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렇게 죽을 것이다
 
지은이 : 백승철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21년 12월




  • 사실 이 책은 책장을 쉬이 넘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영정 사진을 찍어두듯, 자신의 죽음을 설계하는 경험은 지금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마지막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쳤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죽을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죽을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죽을 것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인생 여정은 모두 다릅니다. 부자로 산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난하게 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 등 누구 하나 똑같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든 죽음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수주, 길게는 수개월 동안 진행되는 인생의 마지막 과정은 거의 유사합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그 시기에는 더 이상 본인의 의지대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대화하며 마음껏 몸을 움직일 수 없이 육체의 감옥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러다 종국에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절대 평등의 순간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은 80세, 여성은 86세이고 성인 사망 원인 중 단연 1위는 암입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죽음의 모습은 80세 이후에 암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입니다. 물론 암 외에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폐렴 등도 대표적인 사망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사망 원인이 무엇이든 질병을 인지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마지막 과정은 거의 유사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과정에는 심부전, 호흡 부전, 뇌압 상승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결국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3대 장기의 기능이 영구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정지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랜 수행을 거친 고승의 경우 자신의 죽음, 즉 입적 날짜까지 예견한다고 합니다. 죽음을 직감하면 정갈하게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고 가부좌한 채 입적에 든다는 것인데 죽음 전에 일어나는 신체의 변화를 일어나고 순응한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은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잠에 대한 욕구는 늘고 음식과 물에 대한 욕구는 줄어듭니다. 이러한 욕구의 변화는 죽음을 수용하는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 중에 겪게 되는 통증은 뇌신경을 통해 전파됩니다. 죽음 전에 식욕이 사라지면서 음식을 섭취하지 않게 되면 뇌는 서서히 통증을 포함한 모든 감각이나 사고 능력을 잃어가고 잠든 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려고 할 수 있습니다. 뇌는 정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 장기입니다. 강제로 수액을 주사하고 비위관을 통해 인공적으로 영양을 공급하면 잠자는 뇌를 다시 깨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

    헌법에서는 자유 보장을 위한 기본권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2조에서 말하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 신체의 자유에 대한 정의도 이러한 자유권적 기본권 중 하나입니다. 해당 조항에서는 체포, 구금, 심문 등 법률적 사안에 대한 것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명권과 연관하여 신체의 자유에서는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가 파생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스스로 신체를 훼손하거나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할 권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의사는 인간의 신체 및 정신의 질병, 손상 등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함으로써 인간의 정상적인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과 직면할 수 있는 질병과 사고를 대처함에 있어 의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며 중심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의사는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1997년, 일부 가족의 강력한 요구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사망한 환자와 관련해 인공호흡기 제거를 반대했던 가족이 의료진을 살인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7년 동안의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음을 뜻하는 법률 용어)에 의한 살인’으로 의료진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후 의료계에서는 소생 가능성이 없어 환자나 보호자가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병원이 퇴원을 시키지 않기 위해 법원에 ‘퇴원 거부 가처분 신청’을 내는 사례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환자 치료에 대한 판단과 결정의 중심에는 의사가 있고 그 판단은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법적인 문제 제기 가능성과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모순 등으로 말미암아 말기 환자 치료에 혼선이 빚어져 왔습니다. 이에 따라 법제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었고 최종적으로 2016년에 연명 의료 결정법이 제정되어 2017년 8월부터 시행 중에 있습니다.


    연명 의료 결정법에 따라 모든 환자는 자신의 질병 상태와 예후 및 향후 본인에게 시행될 의료 행위에 대해 분명히 인지하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의료인은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고 호스피스와 연명 의료에 대한 사항 그리고 연명 의료의 중단 결정에 관해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며 그에 따른 환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말기 환자에 대한 모든 의료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연명 의료 결정법 시행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와 ‘연명 의료 계획서’입니다.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통해 자신에 대한 연명 의료 중단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문서로 미리 남길 수 있습니다. 의사는 연명 의료 계획서를 작성하여 환자에게 설명하고 환자는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를 작성하여 연명 의료 중단에 대한 본인의 확실한 의사를 의료진에게 전달함으로써 삶의 질과 존엄성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 따른 각종 생명 연장 장치와 의술은 당신이 결코 마음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의사는 모든 의료 지식과 의료 기술을 동원하여 환자를 치료할 의무가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치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명 의료에 대한 법률적 거부 의사가 없다면 마지막까지 당신의 입, 코, 혈관에는 각종 튜브와 주사가 꽂힌 채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이해하고 현명하게 판단하여 인생 마지막만큼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지로 사전에 연명 의료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남기는 순간 비로소 마음대로 죽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선물이 될 죽음

    우리나라의 경우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동양적 관점이 강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뇌사자의 장기 기증이 5분의 1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2020년 말 기준으로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4만 3000여 명으로 매년 대기자는 늘고 있으나 기증자는 대기자의 10퍼센트 수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하루 평균 5.2명은 필요한 장기를 제때 이식받지 못해 사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뇌사자가 기증할 수 있는 장기는 심장, 폐, 간, 신장, 췌장, 소장, 안구 등이고 장기 이외에 뼈, 혈관, 피부 등 인체 조직도 기증이 가능합니다. 다만 인체 조직 기증의 경우 신체를 훼손한다는 거부감이 강해 우리나라에서는 장기 기증은 하지만 인체 조직 기증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인체 조직의 경우 기증자가 부족해 이식재의 약 87퍼센트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운전면허증에 장기 기증 희망 의사 표시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나 현재 시행 중인 장기 이식법에서는 뇌사자가 사전에 장기 이식에 동의하였다 해도 가족이나 유족이 거부하는 경우 뇌사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장기 기증이 불가능합니다.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무연고자가 생전에 밝힌 장기 기증 의사를 증명하는 장기 기증 스티커가 발견되었다고 해도 연고가 있는 가족을 찾아 동의를 얻지 못하면 장기 기증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생전 고인의 유지가 유명무실해지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되도록 기증자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유족의 동의에 대한 부분을 포함한 여러 문제점에 대한 법적 개선이나 보완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아직도 종교적, 윤리적으로 뇌사를 인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불합리하다는 반대 의견이 존재합니다. 또한 장기 이식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정상적 삶이 어렵고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는 장기 기증자의 고귀한 선물 덕분에 건강한 삶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식을 받은 개인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사회 모두 환영하고 축복받을 만한 일임에는 분명할 것입니다.



    죽음을 설계하다

    오늘 저녁 식사로는 무엇을 먹을지, 이번 주말에는 무슨 영화를 볼지 같은 가까운 미래의 일부터 어느 대학을 가고 어떤 직업을 택할지 같은 먼 미래의 일까지 누구나 끊임없이 인생을 설계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음은 어느 순간 그냥 ‘당하는’ 것이고 미리 상상하는 것조차 기분 나쁘고 찜찜한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죽음을 설계한다는 것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인생사만큼 인생 설계도 모두 다르고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인생을 살아왔든 누구나 생의 마지막 순간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의 과정은 거의 비슷하기에 죽음의 설계는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죽음을 예감하는 말기 환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타인에 의지해 자신의 행동을 대신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이제 인생 설계라는 시계는 멈춘 것이라 생각해 낙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 설계의 아름다운 종착점은 현명한 죽음의 설계에서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죽음의 설계를 위해서는 제일 먼저 환자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해도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당사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의미에 대해 풀리지 않는 무수한 질문과 더불어 화나고 분한 생각에만 계속 휩싸인다면 잘못된 판단과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신체적 질병을 정신적, 정서적, 영적 차원에서 다스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신에 의해 육체를 통제해야 하는 인간 본연의 실체에 비추어 본다면 결국 마음으로부터 현실을 수용하고 평온을 찾으려는 노력이 현명한 죽음의 설계를 위한 시작이 됩니다.


    현명한 죽음의 설계를 위해서는 가족, 친지, 의료진, 전문가 등 모든 구성원의 긴밀한 협조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초라하거나 성가시게 보이지 않기 위해 혼자 고민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말고 언제나 대화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가족, 의료진을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은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기꺼이 대화하고, 도움을 주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현명한 죽음의 설계를 위한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정직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누구라도 쉽게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경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비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가족이나 주변인 심지어 의료진까지도 낙관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환자의 마음을 돌리려 합니다. 그러나 현명하게 무언가를 설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처한 상황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고자 하는 용기는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이나 의료진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무조건 침묵하거나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게 다 잘 될 거다” 식의 정직하지 못한 표현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 아닙니다. 환자, 가족, 의료진 사이에서는 공개적이고 정직한 대화만이 필요합니다.


    현명한 죽음의 설계를 위한 준비 과장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본인의 질병에 관한 것입니다. 질병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대해 환자 스스로 가능한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궁금한 점이나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늘 의료진에게 묻고 상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환자 본인에 관한 것으로 가족, 친지를 포함한 주변인들과 이제껏 풀지 못한 개인적 오해와 문제가 있다면 직접 만나거나 편지, 전화 등을 통해 충분히 대화하고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셋째, 가족에 관한 것으로 법률 및 재정적 문제에 대해서는 유언장 형식을 통해 정리합니다. 필요한 경우 주변의 도움이나 전문가의 자문을 받도록 합니다.


    죽음을 직면해 더 이상의 삶을 온전히 통제하기 어려워지면 감정적으로 포기 상태가 되어 성급하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죽음이 멀게 느껴지더라도 성인이 되거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잠시나마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죽음 설계에 대한 생각의 훈련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감정을 적절히 통제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성급한 감정적 반응을 자제하고 주변에서 선함과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평온하고 품위 있게, 보다 이성적으로 죽음에 다가가는 것이 현명한 죽음 설계가 될 것입니다.



    웰빙의 완성, 웰다잉

    현대화, 산업화 과정 중에 소외되었던 인간 본연의 삶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2000년대 들어 웰빙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웰빙이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 스스로 만족할 만한 행복과 평온을 느끼기 위한 건강한 육체와 정신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6년에 제정된 연명 의료 결정법은 웰빙의 대척점에 자리한 이 법안의 올바른 의미 전달을 위해 웰다잉법이라고 불립니다. 연명 의료 결정법이 웰다잉법으로 통용되면서 존엄사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진정한 웰다잉의 의미는 존엄사를 포함해 죽음을 앞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올바르게 정리하고 죽음에 순응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 사회적 관계가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만의 노력과 생각만으로 웰다잉을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제도적으로는 병원이나 요양 시설의 유기적 협조와 원활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고, 사회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교육과 상담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이해와 준비, 자기 결정권 구현, 정신적 평안, 신체적 안정, 원하는 장례 준비 등이 웰다잉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입니다.


    평온하고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웰다잉의 근본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으로는 오랜 기간 살아온 자신의 집에서 익숙한 침대에 누워 가족이 모두 모인 가운데 생을 마감하는 홈다잉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말기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의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약 80퍼센트는 생의 마지막 기간을 가정에서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집에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홈다잉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집에서도 치료, 간호,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가정 호스피스가 필수적입니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하게 됩니다. 필요한 경우 성직자, 자원봉사자, 요법 치료사 등이 연계되어 함께 방문하기도 합니다. 환자의 상태나 가족의 희망 사항 등을 고려해 가정에서의 돌봄 계획을 협의하고 조정하며 간호, 처치, 진료, 처방, 심리 치료 등이 실시됩니다. 또한 환자와 가족에 대해 증상 관리 방법이나 대처 방법, 투약, 의료 장비 사용 등을 교육하고 상담하며 필요한 경우 호스피스 병동 입원을 연계해주기도 합니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집에서 사망할 경우를 염두에 두고 호스피스 팀이 가족에게 임종 시 나타날 수 있는 증상, 준비 사항, 이동, 시체 검안서 등에 대해 안내하고 교육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목격할 경우 겪을 수 있는 두려움이나 어려움을 고려해 호스피스 의료진이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기도 합니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의 호스피스 치료 장소에 대한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시범적으로 운영되던 가정형 호스피스가 2020년 9월부터 본 사업으로 전환된 것은 크게 반길만합니다. 이제 가정형 호스피스도 국민 건강 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가정형 호스피스 전문 기관은 39곳뿐으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홈다잉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가정형 호스피스 전문 기관과 전문 인력의 지속적인 확대가 필요합니다.



    생의 마지막 결정

    누구나 죽은 후에는 이 세상에 세 가지를 남기게 됩니다. 그것은 신체, 재산, 가족입니다. 죽음 이후에 자신의 신변을 확실히 정리하고자 하는 이들은 생전에 법률 전문가, 재정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유언장이나 신탁 동의서 등을 작성해 남겨진 재산의 정리와 가족에 대한 배려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현실적 문제일 수 있는 죽음 이후 자신의 신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하는 데에는 소극적이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 신체에 대한 것은 어떠한 형식이나 형태의 장사, 장례, 장묘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장례 산업의 부가가치와 규모가 커지면서 병원들은 앞다투어 죽음을 전제로 하는 부설 장례식장에 투자를 늘리면서 병원 장례식장은 점차 대형화, 고급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장례식의 규모가 고인이나 가족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는 사회적 통념이 크게 작용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대형 병원 장례식장에서 화려한 꽃 제단과 수많은 근조 화환에 둘러싸여 조문객이 끊이지 않아야 호상(好喪)이라 여기는 사회 통념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산업화, 도시화를 겪으면서 형식과 편의만 강조하다 보니 다소 소홀했던 가족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례 문화에 있어서도 그러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고 그 중심에 가정 장례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왔던 가정 장례라는 선한 관습이 현대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전처럼 가족을 중심으로 추모에 집중하는 장례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생을 살면서 정립한 사고방식은 죽음과 관련해서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당사자가 원하는 장례 장묘 방식이 있다면 따라주는 것이 순리입니다. 설령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이견이 있더라도 가능한 한 부모가 원하는 장례 장묘 방식을 따르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것은 오롯이 당사자 스스로가 결정할 사항이며 아무도 이에 대해 훈수를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 자신의 장례와 장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미리 결정하는 것은 죽음을 예감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당장 죽음과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젊고 건강한 이들에게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비극이나 공포로 여기기보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 과정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건강한 삶에 대해 경외감을 가질 수 있고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