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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권력의 탄생
저   자 : 대커 켈트너(역:장석훈)
출판사 : 프런티어
출판일 : 2018년 05월

  • 선한 권력의 탄생


    권력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20년 전, 내가 권력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권력은 곧 강압이자 힘이자 지배력이었다. 국가 흥망성쇠는 군대 개혁, 정복, 팽창 그리고 군사활동이 국가 경제력에 미치는 영향 등으로 설명했다. 권력을 강압과 관련지어 바라보는 시각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쓴 때는 폭력이 극단적으로 자행되던 시기였다. <군주론>이 제시한 것은 그런 폭력 시대에 걸맞은 권력 철학이었고, 그에 따르면 권력은 “강압과 권모술수” 그 자체였다. 그러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동적이면서도 사납고 폭력적인 예측 불가능한 폭압을 휘둘러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권력 개념에 반하는 예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역사상 수많은 중요한 변화, 즉 여성 참정권 채택, 시민 입법, 언론 자유 운동과 그것이 베트남 전쟁 반전 데모에 미친 영향, 인종차별 정책의 폐지, 새롭게 부상한 동성애자 권리 등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미약한 민중에 의해 이루어졌다. 어떤 강압적인 힘을 가지고 세상을 바꾼 게 아니었다.


    1938년, 유럽에 파시즘이 팽배할 때,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리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 에너지이듯 사회과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은 권력이다 (…) 사회동역학의 법칙은 권력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취할 첫 단계는, 권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비대칭적 힘이 개입된 관계와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류의 관계와 상호작용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새롭게 정의되는 권력은 인간의 상호작용이 벌어지는 모든 맥락에 적용되어야 하며, 모든 형태의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의 한 가지를 들어보자. 권력은 세상을 바꾼다는 정의다. 이러한 정의는 타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된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실용적이다. 그리고 이 정의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서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우리 인간의 고귀한 사회적 본성을 반영한다.


    권력은 타인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 권력의 개념을 재력, 군사력, 정치력 등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 영역에서의 행위가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이 모든 사회동역학에 스며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권력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재력, 무력, 정치력이 개입되지 않아도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타인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여기서 ‘상태’란 타인의 조건을 의미한다. 상태란 여러 가지를 가리킨다. 은행 잔고나 신앙 또는 감정을 가리킬 수도 있고, 육체적 건강이나 투표권 행사 또는 감시를 당한다는 느낌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고 뇌 활동 패턴이나 면역체계 반응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권력을 정의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권력이 그렇게 다양한 형태를 디고, 다면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신체적 상태를 바꿈으로써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버지니아 아프가는 콜롬비아 의과대학의 첫 여성 정교수였다. 1952년, 의사들이 생명 유지가 어려울 듯한 조숙아들을 내버려두는 것을 보다 못한 그녀는, ‘아프가 점수’를 고안했다. 신생아의 호흡, 맥박, 피부색, 자극반응, 근육 활동을 10점 만점으로 한 채점표로, 출생 후 1분과 5분에 채점표를 작성한다. 이 점수표가 의료 현장에 널리 쓰이면서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고, 미국의 경우 아홉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태어나는 조숙아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신체적 상태를 바꾸는 것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권력을 사람들의 상태를 바꾸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해서 미술, 음악, 풍자, 문학 등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디어 애비 칼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면하는 도덕적 딜레마 - 십대 자녀와 우울증 문제를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 바람피우는 남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만찮은 시댁 식구 또는 처가 식구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 등등 -를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받았다. 마사 스튜어트, 보노, 르브론 제임스, 에드워드 스노든, 아리아나 허핑턴, 오프라 윈프리 같은 문화계 인물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 성향을 새로 갖게 만들거나 다른 성향을 갖게 만들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권력은 사람들의 상태를 바꾸는 것이다.


    권력은 일상 행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이 상호작용을 하는 순간 바로 권력의 양상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이들끼리의 상호작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열 살에서 열두 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들이 여름 아영 생활을 할 때, 단 하루만에 권력을 쥐는 아이들이 나오며 그들만의 공동체 역학이 형성된다. 다섯 살쯤 되는 아이들도 유치원에 가면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누가 영향력이 있고 없는지를 알아차린다. 더 어린 두 살배기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유아원 아이들 중에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며, 놀이를 주도하고,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자전거나 타이어 그네를 제맘대로 타는 아이가 나온다. 권력은 일찌감치 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권력이 일상적 행위와 한데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권력이 항구적이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늘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진 권력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전제적인 동물은 무리의 다른 동물을 거느릴 때 위협과 강압을 일삼지만, 그들의 위계 -다시 말해, 영향력과 사회 자원을 누릴 권리 -는 우두머리 수컷과 암컷 그리고 경쟁자들 사이에서 거의 매일같이 하루에도 몇 번씩 타협하고 결정된다.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하는 특정한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가에 따라 바뀌었다. 한 개인의 영향력 - 권력 -은 집단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맥락 특이성을 띤 일상의 행위 속에 존재한다.



    권력은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유지된다

    신성한 생명력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기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믿음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세상에 기여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산업사회 이전 공동체에서는 가진 것을 나누고, 지혜를 발휘하고, 용기를 내는 아주 구체적인 행위로 그 신성한 생명력을 표현했으며, 주로 신성한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그 징표를 의복과 이름과 문신으로 나타냈다. 오늘날의 의미로 보면, 목적이나 임무 또는 소명에 해당하겠지만, 아마도 가장 적절한 명칭은 권력일 것이다.


    권력을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나는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을 때 어떤 느낌을 갖는지 연구했다.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친 상태에서 형성되는, 친구들 사이 또는 연인 사이의 권력 역학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는데, 즉 권력은 생명력과 같다는 것이다. 갑자기 온몸을 휘감으며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몰아붙이는 활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은 아주 높은 수위의 흥분과 영감과 희열을 느낀다. 이런 느낌에 힘입어 그는 목적성을 띤 행동을 하게 된다. 자신의 힘을 자각함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그런 힘을 부여한 상황에 어떤 식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 궁리하고, 그 상황에 부합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재빨리 포착한다.


    이처럼 자신에게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은 두 길 중 하나로 나아가는데, 하나는 충동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권력 남용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애로운 행위를 하는 최대선의 길이다. 권력 남용은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일은 제대로 되는 법이 업고, 급기야 건강마저 해치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최대 선을 증진시키는 데 권력을 사용하면, 권력을 가진 이와 그에게 권력을 부여한 이들은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생산적이 될 수 있다.


    권력은 나눔으로 유지된다

    미국 대통령은 매년 대략 6만 5,000명과 악수를 한다 (하루에 200명꼴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례에는 깊은 내막이 있다. 살가운 스킨십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나눔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는 권력 유지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유인원은 다른 동물을 그루밍 해주는 데 깨어 있는 시간의 15% 이상을 보낸다. 병이 생기지 않도록 서캐나 각다귀 같은 것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 줘서 서로 돈독해지려고 그러는 것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스킨십은 직접적으로 강력한 그리고 점진적이면서도 오래된 나눔의 수단이다. 상대를 인정해주는 살가운 스킨십을 해주면 상대는 자신이 인정을 받는다는 기분 좋은 느낌을 갖는다. 스킨십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 가운데 하나다.


    살가운 스킨십이 주는 보상과 진정 효과에 대해 이런 과학적 근거가 있다는 점을 전제한 뒤, 나는 다음의 가설을 실험하기 위해 나의 취미인 농구를 끌어와 봤다. 이 실험에 참가한 이들은 전미농구협회NBA 소속 선수들이었다. 통계를 내보니, 시즌 초반에 선수들의 스킨십이 많을수록 시즌 후반에 팀은 훨씬 더 좋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시즌 초반에 서로 격려하며 스킨십을 많이 한 팀일수록 공격에서는 공격권을 잘 지켰고, 수비에서는 서로 잘 도왔다.


    그들의 스킨십은 다른 사람을 따뜻이 대하고 서로 돕고 긍정해주는 행위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권력을 유지한다는 얘기를 또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의 스킨십은 팀의 사기를 높이고 팀을 하나로 만들었다. 눈에 잘 띄지 않고 슬며시 행해지는 너그러운 마음의 표현을 통해 우리는 동료들에게 힘을 북돋을 수 있었다.


    이처럼 스킨십이 힘을 북돋는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넓은 의미의 권력 원리를 떠올릴 수 있다. 즉 다른 사람에게 보상을 함으로써 우리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눔과 희생과 긍정을 통해서, 가치를 인정하고 책임감을 부여하는 행위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 일상에서 행해지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통해서, 우리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권력은 고마움의 표현으로 유지된다

    고마움의 표현은 남이 내게 베푼 것, 즉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신성하고 귀중한 것에 대해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렇게 베푼 것이 물건일 수도 있고 경험이나 기회일 수도 있다. 또는 삶의 조건이거나 사람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우리 자신의 행위나 의지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것들이다.


    고마움에 관한 새로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연구를 통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이 고마움을 표하는지 알 수 있었다. 초기 진행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9주 동안 매주 하루의 시간을 내어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고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게 하였다. “살다 보면 우리가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지난 한 주의 삶을 돌아보면서 고마움을 느꼈던 일을 다섯 가지 정도 적어본다.”이런 글쓰기 훈련을 통해 고마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실험 참가자들은 일상의 푸념만 적었던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건강 상태도 좋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열정을 갖고 삶을 향유하는 긍정성도 더 강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감과 너그러움이 더 커졌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메일을 쓰고, 눈을 마주치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포옹을 하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상대의 말이 맞다며 공개적으로 인정해주는 방식도 있다. 스킨십과 마찬가지로 고마움의 표현엔 존중의 마음이 깃들어 있으며, 이는 우리 뇌에서 안전을 관정하는 부분과 보상계를 자극하고 스트레스를 관장하는 부분을 진정시킨다.


    고마움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더 협조적이고 생산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다. 고마움을 표현하면 사회연결망 안에서 전염성이 있는 선의를 불러일으킨다. 고마움에는 전염성이 있고 상대의 용기를 북돋는 특성이 있는데, 최근 이 문제를 다룬 탁월한 한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에게 컴퓨터로 어떤 과업을 수행하라고 했다. 그런데 컴퓨터가 다운되면서 과업을 제 시간에 맞출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주변에 있던 한 참가자가 첫 번째 참가자를 도와주겠다며 나서더니 컴퓨터를 고쳤다. 그 덕에 첫 번째 참가자는 과업을 마치고 고마운 마음을 안고 실험실을 나설 수 있었다. 잠시 되,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던 참가자는 도움이 필요한 어떤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참가자는 기꺼이 도와주려고 나섰고 그 낯선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했다.


    사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가장 신성한 덕목 가운데 하나다. 스킨십과 말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주며 용기를 북돋는 행위에 깃든 고마움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일상적 토대가 된다.



    권력 남용

    “내가 사랑은 받는 것보다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권력과 관련하여 가장 널리 알려진 금언이라면,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말은 그에 버금가는 금언일 것이다. 액튼 경의 주장은 그간 수많은 과학적 연구들을 통해 검증을 받은 바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권력의 짧은 부침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재산과 명예와 학벌이라는 특권 배경이 우리의 사회적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자료를 수집하고 결론을 도출했다.


    권력에 취한 이는 식생활과 성생활에 절제가 없고,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거짓과 속임수를 일삼으며,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아이들 사탕을 뺏기도 한다. 그리고 말을 해도 저속하고 불경하고 무례하다. 실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권력 맛을 보면 처음 그 권력을 쥘 수 있도록 만들어준 자신의 능력을 훼손하게 된다. 우리로 하여금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해준 바로 그 행위가, 우리가 권력을 행사할 때는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권력을 얻고 그것을 유지했지만, 권력을 행사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는다. 나눔을 통해 우리는 권력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였지만, 권력을 자각하면서 탐욕스러운 자기만족적 행위를 한다. 고마움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핵심이지만, 한번 권력을 자각하면 무례하고 공격적이 된다.


    권력을 절대화하면 우리는 권력 역설에 하릴없는 처지가 된다. 우린 관심은 제한된 자원이다. 자기에게만 관심을 두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칠 수밖에 없다. 지금 자기감정만 우선시한다면,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는 막연해진다. 권력을 가지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므로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목표와 욕망으로 돌리게 된다. 이렇게 관심을 돌리기만 해도 우리가 권력을 얻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 사회적 실천에서 우리는 멀어진다.


    권력 남용이 수반되면, 권력 역설은 절정에 이른다. 우리로 하여금 권력을 얻고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바로 그 원리들은, 우리가 권력을 행사하기 시적하면 온데간데없다. 권력은 우리가 세상에 기여하는 데 필요한 바로 그 덕목을 훼손하면서 이내 스스로 몰락한다.


    권력 남용은 무례와 안하무인을 촉발한다

    어떤 말을 할 때, 우리는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고 싶은 충동과 상대를 존중하여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경청하는 태도 사이를 오가게 된다. 거의 모든 경우, 권력을 쥐면 이 균형을 잡기 어려워진다. 권력을 잡는 순간 우리는 상대에 대한 배려도 없이 거만한 태도로 말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일수록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는 의사소통의 규칙들을 어기려 한다.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 버리기도 한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의 규칙을 지킬 때, 모두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데,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순서를 지키지 않고 제 말하기 바쁘다. 대화 예의에 따르면, 우리는 말을 해도 완곡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자신을 낮추며 말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원활한 대화에 필요한 이런 원칙들을 지키지 않는다.


    이에 반해, 자신에게 권력이 별로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순발력 있게 상대를 존중하는 부드러운 말을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도 그들은 상대가 하는 말에 관심을 보인다는 신호, 즉 언어학자들이 ‘맞장구 반응’이라고 부르는, ‘오, 으흠, 아’ 등의 추임새를 잘 넣는다. 그들은 부탁을 할 때 양해를 먼저 구한다. 다른 사람을 향해 비판이나 우려를 전할 때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떤지?” 또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을 듯한데…”와 같이 완곡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쓴다.


    우리가 신뢰감과 호의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직물처럼 짜인 사회적 구조는 도덕적 감정 - 공감, 연민, 고마움, 고양 - 에 기초한 것인데, 권력은 이를 훼손시킨다. 절대 권력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돌려 자기만족에 빠지도록 한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일상의 도덕 - 배려, 고마움, 예의, 존중 -을 허물어뜨린다. 일상화된 무례는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고귀한 윤리를 파괴하며, 사람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든다. 그리고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하고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직물처럼 짜인 사회는 이런 권력 역설에 점점 헐거워진다.



    무력감의 대가

    내가 아홉 살이 되던 1970년, 어머니가 새크라멘토 주립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었기에 우리는 최신 유행을 접할 수 있었던, UCLA 근처의 로렐 협곡을 떠나 시에라네바다 구릉지대에 위치한 가난한 시골 마을 펜린으로 이사했다. 우리는 펜린의 카요 드라이브라는 곳에서 8년을 살았다. 그 당시 나로선 설명할 길이 없지만, 가난에서 오는 따뜻함을 알게 되었다.


    내 어린 눈에도 어렴풋이나마 카요 드라이브 이웃들의 삶을 좀먹는 무력감의 대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삶은 잘 나누고 정이 넘치는 가운데서도 늘 위험이 도사리는 삶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을 해할 수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삶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권력 역설에 쉽게 굴복하는 사회 구성원들, 즉 권력을 가진 이들은 나의 예날 이웃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무력가과 권력 역설은 분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점에서는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는 어떻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보면, 그 사회가 권력 역설에 어느 정도 취약한지를 알 수 있다.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하고 힘이 없는 구성원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


    무력감이 왜 생기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바뀔 것이며 우리는 권력 역설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무력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무심하거나 무지하면, 거기서 권력 역설은 비롯될 것이다. 힘없는 자들의 역경과 무력감의 원인을 살피는 것은 권력 역설을 극복하고 나아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한 걸음이다.


    수많은 탁상공론에 의하면, 가난한 이들이 교육을 받거나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난하고 늘상 힘없는 사람들은 ‘복지 무임승차자’로 인생을 편하게 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땀 흘려 일하기보다 쾌락에 탐닉하고 정부의 무상 지원이나 악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카요 드라이브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단 하나도 설명해줄 수 없었다. 나의 이웃들은 진정으로 가족과 공동체와 사회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다하여 아이들에게 바른 삶을 가르치고자 했다. 부모와 청소년이 된 자식들은 돈을 벌기 위한 일도 열심히 했다. 대부분 힘들고 지루한데다 보수도 변변치 않은 일이었다. 주변을 돌보지 않거나 편한 삶을 살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내 이웃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건 다른 것이었다.


    학자들이 권력과 질병에 관한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 1990년대에 우리는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사회적 계급 - 재산, 교육 수준, 명망 있는 직업 -을 보면 그 사람이 질병에 취약한지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급 사다리에서 한 단씩 내려올 때마다 사람들은 질병에 더 취약해지고 수명도 짧아졌다. 고혈압, 자궁암, 관절염 등 여러 만성질환에 시달렸다.


    무력감에 대한 연구는 이런 사실로부터 자극을 받았으며, 나는 카요 드라이브에 살던 나의 이웃들이 무엇 때문에 난치병에 시달리고 끝내 세상을 떠났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심각하게 여기는 사회적 문제들 - 불안, 우울증, 수행 능력 부진, 만성질환, 빈약한 건강 -이 카요 드라이브에 만연했다. 이런 문제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헤아리고 그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을 고민하려면, 그것들이 위협, 스트레스, 수행 능력 부진, 즉 무력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 역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력감의 대가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무력감이 들면 지속적인 위협에 노출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카요 드라이브 또래 친구들과 나는 고물 자동차를 끌고 드라이브를 나가곤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경찰이 우리를 잡아 세웠다. 그들은 다짜고짜 손전등 불빛으로 우리 눈을 비추고선 이것저것 심문하고 글러브박스를 뒤졌다. 그런 다음 다정한 말투로 말썽 부리지 말라는 경고를 남겼다. 낡은 차를 운전하는 젊은 남자로서 내가 경험한 감시의 눈길과 지속적인 핍박은 상대적으로 권력이 없는 아프리카계나 라틴계 젊은 남자가 인종주의의 잔재 때문에 받았던 그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경찰은 형평성에 어긋날 만큼 그들을 잡아 세운 뒤 불심검문을 했다.


    유색인들이 성인이 되면, 그들은 관공서나 회사와 같은 기관들로부터 더 많은 따돌림을 받기 시작한다. 이는 그들이 세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은 직접적으로 차단하는 행위다. 기관들은 역사에 의해 그 정체성이 권력이 없는 존재로 각인된 사람들을 배척하고 따돌리고 주변화하는 경향이 있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일수록 교장이나 교감처럼 권한을 가진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공공기관의 관리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들을 부당하게 처벌하곤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런 위협에 다주 민감해지고, 그곳은 또래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위협에 대한 이런 만성적 과민증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뇌는 늘 경계의 끈을 놓지 않는 초과민 상태가 된다. 그리하여 중요한 두뇌의 자원이 위협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쪽으로만 온통 쏠리게 되는 것이다.


    무력감으로 인해 우리는 위협에 매우 민감한 존재가 된다. 일상에서 아이들 방의 벽에 핀 곰팡이나 녹물 자국, 대출 담당자의 연이은 퇴짜, 직장에서의 푸대접과 같은 위협에 노출되다 보면, 권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별 볼일 없는 존재하고 생각한다. 권력이 없는 사람이 저런 위협을 받으면 무언가 열심히 하려고 할 때 스트레스 반응이 수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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