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공부
 
지은이 : 최재천 외
출판사 : 김영사
출판일 : 2022년 05월




  •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공부는 무엇일까요? 인생 전반에 걸쳐 공부가 왜 중요하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우리 교육의 현실과 미래, 그리고 청사진을 이야기합니다.


    최재천의 공부


    공부의 뿌리

    제가 2020년 말부터 ‘우리에게는 집단적 현명함이 있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우리 국민에게서 집단 지성의 힘을 느낍니다.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코로나19라는 난국에도 집단적 현명함이 발현됐습니다. 우리 국민이 정부 지침에 무조건 순종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대다수가 ‘내가 협조해야 방역이 완성된다’라는 생각과 판단에 따라 행동했기에 집단적 현명함으로 서로를 지켜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도가 향상됐어요. 비록 주입식이었을지라도 수십 년 동안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온 교육 덕이지 않을까요? 그 속에서 통합하는 힘이 길러졌다고 생각해요.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 20년 30년 후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요. 새로운 교육을 할 때가 됐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제대로 논의해야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오래전 한 일간지에서 서울대학교와 카이스트에 들어간 다섯 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물었어요. 한목소리로 ‘수학은 암기 과목’이라고 했습니다. 수학은 유형이 있는데 몇 십 가지 유형을 전부 외우고 어느 한 유형을 적용해서 기계적으로 풀면 된다고요. 동의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가르치는 수학은 그렇습니다.


    수학은 상당히 직관적인 학문이더라고요. 전체를 보고 흐름을 파악하고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가를 분석하며 그걸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미국 아이들은 수학을 대체로 못해요. 하지만 수학 수업은 우리와 다르게 이뤄집니다. 공식을 설명하고 객관식 답을 찾도록 가르치지 않고 어떤 상황을 주고 어떻게 풀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궁리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몰랐지만, 하버드 대학교에서 깨우쳤습니다. 수학에서 직관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은 직관을 사용하면 어느 부분부터 문제가 안 풀려 낭패를 보게끔 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미국 학생들은 한 시간을 주고 풀라고 하면 못 풀지만, 2~3주를 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풀라고 하면 대부분 푼다는 거죠. 중, 고등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안에 경쟁하는 문제 풀이 훈련만 시키고 실제로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좌우하는 능력을 키워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도대체 삶이 뭔데, 이렇게 학교와 학원을 돌고 돌며 살아야 하나?’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무엇을 성취해야 하기에 쉼 없이 배워야 하나?’


    사실 교육이란, 먼저 살아 본 사람들이 다음 세대에게 ‘살아보니까 이런 게 필요하더라’ 하고, 조금은 준비하고 사회에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거잖아요. 옛날 같으면 기성세대가 사냥을 해보니까 활을 잘 쏴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았고, 활쏘기 연습을 하자 사냥을 잘하게 되어, 다음 세대에게 활쏘기 연습을 시키는 거고요.


    지금 중,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내용이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일까요? 솔직히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삶의 중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시간을 우리가 지금처럼 빼앗아도 될까?’ 자주 의문을 가져요. 저는 어른들이 저들의 삶을 유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기성세대가 청소년에게 ‘삶을 접고 공부만 해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교육제도는 위 세대가 아래 세대를 압박하는 장치가 됐습니다. 이제라도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고민하고, 모두가 삶을 즐기면서 자라나도록 길을 내야 합니다.



    공부의 시간

    ‘구성요소’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선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가옵니다. 요즘 대학 입시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을 인터뷰하면 아주 체계적으로 공부했더라고요. 학습 목표를 조직적으로 나눠놓고 하나씩 공략하고 점검하면서 단계를 밟았습니다. ‘참 대단하다. 저런 아이들은 어떻게 컸길래 저렇게 될까?’ 약간 존경심도 갖게 돼요.


    저는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공부도 한 번도 그렇게 해본 기억이 없어요. 제가 요즘 꼬마들을 데리고 논에 나가잖아요. 아이들이 논에서 자연을 배우는데, 그렇게 배우면 구멍이 숭숭하게 배울 수밖에 없겠죠. 제가 그 아이들을 앉히고 ‘세포란!’ 하면서 세포 그림을 그리고 ‘올챙이의 특징은 이렇다’라고 가르치면, 더 체계가 쌓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배움이 꼭 좋은 배움일까요? 다양하게 배우면서 쌓아가고 조금은 어설프게 흔들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 관심이 가는 분야를 찾습니다. 그럴 때 저는 심도 있게 들어가도록 도움을 줍니다.


    자칫하면 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다른 분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 비해 기초가 조금 부족할 수도 있어요. 제가 모든 걸 다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꼭 그렇게 꽉꽉 다져 넣고 확인하면서 가르쳐야 할까요? 뭐든 한참 하면 엉성한 곳들이 슬금슬금 메워지더라고요. 조금이나마 그런 걸 허용하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전반적으로 이해를 높이는, 쓸 만한 학습 성취 구조를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하는데요. 저는 교육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공부의 양분

    책 읽기에 대해 강연할 때 저는 코끼리 똥 누는 사진을 화면에 띄웁니다. 코끼리 똥 실제로 보신 적 있으세요? 어마어마합니다. 들어간 게 있어야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떤 분은 독서를 안하는데도 글을 제법 쓴다고 말해요.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많이 읽은 사람들이 글을 잘 써요. 읽은 내용을 기억해서 베끼는 게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문장이 탄생합니다.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독서를 체계적으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해요. 읽어야 할 책들을 잘 안내하는 체계가 우리나라 교육에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교과서 중심입니다.


    하버드대학교는 대놓고 ‘우리는 리더를 기르는 대학이다’라고 선언해요. 리더는 일단 말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토론 수업 성적을 낼 때 누가 말을 잘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점수를 줍니다. 누가 설득력 있게 말했고 가장 잘 이끌어 갔는지를 채점하죠. 토론을 잘하려면 말이 짜임새 있어야 하고 논리적 사고를 해야 하니 글쓰기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고요. 글을 잘 쓰려면 책 읽기가 필요한 거죠. 그러니까 읽기, 쓰기, 말하기인데, 결국 말하기에 방점이 찍힙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말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버락 오바마도 그렇고, 자들 자기 언어를 사용합니다. 중요한 연설문을 봐도 남이 써준 원고를 읽었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자기가 관여한 내용이 눈에 보이죠. 결국, 말을 잘하려면 글쓰기를 잘해야 하니, 평소에 많이 읽고 많이 관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약한 지점은 토론이에요.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교과 과정을 마칩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미국 교육에 비해 좋은 점이 참 많아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모자라는 부분이 바로, 학생들이 자기 의견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훈련을 거의 못 받고 정규 교육 과정을 빠져나간다는 점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곧 바뀔 겁니다.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토론이 막 벌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교사들도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학습이 수동적 방법으로 진행되는 면이 짙게 남아 있는데, 이 틀에서 벗어날 기회도 토론에 있습니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훌륭한 토론을 하려고 준비할 테니까 자기주도학습이 저절로 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공부의 성장

    “그런거 해서 밥이나 먹겠니?” “대기업 취직해야지” “뉘 집 애는 어디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장래는 부모님들이나 주변의 결정에 따라 휩쓸려가잖아요. 아이들의 장래를 아이들에게 맡기면 지금 같은 쏠림 현상은 사라지겠죠. 어른들이 아이들이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대신해주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파생되기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은 육감으로 미래를 느끼고 있다고 믿기에, 부모님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어요.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와야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부터 20년 후에요. 40대가 삶의 중심이라고 하면, 지금 공부하는 아이들은 적어도 20년 후의 세상을 예측하면서 자기 삶을 기획해야 합니다. 하지만 20년 후를 내다보기에는 우리의 생각이 너무도 하루하루 현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더듬이에 걸리는 신호와 젊은 세대의 더듬이에 걸리는 신호가 다른 것 같아요.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과학자의 서재>라는 책에서 ‘세상 경험 중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모든 경험은 언젠가는 쓸모가 생긴다’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저는 딴 짓을 많이 하면서 살았어요. 생물학자가 미술 하는 분들과 여기저기서 만나며 즐겁게 일하고 있죠. 제가 어떻게 그런 분들과 일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다른 나라에 가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미술관을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툭하면 미술 강연회에 가서 앉아 있었고요. 저의 자부심 중에 하나는 제가 통섭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이래, 우리 사회에서 ‘소통 없이 한 우물만 파라’라는 말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겁니다. 이제는 대다수가 주변인과 융합해야 한다고 느끼죠. 제가 생물학만 내내 공부했다면 저는 지극히 평범한 곤충학자, 어쩌면 신기한 작은 곤충을 연구하는 사람으로만 살아갔을지 모릅니다. 제가 오지랖이 넓게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공은, 아무리 생각해도 딴 짓밖에 없어요.


    제가 생물학과 부모님들 앞에서 강연하며 “내 아이가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아시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를 기필코 두 평짜리 약방에 가둬야겠습니까?”라고 덧붙였는데요. 약대 열풍으로 전국의 생물학과들이 초토화됐습니다. 학생들이 생물학과로 몰려왔다가 거의 약대로 빠졌습니다. 제가 그 현상을 꼬집으며 학부모들에게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내일도 우리의 내일도 무한히 열어둬야 해요.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됩니다.



    공부의 변화

    문화 인류학자 김정운 선생님은 “모든 게 편집이다”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이에요. 지금 인터넷을 뒤지는 젊은 세대는 스스로 편집합니다. 기성세대는 명저 한권을 붙들고 흡수했죠. ‘이 대가가 이렇게 이야기하시는구나’ 하면서 쭉 읽고, ‘다 이해했어’ 하며 책을 덮습니다. 이해했다는 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거죠. 젊은 세대는 스스로 여러 정보를 검색해 나름대로 취사선택하고, ‘뭐 이래?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라고 판단도 하면서 그 화면을 닫고 다음 걸 읽죠. 자기가 편집을 합니다. 저는 그 방식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알고리즘이 편향성을 부추기긴 하지만,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왜냐면 젊은 세대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제공받습니다. 그 중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것만 취한다고 그러는데, 자기 걸 찾으려면 뒤져야 해요. 뒤지다 보면 아주 세심하게 읽지 않아도 조금씩은 맛보게 되죠. 그래야 ‘뭐 이런 꼰대 같은 소리를 해’라고 하면서 버릴 수 있어요. 기성세대는 당시에 그런 파악을 잘했을까요? 오히려 기성세대는 어느 대가의 말씀을 그냥 들었어요. 누가 말씀하셨다고 하면 정설로 인정했습니다.


    엄마 침팬지는 새끼 침팬지를 가르치지 않아요. 가르침은 없습니다. 배움만 있어요. 새끼 침팬지는 옆에서 그냥 보고 배워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 가는 침팬지들은 견과류를 깨 먹는 데 돌도구를 이용합니다. 새끼들이 옆에서 배우는데요. 처음에는 잘하지 못합니다. 인간 부모 같으면 어떻게 했겠어요? 잔소리부터 했을 겁니다. “얘, 넌 머리를 왜 모시고만 다니니, 그러면 굴러 떨어지지, 평평한 돌을 가져와.”


    우리는 그래서, 배우는 게 최고일까요? 침팬지들은 일단 한 번 배우면 정말 잘해요. 몸에 완전히 익힙니다.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을 만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 일방적으로 가르칩니다. 그 중에 잘하는 아이도 있고, 잘 못하는 아이도 생기는데 못하는 아이는 왜 평평한 돌을 가져와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갑니다. 계속 못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약간 동물스러운 교육을 하면 좋겠어요. 선생님은 먼저 가르치려고 덤벼들지 말고,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일종의 촉진자가 되어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늘 국영수만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이 내용을 가르치지 않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코로나19 같은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게끔 기본적 훈련을 교육이 담당하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재앙을 겪을 거예요. 국영수만 잘해서 잘 살다가 와장창 무너졌다가, 또 국영수를 하고 좀 잘 살다가 와장창 무너지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삶은 늘 평탄하게 즐겁게 사는 것 아닌가요.


    제가 하버드대학교 기숙사 사감을 할 때, 공부를 봐준 학생이 있었습니다. ‘너 어떻게 들어왔느냐’란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참고 도와줬죠. 그 학생은 자기소개서에 하버드대학교에 오고 싶어서 서부 끝 태평양 연안 도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기 집에서부터 동부 끝 대서양 연안에 있는 하버드를 향해 걸었다고 썼습니다. 중간 지점인 캔자스시티에서 응급실에 실려 간 사연을 적었어요. 입학사정관들이 인상적으로 읽곤, 이런 학생 한 명 정도 넣어보자고 합의했습니다. 워낙 매력이 넘치는 학생이라 또래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는데 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했어요.


    졸업할 즈음 의대를 가겠다고 말하더군요. 성적이 안 되는데 갈 수 있나요? 하여간 제가 다섯 장의 추천서를 열심히 써줬고, 그 학생은 별의별 활동을 넣어 원서를 썼습니다. 의대에 갔어요. 도대체 어떻게 들어갔는지 몰라요. 매력이 넘치니 호감을 샀겠죠. 지금 하키팀 주치의가 되었더라고요. 그 친구는 지금 너무 신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버드대학교는 거름을 뽑는데, 그 거름이 또 꽃을 피워요. 서울대학교에서 댄서 한명을 뽑으면, 그 친구가 다른 아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뭐가 될 거라고요. 우리나라 교육에 숨구멍을 틔워야 합니다.


    <인간은 왜 늙는가>란 책의 저자 스티븐 어스태드 교수는 퍼듀대학교에서 박사를 하고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된 분이에요. 학부는 UCLA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셨고, 할리우드에 가서 동물 조련사로 일하신 분입니다. 그 일을 하다가, 동물에 대해 알고 싶어서 동네에 있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가서 생물학을 공부한 뒤 퍼듀대학교에 입학했어요. 미국은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해서 퍼듀대학교를 거쳐서 하버드대학교 교수까지 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분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나라에도 그분이 했던 것처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마음껏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라죠. 편견 없이 성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누구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바른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가 나오고 나서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의 목표가 중퇴가 됐습니다. 탄탄한 미래를 보장하는 아성이라고 불리던 하버드 대학교도 흔들리면 이제 다른 대학도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미네르바 스쿨이 뜨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네르바 스쿨은 정해진 캠퍼스에서 배우지 않고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배웁니다. 교수나 학생이 관심 있는 주제와 내용으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련 내용을 배우고 토론하고 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새로운 개념의 대학이에요.


    우리나라에는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육으로 성공한 나라잖아요. 선조에게 물려받은 것도 없고, 땅을 파면 석유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세계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을 겪었지만 전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됐어요. 답이 뭘까요? 그냥 공부해서 이렇게 된 거예요. 머리에 투자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길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부의 활력

    제가 국립생태원장으로 일할 때 가장 명심했던 경영 십계명 중 하나가 ‘이를 악물고 듣는다’였어요. 조직의 리더가 되면 말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리더가 입을 열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아요. 집단 지성을 이루고 창의성을 끌어내려면 리더는 어금니가 아프도록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제가 국립생태원을 연구 중심의 센터로 만들겠다는 포부로 초대원장을 맡았는데요. 서천에 내려가 보니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 전시를 열어야 했습니다. 전시 개막일이 3주도 채 남지 않았는데요, 직원들이 준비해놓은 짜임새가 아쉬웠어요. 할 수 없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에 기획회의를 하는데, 그동안 논의했던 내용을 다 버리고 제가 말한 내용으로 정리해서 가져왔더라고요. “아니 그 동안 논의하셨던 내용은 다 어디 갔어요?”라고 물었더니, “원장님 말씀이 가장 좋아 보여서 그 방향으로 잡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조직의 장이 말하면 모든 게 무너져요.


    요즘 청년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악착같이 찾아봐라’라는 것입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을 왜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삽니까? 우리는 눈만 뜨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쭈그리고 앉아 있지 말고, 나가서 뒤져보고 찔러보고 열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책도 읽어보면서 찾아야 합니다. 무언가 관심이 가는 일이 보이면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찾아가 보는 거예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길이 눈앞에 보입니다. ‘이거다!’ 싶으면 그때 전력으로 내달리면 됩니다. 제가 정확하게 그렇게 했어요. 한 10년쯤 달리다 보니 처음에는 친구들보다 훨씬 늦었는데, 10년 정도 지나면서 남들보다 조금씩 앞서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똥물학과 학생으로 우울한 대학 생활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뭘 하면 좋을까?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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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