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일상적인 철학
 
지은이 : 박은미
출판사 : EBS BOOKS
출판일 : 2023년 06월




  • 인생이라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려면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좋은 생각’이 필요하고 그 생각의 정리를 철학이 담당합니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생각의 습관을 파악하고, 철학적 사고 능력으로 일상에 철학을 적용하는 방법을 이야기해 드립니다.


    아주 일상적인 철학


    개념편: 일상을 힘들게 하는 생각 습관들

    타인을 선의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 ∥ 휴리스틱

    직관적 선택에 따른 오류를 연구하는 인지심리학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내용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왜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가’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고 싶어 하는 것’이 정말 믿어도 되는 내용인가 질문하는 일이 바로 철학입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 것을 믿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거기에 제동을 걸고 ‘이거 정말 믿어도 되는 거 맞아?’라고 묻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요즘 코인으로 돈을 많이 번다는데’ 하는 쪽으로 마음이 가고 있으면 코인으로 돈을 많이 잃은 사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법입니다. 더군다나 코인으로 돈을 잃은 경우는 알려지기 어렵다는 진실을 보기도 어려워지지요. 제동을 거는 철학적 질문, 즉 ‘이거 정말 믿어도 되는 거 맞아?’라는 질문은 내 마음이 엉뚱한 믿음으로 가득 차 진실이 아닌 것을 믿고 잘못된 선택을 할 위험을 줄여줍니다.


    인지심리학은 사람이 순간적으로 어떤 것을 믿게 되어 어떤 인지 오류에 빠지는지를 연구합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즉흥적인 결정을 잘합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직관적인 선호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인지심리학은 바로 이 ‘직관적 선호에 따른 결정’을 하는 인간에 대해 연구해, 잘못된 인지를 하게 되는 심리를 설명해주는 분야입니다. 행동경제학은 결국 인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행동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책 제목은 《생각에 관한 생각》입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 바로 철학인데, 행동경제학에서도 이 ‘생각하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합리적 선택은 논리적‧비판적 사고, 즉 따져 물으며 생각하여 전체를 포착하고자 하는 사고에 의한 것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부분적 인식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지요. 일단은 비판적 사고란 체계적으로 따져 물어서 오류를 피하며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정리하고 기억해두시면 되겠습니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두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기에 비판적 사고, 즉 오류를 피하면서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휴리스틱’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휴리스틱이란 직관적 선호에 따라 결정하고 조정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직관적 선호는 의식 차원에서 계산하지 못한 가능성까지 포함애서 뇌가 내리는 결정이기에 속도가 빠릅니다. 휴리스틱은 빠른 데다 어떤 경우에는 놀랍도록 정확하기까지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이없게 틀리기도 합니다. 근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직감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훈련된 사람의 휴리스틱은 정확성이 있지만 막연한 직관적 결정은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카너먼은 전문가가 정확한 직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휴리스틱이 아니라 장기간의 훈련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휴리스틱의 정확도를 올리려면 논리적‧비판적 사고를 하면서 여러 가지 변수에 대한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이지요.


    편향을 제거하기

    우리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통해 새삼 이해하게 된 것은 옛날에 인류가 왜 그렇게 이방인을 두려워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방인이 어떤 전염병을 가져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를 환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낯선 사람이 나의 친구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그동안 인류는 1차적 판단을 좋게 내려왔을까요, 아니면 나쁘게 내려왔을까요? 자기 보존을 위해서는 1차적으로 나쁘게 해석해놓는 것이 안전할 것입니다. 나쁘게 해석하면 미리 방비를 하게 되지만 좋게 해석하면 방비를 하지 않아 큰 문제가 일어날 위험이 생길 테니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타인의 의도를 선의가 아닌 악의로 해석하기 쉬운 이유입니다. 악의로 해석했다가 선의임을 알게 되면 미안할 뿐이지만, 선의로 해석했는데 실제로는 악의였을 경우에는 사기 등 온갖 피해를 입게 되니까요.


    누군가가 나를 선의로 해석하지 않고 악의로 해석한다는 것을 느끼면 마음이 아프지요. 나를 믿어주지 않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그 사람이 야속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일단 상대를 악의로 해석하는 일이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존 전략임을 이해하고 너무 상처받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자기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타인을 선의로 해석하는 데에는 나의 부담이 많이 따릅니다. 상대방이 나를 배신했을 때 손해를 볼 위험을 떠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인을 선의로 해석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러한 억울함을 느끼게 될 때 나는 얼마나 타인을 선의로 해석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도 웬만큼 믿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다지 타인을 선의로 보지 않으면서, 타인에게만 그러한 선의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선의로 해석해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지요. 그들은 배신당할 위험 부담을 안고도 나를 믿어준 것이니 말입니다. 


    내 눈에만 안 보이는 내 잘못 ∥ 인식의 사각지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메타인지

    여러분은 아마도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이 부분은 내가 맞는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 덕분에 속이 터졌던 경험이 제법 있을 것입니다. 타인의 인식의 사각지대를 볼 때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이 있지요. ‘저렇게 남들 눈에는 훤히 보이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보이지 않는구나!’ 인식의 사각지대는 당사자 눈에만 안 보입니다!


    타인의 사각지대를 보며 남들만 인식의 사각지대를 못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저 사람이 저러는 것을 보면 나에게도 나만 못 보는 사각지대가 있겠구나’라고 느끼는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깨달으면 내 사각지대를 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사각지대를 의식할수록 타인의 인식의 사각지대를 수용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지가 최고의 지’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어렵지요. 앎이 전혀 없다면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내게 앎이 쌓이고 앎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을 때에야 내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요. 즉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건 ‘많은 것을 알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요즘 자주 거론되는 상위인지(메타인지)입니다. 메타인지는 인지에 대한 인지, 즉 자신이 아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는 것은 무엇인지를 메타 차원(상위 차원)에서 검토하는 것입니다. 요즘 대두하고 있는 메타인지 학습법은 학습자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인식해서 모르는 것을 학습하도록 이끄는 학습법을 말합니다.


    사실 메타인지나 상위인지는 철학적 성찰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맨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죠.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보려면 거울이 필요합니다. 철학은 우리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철학이 바로 ‘생각에 관한 생각’이니 ‘인지에 대한 인지’인 메타인지는 그 자체로 철학적 작업이지요.


    철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인식의 사각지대’를 보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보편적 인식, 즉 인식의 사각지대를 완전히 없앤 지식을 지향합니다. 나에게만 진리인 인식이 아니라, 모든 편향이 제어된 보편적 인식을 추구하지요. 인간이 모든 편향을 제어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기는 어렵지만, 보편적 인식을 지향하는 노력만이 나를 나만의 우물에 덜 빠지게 도와주리라 믿고 그러한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가보아야 합니다.



    심화편: 삶을 변화시키는 생각 훈련

    인식의 사각지대 줄이기 ∥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점검하자

    인식의 사각지대를 일부러 인식하기

    별로 객관적이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자신은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장담하듯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객관’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는 사람은 이 단어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객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알면 감히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나설 수 없지요. 오히려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자주 하는 말은 이런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스스로 객관적이라고 착각하기 쉬우니까 늘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어.” 내가 어느 때 객관적이지 못한지를 스스로 알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바로 인식의 사각지대를 의식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인식의 사각지대를 알기란 이렇게 어려우니, 혹시 누군가와 문제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내가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측면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이상해 보이는 면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줄줄 생각납니다. 생각을 멈추기가 어려울 정도로요. 그러나 내가 이상한 면은 일부러 노력해도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일부러 인식의 사각지대를 인식하려 노력해야 하지요.


    나 자신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일부러’ 일관성을 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끔은 스스로 의식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관성을 어기는 경우가 있기는 할 거예요. 그런 경우 인간은 가짜 일관성을 부여해 합리화할 정도로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창피해합니다.


    인식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출발점은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 사각지대를 의식해야 그곳을 밝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인식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어떤 문제를 접하든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타인과 갈등할 때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해보면 ‘내 잘못’이라는 답이 나오게 됩니다. 그럼 그다음에는 ‘그럼 내가 못 보고 있는 내 잘못은 뭐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지요. 우리의 이성은 그런 질문들을 토대로 활동합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해보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려 노력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타인이 나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나 폭력적인 일입니다. 인간에게는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줄이려 노력하되 그 노력이 늘 온전한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는 것, 즉 내가 타인을 이해하는 일에서나 나 자신의 과오를 살피는 데서 종종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소망적 사고 극복하기 ∥ 내 생각을 움직이는 요인을 알아내자

    우리가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잘 듣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은 그 사람에게 바라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그 사람에게 바라는 바가 무엇인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짜증을 일으킨다면 그 사람이 나의 소망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죠. 내가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소망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 소망의 존재를 의식해야 그 소망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타인이 내가 원하는 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이 없으면 갈등이 일어날 일이 없지요. 문제는 이 소망을 제거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 할 자식조차 아무런 소망을 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비판적 사고를 방해하는 것은 소망, 즉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바에 치우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소망에 따라 생각하는 것을 소망적 사고라 합니다. 인간의 1차적 인식은 대체로 소망적 사고로 이루어집니다. 주식을 사면 나는 크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산 집은 값이 잘 오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망에 치우쳐 세상을 보면 현실에 맞지 않는 판단을 하기 쉽지요.


    비판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근거가 있으면 신뢰하고 근거가 없으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소망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믿고 싶으면 믿고,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무엇을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때 ‘근거’에 따르나요, 아니면 ‘믿고 싶은지 여부’에 따르나요?


    무의식 바라보기 ∥ 나를 힘들게 하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자

    무의식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내 마음입니다. 의식의 차원으로 올라오지 않은 마음이지요. 그런 마음을 가진 나를 용납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 마음을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무의식은 남의 눈에는 보이는데 자기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결혼생활이나 연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의 무의식을 너무 자세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어서입니다. 우리는 종종 배우자나 연인에 대해 ‘네가 그렇다는 것을 너는 모르지? 내 눈에는 다 보여!’라는 마음이 되곤 하지요. 그러나 내 무의식은 인식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내 눈에 상대방의 무의식이 보인다는 상대방에게는 나의 무의식이 보인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진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를 망치는 믿음과 인지치료

    무의식은 나의 생각과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면 자기 사고 패턴의 특징, 심리적‧무의식적 특징을 의식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만의 잘못된 믿음 때문에 일을 망치고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된 믿음이라 하는 이유는 참이 아닌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믿음의 예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랑이나 결혼에 과도한 기대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믿음은 애정결핍으로 인한 잘못된 믿음입니다. 인간은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한계를 가진 타인과의 관계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고 믿는 것은 소망에 입각한 것이죠.


    인지치료는 우리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생각과 관점을 바꾸려는 노력입니다. 무조건 낙관적으로 생각하라거나 비관은 안 된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인지치료는 대체로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타인의 시선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이끕니다.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마음과 생각의 습관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인지치료와 같은 심리치료를 늘 일상적으로 스스로에게 수행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철학적 사고 훈련이 스스로에게 하는 인지행동치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과 관점을 바꾸려는 노력은 철학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일상생활에서 생각을 검토하는 노력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실전편: 일상에 철학 적용하기

    저도 꼰대가 될 수밖에 없을까요?

    인간의 인식 경향성으로 보아 나이 들수록 꼰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옳다는 자기만의 우물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무엇이 사실인지를 면밀하게 따지기보다는 자기에게 편리한 것이 사실이자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즉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사람이 타당할 가능성과 타당하지 않을 가능성을 균형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타당하지 않을 가능성에 집중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마음에 들면 그가 타당할 가능성에만 집중하지요. 사람들이 꼰대가 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타당하지 않을 가능성을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심리학 개념이 있습니다. 무능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하고 유능한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보며 자책하는 것을 말합니다. 똑똑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어디서 잘못했는지를 파악할 능력이 없어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지 못해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빨리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극복해가지요. 그래서 유능한 사람이 됩니다.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되기 쉬운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권위를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 앞에서 ‘그 생각은 틀렸다’라고 지적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모두들 그냥 기가 막혀 입을 다물 뿐이죠.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다른 사람들이 별말 없으니 자기 생각이 옳은 줄 압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옆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옆사람의 말을 잘 받아들인다고 여깁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권위 떄문에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자신의 존재 방식 자체가 옆사람의 입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계속 자기 생각에 안주하다 꼰대가 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자연적 인식 경향상 자신이 타당하지 않은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나이 들수록 경험치가 높아지는 것도 꼰대가 되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할수록 자신의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서 사고하지 않게 됩니다. 힘들게 얻은 경험치가 주는 안정감에 안주하고 싶어집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섞일 기회, 대화를 가질 기회를 가지려면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게 되지 않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관심 있는 얘기, 좋아하는 얘기만 들으면서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지요. 그래서 내 말이 맞는다고 정당화하는 데 도움되는 것만 귀에 들리고 눈에 들어오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뇌는 팩트에 끌리지 않는다》라는 책도 있듯, 뇌가 끌리는 얘기에만 딸려 가면 꼰대가 됩니다. 이와 반대로 철학은 팩트를 보라고 요구하고 뇌가 끌리는 것에만 따라가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뇌가 끌리는 것에만 따라가지 않으려면 ‘내 생각이 이상한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머리가 아프지만, 이 머리 아픈 일을 지속해야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기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누군가로 하여금 자기 말에 토를 달도록 권장해야 합니다.


    결국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철학적 성찰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든 내 말이 틀릴 가능성을 말해보라고 할 수 있는지, 내 말이 틀릴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 수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 말이 틀릴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이러한 얘기 덕분에 나의 우물이 넓어질 수 있다고 환영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꼰대가 된다는 진실을 생각하시고, 이미 꼰대가 되신 분들을 너무 답답하게 여기지 마시기를 권유합니다. 너무 답답하게 여기면 더 소통하기 어려워집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는 날이 옵니다. 일단 꼰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꼰대가 된 이들을 답답해할 시간에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등 내가 꼰대가 되지 않을 노력을 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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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