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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양이 스토커
저   자 : 아사오 하루밍(역:이수미)
출판사 : 북노마드
출판일 : 2015년 09월

  • 나는 고양이 스토커


    ‘고양이 뒤를 밟아보고 싶다’

    낮에 고양이가 태연한 얼굴로 집에서 나가곤 하는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뒷골목 콘크리트 주차장의 빈 공간에 배를 깔고 누운 고양이를 볼 때면 밖에 있다고 해서 다 길고양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건물이 철거된 뒤 방치되어 풀만 무성하게 자란 공터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도 어쩌면 어느 집에서 애지중지 기르는 아이인지도 몰라요.


    제가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늘 이동하는 도중이었습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우연히 있었을 뿐 그곳이 거처는 아닌 것이지요. 어딘가에서 왔다가 또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밖에서 만난 고양이를 아무리 쓰다듬어주어도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시작과 끝이 애매한 독특한 시간 속을 사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밖에 나가면 집에서는 하지 않던 망측한 짓을 할지도 몰라요.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고양이 뒤를 밟아 보기로 했습니다. 네, 저는 ‘고양이 스토커’입니다.


    이런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3년 전 친구가 아기 고양이를 데려갈 사람을 찾았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럴 생각도 없었으면서 친구 집을 방문하여 아기 고양이들과 만났지요. 태어난 지 한 달 된 아기 고양이들을 바라보는 동안, 제 안에 잠들어 있던 모성이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친ㄴ구 집 차고에서 조심조심 걷는 솜먼지처럼 작고 위태로운 생물. 그런데도 어엿한 한 마리의 짐승으로서 제 할 일을 하는 아기 고양이들. 그 아이들을 보고 난 후로는 고양이에 대해서라면 몇 시간이든 이야기해도 좋을 정도로 고양이에 대한 감정이 넘쳐났습니다.


    ‘고양이 찾아주는 신사’에서 모시는 신은?

    인터넷에서 ‘길 잃은 고양이’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집나간 고양이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멋진 목줄을 단 채 점잔 빼는 회색 고양이도 있고, 고상한 부인의 품에 안겨 다리를 쭉 뻗은 고양이도 있다. 찍은 게 이것밖에 없었나 싶은 사진도 몇 장 있다. 사진 속 고양이 모습이 단정하지 못할수록 주인의 애정이 더 깊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사진뿐만 아니라 행방불명되었을 때의 상태, 연령, 털 색깔, 상처 부위에 대해서도 설명되어 있고, ‘겁이 많아서 큰 소리를 싫어합니다’ ‘이름을 부르면 다가옵니다’ ‘등을 쓰다듬어주면 좋아합니다’ ‘덩치 큰 남자를 싫어합니다’ ‘응석꾸러기에다 겁쟁이입니다’라는 식으로 반려묘의 평소 버릇까지 적혀 있었다.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호소문 속에 주인과 반려묘 사이의 벌꿀 같은 관계성이 드러나 있어서 무심코 그 부분만 골라 읽고는 고양이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상상하며 몸부림치다니, 내 상태가 심각하다.


    그러다 ‘고양이 찾아주는 신사’가 어딘가에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거기 가서 참배하면 집 나간 고양이가 돌아온다는 소문 때문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신사라고 한다.


    JR 츄오선 다치카와 역 북쪽 출구에서 버스로 15분. 쇼와 천황의 묘가 있는 공원 앞을 지나 스나가와 4번이라고 적힌 정류장에서 내렸다. 고양이 찾아주는 신사의 진짜 이름은 ‘아즈사미텐 신사’였다. 입구 기둥문 옆에 멋진 붓글씨로 새겨진 간판을 보고 알았다.


    경내로 들어가니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했다. 나무판자를 잘라서 집 형태로 만들어놓은 것에 신사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읽어보니, 원래 이곳은 순산의 신을 모시는 신사인 모양이다. 고양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고양이 찾아주는 신사로 불린다고 해서 해태 상 대신 고양이 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양이를 찾아드립니다!’라는 선전 문구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아닌, 적당히 고즈넉한 신사였다.


    소원을 적는 나무판 중에 포도 모양으로 생긴 게 있었다. 하나하나 뒤집어보니 순산 기원, 가내 평안, 대입 합격과 같은 소원에 섞여 ‘쵸로, 얼른 집으로 돌아와! 가족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 OO집 대표, 다케시’ ‘우리 미탕이가 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무사히 지내고 있기를. OOO코.’라고 적힌 것도 몇 개나 있었다. 날짜를 보니 딱 2개월 전. 안타까워진다.


    “실례합니다”하고 사무소 앞에서 크게 소리를 질러보았다. 남자가 나왔다. 회색 작업복. 방석에 단정히 앉으니 새하얀 버선이 보였다. 이 사람, 제사를 맡는 신관일까?


    “여기가 고양이 찾아주는 신사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라고 물어보았다.

    “최근이에요. 재즈 피아니스트 야마시타 요스케 씨가 이 근방에 살고 계시는데, 이곳에 오셔서 집 나간 고양이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다음날 왔더랍니다.”

    “고양이가 행방불명된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17일간이었다고 해요. 야마시타 씨가 책을 쓰면서 그 일을 언급해주신 덕분에 그 후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십니다.”

    “원래는 아니었나요?”

    “여긴 옛날부터 누에 신을 모셔왔던 신사예요. 이 부근에 누에 기르는 농가가 많이 있거든요. 고양이가 누에를 쥐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관계없다고도 할 수 없겠네요.”


    누에와 쥐 이야기. 그리고 야마시타 요스케 씨의 체험이 연결되어 고양이 찾아주는 신사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유명해지다니. 전설이나 신은 어쩌면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돌아온 후의 이야기는 가끔 들으시나요? 행방불명된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든지, 뭐 그런 이야기...”

    “감사 편지는 종종 받습니다. 그동안 고양이가 어디 갔었는지는 주인 분도 모르는 모양이에요.”


    세상에는 고양이 말고도 행방불명되는 것이 무수히 많은데 왜 유독 고양이라면 신사까지 만들어지는 걸까?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인간은 끊임없이 머리를 짜내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내놓는다.


    마네키네코 리뉴얼을 위한 여행

    고토쿠지는 도쿄 세타가야 구에 있는 사찰이다. 에도시대에는 무척 가난한 사찰이었는데, 이곳에서 지내던 고양이가 폭풍우에 발이 묶인 사무라이 이이 나오타카 일행을 절로 맞아들인 후 발전했다고 한다. 인정머리 없고 제멋대로인데다 쌀쌀맞다는 고양이가 어떻게 그런 착한 일을 했을까? 고토쿠지에서 받은 설명서에는 유복하지 않은 사찰에 신세만 지니 미안해서 고양이가 은혜를 갚은 거라고 적혀 있었다.


    이이 나오타카와 함께 가난한 사찰까지 구한 고양이는 전혀 고양이답지 않게 친절했지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고양이를 알아본 사무라이도 대단하다. 오색 사슴이나 하얀 비둘기, 시계를 든 토끼 같은 동물을 따라가다가 신기한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단 그 동물의 행동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분도 거리를 걷다가 동물과 눈이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한번 귀를 기울여보시라.


    그런 엄숙한 마음으로 구매한 고토쿠지의 마네키네코를 그날 밤 실수로 현관 신발장 위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마네키네코의 오른발이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몸통은 신발 안으로 쏙 들어갔는데, 꺼내보니 왠지 얼굴만 멀쩡하다. 깨진 틈으로 고양이 몸통 속을 들여다보니 안이 뻥 뚫려 있다. 그 구멍과 함께 불행의 파도가 나를 덮치는 바람에...(불행의 파도라고 해도 잔물결에 지나지 않기에 내용은 생략).


    마네키네코가 깨진 것에 대해 복수할 기회를 주기라도 하려는 듯 바로 그날 친구가 아사쿠사 센소지 반대쪽에 있는 이마도 신사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일설에 의하면 마네키네코의 발상지라는 신사이다.


    예보와 달리 이날 큰비가 내렸다. 분홍색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한 용궁처럼 생긴 건물에 이르자, 사교댄스 파트너로 삼기에 딱 좋을 크기와 손 모양을 한 거대한 두 마리의 마네키네코가 좌우로 모셔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앞에서 소원을 있는 대로 빌었다.


    사무소에는 햇빛에 비추면 신의 형상이 보인다는 거울이랑 부적, 길흉을 점치는 제비, 칠복신 중 하나인 장식품 등이 붙은 쌍둥이 마네키네코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마네키네코는 작은 것이 3천 엔이나 한다. 소재가 고토쿠지에서 산 것과 비슷하여 왠지 불길하다! ‘만약 이것도 깨지면 불행이 두 배가 될 거야’라는 생각에 점점 불안해졌지만, ‘스스로 불행을 부르면 어떻게 하냐!’며 기력과 지갑을 짜내어 과감히 구입했다. 발길을 돌려 센소지 쪽으로 가본다. 일부러 멀리 돌아 뒷골목을 걷다가 어느 공방 앞을 지나는데, 그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우연히도 조금 전에 산 마네키네코와 똑같은 고양이에게 눈을 그려넣고 있었다. 손에 붓을 든 아주머니가 혼자 잔뜩 숨을 죽인 채 열심히 그리고 있다. 그 뒷모습이 ‘인형은 얼굴이 생명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3천 엔이 비싼 게 아니었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영험한 마테키네코의 배후에 아주머니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큰 수확이었다. 신비감은 사라졌지만 그 덕분에 불행의 잔물결 따위 날려버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이다.


    가미나리몬 앞을 보니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빗속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문 아래에서 비를 피하는 비둘기를 가만히 관찰하자, 그들도 뭔가 신기한 게 있나 싶어 구경하러 온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 이 사람들 중에 ‘오오, 비둘기 맛있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관광지에 사는 동물은 힘들겠다.


    고양이 기근에 마음은 흔들리고……

    고양이 스토킹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우리집 주변은 어쩌면 고양이 볼모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동네에 사는 고양이 뒤를 밟아보고 싶어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으니 고양이가 있을 만한 장소를 물어물어 멀리 찾으러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차피 고양이란 먼 곳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봐야 하는 동물이 아니었던가?


    나의 본업은 일러스트레이터이다. “평범한 가족이 거실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그려주세요”라는 부탁을 받으면 왠지 고양이 한 마리를 곁들이게 된다. 고양이야말로 인간의 일상에 가장 친숙하게 어울리는 지극히 평범한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이외의 생물은 이웃 주민과의 사이에서 문제의 씨앗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 이유로 특히 도시에선 자손을 번창시키고 싶어도 뜻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대로 가다간 고양이가 언젠가는 천연기념물물이 되어버릴지도!


    그러면 고양이가 걷는 모습만 봐도 감사한 마음이 샘솟을까? 밖에서 마주치는 것만으로 고마워하게 될까? 소박했던 근처 라면집이 어느 순간 유명세를 타서 한 그릇 1200엔으로 오르면 오히려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게 되는 심리와도 비슷한 것 같다.


    고양이 기근이 계속 이어지던 어느 날, 우표에 침을 묻히며 우체국을 향해 서둘러 걷고 있었다. 그때 희귀한 털 색깔의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대범하게 걷는 장면을 목격했다. 밀크티처럼 은은한 색깔의 세련된 자태. ‘이건 잡종이 아니다!’라고 한눈에 알아봤을 만큼 우아한 고양이였다.


    무엇에도 관심 없는 척 걷다가 문득 멈춰 건물 기둥에 턱을 비비기도 하고, 풀을 건드리다가 그 풀의 숨통을 끊어버리려는 듯 씹어대기도 한다. 너무나 고양이다운 그 몸짓에 ‘이 고양이는 자기가 비싼 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구나. 어쩔 수 없는 짐승이군’ 하고 안심한다. 그런데 이런 비싸 보이는 고양이가 밖에서 홀로 어슬렁거리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너, 고양이 사냥꾼 눈에 띄면 멀리 팔려갈지도 몰라. 그만큼 특상품이거든! 자기 가치를 너무 모르는 이 아이가 안쓰러웠다. 비싼 고양이가 마침내 한곳에 자리를 잡고 주저앉더니 한쪽 발을 높이 치켜들고 몸을 기울여 자기 똥구멍을 청소한다. 아아, 목줄이 저렇게 꽉 조이는데. 아프지 않니?


    “풀어줄까?”라고 속삭이며 고양이와의 거리를 좁히는데 건물에서 한 여성이 나온다. 고양이는 그녀를 따라 가버렸다. 큰일날 뻔... 고양이 도둑으로 몰릴 뻔했다.......


    고양이는 원래 마을 곳곳을 누비는 동물이라지만 저렇게 비싸 보이는 고양이가 혼자 다니면 왜 그런지 마음이 흔들린다. 갖고 싶어지는 것이다. 부탁이에요. 꼭꼭 숨겨주세요.


    새 마을에서 만난 트리플네임 고양이

    이사를 하여 새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새 마을이라고 해도 여태까지 살았던 아파트에서 신호등 두 개만 건너면 되는 곳. 거리로 보면 멀리 이동한 것도 아닌데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전철역, 우체국, 슈퍼마켓이 모두 바뀌어버렸다.


    고작 그것만으로 굉장히 낯선 마을에 와버린 기분이다. 고생하여 겨우 찾은 집이고 익숙한 내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마치 남의 집에서 신세 지고 있는 듯한 밤이 매일같이 나를 기다렸다.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 때도 갓 칠한 페인트 냄새나 어색한 바닥재 무늬 때문에 서먹서먹하다. 친구가 “화장실도 부엌도 마음대로 사용해도 돼.”라는 말을 남기고 출근한 후 나 혼자 오도카니 집을 지킨 그날처럼.


    새 아파트 창에 서면 숲으로 둘러싸인 저택이 보인다. 해가 지면 숲 쪽에서 “냐오옹, 냐오옹”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 저택에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사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딱 열 번째로 이 집을 소개받고 부동산 업체의 안내로 보러 와 이 저택 앞을 지날 때 알았다. 자전거 거치대 근처로 물이 든 사발과 밥이 담긴 접시와 고양이에게 뜯겨 너덜너덜해진 헝겊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안쪽에 쌓인 골판지 상자 위에 하얗고 큰 고양이가 버티고 앉아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벽에 ‘자연 보호!’라고 쓰인 멋진 간판도 걸려 있었다. 이 저택에 사는 고양이라면 여간해선 밖으로 나돌지 않을 듯했다.


    “이 저택에 사는 분들은 고양이를 참 좋아해요.”


    기묘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로 이 점이 ‘내가 살 장소는 여기다’라고 결정한 이유이다. 아침저녁으로 베란다에 서서 그 자전거 거치대를 바라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저녁이 되어 안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밥을 주러 나오면, 고양이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다리에 엉겨붙는다. 흥분으로 빨라진 고양이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야기를 들으려면 바로 지금이다!’라는 판단하에 현관 밖으로 뛰쳐나가 고양이 밥 주는 현장으로 달렸다. 근처까지 가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차분한 목소리로 “댁에서 기르는 고양이인가요?”라고 물으니, 세 마리를 기르는데 이름이 ‘하양’ ‘호랑이’ ‘양말’이라고 소탈하게 대답해주었다.


    ‘양말’은 검은 고양이인데 다리 아래쪽 반이 양말을 신은 것처럼 하얗다. 성격이 난폭하여 호랑이를 늘 못살게 군다고 한다. “게다가 괴롭히는 방법이 지능적이에요. 상냥하게 ‘놀자~’라고 유혹해서 구석에 몰아넣고 괴롭히더라고요”라고 부인이 말했다.


    그런데 다른 아주머니는 양말을 ‘채플린’이라고 불렀다. 바지 자락 밑으로 하얀 양말이 보이는 채플린을 닮았다고. 그건 혹시 마이클 잭슨이 아닌가 싶었지만 내 기억도 확실하지 않으니 그냥 수긍했다.


    이사 후 한 달이 지나면서 이 부근에는 고양이가 비교적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건물 뒤편에서 뭔가를 기다리는 고양이도 보이고, 차고에서 팥빵처럼 납작 엎드려 자는 고양이도 보였다. 좁은 골목에서 엄청 큰 솜먼지가 휙 날아가는 것 같아 눈을 비비고 보면 그것도 고양이다. 옛날에 올림픽 도로라 불렸던 차 많은 길을 겁도 없이 건너가던 용감한 고양이도 만난 적이 있다. 집에서 역까지 걷는 동안에도 고양이는 쉽게 눈에 띄었다. 그만큼 자주 고양이를 목격했다면 처마 밑이나 담 안쪽처럼 보이지 않는 곳엔 더 많지 않을까?


    마을에 동화되어 태평스럽게 살아가는 고양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는 몰라도 이 마을에 대해 안심하게 된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걷고, 아침, 점심, 저녁, 밤을 가리지 않고 고양이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마을에 적응한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곳만을 추출하여 멋대로 구성한 환상 속의 ‘동네’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다 야심한 시간에 고양이를 한참 보고 있어도 문제없을 것 같은 뒷골목을 발견했다. 내가 줄곧 품었던 소망은 밤에도 고양이를 찾으러 다니는 것인데,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수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그 길엔 늘 고양이 밥그릇이 놓여 있고, 현관문 손잡이에 줄로 묶인 커다란 개가 두 마리나 있었다. 마치 자기 집처럼 길바닥에 드러누워 있어도 눈살 찌푸리는 사람 하나 없는 평화로운 길이다. 여기라면 늦은 밤 홀로 서성거려도 괜찮을 것 같다! 게다가 볼일을 끝내고 돌아갈 때 아침 첫차를 기다리지 않아도 바로 저기에 집이 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렜다.


    밤 1시가 지난 마을은 고요했다. 저녁에 어느 집 앞 도어 매트 위에서 양말을 닮은 고양이가 자고 있는 걸 봤는데 밤에 다시 와보니, 어머, 없다. 접시꽃이 밤바람에 날려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구른다. 자세히 보니 동그랗게 뭉쳐진 고양이 털이었다. 근처에 있을 거야, 라고 염불을 외며 사택 울타리 안을 살펴보고, 늘 같은 곳에 주차되어 있는 라이트밴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지나가는 사람인 척한다. 볼일도 없으면서 저쪽 모퉁이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거나 자동판매기 앞에서 음료수를 고르는 척하며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아침 수도공사 마크가 찍힌 라이트밴과 벽 사이에 들어갈 틈이 있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숨어 있었기에 들키지 않았다.


    그때 사사삭 하고 그림자가 움직였고 저쪽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라이트가 고양이를 비추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바로 그 아이가 라이트밴 아래로 기어들어왔다. 양말과 닮은 고양이었다. 그뒤로 고양이 아줌마도 나타났다. 고양이 아줌마가 보이지 않는 곳에 둔 고양이 밥그릇을 새것으로 교환하고 오목한 그릇에 물을 붓는 동안, 양말을 닮은 고양이는 한가롭게 자기 털을 핥고 있다.


    그 모습을 어디서 보고 있었는지 다리가 불편한 하얀 고양이가 절뚝절뚝 뒷발을 절며 천천히 다가왔다. 또 털이 길어서 고귀함이 흘러넘치는데도 씻지 못해 더럽기 짝이 없는 고양이가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기어나온다. 이 고양이는 코가 막혔는지 숨을 쉬는 게 힘겨워 보였다. 숨소리 때문에 계속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고양이 아줌마가 오면 양말이 고양이만의 신호 = 고양이 전파를 발신하여 동료 고양이들을 불러모으는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나는 슬그머니 고양이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밥을 매일 주세요?”라고 물으니 “이 회사를 물려받을 아드님이 고양이를 좋아해서 매일 올 필요는 없어요. 꼭 교대로 하는 건 아니지만 이따금 시간이 날 때 밥을 주러 오고 있어요.” 회사 이름이 찍힌 점퍼를 입고 매일 세차하던 구렛나룻 기른 남자 말인가?


    “혹시 이름도 지어주셨어요?”

    “이 아이는 아짱. 저 아이는 아짱의 엄마예요. 털이 긴 아이는 멀리서 오는 것 같아요.” 동물병원에서 거세 수술을 할 때 진료 카드에 기입할 이름을 몰라서 ‘아’라고 한 글자만 썼는데 그후로 ‘아짱’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아짱은 숲의 저택에서는 양말이라 불리고, 다른 아줌마에겐 채플린이라 불리는 고양이가 아닌가? 양말아, 너, 이름이 대체 몇 개야? 이름을 지어주는 건 인간이 동물에게 하는 최고의 애정 표현인데. 고양이는 자기에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걸신들린 듯 밥만 먹고 있다.


    고양이 아줌마는 여기까지 말한 후 “미안해요. 두 군데 더 돌아야 해서요!”라며 씩씩하게 걸어간다. 정말로 양말이랑 채플린이랑 아짱은 같은 고양이일까? 숙제가 생겼다. 한가한 나라서 다행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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