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게 말을 걸다
 
지은이 : 이소영
출판사 : 카시오페아
출판일 : 2019년 11월




  • 네이버포스트 구독자 4만여 명, 《출근길 명화 한 점》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로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아트 메신저 빅쏘는 당신만의 고민이 아니라 말한다. 10년 넘게 미술로 소통하며 누구보다 미술 입문자들의 고민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해요.” “작품은 미술관에서 봐야 할까요?” “사람들은 왜 그 그림을 명화라고 부르나요?” “하지만 현대미술은 난해하던데요?” “취향은 어떻게 찾나요?” 저자의 신작 《미술에게 말을 걸다》에는 저자가 현장에서 만난 미알못들의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담겼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


    저만 미술이 어려운가요?

    우리가 미술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

    왜 우리는 미술을 어렵게 느낄까요? 저는 미술에 대한 정의가 우리를 미술과 멀어지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미술(美術)이란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며 그림ㆍ조각ㆍ건축ㆍ공예ㆍ서예 따위로, 공간 예술ㆍ조형 예술 등으로 불립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범주입니다.


    그런데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미술의 두 번째 의미를 볼까요? 교육 공간 및 시각적 미의 표현과 감상력 따위를 기르기 위해 미술 이론과 실기를 가르치는 교과목, 바로 과목의 의미입니다. 미술에는 수업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죠. 저는 이러한 정의 때문에 많은 사람이 미술을 어렵게 여기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미술은 그저 눈앞에 있는 시각적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의 과목이라는 인식이 생긴 거죠.


    미술이 어려워진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미술의 개념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학자 진중권은 <미술세계>라는 잡지의 ‘소통을 거부하는 예술’ 파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과거에는 예술가와 관람자 사이에 공유되는 ‘코드(code)’가 있었다. 코드를 이용해 ‘메시지(message)’를 만들어내고, 관람자는 예술가와 공유한 이 코드를 바탕으로 ‘작품’이라는 메시지를 해독해 낼 수 있었다. (…) 오늘날에는 상황이 다르다. 현대 미술은 ‘메시지’가 아니라 ‘코드’를 창조하려 한다. (…) 문제는 천재 혹은 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코드 혹은 언어가 너무 새로워 미처 대중과 공유할 틈이 없다는 데에 있다.”


    저 역시 이로 인해 사람들이 미술을 어려워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이므로 한 작품을 두고도 호감과 비호감이 나뉠 수 있습니다. 특히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현대 미술 작품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비판하는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작가는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양쪽 날개를 펼치고 성장을 향해 날아갈 수 있습니다.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교류되고 함께 섞여야 더 큰 세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다가 저와 생각이 맞닿는 부분, 반대인 부분에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고, 사색 속에서 저와 논쟁하세요. 그러면 자기만의 관점으로 미술을 감상하는 힘이 생기고, 사유가 역동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미술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익숙해지실 겁니다. 한마디로 미술과 좀 더 친해지실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미술 전공자가 아닌데

    그렇다면 미술 감상을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 전공자가 아니어도, 미술계에 종사하지 않아도, 미술 취향을 편안하게 이야기하기를 바랍니다. “야. 이문세 앨범 새로 나온 거 들어봤어? 너무 좋아. 개코랑 콜라보했더라. 완전 창의적이야. 예스러우면서 뭔가 새로워!” “맞아! 나도 들어봤어. 너무 좋더라. 가사도 시 같고. 서정적이야. 요즘은 옛날 가수랑 요즘 가수랑 콜라보한 앨범이 좋아. 나 어반자카파 팬인 거 알지? 최백호는 완전 관심 밖이었다가 어반자카파랑 콜라보한 거 듣고 팬 됐어. 나 요즘 최백호 음악도 다 들어!”


    그날 저는 친구들과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깨달았습니다. 다들 음악은 쉽게 평가하고 음악 취향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말한다는 걸요.


    미술 감상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미술 작품은 다만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질 뿐입니다. 비 오는 날을 바라보는 수재민들의 마음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작품 안에서 한참 동안 머물거나 헤매다가, 자신이 나오고 싶은 문으로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미술관 밖에도 작품은 많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일상의 곳곳에 숨어 있는 예술 작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아트 마케팅 덕분이지요. 종근당은 2008년에 국내 제약회사 최초로 명화를 제품 패키지에 도입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합니다. 진통제 펜잘큐를 리뉴얼하면서 패키지에 구스타프 클립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입힙니다. 종근당의 아트 마케팅은 2030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펜잘큐는 전년 대비 21%가 넘는 매출을 기록합니다.


    2018년 출시 30주년을 맞이한 오뚜기 진라면은 스페인 작가 호안 미로와 아트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오뚜기 디자인팀 관계자는 “특정 작품을 그대로 적용하는 일반적인 아트 콜라보레이션과는 달리 호안 미로의 세 가지 작품을 동시에 진라면의 디자인으로 들여와 재탄생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패키지는 예술을 보다 친근하게 소개한 좋은 사례입니다.


    <아트 경영>의 저자 홍대순은 경영자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19년 1월 <이코노미 조선>과의 인터뷰에서는 경영자들은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에 주목하고 이를 경영에 적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예술가는 관찰, 감정 이입, 경계 파괴 등을 통해 새로운 사조를 만들거나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데, 바로 이 과정을 경영자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독특한 예술 작품에서 감동과 통찰을 얻는 이유는 작품이 멋져서 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해낸 예술가의 삶의 태도가 심금을 울리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그래서 예술가들을 창조주인 신 대신에 끝없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서 보여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업이 예술가와 예술을 통해 마케팅 힌트를 얻듯이 각자의 삶을 경영하는 우리 역시 예술가들의 태도로부터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열쇠를 얻는다고 여깁니다.



    미술과 친해지는 5가지 방법

    작품은 미술관에서 봐야 할까요? _ #일상 : 알고 보면 일상의 곳곳이 작품이다

    카페 로고에도 명화가 있다고요?

    ‘나니아 연대기의 판, 미로 속에 갇힌 미노타우르스, 왕자와 사랑에 빠진 인어공주….’ 우리가 흔히 접한 신화와 동화 속 반인반수들입니다. 실제로 상상하면 징그러워 얼굴을 찌푸릴 수도 있을 법한 그들의 모습은 오랜 시간에 걸쳐 친근하게 변해왔습니다. 특히 화가들은 반인반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인 바다의 인어, 세이렌(Siren)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세이렌을 보면 하나같이 매력적입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노래 ‘미인’의 가사처럼 자꾸만 보고 싶어집니다. 화가들이 그려놓은 세이렌의 미모가 아름다울수록 스타벅스 로고 속 세이렌의 매력 역시 커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주 접하는 스타벅스 브랜드 로고의 주인공은 바로 세이렌인데요. 그녀는 로고 속에서 요염하게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왜 매혹적인 목소리로 선원을 유혹했던 세이렌을 로고에 활용했을까요? 스타벅스 홈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세이렌이라는 인어를 심벌로 활용함으로써 초기 커피 무역상들의 항해 전통과 열정, 로맨스를 연상시키고자 했다고요. 스타벅스(starbucks)라는 이름은 허먼 멘빌의 <모비딕(MobyDick)>에 등장하는 피쿼드 호의 일등 항해사이자 커피애호가 스타벅(starbuck)에게 영감을 받아 생각해 냈다고 합니다.


    스타벅스 로고가 현재의 녹색 세이렌으로 변신하기까지는 몇 번의 디자인 과정을 거쳤습니다. 초기의 로고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1971년 테리 헤클러가 19세기 노르웨이 판화 속 세이렌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로고 속 세이렌은 지금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선정적입니다. 1992년 두 번째 로고에서는 세이렌의 얼굴 크기를 확대했고, 상체 일부만 드러나게 했어요. 유혹의 결과가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던 걸까요?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만 1,300개가 넘는 매장이 있고, 60개가 넘는 나라에서 2만여 개에 가까운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세이렌처럼 고객들을 유혹하겠다는 스타벅스의 목표는 성공한 셈입니다.


    그림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해요 _ #작가 : 시작은 단순하게, 좋아하는 작가 한 명으로

    좋아하는 그림이 있나요?

    미술과 친해지기 가장 쉬운 방법은 좋아하는 화가를 찾는 것입니다. 화가와 친구가 되는 것이지요. 취향에 맞는 한 명의 화가를 찾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화가들과 친해질 수 있어요.


    저는 처음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고흐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봤고, 그가 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꼼꼼히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테오를 알게 되었고, 고흐가 폴 고갱을 좋아해 함께 아를에서 예술 공동체로 지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몽마르뜨에서 고흐의 초상화를 그려준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고흐가 화가의 꿈을 꾸는 내내 존경하던 화가 밀레도 좋아하게 되었고, 밀레를 좋아하다 보니 밀레와 같은 지역에 살던 바르비종파 화가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어지러웠던 건 세상이었을까, 고흐였을까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그림 중 단연 아름답고, 인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당시 고흐는 동료였던 폴 고갱과 성격 차이로 다툰 후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급기야 자신의 귀를 자르는 자해소동을 벌였고 주민들의 신고로 생 레미 드 프로방스에 있는 정신병원에 가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불안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면서 병원 주변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는데요, 지금도 병원 뒷산 꼭대기로 올라가면 고흐가 그린 풍경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고흐가 말년에 통증을 호소하면 귀를 잘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그 이유를 두고 일각에서는 고흐가 메니에르 병을 앓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미술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병입니다.) 메니에르 병을 앓으면 이명 현상, 귀가 꽉 막힌 느낌 등이 동반돼 20분 넘게 심한 어지러움이 계속된다고 하거든요. 고흐가 매일 마신 압생트라는 술이 환각 작용을 일으켰다는 설도 있습니다. 압생트의 원료인 튜온이 필요 이상으로 몸에 들어오면 환각 작용이 일어난다고 해요. 고흐가 시간이 흐를수록 유독 진한 노란색을 자주 쓴 이유가 압생트 때문이라고도 추측합니다.


    고흐가 주기적으로 흥분했다가 우울해했고, 예민했으며, 가끔 환각 증세를 보였습니다. 발작을 일으켰을 때는 위험한 행동도 했고요. 고흐가 입원했던 정신병원의 의사 펠릭스 레이(Felix Rey)는 고흐에게 간질 진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고흐에게 내려진 병명은 메니에르 병뿐만 아니라 30여 가지에 달합니다.


    메니에르 병이 <별이 빛나는 밤>을 탄생시켰다는 설이 있지만, 저는 고흐가 병으로 고통 받던 순간보다는, 그 순간을 이겨내고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았을 때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메니에르 병을 이기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고흐의 정신력이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믿습니다. 고흐의 소용돌이 패턴은 밤하늘의 별이 아닌 풍경을 그릴 때도 빈번하게 나타났고, 고흐의 건강 상태가 비교적 안정적이었을 때도 나타났거든요.


    어쩌면 고흐가 정신이 어지러웠던 게 아니라, 너무도 어지러운 세상을 고흐만이 똑바로 직시했던 것은 아닐까요? <별이 빛나는 밤>에 그려진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이, 저는 오히려 조화로운 질서를 가진 소란스러움으로 느껴집니다. 제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어지럼증을 앓던 한 예술가의 포효가 아니라, 괴로움에 짓눌려도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했던 한 가난한 예술가의 아름다운 조화로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왜 그 그림을 명화라고 부를까요? _ #스토리 : 명작은 다양한 시각 속에서 빛난다

    위대한 명화는 명화를 남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 1452~1519)는 무려 4년간 모나리자를 그렸다고 전해집니다. 참 익숙한 명화지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패러디되고, 광고에도 많이 활용된 그림이 바로 이 모나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부인이란 뜻입니다. 즉 모나리자 그림은 리자 부인을 그린 셈입니다. 그림을 보여주면 지나가던 유치원생들도 나도 이 그림 안다며 손을 번쩍 들 정도로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3분 이상 설명해보라고 하면 다들 머뭇거립니다. 눈썹 이야기를 하거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를 하거나, 이걸 반복하다가 정작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는 모나리자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요?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을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요? 귀로 듣고, 외워 얻은 지식은 아닐까요? 저는 사실 모나리자를 5분 이상 본 적이 없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려 해도 주변에 늘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500여 년 전 지구반대편에서 그려진 모나리자가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왜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명화라고 하는 것일까요?

    처음 본 것처럼, 모나리자를 만나 볼까요? 1503년에서 1506년경 피렌체의 부유한 사업가 프란체스코 드 지오콘도는 다빈치에게 부인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합니다. 당시 모나리자의 나이는 이십대 중반이었는데, 다빈치는 그녀를 그리는 동안 그녀가 웃게 하려고 악사를 불러 연주까지 할 정도로 정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다빈치가 꽤 오랜 시간 이 그림을 그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개의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말년에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의 궁정에서 일했던 다빈치는, 이탈리아를 떠날 때 미처 완성하지 못한 <모나리자>를 프랑스로 가지고 갑니다. 하지만 1519년 5월 2일 세상을 떠나고, 프랑수아 1세가 머물렀던 앙부아즈 성의 예배당에 묻힙니다. 그가 죽은 후에도 <모나리자>는 프랑스에 남았습니다. 당시 왕이 4천 금화를 주고 <모나리자>를 구입했다는 후문도 있지만, 루브르 박물관 측 역시 그 과정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모나리자>가 유명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그 시대 새로운 기법이었던 유화로 그렸다는 점, 원근법과 다빈치 특유의 연기처럼 사라지는 스푸마토 기법(‘연기’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된 미술 용어인데 사람들에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처음 시도한 회화 기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빈치가 최초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시기의 화가 조르조네 역시 이 기법을 잘 활용했습니다. 다반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릴 때 이 기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활용했기에 유명해졌습니다.)으로 그렸다는 점, 어느 각도에서 보건 눈동자가 마주치고 시선이 나를 쫓아 오는 것 같은 신비함, 도무지 어떤 기분인지 종잡을 수 없지만 사람을 홀리는 듯한 미소, 눈썹이 없는 여인이라는 점, 다빈치의 자화상과 모나리자를 비춰보면 거의 흡사하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나중에야 밝혀졌지만 눈썹은 없던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지워진 것입니다.)


    그래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_ #시선 : 멀리 보고, 겹쳐 보아야만 보이는 것

    우리가 본 것들은 모두 진짜였을까요?

    미술 작품을 보다 보면, 종종 눈속임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첫 번째 작품은 <호피도(虎皮圖)>입니다. 1800년대의 작품으로 호랑이 가죽을 넓게 펼쳐놓은 것처럼 느껴지도록 제작된 작품입니다. 호랑이 무늬가 사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털 표현이 아주 정밀합니다. 대부분의 호피도는 작자 미상이나 김홍도 등 낙관이나 해설서를 남긴 화가의 작품으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한양대학교의 정민 교수가 호피도를 연구하다가 그림 속 안경 아래 책에 적힌 시를 발견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지은 것으로 보이는 미공개 시가 책 속에 내용에 있던 것이죠.


    이 작품은 오로지 호피 무늬만 자세히 그린 민화입니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친숙하면서도 귀한 영물로 여겨졌습니다. 용맹을 상징했기 때문에 예로부터 전래동화나 신화에도 자주 등장했죠. 옛사람들은 좋지 않은 기운들을 내쫒는 의미로 호피도를 병풍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동서양을 통틀어 실제인지 아닌지 구별이 어려운 그림을 그린 역사는, 미술의 역사와 비등할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눈속임 그림을 트롱프뢰유(trompe loeil)라고 부릅니다. 실제의 물건처럼 착각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뜻합니다. 흔히 유럽의 성당이나 교회에 가면 천장의 돔에 마치 하늘처럼 그려진 천장화가 가득 있는데 눈속임 그림이 건축으로 들어간 예입니다.


    * 서양의 눈속임 그림, 트롱프뢰유

    사무엘 반 호흐스트라텐(Samiel van Hoogstraten, 1627~1678)의 작품입니다. 빨간 가죽 끈 사이에 수첩, 빗, 목걸이, 가위 등이 가득 끼워 있습니다. 화가는 이 그림을 실제처럼 보이려고 아주 정교하게 그렸습니다. 트롱프뢰유 화가들이 가장 즐겨 그린 소재 중 하나가 옛 서양 사람들이 편지와 문서를 보관하던 편지꽂이였어요. 편지꽂이 그림은 시간이 흐를수록 붓, 책, 열쇠 등이 담기며 다양하게 발전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예술가이자 문필가였던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0~1571)는 ‘미술은 속임수’라고 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눈속임은 동서양 회화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카메라가 없던 시기, 화가들에게 완벽한 그림이란 3차원의 형상을 2차원의 평면으로 옮기는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제 우리는 가상현실을 넘어서 증간현실 속에 살고 있습니다. 증강현실 역시 현실 위로 가상이 실제처럼 겹쳐지는 것이 주된 테마니 우리는 지금도 여러 곳에서 트롱프뢰유를 겪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게임에서요.


    과거에 화가들이 트롱프뢰유를 그린 이유를 추측해 봅니다. 아마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지닌 기교로 누군가를 속일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일 겁니다. 누군가를 속이고 싶어 하는 심리의 바탕에는 무엇이 존재할까요? 물론 타인을 속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눈속임 그림에는 화가들의 위트와 반전이 담긴 것 같습니다. 과연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보는 것이 모두 진실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요.


    취향은 어떻게 찾나요? _ #취향 : 취향은 결국 무수한 실패의 결과다

    새로운 문화는 새로운 시선을 낳는다

    제 1회 인상주의 전에 참여했던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으로 유명한데요. 야외의 풍경보다는 발레리나들의 모습과 경마장의 속도감을 그림에 담길 즐겼습니다. 동료들이 풍경화를 그릴 때 파리의 모습에 관심을 두었고 도시 사람들에게서 정확성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그는 매춘부, 발레리나, 세탁부 등을 냉철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화폭에 옮겼습니다.


    스무 살의 드가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요. 여행 중에 그린 노숙자 여인 그림은 사실적입니다. 훗날 그가 파리에서 그린 세탁부나 무희를 보면 어김없이 정확한 관찰력이 드러나는데 저는 로마의 떠돌이 여인을 그린 이 작품에서 사실이 깃든 시선의 시작을 찾았습니다. 저는 드가가 도시 구석구석을 면밀히 관찰해서 그 시대 풍속화를 남겼다고 생각하는데, 우연히 그랬던 건 아닌 듯합니다. 드가를 비롯한 인상주의 또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본의 목판화인 우끼요에에 큰 호감을 가졌거든요.


    우끼요에는 17세기부터 20세기가지 일본인들의 일상 풍경이나 생활 풍물을 그린 풍경화입니다. 서양에 우끼요에가 알려진 계기는, 1860년대 일본에서 온 도자기 포장지입니다. 거기 그려진 만화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낯설었고,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한 프랑스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습니다.


    드가는 우끼요에의 영향으로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도 관심을 보였는데, 그래서 탄생한 그림이 머리 빗는 여인 시리즈입니다. 여인들 모두가 머리를 빗고 있어요. 단발머리도 아닌 허리보다 긴 머리를 혼자 빗거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열심히 빗고 있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드가의 <머리 빗겨 주는 여인> 그림을 보자마자 푹 빠져 소장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드가가 남긴 작품 덕분에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여인들의 꾸밈 욕구를 보며 보편성을 느낍니다. 더불어 우끼요에 속 여인들을 보며 애도시대 의상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드가의 머리 빗는 여인시리즈는 제게는 살아보지 않았던 19세기 후반 파리 여인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풍속화입니다.


    드가는 평생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확한 관찰을 위해 끊임없이 대상을 찾고 완벽함을 추구했던 화가였고, 새로운 문화에 영향을 받아 누구보다 파격적인 구도, 시선을 표현했던 화가였습니다. 대가들로부터 물려받은 관찰 법칙을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을 한 화가였기에 독창적인 시선 상을 준다면 드가 몫일 거예요.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