번 보자. 회색곰 그리즐리 베어를 사진에 더욱 잘 담으려고 몇 미터 근처까지 다가가는 사람들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즐리의 행동 양식에 대해 우리는 꽤나 많이 아는 편이지만, 대다수 공룡 종의 생활양식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것과 다름없다.


    여행 내내 먹을 식량을 모두 집에서 준비해 간다면 뭔가를 잘못 먹어 중독에 걸리는 일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 동식물을 먹지 않는다고 중독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런저런 가능성들이 널려 있어 피해 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이를테면 잘못된 장소에 그저 잠시 머물다가 혹은 부주의하게 몸을 조금 움직이다가도 중독될 수 있다. 현존하는 수많은 동물 및 식물 종들의 독성은 서로 무관하게 진화해 왔다.


    최적의 여행 시기

    백악기는 그리 길지 않다. 이 시대는 대략 1억 4500만 년 전에 시작되어 6600만 년 전에 끝난다. 백악기는 약 2억 3500만 년 전에 시작되는 소위 중생대의 일부다. 중생대의 대기는 전 기간 내내 호흡이 가능하다. 다만 공기 중 산소 농도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시기로 떠나느냐에 따라 15퍼센트에서 30퍼센트 사이를 오갈 것이다.


    약 1억 7500만 년 전 또는 1억 5000만 년 전까지는 모든 대륙이 서로 연결되어, 함께 판게아라는 초대륙을 형성한다. 중생대 대부분의 시기 및 지역은 현재보다 평균 6도에서 10도까지 더 따뜻하다. 오늘날 극지대와 같은 광범위한 빙결은 어디에도 없다. 해수면의 수위는 지금보다 대략 80미터 정도 높다.


    중생대 초기는 공룡을 발견할 기회가 지극히 적다. 전체 동물계에서 공룡이 차지하는 비율이 1~2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율은 금방 달라진다. 고작 몇 백만 년 뒤부터는 공룡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럼에도 중생대의 초반 3000만 년 또는 4000만 년은 건너뛰자. 안타깝게도 정확한 시점이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바로 이 시기에, 트라이아스기-쥐라기 대멸종이 일어난다. 중생대 전기인 트라이아스에서 중기인 쥐라기로 넘어가는 2억 년 전 즈음 지구상의 생물들이 대거 절멸하는데, 시점도 명확하지 않지만 그 원인 또한 분명하지 않다.


    이 대량 멸종으로 모든 종의 약 4분의 3이 희생된다. 확실한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면, 이 비극적인 운명을 나누고 싶지 않다면, 가급적 다른 시기를 택하여 체류하도록 하자. 중생대 말기로 가면 대륙들이 분열되어 점점 멀어지며, 이로 인해 다양한 종의 공룡들도 널리 퍼지게 된다. 즉 전체적으로 볼거리가 한층 많다는 뜻이다.


    대형 동물 사냥을 즐기는 이른바 빅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백악기 말기와 최대한 가까운 시기로 여행 계획을 잡자. 현재와는 달리 그곳에서 당신은 무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손수 사살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윤리적인 문제는 평소보다 덜 얻게 된다. 당신이 타이밍을 얼마나 정확히 맞추느냐 그리고 어느 지역을 택하여 머무느냐에 따라, 어쩌면 당신의 사냥감은 이어지는 전 지구적 자연 재해로 죽는 것보다 도리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최고의 여행지

    이론적으로 당신은 공룡 화석이 발견된 유명한 장소로 향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해당 장소가 실제로 무엇 때문에 유명한지 보다 꼼꼼하게 확인해 보자.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해양 생물의 화석만 있는 경우도 빈번하며, 당신이 택한 휴가지가 여행 기간 동안 내내 물속에 잠겨 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모든 장소는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곳에 있지 않으며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한 가지 커다란 이유 때문에, 유명 화석 발견지는 공룡 여행지로 그리 이상적이지 않다. 즉 화석은 하천 바닥에 퇴적물이 침전되는 지대에서만 생겨난다. 그런 다음 지각판의 움직임을 통해, 이 퇴적물이 오늘날 탐색에 유리한 장소로 옮겨져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리한’ 장소는 ‘버스 정거장 근처’가 아니라 ‘지표에 가까운’ 곳을 의미한다.


    어쨌든 공간만 물색하지 말고 시간대도 잘 찾아내야 한다. 공룡의 왕국을 돌아다니기 적절한 시간대를 찾는 일은 건초 더미에서 바늘 하나 찾기처럼 쉽지 않다. 화석이 발견된 유리한 장소들조차 어마어마하게 폭넓은 시간대에 걸쳐 있다. 말하자면 수백만 년 이전에 유라시아청딱따구리 한 마리가 한 번 목격되었다는 이유로, 바로 그곳에 지금 새모이집을 설치하고 마냥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로 돌아가 더 나은 세상 만들기

    세상을 개선하기 어려운 이유

    역사의 흐름은 마라톤처럼 일률적인 선형이 아니다. 즉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거리를 주파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조금 더 빠르게 혹은 덜 빠르게 달려 나가는 과정이 아니다. 또한 역사는 확고한 철칙을 따라가다 마침내 유토피아에서 끝이 나는 원대한 계획이 아니다. 역사는 우리의 바람보다 훨씬 더 많이, 우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역사는 계획도 없고 일관성도 없고 목표도 없는, 볼품없는 무질서 그 자체다.


    여기에 더해 소위 역사의 흐름을 좌우했다고들 하는 소수의 특출한 인물 몇몇을 찾아보는 일 역시 크게 의미는 없다. 우리가 아는 모든 학자, 예술가, 작곡가 또는 발명가에게는 똑같이 협력하고 관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단지 명성을 더 적게 얻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름이 지워져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다.


    무엇보다 여성 학자, 여성 예술가, 여성 작곡가, 그리고 여성 발명가들은 빈번히 2군으로 밀려난다.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 또는 아메리카에서, 이들 직업군에 속하며 특히 유럽 출신이 아닌 이민자들 또한 동일하게 취급된다. 편파적인 보도에도 주의하자. 어느 역사적 인물이 후세에 오직 과장된 어조로 칭송만 받는다면 이는 실제 그의 본질과 거의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역사는 우연히 서로 공간과 시간을 통해 연결된 사건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망, 즉 네트워크다. 우리 모두는 네트워크 안에 있는 매듭이다. 현명한 인간은 어느 시대에나 있으며 훌륭한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실제로 무언가가 달라지려면 아이디어가 적당한 곳에서, 마땅한 때에, 그리고 적절한 머릿속에서 떠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사라지고 만다.


    역사에 기록되는 순간을 생생하게 경험하고자 굳이 특정 장소나 특정 시대를 여행할 필요는 없다. 역사는 그저 몇몇 장소 및 선택된 시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항상 벌어진다. 역사의 발걸음은 끊임없는 진보도 아니며, 정해진 최종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도 않는다. 역사는 진보도 목표도 없다. 이들 둘은 인간이 디딜 발판을 위해 고안된 신화다.


    뒤돌아보았을 때 새로운 발명들이 얼마나 유용해 보이든 상관없이, 일단 처음에는 기꺼이 환영받는 일이 극히 드물 것이다. 예를 들어 전깃불은 등장 당시 논쟁의 대상이 되며, 마찬가지로 책의 쓸모를 두고도 한동안 논쟁이 벌어진다.


    병원에 새로 도입되는 위생 기준 또한 엄청난 저항에 부딪힌다. 오스트리아의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 19세기 중반 산모들의 산욕열이 병원의 위생 결핍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히나, 온갖 비난과 야유를 받았고 오직 소수의 동료들만 그의 발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전문가들의 말조차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 시대에서, 어디에선가 날아온 시간 여행자인 당신이 좋은 아이디어를 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당신 또한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서 건강 문제에 관한 한,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어느 떠돌이 여행객보다는 전문가의 말을 더욱 신뢰하지 않겠는가.


    오늘날의 시선에서 분명해 보이는 혁신적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과거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 혹여 당신이 어떤 훌륭한 아이디어를 과거에 이식하는 데 실제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 너무도 마땅하다.



    시간 여행자를 위한 필수 여행 정보

    여러 개의 날짜와 시간

    우리는 세계 어딜 가나 똑같은 연도와 똑같은 달력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해마다 서머 타임에서 윈터 타임으로 전환되고 또 다시 돌아오는, 두 차례의 혼란조차 부담스럽게 느끼는 이들은 시간 여행을 떠나지 않는 편이 낫다.


    이런 혼란의 원인은 먼저, 한 해의 시작을 확정하는 방식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 새해 시작 선택지가 무려 일곱 가지나 되며, 이들은 각각 전 해에 걸쳐 골고루 흩어져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달력의 시작점, 다시 말해 연도 계산이 시작되는 ‘0년’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에는 0년이 없다.


    일반적으로 원주민들에게 날짜를 물어보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연도는 보통 ‘누구누구 집정관의 통치 제 몇 년’ 식으로 따지거나, 로마에서 일시적으로 그러하듯 도시가 세워진 원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세기도 한다. 구체적인 연도를 알고 싶다면 날짜를 세는 규칙부터 이해해야 하는데 시작은 그리 쉽지 않다. 로마 제국의 초기 달력은 한 해를 13개월 그리고 일주일을 8일로 본다. 10세기에서 13세기까지 지중해 지역에서는 달의 날짜를 오늘날과 비슷하게 매기지만, 달의 절만은 오름차순으로 세고 후반의 날짜는 다시 역으로 센다.


    만약 시간대가 중요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시간 표시법을 붙들고 씨름을 해야 한다. 고대 로마에서 하루는 24시간이고, 그중에서 12시간은 밤이며 12시간은 낮이다. 다시 말해 한 시간의 길이가 한 해의 흐름에 따라 변동된다. 지중해 지역에서 겨울에는 한 시간이 대략 45분에 불과하며, 여름에는 무려 75분이 한 시간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시간을 묻는다면, 이뿐 아니라 어느 종교에 속한 사람이냐에 따라 각기 상이한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로마에서도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의 시계는 공식적인 시계와 다르게 흘러간다.


    식사에 대한 생각

    우리는 과거의 식습관에 대해 지극히 조금만 알고 있다. 대부분의 지식은 구두나 문서로 전해지는 요리법과, 조리도구나 변기에서 발견된 음식물의 잔해에 기초한다. 전해 내려오는 요리법과 식단은 문제가 있다. 보통은 아주 특별하고 호사스러운 음식들만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누군가 먼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무엇을 먹고 사는지 전하면서 일상적인 식습관을 기록한 경우도 가끔 있다. 하지만 이 모두는 인류의 역사에서 고작 지난 몇 년에 해당될 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양을 섭취하는 행위는 인류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늘 행해졌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음식에 관심이 있으며 심지어 음식물의 영양 성분에도 신경을 쓴다. 우리의 조상들은 실리콘 막대기를 먹는 외계인이 아니라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이다. 엄청난 기근이 지속되지 않는 한, 인간은 쉽게 굶어 죽지 않으며 무엇이든 찾아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한다.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음식에도 관심이 있다면, 15세기 말 이전의 유럽은 결코 추천한 만한 여행지가 아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5세기부터 변화무쌍한 조리법과 진귀하고 비싼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이슬람 세계에서는 11세기부터 풍부한 음식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반면 유럽은 음식에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으며, 꽤나 오랫동안 질보다는 양을 추구한다.


    현재 당신이 아는 식료품의 상당수는 대부분의 시간 여행지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고 감자와 토마토 그리고 옥수수는 어디에도 없으며, 아시아 외의 지역에서는 쌀을 보기 어렵다. 또한 과거에 존재하는 식품들은 아마도 우리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령 감자는 오랫동안 하얀색이거나 보랏빛 혹은 노란빛을 띤다. 지금처럼 옅은 주홍빛이 도는 감자는 17세기 후반에 들어 네덜란드에서 개량된 품종이다. 게다가 익숙해 보이거나 친숙하게 느껴지는 식료품이라도 완전히 다른 맛이 날 수 있다.


    현대와 비교하여 과거의 음식이 무조건 검소하고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먹을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의 폭이 오늘날보다 한층 넓기에, 적어도 농업적으로 어느 정도 비옥한 지역에서는 지금 우리보다 더욱 다양하게 즐겼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육류는 대체로 소, 돼지, 양, 일부 들짐승 그리고 몇몇 조류에 한정되어 있다. 반면 과거에는 웬만한 생물들은 거의 냄비로 들어간다. 들꿩, 청설모, 멧새, 겨울잠쥐, 해달, 고양이, 고슴도치, 공작, 홍학 그리고 갓 태어난 토끼도 요리해 먹으며 각 동물마다 요리법도 다 있다.


    유럽에서 수입 향신료는 몇 세기 동안 신분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를 구입할 여력이 있는 사람은 후추, 계피, 정향, 육두구 또는 생강을 모든 음식과 음료에 섞는다. 많은 향신료들이 오직 썩은 고기 맛을 덮기 위한 용도라는 생각은 오늘날 생겨난 소문에 불과하다. 향신료를 살 만큼 부유한 사람은 이보다 훨씬 저렴한 고기를 사다 먹을 여력이 분명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17세기에 들어 수입 향신료 값이 저렴해지면서 무절제한 향신료 사용은 곧바로 수그러든다. 요리 재료뿐 아니라 피임과 낙태용 약재로 쓰인 실피움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수요가 엄청나게 높으나 생산량이 극히 적어, 이에 따라 값비싸고 귀한 향신 식물로 여겨지다가 곧 사라진다. 오늘날에는 그 흔적조차 없기 때문에 당신이 발견해 내지 않으면 영영 묻히고 만다.


    식사 예절에 관한 정보가 잘 알려진 시간 여행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른 건 몰라도 아마 당신은 식사용 칼을 따로 가지고 다녀야 할 것이다. 으레 그러리라 기대하며 개인 나이프를 주지 않을 수 있다. 유럽에서 숟가락은 16세기 무렵부터 통용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포크가 배치되는 식탁 문화가 널리 퍼진다. 식탁의 옆자리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고 따라하며, 새로이 알게 된 지식은 다음 시간 여행자들을 위해 돌아와서 기록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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