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중국은 없다
 
지은이 : 안세영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 2019년 12월




  • 저자인 안세영 교수는 중국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예리하게 분석·비판하며, 이에 대한민국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중국이 아닌 우리의 시각에서 그들이 말해주지 않는 ‘진짜 중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중관계의 새로운 조명을 통해 우리 민족과 역사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동북아 역사와 미래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위대한 중국은 없다


    중국의 ‘코리아 속국론’

    되살아나는 ‘코리아 속국론’

    “역사적으로 코리아는 중국의 일부였다(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


    2017년 4월 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 말이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역사 인식이며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는 엄청난 외교적 결례다. 그런데 우리는 항의 한번 안 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제18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밝혔듯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고 있다. 과거 베이징 자금성의 천자(天子)가 보기에 고려, 조선은 조공을 바치는 속국에 불과했다.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중국몽’의 환상에 젖은 시 주석도 한국이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다. 베이징의 오만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몇 년 전부터 시 주석이 틈만 나면 내세우는 말이다. 원래 중국 역사에 한족이랑 개념은 있어도 중화민족이란 말은 없었다. 그런데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과거 그들을 지배하던 소수민족까지 한족이 주축이 된 중화민족에 포함시키는‘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의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를 들춰봐야 한다. 역대 왕조를 ‘한족 왕조’와 ‘비한족(非漢族) 왕조’로 이분해보면 놀랍게도 순수한 한족이 세운 왕조가 중국 전체를 지배한 기간은 딱 681년이다. 쉽게 말하면 한족보다 비한족이 중국을 지배한 기간이 더 길었다. 그러다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손문이 청 왕조를 무너뜨려 중화민국을 세우고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 300여 년 만에 한족이 중원의 지배권을 되찾은 것이다.


    동북아 ‘마의 삼각구도’: 우리나라는 중국의 군사동맹국이었다

    동북아 역사를 단 두 나라, 중국과 한반도(고려, 조선)라는 양자관계로 보면 ‘중화제국-속국’ 같은 상하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동북아 역사에 접근해보자. 동북아 역사를 한족(중원)- 우리(한반도)- 북방 민족(몽골, 만주)으로 이어지는 ‘마(魔)의 삼각구도’에서 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대륙에서는 한족 왕조와 북방 민족이 끊임없이 싸우고 점령하고 통치하는 악순환을 되풀이 했다. 이같이 벌어지는 한족 왕조와 북방 민족 사이의 파워 게임에 따라 우리는 때론 궁지에 몰린 한족 왕조의 군사동맹국, 때론 북방 몽골리안 세계의 형제국가 역할을 했다.


    강력해진 거란, 몽골, 여진 등 북방 민족이 중원을 정복하려면 인구가 겨우 수백만 명인 그들로서는 싸울 수 있는 장정을 모두 다 동원해 만리장성을 넘어야 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고향 땅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


    남쪽으로 가서 싸우고 있다가 전통적으로 송나라, 명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던 고려, 조선이 한족 왕조와 손을 잡고 압록강을 넘어 협공하면 완전히 뒤통수를 맞는 꼴이 된다. 그래서 항상 북방 민족은 중원으로 출병(出兵)하기 전 한반도부터 ‘평정’하고자 했다.


    이를 거꾸로 한족 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고려, 조선이 일종의 군사동맹국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제2전선을 형성해 북방 민족의 전력을 분산 또는 약화시켜주었다. 강성해진 거란, 몽골, 만주족에게 몰리던 송나라, 명나라에 군사적으로 상당한 도움을 준 셈이다.


    동북아 ‘마의 삼각구도’의 역사적 교훈

    우선 ‘코리아 속국론’을 재조명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를 수직적 상하관계가 아닌 보다 수평적 대등관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고려, 조선은 한반도에서 제2전선으로 형성해 북방 민족의 위협을 받는 한족 왕조(송)를 도운 군사동맹국이었다. 동맹국은 대등관계이지 상하관계가 아니다.


    둘째, 역사에서 배우는 안보 교훈이다. 한족과 북방 민족 사이의 국제정세 변화를 잘 분석하고 서희 장국처럼 ‘실용외교’를 펼쳤더라면 항몽전쟁, 병자호란 등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배계층의 잘못된 ‘명분론’, 즉 한족의 중국을 하늘과 같이 모시는 모화사상 때문에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전쟁에 휘말리고 애꿎은 백성들만 고초를 겪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역사 해석의 고질적 병폐인 자학적 ‘한풀이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평소엔 국방을 소홀히 하다가 외적의 침략을 당해 백성들에게 엄청난 고초를 겪게 하고는 모든 잘못을 ‘침략자의 탓’으로 돌린다. 안보를 등한시한 통치자 스스로의 잘못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지도자와 백성이 힘을 합쳐 나라를 튼튼히 지키지 못하면 주된 책임은 모두 우리에게 있다.



    패권국가를 향한 붉은 중국의 야심

    중화제국의 멈출 줄 모르는 영토 팽창욕

    2017년 봄, 미국 플로리다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역사적으로 코리아는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한 발언은 그냥 얼결에 한 망언이 아니다. 특히 우리는 여기서 그가 “북한뿐만이 아니라 코리아 전체다(Not only North Korea, Korea)”라고 강조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시 주석의 망언을 거꾸로 해석하면 ‘언젠가 중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미국만 몰아내면 한반도는 다시 중화제국의 손아귀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중국이 경제적, 군사적 힘을 키우면 패권국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선량한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있을지에 대해 숙명적 결정을 할 것이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가 한 예측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베이징은 패권국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그간 중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적을 만들고 친구와 멀어지는 방법을 아주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오드 베스타(Odd Westad) 교수의 따끔한 비판이다.


    유일하게 한화에 실패한 한반도

    지금 우리 사회는 지도자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너무 중국 눈치를 보고 휘둘리는 패배의식이 팽배해 있다. 중화사상에 젖은 중국은 굽히는 나라는 우습게보고 거칠게 대하지만 강하게 나오는 상대에게는 움칠한다.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굴종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한자 중심의 역사 인식 때문에 만들어진 신(新)사대주의나 소중화 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한자 문명의 새로운 역사의 틀 속에서 보면 한반도는 한화형 제국주의가 실패한 유일한 지역이다. 중국 군대가 압록강을 넘어 재미를 본적이 거의 없고, 그 생활력 강한 한족도 한반도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한글의 문자경쟁력은 대단하며 특히 정보화 시대에는 한자를 앞지른다. 대한민국에는 그들이 섣불리 한국전쟁을 일으켜 불러온 세계 최강의 미군이 있다. 이렇게 한중관계를 독창적이고 새로운 비중국의 역사관으로 조명해야만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그래야만 날이 갈수록 패권국가로 치닫는 중국에 강하게 맞설 수 있다.



    화교가 뿌리 못 내린 ‘코리아’

    동남아는 이미 ‘리틀 차이나’

    세계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뿌리를 내리는 한족의 놀라운 생활력은 동남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는 이미 1742년 화인공당(華人公堂)이 설립되어 화교 사회의 사무를 처리했다. 화인공당은 1772년부터 1978년까지 화교 사회의 기록을 남겼다.


    현재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만 약 4,000만 명의 화교가 있다. 현지 인구의 10퍼센트인 이들이 동남아 경제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겨우 4퍼센트의 화교가 현지 경제의 80퍼센트 정도를, 필리핀에서는 1.3퍼센트가 60퍼센트를 차지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수상,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 등도 모두 가계를 따져 보면 화교다. 말레이시아에서는 10대 부호 중 9명이 화교다.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부호도 거의 화교들이다. 싱가포르는 아예 ‘리틀 차이나’로 인구의 77퍼센트가 화교다.


    태국의 CP그룹 같이 제조업을 하는 화교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동산, 금융, 유통, 음식료 같은 서비스 업종에 종사한다. 유태인 뺨칠 정도의 상술을 가진 이들은 국가 기간산업보다는 ‘금방 돈 냄새가 나는 곳’인 비(非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선호한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현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화교 자본이 동남아 국가의 산업화에 필요한 철강, 자동차, 반도체 같은 제조업에 대한 장기적 투자는 꺼리는 것이다.


    동남아, 특히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 가서 협상할 때 주의해야 할 금기사항이 하나 있다. 절대 화교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동남아에는 경제적 지배자인 화교와 현지인 사이에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휴화산 같은 ‘종족 갈등’이 잠재해 있다. 1995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반(反)화교 폭동이 일어나 많은 화교가 희생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100불짜리 지폐를 환전할 때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지갑에 한 번 접어 넣은 100불짜리는 환율을 10퍼센트 정도 불리하게 계산한다. 두 번 접은 100불짜리는 20퍼센트 정도 불리하다. 항상 불안함을 느끼는 화교들이 ‘여차하면 튀려고’ 100불짜리 지폐를 금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한 번 접은 지폐는 금고에 오래 보관하면 접힌 부분이 손상되기 때문에 환율을 낮게 계산하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아예 화교로부터 현지인을 보호하기 위해 ‘부미푸트라정책(말레이계와 중국계 화교 간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197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말레이계 우대정책)’을 쓴다. 패권국가를 꿈꾸는 중국이 동남아 경제를‘위대한 중화경제권(Greater Chinese Economic Zone)’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도 또 하나의 불안요인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혹시 현지 경제권을 장악한 화교들이 동남아 경제를 중국 경제에 종속시키려는 베이징의 야심을 위해 움직이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 뿌리 못 내리는 한족의 생활력

    1976년 3만 2,000명이던 우리나라의 화교 인구는 급격히 줄고 있다. 거의 대부분이 미국, 캐나다, 대만, 중국으로 떠나갔다. 이정희 교수에 의하면 동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도 한국에서 온 화교가 운영하는 ‘차이니즈 레스토랑’이 있다고 한다.


    청와대 근처에 화교가 운영하던 태흥반점이란 중국집이 있었다. 짜장면이 맛있어서 항상 손님이 북적거렸는데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고 했다. 그래서 어느 손님이 주인에게 물었다.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데 왜 외국으로 이민을 가나요?” 순간 화교 아주머니의 입에서 분노에 찬 말들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짜장면값을 못 올리게 정부의 소비자물가지수를 계산할 때 마다 꼭 짜장면, 짬뽕값을 연결시켜놓고, 화교는 토지 소유를 제한하여 그 좋은 부동산 경기 한번 못 타보고, 가게 평수 제한, 세금 차별 등등…….”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손손 한국 땅에서 살아왔는데 한국 정부가 어찌나 까다롭게 구는지 도무지 짜장면 장사만 해서는 돈을 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1968년 외국인토지법을 개정해 화교의 영업용 점포 규모를 165평방미터제곱(50평)이 넘지 못하게 하고 토지 소유도 제한했다. 사실 이 같은 외국인, 외국자본, 외국기업에 대한 우리 정부와 우리 사회의 차별은 화교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개발도상국이 산업화를 하는 데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그중 하나가 싱가포르나 라틴 국가들처럼 ‘다국적 기업 주도형 산업화’다.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여 전자, 자동차 같은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외국인, 외국기업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삼성, 현대 같은 ‘국내 대기업 중심의 산업화’전략을 펼쳤다. 쉽게 말하면 정부가 일반 지식인들이 외국의 다국적기업을 잘못 불러들이면 산업 주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다음에야 이 같은 외국자본, 외국기업에 대해 아주 배타적이던 사회에서 개방적인 사회로 바뀌었다.



    붉은 중국의 역사 왜곡

    6·25침략을 항미원조로 왜곡하는 중국

    “항미원조(抗米援朝) 전쟁에서 승리한 상감령 전투 때처럼 미국에 맞서겠다.” 2019년 6월, 미국의 제재로 궁지에 몰린 화웨이의 런정페이회장이 격분해 내뱉은 말이다.


    “미 제국주의자의 침략에 항거하고 북조선을 도운 정의로운 항미원조 전쟁에서 승리해 국위를 떨쳤다.” 2017년 8월,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 격려사이다.


    2019년 6월,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북침설을 다시 주장하며 “북한이 침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치른 용감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중국몽을 경제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최일선에서 뛰는 화웨이 최고경영자와 강군몽(强軍夢)을 꿈꾸는 시 주식의 놀라운 역사 인식이다. 어찌 보면 겉은 자유무역과 시장경제의 덕으로 기업을 키워나가지만 속은 공산주의 사상과 중국 우월주의로 철저히 무장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의 말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공산당 체제하에 크고 자란 이들은 6·25전쟁에 대해 그렇게 교육받고 세뇌되었기에 역사적 진실을 말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중국예외주의’

    이 같은 잘못은 중국공산당의 역사 왜곡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 앨러스태어 존스턴(Alastair Johnston)교수가 지적했듯이 ‘중국예외주의(Chinese Exceptionalism)’탓이 크다. 존스턴 교수의 말을 요약하면 중국사회의 뿌리 깊은 믿음은 ‘중국인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를 입증하기 위해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전술’이란 말을 인용한다. 그런데 존스턴 교수에 의하면 이는 국제사회에서 두 가지 문제를 유발한다.


    첫째, 사회심리학·정치학·사회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온 연구를 보면 어느 나라가 자국예외주의에 빠지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호적으로 보는 ‘내집단 편향’과 외부집단에 대해 부정적 편견을 가지는 ‘외집단 편향’이 생긴다고 한다. 중국인 스스로 이 같은 자국예외주의의 함정에 빠지면 빠질수록 외국인은 기본적으로 열등한 존재인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둘째, 중국예외주의는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2013년 4월 공산당 중앙공무실 제9호 문서는 시민사회, 입헌정치 등과 같은 7대 금기사항의 하나로 공산당이 만든 역사를 비판하는 ‘역사 니힐리즘(Nihilism)’을 들고, 이를 금지했다. 말하자면 중국은 역사 왜곡에 아주 익숙하다. 그래서 붉은 중국이 외국과 충돌할 경우 이는 외국이 먼저 시작한 일이고 중국은 전혀 잘못이 없다는 뻔뻔스런 주장으로 이어진다. 항미원조 전쟁은 물론이고 이 같은 오류가 초래한 또 하나의 전쟁이 중국의 베트남 침공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중국은 1979년 20만 병력으로 베트남을 침공했다. 침공 전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은 커터 대통령에게 “조그만 나라가 버릇없이 굴어 교훈을 주려고 자위적 반격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같이 중국예외주의의 함정에 빠진 베이징 지도자 말에는 남의 나라 침략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다.


    중국과 베트남이 27일간 싸웠는데 사실은 중국의 창피한 패배였다. 중국 정규군이 베트남 북부 국경을 침공할 때 베트남 정규군은 모두 캄보디아에 가 있었다. 따라서 중국군과 맞서 싸운 것은 베트남 민병대였다. 그런데 탱크까지 몰고 간 중국의 정규군이 베트남보다 더 큰 전사자를 내고도 수도 하노이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북부 산악지대에서 맴돌다가 스스로 철군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우리의 선택은?

    깨어진 미국의 ‘차이나 드림’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 궁극적으로 중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을 지지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1990년대 세계 자유무역주의 국가들 분위기는 중국의 WTO 가입에 대해 아주 부정적이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시장경제국’이 아니었기에 엄격히 말하면 WTO 가입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너무나 낭만적인 ‘차이나 드림’을 가졌다. 가난한 중국을 세계 자유무역체제에 넣어주면 미국 상품이 인구 십수억 명의 거대한 시장에 흘러 들어가고 소련에 이어 중국마저 탈(脫)공산화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2017년 시진핑 주석이 ‘중국몽’으로 미국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2등 국가에 만족하지 않고 2050년까지 세계 1위의 경제·군사 대국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동안 두 나라는 완전히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한 셈이다.


    중국이 패권국가가 될 수 없는 5가지 이유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절대 2050년 세계 패권국가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5가지다.


    우선 미국이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허황된 군사적 패권을 꿈꾸는 중국을 구소련식으로 몰락시키는 것이다. 냉전시대 국민총생산(GNP)의 30퍼센트가 넘는 돈을 미국과의 군비경쟁에 쏟아붓던 소련은 경제 파탄으로 자멸했다. 미국에 가장 위협이 되는 중국의 6개 항모전단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미사일 같은 무력을 쓸 필요가 없다. 돈줄을 막아 바다에 떠 있는 고철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는 결정적 아킬레스건이 있으므로 가능한 시나리오다. 군비 확장에 퍼붓는 달러의 상당 부분이 따지고 보면 미국에서 흘러 들어간 돈이다. 중국에 투자한 미국기업, 그리고 6,210억 달러의 무역적자(2018년 기준)를 감수하며 중국 물건을 사주는 미국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정확히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봄부터 관세전쟁을 시작해 지금 한창 중국을 후려치고 있다.


    둘째, 미국이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기존의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을 재편하는 방법이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오늘날 중국의 번영은 ‘차이나’ 혼자 잘해서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다. WTO에 가입해 세계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을 하고, 세계의 소비자들이 중국 물건을 사주고, 외국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투자한 미국기업의 철수 명령’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글로벌 가치사슬을 아예 흔들어버리려는 것 같다. 이미 ‘차이나 리스크’가 임계점을 넘어 애플, 구글, 인텔 같은 미국기업이 중국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유럽기업들과 우리나라 기업들도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드러내놓지는 못하지만 슬슬 짐을 싸고 있다.


    셋째, 중국처럼 덩치만 커진다고 패권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조지프 나이가 지적하듯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소프트 파워, 즉 ‘보편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조지프 나이,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2015). 대영제국의 민주주의, 미국의 자유 같은 것을 말한다. 지금 중국이 내세우는 건 고작 ‘위대한 중화사상’이다. 이건 보편적 가치가 아닌 자국우월주의에 불과하다.


    넷째, 세계질서에서 우두머리가 되려면 따른 무리, 즉 동맹국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70여 개의 동맹국이 있다.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29개국과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등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그런데 끊임없는 영토 팽창욕으로 국경을 접한 14개국과 모두 영토분쟁을 하는 중국은 외롭다. 중국의 동맹국은 딱 두 나라다. 파키스탄과 북한이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동맹국이다.


    마지막으로, 시진핑 주석이 너무 일찍 칼을 빼들었다. 미국이 1870년대에 경제적으로 영국을 추월하고 70년 정도가 흐른 1940년대에 군사패권을 장악했다. 그런데 중국은 2050년에 경제, 군사 두 개의 패권을 한꺼번에 차지하겠다고 한다. 세계 역사를 보면 경제패권과 군사패권이 바뀌는 데는 적어도 20~30년의 시차가 있었다. 중국,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진핑 주석이 그렇게 마음이 급한 데는 외국인인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중국몽이 자신의 개인적 야심인 영구집권을 위한 국내정치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어느 나라건 지도가자 법을 바꿔 영구집권을 하려면 국민에게 그럴듯한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위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장기집권을 해야 한다고 국민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도광양회를 내세운 덩샤오핑은 국제적으로 아주 겸손했다. 그런데 ‘중국몽’과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치는 시진핑 주석은 너무 자신감에 차 있고 대외적으로 오만한 인상을 준다. 앞으로 중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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