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냄새를 제대로 표현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냄새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 우리는 대개 그 냄새가 나는 물건이나 음식을 끌어오곤 한다. 뇌과학적으로 후각이 논리와 언어를 담당하는 기관과 관련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향기로 인정받지 못하는 냄새는 경시하며 ‘무향’의 일상을 만들어가려는 문화의 영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로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냄새 없이 행복할 수 없다. 매일 지나치는 수많은 향을 과학적으로 펼쳐보이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공기 중을 떠도는 온갖 냄새 분자가 안내하는 새로운 세상 속으로 빨려들어가보자.
■ 저자 주드 스튜어트
《슬레이트Slate》, 《빌리버The Believer》, 《애틀란틱The Atlantic》,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 《디자인 옵저버Design Observer》 등에 디자인과 문화에 관련된 글을 기고해왔다. 《프린트Print》의 자유기고가이기도 하다. 디자인 전문작가로서 오랫동안 직업적인 시각을 발달시켜왔던 그는 우연한 계기로 후각이라는 감각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이후 냄새들의 이야기를 탐험하며 신기하고 경이로운 향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독자들에게 후각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이 책을 썼다. 저서로는 『빨주노초파남보Roy G. BIV』, 『패터널리아Patternalia』가 있다.
■ 역자 김은영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으며, 과학교양서를 주로 번역하고 있다. 『희망의 밥상』, 『다윈의 개』, 『슬픈 옥수수』, 『인류사를 바꾼 위대한 과학』,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등을 번역했다.
■ 차례
추천의 글_ 우리는 모두 냄새로 이어진다
들어가며_ 왜 굳이 냄새에 대해 쓰기로 했나
이 책을 읽는 방법
코
코를 소개합니다
후각은 어떻게 작용할까
냄새, 감정의 시간 여행
우리에게는 몇 가지 감각이 있을까
코, 인간성의 제유법적 상징
미래의 냄새
Exercise 1 냄새를 탐구하는 좋은 방법
꽃과 허브 향
마른 땅의 비 냄새
장미
재스민
금방 꺾은 잔디
빨랫줄에 널어 말린 빨래
Exercise 2 냄새 일기를 쓰자
달콤한 향
바닐라
스위트 우드러프
비터 아몬드
시나몬
핫 초콜릿
Exercise 3 비슷한 냄새끼리 비교해본다
감칠맛의 냄새
베이컨
두리안
고린내 나는 치즈
아위
담배
Exercise 4 새로운 냄새를 수집한다
흙 내음
트러플
와인
포연
녹고 있는 영구동토층
차
Exercise 5 땅바닥에 더 가까이 다가가자
수지 향
금방 깎은 연필
침향
장뇌
유향
몰약
Exercise 6 냄새에만 의지해 방 안을 돌아다녀보자
쿰쿰한 냄새
살
새 차
대마초
돈
휘발유
사향
Exercise 7 불쾌한 냄새에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자
얼얼하게 톡 쏘는 향
오렌지
라벤더
스컹크
맥주
먹지
Exercise 8 양쪽 콧구멍으로 번갈아가며 냄새를 맡아본다
짭짤하고 고소한 냄새
바다
용연향
플레이도우
젖은 울
피넛버터
Exercise 9 다양한 방법으로 코를 킁킁거려보자
상큼하게 설레는 향
눈
생각
로즈마리
소나무
Exercise 10 훈련용 키트를 준비하자
신비로운 냄새
갓난아기
멸종된 꽃들
만들어진 냄새
심령체
성자의 향기
오래된 책
Exercise 11 냄새를 언어로 표현해보자
나가며_ 더 많은 냄새를 알 수 있다면
자주 묻는 질문
주
참고문헌
수많은 냄새를 제대로 표현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 냄새에 대해 말하고 싶을 때 우리는 대개 그 냄새가 나는 물건이나 음식을 끌어오곤 합니다. 매일 지나치는 수많은 향을 과학적으로 펼쳐보입니다. 부유하는 온갖 냄새 분자가 안내하는 새로운 세상 속으로!
코끝의 언어
코
코를 소개합니다
코란 무엇인가? 가장 확실한 답은 “얼굴 한가운데에 있고 안에 뼈가 들어 있는 조직(기관)”이다. 코는 안경이 걸리는 받침대이기도 하고, 햇살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야 하는 날이면 입술 위에 그림자를 드리워주는 천막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코에 대한 사람들 생각의 초점은 일반적으로 그 내부와 기능, 즉 코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외관에 맞춰져 있다. 최소한 나는 (굳이 코에 대해 생각할 경우) 그랬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얼마나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인지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정상적인 범주에 드는 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코를 따로 놓고 생각하다보면,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코의 이미지는 고상한가, 외설스러운가? 코에 난 두 개의 공기구멍은 머리와 폐를 연결하는 통로인가, 아니면 혹시 영혼의 영적 통로인가? 코는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기관 아닐까?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기관일지도? 냄새 맡는 코의 능력은 때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유용하기도 하며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이 코를 얼마나 제대로 사용하고 있나?
후각은 어떻게 작용할까
코는 냄새를 맡는 데 쓰는 기관이다. 그런데 우리는 코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구 사용한다. 무언가의 냄새를 맡을 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뭘까? 맛을 볼 때처럼 냄새를 맡는다는 것(즉 후각 작용)도 화학적인 감각이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화학 성분, 또는 공기를 타고 코에 흘러들어 온 휘발성 분자를 감각한다는 뜻이다. 이런 화학 성분에는 생존은 물론 쾌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우 구체적인 정보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냄새는 산불이나 부패한(또는 위험한 성분이 든) 음식 등 생존에 관한 위협이 우리와 가까이 있음을 경고해준다. 또한 적절한 단짝이 될 수도 있는 매력적인 타인을 발견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미래의 냄새
새로운 과학을 창조할 야심이 있다면, 먼저 냄새를 측정하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_과학자, 발명가
인간과 동물의 후각에 대한 연구가 나란히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로봇 코는 과학자들에게 온 세상에 떠다니는 수십억 가지 냄새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여기에 쓰이는 장비 중에 가스 크로마토그래프-질량분석기가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냄새를 연구하는 데 쓰여온 필수적인 장비다. 과학자들은 이 장비로 공기 샘플을 빨아들인 다음, 그 안에 든 냄새 분자를 정확하게 역설계한다. 어떤 분자가 그 냄새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거의 모든 냄새가 여러 가지 분자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구성 성분 중 극히 작은 부분만 차지할 뿐인 분자가 그 냄새의 결정적인 요소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향기를 연구하는 화학자들은 이 가스 크로마토그래프-질량분석기를 이용해 경쟁사 향수 제품의 비밀 분자들을 주기적으로 분석한다(합법적이며 상당히 정확도가 높은 연구 방법이다). 이런 기술은 화학공학, 환경정화 등에도 두루 쓰인다.
전자 코는 여러 상황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전자 코를 만드는 방법 중에는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400개의 후각 수용기의 유전자를 복제한 뒤, 각각의 냄새에 대해 각각의 복제 유전자가 보이는 반응을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복제된 유전자를 살아 있는 포유동물이나 효모세포에 이식하며 세포 기반 전자 코, 또는 무세포 센서라 알려진 전자 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전자 코야말로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은, 진정한 로봇 코라고 볼 수 있다.
전자 코는 대개 목적에 부합하는 몇 가지의 냄새 분자만을 인지하도록 설계된다. 예를 들어, 맥주 양조장에서 쓰이는 전자 코는 맥주가 산성화되는 기미가 보이거나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아주 초기부터 경고 신호를 보낸다. 지금 당장이든 아니면 아주 가까운 미래에서든, 전자 코는 신선한 장미를 수확하기에 가장 적당한 때, 상하기 시작한 음식을 폐기해야 할 때, 암에서부터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의 조기 진단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꽃과 허브 향
마른 땅의 비 냄새
페트리코. 바싹 마른 흙이 비에 젖으면서 올라오는 이 냄새는 흙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넉넉하게 감싸며 피어오른다. 이 냄새는 초록색 풀 냄새에 가벼운 광물 냄새가 섞여 있다. 뒤이어 약간 새큼하면서 싱그러운 물방울의 기운이 느껴진다.
‘페트리코’는 그리스어로 ‘돌의 피’라는 뜻으로, 1964년 호주 출신의 두 과학자 이사벨 베어와 리처드 토머스가 지은 이름이다. 이들은 모래, 마른 흙, 찰흙 등 다양한 종류의 흙에서 오일을 뽑아냈고, 식물이 토양에 분비하는 지방산(주로 팔미트산과 스테아르산)이 비가 오는 동안 더 농축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뭄이 끝난 뒤 종종 식물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사벨과 토머스는 혹시 마른 땅의 비 냄새, 즉 페트리코가 천연의 비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페트리코는 주변 다른 식물의 성장을 지방산으로 지연시켜 물이 귀해질 때 경쟁에서 이기려는 식물의 방어책이었다. 다시 말해 식물이 분비한 화학물질의 축적물이 우리가 맡는 바로 그 비 냄새의 정체다.
마른 흙의 비 냄새는 비가 실제로 내리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비가 계속 내리면 그 냄새는 페트리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냄새인 지오스민(geosmin), 즉 흙냄새로 바뀐다. 지오스민은 비가 그친 후에도 남아 있는, 약간 곰팡내 비슷하면서 눅눅한 냄새다. 비트와 흙을 갈아엎을 때 나는 것과 비슷한 이 냄새는 방선균이라는 땅속 박테리아에서 시작된다. 지오스민은 민물고기에게 알을 낳을 장소를 알려주고 낙타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도록 도와주는 냄새이기도 하다.
페트리코는 물질이 기체가 될 때 냄새가 생겨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페트리코의 경우, 그 변형된 물질이 황금의 오일, 즉 서로 경쟁하는 식물들이 토양이 분비하는 물질이다. 냄새는 공기를 타고 흐르면서 공기에 일종의 ‘퍼스낼리티’를 부여한다. 페트리코는 또한 공기가 3차원이라는 것, 다시 말해 공기가 공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소나기가 내린 후의 공기는 모든 것을 씻어버린 듯 당당하고 날카로우며 어디서든 오래 머물지 않는다.
페트리코가 코끝을 휙 스쳐갈 때면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각각의 냄새는 시공간 안에서 한순간의 점을 찍는다. 그 냄새를 맡는 우리는 그 점의 목격자다.
금방 깎은 잔디
금방 깎은 잔디는 활기차고 싱싱한 초록 냄새가 나며, 특히 지면 가까이에 잔뜩 농축되어 있다. 그 냄새를 맡으면 마치 시들었던 식물이 물을 잔뜩 빨아올렸을 때처럼 기운이 살아난다. 이 냄새는 내게 착 달라붙은 듯 가까운 느낌을 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내 허파가 식물의 날숨으로 채워지는 기분이다.
마당의 잔디를 깎을 때마다 나는 그 냄새를 또렷하게 느낀다. 잔디깎이의 칼날이 소리 내며 돌아갈 때마다 깎인 잔디가 반원을 그리며 한 줌씩 솟아올랐다가 떨어지면, 나는 풀잎들이 남긴 냄새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그 냄새는 아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잔디 깎는 기계를 멈추면, 깎인 잔디에서 나던 냄새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잔디 깎기는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가버리는 나만의 여름철 휴식이며, 딱 그 순간에만 내 곁을 떠도는 비눗방울과 같다. 그 시간이 지나면 그 기분은 사라지고 냄새도 사라진다.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이, 풀잎은 냄새를 수단으로 서로 소통한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한 장소에 뿌리를 박고 살아간다. 천적이 다가와도 도망칠 수가 없다. 그래서 냄새로 천적을 피하고 서로에게 경고를 보내준다.
천적의 공격을 받은 식물은 휘발성 화합물을 방출해 주변의 다른 식물에게 눈앞에 닥친 위험에 대한 경고를 보낸다. 경고를 받은 식물들은 재빨리 자기 몸의 일부에서 영양소를 빼돌리거나 자신을 덜 맛있게 만들어서 천적이 흥미를 잃도록 만들거나, 그로부터 입게 될지도 모를 상처를 치료할 준비를 미리 해둔다.
식물은 몸에 상처를 입으면 리폭시게나제라(lipoxygenase)는 효소를 활성화시키고, 두 가지의 산을 분비한다. 이 두 가지 산은 식물이 상처를 입어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되면 (z)-3-헥산알이라는 또 다른 효소로 변형된다. 이 효소는 위기에 처한 풀잎의 후각 신호,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방금 깎은 잔디의 냄새와 비슷하다.
방금 깎은 잔디 냄새를 싱싱한 풀잎의 냄새라고 좋아하지만, 사실 잔디에게 그 냄새는 긴급 신호, SOS와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들은 이 냄새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사실 아무 의미 없는 냄새니까. 누군가에게는 위기의 냄새지만 누군가에게는 싱그럽고 상쾌한 냄새라니.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달콤한 향
핫 초콜릿
핫 초콜릿 냄새의 바탕은 고체였던 것이 녹아 흐르며 피어나는 매캐함이다. 그러면서 약간의 금속성이 느껴지는, 기분 좋게 떫은 냄새다. 핫 초콜릿 냄새는 단단한 반죽처럼 든든하게 우리의 코를 채운다. 그러나, 오!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이 느낌이라니! 머그 컵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구름 같은 김과 함께, 핫 초콜릿은 즐겁고 변화무쌍한 향기를 발산한다. 꽃처럼 달콤하고 과일처럼 상큼하며 거기다 살짝 매콤한 열감까지. 코를 스치는 달콤한 그 구름은 흑설탕 알갱이처럼 쉬이 부서진다.
그래도 다시 냄새를 맡아보면 다시 호박색의 몰트 시럽 같은 달콤함이 느껴진다. 눈을 지그시 감고 핫초콜릿 안에 우유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그 냄새에만 정신을 집중할 수도 있다. 눈을 깜빡, 했다가 다시 코를 킁킁, 해본다. 다시 눈 깜빡, 코 킁킁. 코가 지칠 때까지 되풀이해보면, 그때마다 마치 마법처럼 냄새가 바뀐다.
초콜릿 냄새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커피나 차, 맥주, 포도주처럼 초콜릿은 수백 가지의 향 화합물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포도주의 향 화합물이 200가지인 데 비해 초콜릿은 600가지다. 하지만 초콜릿 냄새의 프로파일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스물 다섯 가지뿐이다. 이 스물다섯 가지가 한데 모여 우리가 초콜릿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 냄새와 향미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스물다섯 가지의 결정적인 화합물은 하나의 다발처럼 한데 뒤섞여 있어서 각각을 분리해낼 수는 없다.
사람의 뇌는 동시에 네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냄새를 처리하지 못하고 곧 그 냄새에 취해버린다. 아무리 전문가라 할지라도 세 가지 이상의 냄새 혼합물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식도락가들의 초콜릿 중독을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이 즐거운 ‘취기’다. 누구나 여러 가지 초콜릿 냄새를 하나하나 구분해보려고 시도해보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성공한다 해도 그중 일부를 구분하는 정도일 뿐이다. 초콜릿 냄새는 우리가 쉽게 들어가 마음대로 탐험할 수 있는 단일한 냄새가 아니다. 모든 초콜릿 냄새는 새로운 획을 긋는다.
감칠맛의 냄새
베이컨
차가운 생 베이컨은 보기에도 썩 유쾌하지 않고, 보기만 해도 느끼하다. 냄새를 맡아 봐도 소금에 절인 냄새 말고는 특별히 느껴지는 게 없다. 그러나 일단 베이컨을 프라이팬에 척 얹고 버너에 불을 붙인 뒤 기다리면, 화려한 요리 극장의 막이 오른다. 베이컨은 금세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주방에는 입맛을 돋우는 냄새가 퍼진다.
베이컨의 냄새는 매우 활동적이다. 열기만 있으면 어지러운 궤적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프라이팬이 달구어지는 동안, 냄새의 층 위에 또 한 층, 그 위에 또 한 층이 연이어 겹쳐지며 점점 더 짙어진다. 그 냄새는 입안에 군침이 고이게 한다. 한 입 맛을 보면 혀를 톡 쏘는 듯한 짠 맛이 만족을 선사한다. 그 냄새를 부드럽게 감싸는 연기의 맛도 느껴진다.
베이컨 냄새는 프라이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로부터는 하나하나 구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다중감각적이다. 냄새가 점점 분명해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 프라이팬 위로 튀어 오르는 미세한 기름방울의 구름 때문일까? 마치 손을 대면 만져질 듯한 냄새다. 프라이팬이 뜨거워지면, 베이컨의 가장자리는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며 안으로 말린다. 그다음에는 마치 땀을 흘리듯 기름이 흐르고, 뜨거운 기름이 이내 노릇노릇한 호수를 이룬다. 이제 베이컨은 갈색으로 변하며 쪼글쪼글해진다. 그동안 냄새는 몽글몽글 피어오르며 마치 불꽃처럼 활짝 피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요리의 절정에 이르면 냄새는 크레센도로 달려가고, 버너를 끈 후에도 뽀얀 연기의 흔적과 함께 온 집 안에 잔향이 머문다.
베이컨에서 나는 냄새는 전형적인 마이야르 반응이다. 마이야르 반응이란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의 이름에서 따왔다. 식품이 가열되면, 식품에 함유되어 있던 당분이 분해되어 아미노산과 반응한다. 이때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 화합물이 많이 방출되며 특별한 풍미가 나타난다. 마이야르 반응은 바로 이 일련의 화학반응을 칭한다. 방출되는 화합물은 대부분이 탄화수소와 알데하이드다. 마이야르 반응은 끓이거나 볶거나 굽는 동안 갈색으로 변하는 모든 음식이 왜 그렇게 유혹적인 냄새를 풍기는지를 설명해준다.
소금물이나 소금에 절여 만든 베이컨은 다른 종류의 돼지고기보다 질산염이 풍부해 매우 독특한 냄새가 난다. 질산염은 가열하면 분해되면서 다시 한번 질소가 함유된 분자, 특히 피리딘과 피라진을 방출한다. 흰색 지방층은 베이컨의 냄새를 구성하는 세 번째 화합물을 만들고, 여기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네 번째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화합물들이 제각각 정도를 달리하며 조리되면서 번갈아가며 나름의 냄새를 내놓는다. 그렇게 베이컨은 조리 정도에 따라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냄새로 우리를 유혹한다.
베이컨 애호가들이라면 이토록 군침이 돌게 하는 베이컨 냄새를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반색을 할 것이다. 2004년에 한 연구 집단이 베이컨보다 기름기가 적고 가공도 하지 않은 돼지고기의 냄새와 베이컨 냄새를 비교했다. 결론적으로 질산염이 베이컨 냄새의 진폭을 더욱 크게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 나아가, 베이컨 냄새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수학적으로 실험한 사례가 있다. 서로 다른 두 연구 집단이 빅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으로 레시피 웹사이트를 분석해, 주어진 레시피에 베이컨을 첨가했을 때의 효과를 분석했다. 어떤 레시피에 베이컨이 있고 없고에 따라 그 레시피의 인기가 달라질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다’다. 하지만 아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레시피에 베이컨을 추가하면 별점이 4.13등급에서 4.26등급으로, 표준편차에서 15퍼센트 올라갈 뿐이었다. 어쨌거나, 베이컨의 승리다.
상큼하게 설레는 향
소나무
나는 항상 향수를 바꾼다. 한 가지 향수를 3개월 쓴 다음에는 그 향수가 아무리 좋아도 바꾼다. 그래서 나중에 그 향수를 다시 맡아보면 언제나 그 지난 3개월이 떠오른다. 썼던 향수를 다시 쓰는 일은 없다. 그 향수는 나의 영구적인 냄새 컬렉션의 일부가 된다.
앤디 워홀의 『앤디 워홀의 철학』중에서
송진에서 솔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분이 테르펜이다. 피넨은 솔향기에 청량감과 자극 효과를, 리모넨은 밝고 명랑한 시트러스 향을 더해준다. 대마초 또는 소나무의 사촌인 시더(cedar)처럼 소나무는 벌레를 쫓아버리는 수지를 만들어낸다.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속해 있는 침엽수는 뜨거운 여름날에 테르펜을 더 많이 뿜어낸다. 테르펜 분자에는 수증기가 더 잘 달라붙기 때문에, 햇빛을 차단해서 숲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다시 말하자면 소나무 숲에 들어가면 마치 딴 세상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소나무는 자신들만의 미세기후를 만들어내면서 그림자를 드리워놓고 우리로 하여금 명상에 빠지게 하며, 소나무 숲 바깥세상과는 뚜렷이 다른 세계를 펼쳐놓는다.
솔향기를 들이마시다보면 콕 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생기가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숲속을 산책하면 천연 아로마테라피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식물이 발산하는 향기물질 중에서 피톤치드는 질병과 싸우는 백혈구의 생성을 촉진한다. 따라서 나무나 풀이 무성해서 피톤치드가 충분히 발산되는 환경 속을 걷다 보면 면역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다. 몇몇 언어권에서는 ‘삼림욕’이라는 용어가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나무는 실제로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효능이 있다. 송유는 울혈과 두통 감기를 치료하고 통증을 풀어준다. 소나무 껍질과 솔잎에는 다량의 비타민 C가 함유되어 있다. 500년 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이끌던 탐험대의 대원 한 사람이 퀘벡 외곽에서 괴혈병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이때 인근에 살던 이로쿼이족 인디언 도마가이아라는 사람이 이로쿼이아말로 안테다라고 부르던 소나무로 끓인 차로 환자를 살려냈다. 소나무 차의 효과는 기적적이라 할 정도로 빨랐다. 소나무 차를 두세 번 마시고, 차 찌꺼기를 상처에 붙이자 환자의 피부가 깨끗이 아물었고, 퉁퉁 부었던 다리는 근력을 되찾았다. 잇몸의 출혈은 멈추었고, 흔들리던 이도 튼튼하게 회복되었다.
실제로 그 당시의 길고 혹독한 겨울의 고난은 장기 항해의 고난과 비슷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무리 단단히 준비해도 언제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함은 크나큰 압박이었다. 이로쿼이족은 숙면을 유도하고 활기를 주는 상록수인 소나무가 겨울을 나고 봄까지 버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 많은 냄새를 알 수 있다면
중고 서점 안의 좋은 냄새가 나는 헌 책들을 떠올려보자. 그 책들 안에 든 단어를 모두 합하면 수십억 단어가 넘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에는 그 많은 단어 중에서도 냄새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단어가 거의 없다. 우리는 대개 어떤 냄새를 표현할 때 그 냄새가 나는 물건이나 음식이 비유한다. 설탕 냄새, 연기 냄새, 하는 식이다. 심리학자들은 냄새를 적당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현상을 후각과 언어의 간극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런 현상을 냄새를 지각할 수는 있지만 그 냄새의 이름을 분명하게 찾아내지 못하는 ‘코끝(tip the nose)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현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문화적인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 듯하다. 냄새에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냄새의 이름을 짓고 그 냄새를 정확히 묘사하려는 노력이 거의 사라진 현대 산업사회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면서 자꾸만 비트겐슈타인이 남인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라는 명언이 생각났다. 냄새에 대해 배우면서 나는 내 세계를 넓혀나갔다.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책은 내 컴퓨터 안에 디지털 파일의 형태로 존재한다. 내가 만드는 것은 ‘말’이지, 실재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나의 글과 말에는 냄새가 없다. 나중에 인쇄가 끝난 뒤에야 이 글은 물리적인 형태를 갖게 될 것이다. 그때 이 책에서 어떤 냄새가 날지 궁금하다.
모든 언어가 영어처럼 냄새 표현에 빈곤하거나 모든 사람이 영어 사용자처럼 냄새 표현에 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짚어볼 만한 사례가 말레이 반도의 자하이족과 세막 베리족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냥과 채집을 위주로 살아가는 소규모의 부족인데, 자하이 부족 인구는 이제 고작 1000여 명, 그리고 세막 베리 부족 사람들은 그 두 배 정도의 인원이 남아 있다. 두 부족 모두 열대우림에서 자신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주변 환경의 수많은 냄새를 구분하는 후각 능력에 의존해 사냥을 하며 살아간다. 자하이 부족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정립하고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데도 냄새를 이용한다.
특정 동물의 고기는 다른 동물의 고기를 구웠던 불에 이어서 굽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냄새가 섞일 것을 우려해서다. 마찬가지로 한 집안의 남매라 하더라도 너무 가까이 앉는 것을 금한다. 공기 중에서 남매의 냄새가 섞이는 것마저도 근친상간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자하이 부족은 자기 주변의 냄새를 늘 관찰하면서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그러므로 후각이 받아들이는 것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도록 언어가 발달한 것도 당연하다.
영어 사용자들은 더 많은 단어를 만들어내야 한다. 냄새를 배울수록 세계를 더욱 다양하게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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