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철학사
 
지은이 : 유대칠
출판사 : 이상북스
출판일 : 2020년 01월




  • 철학은 지독한 고난 가운데 스스로 돌아보며 스스로의 부재를 자각하며 그 부재를 채울 충만을 향해 달리는 ‘고난의 주체’에게 주어집니다. 그 고난의 주체만이 당당하게 진짜 철학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 한국철학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볼까요?


    대한민국 철학사


    한국철학의 회임과 출산: 한국철학의 등장

    한국철학의 회임 : 서학이 남긴 선물

    조선 시대 민중은 ‘의식’이 없었다. 그들에게 의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기반성, 자기 돌아봄을 위한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줄 문자도 허락되지 않았다. 겨우 양반들의 명령을 알아듣기 위한 용도로 한글 정도가 허락되었을 뿐이다. 스스로 돌아봄, 스스로 자신을 질문하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너 자신을 알라”는 철학의 말을 그들에게 던져 고민하게 하지 않았고, 조선의 신분제 사회에서 고민 없이 정해진 답 속에서 존재하게 만들어버렸다.


    많이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성리학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말’을 표현한 ‘우리글’로 쓰인 문헌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한글로 된 『이륜행실도』 『여씨향약언해』 『정속언해』 등이 지방 관아와 향교에 보급되었다. 한글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가난한 양반과 중인 및 일반 백성인 상민(常民)들이 서당에서 한글을 익히기 시작했다. 함석헌의 글을 읽어보자.


    “말은 우리를 하나로 만듭니다. 말은 본래 우리 따로따로의 것이 아니요 전체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곧 전체입니다. 우리가 말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한국말이 우리를 지은 것입니다.”


    말은 따로따로 있던 이들을 하나로 만들고 글은 말에 발을 달아 더 멀리 떨어진 이들도 다 같이 하나가 되게 한다. 결국 한국말과 한글이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민중은 ‘나’의 삶 속 ‘나’의 고난 앞에서 ‘나’의 생각을 ‘나’의 말과 글로 담아내면서 드디어 ‘나’의 철학을 준비하게 되었다. 서서히 민중은 자기 자신의 철학적 고향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바로 ‘철학의 회임’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곳, ‘나’란 존재가 ‘나’의 뜻으로 ‘나’를 만들어갈 수 없는 곳이 위계의 조선이었다. 황일광에게 조선은 인간으로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백정이라는 이유) 그것 때문에 그를 나무라기는 고사하고 애덕으로 형제 대우를 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나 양반집에서까지도 그는 다른 교우들과 똑같은 집안에 받아들여졌는데, 그로 말미암아 그는 농담조로 자기에게는 자기 신분으로 보아, 사람들이 그를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기 때문에, 이 세상에 하나 또 후세에 하나, 이렇게 천당이 두 개가 있다고 말하였다.”


    황일광에게 서학, 즉 그리스도교는 백정인 자신을 사람으로 대하는 이들의 공간이었다. 그 이유만으로 그 공간은 이미 천당이었다. 양반인 ‘나’만이 사람이고, 백정인 ‘너’는 사람이 아니라는 조선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황일광은 무엇을 느꼈을까? 김상봉의 ‘서로주체성’이 떠오른다.


    “서로주체성은 주체가 오직 타자를 통해서만 그리고 타자와 더불어서만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태를 표시하는 개념이다. 나는 오직 너를 통해 그리고 너와 함께 우리가 됨으로써만 진정한 의미의 나, 곧 주체인 내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립된 자기반성, 즉 고립된 자기관계가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이야말로 주체성의 가장 근원적인 본질인 것이다.”


    나도 세계도 온전히 존재하기 위해 나와 너의 만남이 중요하다. “만남은 존재의 아르케, 곧 존재의 시원이며, 원리이다.” 진정한 주체는 나와 너가 만난 우리에서 가능하다. 양반은 백정에게서 자신의 높은 지위를 확인하려 했고, 백정은 양반에게서 자신의 낮은 모습을 강요당했다. 이 둘은 만났지만 우리가 될 수 없었다. 그런 황일광이 정약종과 함께 만난 이들에게서 드디어 사람으로 황일광을 마주하는 만남을 하게 되었다. 자신을 사람으로 보아주는 사람을 만남으로 그는 사람이 되었다. 새롭게 태어난 셈이다. 그는 우리 가운데 나로 존재하게 된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서학은 사상적으로 모든 인간 존재가 형제자매이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라는 생각이 가능함을 조선 민중에게 보였다. 이런 내용이 담긴 한글 서학서들은 민중들에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게 했다. 정약종은 동생 정약용에 비해 많은 철학서를 쓰진 않았지만, 정약종이 쓴 한글 서학서가 민중에 준 희망은 어쩌면 정약용의 책들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주교요지』에 담긴 철학은 이 땅 민중의 고민에서 시작되고 전개되었다는 의미의 우리 철학은 아니다. 유럽의 신학이고 종교철학이다. 정약종은 명나라 말기에 중국에 온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롯해 중국에서 유입된 여러 서학 책을 읽고 인용하며 이 땅의 민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적어갔다. 정약종의 『주교요지』를 통해 조선 민중의 아픔은 복음을 만났다. 기다리던 복음, 자신을 사람으로 보아주는 사상을 만났다. 백정과 노비도 더불어 우리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상을 만났다.


    한국철학의 회임은 바로 여기에 있다. 『주교요지』와 같은 서학서로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회임은 평등의 희망을 품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한국철학의 회임은 한국철학의 출산으로 이어졌다. 품은 희망이 현실의 절망 가운데 현실의 희망으로 드러난 것이다.



    한국철학의 역사

    ‘진짜’ 한국철학과 ‘거짓’ 한국철학

    한국철학의 역사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국철학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서 한국철학을 민중이 주체가 된, 민중의 고난 가운데 민중의 언어로 민중의 궁리로 이루어가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그 철학은 이 땅의 민중을 위한 철학이어야 한다. 민중에게 어떤 유익도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한국철학이라 하겠는가? 이미 한국철학의 회임과 출산을 이야기했고, 이제부터 이야기할 한국철학의 역사는 한국철학의 삶, 즉 성장기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민중이 한국철학의 존재를 의심한다. 왜일까? 그것은 외형은 멋지지만 실상은 가짜일 뿐인 가짜 한국철학이 더 진짜 철학으로 한국 사회에 머물었고, 그 결과 한국 민중은 철학의 부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땅 민중은 힘든 20세기를 보냈다. 20세기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조선 시대에 민중은 한 번도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그저 통치의 대상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군사 독재 시대에서도 이 땅의 민중은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살도록 강요받았으며, 고난은 고스란히 민중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 고난 속에서 민중은 더욱 철저히 철학을 준비할 수 있었다. 고난의 주체는 그 고난으로 깊어진 철학을 당당하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역사를 통한 하느님의 교육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엄한 것이다.”


    홀로 그 시대를 누리던 친일파는 ‘진짜 철학’을 만들지 못했다. 독재자도 ‘진짜 철학’을 만들지 못했다. 그들이 만든 철학이란 하나같이 ‘가짜 철학’이다. 좋게 말해 ‘유사 철학’이다. 요즘 말로 ‘짝퉁 철학’이다. 고상한 언어로 ‘민족’이니 ‘국가’니 ‘충효’니 이야기하지만 결국 기득권을 가진 지배자의 권력을 위한 고상한 표현일 뿐이다. 홀로 누릴 것이니 조용히 자신들의 말을 따르라는 것이다. ‘국민윤리’도 ‘국민도덕’도 진짜 철학이 아니다. 강자들의 이기심이 만든 유사 철학일 뿐이다.


    철학사는 철학이 아니다. 철학사 속 외국의 유명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것은 결국 ‘남’의 철학을 연구하는 셈이다. 남의 철학에 대해 아무리 대단한 전문가가 되어도 ‘나’의 철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기락은 철학사의 목적을 정의하며, “우리는 철학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 자신 하나의 철학이 영글어 나오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했다. 하기락은 결국 서양철학사와 조선철학사를 돌아봄으로써 자기 철학인 자신의 아나키즘을 다져갔을 것이다. 결국은 나의 철학을 해야 한다. 우리의 철학을 해야 한다. 남의 답으로 나의 답을 대신하는 게으름뱅이에게 철학의 자리는 없다. 스스로의 철학을 궁리하지 않고 기적을 행하는 나의 밖 외물이 찾아와 해결해줄 것을 기다리는 게으름뱅이에게 철학의 자리는 없다. 힘들어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힘들어도 자기 답으로, 자기 철학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린 스스로 하는 정신이 아니라 남의 답을 열심히 암기하며 살아왔다. 그 암기를 교육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생각 없이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어버렸다. 정신적으로 한국 민족을 아주 없애자는 것이 되어버렸다.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지만 정치-존재론적으로는 죽어버린 존재, 기계처럼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한국철학은 무엇일까? 함석헌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다.”


    지금 이 땅의 민중에게 필요한 철학은 더불어 분노하는 철학이다. 제주 4·3. 여수·순천의 10·19. 1980년 광주, 2014년 세월호의 고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의 고난, 이곳에 다 적을 수 없는 수많은 이 땅의 고난의 슬픔 앞에서 더욱 깊어지는 철학이어야 한다. 더욱 깊어지는 철학이란 그 슬픔 가운데 아파하는 이들의 슬픔, 그 슬픈 기억으로 아파하는 이들의 슬픔, 그 슬픔을 남의 슬픔으로 돌리지 않는 철학을 말한다. 남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 안에 너의 슬픔으로 안아주는 철학이어야 한다. 이들을 안아주지 않는 철학 앞에서 민중은 철학의 부재 생각의 부재를 경험하게 된다.


    슬픔 앞에서 이 땅의 철학은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생각의 수단이 없다. 남의 언어를 번역하여 철학 비슷한 것을 하다 보니 막상 이 땅의 아픔을 풀어낼 언어가 없다. 슬픔의 공유자들이 참된 우리가 된다. 너의 슬픔을 남의 슬픔으로 버리는 순간 너는 남이 된다. 너의 슬픔을 우리의 슬픔으로 안아줄 때, 우리는 진짜 우리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의 진짜 철학은 우리가 그 슬픔 속에서 우리를 돌아보는 주체성을 가질 때 가능하다. 우리의 주체성은 그 슬픔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형이상학은 그저 존재하는 무색의 존재가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고난이란 슬픔으로 칠해진 존재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 슬픔을 버리고서는 한국 형이상학도 한국철학도 민중에겐 남의 이야기다. 민중이 생각하는 한국적 존재는 그 슬픔 속에서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이 철학인 줄 아는 곳에서 이 땅의 고난을 담은 진짜 살아 있는 철학의 언어는 멀고 먼 남의 이야기다. 없다. 나의 말로 나의 고난으로 담아낼 그 한국철학이 없는 곳에서 한국철학의 언어가 있을 수 없다. 외국 유명 철학자의 철학이 우리 민중, 지금 여기 한국이란 부조리의 공간에서 일어난 나의 아픔을 치유할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게으름뱅이가 되어 영웅을 기다리지 말자.



    ‘뜻’으로 본 한국철학

    식민지 조선의 초라한 지식인

    불안의 시대, 자기부정의 일상화 : 이정섭, 이상, 김기림 등의 시대</P>1920년 식민지 조선을 지배한 여러 단어 가운데 하나가 신흥(新興)이었다. 신흥이란 오래된 것과 구별되는 새로움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은 신흥을 원하고 있었다. 신흥이란 말로 일으키려는 것도 유럽이다. 신흥사상이라 불리는 것도 유럽의 것이고, 신흥예술이라 불리는 것도 유럽의 것이었다. 중국의 변두리가 아닌 유럽 혹은 일본의 변두리에서 교육받고 자란 이들이 자기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20년대다. 어찌 보면 중국의 변두리에서 유럽의 변두리로 이사를 간 셈이다. 하지만 변두리는 변두리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에게 삶의 공간은 농촌이 아니다. 도시다. 현대라는 시간의 공간도 도시다. 자연히 지식인의 공간도 도시다. 그 도시에서 유럽인의 흉내를 내며 살았다. 그러나 1930년대 도시 노동자로의 민중은 그런 삶을 살 여유가 없었다. 갑자기 자유인이 된 노비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인 그들에게 도시라는 공간은 힘들기만 했다. 그들에게 문제는 생존이었다. 생존이 문제인 이들 앞에서 유럽인의 삶을 흉내 내며 살던 지식인들은 무감각해졌다. 절대화된 도덕이나 종교도 성가셨다. 도덕은 자신들의 무감각함을 힘들게 하고, 종교의 신은 무력하게 악을 방관하는 듯 보였다. 도덕심도 종교심도 없는 곳에서 타자의 아픔은 그저 타자의 아픔일 뿐이다. 타자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 되지 못하는 공간에서 온전한 공동체가 세워지기란 쉽지 않다. 지식인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조건들을 순간순간 즐기며 살 뿐이었다. 자신의 방관에 대해 후진적인 조선을 탓하며, 때론 후진적인 민중을 탓하며 말이다.


    실천 없는 지식인이란 바로 이런 이들이다. 20세기 초반 이 땅엔 그런 지식인으로 가득했다. 일본은 이미 어쩔 수 없는 강대국이라 고개를 숙여버렸다. 약해진 공동체성 속에서 유일한 대처는 포기뿐이라고 합리화하며 말이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빨리 포기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포기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즐겼다. 그러나 아무리 공동체 의식이 없다 해도 결국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산다. 아무리 너란 존재를 부정해도 너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나의 운명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정신은 탈공동체화될 때, 정신은 힘겹다. 바로 그 힘겨움이 불안이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Etre Et Le Neant)에서 나의 자유는 모든 가치의 유일한 근거이다라고 한다. 불안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다. 자유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자유는 무의미하다. 그런데 나는 나와 관련된 이들과 함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나 아닌 타자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그 책임감으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 불안이 싫어 도피하면 수동적인 삶이 된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당시 불안을 느꼈다. 그러면 그 불안, 즉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사회적 의무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포기한다면, 그것은 친일파의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친일파와 같다. 수동적으로 일본을 따라가며 민중의 힘겨운 눈물에 고개 돌린 이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보편적 가치란 오히려 성가신 것이었다. 자신을 책임감 앞에 힘들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로는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며 불안해할 것 없이 그냥 현실을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도덕도 종교도 부정하며, 굳이 도덕이란 것이 있다면 자신은 부끄러운 존재이고, 절대적인 종교가 있다 해도 자신은 구원의 밖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을 통해 유럽을 동경하며 일본어로 유럽의 사상을 익히고 배운 이들, 조선인의 몸을 하고 유럽의 옷을 입고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은 당연하다. 지식인으로의 책임감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 책임감 안에서 일어나는 불안 역시 당연하다. 그러한 불안은 시인 이상(1910-1937)에게서 잘 드러난다.


    윤동주의 도덕존재론, 부끄러움의 철학

    윤동주는 혼란과 절망이 공존한 식민지 조선의 1930년대와 1940년대를 살아간 지식인이다. 그는 모든 것이 안 된다는 생각에 절망만을 노래한 시인은 아니다. 자기 분열만을 그린 시인도 아니다. 부끄러움은 부끄럽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는 이에게 찾아오는 아픔이다. 부끄러움은 또 우리라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 된다. 우리로부터 벗어나 홀로 잘 되려는 욕심을 부끄러움은 막아준다. 그런 욕심이 현실화될 때, 부끄러움은 아픔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이는 쉽게 공동체를 무시하고 도덕을 무시한다. 전혀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동주는 부끄러워하고 있다. 아파하고 있다.


    유럽의 근대철학자 데카르트는 너 없는 나를 말한다. 너는 나의 존재에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데카르트에게 너는 고민의 대상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너가 없이 혹은 너가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나는 존재한다. 그런데 윤동주는 우리 가운데 너가 너로 다가온 이상 나와 무관하지 않은 존재임을 인정한다. 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는 이름을 불러봅니다라고 한다. 여기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냥 그의 이름을 물리적으로 발음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름 부른 한 명 한 명이 이미 남이 아닌 존재로 다가와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에게 ‘너’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 더불어 있음이 당연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더불어 있음이 당연하다면, 우리로의 존재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이란 조건 속에서 고난의 시간을 보내는 민중에게 달려가 그들과 더불어 있음도 당연하다. 그 당연(當然)이 당연으로 있지 않을 때, 부끄러움이 드러난다. 부끄럽다고 죽지 않는다. 너 없이도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너와 더불어 있음이 참모습이기에, 너의 아픔 앞에서 고개 돌리고 있는 나의 홀로 있음은 나를 아프게 한다. 이런 부끄러움이라는 아픔과 슬픔은 철학의 영양제다. 철학자를 더 참된 철학자로 만드는 각성제다. 슬픔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왜 이렇게 아픈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 돌아봄은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하게 한다. 슬픔은 철학이 아니지만 철학의 각성제가 된다. 주체를 자각하게 하는 첫걸음이 된다. 그렇게 윤동주에게 다가온 자신은 부끄러운 존재다. 너로 다가가지 못하고 자기 아픔에 아직 구속되어 부끄러워하는 존재다. 너의 얼굴을 마주보기도 힘든 무력감 속에 자신의 세계에 구속되어 한없이 아파하는 존재다. 아픈 윤동주의 시이기에 그 시들은 고난과 슬픔의 풍경화다. 더불어 있지 못하고 떨어져 홀로 있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그린 슬픔의 풍경화다.


    함석헌의 ‘고난’의 형이상학

    함석헌에게 ‘진짜 철학’이란 무엇인가

    함석헌에게 결핍의 공간은 절망의 공간이 아니다. 결핍은 절망의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채워질’ 공간이다. 충만을 향한 공간이다. 노력이 뜻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다. 함석헌은 1956년 <사상계>에 투고한 “진리의 향수”에서 이렇게 말한다.


    “빛은 밝은 것, 빈 맘에야 밝음이 있고 밝은 것이 참이다. 빛은 자체로 있는 충만하고 완전한 것이지, 빛에 제한도 차별도 없다.”


    오랜 식민지 생활을 끝내고 해방이 되었지만 독립하지 못했다. 제대로 자신의 두 발로 서지 못했다. 남북으로 갈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잔인하게 죽이는 전쟁을 했다. 전쟁 이후 남북은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또다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빛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한국이란 동굴 안에 빛은 없어 보였고, 동굴 밖을 진짜 희망의 공간으로 믿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여겨졌다. 독일철학에서 답을 구하려 하고, 프랑스철학과 영국철학 그리고 미국철학에서 답을 구하려 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영국과 미국에선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이 땅에 일어나자 너무도 쉽게 이 땅을 희망이 없는 곳, 빛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해버렸다. 모두 한국의 밖, 동굴의 밖을 보았다. 한국학이라고 하면서 한국이 얼마나 유럽적인 것을 품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이들의 논의는 그리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결국 진리의 기준은 밖이고, 우리라는 이름의 안은 변두리에서 밖을 그리워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이와 같이 동굴 밖이 희망이라면 동굴 안은 절망이다. 동굴 안은 어느 하나 제대로 있는 것이 없는 결핍의 공간으로 보였다. 이 땅에 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이 없어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철학한다는 이가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 안의 무시는 곧 안이란 공간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무시로 이어진다.


    함석헌 철학의 시작은 ‘지금 여기의 긍정’이다. 삶의 긍정이고 역사의 긍정이다. 바로 여기 무엇인가 끝없이 부족한 결핍의 공간에 대한 긍정이다. 함석헌은 외적 초월이 결국은 민중을 무시하는 데로 이어질 것임을 알았다.


    함석헌은 현실을 벗어난 초월, 즉 외적 초월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희망을 찾는다. 희망은 나의 ‘밖’에 있지 않다. 나의 ‘안’에 있다. 희망이 나의 ‘밖’에 있음으로 절망 속 나의 ‘안’은 당연히 무시되고, 그런 ‘자기 무시’에서 자기를 희망으로 이끌어줄 지배자를 찾는 ‘악의 연쇄’는 사라져야 한다고 믿었다.


    함석헌의 철학은 ‘나’와 ‘우리’가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고난을 피해 밖으로 도주하지 말자고 한다. 고난을 긍정하며 나와 우리의 본질을 마주하자고 한다. 나와 우리 안에서 가능태로 있던 희망이 현실이 되어 살을 찢고 나오게 하자고 한다. 고난의 주체로 ‘우리’와 ‘나’가 우리와 나의 철학에 있어 주체가 되자고 한다. 남의 답이 아닌 우리와 나의 답으로 우리와 나의 삶을 만들어가자고 한다. 고난의 주체가 철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면, 철학의 자리는 고난의 자리다. 철학은 자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기 무시가 민중을 침묵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철학은 자기 소리를 내게 한다. 안의 생각이 밖으로 울려 나오게 한다. 이것이 철학이기에 철학을 하기 위해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고, 그 고민을 밖으로 드러내야 하며, 싸워야 한다. 현실의 부조리와 싸우는 철학, 현실의 고난을 긍정하는 철학, 자신이 중심이 되는 철학, 그것이 함석헌이 말한 진짜 철학이다.


    “사람은 저항하는 거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왜 그런가? 사람은 인격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엇인가? 자유하는 것 아닌가? 우선 나는 나다 하는 자의식을 가지고 나는 나를 위한 것이다 하는 자주하는 의지로써 내 뜻대로 내 마음껏 나를 발전시켜 완전에까지 이르자는 것이 인격이다.”


    ‘더불어 있음’의 철학, ‘전체’의 철학

    한국철학이 우리 철학이 되기 위해 한국은 나와 너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우리로 존재해야 한다. 한국이 우리가 아니라면, 한국 철학은 우리 철학이 아니다. 너희의 철학이다. 우리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다. 진정한 우리는 평등한 다수의 나들이 만남으로써 가능하다. 서로 다른 낱개의 나들을 하나로 존재하게 하는 힘은 공감(共感)이다. 공감은 동감(同感)이다. 이는 느껴 일어나는 생각이 같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느껴짐이란 나의 밖에서 나의 안으로 찾아옴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다수의 사람이 같은 일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할 때, 그것을 공감이라고 한다. 세월호라는 비극의 순간, 서로 다른 다수의 나들이 같은 생각을 자기 안에 가질 때, 다수의 나는 우리가 된다. 우리가 되었다는 말은 서로 손을 잡게 하는 힘이다.


    민중은 서로 손 내밀어 전체가 된다. 우리가 된다. 양심이 진짜 양심이라면, 부조리와 부당함으로 누군가 고난의 시간을 보낼 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소망이 없다고 단념해버린다면, 그것은 양심이 아니다. 진짜 양심이라면, 나는 홀로 있을 수 없고, 나의 앞 너의 고난을 남의 것으로 외롭게 둘 수 없다. 너의 아픔에서 나의 아픔을 보는 것이 양심이다. 다가가 손 내밀어 우리가 되어야 한다. 양심은 공감의 조건이다. 우리의 바탕이다.


    우리가 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모든 철학은 자기 자신을 향한 그리움과 동경이다. 그런 한에서 철학의 지향점은 자기 자신이다. 결국 철학은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밀려나 밖에 선 곳에서만 일어난다. 그리하여 철학이란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려는 열망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그리움의 지향점도 자기 자신이지만, 동시에 그리움의 출발점 또한 자기 자신이다. 결국 철학은 자기인식이다. 철학은 나를 아는 것이 바탕이 된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정말 제대로 나란 존재가 나로 존재하게 되는 것은 너와 더불어 있음으로 가능하다. 너도 너로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 나와 더불어 있어야 한다. 그냥 홀로 있는 나는 없다. 나는 항상 너를 만남으로 그리고 너와 더불어 온전한 주체로 드러난다. 즉 나는 너와 더불어 우리로 있는 가운데 진정한 주체로 있을 수 있다. 너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홀로 있는 나’는 정말 제대로 있는 나로부터 ‘떨어져 있음’이다. 진짜 ‘나’는 ‘너’와 만나 ‘우리’ 가운데 더불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 ‘나’이며, 철학이 지향하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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