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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회생
저   자 : 야마시타 유스케(역:변경화 외)
출판사 : 이상북스
출판일 : 2019년 11월

  • 지방회생


    ‘지방창생’ 검증

    일본창성회의에서 시작된 ‘지방소멸론’

    인구감소 문제의 공론화 계기

    지금으로부터 5년 전, 2014년 5월 8일 황금연휴가 끝난 다음날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마스다 히로야를 좌장으로 한 일본창성회의에서 작성한 <성장하는 21세기를 위해: stop 저출산, 지방활력전략> (이후 <마스다 보고서>로 통칭함)에 대한 기자회견이 일본생산성본부에서 있었다.


    <마스다 보고서>의 모순

    문제는 이 보고서가 인구감소 문제를 제대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서에 대한 비판도 이런 점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고 <마스다 보고서>가 이렇게 미묘한 문제인 인구감소에 대해 제대로 된 태도를 보였다고도 말할 수 없다. 보고서는 오히려 모순된 이야기가 종종 눈에 띄는 아주 이상한 내용이다. 단지 ‘이제는 못 본 척할 수 없다’ 등의 상당히 강한 어조 (혹은 각종 미디어에서의 마스다 히로야의 말투)에 이끌려 보고서 내용을 명쾌하고 논리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선택과 집중 (도시의 정의 1)

    <마스다 보고서>를 읽을 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구 문제를 직시하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끊임없이 경제와 산업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진짜 관심은 재정 문제에 있는 것 같다. ‘인구 문제를 직시하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구 감소에 직면한 나라의 재정을 얼마나 유지하고 경제 활력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에 관심을 둔다. 이 보고서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가 축소되고 재정(세입)이 감소한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와 같은 동일한 재정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제 모든 지역을 지킬 수는 없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으로 남길 지역과 남기지 않을 지역을 구분하고, 남길 수 없는 지역은 일찌감치 날려버리고 남길 지역에 인구를 집중시켜 전체적으로 살아남을 생각을 하자.


    이렇게 일정 규모의 인구를 고밀도로 유지하는 장소가 곧 도시이고, 이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하고 인구 과소지역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사고법을 ‘도시의 정의’라고 한다면 <마스다 보고서> 전체를 지배하는 가치가 바로 이 ‘도시의 정의’인 것이다. 게다가 이 ‘바람직하다’라는 말은 도시생활이 인간집단에게 이상적이며 그래서 사회는 이러한 집단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구보다 경제와 재정 (도시의 정의 2)

    그렇다면 과연 ‘선택과 집중’으로 인구 감소가 멈출까? 이 보고서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면, 이러한 도시의 정의를 내세우기만 하고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인구 증가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도시가 인구감소 사회에 직면해 그 인구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하부 조직인 마을의 끝에서부터 끌어 모아 인구 규모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일본 전체의 인구 감소를 더욱 가속화시킨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에 대해서는 다음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선택과 집중’이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여기에서는 ‘선택과 집중’에도 포함되는, 도시 정의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객관주의 (도시의 정의 3)

    그것은 ‘객관주의’이다. 물론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기 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자기의 결점을 발견하고 반성하여 바꿀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아차림으로써 정신적인 병이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이러한 객관화가 사람에게 ‘따뜻한’이유는 그 객관화과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주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보고서에서 말하는 ‘선택과 집중’은 ‘차가운 객관주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눈이며 그 대상의 삶과 죽음에 대해 주관을 넘은 냉철한 판단이 내려지는 것이다. 당사자에게 있어 자신의 ‘삶’은 소중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삶이 없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가 있다. <마스다 보고서>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차가운 객관주의’에 의한 경제, 재정지상주의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도시적 가치에 따른 문제해결 방식이 일본창성회의에서 다양한 모순적 제언을 만들어낸 근원이 된 것 같다.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주관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구 회복도 생각하지 않고, 객관적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잘라버리고 밀도라는 효율화를 따져 인구 감소를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보고서에 인구감소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없었다. 이런 제언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또한 정부의 정책으로 채용해서도 안 된다.


    정부의 지방창생론

    지방소멸에서 지방창생으로

    정부는 <마스다 보고서>를 발표하여 약 4개월 뒤인 2014년 9월 3일, 내각회의에서 결정해 ‘마을, 사람, 일자리창생본부’를 설치했다. 그리고 11월 21일에는 ‘마을, 사람, 일자리 창생법’외에 지방창생 관련 두 법안이 성립되어 창생본부가 법적으로 제도화되었다. 그해 연말에는 “마을, 사람, 일자리창생 장기 비전”과 “마을, 사람, 일자리창생 종합전략”이 내각회의에서 결정되어 정책이 구체적인 방향성을 갖고 추경예산으로 사업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구분되는 정부의 “장기 비전”

    문제는 지방창생의 내용이다. 분석하기가 상당히 어렵지만 단순화하면 정부와 <마스다 보고서> 모두 인구 감소와 도쿄일극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졌다. 또한 본부를 설치하고 장기비전과 종합전략을 결합한 것 등도 <마스다 보고서>의 설계대로다. 그러나 정부는 정책 방향성에서 <마스다 보고서>의 ‘선택과 집중’을 채용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정책과 사업 방향도 다르다. 또한 정부의 지방창생은 <마스다 보고서>와는 그 목적부터 다르다. 그러나 결국은 <마스다 보고서>와 같은 과오에 빠졌던 것 같다.


    정부의 “장기 비전”에서는 내가 우려했던 <마스다 보고서>의 치명적인 사상적 결함 (지역 문제에 ‘선택과 집중’을 적용한 것과 지방분권을 부정한 것)이 정확히 해소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만 읽었을 때는 <마스다 보고서>와 정부가 동일한 사고에 근거해 움직이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논리는 이 “장기 비전”과 같은 날 책정된 “종합전략”에서 완벽하게 변질된다. 그것은 정말 괴상한 전환이었다.


    “종합전략”의 논리 바꾸기

    기본목표 1.지방에 안정된 고용을 창출한다: ‘일자리’와 ‘사람’의 선순환 만들기를 확립하기 위해 우선은 지방에서의 ‘일자리’ 만들기부터 착수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방에 매년 젊은 세대 10만 명에 해당하는 안정된 고용을 만들어낼 수 있는 튼튼한 지역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에 열을 올릴 필요가 있다(강조는 필자의 것임).


    ‘마을’ ‘사람’ ‘일자리’의 선순환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갑자기 ‘우선은 일자리’로 주장이 변질되었다. 즉 ‘사람’(인구 문제)이 아니고, ‘마을’(마을 만들기)도 아니고, ‘일자리’(경제 문제) 중심의 전략으로 진행한다고 갑작스레 이야기를 살짝 바꾼 것이다. 이 ‘논리 살짝 바꾸기’는 지극히 중요하고 동시에 작위적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들었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다. 지금까지 용의주도하게 논리를 구축해 와놓고는 살짝 논리를 전환했다. ‘사람’에서 ‘일’로 논리를 전환함으로써 “종합전략”은 “장기 비전”이 가지고 있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 별도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도시화가 초래한 인구 감소

    인구감소 사회의 정체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출산율이 낮다

    일반적으로 도시가 농, 산, 어촌에 비해 출산력이 낮다는 것은 역사인구학 등의 연구 결과에 부합하는 사실이다. 에도시대 아동인구의 구성을 보면, 도시는 과소하고 농, 산, 어촌은 과잉해 도시와 농촌을 합쳐 균형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아동의 인구구조이며, 현재도 대체로 동일하다. 예를 들어, 시구정촌별로 살펴보아도 도시화(인구 총계 및 인구 밀도의 증가)와 인구재생산능력은 반비례하는 것이 법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기 제일 어려운 도쿄나 대도시에 젊은이들이 흡수되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반대로 아이가 태어나기 쉬운 농, 산, 어촌에는 고령자들만 남았다. 이와 같은 현상에 인구 감소가 발생하는 구조가 숨겨져 있다. 결국 인구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출산율이 낮은데, 인구가 많고 고밀도인 장소는 도시이기 때문에 (시카고파 도시사회학, 인간생태학의 정의에 따르면) ‘도시화’으 정도가 심화될수록 인구재생산능력은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도쿄일극집중과 인구 감소의 관계는 도쿄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 도시화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방경제가 취약하기 때문에 인구가 감소한다

    지방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인구가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일자리를 만들고’ 다음에 로컬아베노믹스가 추진하는 ‘돈 버는 힘’ ‘일억총활약사회’로 나가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두 가지에 대해 깊이 논의해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이유를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1. 왜 수도권에는 일자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낮은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2. 지방에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정말 일자리가 없는 것일까?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도쿄일극집중의 본질

    지방과 중앙의 서열을 만들어낸 것

    직업권위의 서열화와 지역 간 서열화를 만들어낸 것은 무엇인가?


    우선은 일본의 정치행정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정부 및 부처와 지자체의 관계에서 서열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읍, 면보다는 시가, 단순한 시보다는 중핵시나 정령지정도시, 그리고 도토부현이 그 위에 있고, 그 위에 중앙정부가 있다. 예를 들어, 중앙정부에서 현으로 공무원을 파견할 때는 아무리 젊어도 종종 ‘OO장’의 업무가 부여되는 반면 시나 현에서 중앙으로 파견할 때는 연령을 뛰어넘는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는 대등해야 할 중앙과 지자체의 관계가 제도적으로나 실제 운영 면에서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국가다

    그렇다면 이 권위는 대체 누가 부여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곧 국가다.


    도쿄에는 있지만 지방에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쿄의 중심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국회의사당이며, 중앙정부기관이고, 황궁이다. 그것들은 나가타초에 있고, 가스미가세키에 있으며, 치요다구 일번지에 있다. 국가의 주권과 그것을 행사하여 권위가 덧붙여지는 이 세트, 이 나라를 실체화하는 장치가 도쿄에만 있고 지방에는 없는 것이다.



    도시의 정의가 지방을 파괴한다

    도시의 정의에서 다양성의 공생으로

    도시의 정의와 우생사상

    ‘선택과 집중’은 자기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신의 시선에서 보는 통치이며, 경쟁과 도태 또한 마찬가지로 경쟁에서 자신은 도태되는 측에 포함되지 않는 위로부터의 시선이다. 도태의 대상에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이러한 가치가 국민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람들이 위정자와 같은 감각이 되어 자신은 거기에 관계가 없다고 믿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선택과 도태야 말로 우생 사상으로 발전해 많은 비인간적인 과오 (대량 학살)를 이끌어낸 개념 장치다. 일본의 역사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배제는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제가 "이 돈은 우리들만의 돈이다" “그 돈을 생산성이 낮은 이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은 다수결이다"라고 주장하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생존 가치가 더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 이상 사회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자체에도 도입 하자는 발상이 등장했다. 사회의 기본은 국가이기 전에 각 지역이다. 지자체가 있고, 그다음에 마을과 읍면이 있다. 그런 모든 것을 껴안는 그릇이 되어야 할 지역이 지역으로부터 배제되고 도태될 수 있다는 발상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이제 국가 밖에 의지할 것이 없게 된다. 국가에 가장 가까운 지역은 수도다. 지방에 있으면 버려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도쿄라면 괜찮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도로 모이고, 국가 권력이 집중되고, 사람도 돈도 권력도 점점 더 수도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택과 집중’ ‘경쟁과 도태’야말로 도쿄일극집중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다양성의 공생

    ‘다양성의 공생’은 ‘선택과 집중’의 ‘배제’와 대비해 ‘포용을 지향한다. 배제(exclusion)와 포용(inclusion)은 사회로부터 그 일부를 외부로 쫓아내버리는 형태로 사회를 구성할지(배제), 아니면 모든 것을 취하는 형태로 구성할지(포용) 정하는 짝을 이루는 개념이다.


    그리고 의존(dependence)에 대해서는 자립(independence)이 상반된 개념이지만, 제3장에서 보았듯이 현재 ‘자립’ 경제적인 측면만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공(共)의존 또는 공존이라는 용어를 차용하고자 한다. ‘선택과 집중’에서의 의존은 권력과 같이 상위에 있는 것들에 대한 일방적 의존이지만, ‘다양성의 공생’은 구성원들 간의 공의존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며, 심지어 상하 간에도 서로 지지하는 것-권력은 추종자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권력자도 피지배자에게 의존하는 것-까지 함의한다.


    이렇게 두 가지 가치를 서로 비교해 보면, 강한 국가는 과연 어느 쪽에서 실현 가능할까? 보통은 다양성의 공생을 선택한다. 선택과 집중은 비상시에 취하는 체제로서 이것만으로는 사회 자체가 지속되지 않는다. ‘선택과 집중’은 일시적으로는 강력한 체제를 만들 수 있지만 안정된 것은 아니며, 그에 비해 ‘다양성의 공생’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가치다.


    지방창생사업 점검

    기본 목표

    기본 목표 ①: 지방에 일자리 만들기,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하기 → 지방 일자리 만들기

    기본 목표 ②: 지방에 새로운 인재 흐름 만들기 → 지방 이주

    기본 목표 ③: 젊은 세대의 결혼, 출산, 육아의 희망 이루기 → 노동방식 개혁 및 육아 지원

    기본 목표 ④: 시대에 적합한 지역 만들기, 안전한 생활 유지와 함께 지역과 지역을 연계하기 → 마을 만들기


    여기에서는 이 네 개의 기본 목표 ‘지방 일자리 만들기’ ‘지방 이주’ ‘노동방식 개혁 및 육아 지원’ ‘마을 만들기’를 검토하고자 한다. 먼저 ‘지방 이주’부터 확인해 보자.


    정부기관 이전보다 지방분권을

    지역 이주를 둘러싼 또 다른 묘한 움직임은 정부 관계기관 이전 사업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쿄일극집중은 권력의 국가 일극 집중이 초래한 결과다. 정부에 집중된 권력의 분산 없이 도쿄 일극 집중은 약화되지 않는다. 그 일부를 분리해 지방에 옮긴다고 해도, 그 기관은 그저 도쿄에 없는 격하 기관일 뿐이며, 이렇게 잘라서 지방으로 버리는 것 자체가 바로 도쿄일극집중이라는 가치가 재생산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방으로 이전한 기관은 도쿄로 빈번하게 왕래하게 되어 결국 도쿄에도 사무실을 두게 된다. 소비자청의 경우 소비자행정 신미래창조 사무실(약 40명)을 도쿠시마현청에 두었지만, 완전한 이전은 당분간 보류되었다. 통계청도 국회 대응의 필요성 등으로 인해 와카야마현에 통계데이터활용 센터 (약 10명)를 옮기는 것에 그쳐, 문화청만 2019년을 목표로 전면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국가의 행정 기능을 지방으로 옮기는 것이라면, 그 일부를 지방에 덤핑하는 것 같은 일은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회나 내각부를 옮기는 것이라면 나름 효과가 있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곳에 새로운 도쿄가 형성될 뿐이다. 천도론도 마찬가지다.


    지방 이주를 위해 할 일은 국가의 일부 기관이나 조직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집중된 권한의 일부를 도도부현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도도부현청이 미니 국가로서 각지에서 독자적인 정책을 전개 할 수 있도록 분권화를 추진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도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줄어들고 지방에서도(지방이야 말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면, 그 지역 특색에 적합한 국가 사무실의 일부를 그 지역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러면 도쿄에 집중되어있는 인재가 지방으로 환류하게 될 것이다.


    지방창생을 위한 정부의 지원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인력 지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우선 응원도 협력도 아닌 지원이라는 것에서 지방창생을 정부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드러내고 있다. 지방창생은 국가와 지방이 직면 한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조정하며 함께 해결을 도모 해 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결국은 어려움을 겪는 지방을 국가나 전문가가 현장에 가서 도와주자라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이렇게 중앙은 위, 지방은 아래라는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도쿄일극집중을 만들어 낸 본질이다.


    물론 인력 지원으로 파견되는 사람들 중에는 진정성 있는 사람도 많고 현장에서 여러모로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앙과 지방의 서열 관계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이런 식의 파견이 진행되면 상하 관계는 결국 점점 더 강화될 것이다.


    노동방식 개혁과 육아지원

    이번에는 기본 목표 ‘③ 젊은 세대의 결혼, 출산, 육아의 희망 이루기’(노동방식 개혁 및 육아 지원)에 대한 사업을 분석해 보자. 애초에 모두가 제대로 아이를 낳고 있다면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없으면, 비록 지금보다 더 벌어들인다고 해도 머지않아 소비는 억제되고 경제도 성장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사람들의 마음이 개방적이어서 미래를 향해 투자하고, 관용적이며 풍요로운 사회에서만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선은 ‘일자리 만들기’보다 이 ‘노동 개혁’이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중요한 전략이 된다. 그러나 ‘일자리 만들기’가 ‘노동 개혁’ 다음으로 인구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면 오히려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는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한다는 말은 시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1인당 노동시간의 통계만 놓고 보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결혼이나 육아를 일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 최우선시 되는 한편 육아는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어 무엇인가 어긋나 있는 것이다.


    결국 경제 우선, 돈 벌기 우선으로 세금을 납부한 사람이 위대하다는 발상 때문에, 육아 대책이 지원 이라는 협소한 것이 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이 일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만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진하면 할수록 산업계와 가족 및 지역과의 균형은 무너져 간다. 그리고 그 균형이 지금보다 더 무너지면, 인구감소 극복이나 지방창생 활동을 더 이상 추진할 경황은 없을 것이다.


    순환이 이루어지는 ‘도시의 정의’로

    올바른 ‘도시의 정의’란 무엇인가

    본래의 취지에 맞는 지방창생, 본래의 취지에 맞는 지역정책에 도달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아닌 가치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의 정의에 바람직한 가치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도시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사회 전체를 붕괴시켜 잘못된 길로 향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야 나가야 한다.


    이런 가치로의 전환(회복)은 실제로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하나는 교육이라는 수단이다. 그런데 그 교육이야말로 아베정권이 교육재생실행회의 등을 통해 계속해서 개입하고 있다. 이것은 부당하다. 2017년에 개정된 새로운 학습지도요령에 그 성과가 반영되어 있지만, 그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폐쇄적인 도시의 정의를 학습하고 더 강하게 심도록 설치된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교육으로 올바른 가치 방향을 설정하기는커녕, 바로 이 책에서 비판한 잘못된 가치를 아이들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혁명이다. 혁명을 일으킬 정도의 친밀한 수단으로는 선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선거가보다 좋은 가치 전환의 기회가 된 사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지금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정치에 변화가 일어나는 일도 일단은 생각하기 어렵다.


    사람들에게 형성된 가치를 전환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 전환을 실현하는 길을 생각해야만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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