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
 
지은이 : 윌리엄 폰 히펠(역: 김정아)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 2021년 11월




  • 진화 과학을 인류학, 생물학, 역사, 심리학과 함께 다양한 예시를 곁들여 살펴보는 이 책은 우리 인류를 바라보는 신선하고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시선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멋진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며, 과거의 이해를 통해 더 나은 미래의 행복을 설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친화력을 지닌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류의 진화 과정을 공부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사회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


    친화력, 인간과 침팬지를 가르다

    에덴에서 쫓겨난 인류

    집단행동, 심리 변화를 일으키다

    침팬지는 서로 협력하기보다 경쟁하는 성향이 더 크다. 그러니 처음에는 침팬지 비슷한 우리 머나먼 조상이 대형 포식자를 쫓아내려고 집단행동을 펼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리가 죄다 도망친 가운데 어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개체가 홀로 돌을 던졌다가는 포식자에게 겨우 멍 자국만 남긴 채 끝내 잡아먹히고 말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신 개체 여럿이 돌을 던지면 하이에나나 검치호랑이, 더 나아가 사자까지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집단행동이 필요했으므로, 우리가 사바나에서 그저 살아남는 정도를 넘어 번성하도록 이끈 가장 중요한 심리 변화, 즉 협력하려는 욕구와 협력할 줄 아는 능력이 생겨났다.


    이런 방식으로 협력하는 법을 익힌 무리의 개체들은 엄청난 이익을 누렸다. 이들은 ‘각자도생’ 전략에 몰두한 무리의 개체보다 더 빨리 번식했을 것이다. 번식만큼이나 중요한 이익이 또 있었다. 잇단 심리 변화가 집단 대응의 질을 높여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협력하기를 좋아했던, 또 남도 협력하리라고 믿을 수 있었던 우리 조상은 협력의 대가로 엄청난 보상을 얻었다.


    돌팔매질 덕분에 조상들은 협력으로 얻는 이익을 어마어마하게 늘렸을 뿐더러, 협력을 강화할 새로운 수단도 얻었다. 협력에서 가장 큰 난제는 무임승차, 즉 이익은 같이 누리면서 힘든 일은 쏙 빠지려는 성향이다. 사바나 생활 초기에는 오스트랄로피테신 무리의 구성원 대다수가 무임승차의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다른 구성원들이 포식자를 막아내고자 협력할 때도 자기는 포식자 그림자만 보여도 멀리 달아나고 싶었을 것이다. 보나 마나 우리 먼 조상은 그런 무임승차자에게 분명 불만을 느꼈다. 오늘날 직장 생활을 떠올려 보라. 제 할 일은 나 몰라라 내팽개쳤으면서도, 상사가 밤샘한 부서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때 밤샘에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동료를 보면 누구나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즈음 조상들은 구성원이 반드시 협력하도록 강제할 새 무기들을 손에 넣었다.


    첫째 무기는 추방(ostracism)이었다. 숲에서야 유인원 무리에서 쫓겨난들 짜증나는 일로 그쳤지만, 초원에 사는 오스트랄로피테신 무리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곧 사형 선고였다. 이런 까닭에 우리 조상은 추방될지 모른다는 위협에 강렬한 감정 반응을 보이도록 빠르게 진화했다. 오스트랄로피테신 가운데 무리에서 쫓겨날 위험을 개의치 않았던 종은 우리 조상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무임승차하려던 구성원들도 추방이라는 위협에 밀려 협력의 대열에 합류했다. 오늘날까지도 추방과 배제는 협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도구로 구실을 한다. 그 결과 지금도 우리는 사회에서 배제되는 일을 고통스럽기 짝이 없게 여겨 소속 집단의 호감을 사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둘째 무기는 집단 처벌이었다. 번번이 협력 대열에서 벗어나면서도 무리에 꼭 들러붙거나 호락호락하지 않게 공격적이라 추방하기 어려운 구성원에게는 집단 처벌이 특효약이었다. 멀리서도 적을 죽이는 능력은 전쟁사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발명이다. 약한 개체들이 병력과 안전의 우위를 확보한 상태로 더 강한 개체를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돌팔매질은 우리 조상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는 동료에게 내린 가장 초기 형태의 처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존재한다. 성경을 봐도 성경을 쓸 당시 이미 교수형, 참수형, 십자가형, 더 끔찍하게는 서로 죽이게 하는 처벌까지 다양한 처벌 방식이 있었는데도, 여러 죄악을 율법에 따라 돌팔매질로 징벌했다. 율법을 만든 사람들도 율법 위반자를 돌팔매질할 때의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한 셈이다.


    집단행동, 인지 혁명을 일으키다

    협동 덕분에 더 영리해지기는 했지만, 서로 협동하려면 조상들은 사고방식을 여러모로 바꿔야 했다. 무엇보다도 정보를 공유해야 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조상들이 이전에 구성원과 경쟁하며 살던 시절에는 무엇을 아느냐가 곧 힘이었으므로 자기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남과 공유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협력하기 시작한 뒤로는 서로 같은 내용을 알고 있을 때 훨씬 큰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서로 같은 내용을 아는 첫걸음은 같은 곳을 보는 것이다. 내가 동료 구성원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해 보자. 이때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이 모르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달리 말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남이 알지 못하게 한다. 짝짓기하고 싶은 상대를 눈여겨보든 군침 도는 무화과를 탐스럽게 바라보는 남이 먼저 접근하지 못하도록 비밀로 감춘다. 하지만 동료 구성원과 협력하는 사이라면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리고 싶기 마련이다. 군침 도는 먹잇감을 내가 맨 먼저 본다면 서로 힘을 모아 먹잇감을 잡도록 남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한다.


    우리가 흰자위로 시선을 훤히 대놓고 알린다는 사실이 명백히 증명하듯이, 우리는 무엇이 우리 시선을 사로잡았는지 숨길 때보다 남이 그 정보를 알 때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공막이 다른 유인원과 달리 흰색으로 진화할 까닭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변화가 무리에게 이익이고, 따라서 무리의 구성원인 개체에도 간접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이론으로는 그런 주장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무리가 얻는 이익이 엄청나게 크면서도 정보 공유 체계에 참여하는 개인이 치를 대가는 적어야 한다. 만약 집단의 이익이 개별 구성원이 값비싼 대가를 치른 지식에서 나온다면 대다수 상황에서 개인이 지식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설사 집단을 희생시키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이 성공해야만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단의 목표가 개인의 목표와 충돌할 때는 거의 언제나 개인의 목표가 이긴다. 침팬지는 우리 인간보다 자기 지향성이 훨씬 더 크고 집단 지향성이 훨씬 더 적으므로 무리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어려움 겪는다. 하지만 조상들이 사바나로 이동한 뒤 협력이 성공의 열쇠임을 알아냈을 때는, 운 좋게도 유인원 가운데 처음으로 집단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일치했다. 달리 말해 경쟁 종보다 더 협력할 줄 알았던 유인원은 숲에서 내몰림으로써 생존 방식의 새로운 틈새를 열어젖혔다. 이렇게 진화 과정에서 집단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가 일치했던 덕분에, 우리는 커다란 두뇌 말고는 무기로 삼을 만한 신체적 장점이 눈에 띄게 부족했는데도 마침내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올라섰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협력의 길로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분업 덕분에 조상들은 새로운 황금시대를 맞았다. 서로 협동하여 얻은 성과가 개인이 따로따로 애써 얻은 성과의 총합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분업으로 창발성(創發性)을 얻은 조상들은 이전의 어느 무리보다도 더 효율적이고 유능한 집단이 되었다. 조상들이 열대 우림을 떠난 지 400만 년이 더 지났을 무렵, 호모 에렉투스는 인류에게 나무 위 생활의 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한 능력을 선사함으로써 우리를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한때 우리를 잡아먹던 동물들이 분업 덕분에 마침내 우리의 먹잇감이 되었다.


    인류가 호모 에렉투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사이 뇌도 계속 커졌다. 그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상대방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도 함께 늘었다. 당신도 나도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며 일어난 이런 진화 과정의 결과물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커다란 뇌를 이용해 발전시킨 복잡한 문화에 힘입어 어떤 환경에든 무사히 정착했다. 머잖아 아프리카 전역에 자리를 잡았고, 곧이어 아프리카 밖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12만 5,000년 전에 아라비아에 머문 흔적이 있고, 8만 년 전에는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밖으로 나갔다. 6만 5,000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 다다랐고, 4만 5,000년 전에는 북극에까지 발을 디뎠다. 2만 년 전에는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이주한 곳은 태평양 제도로, 그 가운데 뉴질랜드에는 700년 전에야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남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

    동맹을 형성하고 유지하고자, 힘을 모아 모험에 나서고자, 또 누군가의 손에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자, 조상들은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법을 배웠다. 남의 행동을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타인의 사고방식과 목적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마음 이론이다. 마음 이론이란 남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 이런 까닭에 아이들이 불쑥 내뱉는 말과 이야기는 종잡기가 무척 어렵다. 아이들은 남이 자신과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걸핏하면 잊어버린다. 그러다 문득 사람마다 취향과 지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빨간색 젤리를 좋아하는데 너는 까만색 젤리를 좋아하네. 너는 얼음땡을 할 거야? 나는 숨바꼭질을 할 건데. 그러다 서로 이익인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아이들의 삶은 순식간에 풍요롭고 쉬워진다.


    남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한 뒤로, 조상들은 남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가장 뚜렷이 파악할 실마리는 행동이지만, 정말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면 그 아래 깔린 의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여자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우연이었을까, 일부러 그랬을까,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서로 경쟁하는 연합체들을 이해할 때, 그중에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연합체의 구성원이나 목표가 바뀔 때는 특히 이런 기본적인 마음 읽기가 필수다.


    어떤 사람이 넘어지는 바람에 내 발을 밟는다면 분명히 우연이지만, 멀쩡히 걸어가다 내 발을 밟는다면 분명히 고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까? 사회적 지각(social perception)이라는 기초 역량 덕분에 사회적 정보를 원활하게 처리할 줄 알기 때문이다.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는가? 우연히 반려동물을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기거든 그다음에 동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라. 한번은 나도 모르게 우리 집 개의 발을 밟았더니, 꾸짖었을 때처럼 개가 순종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개에게는 의도한 행동과 의도치 않은 행동을 구별할 능력이 없으므로, 우리 의도를 이해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능력이 몹시 떨어진다.


    서로 깊이 의존하는 삶 때문에 사회적 지각뿐 아니라 자부심, 죄책감, 수치심 같은 새로운 사회적 감정(social emotion)도 진화했다. 이런 감정들이 발달하려면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야 한다. 또 이런 감정들은 분노나 사랑 같은 다른 사회적 감정과 달리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이런 감정을 흔히 자의식 감정(self-conscious emotion)이라 부른다. 이런 자의식 감정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느끼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 집단에서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지 또 떨어뜨리는지를 곧장 강력하게 알려준다.


    집단에서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자부심을 느낀다. 자부심은 다시 긍정적 감정으로 이어지므로 자부심을 느낄 기회를 더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동료 구성원에게 해를 끼칠 때는 죄책감을 느낀다. 죄책감은 자신을 향한 부정적 감정으로 이어지므로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동료에게 해를 끼칠 일을 피하고, 결국 동료들에게 따돌림받을 일도 피한다. 구성원들 앞에서 낯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는 수치심을 느낀다. 이때도 자신에게 부정적 감정을 느끼므로 수치스러운 행동을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위신이 더 떨어질 일을 피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자부심과 죄책감과 수치심이 무척 중요하다. 이런 감정에 힘입어, 우리는 호모 에렉투스와 함께 출현한 서로 깊이 협력하고 의존하는 집단에서 제 역할을 함으로써 인류를 크나큰 성공으로 이끌었다.


    마음 이론이 가르치고 배우는 능력에 미친 영향

    마음 이론이 진화함으로써 우리는 사회 세계를 탐색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다른 이점이 있다. 가장 눈여겨볼 이점은 남을 가르치는 능력과 남에게서 배우는 능력이 아주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대와 내 지식이 얼마나 다른지 알지 못하면 남을 가르치기가 어렵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이 사람이 아는 것은 무엇이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가르쳐야 내 말을 잘 알아들을까? 하지만 이런 물음의 답을 안다면, 상대의 기본 지식을 기준점 삼아 새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그 결과 인간은 믿기지 않을 만큼 남을 잘 가르치는 존재가 되었다.


    마음 이론은 배우는 사람에게도 유용하다. 내가 모르는 지식을 다른 사람이 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그 지식을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가르침을 줄 사람들에게 눈을 떼지 않고, 상대의 의도를 제대로 모를 때마저도 그들의 행동을 모방한다. 이를테면 당신이 나에게 야구공 던지는 법을 가르친다고 해 보자. 당신은 한쪽 무릎을 가슴까지 쭉 끌어올렸다가 공을 던질 것이다. 그다음에는 내가 당신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 한다. 동작이야 어색하고 볼품없겠지만, 야구를 더 잘 아는 쪽은 당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을 모방하는 행동은 분명 마음 이론과 관련 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오로지 인간만이 남의 행동을 모방한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빅토리아 호너와 앤드루 위튼이 이런 효과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실험을 했다. 이들은 어린아이들과 침팬지에게 선물이 든 복잡한 보물 상자를 하나 선물한 뒤 상자 여는 법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상자를 여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쓸모없는 동작도 몇 가지 집어넣었다. 이를테면 상자를 여는 걸쇠가 옆면에 있는데도, 먼저 상자 윗면에 있는 구멍을 막대기로 찔렀다. 상자 표면이 불투명할 때는 아이나 침팬지 모두 상자 윗면의 구멍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상자를 열 때 연구진이 보인 동작을 빠짐없이 따라 했다. 그런데 상자가 투명했을 때는 어떤 동작이 상자를 여는 것과 관련 있는지 없는지가 분명히 보였다. 이때 침팬지는 상관없는 동작을 무시한 채 필요한 동작만을 따라 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어떤 동작이 불필요한지 뻔히 보이는데도 여전히 모든 동작을 따라 했다.


    이것은 과잉 모방(over-imitation)이라 부르는 성향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이는 습성이다. 산업 사회에서 고등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든, 칼라하리 사막의 소규모 부족 사회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외진 곳에서 정규 교육을 거의 또는 아예 받지 못하고 사는 아이들이든 모두 과잉 모방 습성을 보인다. 과잉 모방은 인간에게 중요한 성향이다. 어떤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 안다고 간주하여 그 사람을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하게 모방한다. 그 결과 효율성이 올라간다.



    친화력은 진화에 어떻게 발현했나

    사회적 인간-호모 소시알리스

    커다란 뇌는 사회관계에 도움이 된다

    15년쯤 전 사회적 뇌 가설을 알게 되었다. 사회적 뇌 가설은 생물학과 인류학에서는 1960년대부터 가볍게나마 논의한 견해였지만, 심리학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던 내용이었다. 1장과 2장에서 다뤘듯이 이 가설은 영장류가 커다란 뇌를 진화시킨 이유가 서로 의존하는 동료 구성원들을 대할 때 나타나기 마련인 사회관계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것이었다고 가정한다.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우리 뇌가 이렇게 커진 원인이 물리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면 우리가 인지와 관련한다고만 여기는 많은 능력이 사회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박사 과정을 밟는 제자 아이작 베이커는 확산적 사고가 사회생활에서 성공을 촉진한다는 생각을 검증하고자, 서로 친구 사이인 참여자들을 모집해 일련의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참여자들의 지능 지수와 성격을 검사한 뒤, 베이커는 벽돌과 접시 등 흔한 물건의 용도를 떠오르는 대로 말해 보라고 요청했다. 물건의 용도는 확산적 사고를 툭툭 건드리는 물음이다. 어떤 사람은 남들과 생각이 아주 비슷해서 이를테면 벽돌을 이용해 문이나 창이 닫히지 않게 한다거나, 선반을 받친다고 답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벽돌로 돗자리가 들썩이지 않게 귀퉁이를 누른다거나, 못을 박는다거나, 짜증나는 사람에게 던진다는 등 더 다양한 사용법을 제시한다.


    베이커는 이어서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른 친구들의 사회성을 은밀히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를 보니 벽돌의 용도를 더 다양하게 떠올린 참여자들이 설득력과 유머, 카리스마가 더 뛰어났다. 이런 관계는 지능 지수와 상관없이 유효했으므로 확산적 사고가 영특함을 나타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확산적 사고는 남을 설득하고 웃게 하고 휘어잡을 수 있게 하는, 그 자체로 중요한 능력이다.


    두뇌 반응 속도 즉 빠르게 정보를 검색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세상에 유연하게 대응하게끔 도와주는 또 다른 인지 능력이다. 사회적 상호 작용은 빠르게 일어나기 일쑤이므로 생각할 겨를이 거의 없다. 당신이 나를 소재로 농담을 던진다고 해 보자. 내가 곧바로 재치 있게 받아친다면 나는 당신에게 밀리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대꾸할 말을 떠올리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면 대화 주제가 이미 달라졌기 십상이다. 그제야 이미 지나간 농담에 대꾸하려 한다면 설사 내가 기막힌 대꾸를 떠올렸더라도 얼간이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니 더 빨리 생각할수록 상대에게 대꾸하기 전에 참고할 선택지가 더 많아진다.


    지난 100년 동안 수행된 연구는 지능 지수가 곧 지적 능력이고, 사회 지능은 더 큰 영역인 지적 능력의 일부이거나 곁가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수행한 초기 연구들은 오히려 실상이 반대일지 모른다고 암시한다. 어쩌면 사회 지능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진정한 지적 능력이고, 추상적 사고와 상징을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아는 추상 지능(abstract intelligence)이나 지능 지수처럼 복잡한 문제를 푸는 능력은 사회적 능력이 진화하며 우연히 나타난 곁가지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뇌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사회 지능이 지능 지수의 부산물이라기보다 지능 지수가 사회 지능의 부산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또 사회 지능이 정말로 더 폭넓은 정신 능력을 나타낸다면 사회생활에 성공할지를 지능 지수로 가늠하지 못할 때가 숱하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지능 지수를 측정할 때는 인지 능력의 한 조각을 바라볼 뿐이지만, 사회 지능은 세상을 헤쳐 나갈 역량을 훨씬 더 많이 알려준다.


    보나마나 이 대목에서 이런 반론이 나올 듯하다. “잠깐만요. 내가 아는 아주 똑똑한 사람 중에는 사회 부적응자가 많아요. 사회성이 뛰어난데도 영수증도 계산할 줄 모르는 친구가 꽤 있고요. 지능 지수가 사회 지능의 부산물이라면 두 역량의 상관관계가 아주 높아야 하지 않나요?” 사실 이런 불일치는 흔하디흔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분명 전체 인지 능력과 사회적 능력은 일대일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제력, 확산적 사고, 두뇌 반응 속도 같이 유연성을 발휘하게 도와 사회성을 높일 만한 특정 인지 능력을 살펴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 까닭에 헌법은 달달 외우면서도 슈퍼마켓에서 집에 가는 길은 못 찾는 사람이 있고, 수학에는 한없이 밝으면서도 남을 파악해 조종하는 데 쓸모 있는 특정 인지 능력은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혁신하는 인간-호모 이노바티오

    사회 혁신이란 무엇일까?

    사회 혁신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정리해야 할 사안이 있다. 사람과 관련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뺀다면, 혁신이 사회와 관련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혁신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을 뜻한다.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는 혁신이란 새로운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회 혁신은 사회관계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해법의 본질이 무엇이냐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진 친구나 친척과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는 사회관계와 관련한 문제인데, 전화기를 발명함으로써 기술로 해결할 수도 있고, 여러 친구를 거쳐 소식을 전함으로써 사회관계로 해결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다친 무릎으로 걷고 싶은 욕구는 기술과 관련한 문제인데, 친구에게 부축을 받음으로써 사회관계로 해결할 수도 있고, 목발을 이용함으로써 기술로 해결할 수도 있다. 이런 해법이 새롭고 기발할 때 사회 혁신이나 기술 혁신이 된다. 이와 달리 이미 되풀이되었거나 차용한 해법일 때는 사회적 해법이나 기술적 해법이지 혁신이 아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사회적 해법이지 사회 혁신이 아니다. 물론 도움을 요청한다는 생각을 세상에서 맨 처음 떠올렸다면 예외다.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위대한 발명들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사회적 발명이라는 사실이 뚜렷해진다. 이를테면 호모 에렉투스의 발명 중에서 핵심은 분업과 그에 따른 사회적 조율이었다. 해야 할 일을 나눈 뒤 집단이 협업함으로써, 호모 에렉투스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도구로 거대한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다. 분업은 구성원을 단순히 합쳤을 때보다 집단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우리에 이르는 성공담을 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큰 역할을 했다.


    호모 에렉투스에 비하면 지구에 존재한 기간이 훨씬 짧은데도, 호모 사피엔스는 기술 발명을 어마어마하게 더 많이 만들었을 뿐더러 사회 혁신도 수없이 고안했다. 돈을 예로 들어보자.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지만, 돈은 놀랍도록 유용한 사회 혁신이다. 돈이라는 물질 자체는 대단할 것이 없다. 돈에서 중요한 부분은 모든 사람이 돈의 가치에 동의하게 하는 사회 관습이다. 분업 이후로 역사에서 둘째로 중요한 사회 혁신을 꼽으라면 바로 돈일 것이다. 돈을 이용하면 값이 매겨진 것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 서로 물품을 교환해야 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모든 것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쇼핑몰에서 스웨터를 한 벌 사려고 돼지나 염소 한 마리를 교환할 물품으로 끌고 가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런데 돈이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물건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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