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지키는 세계
 
지은이 : 비키 허드(역:신유희)
출판사 : 미래의창
출판일 : 2023년 06월




  •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작은 곤충이라고 합니다. 최고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풍부한 예시와 탄탄한 근거로 지구를 지탱하는 작고 무수한 존재를 이야기해드립니다.


    벌레가 지키는 세계


    벌레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벌레에게 배울 수 있는 것들

    무척추동물은 그 수와 종류가 매우 많으며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곳에 서식한다. 그들은 바다의 해면동물에서 출발해서 6억 5,000만 년이 넘도록 지구에서 생존하고 진화해왔다. 인간이 지구 무대에 등장한지 겨우 20만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오랜 기간 동안 적응 과정을 거친 무척추동물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곳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무척추동물의 형태와 기능은 그들을 둘러싼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적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해왔다. 땅속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지렁이는 매끈한 몸을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땅을 파고 몸마디 즉, 체절마다 난 짧고 뻣뻣한 털, 강모로 흙을 밀어내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박각시나방의 긴 대롱 같은 혀는 다른 곤충들은 닿을 수 없는 꽃의 깊숙한 부분까지 닿을 수 있다. 이처럼 무척추동물이 어떻게 환경과 어울려서 살아가는지 들여다보면 가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몇몇 바퀴벌레 종은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 그중에서도 포유류처럼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비롯한 여러 영양소가 풍부한 ‘모유’를 생성하는 바퀴벌레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딱 하나, 태평양 딱정벌레 바퀴벌레(pacific beetle cockroach)다. 이 바퀴벌레는 날개 아래에 새끼를 품으며 젖을 먹인다. 놀랍게도 어떤 연구원들은 이것이 인간에게 새로운 ‘슈퍼푸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극소량을 얻기 위해 바퀴벌레 수백 마리의 젖을 짜는 것은 다소 성가실 듯하다.


    송장벌레는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새끼에게 셀룰로스를 소화하는 데에 꼭 필요한 장내 미생물을 나눠준다. 새끼는 탈피를 할 때마다 이 소화 도구를 잃기 때문에 새끼의 생존을 위해 성충들은 새끼가 완전히 자랄 때까지 곁에서 머무르며 돌봐준다. 여기서 아이를 양육하는 인간과 흥미로운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인간 역시 아이가 다양한 연령대가 섞인 집단과 계속해서 접촉하고 미생물에 노출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아이의 면역력을 증진해준다.


    벌레가 어떻게 생존하고 행동하며, 거대한 공동체 내에서 다른 종과 어떻게 소통하고 조직을 이루는지 등을 살펴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나는 매번 벌레에게 놀란다. 벌레가 생태계를 관리하고 먹이를 찾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생존하고, 적응하고, 군집을 이루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한다. 무척추동물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며, 모두의 고향인 하나뿐인 지구에서 우리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살지에 대해 해답을 얻게 될 것이다.


    다양성이 주는 교훈

    자연은 대체로 획일성을 피하고, 다양한 생명과 풍경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진 모습을 선호한다. 생태계를 움직이는 것은 종의 조합과 상호작용이다 그리고 벌레는 종의 조합을 구성하는 동물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012년 한 연구에 따르며, 파나마의 열대우림 약 1에이커에 사는 곤충 종이 지구 전체에 사는 포유동물 종보다 많다고 한다. 곤충들은 놀라운 기술로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인간은 농업이나 목축업을 통해 자연을 획일화함으로써 중대한 문제들을 초래했다. 드넓은 토지에 단일 작물을 심고, 전 세계에 똑같은 잔디밭을 가꾸었다. 교육 시스템이 사람들의 사고를 획일화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빼앗아 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연 환경도 다르지 않다. 이제라도 우리는 이처럼 획일화된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이 자연과는 분리된 존재라는 잘못된 인식과 어떤 위협도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곤충에게 배워야 한다.


    생태계는 종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에 엄격한 경계선을 짓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동은 유전자와 혈통을 뒤섞이게 해주고, 유용한 돌연변이가 일어날 기회를 제공해주며, 종의 생존과 적응 확률을 높인다. 이동은 무척추동물만큼이나 우리 인간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무척추동물은 개체 수도 많고 번식도 빨라서,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기가 쉽다. 특정 종이 특정 장소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가정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우리는 자꾸만 장벽을 쌓아 올리고, 갈등을 심화하고 있지만, 이동과 교류는 생존의 핵심 요소다.



    리버깅으로 자연을 다시 회복하다

    리와일딩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한때 지구를 뒤덮었던 숲, 강, 습지 등의 자연 생태계를 다시 조성하고,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야생 그대로 놔두는 것을 의미한다.


    리와일딩 프로젝트는 대개 그 규모가 크다. 인간의 간섭과 오염 없이 자연이 스스로 회복되도록 놔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와일딩은 드넓은 토지와 그곳에 사는 대형 초식동물 또는 육식동물, 그리고 우리와는 동떨어진 토지 소유주나 기관의 중대한 의사결정과 모두 연관되어 있다. 물론 이것들도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인간을 완전히 배제한 채 리와일딩을 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인간도 자연 세계의 일부이니 말이다. 대신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음으로써 생태계와 다시 교류하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번성하는 더 풍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 더 많은 벌과 지렁이와 파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지구에서 가장 자그마한 생물체에서부터 리와일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척추동물은 모든 리와일딩 프로젝트의 근간이다. 지혜롭게 이동하고, 적응하고, 번식하는 모든 과정에서 무척추동물은 마치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보병처럼 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일부 꿀벌, 누에고치, 생물학적 방제용 곤충을 제외하면 우리가 만나는 거의 모든 무척추동물은 ‘야생동물’이다. 우리 주변에 무척추동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일 텐데도, 무척추동물은 우리에게 사육되거나 길들지도 않으며, 심지어 우리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

    무척추동물과 그들의 역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무척이나 뿌듯했다. 곤충을 무서워하고 싫어했던 사람들이 벌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내 친구들과 가족 동료들도 정원에 꿀벌 호텔을 만들고, 야생화를 심고, 잔디밭을 깎지 않고 내버려 두기 시작했고, 풀밭에서 큰알통다리하늘소붙이 등의 벌레를 보거나 수입 깍지콩에서 이국적인 방패벌레를 발견하고는 사진을 찍어 이게 무슨 벌레인지 내게 물어보곤 한다. 덕분에 나도 벌레를 구별하는 기술이 좀 더 늘었다.


    수백 년간, 헌신적인 벌레 관찰자들이 모여 여러 단체와 커뮤니티를 이루고 자발적으로 벌레에 관한 소중한 자료와 그림을 남겨준 덕분에 우리는 생물 종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난 10여 년간은 영국의 비 코우즈 캠페인(Bee Cause Campaign)과 미국의 웨스턴 모나크 카운트(Western Monarch Count)등 여러 시민 과학 프로젝트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으로 벌레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급증했다. BBC다큐멘터리 ‘스프링워치’와 같은 프로그램 역시 무척추동물의 다양성과 그들의 생애 주기와 역할 등에 관한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벌레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벌레를 사랑하고 리버깅을 원하는 사람들 역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한편, 버그라이프와 그 밖의 단체들도 여러 혁신적인 캠페인을 벌여 중요한 야생동물 서식지와 종을 보호하고, 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데에 앞장서 왔다. 주로 젊은 층의 주도하에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운동인 ‘기후 파업(Climate Strike)‘과 ’멸종반란(Extinction Rebellion)’ 또한 기후변화와 더불어 곤충과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리버깅의 좋은 점은 누군, 어디서든 침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벌이나 박각시나방이 찾아올 수 있도록 작은 녹지를 꾸미는 것도 좋고, 벌레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벌을 시민으로 인정한 코스타리카의 어느 도시부터 런던의 텃밭 3,000곳을 자연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놀라운 일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며, 이런 일이 지금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도심 속 녹지 조성은 얼마든지 가능할 뿐 아니라, 몹시 중요한 일이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리버깅’이라는 말은 베네딕트 맥도널드(Benedict Macdonald)의 최근 저서 ‘리버딩: 영국과 영국의 새 리와일딩하기(Rebirding: Rewilding Britain and its Birds)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베네딕트는 우리 주변에서 더 많은 새를 만나려면, 그보다 큰 동물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자연을 다시 설계하고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를 비롯한 멸종위기 종을 회복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새와 비버의 시선으로 자연을 볼 때 리와일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벌레의 시선으로도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리버깅을 위한 더 큰 과제

    우리는 벌이나 개미, 지렁이, 늑대거미, 톡토기 등 전체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종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무척추동물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그것이 크든 작든,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에 따라 멸종하는 종과 그렇지 않은 종이 나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에 작용하고 있는 여러 권력과 이해관계 때문에 우리가 이 모든 문제를 뒤집으려면 좀 더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 인류는 너무나 오랫동안 기후와 자연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쳐왔고, 물, 공기, 토양을 매우 심각하게 오염시켰다. 무척추동물의 멸종을 불러온 깊고 복잡하게 얽힌 요인들을 제거하려면, 개인뿐만 아니라 국제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 문제에는 거대한 기득권까지도 연관되어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조치를 취하고 잘 대응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는 나비, 벌, 개미, 쇠똥구리가 가장 피해를 많이 입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잠자리 종과 날도래를 포함한 네 가지 수생 곤충 무리 또한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사람들은 대개 서식지가 매우 한정적이거나 특정한 먹이만 먹는 종이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서 사라지면, 환경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종이 그 빈자리를 메울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먹이와 서식지가 한정적인 종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걱정스럽게도, 일반적이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들 역시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가장 긍정적인 자료를 기준으로 봐도, 전 세계 곤충의 생물량은 연간 2.5%씩 줄어들고 있다. 이는 꽤 충격적인 수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지금 나와 있는 분석 결과들은 아직 불완전하며, 연구 범위도 지나치게 한정적이다. 정확한 분석을 막는 큰 원인 중 하나는 몇몇 연구들이 일부 지역에서 파악한 결과를 전국 혹은 세계의 추세인 것처럼 확대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 실제 생물량의 변화는 국가별로, 심지어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로 크게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지나친 추정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무척추동물의 감소에 관해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서, 곤충 중에서도 아주 적은 일부만이 장기 추적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다는 아니지만 많은 연구들이 어느 정도는 필연적으로, 연구 자금을 댈 수 있는 서북부 유럽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즉 지금 우리는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재앙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특히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무척추동물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기후변화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다. 내가 환경 운동에 몸담았던 지난 30년간 기후변화는 인류 전체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노력해야 하는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무척추동물은 몸집이 작으므로 기온 변화 및 기상이변, 가뭄, 강우 패턴의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부피 대비 표면적이 넓어서, 밀랍 같은 외피 등의 보호장치가 있어도 쉽게 수분을 잃고 마른다. 척추동물의 성장 역시 기온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영국의 로담스테드연구소(Rothamsted Research)에서 40년간 흡입 포획 장치로 파리를 잡아서 연구한 결과, 파리의 정점 비행 시기가 1974년에는 7월 23일이었으나 2014년에는 7월 6일로, 평균 14일가량 앞당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뿐만 아니라 관찰되는 파리의 수도 3분의 1이 줄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조류의 생태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파리는 조류의 중요한 먹이 자원이므로 적절한 시기에 충분한 수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처럼 새와 곤충 개체 수 감소 사이에는 종종 밀접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파리의 생애 주기와 개체 수에 나타난 이 같은 변화는 다른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며, 그 주요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꼽힌다.


    환경오염의 결과

    인간은 강과 바다에, 토양에, 대기에 유독한 혼합물질을 배출해왔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와 더불어, 농장과 가정에서 사용되는 농약, 제초제, 살충제 등의 화학물질부터 자동차와 가축으로 인한 대기오염, 하수 폐기물과 영양염류로 인한 수질오염에 이르기까지, 온갖 오염 문제가 무척추동물을 괴롭히고 있다.


    환경오염은 벌레를 죽이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벌레의 길 찾는 능력이나 번식하는 능력을 떨어뜨리는 등 만성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벌레가 의존하는 식물이나 먹이 자원을 망가뜨려서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가령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제초제는 제왕나비가 알을 낳는 식물인 박주가리를 없애버렸다.


    환경오염이 생물 다양성을 해치는 주요 요인이라는 근거는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여러 전문가들은 해안 생태계에 침출된 화학 비료 때문에 400곳의 바다에 총 24만 5,000km²가 넘는 ‘데드존’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규모로 따지면 영국 전체보다 큰 셈이다. 또한 1980년 이후로 플라스틱 공해가 10배 증가했으며, 산업시설에서 배출된 중금속과 용제, 유독성 폐기물 등의 각종 쓰레기가 매년 거의 3~4억 톤가량 물속으로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요소가 무척추동물이 사는 환경에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그에 따라 앞으로 지국에서는 가장 강인한 종들만 생존하여 번성할지도 모른다.



    농업, 식품산업, 소비가 벌레에 끼치는 영향

    요즘 아몬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거대하고, 인공적이고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아몬드 나무 플랜테이션의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전 세계 아몬드의 약 80%가 캘리포니아의 센트럴밸리에서 생산된다. 아몬드의 수분을 위해 양봉가들은 ‘가축’으로 분류된 양봉꿀벌 군집 수천 개를 이곳으로 실어 나른다. 그러나 플랜테이션의 척박한 조건은 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그들이 데려온 ‘가축’의 30%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다. 야생벌과 꽃등에 같은 야생동물들도 똑같은 나무만 줄줄이 심겨 있는 그러한 환경에서는 생존하지 못한다.


    농업이 야생동물 서식지를 파괴함으로써 무척추동물의 개체수를 줄인다는 사실은 이제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경작지의 규모는 무척추동물의 존재와 번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캐나다의 한 농장에서 나비, 꽃등에, 벌, 딱정벌레 종의 수를 조사한 결과, 작물의 경작, 다양성, 농약 사용 여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경작지의 크기가 갖는 영향력 또한 상당히 큰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무척추동물이 이동할 수 있는 ‘녹색 통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경작지 주변에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 산울타리, 풀 등은 무척추동물에게 꼭 필요한 ‘고속도로’이자 서식지가 되어준다.


    필요 없는 잡초와 벌레는 전부 제거하여 엄격하게 관리하는 단일재배 환경에서는 다양한 종의 무척추동물이 살기 어렵다. 영국의 야생 꽃가루 매개자를 조사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2013년까지 야생 꽃가루 매개자 종의 대부분이 쇠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교롭게도 농업의 기업화가 일어난 시기와 일치한다.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 소규모 논밭에서 다양한 작물을 키웠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드넓은 토지에 온통 한 가지 작물만 재배하고 있다. 그래야만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작은 논밭 여러 개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경작지 사이사이에서 자라던 나무와 야생화도 사라졌다. 더 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되면서 다채로운 목초지는 화학비료를 잔뜩 뿌린 풀밭으로 대체됐다. 이 모든 변화로 벌레, 특히 꽃가루 매개자 곤충이 선호하지 않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같은 획일화된 풍경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현대 식품산업이다. 앞으로 더 나은 서식지를 조성하여 리버깅을 이루려면, 농부와 토지 관리자들의 인식 개선도 물론 중요하지만, 생산자들이 무척추동물 친화적인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해도 수익이 날 수 있도록 식품 시장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식습관을 리버깅하라

    이번에는 식품의 생산 ‘방식’에서 시선을 돌려서, 생산되는 식품의 ‘종류’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별로 중요한 이슈로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작물과 가축의 다양성, 종자와 품종의 유전적 다양성은 무척추동물의 서식지와 먹이 자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정말로 많은 종류의 벌레와 깊이 관련된 문제다.


    현재 식품 산업은 균일한 수확물을 많이, 저렴하게, 최대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단일재배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고도로 기업화된 집약적인 목축 시스템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값싼 육류 또한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다. 농장에서 똑같은 품종의 동물을 대규모로 사육하며, 엄격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 고단백 사료를 먹이고 항생제와 살충제를 투여한다.


    그러나 소비자인 우리는 마트에 가서 온갖 종류의 식품이 휘황찬란하게 진열된 모습만 보니, 우리가 먹는 음식의 상당수가 몇 안되는 식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하기 어렵다. 우리는 영양소 대부분을 옥수수, 쌀, 밀, 그리고 감자나 카사바 같은 뿌리작물에서 섭취한다. 미국에서 대량으로 재배되는 옥수수는 크고 파괴적인 작물 중 하나다. 대규모로 단일재배로 생산되고, 대개는 독한 농약에도 잘 죽지 않도록 유전자 변형을 한 것이며, 토양 침식과 오염을 일으킨다. 그러나 옥수수 사료 및 고과당 옥수수 시럽 산업은 농식품 산업 중에서도 가장 입김이 센 편이어서 그와 관련된 정부 지원금, 시장, 무역 수익을 지키기 위한 로비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아직도 정부 지원금의 상당 부분이 옥수수 관련 식품 산업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치와 경제: 벌레가 돌아오려면 바뀌어야 할 것들

    무척추동물과 리와일딩을 이야기하면서 권력과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이슈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리버깅에 관한 책을 쓸 수 없었다. 우리가 정말로 리버깅을 원한다면, 의사결정의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 사회 시스템 깊숙이 자리 잡은 경제적·정치적 요소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리버깅도 실패로 끝날 것이다. 무척추동물이 번성하려면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그저 정원사나 농부나 소비자로서만이 아니라, 시민이자 정치 참여자로서 무척추동물과 그들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그동안의 환경 캠페인은 특정 보호구역이나 종을 지키는 데에만 지나치게 집중해왔다. 그것도 물론 좋은 전략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척추동물의 감소를 초래한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요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고, 거기에 개입하고 있는 강력한 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끌고 가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벌이나 흰개미처럼 복잡한 초사회(super-societies)를 이루는 벌레들은 각각이 맡은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며, 매우 효과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갖추고 있다. 각 개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탄탄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침입자로부터 군집을 지키며, 일개미와 새끼들과 여왕개미가 적절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집이 잘 유지되도록 협력한다.


    반면 우리 인간은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지배 구조를 발달시켜왔으며, 이를 통제할 햄도 거의 없다. 무척추동물은 우리와 자연의 관계가, 우리가 자연을 돌보는 태도가 정상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들의 다양성, 적응력, 그리고 개체 수를 고려하면, 그 어떤 동물보다도 무척추동물의 생존 능력이 뛰어난 것이 틀림없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다발적인 스트레스 요인은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그 원인은 현 기득권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힘이 너무 강력해서 시스템 차원의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놀랍도록 이 기득권층에는 매우 거대하면서도 대체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산관리 회사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특정 오염원이나 환경 피해와 같이 시스템의 일부분 또는 한 가지 과제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정책이나 상업적 관습 같은 다른 요인인데도 말이다. 권력과 영향력의 이슈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또한 우리는 논의하기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시스템, 가령 가난이나 불평등, 과소비 문제를 다루기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이 왜 리버깅을 하는 데 중요한지를 이해하려면, 형편없는 지배구조와 정치, 불평등과 가난, 무분별한 소비지상주의의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리버깅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더 나은 미래

    생계유지에 꼭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자원을 얻을 수 있도록 권한과 수단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국적 기업에 의한 착취와 토지 수탈을 멈춰야 한다는 뜻이다. 산림과 같이 중요한 자원을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공동체에 보상을 제공하고, 여기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자연 자원과 친환경 농업 기술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며, 가난하고 소득이 낮은 지역을 위주로, 리스크가 낮고 과도한 대출 없이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생산 방식이 촉진되어야 한다.


    실제로 몇몇 아프리카 국가의 목화 농장에서는 이와 같은 접근이 이루어져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국제농약행동망은 지난 20년간 베냉과 에티오피아에서 유기농 목화를 재배하는 농부 수천 명을 지원해왔다. 그들은 지역 사회와 협력하여, 비싸고 해로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좋은 작물 재배, 종합적 해충 방제, 토양 개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들이 지킨 5가지 핵심 원칙은 직접적인 훈련과 지원, 마을 협동조합 설립, 농약을 대체할 수 있는 해충 관리 기술 제공, 여성과 소녀의 인권 신장, 식품 안전 개선이었다.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농장 공동체는 그들이 키운 유기농 목화를 거래하여 이전보다 훨씬 높은 이익을 거두었고, 무척추동물을 비롯한 자연 생태계도 풍요로워졌다. 이것이야말로 ‘윈윈’하는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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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