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뇌과학
 
지은이 : 알베르트 코스타(역:김유경)
출판사 : 현대지성
출판일 : 2020년 08월




  • 아기들을 보면 그저 먹고 자는 일이 전부인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연구는 생후 몇 개월이 안 된 아기들도 언어에 관해 매우 정교한 지식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심지어 생후 5일도 안 된 신생아들도 정상적인 언어와 비정상적인 소음을 확실히 구분한다고 밝힌 연구도 있다. 그리고 두 언어 사용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4~6개월)는 말하는 사람의 영상만 보고도 그들이 무슨 언어로 말하는지 구별할 수 있다. 아이가 비록 말을 시작하기 전이라도 그들의 뇌는 주변에서 흡수하는 정보를 계속 처리하는 중인 것이다. 이렇듯 아주 어릴 적부터 뇌와 언어는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긴밀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언어의 뇌과학


    두 언어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6개월 된 아기 이중언어자가 만나는 도전

    외국어 학습은 큰 도전이고 어른이 되어 외국어를 배우면 습득에 한계가 많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안다. 새로운 언어 소리를 익히기 어렵기 때문에 외국어 억양이 생긴다. 또한 통사구조를 배우는 게 어려워서 문법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많다.


    단어의 미묘한 뜻을 몰라 종종 장소에 맞지 않는 단어를 쓰거나, 대화 중 틀린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언어와 비교했을 때 단어 차이를 모르거나 헷갈린다. 그 차이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이 모든 정보를 제대로 통합하기가 매우 어렵다. 용기를 내어 다른 언어로 계속 대화하려다가 결국엔 좌절한다. 이 도전은 너무나 거대하고 이제까지 만났던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일 잠만 자는 것처럼 보이는 아기들은 이런 것을 결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인다. 우리 모두 그런 단계를 거쳐 언어를 익혔는데, 상대적으로 성인보다 쉽게 언어를 배우는 것 같다. 적어도 아기의 언어 발달을 보면 그래 보인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언어를 배운 걸까?


    특히 아기 단일언어자와 아기언어자에 관한 연구가 있다. ‘아기 이중언어자’ 라는 표현에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아기들인 말 한 마디 못한다고 해서(말하는 건 시간이 훨씬 더 지나야 한다), 이중언어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 이중 언어 학습 경험은 아기가 말을 하기 전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아기 이중언어자’ 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 아니다.


    아기들은 어떻게 단어를 구분할까?

    뻔한 말이긴 하지만, 우리는 모든 언어를 배울 수 있다. 아이가 배울 수 없는 언어라면 아주 빨리 사라졌을 것이다. 따라서 구두 신호(oral signal)에서는 아이가 어디에서 말을 자르고 나눠야 하는지에 대해 기준으로 삼을 만한 단서가 필요하다. 즉, 들리는 소리 사슬을 잘 나누도록 안내하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언어마다 결합 가능한 소리는 제한되어 있다. 모든 소리가 다 결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스페인에서는 세 개의 자음 ‘str'이 연속으로 들리면, s 뒤에는 적어도 음절이 한 번 끊기고, 단어 끝부분에 해당될 확률이 매우 높다. 스페인어에서는 st로 끝나거나 str로 시작 또는 끝나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스페인어를 배우는 아이는 8개월쯤 되면, 이미 s 다음에 한 단어가 끝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아기들 말의 세분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한 연구는 아기들이 여러 소리 사이에서 동시 발생(co-occurrence) 확률을 계산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언어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기들  

    아기들이 두 언어에 노출되고 처음 몇 달 동안 언어 신호를 푸는 작업에 익숙해지면, 이제 또 다른 문제를 만난다. 모든 언어에는 음운 규칙이 있는데, 반드시 똑같을 필요는 없고 실제로도 같지 않다. 언어에서 허용되는 소리 배열에 대한 예를 들어보겠다.


    스페인어로는 str로 시작하는 단어가 없다. 따라서 스페인어에 많이 노출된 아기는 risas tristes라는 소리 배열을 들으면서, 여기엔 적어도 두 단어가 들어 있고, s와 t 사이에 적어도 음절 경계가 하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스페인어와 반대로 영어에는 str로 시작하는 단어가 아주 많다(strong, stream, strange 등). 따라서 영어에 많이 노출된 아기는 이 두 소리 s와 t를 다른 음절이나 단어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스페인어에 노출된 아기는 four streets라는 배열에서 s와 t 사이에 단어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four treets로 이해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스페인어와 영어에 둘 다 노출된 아기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 두 기준 중 하나를 선택해서 하나를 다른 쪽에 맞추려고 하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볼 때는 아주 혼란스러울 것 같지만, 실제로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들이 그런 통계적 규칙성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요람에서부터 두 언어에 함께 노출된 아기는 그 소리의 특정 단서가 어떤 언어와는 상관이 있고, 어떤 언어와 상관이 없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두 언어가 ‘경합 중’임을 깨달아야 한다. 즉, 자신이 이중언어 환경에 있음을 알아채야 하는 것이다.


    아기 이중언어자의 놀라운 능력

    언어의 기본 수단은 바로 소리다. 우리는 말을 듣는 것보다 할 때가 더 많다. 읽고 쓰는 것을 배운 후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말하는 동안에는 대체로 청각 신호가 동반되는데, 이 신호에는 언어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단서들이 함께한다.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상대방의 입술 움직임을 본다. 소리와 입술 움직임이 조금만 틀려도 아주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이것은 우리가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시각 및 청각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이 아기 이중언어자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렇다. 아기들도 언어 구별을 위한 시각적 단서를 사용한다. 생후 4~6개월 된 아기들은 말하는 사람들이 찍힌 영상만 보고도 그들이 프랑스어를 하는지, 영어를 하는지 구별할 수 있다. 소리가 안 나오는 영상만 보고도 말이다! 이런 구별 능력은 두 언어에 노출된 아기들에게 8개월간이나 지속된다. 그러나 아기 단일언어자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중언어 노출은 아기들이 언어를 구별하기 위해 입술의 조음 운동에 집중하는 일을 일시적으로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듯 보인다.


    사실상, 이중언어를 경험한 아기들은 일찍부터 조음 운동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4개월 된 아기 이중언어자는 아기 단일언어자보다 말하는 사람의 입을 더 많이 쳐다본다. 이런 특징은 최소 한 살까지 유지되는데, 두 언어를 듣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아기는 그 둘을 구별하기 위해 시각 및 청각 정보를 사용해 의사소통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아기는 그저 먹고 자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애쓰는 중이다!


    언어 학습과 사회적 접촉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 잠잘 때 수업 시간에 녹음한 내용을 틀어놓으면, 머릿속에 쌓인다는 소문이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퍼뜨린 사람 때문에 외국어 공부에도 같은 전략이 도움이 된다는 말이 퍼졌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도 몇 번 그 방법을 써봤다. 그러나 내 영어 점수를 보면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녀에게 외국어를 공부시키려는 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아이에게 언어를 노출만 시켜주는 것으로도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다. 그저 언어를 수동적으로 노출하기만 해서는 별 효과가 없다. 실제로 외국어 학습에서 ‘사회적 상호 작용’ 은 아주 기본적인 표현 학습을 포함한 언어 습득에서 기본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더 알아보고자 연구 이후에 실험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다른 아기들과 실험했다. 이전과 달리 아기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교사를 보거나 시선 접촉을 하지 않고 녹음만 들었다. 아기가 받은 정보는 교사와 상호 작용한 집단이 받은 청각 정보와 정확히 같았다. 차이점은 사회적 접촉이었다. 즉, 그들과 상호 작용할 교사만 없었다. 과연 이때도 아기들은 외국어의 대조적인 음운 속성을 배울 수 있을까?


    분명히 말하건대 ‘배울 수 없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을 때보다는 누군가와 상호 작용을 할 때 아이의 집중력과 동기가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자녀가 외국어를 배우길 바란다면, 동영상이 그 일을 대신 해줄 거로 너무 기대하지 말고 그 언어를 사용해서 아이와 놀아주길 바란다. 즉, 고통 없이는 얻는 게 없다.



    이중언어를 하면 뇌가 어떻게 변할까

    이제 전 세계에서, 사회ㆍ정치 분야에서의 이중언어 사용은 피할 수 없다. 이민이나 국가 정체성과 같은 다양한 요인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종종 이중언어 사용이 장점 및 단점에 관해 흥미로운 의견을 듣곤 한다. 이중언어 사용이 일반적으로 언어 사용과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 전이긴 하지만, 이중언어 사용이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상가도 있었다.


    한편, 최근의 어떤 연구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특정 인지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이중언어자가 ‘더 똑똑하다’고 선전했다.


    이중언어 사용이 어휘 발달에 미치는 영향

    단일언어 사용 경험과 비교해서 이중언어 사용 경험이 미칠 수 있는 영향 중 하나는 어휘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과연 이중언어자는 단일 언어자보다 아는 어휘가 적을까?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능력은 평생 열려 있고, 실제로 우리는 끊임없이 단어를 배운다. 즉,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소리 습득과 같은 또 다른 종류의 언어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만큼, 노화가 새 어휘 학습 과정에 끼치는 영향은 그리 큰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배우는 새 단어의 양은 얼마나 풍부한 어휘 사용 환경이 노출되는지에 달려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경험이 스포츠 신문과 텔레비전 시청 정도에 머문다면 새 단어를 배우기는 어렵다. 다양한 여가활동은 언어 및 인지 수준을 높이는 데 더 큰 자극과 도전이 된다.


    어휘 학습 능력이 평생 지속되는 게 사실이라면, 지금은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는 걸까? 2천, 1만, 2만… 아니, 훨씬 더 많다! 한 계산에 따르면 고등 교육을 받는 사람은 대개 3만 5천 단어 정도를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단어를 다 규칙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은 하루에 매일 천 단어 정도만 사용한다(실망하지 않길 바란다. 조사에 따르면, 세르반테스도 그의 전 작품에서 8천 단어 정도만 사용했다).


    이중언어 사용이 어휘 발달에 끼치는 영향을 다루기 전에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 첫째, 우리에게는 항상 새 단어를 배울 시간이 있다. 설령 깨닫지 못하더라도 계속 새 단어를 배우고 있다. 둘째, 어휘의 풍부함은 새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환경에 얼마나 노출되는가와 관련 있다.


    많은 연구는 단일언어자와 비교할 때 이중언어자가 좀 더 제한된 어휘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한 연구에서는 3~10세 어린이 약 1천 명의 이해 어휘(receptive vocabulary)를 알아보았다. 이해 어휘란 습관적인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나에게 들어오는 언어를 인식하고 의미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어휘를 말한다.


    어휘 점수는 아동 나이에 상관없이 단일언어자가 더 높다. 또한 단일언어자가 이중언어자보다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주로 집 안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라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즉,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쓰는 단어만 비교하면 두 집단 간에 차이가 없었다. 일리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는 모든 아이가 같은 단어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적어도 이 연구에서는). 학교에서의 어휘량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이중언어 사용이 학교 성적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중언어 사용과 어휘량 감소의 관계는 언어의 사용 빈도와 노출 가능성과 더 관련 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크면 새 단어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변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이중언어자가 단일언어자보다 각 언어에 덜 노출되므로, 사용 빈도수가 낮은 단어를 접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이중언어 사용은 어휘량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중 하나일 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이중언어를 사용하면 뇌가 어떤 모양이 될까?

    학습 과정은 뇌에 영향을 준다. 뇌 가소성 덕분에 학습이 가능한데 새 정보를 저장하면 뉴런 간에 새로운 연결망이 생긴다. 우리는 평생 살면서 새것을 배운다.


    언어 학습은 한쪽에서는 어휘(단어) 습득, 다른 한쪽에서는 그 단어들을 결합하는 문법적 과정(통사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두 종류의 정보를 다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두 언어의 습득과 사용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다른 말로 하자면,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뇌 신경망에서 이중언어자의 뇌와 단일언어자의 뇌는 어떻게 다를까?


    이 문제를 다룬 최고의 연구는 런던대학교의 신경과학자인 캐시 프라이스와 동료들의 연구일 것이다. 여기서는 그리스어와 영어를 둘 가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중언어자와 영어만 사용하는 단일언어자가 언어관련 작업 시 생기는 뇌 활동을 연구했다. 언어 이해 작업에서 두 그룹의 뇌 활동은 매우 유사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림 이름 지정이나 큰소리로 읽기 같은 언어 산출과 관련된 작업에서는 차이가 났다. 특히 이중언어자의 좌뇌 전두엽과 측두엽에 위치한 다섯 개의 뇌 영역은 활성화되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 연구에서는 이중언어자와 단일언어자 사이에 죄의 활성화 영역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비슷했지만, 이중언어자와 활성화 강도가 좀 더 높았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토대로 각 언어의 사용 감소나 간섭을 통제할 필요성 또는 이 두 가지 이유로, 이중언어자는 단일언어자보다 말할 때 더 힘이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언어 처리가 이루어지는 기본 영역은 두 사용자의 뇌에서 모두 활성화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중언어 사용이 그 영역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며, 관찰한 것처럼 이중 일부는 ‘더 열심히 움직여야’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중언어자의 뇌에 활성화되는 특정 영역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일찍 포기할 필요는 없다. 또한, 이런 영역들은 통제 과정과 관련이 있고 언어 지식의 표상과는 관련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중언어 사용은 노화를 늦추는가

    다중작업 시의 작업 전환 비용

    우리는 멀티태스킹, 즉 다중작업 시대에 산다. 친구와 전화 통화하면서 이메일을 보내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청구서를 살펴보고 저녁을 먹으면서 채팅도 한다. 이렇게 동시에 하는 활동이 꽤 많다. 이러려면 주의 집중하는 대상을 계속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작업 전환(task-switching) 또는 작업 변경이라고 부르는데, 이 과정은 쉽지 않고 비용이 들며 때로는 실수를 한다. 어쨌든 이 능력은 말한 것처럼 이십 대에 절정에 달하지만, 얼마든지 훈련이 가능하다.


    이런 주의력은 이중언어자가 언어를 바꿀 때 사용하는 빈도와 관련 있다. 이중언어자는 일반적인 작업 변경 시와 비슷한 뇌 회로 활성화를 통해 대화 상대에 따라 언어를 바꾸거나 통제해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작업 변경 과제를 할 때는 이중언어자가 유리하다.


    이 주제를 다룬 초기 연구에서는 아동에 맞게 이 실험을 수정했다. 참가자에게 파란색과 빨간색인 원형과 정사각형 카드를 보여주고, 색깔에 따라 분류하게 했다. 일단 그 일이 끝나면 카드를 다시 섞고, 이번에는 색깔과 관계없이 모양에 따라 카드를 분류하게 했다. 즉, 활동이나 분류 기준을 중간에 바꾸라고 요청한다.


    아주 간단한 실험처럼 보인다. 하지만 참가자는 대여섯 살가량의 아이들이었다. 광둥어와 영어를 둘 다 쓰는 아이들은 영어만 쓰는 아이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결과란, 첫 번째 과제를 하는 동안에는 둘 사이에 차이가 생기지 않았지만, 두 번째 과제에서 결과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즉, 분류기준을 변경하면 단일언어자가 이중언어자보다 실수를 훨씬 더 많이 했다.


    아나트 프라이어와 타마르 골란의 후속 연구에 따르면,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이런 특징은 성인들에게도 나타났고, 이것은 인지 영역에서 이중언어 사용 효과가 다양한 발달 단계에서 나타남을 시사한다. 또한, 이 연구에서 이중언어자의 이런 장점은 언어를 바꾸는 빈도수와 관련 있다.


    뇌의 모양을 바꾸다

    앞부분에서는 이중언어 사용이 행동 측면에서 주의력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했다. 그리고 두 언어를 사용할 때 분명한 장점이 있음을 확인하려면 여전히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이중언어 사용 경험이 뇌 구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이중언어 사용이 어느 정도 뇌의 모양을 바꾸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의 통제와 관련된 뇌 영역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있다. 즉, 두 언어를 사용하는 일상 활동이 뇌 회로의 구조와 기능에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 팀은 이 목표를 염두에 두고 밀라노 산 라파엘 병원의 주빈 아부탈레비가 이끄는 조사에 참여했다. 거의 20년 전에 언어 습득 연령이 이중언어자가 사용하는 두 언어의 뇌 표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언어 통제 작업 수행과 언어를 포함하지 않는 주의 통제 과제에서 나타나는 뇌의 중첩 부분을 평가하기로 했다.


    이것을 위해서 우선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이탈리아어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활동을 요청했다. 첫 번째로, 빨간 액자 속에 그림이 나타나면 A 언어로 말하고, 파란 액자 속에서 그림이 나타나면 B 언어로 말한다. 그렇다면 단일언어자의 언어 통제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언어 변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문법 범주 변경을 요청했다. 예를 들어, 빨간 액자 속에 그림이 나타나면 대상(‘빗자루’)을 말하고, 파란 액자 속에 그림이 나타나면 그 대상이 나타내는 활동(‘쓸다’)을 말해야 한다. 두 번째로, 언어와 상관없이 참가자들에게 요청한 또 다른 활동은 수반 자극 과제다.


    한쪽은 언어 변화와 문법 범주의 변경 활동에서 나타나는 뇌 활동을 측정하고, 다른 한쪽은 비언어적 갈등 활동에서 일어나는 뇌 활동을 측정한다. 즉, ‘변경 자극과 무변경 자극’ 사이의 뇌 활동과 ‘동일한 자극과 상이한 자극’ 사이의 뇌 활동을 비교한다. 그 후에 상반된 양쪽 자극에 공통으로 겹치는 뇌 영역을 분석한다. 즉, 언어 변경과 적절한 효과에 관여하는 뇌 영역을 분석한다.


    이 실험을 통해 발견한 뇌 영역 중 하나는 예상했던 대로 전방 대상피질이었다. 이전 연구 결과에서 이 영역은 인지 조절 및 갈등 해결과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뇌 영역은 두 활동에서 인지적 통제가 증가했을 때 더 크게 반응했다. 그러나 비언어적 갈등이 생길 때는 이중언어자가 단일언어자보다 뇌 활성화 정도가 작았다.


    또한, 주의 신경망에서 이중언어 사용은 회색질 기능과 구조뿐만 아니라 백색질 보전 또는 활기에도 영향을 준다. 이전 장에서 보았듯이, 백색질은 서로 다른 뇌 영역뿐만 아니라 그 사이의 뉴런을 연결하는 물질이다. 즉, 정보를 전송하는 케이블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면 이런 케이블이 손상되고 백색질(특히 미엘린)의 본래 모습이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뇌 영역 간 정보가 순환하는 효율이 떨어지며, 이는 개인의 인지 수행, 즉 스피커의 소리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주의 체계 기능은 줄어드는 백색질에 가장 영향을 받는 기능 중 하나다.


    또한, 연구진은 더 복잡한 다른 분석을 통해 양쪽 뇌가 기능적으로 연결된 정도를 측정했다. 말하자면 좌뇌와 우뇌가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 확인했다. 결과는 단일언어자보다 이중언어자의 특정 회로가 보다 넓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전 연구와 일치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연구진은 이중언어 사용 경험이 백색질의 연결성을 높이고 이것이 주의력 과제에서 이중언어자가 높은 성과를 내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이 연구에서는 참여자의 성과에 관한 자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백색질이 보전될수록 꼭 성과가 높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나타난 이 결과는 뇌가 얼마나 유연한지, 그리고 두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활동이 어떻게 뇌의 조직과 발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효과는 전통적으로 언어 처리와 관련된 뇌의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주의 통제와 관련 있는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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