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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로 쓴 철학사 2
저   자 : 이수정
출판사 : 에피파니
출판일 : 2017년 11월

  • 편지로 쓴 철학사 2: 전통편


    고대로 부치는 철학편지

    탈레스에게 - 철학의 시작, 자연의 근원을 묻는다

    아르케란 내가 배운 바로는 ‘처음’이란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하는 《신약성서》(요한복음)의 저 유명한 구절도 그리스 말로는 ‘엔 아르케 엔 호 로고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르케란 그렇게 처음이며 시초이며 태초이며 원초이며, 그래서 원리라고도 근원이라고도 번역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처음’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당신은 철학의 처음을 장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탈레스, 처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모든 존재자가 그것으로부터 되어있는 것, 즉 그것을 최초의 것으로서 그것에서 생겨나오고, 또 그것을 최후의 것으로서 그것으로 소멸해가는 바로 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것을 존재자의 ‘원소’라고도 부릅니다. 그것은 또 ‘생성하지도 소멸하지도 않’습니다. ‘본성이 언제나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근본적인 그 무엇’이라고 불러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바로 그런 의미의 아르케가 무엇인지를 생각한 최초의 사람인 것입니다.


    친애하는 탈레스, 어쨌거나 나는 아르케라는 말이 당신의 이름과 결부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르케에 대한 당신의 철학적 관심이, 그리고 ‘물음과 대답’이 분명한 사실이었음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아르케가 무엇인지를, 무엇이 아르케인지를 묻고 있다는 것은 동시에 당신이 ‘자연’ 또는 ‘존재자’라 불리는 만유 내지 만물의 다양성과 그것의 엄청난 신비로움 앞에 정면으로 서 있다는 것을 함께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르케는 자연 내지 존재의 아르케이며, 그것에 대한 물음은 그저 아무렇게나 우연히 나올 수 있는 성격의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물음은 임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본 자만이, 만난 자만이 물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느낀 자만이 물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에 막힌 자만이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만이 진정으로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탈레스, 생각해보면 자연 앞에서 그러한 놀라움, 신기함을 느낀 자는 비단 당신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최초’가 되게 하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물음을 명시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에 즉 사고를 언어화했다는 점에 있을 거라고 나는 해석합니다. 당신의 대답이 곧 물음의 존재를 알려줍니다. 당신은 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것인지. 그러한 물음에는 알고자 하는 갈망이, 지에 대한 사랑이 함께합니다. 그러한 갈망과 사랑을 우리는 지금 퓌타고라스 이래의 전통에 따라 ‘철학’ 즉 ‘지에 대한 사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이성적 행위’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 영혼의 개선을 묻는다

    당신의 삶은 철학 그 자체였습니다. ‘철학의 삶’이라는 것,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당신은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삶에 대해서, 그 삶의 핵심인 영혼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검토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에서 나는 삶에 대한 당신의 그런 특별한 자세를 읽습니다. 한평생 “영혼의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는 그리고 노력하라는 말도 내게는 그렇게 들려옵니다. 가치라는 것들이 당신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혜, 정의, 덕, 용기, 사랑, 사려, 경건, 진, 선, 미 … 영혼의 향상에 필수불가결한 그런 가치들이 당신의 혈관 속에서는 실제로 뜨겁게 굽이치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덕과 정의 같은 진정한 가치들을 지향했고 온전한 살을 지향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억울한 유죄를, 그리고 사형을 선고받고도 당신은 의연했습니다. 옥에 갇혀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지인들이 탈출을 준비했지만 당신은 70년 살 만큼 살았는데 더 살겠다고 도주하는 것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과 중요한 사안마다 나쁜 선택을 금지했던 다이모니온의 목소리가 죽음을 말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호히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크리톤》에 보니 당신은 괴로워하는 사형집행인을 오히려 격려해주기까지 했더군요. 원 참, 죽는 마당에 어떻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가 있는지! 존경스럽습니다. 하기야 죽음에 대한 당신의 태도도 애당초 좀 특별했지요. 재판이 끝나고 재판정을 나설 때 당신은 이렇게 말했었지요.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했던 공자를 연상시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 참 인상적인 것은, 당신이 죽어가다 말고 벌떡 일어나 옆에 있던 지인에게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대신 갚아주게”라고 말한 겁니다. 대 철인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이지요. 모르는 사람들은 이걸 곧이곧대로 빌려서 먹은 닭이라고도 생각하지만, 그래서 참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만, 실은 이게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바치는 공물임을 아는 이는 뜻밖에 많지 않습니다. 당신은 삶의 세계에서 죽음의 세계로 이동하는 것을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감사해야 할 치유의 의미로 즉 고통에서의 해방으로 해석하신 거지요. 그러니 이 유언 자체가 삶과 죽음에 대한 하나의 철학이었던 셈입니다.


    플라톤에게 - 정의와 이데아를 묻는다

    정의! 그것은 얼마나 숭고한 말이던가요.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개인의 경우나 사회의 경우나 그 구성부분들이, 즉 당신 식으로는 통치자-수호자-생산자들이, 각각의 덕을, 즉 지혜 용기 절제를 발휘해야 한다고, 그러면 종합적인 덕으로서의 정의가 구현된다고, 그렇게 당신은 가르쳤습니다. 포퍼 같은 이는 당신의 그런 생각을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라고, 그래서 위험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플라톤! 나는 그런 비판자의 입장을 이해하듯이 또한 당신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내가 보건대 인간들에게는 각자에게 적합한 ‘자리’와 ‘역할’이 있습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 있어야 제대로 헤엄칠 수 있고, 새가 하늘에 있어야 제대로 날 수 있고, 또 말이 광야에 있어야 제대로 달릴 수 있듯이, 인간들 또한 그렇습니다. 각각의 인간이 소질과 능력에 걸맞은 제 자리를 찾아갈 때, 거기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할 때, 당신이 말하는 정의는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뒤죽박죽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정의’라고 불렀고, 노나라의 공자는 ‘정명’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것을 ‘제대로하기’ 혹은 ‘본질구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공통된 지향점은 결국 당신이 “선의 이데아”라고 부른 것으로 귀결이 됩니다. ‘선/좋음’, 그것은 최고의 원리, 궁극적 경지입니다.


    하지만 “이데아”라는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라는 현재의 영어와 말은 같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다릅니다. 그리스어로는 ‘모양’ ‘꼴’ ‘본’이라는 뜻이라지요? 모든 존재들에는 이데아라는 이 원형이 있음을 당신은 꿰뚫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수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당신의 이 이데아설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데아라고 하는 것이 당신의 뛰어난 통찰에 의한 것임을 인정하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100퍼센트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객관적인 만유의 원형으로서 이데아는 실재합니다. 반대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그저 그것을 모를 뿐입니다. 이데아는 서로 다른 개체들에 공통된 본질적인 그 무엇입니다. 가령 우리가 한라산에도 가고 백두산에도 가고 때로는 후지산이나 히말라야나 알프스에도 오르면서 그 모든 것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산이라는 이데아를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도 수박도 복숭아도 사과도 모두가 ‘과일’임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본’ 또는 ‘꼴’ 또는 ‘범형’으로서의 이데아라는 것이 인간들의 그 잘난 지식을 뛰어넘어 그 지식의 저편에 ‘이미’ ‘아프리오리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데카르트 이후 근대인들은 아무래도 인간의 주관-사고-인식-지식을 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비록 인간의 정신 속에서 발견되고 확인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인간 정신의 산물은 아닙니다. 그 인식의 근원은 그렇다 쳐도 그 존재의 근원은 아니라는 거죠. 그것을 인간들은 쉽게 인정하려 들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사실이 그러한 것을! 제아무리 남산과 송악산이 다르고 한강과 대동강이 달라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을! 개별적 사례들을 통괄하는 사물들의 원형 내지 보편적 틀이, 즉 이데아가, 인간 이전에 이미 있음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없이도 온갖 풀들은 모두 ‘풀’이고 온갖 나무들은 모두 ‘나무’입니다. 인간 없이도 온갖 꽃들은 모두 ‘꽃’이고 온갖 나비들은 모두 ‘나비’입니다. 인간들의 의사와 아무런 상관없이 사물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보편적 틀에 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그러하도록 미리 혹은 이미 마련되어 있는 그러한 보편적 존재의 틀을 당신은 이데아라는 말로 불렀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와 그 속의 만물을 지배하는 기본 구조이며 또한 객관적 실상입니다. 그것을 꿰뚫어본 것은 분명 당신의 탁견입니다.



    르네상스시대로 부치는 철학편지

    마키아벨리에게 - 군주를 묻는다

    그렇습니다 마키아벨리, 당신이 생각하는 ‘군주’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군주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군주론》이 당신의 조국 피렌체의 새로운 지배자 ‘로렌쪼 디 메디치’공에게 바치기 위해 씌어진 것이라는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순수한 학문의 세계에만 머물 수 있었던 학생 시절에는 솔직히 그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인간의 삶이 철저하게, 권력관계인 현실정치의 맥락 속에서 영위될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국가와 통치자의 역할이 한 국가에서, 그리고 결국 한 국가의 국민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뼈아프게 체득하였기에, 당신의 견해들이 예사롭게 들리지를 않습니다. 통치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국민의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신은 군주 즉 국가의 통치자에게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위세’를 갖추라고 요구합니다. “사자는 함정을 피할 수 없고 여우는 늑대를 피할 수 없으니, 함정을 알기 위해 여우가 되고 늑대를 쫓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군주의 ‘덕’으로 간주됩니다. 한편 당신은 “군사와 인민을 양팔에 끼고 등에는 귀족을 업고서 가라”고 권유합니다. 뭔가 선군정치와 선민정치와 선신정치가 동시에 어우러진 느낌이군요. 그리고 “비상시에도 위기를 면할 수 있게 평소에 대비를 잘해두라”는 당연한 충고도 눈에 띕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겠죠? 또 “유하고 선하면 도전받으니 때로는 강하게 악하게도 하라”고도 가르칩니다. “관용은 지나침이 없도록 하고 사랑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라”고도 말합니다. 일종의 카리스마주의이군요. 또 “함부로 남의 재산과 부녀자를 건드리지 말고 특히나 군인한테는 미움 사지 말라”고도 합니다. 민심과 군심의 이탈이 권력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 당신은 잘 알고 있었군요. 또 당신은 “검약과 인색을 가치로 삼고 세금은 적게 걷어서 사치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후대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조언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또 “처벌은 부하들을 시켜서 하고 호의는 군주가 직접 베풀어주라”고도 합니다. 이런 건 참 얄미울 정도로 지혜롭다는 느낌이네요. 또 “측근들을 함부로 다루지 말고 동맹과 친선으로 힘을 빌려라”는 것도 눈에 띕니다. 무슨 일이든 세상만사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은 없다는 걸 당신은 참 잘도 꿰뚫어보셨군요. 또 “지혜로운 관리를 잘 골라 쓰되 마지막 결정만은 군주가 직접 내리라”고도 합니다. 참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여기엔 인사가 만사라는 말도 포함되겠지요? … 이런 당신의 견해들 속에서 나는 ‘정치적 이성’이라고 내가 불러왔던 현실적 지혜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권력과 국가를 건실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힘이 됩니다.


    갈릴레이에게 - 자연법칙을 묻는다

    당신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웬만큼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1564년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태어나 피사와 파도바에서 수학교수를 지냈고, 1609년 망원경을 개량하여 이것으로 목성의 위성, 달의 반점, 태양의 흑점 등을 발견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정당함을 입증하였고, 고전역학(예컨대 관성의 법칙, 낙하의 법칙 등)의 개척자이기도 했던 당신이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 속도와 가속도의 실험을 했고,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실험이나 그 발언이나 모두 사실 여부는 좀 불투명하지만 하여간에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들입니다. 당신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기 때문에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에 회부되었고, 그 판결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기로 서약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에 복종했습니다. 1633년 6월 22일이었던가요?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당신이 그 서약을 마치고 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다!’고 중얼거렸다는 것입니다. 이게 만일 사실이라면 철학사의 명장면 중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갈릴레이, 결국은 당신이 옳았고 재판정이 틀렸다는 것을 오늘날의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나는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전환을 보게 됩니다. 즉 당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켜놓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테지만, 거기에는 자연을 자체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자동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자연관이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점은 인간이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그 이전과 비교할 때, 중대한 역사적 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은 인간의 ‘객관’으로, 인식의 ‘대상’으로 변모하게 된 것입니다. 당신의 업적을 포함한 이른바 자연과학은 바로 그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해서 눈부시게 발전해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갈릴레이, 자연과 인간의 분리, 객관적-수학적 자연법칙의 파악, 그런 것으로 시작된 과학의 발달은 그 후 기술과 산업의 진보를 가능케 했고, 그것은 또한 교역과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나를 비롯한 우리 현대인들은 그 연장선상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그러한 현대적-과학적 삶을 상징합니다.) 그 혜택은 실로 엄청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편리함과 풍요함을 ‘현대의 복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복락의 기원이 바로 당신의 시대, 당신에 의한 사고방식의 전환, 즉 자연 내지 우주에 대한 객관적-수학적 시선, 그런 것에 있다고 나는 파악합니다.



    근세로 부치는 철학편지

    데카르트에게 - 명증한 사고를 묻는다

    친애하는 데카르트, 고등학생 시절 나는 데칸쇼라는 이름으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칸트, 쇼펜하우어와 더불어 당신은 철학적 지성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칸트와 쇼펜하우어는 일반에게 제법 알려진 이름이었지만 당신은 아직 그렇지 못했기에 이 둘을 거느리고 맨 앞에 등장하는 데카르트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나는 자못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 시절 나는 한 학기 동안 당신의 《방법서설》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성’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블레즈 파스칼의 말과 혼동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됩니다. 당신이 이 유명한 말을 내뱉게 된 배경을 지금의 나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고의 명증성’을 위한 것이고, 철학을 확고한 기반 즉 ‘명석하고 판명한’ 제1원리 위에 세워 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방법적 회의’는 그것을 위한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나름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은 상징적인 그 ‘코기토’를 통해 ‘제대로 생각하기’의 본때를 보여준 셈입니다.


    사실, 당신은 그 누구도 회의할 수 없는 명석판명한 즉 확고부동한 제1원리 내지 진리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회의라는 절차를 수행했던 것이죠. 조금이라도 회의할 수 있는 것은 철저히 회의해서 배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누구나가 확실하다고 믿는 감각적 지식을 회의하고 배제했었죠. 아닌 게 아니라 감각도 때로는 잘못된 정보를 주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때로 잘못 보기도 하고 잘못 듣기도 합니다. 맛도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누구는 김치를 엄청 좋아하는데 누구는 엄청 싫어합니다. 치즈도 청국장도 그렇습니다. 또 누구는 재즈음악을 엄청 좋아하는데 누구는 아주 질색합니다. 그러니 감각적 지식도 진리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요. 그 다음으로 당신은 수학적 지식을 회의하셨죠. 2+2=4 같은 수학적 지식은 누구나가 확실하다고 믿는 바이지만 사실은 사악한 악마가 그렇게 믿으라고 속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억지로 회의하자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던 바로 그 순간, 당신의 머리를 스쳐간 것이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의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회의하는, 혹은 악마에게 속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는 도저히 회의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죠. 그건 직관적 지식입니다. 그게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의 문맥입니다. 과연 데카르트! 그건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한 그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자명한 것으로 직관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데카르트, 당신이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철저한 회의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특히 결정적으로 중요한 무언가를, 꿰뚫어보고 주제화시켰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양식’ 즉 ‘이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묘비명인 “데카르트, 유럽 르네상스 이후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이성의 권리를 쟁취하고 확보한 사람”이라는 말은 참으로 적절합니다. 이성은 곧 데카르트의 상징입니다. 


    루소에게 - 자유와 평등을 묻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자유’라고 하는 이 숭고한 가치가 어쩌면 조금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예컨대 정보와 통신, 경쟁과 효율, 이익과 재미, 이런 21세기적 가치들에 묻혀 빛을 잃고 있거나, 혹은 자유라고 하는 그 가치가 이미 보편적으로 실현되어 있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루소, 당신이 대전제로 삼았던 그 철학적 통찰, “인간은 자유인으로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도처에서 질곡에 매여 신음한다”는 것,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사람들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자유와 질곡이라는 이 대립개념에 대해 각각 ‘자연적 상태’와 ‘사회적 상태’라는 것을 설정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연적 상태란 ‘생산기술이나 언어가 없어도 숲속을 헤매어서 먹고 마실 것과 잠잘 곳을 해결할 수 있고, 전쟁을 벌이거나 동맹을 맺지 않아도 이웃을 해치거나 특별히 그들을 기억하지 않으며, 매우 적은 정념에 따라 자족하면서 이 상황에 알맞은 감정과 지식만을 갖고 있는 상태’입니다. 당신이 상정하는 이러한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욕구충족으로 만족하고 타인을 지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예속과 불평등이 없습니다. 거기서는 ‘자연적 자유’가 실현됩니다. 바로 이런 강조 때문에 당신의 철학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표어로 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했죠. (이 말은 당신 자신의 표현은 아니라죠?) 그런데 ‘사회적 상태’가 되면서 불평등은 시작됩니다. 당신은,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땅’이라고 선언한 사람이 불평등을 처음 발생시켰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바로 사회와 정치의 창설자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지주에 예속된 노동이 필요해지면서 가난과 노예가 생기고, 인간은 문명화되며, 이 문명화가 빈부격차와 욕망의 충돌로 야기된 지배와 종속의 굴레로 인간을 내몰아 사회를 전쟁상태로 만듭니다. 이런 전쟁상태에서 가진 자들은 그들의 위기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의 방책을 고안해내는데 이것이 바로 사회와 법률입니다. 이 법률들은 약자에게는 또 다른 멍에가 되지만 부자에게는 새로운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자유와 평등은 완전히 말살되며, 이렇게 해서 인간불평등의 영구화 가능성이 마련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자유를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는 것,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힘이 생기면 그 구속을 제거하고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 이것입니다.


    단, 루소가 루소다운 것은 당신이 계약에 의해 성립되는 사회질서를 신성한 법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무절제한 폭력주의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이른바 순수하고 선한 ‘일반의지’를 신뢰합니다. 그것에 기초한 계약으로써 사회를 구성하고 그 주권자인 국민의 공통이익과 공동선을 추구합니다. 그것을 통해 당신은 상실된 ‘자연적 자유’ 대신 ‘사회적 자유’를 확보하고자 합니다.


    칸트에게 - 인식과 행위를 묻는다

    도대체 어떤 오류와 한계를 당신은 혁신하고 종결짓고 싶은가요? 나의 이해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철학 특히 형이상학의 오류와 한계입니다. 형이상학은 “거부할 수도 없고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로 괴로워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고 당신은 진단합니다. 형이상학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할 수도 없지만 그것이 ‘학문으로서의 확고한 길’을 걸어오지는 못했다는 게 당신의 안타까운 지적이었습니다. 특히 수학과 자연과학에 비교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이를 테면 옆집의 ‘수학이’와 ‘과학이’는 저렇게 똑똑한데 우리 집 ‘철학이’는 왜 맨날 요 모양 요 꼴이냐 하는 것이 당신 철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특히 너 ‘형이상학이’는 맏이라는 녀석이 막내인 ‘논리학이’처럼도 못되느냐 하는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성비판이라는, 선험철학이라는 회초리를 들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근세의 아들입니다. 당신이 집착한 것은 결국 철학의 ‘학문성’ 즉 ‘학문의 확고한 길’입니다. 그것은 왕국 국무대신 폰 체틀리즈 남작에게 바치는 당신의 헌사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칸트 학문성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당신은 그것을 완전성과 면밀성, 확실성과 명석성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습니까. ‘선천적인 순수인식!’이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그 모범을 당신은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발견합니다. 거기에서 당신은 ‘사고방식의 혁명’ ‘사고방식의 전향’을 보고 있습니다. 요컨대 인식의 성립을 대상의 주도에 의한 수동적 ‘경험’이 아니라, 이성 자신의 주도에 의한 능동적 ‘구성’에 맡기는 것이, 즉 객관이 아니라 ‘주관’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주도권을 주는 것이 학의 확고한 길을 보장한다고 당신은 설명합니다. 그것이 곧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당신은 생각합니다. 당신이 ‘선천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고 묻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당신의 이러한 기본전제들을 수용한다면 당신이 왜 ‘선험적 철학’을 수립하려 하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대상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에 관한 우리의 선천적인 개념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그러한 인식능력, 그러한 개념들의 체계를 당신은 선험철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애하는 칸트, 나는 당신의 그 엄청난 권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이성비판에 의해 형이상학의 학문성이 과연 원만하게 확보되었는지 상당히 조심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식은 인간이 수행하는 여러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인간 자신에게 미리 갖추어진 것과(이것을 나는 분명히 인정합니다) 인간 바깥에 미리 갖추어진 것(이것도 또한 인정되어야 합니다)의 상호연관에서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라는 기본인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컨대 ‘먹는다’고 하는 활동도 ‘먹을 것’이 ‘먹는 기관’을 만나면서 비로소 성립됩니다. 아니 인간에게 먹는 기관들이 미리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인간 바깥의 먹을 것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인식능력의 선천적인 내재도 이미 인간 바깥의 인식될 것들(이를테면 자연의 법칙들과 이념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아닐는지요. 인식될 것들과 인식의 능력, 즉 객관과 주관은 별개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인간에 내재하는 인식의 능력조차도 인간의 바깥에 있는 인식될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천적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인간의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식도 인식능력과 인식내용의 상호연관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더욱 타당한 것이 아닐는지요. 그것은 학문성의 훼손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학문성의 확립이 아닐까 합니다. 인식내용은 언제나 우리 앞에서 우리에게 인식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맛있는 복숭아가 우리의 식욕을 자극하듯이 우리의 인식능력을 자극하고 그 활동을 촉발합니다. 


    인간지식의 실제적인 발전사를 돌아보건대 모든 진정한 인식은 (형이상학까지도 포함해서) 그런 촉발에 이해 비로소 성립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형이상학은 결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못난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미운 오리새끼 같은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우아한 백조인줄 알아차리지 못하는 오리의 눈인 것이지 백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백조에게는 우아한 비상이 어울리듯 형이상학에게는 형이상학 나름의 방식이 어울리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칸트, 나의 이런 조심스러움이 당신의 권위에 대한 결례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조심스럽게 붓을 거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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