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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
저   자 : 클레망틴 에르피쿰(역:류은소라)
출판사 : 미래의창
출판일 : 2020년 05월

  •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


    홍수와 기원

    우주 창조

    연꽃 자세 파드마아사나

    -비슈누의 배꼽

    세상이 창조될 때 비슈누 신은 천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의 신 아난타를 배 삼아 바다 위에 누워 있었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 혼돈의 바다를 항해하는 비슈누와 아난다. 똬리를 튼 아난타의 몸은 비슈누에게 포근한 잠자리를 제공했고, 천 개의 머리는 지붕이 되어줬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비슈누 신은 창조를 꿈꾸기 시작했다.


    비슈누가 우주의 시작을 떠올리자, 그의 배꼽에서 연꽃이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줄기가 뻗어 오르고, 순백의 연꽃 봉오리가 피어올랐다. 천 개의 꽃잎이 하나하나 펼쳐지더니 연꽃 한가운데 네 개의 얼굴을 가진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창조신 브라흐마였다.


    브라흐마의 네 개의 머리는 각각 동서남북을 향하더니, 각자 태초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A), 우(U), 음(M) 그리고 침묵이었다. 이내 이 태초의 소리는 혼돈의 바다를 우주로 변화시켰다.


    -연꽃 자세의 상징성

    요가 철학에서 연꽃은 영적 수련 과정에 있는 요기(요가 수행자)의 발전을 의미한다.


    연꽃 씨앗은 강이나 호수의 진흙에 뿌리를 내린다. 연꽃 줄기는 물속의 태양광 굴절 효과를 이겨내고 수면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낸다. 수면 위로 나아간 후에 연꽃은 태양을 향해 돌아서서 꽃잎에 물이 닿지 않게 주의하며 조심스레 꽃을 피운다. 어둠을 뚫고 나와 환한 빛에서 꽃잎을 펼치는 것이다. 순결이라는 꽃말을 가진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고귀한 자태를 드러낸다.


    연꽃 자세는 요가의 창시자인 시바가 자신의 아내인 파르바티(Parvati)에게 요가를 전수하기 직전에 취했던 첫 번째 요가 자세다. 연꽃 자세는 명상을 상징하는데, 이는 척추를 곧게 세운 상태로 편안히 앉은 자세다.


    연꽃 자세를 통해 명상의 깊은 단계에 도달한 요기의 몸은 안정을 유지한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꽃 자세에서 요기는 골반을 통해 자세를 고정시킨다. 척추는 연꽃 줄기처럼 유연하면서도 곧다.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은 머리의 정상, 즉 정수리를 의미한다. 사람의 정수리에는 사하스라라(Sahasrara)차크라가 위치해 있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혹은 활짝 핀 연꽃은 씨앗에 담긴 가능성의 실현, 존재의 가능성의 실현을 상징한다.


    요가수행의 길에 접어든 이들 중 연꽃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싶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행자는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연꽃을 피울 수 없다. 단지 연꽃이 자라기를 지켜볼 뿐이다.


    한 우주의 종말

    아기 자세 발라아사나

    -아기 뱃속

    각 우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 끝이 오면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거센 비바람이 퍼붓고, 일곱 개의 강이 흘러넘치며, 네 개의 대양이 범람한다. 이렇게 한 시대는 종말을 맞는다. 다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주는 해체된다.


    현자 마르칸데야(Mafkandeya)는 대홍수를 유일하게 목격한 사람이었다. 재앙을 면한 노인 마르칸데야는 피난처와 다른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 온통 늪으로 변해버린 땅을 하염없이 걸었다. 지치고 낙심한 마르칸데야는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멈췄다.


    그리고 그때 물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나뭇잎 한 장을 보게 됐다. 뜻밖에도 나뭇잎 안에는 조그만 아기가 자신의 엄지발가락을 빨고 있었다. 아기는 발가락을 빠는 데 몰두하여 주변 상황은 보지 못한 듯 했다. 대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자 마르칸데야가 다가가자 아기가 입을 크게 벌렸고, 순간 아기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린 마르칸데야는 자신이 아기 뱃속에 들어왔다는 걸 깨달았다. 현자는 주위의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 우주 전체가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마르칸데야는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걸어 다녔지만 아기 뱃속 세계의 끝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아기가 내쉰 호흡을 타고 마르칸데야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동안 평안히 잘 쉬셨는지요." 아기가 노인에게 속삭였다.


    아기는 창조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몸 안에 우주 전체를 품고 있었다. 브라흐마가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깨어나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아기는 사물이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체의 과정을 겪으며 잠시 사라지지만, 때가 되면 순리대로 다시 나타난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였다.


    -아기 자세의 상징성

    아기들은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하다. 힌두교 사상에서 현자들은 이러한 아기들의 특징을 지닌다. 모든 집착이나 미움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의도와 계산 없이 행동하고,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줄 안다. 요기가 이러한 의미를 떠올리며 아기 자세를 한다면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기 자세를 통해 우리는 상체를 허벅지 위로 구부려 주요 기관들을 보호하게 된다. 우리는 몸을 감싸 안으며 내부의 안식처를 찾고, 안정감을 느낀다. 나아가 아기 자세는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기자세는 요가 수련 도중에 쉬어가는 휴식자세의 역할을 한다. 요가 수련 과정을 떠나서도 아기 자세는 편안하게 몸을 내맡기고 스스로를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돕는다.



    신과 현자 그리고 악마

    신들의 사랑과 분노

    전사 자세 비라바드라아사나

    -시바의 분노

    사티(Sati)와 시바는 히말라야의 눈 덮인 골짜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사티는 시바를 혼신을 다 해 사랑했지만, 사티의 아버지 다크샤는 시바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시바는 온몸에 재를 바르고 나체로 산속을 걸어 다니기도 하고, 허리에 동물 가죽을 두르고 목에는 해골을 걸고 상체에 뱀을 감고 다니는 등 온갖 기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다크샤는 시바의 모든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다크샤는 신들을 전부 초대하여 성대한 희생제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다크샤는 시바를 이 행사에 초대하지 않았다. 남편이 모욕을 당한 것에 절망한 사티는 스스로 산 제물이 되기로 하고 제단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활활 타오르는 희생제의의 불 속으로 몸을 던졌다.


    아내의 끔찍한 죽음을 알게 된 시바는 분노와 고통에 휩싸였다. 시바의 마음속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고, 그는 엉킨 머리카락 한 줌을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땅에 떨어진 머리카락에서 분노의 화신인 비라바드라가 탄생했다.


    비라바드라는 몸집이 산처럼 거대했고, 천 개의 팔을 가졌으며,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비라바드라는 시바의 발치에 절했다. “시바 신이여, 제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하면 될까요?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시바는 비라바드라를 제식장으로 보냈다. 비라바드라로 인해 제식장은 난장판이 됐고, 다크샤는 목이 잘리고 머리가 불탔다. 신들은 시바의 분노를 보고 무시무시한 그의 힘에 덜덜 떨었다. 신들은 시바가 있는 카일라스(Kailash)산으로 달려가 그에게 절했다.


    신들의 간청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시바는 비라바드라의 힘을 흡수하고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다크샤도 다시 살아났지만 타버린 머리는 되찾을 수 없었다. 다크샤는 염소의 머리로 살아가야 했다. 다크샤가 희생제의의 제물로 바치려 했던 염소의 머리였다.


    -전사자세의 상징성

    전사 자세를 수행하는 것은 요가의 바탕이 되는 비폭력 원칙인 아힘사(ahimsa) 정신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사 자세에 담긴 의미는 전쟁의 파멸성과는 무관하다.


    시바를 외적 모습으로만 판단한 다크샤는 우월감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러나 파괴와 변형을 주관하는 시바의 에너지가 없다면 세상은 재생과 소멸의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이러한 우주 균형의 위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역설적으로 균형을 지키려는 방어적 힘을 나타낸다.


    우주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비라바드라처럼 요기는 전사 자세를 취하여 내적 균형을 추구한다. 제한된 자아에 갇히는 대신, 요기는 더 높은 단계를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린다.


    전사 자세에는 세 가지 변형 형태가 존재하며, 이 자세는 마니푸라(Manipura) 차크라의 균형으로 이어진다. 요가 철학에서 ‘차크라’ 는 인체의 에너지가 합류하는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로, 마니푸라 차크라는 배꼽 부위에 위치해 있으며 태양신경총과 연결된다. 이 중심 부위는 열에너지 원칙을 지배하며 흔히 불로 상징된다.


    전사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 요기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기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니푸라 차크라는 활력과 충만함의 중심으로, 자심의 능력에 대한 믿음, 용기와 결단을 유지하게 해준다. 그러나 전사 자세 요기는 무릎을 앞으로 굽히며 겸허함도 잃지 않는다.


    우리가 이끌어야 할 전쟁은 바로 내부에 있다. 이는 무기를 앞세운 외부의 전쟁이 아니다. 요기는 전사 자세에서 목을 자르기 위해 검을 내리치는 게 아니다. 이는 내부에 자리 잡은 진짜 적, 모든 고통의 근원인 무지와 탐욕의 사슬을 끊기 위함이다


    대서사시

    라마야나

    쟁기 자세 할라아사나

    -시타의 탄

    먼 옛날 고대 인도 북부에 아주 현명한 자나카 왕이 살고 있었다. 비데하 왕국의 자나카 왕은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자나카 왕이 밭에서 쟁기질을 하는데 쟁기 날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걸렸다. 땅을 파보니 커다란 알이 나왔는데, 그 알에서 작은 소녀가 잠들어 있었다. 왕은 그를 자신의 딸로 삼았고, ‘고랑’ 이라는 뜻의 시타라 이름 지었다.


    흙에서 태어난 시타는 훗날 라마를 만나게 되어, 이 두 사람은 《라마야나》모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앞으로 만나볼 요가 자세들을 통해 이들의 모험을 따라가 보자.


    -쟁기 자세의 상징성

    쟁기는 파종하기 전에 흙을 갈아엎을 때 쓰는 도구다. 그 용도와 관련하여 쟁기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라마야나》에서 쟁기는 풍요의 여신 락슈미의 아바타르로, 시타의 탄생 부분에 등장 한다.


    쟁기 자세에서 요기의 몸은 원시 쟁기의 모양과 유사해진다. 또한 쟁기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요가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 파종 전에 땅을 갈아엎는 것은 겨우내 굳어진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그 안에 공기를 통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와 마찬가지로 쟁기 자세는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원활한 신진대사를 돕는다.


    쟁기 자세는 목덜미부터 뒤꿈치까지 몸 뒷부분 전체를 이완시켜서, 척추를 건강하고 유연하게 유지하도록 돕는다. 여느 자세들과 마찬가지로 쟁기 자세를 통해 요기는 호흡, 집중, 명상 등 다른 요가 수련을 하는 데 필요한 신체적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요가 아사나 수련에서는 육체적 수련과 정신적 수련이 언제나 함께 이루어진다. 해마다 농부가 땅을 갈아엎어 토양의 다공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요기는 정신의 개방성과 수용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 토대를 갈고 닦아야 한다.


    그렇게 요기는 자만, 무지, 두려움의 근원을 제거하고, 깨달음의 씨앗을 뿌린다. 생생하게 날이 선 쟁기와 같이 요기는 마음의 분별력을 바로 세워 자신의 삶을 비옥하게 만들 것이다.


    요가 수련은 농부가 쟁기를 다루듯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루는 것이다. 요기는 서두르지 않는 일정함으로 수행의 속도와 방향을 선택한다. 나아가 요가의 길에서 수련자는 초연해지는 법을 배운다. 무엇을 행하든 자신이 생각한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마하바라타

    아래를 향한 개 자세 아도 무카 스바나아사나

    -유디스티라의 의로움

    《마하바라타》의 끝부분에서 대서사시는 판다바 형제들의 삶과 죽음을 회고한다. 판다바 형제가 카우라바 형제와의 왕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왕국을 되찾은 것도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유디스티라는 비슈마의 가르침을 깊이 새겨 정의와 공정함으로 왕국을 다스렸다.


    이제 나이가 들어 그도 왕위를 물려줄 때가 됐다.


    지상의 삶을 마무리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 판다바 형제와 아내 드라우파디는 왕국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났다. 그들은 나무껍질로 만든 옷으로 갈아입고 숲으로 들어가 히말라야를 향해 걸었다. 유디스티라가 선두에 있었고, 비마가 그의 발걸음을 따랐고, 그 뒤에 아르주나가 그리고 그 뒤에 나쿨라와 사하데바 쌍둥이 형제가 섰다. 이들의 뒤를 드라우파디가 따랐다.


    길은 가팔랐고 미끄러웠다. 집중력이 약해진 드라우파디가 비틀거리다 사라졌다. 쌍둥이 형제인 나쿨라와 사하데바도 발을 헛디뎠고, 궁수 아르주나와 거구의 비마도 마찬가지였다. 유디스티라는 이렇게 형제와 아내를 모두 잃었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 마리의 개가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유디스티라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 개는 마을 어귀부터 줄곧 유디스티라를 따라온 것이었다.


    정상에 도착한 유디스티라에 지난 36년간 왕국을 태평성대로 이끈 업적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디스티라에게는 천상의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이제 개를 뒤로 하고 천상에 오르기만 하면 됐다.


    “그럴 수는 없다!" 유디스티라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충실한 동반자를 포기하느니 천상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개와 함께 눈밭에 주저앉았다. 그때 매서운 강풍이 부드러운 산들바람으로 바뀌며 한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네 옆의 개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그는 다르마, 바로 너의 아버지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유디스티라는 평생 자신의 판단을 이끌었던 의로움을 저버리지 않았다. 개의 형상을 한 다르마 앞에서 현명한 왕은 끝까지 의를 지켰다.


    -아래를 향한 개 자세의 상징성

    개를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고 여기는 문화권이 많지만, 인도에서 개는 그리 좋은 평판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인도에서는 개를 자칼과 동일시하며, 죽은 고기 등을 닥치는 대로 먹고 사는 잡식성의 불결한 동물로 간주한다. 인도에서 개들은 대부분 떠돌아다니는 들개생활을 한다.


    베다 문화에서 동물은 자아 또는 미천한 본성을 상징한다. 이후에 개는 바이라바(Bhairava(공포스러운 모습을 한 시바 신))의 동반자가 된다. 하지만 개가 바이라바 곁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고행자인 시바 신이 개의 어두운 본성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디스티라가 천상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개 덕분이다. 산 정상까지 충실하게 유디스티라와 함께한 것도 개고, 여정의 동반자에게 유디스티라가 품고 있는 신의를 입증하도록 도운 것도 개다. 이런 의미에서 개는 삶을 사는 동안 우리가 선택하고 따르는 가치들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상징한다.


    요기들은 아래를 향한 개 자세에서 개가 낮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켤 때 취하는 자세를 모방한다. 가슴을 아래로 향하고,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리고, 두 앞다리는 앞으로 뻗고, 등은 최대한 늘린다.


    개들은 자신의 열정이나 놀고 싶은 욕망을 표출할 때도 이 자세를 취한다. 요기에게도 이러한 의미가 적용된다. 실제로 아래로 향한 개 자세는 등과 어깨를 넓게 펴서 열정을 불어넣는 효과를 낳는다. 아래를 향한 개 자세를 얼마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열정이 샘솟고 용기가 북돋는 걸 느낄 수 있다.


    아래를 향한 개 자세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을 다지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활력을 되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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