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위기에 대한 도구적, 혹은 기술적 해결책은 일부를 위한 해결책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환경 운동이 개인의 ‘희생’에만 몰두한다면 이는 언제나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계몽, 설교, 수치심, 물질적인 편안함을 포기하라는 요구 등의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핵심은 편안함을 우리 일상에서 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에 대한 우리의 정의의 바꿔야 하는 것이다. ‘누가 편안함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관점에서 편안함을 정의하는가’의 문제다. 우리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지점에 의문을 갖고, 우리의 편안함이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을 조건으로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편안함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잃기 시작할 수 있다.” 그는 묻는다. 과연 우리가 마땅히 누린 개인적인 편안함 뒤에는 무엇이 오느냐고.
■ 저자 에릭 딘 윌슨
뉴스쿨The New School의 문예창작 MFA 프로그램을 졸업하고 현재 퀸즈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수필, 시, 문학 비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환경 인문학과 인종 문제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ricdeanwilson.com
■ 역자 정미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 영어학을 전공했다. 휴대폰을 만드는 기업에서 십여 년간 기획자로 일하다가 좋은 외서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매료되어 번역을 시작했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역서에는 《코인 좀 아는 사람》 《뇌가 행복해지는 습관》 《볼륨을 낮춰라》 《진화가 뭐예요?》 《더 히스토리 오브 더 퓨처》 《원 디바이스》 《내일은 못 먹을지도 몰라》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며 파괴하는 일 -11
1장 프레온 이전의 세계 : 개인적 편안함에 관한 문제
1 CFC-12 -043
2 냉각의 시작 -047
3 기계 냉장 기술 -061
4 습도를 지배한다는 것 -078
5 균일하고 보편적인 공기에 대한 믿음 -094
6 편안함의 과학화 -105
7 영화관과 냉방의 대중화 -119
8 개인적 편안함에 대한 정의 -136
9 냉방 자본주의 -157
(ESSAY) 프레온 회수 업자 샘과 그의 일에 관하여 Ⅰ -165
2장 프레온의 시대 : 계속되는 안전의 불확실성
1 모더니즘의 화신, 기적의 냉매 프레온 -189
2 기후 역사상 가장 지독한 그림자를 드리운 미친 천재, 토머스 미즐리 -195
3 쾌적 냉방의 시작과 화학적 쇼맨의 죽음 -211
4 더위와 인종 차별의 역학 -231
5 이동식, 가정식 에어컨의 부상과 사회적·심리적 풍경의 변화 -257
6 오존층, 지구의 방패가 아닌 파도와 같은 -281
7 파괴의 평범한 얼굴 -297
8 에어컨이 너무 일찍 가동된 슈퍼마켓 -313
9 자외선 지옥으로 가는 어떤 구멍에 관한 논쟁 -326
10 환경 재앙을 막기 위한 세계 최초의 협약, 몬트리올 의정서 -337
11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무기 -351
(ESSAY) 프레온 회수 업자 샘과 그의 일에 관하여 Ⅱ -359
3장 프레온, 그 이후 : 폐쇄계에 대한 믿음
1 또 다른 위기 -379
2 ‘오존 위기의 영웅’ 듀폰사의 민낯 -383
3 CFC 규제를 둘러싼 정치적 풍경들 -394
4 흰 피부와 검은 조약 -411
5 새로운 냉매의 출현과 지하 경제의 탄생 -418
6 냉방 중독 -433
7 느리고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폭력 -444
8 배출권 거래제의 아이러니 -459
9 열적 쾌적성이라는 열망의 번짐,
그 책임에 관한 정치적 질문 -480
10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상호 의존성을 인식할 수 있다면 -498
11 공공성의 회복, 모두를 위한 냉방 -515
12 현재진행형 기후 위기 -533
(ESSAY) 프레온 회수 업자 샘과 그의 일에 관하여 Ⅲ -541
맺음말 개인적인 편안함 뒤에는 무엇이 올까 -561
감사의 글 -582
주석 -586
에어컨을 포함한 냉각 장치들이 기득권의 ‘조용한 도구’가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후위기 문제를 어떻게 전가하는지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세요.
일인분의 안락함
프레온 이전의 세계: 개인적 편안함에 관한 문제
편안함의 과학화
여느 추상적인 개념처럼 ‘편안함’은 간결하게 정의하기가 힘들다. ‘개인적 편안함’은 더욱 그러하다. 편안함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해보는 편이 더 쉽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편안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물질적, 정신적, 영적 면에서의 ‘만족’ 또는 ‘편함’을 의미한다. 내가 가진 사전은 편안함이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편안함’이 단지 ‘고통이 없는 상태’라면 더 가볍지만 뚜렷한 범주의 감정인 ‘불편함’도 마찬가지다.
찌는 듯한 거리에서 냉방이 되는 공간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 우리는 격한 안도감을 느끼고 급격한 온도 변화를 인식하면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에 몸이 적응하고, 계속 일을 하다 보면 그 쾌감에 대한 인식, 그리고 쾌감 자체가 사라진다. 우리가 ‘편안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에어컨이 적당한 온도로 가동될 때의 쾌락도 고통도 아닌 육체적 자각의 부재 상태다. 이러한 육체적 혹은 정신적 상태는 보통 ‘거슬리는 것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편안함을 뚜렷한 느낌이 아니라 뚜렷한 느낌의 부재, 다시 말해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적인 마취 상태로 생각할 수도 있다.
1967년에 나온 공기조절 매뉴얼은 “인간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환경으로 태어난다”라고 시작한다. 우리는 벌거벗고, 연약한 상태로, 소리를 지르며 태어났다. 그리고 꼭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 것이라 희망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의 많은 진보주의자가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신체적·정신적으로 편안함이 지속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고된 일로부터 해방될 때이며, 이런 편안함은 인간이나 신의 어떤 행위에 의해서 순식간에 우리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의에 난이도를 더하자면, 편안함은 거의 전적으로 상대적이다. 지금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하는 것이 다시는 나를 편안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처럼,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가장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개인적 편안함에 대한 관심이 때로 우리의 공동체, 우리의 국가, 우리의 대륙, 우리의 지구의 안위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더라도, 이러한 상대성을 직관적으로 잘 인지한다.
편안함에 대한 이처럼 애매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프레온 이전, 즉 미국 대중이 쾌적한 냉방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이전의 업계는 ‘편안함’, 정확히 말하면 ‘열적 쾌적성’에 대해 새롭고, 다소 제한적이긴 하지만 보편적인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 제한적 정의는 에어컨의 제국과 그에 따른 기적의 냉매 즉 프레온의 확산 모두를 정당화할 것이다. 다가오고 있는 것은 단순히 ‘에어컨’이라는 어떤 새로운 상품이 아니라 열적 쾌적성이었다. 이는 작업 습관, 근무 시간, 의복, 건축물 또는 온도에 대한 기대치를 바꾸지 않고도 지속적이고 일관적으로 실내의 더위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켰다. 에어컨은 단지 그 수단일 뿐이었다.
설계학자인 카메론 톤킨와이즈(Cameron Tonkinwise)는 아마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20세기 초 뉴욕 노동자 계급의 더위에 대한 생각이 보통은 상류층의 그것과 비슷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20세기 초의 기온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라고 썼다. “역사적으로 더 부유한 사람은 여름에 뉴욕을 떠났지만, 에어컨 없이 뉴욕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많은 옷, 더 무겁게 짜인 옷을 입었으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폐열을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요리했다. 하지만 그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해도, 도시의 사회사 기록을 차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톤킨와이즈는 “우리는 조상들보다 같은 온도를 덜 참게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에어컨이 나오기 전, 평범한 미국인들이 멀리 여행할 필요 없이 노출되었던 다양한 환경을 고려하면, 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에어컨이 완비된 뉴욕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통근자가 말하는 것처럼 당시 모든 사람이 고통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에어컨이 나오기 전에는 어땠을지 상상이 되나요?” 그들은 마치 에어컨이 없는 세상, 그러니까 1900년 이전 인류의 모든 역사를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묻는다. 그것은 단순히 에어컨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역사 속에서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었던 지혜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없었지만, 에어컨이 없던 세상이 어땠는지는 말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시원했다. 그리고 여름에는 실내가 더 더웠다. 때로 생명을 위협하는 폭염 때문에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후반의 상황이 보여주듯이 가정용 에어컨의 등장도 문제를 거의 해결하지 못하고, 악화시키기만 했을 뿐이다. 프레온 이전의 세상은 끊임없는 고통의 세상이 아니었다. 불편함에 더 자주 근접했을 수 있고 불편함을 더 예측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그때는 불편함을 더는 데 도움이 되는 공동의 문화적 지혜가 존재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이 지식 체계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업계가 모든 공공장소 및 가정에 에어컨 설치를 추진함으로써 톤킨와이즈의 말대로 “우리가 느끼는 자연은 ···바뀌었다”. 공공장소와 공동체의 안녕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지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프레온의 시대
더위와 인종 차별의 역학
역사학자 아커만과 베센티니는 에어컨 산업의 인종 차별적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예일대학 출신의 20세기 지리학자인 엘즈워스 헌팅턴(Ellsworth Huntington)을 추적한다. 그는 문명과 이상적 기후를 동일시 하는 유사과학적 이론을 통해 인종 위계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인종’에 따라 기질과 쾌적 지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개념, 즉 ‘기후 결정론’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서구 사상은 적어도 고대 그리스 때부터 이상적인 기후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조건에 집착해왔다. 기후결정론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부상하면서 특히 맹렬해졌고 18세기 정치학 고전인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서 가장 유명하게 다뤄졌다. 현대의 ‘인종 개념도 자본주의의 부상과 동시에 생겨났다. 몽테스키외는 지역이 정치 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미친다면 어떻게 미치는지를 숙고했다. 그는 “정신적 특성과 마음의 열정은 기후에 따라 매우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따뜻한 기후는 “신체 섬유질의 말단을 이완시키고 길어지게 하여” 사람을 나약하고, 비겁하고, 게으르고, 기절하게 만든다. 그에 반해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은 “힘이 넘치고 더 활기차다”.
이렇듯 기후 결정론은 기질의 원인을 지역적 환경으로 규정하지만, 그 철학은 이상적인 문명과 암암리에 그러한 문명을 책임지는 우월한 ‘인종’의 존재에 대한 논쟁으로 쉽게 이어진다. 18세기와 19세기 미국에서 기후 결정론은 자주 백인 우월주의와 반흑인 인종차별주의를 뒷받침했다. 20세기 초가 밝아올 무렵에도 미국의 기후 결정론에 대한 믿음은 건재했다. 행동 과학에 대한 신뢰가 점점 더 커지는 사회에서 기후 결정론은 기질의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아이비리그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이 인종과 기후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기후 결정론의 현대 지지자인 S. 콜럼 길필런(Colum Gil-Fillan)은 고대 수메르에서 오늘날의 베를린까지, 따뜻한 기후에서 후운 기후로 이동하며 세계 역사상 모든 ‘선진’문명의 지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예일대학의 헌팅턴은 ‘기후와 문명(Climate and Civilization)’을 통해 문명에 나타난 인간의 기질을 보여주고자 했다. 헌팅턴은 대부분의 일생을 ‘기상학상의 테일러리즘(Taylorism)’, 즉 노동에 가장 적합한 날씨를 찾는 일에 사로잡혀 보냈다. 그의 연구는 비슷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자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어떤 환경이 가장 큰 이윤을 창출하는가?”
20세기 초 미국의 중상류층 백인 남성에게 인종차별 자체가 드문 일이 아니긴 했지만, 헌팅턴의 저서에는 소름 끼치는 주장이 넘쳐난다. 헌팅턴이 특별했던 것은 인종의 지능과 평균 온도를 연결 짓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집착 때문이었다. 그는 기후에 기반해 세계 문명의 순위를 매기고 ‘최악’에서 ‘최고’의 문명을 지도로 나타냈다. 흑인 미국인, 아프리카인, 라틴 아메리카인을 배제한, ‘전문가의 합의된 의견’을 끌어모은 이 지도는 한 전기 작가의 표현대로 문명의 지도보다 인종 편견의 지도로 더 잘 기능했다. 이 주장이 우생학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헌팅턴은 1972년까지 미국에 존재했던 단체인 미국 우생학회(American Eugenics Society)의 회장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에어컨 업계가 상업용 냉방 시스템이 부상하는 동안 헌팅턴과 자주 접촉했다는 사실이다. 마샤 아커만에 따르면, 업계의 마케팅 임원진들은 에어컨이 근로자의 능률을 높인다는 그들의 주장을 헌팅턴이 공개적으로 지지해주기를 원했다. 캐리어의 경영진이 헌팅턴의 인종별 계층 구조에서 무엇을 끌어냈는지는 광고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백인에 대해 소통했는지는 예일대학에 있는 기록보관소를 방문한 후에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전후 기간의 주택 붐과 에어컨 광고가 그러했듯, 다시 이상적인 기후에 대한 탐색에는 이상적인 온도에 대한 탐색 못지않게 언제나 적극적 우생학(positive eugenics)이 작용했다. ‘적극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러한 엄밀한 인종 차별이 헌팅턴의 말대로 ‘덜 가치있는’ 집단을 말살하려 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만 번성할 수 있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우생학은 바람직한 유전형질의 증가로 인종 개량을 꾀하는 적극적 우생학과 바람직하지 않은 유전 형질의 감소로 인종 개량을 꾀하는 소극적 우생학으로 나뉜다.
자외선 지옥으로 가는 어떤 구멍에 관한 논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기다려보는 것’이다. 오존 파괴의 경우, 그것은 도덕적으로 비겁한 결정이었다. 사실 전혀 결정이랄 것도 없었다. 어떤 조치를 하는 것은 업계로서는 CFC의 위협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완강한 회의론자들도 만족할 수 있을 만큼 롤랜드와 몰리나의 가설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수십 년간 오존의 두께 변화를 전 대륙에 걸쳐 비교해보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한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긴 할까?
꽤 쉽고, 저렴하고, 정확한 방법으로 돕슨 분광계(Dobson spectrometer)라는 기구를 사용해 지상에서 오존 두께를 측정하는 기술이 있다. 1920년대에 개발된 이 기술은 석영렌즈를 사용해 UVA와 UVB복사의 강도 차이를 비교하고 분석한다. 오존이 없는 세상이라면 지상에 도달한 UVA의 양과 UVB의 양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오존은 일반적으로 UVB일부를 차단하기 때문에 UV양의 차이는 ‘열 오존(column ozone), 즉 분광계 센서 바로 위 성층권에 있는 오존의 총 두께란 것을 나타낼 수 있다. 오존층을 구성하는 분자들은 끊임없는 흐름을 유지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두께의 범위는 안정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 여러 관측소에서 소수의 과학자들이 매일 오존 두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그들은 열 오존 데이터를 지구 오존값 등록 기관인 ‘레드북스’에 제출했다. 1980년대 초, 전 세계의 오존 두께는 정상으로 보였다. 그런데 1981년 영국 남극 조사단의 데이터가 어느 순간 레드북스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1956년부터 조셉 파먼이라는 과학자와 그의 팀은 브런트 빙붕(Brunt Ice Shelf)에 자리잡은 핼리 기지 상공의 대기 중 미량 가스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해 봄, 수치가 몇 달 만에 20%나 급격히 감소하기 전까지는 숫자의 단조로움은 분명 수적인 명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5만 피트 상공에 있던 오존 중 많은 부분이 8월에서 11월 사이에 사라졌다. 그리고 12월이 되자, 오존은 소멸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1884년에는 고갈된 오존은 40%에 달했고, 이는 전 세계로 확산될 경우 엄청난 손실이 될 수치였다. 보이지도 않는 수백만 톤의 CFC가 계속해서 대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그는 무언가가 무서운 속도로 남극의 오존을 분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중한 회의론자였던 파먼은 4년에 걸친 신중한 기록 끝에, 1985년 5월 마침내 그의 발견을 세상에 공개했다.
언론 전쟁에서 이기고 싶었던 CFC 업계는 솔로몬의 연구를 무시하고 지난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과학적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그들은 CFC의 결백을 증명할 것 같은 과학적 연구에 돈을 쏟아부어 합당한 과학적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지만, CFC생산과 오존의 구멍 사이의 확실한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주었다. 사실은 홍보를 위한 자금이었다. 이외에도 업계의 리더들은 CFC를 오존 구멍과 연관 짓는 연구들을 모두 부적절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두 가지 주장을 반복했다. 하나는 대체 냉매가 나오기는 불가능하므로 CFC 금지는 프레온 이전의 미개한 시대로의 추락을 의미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CFC 생산이 줄고 있기 때문에 연구는 어쨌든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두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다.
프레온, 그 이후흰 피부와 검은 조약
나사의 웹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몬트리올 의정서에 대한 짧은 영상에 따르면, 국제 지도자들은 미래의 환경 재앙을 막기 위해 과학과 산업 사이에서 이처럼 세계적이고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협정을 맺은 적이 없었고, 이후에도 결코 없었다. 무언가를 너무 강력하게 증명하려 애쓰는 이 영상은 역사적 이야기라기보다는 인간애에 대한 광고로 보이며, 그들 자신이 시작한 파괴를 예측하기 위해 애쓰는 인류의 협업 능력을 칭찬한다. 영상이 끝날 때쯤에는 누군가가 대기업, 환경운동가, 과학자, 정부 등 “모든 사람이 이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상의 끝이자 이야기의 끝을 알리는 기타 소리가 흘러나온다. 너무 진부하다.
초기의 의정서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의정서는 문제를 억제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하기 전에 몇 번의 개정이 필요했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지속해서 추가하고 수정하는 살아 있는 문서로 남아 있다. 이 협약은 당시 존재했던 화학 냉매와 서명국들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래의 화학 냉매의 영향을 모두 다루기 위해 고안되었다. 협약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프로세스 기반의 접근 방식 덕분이었다.
CFC의 신속한 금지를 위한 몬트리올 의정서의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성취를 이끈 원동력 중 하나가 밝은 피부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이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오존 위기가 밝은 피부, 즉 ‘백인’의 위기로 잘못 인식된 탓이 아닐까?
몬트리올 의정서는 프레온의 주요 생산국이자 배출국인 호주, 캐나다, 미국, 서유럽, 동유럽의 지원이 없었다면 채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프레온의 주요 생산국과 배출국은 지구상의 대다수 백인이 거주하는 나라들이었고, 이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법적 구속력을 지닌 배출 목표 덕분에 미래의 환경 파괴를 막는 세계 유일의 국제협약으로 여전히 칭송받고 있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다른 무엇보다 흰 피부를 겨냥하지 않았다면 그 위기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을까?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질문을 뒤집어보자. 만약 프레온이 주로 흑인과 갈색인을 위협하는 방사능을 불러왔다면, 우리는 합의를 이룰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하자니, 많은 장소가 내 마음속에 상상의 증인으로 증인대에 선다. 여전히 납이 함유된 물 문제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시간주의 플린트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허리케인 마리아가 덮친 후에도 연방정부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아직 복구 중인 푸에르토리코 역시 ‘아니오’라고 증언한다.
우리는 여기서 나타난 불편하지만 함축된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세계가 유일하게 목격한 성공적인 국제환경협약은 백인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막는 협약이었다.
현재진행형 기후 위기
CFC의 사후세계를 현재 진행 중인 지금 이 순간으로 이해하면, 우리는 개별적 인간의 수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의 척도로 지구의 환경 위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 겪는 큰 위기이고 그 끝을 본다면 아주 행운일 것이다. 우리는 오존 위기를 ‘바로잡아야 할’, 즉 ‘때워야 할’ 구멍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 두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는 훨씬 더 복잡하다. 오존 위기는꺼야 할 마이크나 펑크 난 자전거 바퀴가 아니다. 그것은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고 회복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역동적인 대기 시스템의 문제다. 계속되는 기후 훼손이라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는 지금,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
오존층의 느리고 고르지 못한 회복은 우리가 몹시 취약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지구의 기후 안정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해도 취약함의 정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욱 곤란한 사실은, 이러한 차이가 우리 모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취약하고, 우리 자신에게 취약하고, 세상에 취약하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취약성을 인정함으로써,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힘의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우리는 개인의 편안함과 안전에서 대중의 편안함과 안전으로, 근본적인 상호 의존과 공동체 기반의 지지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지 모른다. 우리는 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지구의 활동적인 기상 막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우리 중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불안이라는 위협은 우리 모두에게도 위협이 된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배웠어야 할 교훈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형편없는 역사가들이다.
그렇다 해도 이러한 방법은 CFC가 일으킨 것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이는 현재의 기후 비상사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할 것이다. 우리는 취약한 사람들이 덜 취약해지도록 보장할 정책,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이들과 우리 뒤에 올 모든 이들의 형평성을 보장할 엄격하고 정의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취약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인식에 이르는 것이 앞으로의 해결책을 구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이 너무 비관적인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사실 근본적인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오존 구멍은 회복되고 있다. 아직도, 여전히 오존 구멍은 회복되고 있다. 이 문제를 빠른 해결책을 통해 ‘고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대신, 지금도 진행 중인 기후 훼손과 느리고 고된 회복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미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인정은 변화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이상적인 날씨’를 결정짓고 강요하는 인프라를 거부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혼자 하거나 서둘러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가정들을 되돌리려면 몇 세대가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노력할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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