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
 
지은이 : 백경학 외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0년 11월




  • 우리나라에서 일자리와 자립 훈련이 필요한 30세 이하 장애인 중 발달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퍼센트로 상당히 높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약 800만 명에 달하는 65세 이상의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취업률이 약 36퍼센트로 낮은 편이이며, 생계도 생계지만 무엇보다 사회에서 쓸모없어졌다는 인식 때문에 정서적 폐해가 심각하다. 

    하지만 이들이 농장에서 일하며 자연과 더불어 산다면 정서적 안정을 되찾고 성취감과 자존감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농업과 복지가 결합된 형태를 사회적 농업이라고 한다. 스마트팜(Smart Farm), 케어팜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농업은 장애인과 노인을 고용함으로써 고령화와 일손 부족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농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


    장애 청년의 희망 일터, 푸르메소셜팜

    사회적 농업에서 찾은 장애 청년 일자리의 미래

    국내 최초의 스마트팜 학과가 개설된 연암대학교

    기존의 농업에서 작물의 재배와 수확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농부가 해 왔다면, 스마트팜은 온실 농업에 IoT 기술을 접목하여 작물의 환경에 대한 정보를 모바일로 확인하고 제어하는 ‘자동화 농장’이다.


    2세대 스마트팜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IoT 기술에 더해 스스로 학습하는 AI 기술을 접목시켜 스스로 최적화된 환경을 찾고, 농부의 별도 지시가 없어도 적절히 문을 열고 닫으며 양액을 공급하고 보일러를 가동한다. 농부는 종종 데이터 값이 적정한지, 세팅이 적절히 되어 있는지, 혹시 꿀벌들이 더 필요한지만 확인하면 그만이다.


    스마트팜을 도입하면 농부의 하루는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스마트팜 농부는 휴대폰과 컴퓨터, CCTV로 작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명령을 모바일로 내리면 된다. 농부의 감에만 의존했던 농작물의 환경 제어를 빅데이터를 통해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고, 기후와 토양의 영향을 덜 받아 생산성과 품질 면에서 월등히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론상으로 충분한 데이터와 제어 기술이 있다면 스마트팜은 어떤 작물이라도 재배가 가능합니다. 양액을 통해 작물에 필요한 영양분을 채워주고 온도와 습도, 햇빛의 조절을 통해 재배 환경을 맞춰 줄 수 있으니까요. 다만 환경 제어에 필요한 비용이 과하다면 수익성이 떨어지니 가능하면 적정 수준의 환경과 작물을 선택해야겠죠.”


    국내 최초로 스마트팜 학과를 개설한 연암대학교의 박준우 박사는 우리나라 스마트팜 산업이 아직 초기 단계여서 도입 비용이 높은 편이지만, 충분한 데이터 확보와 기술 발전이 뒷받침되면 우리도 얼마든지 스마트팜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어떤 환경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작물이 많이 생산되는지를 알아가는 것은 스마트팜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동일한 면적에서도 생산성과 수익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정교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여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 늘어날수록 경쟁력이 높아진다.


    연암대학교에서는 파프리카, 딸기, 엽채류 등 다양한 작물의 스마트팜 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실습과 빅데이터 축적에 힘을 쏟고 있다.


    스마트팜은 안전하고 쾌적한 장애 청년의 일자리

    스마트팜은 높은 생산성뿐 아니라 장애 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전문 관리자가 전체 농장을 관리한다고 해도 모종을 심고 열매를 수확하는 일은 많은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높은 생산성은 충분한 수익을 담보할 수 있고 충분한 수익이 확보되면 지속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장애 청년에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또한 농업에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생명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중증 장애인이나 정신 질환자를 가둬 두거나 묶어두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자연과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한 사회가 좀 더 성숙하고 발전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는 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환경오염으로 인해 안전한 먹거리를 찾기 어렵고 경작할 수 있는 토지는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 스마트팜은 우리가 환경과 농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대안이 되어 준다.


    도심 속 스마트팜이라면 땡볕도, 미세먼지도 없는 쾌적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장애 청년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딸기와 토마토를 보살피고, 어린이들은 재잘재잘 딸기를 따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 농업의 미래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공동체 문화와 복지 향상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일하고 싶은 지속 가능 농장을 만들다

    반려 식물과 반려 동물이 함께하는 농장

    서울농원에서 일하고 배우는 15명의 발달 장애인들은 대부분 중증장애인이다. 이곳을 이끌어 가는 장경언 원장은 “우리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은 중증 발달 장애인들이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고 말한다. 제조업의 경우 잦은 실수가 제품의 불량으로 이어지고 이는 기업의 손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은 약간의 실수와 느림도 너그럽게 품어 주기 때문에 발달 장애인에게 마침맞은 일이다. 꽃을 잘못 따거나 물을 몇 시간 늦게 주는 실수도 실패나 손해로 직결되지 않는다.


    서울농원에서 일하는 발달 장애인들에게 꽃과 작물은 ‘반려 식물’과 같다. 일하는 능력과 사회성을 배우는 동시에 식물을 키우면서 심리적인 안정감, 유대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꽃을 심고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열매를 거두는 등 15명의 근로자 모두가 각자 다른 일을 맡아 자신의 능력과 속도에 맞춰 일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래서 보호 작업장으로서의 역할까지 충실히 해내고 있다.


    푸르메스마트팜 서울농원은 단순한 일터가 아닌 케어팜 역할을 겸한다. 청계, 개, 꿀벌 등을 기르는 것은 물론 스포츠 활동도 진행한다. 근로자들의 정서 안정과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다.


    장경언 원장은 영농 직업 재활 분야에서 일하며 변화하는 발달 장애인의 모습을 수차례 목격했다. “행동이 거칠고 매일 문제를 일으키는 발달 장애인 근로자가 있었어요. 다른 직원과 근로자들이 ‘함께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하다가 그와 얘기를 나눠 봤는데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고 한 번 더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를 믿음으로 대하면서 함께 일했고, 결국 그 근로자는 놀랄 만큼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어요.”


    첨단 기술로 제어되는 서울농원의 온실에서는 블루베리와 식용 꽃이 자란다. 블루베리는 열매를 맺는 5월부터 장애인 직원들이 직접 열매를 수확해 판매하고 있다.


    다른 쪽에 있는 어두컴컴한 한 동에서는 표고버섯을 재배한다. 갓이 희고 갈라져 있는 ‘백화고’는 표고버섯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품종이다. 버섯은 생명력이 강해 잘 키우면 수십 번 수확할 수 있다. 장애인 직원들은 하루에 3번씩 물을 주며 정성껏 버섯을 기르고 있다.



    농업과 복지의 만남, 일본의 사회적 농업 현장을 가다

    고령화 농업의 빈자리를 장애인이 채우다, 교마루엔 농장

    장애인 근로자의 업무는 간결하고 명확해야

    스즈키 대표는 농복연계의 핵심은 업무의 단계화라고 말한다. 소수 인원이 일한다는 것은 혼자서 여러 단계의 일을 복합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이런 형태의 업무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보통 누군가 “선반을 깨끗하게 해 주세요”라고 지시하면 비장애 근로자는 머릿속에서 각 단계를 생각해서 작업한다.


    하지만 장애인 근로자는 이런 추상적인 명령어를 해석하지 못한다. “선반이 깨끗해질 때까지 닦아 주세요”라고 하기보다는 “오른쪽 상자에서 선반을 꺼내 앞부분을 5번, 뒷부분을 5번 문지른 다음 옆면을 손으로 2번 쓸고 왼쪽 상자에 넣어 주세요”라고 지시해야 올바르다. 장애인 근로자는 이렇게 명확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명령어가 수반되어야 제대로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도 완전한 결과를 내기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스즈키 대표는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위해 업무를 보조하는 기계를 도입했다. 그는 그 기계를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도면을 설계한 후 근처에 있는 공방에 제작을 의뢰했다.


    여기에 농장 내 장애인들을 진료한 의사들의 소견까지 첨부했다. 한쪽 팔을 사용하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 다른 쪽 팔로 조작할 수 있도록 설계했고, 허리와 다리 통증으로 일어서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 기계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스즈키 대표가 보조 기계를 도입한 배경에는 복지 전문가들이 만든 매뉴얼의 영향이 컸다. 감각과 노하우에 의지하는 업무는 본인 이외의 다른 근로자는 할 수 없다. 감각과 노하우에만 의존한다면 도장 기간의 도제식 교육 방식을 도입해 업무를 제대로 할 때까지 가르쳐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없애고자 스즈키 대표는 복지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누구나 수행할 수 있도록 업무를 세세하게 쪼개고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업무 매뉴얼과 보조기계의 도움으로 장애인 직원들도 스즈키 대표가 작업한 것과 비슷한 수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농업을 통한 재활과 치유, 유럽의 케어팜을 가다

    모든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독일과 스위스의 케어팜

    다양한 업무 개발로 각자의 역할을 부여하다

    독일과 스위스의 장애인 농업 공동체에서 만난 발달 장애인들은 대체로 대근육(신체의 목, 팔, 다리 등 사지와 관련한 근육)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농산물이 주 생산품이지만 상품 라벨 제작, 포장, 판매, 청소, 서비스, 사무 등 업무의 종류는 다양했다. 각자의 흥미와 특성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정부는 치유 농업이나 사회적 농업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농업 활동뿐 아니라 교육, 치료, 서비스, 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지원했다.


    2000년대 들어 치유 농업은 유럽의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유럽 전역에서 3000여 개 이상의 치유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고도의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힐링은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친 나를 치유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데 있어 자연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발달 장애인에게 치유 농업의 효과는 매우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농업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되는 등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이지만 정부의 지원 정책이나 국민의 인식 등 아직 숙제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에 필요한 작물을 제공하고 고부가 가치 상품을 생산해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하며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려면 문제점이 빨리 개선되고 그런 일터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야 한다.


    도시형 케어팜의 정석, 후버 클라인 마리엔달 농장

    농장 이용객들은 환자가 아닌 고객이다

    보통 ‘고객’이라면 상점이나 은행,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손님을 생각한다. 그런데 하싱크 박사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환자’보다는 비용을 지불하는 ‘이용객’이나 ‘고객’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았다.


    이곳을 찾는 환자는 하루 평균 20~25명으로 지적 장애인과 치매 환자가 가장 많고 그 외에 정신 질환자, 뇌손상 환자, 장기 실업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돌본다. 우리가 환자(Patient)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하싱크 박사는 “이곳에서는 환자라는 단어 대신 이용객이나 고객을 의미하는 ‘클라이언트(Client)’를 사용하고 있다”며 “치료 및 치유의 대상이 아니라 농장에서 제공하는 사회 서비스를 받는 이용객으로 이해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용객이 농장에서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지방 정부에 케어를 신청할 수 있다. 의사 소견서를 가지고 우리의 구청이나 군청의 사회 복지 담당 직원을 찾아가면 그가 판단해 치유 농장을 배정한다고 한다. 이용료는 반나절에 35유로(약 4만7000원)인데 지방 정부에서 직접 농장에 지불한다.


    우리 정부가 건강 및 교육 분야 프로그램 비용으로 저소득층 어린이를 위해 부담하고 있는 바우처 제도와 유사한 방식이다.


    네덜란드의 케어 제도는 치료가 아니라 농장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회복해 사회로 복귀하거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 세계 스마트팜의 표준, 베쥬크 애그리포트 농장

    농장에 부적합한 간척지를 스마트팜으로 개발하다

    농사에 부적합한 간척지의 단점을 뛰어난 시스템으로 극복한 베쥬크 농장은 작물의 성장, 수확, 출하까지 전 과정에 첨단 기술을 적용한 유리온실 스마트팜이다.


    유리온실에 설치된 수많은 센서는 내외부 환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서버로 전송한다. 그러면 환경 제어 컴퓨터가 측정된 데이터 값을 산출하고 내부 시설을 자동으로 조종해 작물 성장에 최적화한 환경을 만들어 낸다. 일조량이 많을 때는 커튼을 치고 온도가 낮을 경우에는 난방을 한다.


    또 컴퓨터는 배지와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작물이 생장하는 데 필요한 양액과 빗물, 비료를 최적의 비율로 섞어 공급하고 산소와 이산화탄소 역시 센서 값에 따라 적절히 조절한다.


    그렇다고 여기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다. 이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기준값을 설정하는 것은 농업 전문가의 몫이다. 수십 년간 쌓은 농업 노하우가 데이터 분석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내부 환경을 제어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자동화 설비가 노동력을 대신한다. 자동 컨테이너는 자동으로 수확된 파프리카를 창고로 나른다. 근로자는 발밑에 달린 이동 설비의 버튼을 이용해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작물을 더욱 쉽게 수확할 수 있다. 무인 자동 시스템으로 수확된 작물이 모이면 자동 분류 시스템이 분류해 박스 안에 담은 후 포장·출하된다.



    에필로그 푸르메소셜팜에서 희망을 심고 가치를 수확합니다

    2019년 푸르메재단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던 날이 기억난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장애 시설을 살펴보는 것은 내게 아주 익숙하다. 나는 딸과 아들을 뒀는데, 올해 서른두 살인 아들은 지적 장애가 있다. 아들의 장애는 현실이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인정한 이후 세계 각국의 장애 시설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아들이 장애를 가지고 살기에는 한국의 현실이 너무 팍팍했다. 그래서 이민이라도 가 볼까 했다. 결국 우리말도 채 습득이 안 되는 아이에게 또 다른 언어와 인종 차별의 벽을 만들어 줄 수가 없어 포기했다. 하지만 당시 세계 각국을 다니며 본 모습은 내게 놀라움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선진국의 장애 청년들은 흰 식탁보에 유리컵이 세팅된 곳에서 밥을 먹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들의 청바지를 다리미로 다려 입혔다. 그 장애 청년들은 자신의 사진이 붙어 있고, 직접 선택한 벽지를 바른 개별 방에서 살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쉬운 적은 없었다. 의사는 장애 진단을 내리면서 조기 교육을 시키라고 하는데 특수 교육을 하는 유치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지라 자리를 얻기 위해서 헤맸고,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장애 아동을 따로 돌봐 줄 수 없으니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게다가 음악 치료, 놀이 치료, 언어 치료, 운동 치료 등 ‘치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왜 다 그리 비싼지……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어떻게든 우리가 죽기 전에 그 아이가 살길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농업’이다. 눈을 감았다 뜨면 직업이 하나가 없어지는 시대지만 그래도 사람은 먹어야 사니 농업이라면 지속가능할 것 같았다. 나이를 먹어도 해고될 염려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농사일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힘들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고, 농한기인 겨울에는 무엇을 하면서 지낼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8년 ‘식물 공장’이라는 것을 처음 접했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다행히 여주에 아버님께서 남겨 주신 땅이 있어 지난 2010년에 스마트팜을 지었다.


    처음에 푸르메재단이 장애 청년들을 위한 스마트팜 구상한다는 정보를 온라인에서 우연히 접한 후 심장이 떨렸다.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나라도 성장했구나 싶었다.


    내 아들에게만 집중한 편협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농장이 우리 재산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배턴을 넘겨 더 젊고, 강하고, 선한 사람들이 잘해 주리라 믿고 응원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운영하던 농장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홀로 충분히 강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선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있다. 강하고 선한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더 어려운 사람을 격려한다. 마치 처음부터 함께 살도록 결정된 것처럼. 푸르메재단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부터는 자신들이 대신 달리겠노라고…….


    강하고 선한 이 사람들은 제때 치료가 필요한 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한 것처럼 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줄 것이다.


    푸르메재단이 만드는 스마트팜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장애 청년들에게 어떤 일자리를 줄지 아직은 모르지만, 전문가들과 함께 고민하며 가장 좋은 답을 찾아 주리라 믿는다. 우리는 끝까지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또한 모든 장애인 부모의 마음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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