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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저   자 : 홍진호
출판사 : 21세기북스
출판일 : 2021년 02월

  •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그 책은 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 헤세 『데미안』

    『데미안』이 내 삶을 영영 바꿔놓고 말았다

    운명처럼 만난 헤르만 헤세

    누구나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운명적인 순간을 마주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 그 운명적 순간은 한 권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 찾아온다. 독일 록 음악의 전설 중 한 명인 우도린덴베르크도 그랬다. 그는 일상의 이야기를 섬세한 감수성으로 전달하는 독일어 가사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린덴베르크의 헤세에 대한 애정은 독일에서 잘 알려져 있다.


    린덴베르크는 18세에『데미안』을 처음 접한 후, 『싯다르타』(1922), 『황야의 이리』(1927) 등을 읽으며 헤세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린덴베르크의 경험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그 시기의 기억이 단순히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지 않고 이후의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때로는 책 한 권이 삶을 바꾸기도 한다

    내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작은누나가 읽어보라며 무심하게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 간 삼중당 문고 한 권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꿔놓고 말았다. 그때까지 전자기기와 컴퓨터와 코딩에 푹 빠져 있던 나는 손바닥만 한 책 한 권,『나르치스와 골드문트』(당시 삼중당 문고판 번역 제목은『지와 사랑』이었다)를 읽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이런 세계가 있구나. ‘나’가 누구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그 대답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선생님과 부모님께 배우는 고리타분한 삶의 자세와 규범, 남들이 규정하는 삶의 가치와 목표를 비웃으며 무시하지만, 그것들을 대신할 만한 내 것을 찾을 수 없었던 사춘기 소년에게 헤세의 목소리는 강렬했다.


    ‘문학에 답이 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독일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독일문학 연구자로서 나는 늘 헤세와 데미안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문학작품을 학문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 삶의 일부와도 같은 작가와 작품을 분석과 치밀한 해석의 틀 안에 밀어 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각별한 과거를 당시 그대로의 기억으로 내버려두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을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수업과 강연을 위해『데미안』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상황은 머지않아 닥쳐왔고, 진실의 순간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신은 죽었다”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

    작가 외에는 그 무엇도 되려 하지 않다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지역의 칼프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선교사였으며, 어머니 마리 헤세 역시 선교사의 딸로서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1891년, 헤세는 아들을 성직자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님 바람에 따라 마울브론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곳은 상당히 엄격한 규율을 가진 학교로서, 자유로운 천성을 지녔던 어린 헤세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결국 엄격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헤세는 학교 무단이탈 등의 문제를 일으키다 급기야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된다. 이때 나이가 고작 14세였다. 이처럼 힘든 청소년 시절을 보냈지만, 헤세에게는 확실한 꿈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헤세는 ‘작가 외에는 그 무엇도’ 되려 하지 않았다.


    그 꿈이 실현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만 20세가 되던 1896년에 시「마돈나」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행되던 잡지에 수록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기 직전인 1898년에는 첫 시집『낭만적 노래들』이, 1899년에는 산문집『한밤중의 한 시간』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906년에 마울브론 신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레바퀴 아래서』가 발표된 후에는 작가로서 그의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다.


    내면으로의 길을 안내하는 『데미안』

    헤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그의 삶을 관통하는 몇 개의 키워드가 눈에 띈다. 바로 방황, 저항, 방랑과 같은 것들이다. 1919년에 헤세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장편 소설『데미안』역시 주인공 싱클레어가 여러 방황 끝에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데미안』은 독일문학의 오랜 전통인 ‘발전소설’ 전통을 따르고 있다. 발전소설, 혹은 성장소설은 독일문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괴테의 장편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5/96)에서 처음 그 전형이 만들어진 이후 독일 소설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은 소설 형식이다.


    독일 소설이라 하면 왠지 삶의 문제와 같은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은 이러한 전통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장 과정은 동시에 싱클레어가 세계의 본질, 또 ‘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싱클레어가 선하고 따듯한 가족의 울타리 밖에 있는 어둡고 악한 세상을 인지하고, 그 두 세계를 모두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궁극적으로는 두 세계가 자기 자신의 내면에도 존재함을 알게 되는 여정이다.


    이 여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헤세는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소설이 발표된 20세기 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이『데미안』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방황과 괴로움을 앞서 살아간 사람

    “당신 안에 세계가 있다”

    우리는 아무런 선행지식 없이『데미안』을 읽고도 커다란 감동과 위안을 얻었다. 이때 우리는『데미안』을 올바로 이해했던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나는『데미안』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고, 자의적인 해석과 오해를 바탕으로 내 멋대로 감동했다. 어쩌면 독일문학을 공부하는 동안 헤세를 오랫동안 피해왔던 것은 올바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좋은 추억은 그대로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헤세가 살던 시대야말로 유럽 현대 문명의 사춘기에 해당하며, 이 시기를 헤치고 살아간 헤세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은 근본적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혹은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의 노력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설령 ‘내면’의 의미가 원래 헤세 의도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헤세의 진심 어린 노력을 담고 있는『데미안』은 앞으로도 수많은 청소년들과 수많은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줄 것이다.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인 것은 없다 - 괴테 『젊은 베르터의 고통』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괴로웠던 모든 이에게

    ‘슬픔’ 이 아닌 ‘고통’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데미안』못지않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일 소설이다. 그런데 이 제목은 조금 잘못된 것이다. 이를 한글로 옮기면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된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소설의 제목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번역되었을까?


    아마도 ‘베르테르’는 외래어 표기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통용되던 일본식 표기 관습에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슬픔’은 영어 번역을 따른 것 같다. 아직 국내에 독일어 번역자가 많지 않던 시절에 독일 작품이 영어와 일본어 번역을 거쳐 한국어로 옮겨지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라는 올바른 번역을 제목으로 가진 번역본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으니, 익숙하지만 잘못된 번역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전히 매력적인 250여 년 전 연애소설

    잘못 번역된 제목이 이렇게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이 소설이 그만큼 오랫동안 우리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왔고, 그 제목이 그만큼 선명하게 그들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TV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통해 온갖 기괴한 ‘막장’ 연애 이야기에 익숙해진 현대의 젊은 독자가 250여 년 전에 쓰인, 짝사랑의 괴로움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느낀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오래된 소설이 아직까지 젊은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심지어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활발하게 공연이 이뤄질 만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에 다른 고전들과는 다른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도록 해준다.


    그런데 학생들의 감상문을 읽다 보면 저학년과 고학년 학생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눈치 채게 된다. 저학년 학생들의 감상문에서는 “사랑 때문에 자살까지 하게 될까?”라는 의아함을 자주 접하게 되는 반면, “베르터의 절망과 죽음을 보며 깊은 연민을 느꼈다”와 같은 감상은 대체로 고학년의 감상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리다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읽은 대학 고학년 학생들이 베르터의 절망과 괴로움에 보다 쉽게, 보다 깊이 공감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저학년 학생들에 비해 짝사랑의 고통을 겪어봤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쓴 괴테는 어떠했을까? 물론 괴테가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젊은 베르터의 고통』이 시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소설로 남은 것은 연애소설로서 그 줄거리가 흥미진진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괴테의 작품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던 곳은 무엇보다도 베르터의 이야기가 괴테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정성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정성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에 한 번이라도 휩싸여본 적이 있는 모든 시대, 모든 나라 독자들의 경험과 공명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낸다.


    독일문학은 괴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괴테의 또 다른 이름, 독일 고전주의

    독일 사람들에게 괴테는 매우 각별한 인물이다. 이는 세계 곳곳에서 독일어와 독일의 문화를 알림으로써 독일 문화외교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독일문화원이 ‘괴테-인스티튜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또 독일에 괴테의 이름을 가진 초ㆍ중ㆍ고등학교가 50여 개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이미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괴테의 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괴테가 활동했던 시기를 흔히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예술에서 고전주의가 일반적으로 뛰어난 예술가들이 다수 등장하여 훌륭한 작품들을 양산한 예술의 황금기를 뜻하는 반면, 독일문학에서 고전주의는 절대적으로 괴테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였다. 물론 괴테의 절친이기도 했던 프리드리히 실러 역시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또 다른 축을 이루기는 하지만, 당대의 명성, 이후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독일 고전주의 문학은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지적한 것처럼 “괴테의 시대”였다.


    파격적이고 내밀했던 괴테의 사랑

    괴테는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뛰어난 외모를 가진 남자이기도 했다. 괴테는 1779년에 바이마르 궁정으로부터 딸을 낳은 왕비 루이제 아말이에의 첫 성당 방문을 기념하는 연극 공연을 의뢰받았다. 그날 공연에서 괴테의 모습을 본 한 궁정 의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지적인 아름다움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이렇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다른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단 한 사람의 판단이지만,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남성이라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실제로 괴테의 사랑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도 책 서너 권의 주제가 될 만큼 다채롭다.


    무수한 모방을 부른 ‘베르테르 효과’

    그러나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베르터를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가정의 평화를 교란하는 인물로 바라보았다. 또한 이들은 이 소설이 젊은이들을 자살로 이끈다고 비판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 아니었다. 오늘날 밝혀진 바로는『젊은 베르터의 고통』발표 직후 베르터를 따라 자살한 남성들이 최소 12명에 이르렀다. 우리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사회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 같은 책 - 호프만스탈 「672번째 밤의 동화」

    세기말 아름다운 삶의 멜랑콜리

    수수께끼 풀듯이 읽기

    소설이 수수께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파악할 수 있는 줄거리는 매우 빈약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사건들과 묘사가 이어지며, 대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후고폰 호프만스탈의 단편소설「672번째 밤의 동화」도 그런 작품이다.


    우선 제목부터 그 의미가 애매하기 짝이 없다. 왜 하필 ‘672’번째 밤이며, 왜 동화일까?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어봐도 그에 대한 답은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줄거리는 한 줄로도 요약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 즉 한 부잣집 남자가 하인의 누명을 풀어주러 시내에 나갔다가 말에 차여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름답다. 번역본으로만 읽어도 문장과 묘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독일어 원어로 읽으면 마치 소설 전체를 한 편의 시로 써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술과 문학의 테마로 떠오른 ‘성(性)’

    19세기 후반에 독일의 사회와 문화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자연과학의 발달과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산업혁명은 산업과 사회의 구조는 물론 당대 독일인들의 인간관과 세계관까지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는 자연현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듦으로써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온 기독교적 인간관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인간이 자연현상의 일부라는 인식의 전환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는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정론적인 인간관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다. 자연과학적 사고방식하에서 인간을 자연현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와 삶이 예외 없이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특정한 인간 개체의 존재와 삶은 그를 둘러싼 유전적, 환경적 조건들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뜻하며, 그 결과 ‘자유의지’나 ‘신의 뜻’과 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개입할 여지가 사라지고 만다.


    인간이 자연현상의 일부이며 기나긴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된 유기체라면, 인간은 또한 성적인 존재로 이해될 수 있었다. 인간 역시 자연현상이며 진화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면 그들의 본질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이 바로 성 욕망이다. 오랜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항상 죄악으로 여겨져 은폐되고 억압되었던 성 욕망이 이제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성격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지 이러한 인간관의 변화 속에서만 19세기 말에 갑작스럽게 독일어권 예술과 문학의 주요 테마로 떠오른 성과 에로틱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인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고자 했던 예술가들과 작가들에게서 인간의 본질을 예술적으로, 또는 문학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인간의 성 욕망을 묘사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서적 감동에서 지적 울림으로

    유미주의적 삶의 필연적 딜레마

    「672번째 밤의 동화」줄거리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젊은 상인의 아들이 남자 하인을 비방하는 발신자 미상의 편지를 읽고 하인을 지키기 위해 곧장 행동에 나서는 부분일 것이다. 이처럼 일관성이 떨어져 보이는 상인의 아들 행동은 그러나 앞서 살펴본 그와 하인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또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기도 하다.


    세 명의 하녀들과 한 명의 하인은 유미주의적 삶의 가장 중요한 현실적 전제조건이다. 특히 하인은 상인의 아들이 유일하게 자의로 외부에서 받아들일 만큼 특별히 그의 마음에 들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를 잃는다는 것, 즉 “습관 및 다른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떨어질 수 없게 서로 결합된 존재들 중 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오던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인을 구하려는 그의 적극적인 행동은 근본적으로는 하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절실한 요구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유미주의적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자연적 존재인 하인들을 자신의 주변에 두는 것과 동일한 내적 모순을 안고 있다. 하인을 구하려는 행동은 동기에서나 모순적 결과에서나 모두 하녀들과 하인을 곁에 두는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자연적 삶과 본성을 상징하는 존재

    소설의 마지막 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장소는 군인들의 거리다. 주인공이 죽음을 맞게 되는 누추하고 더러운 이곳은 아름다운 장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감각적으로 묘사된다. 특히 후각적 인상이 지배적인 이 장소에서 젊은 상인의 아들이 목격하는 것은 양식화된 삶의 장식적 요소들이 배제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행위들이다.


    “더러운 삼배로 만든 마구간 작업복을 입은 군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말발굽을 씻는 행위도, 똑같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군인들이 자루 한가득 자신들이 먹을 빵을 운반하는 것도 모두가 그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육체적인 행위다. 이러한 육체적인 행위는 군인들의 육체적 현존을, 육체적 생존을 위한 그들의 자연적 의지를 강조해줌으로써 이들이 자연적 본성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몰락할 수밖에 없는 자에 대한 연민

    반면 유미주의적 삶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섰던 상인의 아들은 의도와는 정반대로의 삶의 영역 한복판으로 끌려 들어와 급기야는 목숨을 잃고 만다. 정신을 잃은 채 군인들에 의해 낯선 방에 눕혀진 상인의 아들은 직면한 죽음의 예감에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하인들을 저주한다. 그들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망은 하인과 하녀들 중 그 누구도 실제로 상인의 아들에게 벌어지는 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근거 없는 억지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상인의 아들이 하인과 하녀들을 원망하는 것은 그의 행동들이 그들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상인의 행동들은 결과적으로 하인과 하녀들 때문인 것은 맞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유미주의적 삶을 가능한 것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주인공이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유미주의적 삶이 자연적 존재인 하인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점에서 비극적인 결말은 궁극적으로 삶을 부정하는 유미주의적 삶의 내적 모순과 함께 이미 유미주의적 삶의 본질적 속성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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