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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화호, 새살이 돋다
저   자 : 김경태 외
출판사 : 지성사
출판일 : 2020년 12월

  • 시화호, 새살이 돋다


    시화호 탄생과 사라진 생명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동해안은 매끄러운 해안선을 보이지만 서해안은 유난히 들쑥날쑥 굴곡이 심하다. 이러한 해안을 리아스식 해안이라 부르는데, 시화호는 바로 이 서해 중부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인공 호수이다.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등 3개의 도시에 접해 있으며, 서울, 인천, 수원 평택 등 도시에서 가깝다.


    시화호라는 이름은 시화방조제가 시작되는 시흥시 오이도 지점과 끝나는 화성시 전곡항 지점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인 시흥시와 화성시의 첫 글자를 따서 지었다. 12.7킬로미터의 시화방조제는 시흥시 오이도, 안산시 대부도, 불도, 선감도, 탄도, 화성시 전곡항을 이어주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시화호 가까이에 있는 대부도, 탄도, 오이도, 형도, 우음도 등의 섬들과 시화호 갈대습지공원 대부도 갯벌습지보호구역, 시화호조력발전소와 달전망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공룡알 화석산지 등은 관광지를 방문하거나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화호는 죽음의 호수, 오염의 대명사로 알려져 사람들이 찾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경제개발을 위한 국토 확장

    왜 시화지구를 개발하였는가?

    우리나라 서해안은 굴곡이 심한 지형적 특징, 조위(潮位, 조수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해수면의 높이)의 차에 의해 넓게 발달한 갯벌 그리고 얕은 수심으로 인해 대규모 간척을 하는 데 있어 비용과 공사 기간 측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시화호를 포함해 대규모 간척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 구상은 이미 1970년대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에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하던 중동 지역의 건설 경기가 침체되고 장기화되면서 중동에 파견되었던 근로자들이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국내 경기 위축을 막고자 경제계에서는 간척사업을 건의하였고, 농수산부가 1982~1984년에 시화지구 기본조사를 하게 되었다. 이후 간척지의 사용 목적에 대한 의견이 나뉘기도 하였으나, 1986년 7월에 시화지구 개발사업이 확정되었다. 이와 함께 역시 경제적 상황을 이유로 경기도 김포간척지와 충청남도 서산간척지의 간척사업도 확정되었다.


    시화지구는 두 단계로 개발되었다. 1단계는 도시를 개발하고 농지를 만들며 방조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2단계는 간척이 완료된 후, 개발된 농지와 도시 및 공업단지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변해버린 바다 그리고 주민의 삶

    시화호는 시한부

    사람의 힘으로 자연을 바꾸는 일은 크든 작든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육지와 연안, 바다에서 개발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그 사업으로 환경에 미치게 될 영향을 파악하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사, 예측, 평가를 한다. 이를 ‘환경영향평가’라고 하며, 이때 협의된 사항들을 꼭 실천하여야 한다.


    시화지구 개발사업 역시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하고 협의를 마쳐야만 했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어디까지 조사하고 평가해야 하는지 범위를 정하는 데 여러 의견으로 나뉘었고, 설상가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마치기도 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방조제 공사는 이미 1987년 6월에 시작하여 진행 중이었으나, 당시 우리나라의 환경을 관리하는 기관인 환경청에는 1988년 9월에야 환경영향평가에 대해서 협의를 한 것이다.


    시화호는 나중에 오염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처음부터 환경을 무시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환경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사업을 빨리 시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시화호가 완공된 후 환경적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몰랐을까?


    당시 시화방조제 환경영향평가 협의 조건을 보면 첫째, 도시로 개발하기로 한 지역에 대해서 따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것, 둘째, 시화호로 들어가는 오염물질 양을 줄이기 위해 하수처리장 방류수를 방조제 완공 이전에 외해(外海)에 방류할 것, 셋째, 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나 논과 밭, 과수원 등에서 발생하는 오수(汚水)를 호수 안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게 할 것, 넷째 호수의 물을 정기적으로 교체해줄 것 등이었다.


    이런 조건이 있었던 이유는 시화호 유역에서 호수로 들어오는 물만으로 바닷물을 민물로 만들기에는 그 물의 양과 수질이 적절하지 않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 조건들은 호수로 민물이 들어올 때 함께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많이 줄여야 하며, 호수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였다. 실제로 시화호가 거대한 오염 호수가 된 것도 환경영향평가에서 필요하다고 했던 조건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던 탓이 크다. 그 요인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시화호 유역에 공장과 인구가 많아지면서 공장의 폐수와 생활에서 쓰고 버리는 하수 등이 급격히 많아졌다. 둘째, 공장과 인구가 많아지는 데 반해, 지자체에서는 하수와 폐수를 처리하는 하수처리장 등의 환경기초시설을 뒤늦게 확충했다. 셋째, 화성시 지역에서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키우며 나 온 폐수를 처리하지 않은 채 시화호로 흘려 보냈다. 넷째, 하수관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거나 파손되어 오폐수가 시화호로 유입되었다. 다섯째, 시화호로 물이 흘러 들어오는 유역면적에 비해 시화호 규모가 커서 유입된 물이 장기간 체류하는 것 등이었다. 시화호는 그때까지 우리 사회가 신경 쓰지 않았던 환경에 대한 의식 부족으로 오염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잃어버린 후 깨달은 사실

    갯벌 생태계

    과거에는 갯벌이 육지에 비해 쓸모없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갯벌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갯벌은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집도 지을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갯벌을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들고자 수많은 간척사업을 벌였고, 그 결과, 많은 갯벌과 자연 해안선이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갯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지구의 기후와 환경을 위한 갯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동안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이로움을 주었는지 알게 되었다.


    갯벌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

    우리가 모르는 갯벌의 기능 중 하나는 갯벌이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를 줄여주는 스펀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스펀지가 많은 양의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태풍이나 홍수로 갑자기 밀려드는 많은 양의 물을 갯벌의 모래나 펄이 흡수하여 육지로 침범하는 것을 늦출 수 있다. 넓은 면적의 갯벌과 갯벌에 사는 염생식물은 태풍 때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를 약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파도나 바람에 하구나 바닷가가 깎이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고, 대기의 온도와 습도에 영향을 미쳐 기후조절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갯벌은 또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갯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갯벌에 서식하는 김, 파래, 굴, 조개, 게, 고둥, 낙지, 어류와 같은 생물을 직접 잡아서 밥상에 올리기도 하고, 시장에서 팔기도 하였다. 요즈음은 자연 상태의 갯벌에서 채취하는 것과 함께 갯벌을 이용한 양식으로 많은 양의 수산물을 생산하기도 한다.


    갯벌의 가치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많은 면에서 진행중에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로 보면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농경지보다 100배, 먼 바다보다 40배 높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평가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갯벌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국내외적으로 갯벌과 습지를 보전하고 복원하기 위한 시민, 사회, 연구 기관, 정부의 노력이 힘을 얻게 되었으며, 이제는 국가정책에도 반영되어 점점 체계를 갖추어가고 있다.



    그 후 벌어진 환경오염과 훼손

    7년간의 공사 끝에 1994년 1월, 시화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방조제 안에는 총저수량 3.32억톤에 이르는 시화호가 생겼다. 이때 호수에 갇힌 물이 바닷물이었기 때문에 원래 호수를 이용하고자 했던 목적에 따라 짠 바닷물 대신 민물로 바꾸는 담수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담수화 과정에서 시화호 수질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고, 방조제가 만들어진지 불과 3년 만인 1997년 수질은 최악으로 나빠졌다.


    1996년부터 시화호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더러워진 물을 시화호 밖으로 배출하는 장면, 시화호 주변의 오염된 환경 등이 뉴스와 신문에 오르내리며 시화호가 환경오염의 대명사가 되었던 것이다. 대체 시화화를 오염시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역할을 잃어버린 하천과 우수토구

    시화호를 오염시킨 주번은 하수처리장이 흘려 보낸 방류수, 산업단지에서 나온 폐수, 생활하수, 축산폐수와 함께 시화호 주변 유역에 흩어져 있는 비점오염물질(도시, 도로, 농지, 산지, 공사장 등과 같이 광범위한 배출 경로로 유입되는 수질오염물질)이다.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간다는 말이 있다. 시화호 주변의 하수나 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수나 폐수 속의 오염물질은 하천이나 우수토구를 거쳐 결국 시화호로 흘러들어간다.


    그렇다면 시화호가 생기기 전에는 어땠을까? 실제로 그 전에 그곳은 그렇게 심하게 오염된 장소가 아니었다. 시화호가 생기기 전, 그곳은 호수가 아니라 엄청난 양의 물이 밀려왔다 쓸려 나가는 바다였다. 이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우선 시화호로 감당하지 못할 많은 양의 오염물질이 들어온다는 것 그리고 시화호의 오염물질을 희석해줄 수 있는 물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 이것이 시화호 오염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화호에 나타난 오염 현상

    염분 변화

    방조제 건설 전, 시화호가 있던 바다는 비가 많은 시기에는 염분이 10~20psu로 낮았지만 그 외의 시기에는 약 31psu로 서해의 일반적인 해양 환경과 비슷하였다. 시화방조제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배수갑문을 통해 바깥의 바닷물과 교환을 한 까닭에 시화호 밑바닥 가까이에 있는 물의 염분은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1995년 농업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담수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염분이 빠르게 감소하였으며, 1996년 2월에는 시화호 저층수의 염분이 평균 5psu 안팎까지 내려갔다.


    수질 악화(부영양화, 빈산소 현상)

    시화호 유역의 육지로부터 들어오는 많은 양의 오염물질은 방조제에 갇힌 시화호의 자정 능력으로는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시화호에는 예고된 어두군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졌다. 시화호 주변에서 가정하수나 산업폐수,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빗물에 씻겨 나온 질소, 인 같은 영양염류가 호수로 들어왔다. 영양염류는 이를 먹이로 삼는 식물플랑크톤을 증가시켰고, 이렇게 늘어난 플랑크톤이 죽은 후 분해되어 무기물질로 변한 다음 다시 물에 영양염류를 공급하는 물질순환이 일어났다. 호수로 오염물질이 계속 들어오고 호수 내부에서 물질순환이 지속되면서 부영양화를 일으키자, 광합성을 하는 1차 생산자인 식물플랑크톤이 급격히 증가하여 녹조나 적조를 발생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시화호는 방조제 조성 후 담수화가 진행되면서 표층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물, 저층은 무거운 물이 뚜렷한 층을 이루는 성층현상이 심해졌다. 성층현상이 발달하면 물이 수직으로 교환되는 것을 억제해 물 그 자체를 물론, 그 안에 포함된 다양한 물질의 이동도 제한된다.


    시화호 저층수에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이곳에 서식하던 어류와 조개 등의 저서생물이 집단으로 죽어갔다. 이는 자신이 살고 있던 물에서 산소가 부족한 빈산소 현상이 나타났을 때, 재빠르게 생존이 가능한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생물은 산소 부족과 그로 인해 생기는 유해물질 때문에 죽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중금속 오염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는 중금속은 생물에 농축되어 독성을 일으키는 특정유해물질에 속한다. 시화호 건설 이전에도 이 지역 일부 갯벌과 생물이 중금속에 오염되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예전부터 입주해 있던 공장에서 나온 오염물질이 그 원인이었다.


    하지만 시화호가 만들어진 뒤에는 중금속 오염의 규모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거대해진 공업단지, 처리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흘러나온 오폐수, 제대로 순환되지 않은 시화호의 물로 계속해서 중금속이 높은 농도로 퇴적물에 쌓였기 때문이다. 


    숨 쉬기 힘든 생활, 악취와 대기오염

    시화호의 수질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한편,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을 주었다.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주거지가 형성되고 인구가 늘면서 악취와 대기오염이라는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악취는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된다. 특히 악취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산업시설과 가까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과거 자료에 따르면 경기 지역은 경남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악취 민원이 많은 광역자치단체였는데 그 주범은 시화, 반월 공업단지의 공장들이었다. 이와 같은 민원과 대기오염의 심각성에 따라 1997년 7월에 시화지구가 포함된 시흥시, 안산시를 대기환경규제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시화호 환경개선에 나서다

    특별관리해역 지정과 관리

    시화호 특별관리해역

    시화호의 환경관리 권한은 2000년에 환경부에서 해양수산부로 변경되었다. 이때 해양수산부는 시화호와 인천 연안을 하나의 특별관리해역으로 지정하였으며, 해역으로 연결된 유역 전체를 관리범위로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시화호 수질개선을 위한 종합 대책인 「시화호 종합관리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시화호관리위원회’에서는 시화호 특별관리해역의 해양환경을 관리하고 있다.


    시화호를 살리기 위한 대책들: 「시화호 종합관리계획」의 세부 사업

    배수갑문을 통한 해수 유통

    1996년 시화호의 환경오염이 사회 문제가 된 후, 시화호 수질개선대책의 하나로 ‘해수 유통 확대’가 제시되었다. 시화방조제에 설치된 배수갑문을 개방하여 상대적으로 오염도가 낮은 방조제 바깥의 바닷물을 시화호 안으로 끌어들여 시화호의 오염도를 희석시키고, 다시 방조제 바깥 바다로 내보내는 방법이다. 시화호의 물이 외해의 수질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어 처음엔 시험 방류를 통해 외해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고, 큰 이상이 없을 경우 점차적으로 방류를 확대하는 것으로 대책을 추진하였다.


    시화호의 해수 유통량이 하루 2000만 톤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하자 시화호의 수질은 빠르게 개선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시화, 반월 산업단지에 가까운 해역의 COD 농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 시화호의 환경오염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한 상태였다. 결국 시화호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시화호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의 양을 줄이는 것이었다.


    하수처리장 건설과 운영

    하수처리의 목적은 하수에 포함된 더러운 물질을 없애 수자원의 오염을 예방하는 것이다. 하수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가정이나 공장 등에서 발생한 오수나 폐수를 하수관로와 같은 적절한 운송 수단을 이용해 처리시설로 이동시키고, 하수처리시설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물속의 오염물질을 없애 정화된 처리수를 하천이나 바다로 흘려 보낸다.


    1994년 방조제 완공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시화호의 수질오염은 이러한 하수처리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특히 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발생하는 폐수와 안산 도심의 생활하수를 처리하는 안산하수처리장의 경우, 고도처리되지 않고 1차 처리만을 거친 하수를 시화호 안으로 흘려 보냄으로써 수질을 악화시키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산하수처리장과 시화하수처리장의 처리용량이 확대되었고, 고도처리 설비도 갖추어졌다. 고도처리 된 하수가 시화호의 바깥 바다로 방류되기 시작하면서 생활하수로 인한 오염이 줄기 시작하였다.


    인공습지

    시화호의 상류 유역엔 농지가 집중되어 있으며, 이 지역을 세 하천(반월천, 동화천, 삼화천)이 굽이쳐 흐른다. 인공습지는 세 개의 하천이 만나 하나의 지류를 이루어 시화호로 흘러드는 지점에 조성되었는데, 지금의 안산갈대습지공원과 화성시의 비봉습지공원이 그것이다.


    시화호 주변 하천으로 유입된 물은 시화호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인공습지에서 며칠간 체류한다. 이때 물에 녹아 있던 오염물질이 습지의 바닥으로 가라앉고, 갈대 등의 수생식물이 바닥에 가라앉은 오염물질을 영양분으로 흡수함으로써 시화호로 흘러 들어오는 물의 수질을 개선하는 원리이다.


    조력발전소

    시화호조력발전소는 2004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2011년에 준공되었다. 조력발전소란 밀물과 썰물의 힘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드는 곳을 말하는데, 시화호조력발전소는 밀물과 썰물 때 시화호 내해와(內海) 외해(外海) 사이에 발생하는 물 높이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시화호 외해의 물이 내해로 들어오고, 다시 내해의 물이 외해로 빠져나가면서 오염물질이 희석된다. 조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시화호 안팎으로 드나드는 바닷물의 양은 하루에 1억 4700만 세제곱미터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는 시화호 안에 담긴 바닷물 전체 용량의 절반에 이르는 많은 양이다.


    시화호조력발전소의 가동으로 안쪽과 바깥쪽의 수위차가 커지면서 잠겨 있던 갯벌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해수 유통량이 늘어나면서 시화호의 수질도 지속적으로 개선되었다.



    남은 과제와 교훈

    남은 과제들

    시화호의 수질이 급격히 악화한 1996년 이후 거의 25년에 걸쳐 시화호의 오염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단계별로 실행되고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의 노력 덕분에 현재 시화화의 환경과 생태계는 오염되었을 당시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좋아진 상태이다. COD(화학적산소요구량)가 17mg/L를 넘던 시화호의 수질은 3.0mg/L 미만으로 내려갔고, 갯벌엔 바지락, 칠게 등 점점 더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


    2016년부터는 갯벌 생물로는 드물게 멸종위기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흰발농게도 관찰되고 있다. 또한 해마다 큰고니,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와 같은 멸종위기 야생조류들이 시화호를 찾고 있다. 환경오염의 대명사였던 시화호가 이제는 생태계의 보고로 탈바꿈하는 전환점에 서게 된 것이다.


    ‘죽음의 호수’라 불릴 정도로 극심했던 환경오염의 경험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예산은 현재까지 1조 5천억 원 정도 투입되었다. 지금 첫 번째로 꼽아야 할 중요한 과제는 현존하는 시화호 환경의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것이다. 가까스로 좋아진 시화호의 환경과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25여년 간 시화호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왔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생태계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시화호의 갯벌이 살아나면서 특히 식용으로 쓰는 갯벌 생물들을 무분별하게 남획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세 번째로는 해양환경관리를 위한 힘을 키우는 것이다. 시화방조제를 만들 때부터 시화호의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해양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던 당시에는 그러한 전문가의 걱정을 무시하였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환경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긴 했다. 그러나 시화호의 환경보존을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행정기관을 포함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해양 환경에 관심을 갖고 깊이 고민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시화호는 바다와 같이 크고 넓다. 약 154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수면을 가진 시화호의 환경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감독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 그리고 기업들까지, 시화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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