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단어들의 지도』를 읽다 보면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저절로 영어 단어가 머리에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 라틴어와 영어 교사로 활동해온 저자 데버라 워런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워런은 능숙한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배워야 할 내용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절묘한 비율로 배합해놓았다. 그리고 독자들이 호기심을 따라 스스로 지식을 넓힐 수 있도록 이야기를 책 곳곳에 배치해놓았다. 단어 암기에 지친 학생과 영어 공부를 지속하고자 하는 성인 모두에게 부담 없으면서도 알찬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워런은 한때 프로그래밍 언어로 컴퓨터 코드를 짜던 개발자였다. 그래서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에서는 세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구조화하고자 하는 개발자의 감수성이 엿보인다.
■ 저자 데버라 워런(Deborah Warren)
하버드대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라틴어 교사, 영어 교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출간한 시집으로는 『벌레 미식가(Connoisseurs of Worms)』 『행복의 크기(The Size of Happiness)』 등이 있으며, 『본초자오선(Zero Meridian)』은 뉴 크라이티리언상을 수상했고, 『꽃과 과일 그릇의 꿈(Dream With Flowers and Bowl of Fruit)』은 리처드 윌버상을 수상했다. 로마 시인 아우소니우스 시선 『모셀라강 외』를 번역하기도 했다. 《뉴요커》 《파리 리뷰》 등에도 기고했다. 9명의 자녀가 있으며, 현재 잠수함 탐지용 탑이 있는 매사추세츠의 옛 군사 부지에서 살고 있다. 취미는 라틴어와 프랑스어 독서다.
■ 역자 홍한결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나와 책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쉽게 읽히고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옮긴 책으로 『스토리 설계자』 『어른의 문답법』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인간의 흑역사』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말
옮긴이의 말
초대의 말
이런 말 저런 말
1 말 바꾸기: 단어의 진화
2 한 입으로 두말하기: 앵글로색슨어와 라틴어
3 발 없는 말: 이동
4 먹고 사는 이야기: 음식
5 말이 오락가락: 술
6 건강한 언어 생활
7 꽃에 담긴 말
8 웃기는 이야기
9 이 옷으로 말하자면
10 떠도는 말: 유랑
좋은 말 나쁜 말
11 악담
12 믿음이 가는 말
13 애들 이야기
14 주문을 외워보자
15 마지막 한마디
동물의 세계
16 고양이 소리
17 개 짖는 소리
18 말발굽 소리
무엇이라 부르랴
19 성씨의 기원
20 이름의 기원
21 족보와 정치
22 장안의 화제: 지명
23 나오는 대로, 들리는 대로: 말라프롭과 몬더그린
말도 가지가지
24 하나 둘 셋
25 감옥살이 말글살이
26 피리 부는 사나이
27 대신하는 말
28 입 운동: 스포츠
29 게임의 언어
30 각양각색: 색깔
31 때를 이르는 말: 시간과 시기
32 몸으로 말해요: 신체 부위
33 참 이상한 말들
34 언어의 끝없는 여정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지는 단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데, 웃으면서 읽다 보면 단어의 기원과 족보로 이루어진 한 장의 세계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
이런 말 저런 말
발 없는 말: 이동
trael이 ‘이동, 여행’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은 14세기경으로, 원래는 프랑스어 traail(일, 고생)과 똑같은 뜻이었습니다. 그 어원인 라틴어 tripalium은 말뚝 세 개로 만든 ‘고문 기구’였습니다. palus가 ‘말뚝’이었거든요. 영어 단어 palisade(말뚝 울타리)와 beyond the pale(도를 넘은)이라는 표현도 거기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여행’이 ‘고문’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hyperbole(과장)이겠죠.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저 너머로 던지기’입니다. 그리스어 ballein(던지다)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자동차 여행 Automotie Etymologies
coupe(쿠페, 영어 발음은 ‘쿠프’)는 문이 두 개인 소형 자동차를 뜻하죠. 그 어원은 프랑스어 carrosse coupé(반으로 자른 마차)였습니다. 앞좌석만 있고 뒷좌석이 없는 마차입니다.
cab(택시)는 프랑스어 cabriolet(카브리올레)가 줄어든 말입니다. cabriolet는 용수철이 부착된 경량 마차를 뜻하는데, 염소가 펄쩍펄쩍 뛰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라틴어로 ‘염소’가 capra거든요. 영어의 caper(깡충깡충 뛰놀다)도 관련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하늘에 있는 염소로는 염소자리(Capricorn)가 있고요, 영화계에 있는 염소로는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와 감독 프랭크 카프라(Frank Capra)가 있습니다.
taxi(택시, ‘수송’을 뜻하는 그리스어 ‘taxi-’에서 유래)라고 하면 처음에 UberCab으로 불렸던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Uber)가 생각납니다. 그 어원인 독일어 über는 ‘위’를 뜻하는 세 단어 upper, oer, aboe와 기원이 같은 말입니다. UberCab은 ‘뛰어난 택시’라는 뜻이죠.
마지막으로 limo(리무진)를 알아볼까요. limousine(리무진)은 원래 프랑스 리무쟁(Limousin) 지방 사람들이 입던 망토였습니다. 지붕이 없던 차에 지붕이 달린 새 모델이 나오면서 거기에 limousine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Limousin의 중심 도시 리모주(Limoges)는 도자기의 도시로 유명합니다.
다시 부릉부릉 Motor Mouth
요즘은 민간인도 군에서 쓰는 탈것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일단 제너럴 모터스의 험비(Humee)가 있군요(정식 명칭은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ehicle, 고기동성 다목적 차량’). 사륜구동 군용차이지만 일반 시민이라도 폼에 죽고 살면서 널찍한 주차장을 보유한 사람에게 제격입니다. 아니면 도요타의 해리어(Harrier)도 있습니다(‘약탈자’라는 뜻으로, 어원은 바이킹의 노략질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앵글로색슨어 hergian). 자동차 회사의 설명에 따르면 “미래를 향해 정면으로 거침없이 달려나가 새 지평을 여는” 차입니다. 딱 제가 찾던 차네요. 도요타의 해리어는 후에 이름이 Lexus RX로 바뀌었습니다.
지프(jeep)는 G.P.(General Purpose ehicle, 범용 차량)를 줄인 말입니다. V.P.(ice President, 부통령)를 Veep라고 줄여 말하는 것처럼요.
한편 독일어로 ‘국민의 차(people’s car)’를 뜻하는 폭스바겐(olkswagen)의 모델 이름들은 군대와 거리가 멉니다. 온통 바람과 해류 일색인데, 이를테면 시로코(Scirocco, 사하라 사막에서 지중해 지역으로 부는 바람), 파사트(Passat, 독일어로 무역풍), 폴로(Polo, 극풍), 제타(Jetta, 제트 기류), 골프(Golf, 멕시코 만류) 등입니다.
그런가 하면 국제적 감각을 강조하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이탈리아 도시 시에나(Siena)와 소렌토(Sorrento)의 철자를 멋대로 바꾼 도요타의 Sienna와 기아의 Sorento도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이야기: 음식
‘생명의 양식’으로 일컬어지는 bread(빵)는 독일어 Brot의 사촌으로, ‘끓이거나 발효시킨 것’이라는 뜻을 가진 원시 게르만어 brewth가 그 어원입니다. 빵은 맥주처럼 발효가 필요하니까요.
주기도문에 “daily bread(일용할 양식)”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만 봐도 빵이 얼마나 중요한 양식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찌나 중요했는지 bread와 dough(반죽)는 속어로 ‘돈’을 뜻하기도 하죠. breadwinner는 양식을 벌어오는 사람이니 ‘가장’입니다. ‘안주인’을 뜻하는 lady의 어원은 hlaefdige, ‘빵 반죽하는 사람’이고요. 한편 woman(여성)은 ‘wife-man’이 변형된 wimman에서 유래했습니다. 빵의 일종인 베이글(bagel)도 독일어 쪽에서 왔는데요, 독일어 계통의 언어인 이디시어로 beygl이 ‘고리’를 뜻했습니다.
대니시 페이스트리(Danish pastry)는 그냥 덴마크에서 건너왔기에 그렇게 불립니다. 반면 같은 페이스트리 종류지만 크루아상(croissant)은 어원적으로 더 풍부합니다. 프랑스어 croissant은 영어의 crescent처럼 ‘초승달’이라는 뜻이죠. 두 단어 모두 ‘커지는’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달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악보에서 ‘점점 세게’라는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crescendo(크레셴도)도 마찬가지고요. 크루아상은 초승달처럼 굽어진 모양으로 만드는 게 전통입니다. 그런데 요즘 영국에서는 첨예한 논란 속에 크루아상을 곧은 모양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에 마멀레이드를 바르려면 나이프질을 족히 세 번은 해야 하는데 시간 낭비라나요(한편 마멀레이드(marmalade)는 고대 그리스어로 ‘꿀’이라는 뜻의 meli와 ‘사과’라는 뜻의 malum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반죽이라면 피자(pizza)를 빼놓을 수 없죠. 이탈리아어 pizza는 그냥 ‘파이(pie)’라는 뜻이었고, 납작한 빵 pita(피타)와 동원어 관계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패티(patty)는 원래 고기가 아니라 빵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작은 팬으로 구운 빵’이었고 ‘반죽’을 뜻하는 라틴어 pasta에서 왔습니다.
파이(pie) 이야기로 가볼까요. eat humble pie(잘못을 달게 인정하다)라는 표현은 언뜻 연상되는 것과는 다른 유래를 지닙니다. 농민들은 예전에 ‘umble’로 만든 파이를 먹었습니다. umble이란 사냥으로 잡은 짐승의 내장으로, 고급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offal(내장), 즉 고기를 다듬을 때 ‘떨어져 나가는(fall off)’ 부위였죠. 그런데 ‘humble(변변찮은)’의 h가 예전에는 묵음이었기에 말장난을 하기에 딱 좋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런던 동부를 제외한 영국 전역에서 h 소리를 내게 됐지만, umble은 영어에서 아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편 humble은 라틴어 humilis에서 왔습니다. humus가 ‘땅, 흙’이고 humilis는 그 형용사형이었거든요.
그다음 차례는 도넛(doughnut)입니다. 왜 nut(견과)이 들어가냐고요? 처음에 나온 도넛은 밀가루 반죽을 작고 동그랗게 빚어 튀긴 견과 모양이었거든요. 오늘날은 그런 것을 도넛 홀(doughnut hole)이라고 하죠. 반죽 덩어리를 둥글납작하게 펴서 가운데를 뚫었을 때 나오는 그 자투리 반죽으로 만든 도넛을 말합니다.
어쨌거나, hole구멍은 어원상 ‘무(無, nothing)’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black hole(블랙홀)도 결국 ‘무’인 셈이죠. 네덜란드의 도넛 이름은 어째 좀 느끼합니다. oliekoek(올리쿡)이라고 하는데 ‘기름 케이크(oil-cake)’라는 뜻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리 매력적인 이름은 아니네요.
말이 오락가락: 술
어느 문화권에서나 사람들은 술을 손쉽게 즐기거나 코가 비뚤어지게 마실 방법을 열심히 찾기 마련입니다(‘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다’를 뜻하는 carouse(커라우즈)는 ‘진탕 마시다’를 뜻하는 독일어 gar austrinken(가라우스트링켄)에서 유래했습니다). 심지어 불법도 무릅쓰죠.
종교에 따라서는 음주를(그리고 그 밖의 몇 가지 재미있는 활동을) 계율로 금하기도 하지만, 정부에서 법으로 금지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 마실 궁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7세기의 밀주꾼들은 ‘장화 목(bootleg)’ 속에 술병을 숨기고 다녔습니다. 그런 술을 bootleg(밀주)라고 불렀죠. 20세기 초 금주법 시대의 미국에서는 비밀리에 운영되는 판매점에서 조용히 술을 구했습니다. 그런 가게에서는 ‘소곤소곤 말해야’ 했으므로 그런 곳을 speakeasy(주류 밀매점)라고 불렀습니다.
pub펍(public house, '공공 회관’의 준말)으로 불리는 영국의 술집은 면허가 있어야만 손님이 술을 사서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한편 미국의 주류 판매점은 package store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술을 ‘포장된 제품(package)’ 상태로만 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수병들은 럼을 희석한 grog(그로그)를 마셨는데, 그 술 이름은 골이 진 천인 grosgrain(그로그랭)으로 만든 외투를 즐겨 입었던 어느 제독에게서 유래했습니다(항해 중 거센 풍랑이 걱정될 때는 술을 마시는 방법 외에, ‘항해자와 복통의 수호성인’ 성 엘모(St. Elmo)에게 기도하는 방법도 있었죠. 성 엘모는 포르미아의 주교 에라스무스였는데, 벼락이 바로 옆에 떨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설교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배의 돛대가 낙뢰를 맞아 불꽃을 일으키는 ‘성 엘모의 불(St. Elmo’s fire)’이라는 현상을 뱃사람들은 성 엘모가 지켜주고 있다는 신호로 여겼습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코로나 방전으로 인한 발광 현상”이지요.
두송(杜松)의 열매인 두송자(juniper)로 향을 낸 술 진(gin)은 네덜란드에서 그 형태가 완성됐고, 이탈리아에서는 ginera라고 불렸습니다.
보드카(odka)는 ‘작은 물’입니다. 러시아어의 ‘-ka’는 지소사거든요. 독한 술은 자고로 ‘뜨거운’ 느낌인가 봅니다. 브랜디(brandy)는 ‘brandywine’의 준말인데, 어원인 네덜란드어 brandewijn(브란데베인)은 ‘불에 태운 와인’, 즉 ‘증류한 와인’을 뜻합니다. 영어의 brand도 ‘벌건 숯덩이’라는 의미가 있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마시는 술을 가리켜 ‘firewater’라고 했습니다.
역시 독한 술인 압생트(absinthe)의 이름은 성분으로 들어 있는 ‘쓴쑥’의 학명 Artemesia absinthium에서 따온 것입니다. 압생트는 녹색을 띠어서 프랑스어로 ‘녹색 요정’을 뜻하는 '라 페 베르트로'도 불립니다. 압생트 하면 보헤미안과 19세기 초 파리의 이미지가 떠오르죠. 환각 작용이 있다는 오해로 미국에서는 한동안 판매 및 음주가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색깔 있는 알코올이라면 spirit leel(기포관 수준기) 안에 들어 있는 물질이기도 합니다. 유리관 속에 알코올을 꽉 채우지 않고 기포를 남긴 채 밀폐해 그 기포의 위치로 수평을 확인하는 도구죠.
‘영혼, 정신, 증류주, 알코올’을 뜻하는 spirit의 기원은 ‘숨쉬다’를 뜻하는 라틴어 spirare입니다.
그럼 건배(toast)를 제안하면서 이번 장을 마무리할까요. 그 toast는 ‘살짝 구운 빵 조각’을 가리키는 toast에서 유래한 것이 맞습니다. 옛날에는 와인을 마실 때 와인에 향신료를 친 토스트를 담그고 티백 우려내듯이 불렸습니다. 와인이란 원래 수준 이하인 것도 많은 데다, 예전에는 좋은 술을 마실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향신료의 힘을 빌리면 맛을 감추는 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건배할 때 skål(스콜)이라고 외치는데, 옛날에 shell(껍데기)을 술잔 삼아 술을 마신 것이 그 기원입니다. 영어에서 stein(스타인)이라고 부르는 독일식 맥주잔은 원래 stone(돌) 또는 stoneware(도자기)로 만든 술잔이었고요. 한편 고대 영어로 ‘건강’을 뜻했던 waes haeil은 오늘날 ‘술잔치’를 뜻하는 wassail이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들은 코가 비뚤어지게 마실 궁리만 하나 봅니다.
꽃에 담긴 말
꽃에는 사연이 많습니다. 꽃에 관한 신화라면 숱하게 널려 있잖아요.
히아킨토스(Hyacinth)는 아폴론이 애지중지하던 소년이었습니다. 둘이 원반을 던지고 놀던 중에 히아킨토스는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맞아 죽고 맙니다. 그가 죽은 자리에 아폴론의 눈물이 떨어짐으로써 피어난 꽃이 바로 히아신스(hyacinth)랍니다.
narcissus(수선화)는 물가의 젖은 땅을 좋아합니다. 미소년 나르키소스(Narcissus)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탈진하여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지요. lily(백합)는 헤라의 순백색 젖이 땅에 흘러내린 자국에서 돋아난 꽃입니다. daffodil(수선화)은 asphodel(아스포델)이 변형된 것인데, 백합과 식물인 아스포델과 생김새가 닮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아스포델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저승에 피어 있는 꽃이기도 하지요.
라벤더(laender)는 laundry(빨래)와 어원이 같습니다. ‘빨랫감’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laanderia가 변형된 것이죠. 라벤더는 옷을 새것처럼 보관하는 데 쓰였습니다. 사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웬만한 섬유 유연제보다 향이 좋아요.
artemisia(쑥)는 사냥과 야생동물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에서 유래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쑥은 조경에 널리 쓰이는 식물입니다.
한편 허브 이름은 서정적인 것이 많습니다. 오레가노(oregano)는 ‘산의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로즈메리(rosemary)는 ros marinus, 즉, ‘바다의 이슬’입니다. 바질(basil)은 ‘왕’을 뜻하는 그리스어 basileus에서 왔고, 프랑스어로도 l’herbe royale(왕의 풀)이라고 합니다. 바실리카(basilica)는 왕궁의 모양을 본뜬 교회 건축양식이지요.
꽃에는 그 꽃을 연구한 학자의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예컨대 달리아(dahlia)는 스웨덴의 안데르스 달(Anders Dahl), forsythia(개나리)는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포사이스(William Forsyth), 포인세티아(poinsettia)는 초대 주멕시코 미국 대사 조엘 포인셋(Joel Poinsett)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생물 학명에 쓰이는 ‘이명법’(속명+종명)의 아버지 카를 폰 린네는 요한 친(Johann Zinn)이라는 학자의 이름을 따서 zinnia(백일홍)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한편 민들레는 웅장한 이름부터 우스꽝스러운 이름까지 다양하게 불립니다. 민들레의 영어 이름 dandelion은 프랑스어의 dent-de-lion에서 가져온 것으로, ‘사자의 이빨’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정작 프랑스에서는 좀 모양 빠지는 다른 이름으로도 부릅니다. pissenlit(피상리)라고 하는데, 영어로 옮기면 bedwetting, 즉 ‘오줌 싸기’입니다. 민들레가 이뇨 작용을 해서라네요.
하지만 민들레는 결코 얕잡아 볼 꽃이 아닙니다. 민들레는 꽤 위험할 수도 있거든요. 캐나다 캘거리에서는 ‘민들레 억제(dandelion containment)’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주민은 민들레 잎이 미끄러워서 “공공 안전 위험 요인”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주민은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세금을 열심히 내지만 거리는 잡초 천지”라면서, “민들레가 득시글거려 주변 환경의 장기적 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캘거리는 시 조례에 의해 민들레를 개인 소유의 마당에서만 허용하고 있습니다(높이 15센티미터 이내로). 민들레 이외의 다른 식물도 규제 대상입니다. 나무가 높이 자라 송전선에 간섭을 일으킨다면? ‘법규 불이행 식물(non-compliant egetation)’이 됩니다.
좋은 말 나쁜 말
마지막 한마디
아이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일이 거의 없죠. 도무지 남의 일처럼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른은 이따금씩 죽음을 상기시키는 사물, 메멘토모리memento mori(직역하면 ‘죽음을 기억하라’)를 마주치기 마련입니다(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은 잊고 살기 너무 쉽죠. 그러니 다이어리나 수첩에 꼭 적어둡시다. ‘momento’라고 잘못 적지 않도록 주의하시고요).
죽음에 관한 짧은 장을 준비했는데요, 어원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고 불경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chapter(장,章)는 앞에서 알아본 chef(요리사)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caput 또는 capitis에서 왔습니다. 같은 어원에서 온 단어로 머리에 쓰는 cap(모자), ‘첫머리부터 다시 연주하라’는 뜻의 음악 용어 다 카포(da capo), 참수형을 비롯한 ‘극형’을 뜻하는 capital punishment 등이 있습니다. 철자가 헷갈리기 쉬운 capital(수도)과 Capitol(국회의사당)도 어원이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정치계나 문화계의 거물들은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훈족의 왕 아틸라는 453년 코피가 나서 죽었습니다. 아틸라와 ‘신의 채찍(Scourge of God)’ 칭호를 놓고 경쟁한 몽골 제국의 후예 티무르는 코감기에 걸려 죽었습니다. 굳이 소문을 퍼뜨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엘비스 프레슬리는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변비로 죽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왕 산헤립은 거대한 황소 조각상에 깔려 죽었습니다.
무엇이라 부르랴
이름의 기원
영 예뻐 보이지 않는 이름도 뜻을 알고 나면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바버라(Barbara)는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처럼 들리죠. 맞습니다. 그 기원은 ‘더듬거리는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였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barbarian(야만인)이었고요. Barbara는 ‘이국적인, 이방인의, 야만적인’이라는 뜻을 갖게 되면서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합니다. 모두 바비(Barbie) 인형에도 적용되는 속성이에요. 어쨌든 제가 알고 지내는 바버라가 대여섯 명이 있는데 미련한 사람은 한 명도 없던데요. 뭐, 솔직히 말하면 한 명쯤 있긴 한데 그렇게 심하진 않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미늘(낚싯바늘 끝이나 화살촉에 역방향으로 나 있는 가시)’을 뜻하는 barb는 라틴어 barba(수염)에서 왔습니다.
과거에는 참 끔찍한 Christian name(일부 문화권에서 성 앞의 이름을 일컫던 말)도 있었습니다. 제 조상 중에는 참을성이 아주 좋을 듯한 페이션스(Patience)라는 사람이 수두룩했고, 우아하게 뼈를 부러뜨릴 것 같은 그레이스 크랙본(Grace Crackbone)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웨이트 심슨(Wait Simpson), 웨이팅 로빈슨(Waiting Robinson)이라는 사람도 있었고요(뭘 그렇게 기다릴까요, 괴로운 이승의 삶을 마치고 어서 하늘나라로 갈 날을?). 게다가 늘 고마워하며 살아야 할 것 같은 생크풀 로빈슨(Thankful Robinson)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에 꼭 뜻이 있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요? 그냥 마음대로 만들어도 됩니다. 예컨대 제이든(Jayden)과 케이든(Caden)은 2014년에 인기 남아 이름 상위 11위 안에 든 이름입니다. 표기를 다르게 한 케이든(Kayden)과 제이든(Zayden)은 각각 57위와 75위를 차지했습니다.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에이든(Aidan, 게일어로 ‘불타는’)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이름들이죠. 에이든(Aidan)은 2020년 순위에서 4위 또는 5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렇다고 새로 만들어진 이름만 상위권에 있는 건 아니어서, 같은 해 100위권 안에는 세인트(Saint), 애틀러스(Atlas), 테너시(Tennessee), 듄(Dune), 케일(Kale)처럼 익숙한 단어도 눈에 띕니다.
남자 이름에 케일(Kale)이 있다면 여자 이름에는 역시 채소 이름인 로메인(Romaine, 63위)이 있습니다. 지명으로는 브루클린(Brooklyn, 9위)과 아일랜드(Ireland, 76위)의 인기가 꽤 높습니다. 첼시(Chelsea)와 브리터니(Brittany)도 오래전부터 인기였죠. 소리 나는 대로 온갖 희한한 철자로 적히곤 하는 매켄지(McKenzie)도 최근 4년간 여아 이름 상위 60위에 들 정도로 잘 나가고 있습니다.
이름은 이름일 뿐,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요? 제 경험으로 볼 때는 많이 중요합니다. 제 이름 데버라(Deborah)를 데브라(Debra)라고 적으면 지옥에 떨어지실 겁니다. 그것도 꽤 깊숙한 지옥으로요. psychopomp(영혼인도자)가 도착할 새도 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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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