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서재
 
지은이 : 하지현
출판사 : 인플루엔셜
출판일 : 2020년 11월




  • 신작 《정신과 의사의 서재》는 이러한 작가의 독서 여정을 정리한 독서 에세이인 동시에 ‘왜 책을 읽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작가는 공감과 치유의 읽기보다는 지식과 정보를 얻으며 ‘앎의 기쁨’을 추구하는 책 읽기를 선호한다. 이렇게 책을 통해 내면에 차곡차곡 지식과 정보를 쌓아 숙성시키면 세상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고,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아의 힘,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의 서재


    정신과 의사의 책 읽기

    앎의 경계를 긋는다는 것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은 애매함을 안고 가는 일이다. 내과나 외과 의사가 부러울 때가 있다면 이러한 애매함이 정신과보다 덜하다는 점이다. 발달한 의학 기술은 증상을 객관화하고 진단을 돕는 수많은 방법을 만들었다. 안색이 창백하다면 피검사로 빈혈을 찾아내고, 넘어졌다면 엑스레이로 부러진 곳을 눈으로 확인한다. 불안과 우울은 어떨까? 환자가 불안하다고 하면 불안한 것이고, 우울하다면 우울한 것이다. 피검사로 불안을 확인할 수 없고, 엑스레이로 마음이 부러진 걸 검증할 수 없다. 공황발작을 하거나, 자살 시도를 했다면 그나마 분명하다. 그렇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프랑스 말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있다. 해가 살짝 저물 때 저 멀리 보이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런 경계를 말한다. 낮도 아니고 밤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시간.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에 서서 이게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하려고 노력해가는 것이다. 질병을 평가하기가 어렵듯이 얼마나 호전되었는지 판단하기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함을 안고 가는 것이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이다.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지면 더 잘 보이고 명료해져야 하는데 어떨 때에는 거꾸로 더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현상이나 사람의 행동을 해석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심층적으로 더 파고들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명쾌하게 말하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이런 부분은 스스로 많이 알고 있어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분명히 말을 할 수 있으니,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꾸역꾸역 읽고 생각하고,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전문가는 자기 영역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외에는 섣불리 아는 척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사람이 전문가의 정의여야 한다. 내 분야에 대해 확실하게 아는 것에 더해, ‘안다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한 경계가 분명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씩 그 영역이 넓고 확고해지고 깊어지기를 바라면서 책을 읽는다.


    도서관이라는 천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서점이 낙원이라지만, 나는 서점보다는 도서관 쪽인 것 같다. 서점은 돈을 지불해야 진열된 책을 다 읽을 수 있지만 도서관에서는 무한대로 읽을 수 있다. 영원히 내 책이 될 수 없다는 점만 빼면 도서관이 낙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에서는 도서관을 천국이라고 묘사한 부분이 나온다. 하늘 높이 쌓인 바벨탑 같은 건물에 층마다 놓인 책장에 빽빽하게 책이 꽂혀 있고, 읽다가 지치면 잠들 수 있는 침대가 있다. 무한대의 지식이 제공되는 공간이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 내게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듯이 시험공부를 하거나 수업 준비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읽고, 책을 쓰는 공간이다. 이렇게 바뀌게 된 계기는 캐나다에서 1년 정도 있을 때 가장 많이 시간을 보냈던 토론토 레퍼런스 라이브러리에서의 경험 덕분이다. 시내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이곳은 넓은 개가식 열람실에, 개방감이 강한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건물은 도넛처럼 가운데가 뚫려 있고, 중심부의 빈 공간을 중심으로 서가들이 둥글게 배치되어 있어서 반대편으로 가려면 빙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북쪽 면은 숲을 향해 있는데, 커다란 유리창이 나 있어서 탁 트인 느낌이 시원했다. 종일 머무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자리가 모자라서 대기를 하거나 불쾌해질 정도로 가깝게 앉지 않아도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소통의 기술》과 《관계의 재구성》을 썼고 논문도 몇 편 썼다.


    한국에 온 후에는 일하는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을 이용한다. 이곳에도 5층의 개가식 자료실 안쪽에 큰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공간이 있고, 토론토의 도서관처럼 시야가 트여 있어 하늘과 나무를 보면 눈이 덜 피곤해진다. 시간이 비는 날은 노트북을 들고 자료실로 간다.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무엇이든 하고 싶어진다. 잡념이 들기보다 목적의식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종의 조건학습이 일어난 셈이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내가 책과 이어지는 데 도서관은 최적의 공간이다. 그 안에서 나는 책과 나를 연결하고, 생각에 집중한다.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 언제든 찾아갈 성소를 만들어두는 것은 내 마음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안식처가 있을 것이다. 지금 내게 도서관이 바로 그런 곳이다. 도서관은 책으로 둘러쌓아 나를 지켜주고, 아늑하게 만들어주며, 그 핵심을 뽑아 책을 쓰도록 해주는 안정과 생산의 공간이다. 만일 그런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어느 공간이든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텍스트의 소유

    책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손에 들린 책이 더러워져 있을 때 나는 뿌듯한 만족감을 느낀다. 손때가 묻고 필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수록 내 안에 그 책의 내용이 많이 담겼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책일수록 마구 더럽혀야 한다고 믿는다.


    처음 10~20페이지를 읽을 때 느낌이 온다. 머리말과 1장을 읽으면서 바로 펜을 들고 줄을 긋기 시작할 수밖에 없는 책과 그 정도의 감흥은 없는 책으로 말이다. 줄을 그을 부분이 바로 보이면 신이 난다. 월척이 걸린 무게감으로 팔에 바짝 힘을 준 낚시꾼 같은 흥분이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줄을 잔뜩 치면서 읽는다. 펜은 붉은색이나 파란색이 좋다. 시험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색깔로 구분해서 정리하고 암기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고 적당히 표시를 하고 메모하기에 좋은 색이면 충분하다.


    생각나는 부분이나 정리할 부분, 페이지 전체를 요약할 주제가 있으면 우측이나 위쪽 여백에 메모를 해둔다. 줄을 너무 많이 그어놓으면 나중에 진짜 중요한 부분이 어디였는지 찾기 어렵다. 그래서 특히 새로운 정보나 깨달음을 주는 문단을 발견하면 줄을 긋고 난 다음에 박스를 치고, 우측에 V 표시를 해둔다. 바로 이 부분이 알짜라는 표시다.


    카페에 잠시 앉아 있거나,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는 펜을 들고 읽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에는 나중에 다시 정리를 하려고 페이지 모서리를 접어 체크만 해둔다. 접은 부분이 많은 책이 역시 괜찮은 책이다. 빌린 책인 경우 접거나 줄을 그을 수 없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포스트잇이다. 그래서 포스트잇이나 메모용 태그는 언제나 책상 위나 가방 안에 넉넉히 갖고 있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포스트잇을 붙이고, 시간이 될 때 그 부분을 옮겨 적는다. 줄을 그을 펜이 없을 때는 메모 태그를 쓰면 좋다. 리뷰를 쓰거나 북토크를 하러 갈 때, 어느 부분을 인용할지 집어낼 때도 유용하다. 그럴 여유가 없거나, 내용이 꽤 많으면, 사진을 찍어두기도 한다.


    이렇게 줄을 긋고 메모하는 것은 내가 책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아무리 재미있고 좋은 책이라도 통째로 다 외울 수 없다. 결국 내게 남는 것은 내가 적극적으로 줄을 긋고 메모하고 사진을 찍은 조각조각들이다. 한 줄을 읽고 다음 줄로 넘어가면 결국 앞줄은 기억에서 사라질 준비를 한다. 그마나 조각으로 캡처된 부분들이 머리에 남고, 나중에 조각들은 섞인다. 기억의 파편들이 내 감정과 인생의 파편까지 함께 섞여 패브릭같이 다시 내 안에서 직조된다.


    지저분하게 읽는 책은 1년에 10권 이내로 만나는 희귀한 책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책은 내가 치른 가격 이상의 가치를 지닌 책이다. 책이란 1~2만원의 재화를 치르고 타인의 지식의 정수를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쉽고 편한 방식이기에, 나는 최대한 기억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이리저리 해체한 정보의 편린, 느낀 감정의 조각들은 내 안에 있던 다른 감정, 기억과 만나 화학작용으로 대사되거나,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면서 드디어 내 머릿속에 안착된다. 그 과정이 독서의 진수이고 책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많이 읽어보니 알게 된 것들

    그림책 속의 상상력

    아이들을 키우게 되니 내 독서 목록에 새로운 카테고리가 하나 생겼다. 그림책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책이라도 세 번 이상 읽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림책만은 예외다. 아이가 밤마다 들고 와서 자기 전에 읽어달라고 하고, 어떨 때에는 같은 책을 하룻밤에 세 번을 읽기도 한다. 반강제로 아이와 함께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독자이자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


    태생이 아귀가 딱딱 맞는 게 좋은 이과생인데, 그림책은 말도 안 되는 것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책이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는 반드시 한 권씩은 꼭 있는 책이다. 읽어보면 좀 황당하다. 내용이 말도 안 되고 왜 이런 줄거리인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작은 두더지가 땅 위로 올라온 날, 머리에 똥이 떨어졌다. 분개한 두더지가 도대체 누가 똥을 쌌는지 찾아다닌다. 여러 동물이 자기 똥은 다르게 생겼다고 보여주고, 결국 개똥이란 걸 발견하고는 개 머리 위에 복수하고 땅속으로 돌아가는 줄거리다.


    아니 이게 뭐가 좋다고 아이는 깔깔거리며 웃는지, 몇 번을 다시 읽자고 보챈다. 어린아이가 벌써 복수의 희열을 느끼는 것인가, 결국 인생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교훈을 주는 책인가. 아주 얇고 단순한 플롯의 이 책을 아이는 왜 이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내 아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건 왜일까.


    사실 이 책은 어른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너무 뻔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두 살에서 네 살 사이의 아이에게는 자기 마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신나는 그림책이다. 두더지의 머리 위로 똥이 떨어지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그 사건의 인과관계를 찾는 과정이다. 이 나이의 인지발달 단계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왜’다.


    아이는 부모에게 물어본다. “왜 하늘은 파래?”, “왜 물은 흘러?” 그 말을 질리게 한다. 아이가 천재라서 그런 게 아니라, A에 의해 B가 발생한다는 인과관계에 대한 논리구조가 머릿속에서 싹이 트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세 살 남짓 아이들의 중요한 개체인 똥과, 기저귀를 떼기 위한 배변 활동이라는 것이 매체로 등장한다. 여기에 동물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똥을 싼다는 것은 모두 다른 존재라는 개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린이집을 다니고, 사람들을 알아나가면서 사회화가 일어나는 과정에 내가 남과 다르고, 남도 나와 다르다는 걸 인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당한 것에 대해 등가로 되돌려주는 ‘맞대응’의 원칙이 함께한다. 아이는 매일 이유 없이 혼나기 시작한다. 진짜 좋기만 한 줄 알았던 엄마가 우유를 엎질렀다고 혼을 내고, 먹을 걸 가지고 논다고 혼난다. 두더지가 머리 위에 똥이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듯이 혼은 나는데 왜 혼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제 두더지는 개의 머리 위에 똑같이 똥을 싸고 유유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이유 없이 혼이 난 아이가 그림책 속에서라도 동등한 방식으로 맞대응을 한다. 마음의 억울함이, 부당함이 환상 속에서 줄어든다.


    이렇게 중층적이고 복잡한 심층심리와 심리발달의 단계가 정확하게 그림책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딱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일정한 그림책에 꽂힌다. 그러고는 보고 또 보면서 그림책의 내용을 환상화하고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것들을 대신 숙달(mastery)한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가 그림책을 읽는, 아니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내가 읽어준 그림책을 다음 날 낮에 펼쳐놓고 혼자 궁리를 한다. 중얼중얼하면서 이야기를 만든다.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그림만 보면서 들었던 스토리를 상상으로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한번은 “아빠에게 이야기해줄래?”라고 했더니 아이는 신이 나서 그림을 짚어가면서 자기가 궁리한 스토리를 말했다. 원래 글에는 없던 소품과 디테일들을 추가해 더 풍성해진 이야깃거리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글을 읽을 수 없는 단계가 도리어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어른이라고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다. 문자를 읽으면서 독자는 추상화를 하고 체계적 사유를 한다. 그러나 텍스트만으로는 모자랄 때가 있다. 이제는 영상을 보는 방법이 있지만, 그 중간 단계로 그림이란 이미지를 보는 것은 문자를 만들기 이전의 원초적 표현 방법이다. 어른에게도 텍스트로 그 의미가 정교하게 정해지기 전의 그림을 통한 표현이 갖는 열린 이미지가 필요하다. 텍스트가 갖는 논리적 일관성으로는 벽에 부딪힐 때 그림책이 선물하는 상상과 여백, 그리고 주관적 해석, 더 나아가 직관적 연상의 힘으로 그 벽을 훌쩍 넘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불안에 대한 책

    진료를 하다 보면 불안을 없애거나 줄이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는 게 오히려 병이 되는 곳이 마음이지만, 불안을 불확실성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더 깊이 아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최소한 나는 불안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하니 눈에 띄는 책들을 꽤 찾아보았다. 지금까지 본 책 중에 핵심을 잘 다룬 책 몇 권을 골라보았다. 불안을 없애지는 못해도 불안의 실체는 어렴풋이 그려질 것이다. 모르고 맞는 매보다 알고 맞는 매는 훨씬 견딜 만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건종의 《마음의 여섯 얼굴》을 먼저 소개한다. 불안에 대해서만 다룬 책은 아니다. 우울, 불안, 분노, 중독, 광기와 사랑이라는 여섯 가지 감정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쓴 진지한 에세이다. 저자는 불안이 현대사회의 유행이 되었다고 단언한다. 불안에 대한 사실상 불가능한 완벽한 통제 욕구가 역설적으로 끊임없는 불안을 일으키고 강박을 만든다. 강박은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게 하지만,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안전’이라는 존재할 수 없는 목표를 지향하기에 현대사회는 불안의 구덩이에서 헤맨다. 아무렇지 않던 일상의 공간이 어느 순간 불안의 대상이 되고 공포가 생긴다.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공간이 괴물이 숨어 있는 공포스러운 지하세계가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므로 불안을 없애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안을 일정한 수준으로 조절하고,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불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덜 불안해지는 것을 넘어서서 불안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개인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프로이트, 위니코트, 클라인 등 중요한 정신분석가들의 이론을 어렵지 않게 소개하되, 지나친 인용과 해석을 자제하고 저자가 자기 것으로 소화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불안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다진 다음에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불안을 조절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펼쳐들 차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주연의 《불안해도 괜찮아》다. 우리의 목표는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하고, 불안과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인지치료적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신분석학과 함께 불안의 심리이론의 토대가 되는 두 봉우리 중 하나다. 두 저자 모두 불안을 대상화해서 증상으로 만들고, 이를 없애버려야 할 흉터나 혹으로 여기지 않는다. 불안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존재 이유를 알고 나면 불안은 훨씬 견딜 만해지고, 불안을 잘 안고 가면서 관리하고 조절해나가는 것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 같은 것이다. 사나운 개를 한 마리 키운다고 생각해보자. 잘 다스리면 집을 잘 지킬 것이고, 잘못 길들이면 개가 무서워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갇혀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를 잘 훈련하는 법을 익히듯 불안을 다루는 괜찮은 책 몇 권 정도 읽어보는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괜찮은 어른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려면

    어느새 나도 이미 나이가 꽤 든 어른이 되었다. 후배나 제자들에 대한 내 열린 태도나 상대에 대한 호의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나는 무척 어려운 존재인 것 같다. 내 지나가는 한마디, 슬쩍 지었던 표정에 긴장하는 전공의들의 태도가 느껴질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나 혼자 오픈마인드라고 생각하며 친근하게 대하고 있다고 착각해온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가까워지려는 시도도 원치 않는 침범이 되기에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전공의들에게는 무시하기 힘든 위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야 할까? 역시 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산 사람들 중에서 ‘꼰대가 아닌 괜찮은 어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꼰대가 되는 것은 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래’라는 마음은 강해진다. 전두엽의 자연스러운 노화는 인지유연성을 떨어뜨린다. 어린 시절에서 청년까지는 성장과 발달이 중요하다. 정점을 찍고 난 다음부터는 성숙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노화와 맞서 싸우면서 몸에 좋다는 것 먹는 것, 머리카락을 심는 것, 피부과 시술을 받는 것은 부질없는 투쟁이다. 이제는 더 깊고, 두텁고, 유연하게, 세상을 받아들이고 반응할 줄 아는 성숙함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잘 살아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


    김지수 기자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펴든다. 세상을 참 살아왔다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사람들이 ‘내가 한 70년 살아보니 삶이란 이런 거 같다’라며 자기 경험을 나눈 인터뷰집이다. 윤여정, 노라노, 최재천, 이순재, 강상중, 정경화, 하라 켄야, 김형석 등 평균 연령 72세의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괜찮은 어른에 대한 상(像)이 잡힌다.


    《어른의 의무》라는 책은 만화가 야마다 레이지가 자기가 좋아하는 존경할 만한 선배들을 만나 인터뷰해서 얻은 통찰을 전달한다. 이 책에서 존경할 만한 괜찮은 어른들의 특징으로 ‘불평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를 꼽았다. 젊은 사람들을 붙잡아놓고 하는 말이 혹시 세상에 대한 이유 없는 불평불만은 아닌지, 감정의 배설은 아닌지 고민해보라고 조언한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꽤 괜찮게 살아온 사람이 자신만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있다. 롱아일랜드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인 로저 로젠블라트의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이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문제들을 어렵고 복잡하게 풀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느낀 지혜, 나이 들면서 충돌 없이, 괜한 마음의 불편 없이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을 2~3페이지에 툭툭 던진다. 무심한 듯 한마디 하는 데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 많다. 목표가 ‘위대한 인간’, ‘존경받는 선생님’이 아니라 그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니 더욱 좋다.


    나도 시간이 지나 노인이 되면 심리적으로 독립해 살면서 사회적 관계를 잘 가꾸고, 유쾌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 책에서 답을 찾고, 길을 발견하면 나도 20년 후에 누군가에게 ‘꼰대는 아닌 어른’, ‘만나고 싶은 어른’ 정도는 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보며 괜찮은 길을 걸어간 어른들의 말을 들려주는 책을 찾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고, 잘 나이 들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들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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