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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파민형 인간
저   자 : 대니얼 Z. 리버먼 외(역:최가영)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19년 10월

  • 도파민형 인간


    우리는 왜 자꾸 사랑하고 중독될까?

    ‘해보니 별 거 없네….’

    모두 어떤 기대감에 도파민 폭발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애인의 편지(무슨 내용일까?), 오랫동안 뜸했던 친구로부터 온 이메일(어떤 소식이 적혀 있을까?), 단골 바에서 만난 매력적인 상대(이 사람과 어디까지 가게 될까?) 등등…. 하지만 이런 일이 일상이 되면 신선함은 사라지고 도파민이 솟구치는 일도 더 이상 없다. 달달한 사랑의 속삭임도, 장문의 이메일도, 새롭게 단장한 단골 바의 깔끔한 인테리어도 모두 무용지물이다.


    사랑이 식는 이유는 뭘까? 수 세기 동안 인류가 풀지 못했던 이 미스터리를 도파민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애초에 인간의 뇌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갈망하도록 빚어졌다. 그래서 인간은 갖가지 가능성을 자양분 삼아 미래를 꿈꾼다. 반면 익숙해진 것에는 흥분과 기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때 인간은 다른 새로운 것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 현상을 과학자들은 ‘보상예측오류’라고 부른다. 뜻은 말 그대로다. 우리는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매순간 끊임없이 예측한다. 그런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일이 내 예상보다 좋았을 때 우리는 미래 예측에 오류가 있었다고 말한다. 오늘 예상보다 일찍 퇴근하거나, 통장에 10만 원이 더 들어 있다면? 이 행복한 오류는 도파민을 작동시킨다. 도파민 발화에 시동을 거는 것은 이렇듯 예상치 못한 좋은 소식이 선사하는 짜릿함이다. 아낀 시간이나 돈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보상예측오류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도파민은 꿈틀거린다. 평범한 출근길이라고 상상해보자. 늘 다니던 곳이라 눈 감고도 다니는 길이다. 그런데 중간에 새로 생긴 빵집을 발견했다. 당장 들어가서 어떤 빵을 파는지 구경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도파민이 폭발해 일순간 미각, 촉각, 시각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대감이 주는 쾌락이다. 이 집에서 만든 빵을 맛보지도, 시음 음료를 받아보지도, 아니 아예 가게 안에 들어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벌써 마음이 들뜨고 신이 난다.


    하지만 언젠가는 원하던 것을 손에 넣고도 기쁨이 생각만큼 크지 않은 날이 온다. 도파민이 주는 흥분감 즉, 기대감이 주는 스릴은 영원하지 않다. 미래도 언젠가는 현재가 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기에 황홀했던 미스터리는 지루한 일상이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도파민은 냉정하게 우리의 손을 놓아버린다. 남는 것은 실망뿐이다. 몇 주 뒤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와 크루아상’은 그저 그런 아침 끼닛거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커피나 빵의 맛이 달라져서일까? 아니다. 변한 것은 당신의 기대감뿐이다.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가?

    매력을 느낀 순간 무조건 반응하는 의욕의 기전

    욕망은 오랜 진화의 역사를 가진 복측피개영역이라는 뇌 심층부에서 생겨난다. 복측피개영역에는 도파민이 유독 많다. 뇌 안의 주요 도파민 생산지인 2곳 중 하나가 여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뇌세포와 비슷하게 이곳의 뇌세포 역시 엄청나게 긴 꼬리를 갖고 있다. 꼬리는 뇌 안 여기저기를 거쳐 측좌핵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이 긴 꼬리의 뇌세포들이 활성화되면 꼬리 끝에 달린 주머니를 열어 도파민을 측좌핵에 분비한다. 바로 이것이 의욕의 기전이다. 이 회로에는 중변연계 경로라는 어려운 공식 명칭이 있지만 우리는 쉽게 도파민 욕망회로라 부르기로 하자.


    이 도파민 회로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부추기도록, 즉 몸뚱이가 식량을 많이 구하고 짝짓기를 잘하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진화했다. 식탁 위에 놓인 도넛을 보면 뇌의 이 욕망회로가 활성화된다. 도넛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다. 진화적 관점 혹은 생명유지를 위한 본능 면에서 매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런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배가 고프든, 그렇지 않든 도파민 욕망회로는 무조건 긴장하게 된다. 이것은 도파민의 본성이다. 도파민은 오로지 미래만 생각하며 뭐든지 더 많이 쟁이는 데에만 집중한다. 허기를 느끼는 것은 그 시점에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사건이지만 도파민은 말한다. "지금 배가 고프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서 가서 도넛을 집어 먹어. 하루라도 더 살아있을 수 있을 거야. 다음에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르잖아?"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아사 직전까지 굶는 날이 허다한 원시인에게라면 말이다.


    하나의 생물종이 미래를 대비해 완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무엇일까? 바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파민 회로는 몸뚱이를 ‘살아 있게’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도파민은 먹을 것, 쉴 곳, 짝짓기 상대, DNA 복제에 필요한 제반 자원을 찾아 쉬지 않고 주변을 탐색한다. 쓸모 있어 보이는 게 눈에 띄면 바짝 긴장한 도파민은 몸뚱이 전체에 메시지를 보낸다. 이봐, 일어나. 여기 좀 봐. 아주 중요한 일이야! 무언가를 보고 욕망이 불타올랐다면 바로 이 메시지가 발송되었다는 신호다. 때로는 홍분감도 함께 한다. 이 욕망은 재고 골라서 인간의 의지로 버리거나 선택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맞닥뜨리는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본능적 반응이다.


    ‘욕망’을 취사선택해 ‘애호’로 발전시키려면

    구매를 고민할 때 우리 뇌에서는 미래지향적 도파민 회로가 활성화되어 홍분과 기대감을 조성한다. 그러다 소유욕구가 충족되면 천상의 외부공간을 둥둥 떠다니던 꿈의 상품은 지상의 개인공간으로 추락한다. 도파민이 지배하는 환상 속 미래 세상에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상계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이때 현실 경험이 도파민 각성효과의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할 경우, 구매자의 후회는 홍수처럼 밀려온다. 반면에 만약 당신이 현명한 소비를 했다면 현상계에서도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마음이 충분히 클 것이기 때문에 도파민이 선사하는 스릴이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기대감을 오히려 더 부풀려줄 품목을 질러버림으로써 구매자의 후회를 피하는 방법도 있다.


    정리하면, 구매자의 후회를 피해갈 해결책으로 크게 3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도파민이 부추기는 것보다 물건을 더 구매한다. 둘째, 도파민의 꾐을 무시하고 최대한 절약한다. 셋째, 도파민이 주도하는 욕망을 취사선택해 현재지향적 화학물질이 주도하는 애호로 발전시키는 분별력을 기른다. 어느 누구도 네가 간절하게 원하는 어떤 것이 손에 넣었을 때도 반드시 네 맘에 쏙 들 거라고 100%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과 아끼며 좋아하는 마음은 뇌의 기전 자체가 다르다. 그렇지 않다면 고대하던 것을 막상 손에 넣고서 다들 그렇게 시큰둥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시트콤 오피스에서 배우 윌 페럴이 카메오로 나왔던 한 에피소드가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페럴이 연기한 인물 디안젤로 비커스는 극중에서 케이크를 앞에 두고 홀로 사투를 벌인다.


    “난 귀퉁이가 제일 좋더라.”

    그는 케이크 귀퉁이 한 조각을 잘라 손으로 들고 한 입 베어 문다.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별로 맛있는 케이크도 아니고 먹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미 점심을 먹었잖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남은 케이크 조각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그러나 이어서 다시 케이크를 한 움큼 퍼 올리며 그는 말한다.

    “아니야, 내가 요즘 좀 착실했잖아. 이 정도는 먹어도 돼.”

    순간 그는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가 또 외친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봐, 디안젤로!”

    손에 든 케이크를 또 쓰레기통에 던진 그는 다시 케이크 쪽으로 돌아선다. 그는 몸을 숙여 코를 케이크에 바짝 대고 고함친다.

    “안 돼! 안 된다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언가를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구분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약물중독자들을 보면 이 둘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확연하게 드러난다.


    주말의 맥주 1캔이 매일 마시는 보드카 1병으로

    도파민 회로는 생물의 생존과 번식을 독려하도록 진화해왔다. 인간에게 목숨을 부지하고 자식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취식과 양육을 위한 모든 활동은 체내에 다량의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다량의 도파민 분비는 생사의 기로에 선 지금이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할 때라는 결정적인 신호다. 쉴 곳을 마련해., 음식을 찾아., 아이들을 보호해. 평범한 인간에게 도파민 회로를 이보다 더 세차게 흔들어 깨우는 사안은 없다. 세상에 이보다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중독자에게는 그런 게 있다. 바로 약물이다. 약이라는 미사일이 대폭발을 일으키면 뇌 전체가 도파민 먹구름으로 뒤덮인다. 이런 핵폭탄급 약물과 나머지 자극들을 양쪽에 놓고 양팔저울로 무게를 비교해본다면 중독성 있는 약물은 한쪽 접시에 떡하니 자리 잡은 코끼리와 같다. 코끼리에게 누가 감히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까?


    중독자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약이 먼저다. 일도, 가족도 다 필요 없다. 세상에,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의 뇌는 나름대로 완벽하게 논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 누군가 레스토랑 식사권과 10억 원짜리 수표 중 하나를 공짜로 주겠다고 한다면 이 상황에서 머뭇거리며 고민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그 레스토랑이 동네에서 소문난 맛집이라도 말이다. 그러나 집세와 약값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처럼 답이 명확한 선택지 사이에서도 중독자들은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 그리고 당연히 중독자는 도파민 수치를 더 높이 끌어올리는 쪽을 택한다. 특히 코카인이 유발하는 이상행복감 효과는 최고다. 비견되는 대상이 없을 정도다. 그런 코카인을 선택하는 것이 욕망의 수호자 도파민 입장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다. 결과가 마약중독이라는 게 문제지만.



    파멸하거나 진화하거나, 중독되거나 성취하거나

    욕망회로의 폭주를 막는 통제회로

    도파민 욕망회로는 무언가를 한없이 원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원시적 욕구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지만은 않는다. 우리에게는 욕망회로와 대립해서 더 욕심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걸러내는 또 다른 도파민 회로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견제 회로 덕분에 인간은 계획이라는 걸 짤 수 있다. 계획에 따라 전략적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그렇게 무언가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어떻게 한 화학물질이 반대되는 2가지 작용을 모두 하는 걸까? 우주선의 로켓연료를 생각해보자. 우주선은 같은 연료를 태우면서 필요에 따라 방향추진기 설정을 조정해 가속하기도 하고 감속하기도 한다. 관건은 점화될 때까지 연료가 그린 궤적이다. 사용하는 계산 공식에 따라 편차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우주선은 목적지에 잘 도착한다. 도파민도 비슷하다. 뇌에서 도파민이 어느 회로를 타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단, 공통의 목표는 하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도파민 욕망회로라는 별칭으로 계속 부르고 있는 중변 연계 회로에 도파민이 몸을 실으면 욕망의 감정이 솟아난다. 그런데 우위를 점하고, 무언가를 지배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욕망이 아니라 계산과 계획이다. 이 2가지는 중피질 경로의 고유 기능이다. 이해하기 쉽게 지금부터는 이 중피질 경로를 도파민 통제회로라 부르도록 하자. 왜냐고? 중피질경로의 진짜 목적은 도파민 욕망회로가 폭주할 때 고삐를 당기고 진정시켜 유익한 결말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피질 경로는 추상적 사고와 진취적 전략 구상을 담당하는데, 바로 그 덕분에 인간은 주변 세상을 통제하고 환경을 지배할 수 있었다.


    한편 도파민 통제회로 역시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이다. 인간이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때 이 회로는 각각이 불러올 미래를 살짝 맛보여준다. 그러면 인간은 더 나은 미래를 불러올 답안을 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파민 통제회로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할 튼튼한 계획을 짜도록 도와준다. 회로의 시발점이 같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하게, 가능성뿐인 가상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은 욕망회로나 통제회로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두 회로의 종착점은 확연히 다르다. 도파민 욕망회로는 흥분과 열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서 끝나는 반면 도파민 통제회로는 논리적 사고에 특화된 영역에서 끝난다.


    때문에 두 도파민 회로 모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을 좇는다. 욕망회로가 좇는 유령은 지금 수중에 없기에 앞으로 반드시 손에 넣고 싶은 무언가다. 통제회로가 좇는 유령은 아이디어, 계획, 이론, 수학이나 아름다움과 같은 추상적 개념, 아직 실재화 되지 않은 세계다. 모두 상상력과 창의적 사고의 핵심 재료가 되는 것들이다.


    승리에 도취된 사람들의 말로

    도파민의 사전에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다. 그래서 도파민의 활동이 왕성한 시기에는 현재지향적 감정인 죄책감이 맥을 못 춘다. 도파민은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불굴의 노력을 가능케 하지만, 탐욕에서 비롯된 기만과 폭력 역시 도파민의 작품이다.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도파민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명쾌한 답이 나온다. 승리욕은 식욕, 성욕과 더불어 성공적 진화를 위한 3대 요소다. 엄밀히 따져보면 더 많은 음식과 더 건강한 배우자를 차지하는 것도 애초에 승리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니 경쟁에서 이길 때 도파민이 발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테니스공이 네트를 넘어 상대 진영에 떨어질 때,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상사로부터 칭찬을 들었을 때 우리 머릿속에서는 도파민 분수가 용솟음친다. 도파민 홍수가 갑작스레 쏟아 붓는 쾌감은 소소하고 은근한 현재지향적 기쁨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것이다. 이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이 성질 때문에 누구든 승리의 순간 밀려드는 벅찬 환희를 한번 맛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게 된다.


    대회 하나를 정복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7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도 성에 차지 않는다. 이처럼 승리는 마약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다. 그렇다면 졌을 때는 어떨까? 패한 뒤 몰려오는 도파민의 침묵은 몹시 고통스럽고 충격적이다. 만족을 모르는 승리의 쾌감 뒤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면이 있는 것이다.


    감정 조절 능력을 좌우하는 도파민 수용체

    탁월한 감정 조절 능력을 타고나는 사람이 있다. 도파민은 자기에게 딱 맞는 수용체 분자에 결합해야만 효과를 발휘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남다른 수용체 분자를 갖고 태어난다. 한마디로 유전자가 다른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다수의 피시험자를 대상으로 뇌에 존재하는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 (수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오밀조밀한가)를 측정했다. 그런 다음 측정값을 각 피시험자의 감정 분리 정도와 대조했다.


    이때 사용한 감정 분리 검사는 평소 사적인 얘기를 별로 안 하는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인지와 같은 성격 특성을 묻고 점수를 매기는 검사다. 분석 결과, 연구팀은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와 사회성 간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수용체 분포가 조밀할수록 감정 분리도가 높았던 것이다. 유사한 연구에 의하면, 감정 분리 점수가 가장 높은 부류의 사람들은 스스로도 자신이 냉정하고 비사교적이며 남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반면 감정 분리 점수 최하위권에 속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오지랖이 넓고 이용당하기 쉬운 유형이라 묘사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 같은 양극단의 인간형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 중간 어디쯤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 절대다수다. 말하자면 우리들 대부분은 적당히 개인적이면서 적당히 사교적이다. 그런 까닭에 대개 인간의 반응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지향적 회로가 켜져 뇌가 개인공간으로 인식하는 사정거리 안에서, 현재 벌어지는 사건의 당사자일 때 그는 세상 따뜻한 사람이 되는 반면에 뇌가 외부공간으로 선을 그은 곳에서 막연한 미래를 추상할 때는 감정 없는 이성적 인격이 드러난다. 2가지 사고방식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는 유명한 사고실험이 있다. 바로 ‘폭주하는 열차’ 실험이다.


    폭주하는 열차가 철로에서 작업 중인 일꾼 5명을 향해 질주한다. 가만히 두면 모두 죽을 게 뻔하다. 하지만 중간에 있는 행인 1명을 밀어 철로로 넘어뜨리면 열차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다. 1명의 희생이 5명의 생명을 구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이 때 당신이라면 무고한 행인을 철로로 밀겠는가?


    이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슴없이 행인을 밀지 못한다. 아무리 다수를 구하기 위한 일이라 해도 어떻게 내 손으로 한 사람을 사지에 밀어 넣겠는가. 이런 반응은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이 뇌를 지배해 공감이라는 감정을 키우기 때문에 나타난다. 논리라는 계산기를 두드리던 도파민은 그때 몸을 낮춘다. 뇌는 이 윤리적 딜레마 같은 상황이 나의 개인공간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런 까닭에 현재지향적 화학물질들의 반응이 증폭되는 것이다. 이럴 때 감정이 완전히 분리되어 행인을 선뜻 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의지력도 지갑 속의 돈처럼 쓰면 사라진다

    도파민은 욕망과 끈기 모두의 원천이다. 도파민이 욕망회로를 타고 흐를 때 우리 안에 불붙는 열정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된다. 또한 도파민이 통제회로를 타고 흐를 때 자라나는 의지력은 그 목적지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대개는 이 두 기전이 협동해 좋은 성과를 낸다. 그런데 욕망의 화살이 케이크 조각, 불륜, 헤로인 주사 한 방처럼 장기적으로는 해가 될 대상에 꽂힐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는 의지력이 열정에게서 등을 돌려버린다. 그러면 두 회로는 협력관계에서 숙적 사이로 돌변한다.


    의지력이 도파민 통제회로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아니다. 욕망에 맞서야 할 때 통제회로는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짜고 여러 가지 대안의 장기적 결과를 예측한다. 이렇듯 논리와 추론 능력도 적절히 동원한다. 물론, 분초를 다투는 충동을 다스려야 할 때 가장 먼저 깨어나는 것은 의지력이다. 그런데 길게 봤을 때 효과는 시원찮다. 알코올중독자가 술 1잔을 거절하는 데는 의지력만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내내 금주가 강제될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의지력은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피로가 쌓인다. 그러다 얼마 못 가 지쳐 나가떨어진다. 채소와 쿠키 실험은 이런 의지력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이 실험의 핵심은 피시험자를 속이는 데 있다. 동의서에 서명을 받기 전 연구자들은 피시험자들에게 이것이 시식 실험이라고 설명한다.


    연구팀은 피시험자가 실험실에 들어오기 전 실험실에 있는 미니오븐으로 미리 초콜릿 쿠키를 구워놓는다. 당연히 방 안은 달콤한 초콜릿과 과자 냄새로 가득해진다. 테이블 위에는 접시 2개를 올린다. 하나에는 초콜릿 캔디로 장식해 보는 재미까지 더한 초콜릿 쿠키를 탑처럼 쌓고 다른 하나에는 적당한 크기로 자른 적색 무와 흰색 무를 섞어서 담는다.


    피시험자들은 허기진 상태로 실험실에 도착했다. 그러니 갓 구운 쿠키의 고운 자태와 향이 그들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다. 연구팀은 피시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고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쿠키가 기다리는 방으로 한 사람씩 입장시켰다. 그런 다음 배정된 그룹에 따라 어느 피시험자에게는 쿠키 2~3조각, 또 어느 피시험자에게는 무 2~3조각을 맛보라고 안내했다.


    실험 결과, 무 그룹에서는 규칙을 어기고 쿠키를 입으로 가져간 사람이 1명도 없었다. 분명 모두가 쿠키를 탐냈지만 말이다. 연구자들은 말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초콜릿을 한참 쳐다봤고 몇몇은 집어 들어 냄새를 맡기까지 했습니다."


    다시 실험실에 들어온 연구자들은 피시험자들에게 다음 단계의 실험이 방금 전 과제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하고, 지금부터 문제 풀이 능력을 테스트할 거라고 했다. 여기서 연구진이 피시험자에게 말해주지 않은 게 1가지 있는데, 바로 곧 풀게 될 문제에는 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테스트의 진정한 목적은 피시험자가 답이 없는 과제를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실험 결과, 쿠키 그룹이 문제를 포기하기까지는 19분 정도가 걸렸다. 반면 쿠키를 먹고 싶은 욕망을 참았던 무 그룹은 불과 8분 만에 포기를 선언했다. 쿠키 그룹과 비교했을 때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시간이다. 연구팀은 실험 결과를 보고 이렇게 결론 내렸다. "한번 절망해본 피시험자들이 다음번 도전을 더 쉽게 포기했다는 사실을 통해 유혹을 참는 데에는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따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의지력에는 한계가 있다.



    창조자는 천재 아니면 미치광이

    멈추지 않는 도파민형 인간들

    아인슈타인의 성격은 유전자 탓임이 분명하다. 그의 두 아들이 증거다. 1명은 수력공학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알아주는 대가가 되었고 다른 1명은 20살에 조현병 진단을 받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대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진행된 여러 연구에서도 도파민형 성격이 유전된다는 소견이 나왔다. 가령, 아이슬란드에서 실시된 한 연구에서는 8만 6,000여 명의 유전자 프로파일을 분석했다. 그 결과,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중 배우, 무용가, 음악가, 화가, 작가 등 예술 계통 종사자가 유독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도파민은 창작의 원동력이다. 도파민은 마치 블록으로 탑을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며 노는 아이와 같다. 항상 제자리인 것 같아도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낫고, 옛 것에서 새 의미를 발견하는 일신우일신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도파민 시스템이 지나치게 항진된 천재는 정신질환자가 되기 쉽다. 비현실이 두 세계 사이의 균열을 비집고 들어와 현실을 잠식할 때 편집증, 망상, 폭주 행동을 낳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압도적인 도파민 활성 탓에 현재지향적 회로가 힘을 못 쓰는 사람은 평범한 일상을 힘들어하면서 친구도, 가족도 나 몰라라 하는 외톨이가 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상관없다고 응수할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창작의 기쁨이 큰 것이다. 예술가든, 과학자든, 예언가든, 아니면 크게 성공한 사업가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지독한 일벌레다. 그들은 한 시도 쉬거나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현재를 음미하고 즐기는 것은 시간 낭비다. 도파민형 인간은 대체로 부유하거나, 유명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지만 늘 불만족스럽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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