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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저   자 : 이나가키 히데히로(역:서수지)
출판사 : 사람과나무사이
출판일 : 2019년 08월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초강대국 미국을 만든 ‘악마의 식물’ 감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가장 사랑한 꽃은 장미가 아니라 감자꽃이었다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프랑스인이 즐겨 먹는 과자빵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잖아요.”


    민중이 먹을 빵이 없어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이 말은 역사가 남긴 수많은 악성 루머 중 하나다.


    이 말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져 나갔을까?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 나오는 이야기의 일부인데 사실 앙투아네트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군중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고 불쌍한 왕비는 군중이 뿜어내는 엄청난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혁명 재판에 회부된 그녀는 온갖 혐의를 뒤집어썼지만 40명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모든 혐의가 무죄로 밝혀졌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처벌할 근거가 없었으나 민중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성난 군중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끔찍한 사형도구 기요틴으로 공개 처형했다. 시민이 굶주리지 않도록 감자빵을 장려하고 제빵학교까지 후원한 앙투아네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프랑스 혁명을 그린 만화다. 이 만화는 마이 앙투아네트 왕비를 궁전에 핀 고고한 장미 한 송이에 비유한다. 왕비가 특별히 사랑한 꽃은 만화 제목에 들어 있는 장미가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그녀가 사랑한 꽃은 감자꽃이었다.


    고귀한 왕비 신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왜 장미나 백합 같은 화려한 꽃이 아닌 감자꽃을 사랑했을까? 궁금함을 자극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교묘한 대국민 심리전으로 감자 보급에 성공한 루이 16세

    유럽 국가들에 감자가 널리 퍼진 뒤에도 한동안 프랑스인만은 좀처럼 감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자를 줄기차게 거부하던 프랑스에서 감자 보급에 나선 인물은 농학자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 남작이었다.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7년 전쟁을 벌일 무렵 포로로 잡혀 있던 파르망티에는 이미 프로이센의 중요한 식량으로 정착한 감자를 먹고 살아남았다. 그 당시에는 포로 신분이라 가리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 그는 감자의 뛰어난 가치와 효용성을 몸소 체험했다.


    유럽 대륙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상금을 내걸고 주식인 밀을 대신할 구황작물을 모집했다. 이때 파르망티에는 자신의 포로 시절 경험을 살려 감자 보급을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루이 16세는 단춧구멍에 감자꽃을 꽂아 장식했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게도 감자꽃 장식을 달게 함으로써 대대적인 감자 홍보에 나섰다.


    왕과 왕비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홍보는 대단했다. 프랑스 상류계급은 감자를 관상용 꽃으로 키우기 시작했고 귀족들은 앞다투어 자기 집 정원에서 감자를 재배했다.


    다음 단계로 루이 16세와 파르망티에 남작은 국영농장에 감자를 전시 재배하게 했다. 그리고 파수꾼을 보내 감시하게 하고 다음과 같은 문구의 표지판까지 세워놓았다. “여기에 심은 것은 감자라는 작물로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해 앞으로 왕족과 귀족의 먹을거리로 삼고자 한다. 따라서 이를 훔쳐 먹는 자는 엄하게 처벌할 것이다.”


    국영농장은 낮에는 엄중하게 경비를 서지만 밤이 되면 경비가 느슨해진다. 그러다 보니 호기심을 누르지 못한 사람들이 야음을 틈타 감자를 서리해갔다. 그렇게 감자는 서서히 서민들 사이로 널리 퍼져 나갔다.


    루이 16세는 앙투아네트 왕비의 치마폭에 싸여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국정을 소홀히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러한 악평은 대부분 중상모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감자 보급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루이 16세는 심모원려의 책략을 구성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한 군주가 아니었다 싶다. 마찬가지로 마리 앙투아네트도 우리의 통념과 달리 검소하고 국민을 사랑한 인물이었다는 재평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모두 차치하고라도 루이 16세가 국민을 굶주림에서 구하기 위해 감자 보급에 힘쓴 인물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패자의 진실은 종종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을 배고픔에서 구하고 싶은 마음에 감자꽃을 사랑하고 애용했던 앙투아네트 왕비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거대한 피라미드를 떠받친 약효 양파

    양파가 없었다면 피라미드도 없었다?

    양파는 인류 역사와 맞먹을 정도로 유서가 깊은 작물이다. 기원전 수십 세기의 사람들이 제작한 피라미드 부조를 유심히 살펴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노동자들이 허리에 양파를 매달고 일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당대의 노동자들이 양파를 일종의 보양식품으로 챙겨 먹었다는 걸 보여준다.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챙겨 먹을 정도로 양파에는 몸에 좋은 성분이 많다. 피로를 풀어주고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뛰어나다. 고대 이집트 왕실에서는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강장제 역할을 하는 양파를 지급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예전에는 이집트 왕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혹사하고 착취했다고 알려졌으나 고고학자와 역사가들의 심층 조사와 연구를 통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최근 연구를 통해 많은 사람이 종교적 이유로 피라미드 건설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추세다.


    지금까지 발견된 피라미드 중 가장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피라미드는 기자 피라미드다. 이 피라미드는 오랜 세월에 걸쳐 건설된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어느 왕이 자기 시대에 수십만 명의 노동력을 한꺼번에 동원하여 집중적으로 건설한 것이 아니라 여러 대의 왕을 거치며 천천히 보완에 보완을 거듭하며 완성한 건축물이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노동자들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혹사해가며 작업한 필요도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더라도 피라미드 건설은 워낙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노동력과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므로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했을 것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한번 가정해보자. 만약 양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양파가 없었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 웅장하고 위대한 피라미드 건설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고대 이집트에서는 노동자들이 보양식으로 활용한 양파를 미라 제작에도 활용했다. 가령 미라의 눈구멍과 겨드랑이에 양파를 채워 넣거나 붕대를 감을 때 양파를 끼워 넣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양파의 살균 효과와 방부 효과를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도 육체를 보존하면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미라를 만들어 이미 죽은 육체를 오랫동안 보존하려 애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살균 효과와 방부 효과가 있는 양파를 마력이 깃든 작물로 여겼고 산 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까지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양파의 효능이 죽은 사람에게까지 미칠 거라고 믿은 데는 많은 사람이 실제로 그 효능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사를 바꾼 ‘두 전쟁’의 촉매제 차

    ‘미국 독립전쟁’이라는 화약고에 불을 댕긴 도화선, 홍차

    영국은 식민지 전쟁에서 패권을 놓고 프랑스와 각축전을 벌였다. 전쟁으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영국은 식민지에서 세금을 거두어 부족한 금액을 충당하려고 했다. 그 주요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던 차였다. 본래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은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아 상류층 사이에서 홍차가 크게 유행했다. 이후 미국은 영국 식민지가 되었으나 홍차를 마시던 습관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1773년 미국인은 세금을 피하려고 네덜란드에서 차를 밀수하는 꼼수를 부렸다. 영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 매긴 탓이었다. 영국은 차 조례 법을 제정하여 미국의 차 밀수를 엄격히 단속했다.


    영국의 강압적인 제제에 분노한 미국인들은 차를 운송하던 영국 배를 기습해 차 상자를 빼앗은 다음 모조리 보스턴항에 던져버렸다. 1773년의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다. 그때 얼마나 많은 차를 바닷속에 던졌는지 바닷물이 온통 홍차 빛깔로 붉게 물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사건은 ‘보스턴 티파티’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1774년 영국은 미국인의 거센 저항에 보스턴항 폐쇄라는 강경책으로 맞섰다. 이에 미국인의 반감은 더욱더 강해졌고 결국 이듬해인 1775년에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이런 연유로 영국에 반감이 생긴 미국인은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입맛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 홍차 맛과 비슷하도록 연하게 볶은 원두로 내린 아메리칸 커피를 즐겼다. 대게 아메리칸 커피라고 하면 연한 커피를 떠올리는데 실제로는 약하게 배전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의미한다.


    오늘날에도 미국은 커피 소비량에서 단연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커피 소비 대국이다. 스타벅스가 상징하듯 미국에서 활짝 꽃피운 커피문화는 보스턴 차 사건을 계기로 식민지 미국이 영국에 맞서면서 촉발된 독립전쟁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독립운동의 주축을 이룬 이들은 어떤 지역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었을까? 그전까지 차를 즐겨 마시던 부유한 미국 북부 사람들이었다. 미국 남부는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영국의 면직물 산업 덕분에 면화 수출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당시 미국 남부 경제는 영국 없이는 오래 지탱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에 따라 영국 의존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하는 북부와 면화 재배를 지속하기 위해 영국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자 했던 남부 사이에 대립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다.


    그 갈등이 폭발한 사건이 1861년 발발한 남북전쟁이었다. 영국에서 홍차를 수입할 수 없었던 미국은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자국에서 차를 생산하려 했으나 남북전쟁 때문에 차 재배는 어중간한 시도로 끝나고 말았다.


    영국인의 기형적인 홍차 사랑이 낳은 엄청난 비극, 아편전쟁

    영국에서 홍차가 대중화되어 귀족을 비롯한 상류층 사람은 물론이고 서민도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그런데도 ‘차는 동양에서 오는 신비한 음료’라는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차가 영국인의 일상생활과 비즈니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차는 중국에서 들여와야 하는 수입품이었다.


    영국인이 홍차를 사랑하고 즐겨 마실수록 많은 양의 차를 청나라에서 사와야 했다. 그렇게 영국은 차를 사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은을 중국에 쏟아부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청나라 쪽에서는 영국에서 사올 만한 상품이 별로 없었다. 그 탓에 영국의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돈줄이던 미국마저 독립하자 영국 정부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빠듯해졌다. 영국이 ‘삼각무역’이라는 묘수를 내놓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산업혁명으로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값싼 면직물을 영국인들은 국내에서 다 소비하지 못하고 인도로 수출했다. 그 영향으로 인도의 전통 면직물 산업이 줄줄이 무너졌다. 영국은 주요 산업이 무너진 인도에서 마약 원료인 양귀비를 재배했고 그것으로 만든 아편을 청나라 상인들에게 팔았다.


    이처럼 영국은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청나라에 팔고 자국에서 생산한 면제품을 인도에 팔아 청나라에서 차를 수입하느라 유출한 은을 회수하는 개념의 삼각무역을 창안했다. 청나라가 즉각적으로 이 무역에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아편을 취급하는 영국 상인의 짐을 압수하려는 청나라와 자국 무역 보호를 주장하는 영국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 이후 상황이 더욱더 악화하여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지금의 논리라면 이것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시절 초강대국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 불편한 힘의 논리 앞에서 청나라의 억울한 사연과 하소연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만 남았다.


    ‘잠자는 사자’로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던 청나라는 영국군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종이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 국력을 상실한 청나라는 불평등 조약을 맺고 반식민지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아편전쟁으로 대국 청나라가 무너지자 서구 열강들은 아시아 대륙 전체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바야흐로 동아시아는 격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당시 서구 열강들이 청나라에 원한 것은 비단과 차였는데 정세를 관망하던 일본은 눈치 빠르게 생사와 차 생산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차 수출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인 일본은 차근차근 근대화의 길을 밟아 나갔다.



    씨앗 한 톨에서 문명을 탄생시킨 인큐베이터 볏과식물 밀

    초기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한 ‘돌연변이 밀’ 씨앗 한 톨

    초식동물들만 초원에서 나고 자란 것은 아니다. 인류 역시 초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인류는 초식동물처럼 잎이 질기고 영양가가 낮은 볏과 식물을 식량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인류는 모든 동물을 통틀어 유일무이하게 ‘불’을 사용할 줄 아는 존재지만 그 불로도 볏과 식물의 잎을 먹을 만한 식품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볏과 식물의 잎은 여전히 질겼고 삶거나 구워도 먹고 소화하기에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잎을 먹을 수 없다면 종자, 즉 씨앗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론이다. 오늘날 인류의 주요 식량으로 이용되는 밀, 벼, 옥수수 같은 곡물들은 모두 볏과 식물의 씨앗이다. 그러나 인류가 볏과 식물의 씨앗들을 주요 식량으로 활용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절대 녹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탈립성’이다. 탈립성이란 식물이 자신의 몸에서 씨앗을 떨어뜨림으로써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고유의 성질을 말한다. 대다수 야생식물은 씨앗이 여물면 뿔뿔이 흩어지게 한다. 즉,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식물들은 대부분 탈립성을 지니고 있다. 볏과 실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씨앗이 여물대로 여물면 남김없이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식물의 번식에는 유리할지언정 인류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해주지는 못했다.


    인류가 볏과 식물을 주요 식량원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가 우연히 찾아왔다. 놀랍게도 그 해결책을 ‘돌연변이 밀’이 제공했다.


    일립계 밀은 석기시대 때부터 인류가 지배해온 작물로 밀의 선조 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랜 옛날 어느 날 우리의 선조 중 누군가가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바로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돌연변이를 일으킨 밑동을 발견한 일대 사건이다. 아주 낮은 확률로 씨앗이 떨어지지 않는 ‘비탈립성’을 지닌 돌연변이가 생겨날 때가 있는데 가뭄에 콩 날 확률보다 더 낮은 확률로 나타나는 그 돌연변이 밑동을 인류가 운 좋게 발견한 것이다.


    씨앗이 여물어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그 식물은 자연계에 자손을 남길 수 없다. 그러므로 탈립성이 없는 특성은 식물의 치명적 결함이며 번식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물이 가진 이런 심각한 결함과 악재가 오히려 인류에게는 대단히 큰 호재이자 축복으로 작용했다.


    여문 뒤에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씨앗은 인간에게 식량이 되어준다. 그리고 씨앗이 떨어지지 않는 작물의 밑동에서 씨앗을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심으면 씨앗이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지닌 밀을 얻는 길이 열린다. 이는 운이 따라준다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농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농사의 시작과 함께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리는 경주로에 들어선 인류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곡물 양에는 한계가 있지만 농업으로 얻은 부에는 한계가 없다. 농사를 짓는 규모가 커지고 수확량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그만큼 권력도 강해졌다. 많은 물질을 소유한 자가 그만큼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거기에 더해 권력과 명예까지 움켜쥐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이 무렵부터 시작된 현상일 수도 있다.


    곡물이 단지 생존을 가능케 하는 걸 훨씬 뛰어넘어 막대한 부를 안겨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점점 더 열광적으로 부를 추구하면서 농사에 열을 올렸다. 이런 식으로 일단 인간의 욕망이 발동하기 시작하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농업으로 식량을 얻기 위해서는 가혹한 중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농업이 안겨주는 이점에 빠져든 인간에게 농업을 그만두고 수렵, 채집, 어로로 삶을 영위하는 시절로 돌아가는 선택지는 없어졌다. 바야흐로 인류는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리는 경주를 시작한 것이다. 이젠 누구도 농사를 그만둘 수 없었다.


    인류는 농업을 기반으로 인구를 꾸준히 늘려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들이 모이고 점점 더 커져 ‘국가’를 형성했다. 이 시기에는 부를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발생했다. 또한 부를 탐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였다.


    이처럼 인류는 농업의 마력으로 제대로 된 인류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 옥수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재배되는 작물은 무엇일까? 밀? 벼? 보리? 사탕수수? 아니다. 답은 옥수수다. 독자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어쩌면 고개를 갸웃거릴지 모르겠다. ‘옥수수’ 하면 누구나 여름날 야시장에서 파는 구운 옥수수나 통조림, 수프 등으로 재가공되는 옥수수를 떠올린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에서 옥수수가 밀이나 쌀보다도 더 많이 재배되는 작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다양한 옥수수 품종 중엣어 채소로 먹을 수 있는 종은 스위트콘이다. 스위트콘은 돌연변이를 일으켜 당분이 전분으로 변화하지 않는 특수한 품종으로 옥수수 중에서도 희귀종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옥수수는 당분이 전분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채소가 아닌 곡물로 취급된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이민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이자 영양 공급원이었던 옥수수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데는 가래 등의 농사 도구의 발달과 증기기관 발명으로 인한 기계화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다.


    그러나 인간이 식량으로 활용하는 옥수수 품종은 몇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인간이 식량으로 직접 섭취하는 옥수수보다 가축 사료로 활용하는 옥수수가 훨씬 많다. 다소 거칠고 인간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옥수수도 영양이 풍부해서 가축 사료로 사용하기 적당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직접 옥수수를 먹지 않더라도 소고기, 돼지고기 등의 고기를 먹거나 우유를 마시면 간접적으로 옥수수를 섭취하는 셈이다.


    옥수수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단점을 꼽아보라면 ‘엄청난 지력 소모’를 들 수 있다. 옥수수는 지력 소모가 워낙 커서 되도록 연작을 피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옥수수를 대량 생산하는 미국의 경우 농부들은 옥수수밭에 질소를 보충하고 지력을 강화해주는 콩밭을 가꾸며 두 작물을 번갈아 재배한다. 만약 화학비료가 나오지 않았다면 땅이 피폐해져 매년 옥수수를 재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옥수수가 없다면 21세기 최첨단 과학 문명도 없다

    옥수수가 식품으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공업용 알코올과 접착제도 옥수수로 만든다. 종이상자 등 다양한 자재에도 옥수수가 들어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화학 자원인 석유를 대체해 옥수수를 연료로 바이오 에탄올을 만들기도 한다.


    옥수수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작물이다. 인간이 이룩한 21세기 최첨단 과학 문명도 옥수수 없이는 성립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새 시대 인류 문명과 마야 문명의 본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인류는 옥수수 품종을 끊임없이 개량한다. 특히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합 기술을 활발히 구사하여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새로운 품종을 줄줄이 선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개량해도 옥수수는 옥수수다. 먼 옛날 평범한 식물들과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닌 기묘한 식물이 탄생해 자란 이후 오늘날까지 옥수수는 극적인 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의 최첨단 과학 기술을 동원한다고 해도 아마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오랜 옛날 옥수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혹시 옥수수가 정말로 지구 밖 우주에서 온 것은 아닐까? 아무리 궁리하고 또 궁리하며 생각해보아도 수수께끼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이 깊어질수록 문제는 더 복잡하게 꼬여만 가는 느낌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 연장선에서 인간은 자신이 옥수수를 마음대로 재배하고 이용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옥수수의 관점에서 볼 때 가소로운 생각일지도 모른다. 옥수수가 인간의 손을 빌려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니 어쩌면 오히려 인간이 옥수수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일 수도 있다.


    식물은 자신의 분포 영역을 넓히고 널리 번식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으로 종자를 퍼뜨린다.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식물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는지 알면 옥수수만큼 효과적으로 영역 확장에 성공한 식물도 드물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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