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
 
지은이 : 귀스타브 르 봉 (지은이), 강주헌 (옮긴이)
출판사 : 현대지성
출판일 : 2021년 08월




  • 똑똑한 이들이 모여 왜 어리석은 선택을 내릴까요? 인간집단의 심리, 행동, 그들을 이끄는 리더십의 원리를 알아봅니다. 팬덤 정치, 온라인 여론 형성 과정, 종교와 정치의 광기 등 최근의 여러 현상에 관해 명확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군중심리


    군중의 정신구조

    군중의 일반적 특성

    ‘군중’이란 일반적으로 한자리에 모인 개개인의 집단을 의미하는데, 그 집단은 각각의 국적이나 직업, 성별과 상관없고 그들을 모이도록 한 우연한 계기와도 무관하다. 심리학적으로 ‘군중’이란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정 상황에서 형성되는 개인의 무리는 그 무리를 구성하는 개개인과 무척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의식을 지닌 개성은 사라지고 개인의 감정과 생각이 집단화되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한다. 그리고 일시적이지만 매우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 집단정신이 형성된다.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했으므로 이런 집단을 ‘조직된 군중’ 혹은 ‘심리적 군중’이라고 부르겠다. 이런 군중은 단일체를 형성하고 ‘군중의 정신을 단일화하는 심리 법칙’을 따른다.


    각자가 지닌 의식의 개성이 사라지고 감정과 생각이 일정한 방향을 향하는 현상은 한창 조직되고 있는 군중의 초기 특징이지만, 같은 장소에 수많은 개인이 동시에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외따로 떨어진 수천 명도 특정한 순간에 어떤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면 심리적 군중의 특성을 띨 수 있다.


    예컨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라, 그럴 때 단순한 계기만 있어도 그들의 행동은 즉시 군중 특유의 특성을 띤다. 대여섯 명으로 군중이 형성되는가 하면, 수백 명이 우연히 모여도 군중을 형성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한편 평소에는 눈에 띄는 무리를 형성하지 않는 국민도 특정 영향을 받으면 군중으로 돌변할 수 있다. 심리적 군중은 일단 형성되면 일시적이지만 결정적인 힘을 지닌 일반적 특성을 얻는다.


    심리적 군중에게 가장 두드러진 점은 다음과 같다.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이 누구든 간에, 즉 삶의 방식, 직업, 성격과 지능이 비슷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은 군중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일종의 집단 심리를 갖게 되다. 따라서 독립된 개인으로 있을 때 하던 방식과 완전히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지각하고 행동한다.

     

    군중은 독립된 개인보다 항상 지적으로 열등하다. 그러나 감정이나 감정이 야기하는 행동으로 볼 때,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군중은 독립된 개인보다 우등할 수도 있고 열등할 수도 있다. 군중이 어떤 암시를 받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군중을 범죄의 관점으로만 연구한 작가들은 이 점을 전혀 몰랐다.


    군중이 때로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영웅처럼 행하는경우도 그에 못지않다. 신앙이나 승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것도 군중이었고, 영광과 명예에 열광한 것도 군중이었으며, 십자군 원정 때 이교도로부터 신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혹은 1793년 조국 프랑스를 지키고자 식량이나 무기 없이 싸운 것도 군중이었다.


    군중의 감정과 도덕성

    자극의 종류에 따라 군중이 느끼는 충동은 너그럽거나 잔혹할 수 있고, 영웅적이거나 비열할 수 있다. 그러나 군중의 충동은 실로 엄청나서 개인의 이해관계나 자기보호를 생각할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군중이 받을 수 있는 자극은 무척 다양하고, 군중은 항상 자극을 따르기 때문에 몹시 변덕스럽게 보일 수 있다.


    변덕이 심한 군중을 지배하기란 무척 어렵다. 특히 그들이 공권력 일부를 손에 넣었을 때는 더더욱 어렵다. 일상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조절장치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생명력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군중은 무엇인가를 열렬히 원하지만 그 바람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요컨대 군중은 지속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처럼 바람도 끈질지게 이어가지 못한다.


    군중이 중립적이라 가정하더라도 거의 언제나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암시를 받으면 쉽게 넘어간다. 첫 암시가 돌발적으로 또렷이 주어지면 군중 모두의 뇌에 즉시 전염되어 심기고, 곧바로 방향까지 결정된다.


    암시를 받은 모든 존재에게서 확인할 수 있듯이 두뇌에 이식된 생각은 행동으로 옮아가려는 경향을 띤다. 왕궁에 불을 지르는 행동이든, 자기희생이 따르는 행동이든 군중은 똑같이 여긴다. 모든 것이 자극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독립된 개인의 경우처럼 암시된 행동과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게 막는 이성적 판단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다음은 지극히 무지한 사람으로부터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류의 개인들로 구성된 군중이 쉽게 빠지는 집단환각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 사례는 쥘리앵 펠릭스 해군 대위가 ‘해류’를 다른 책에서 인용했고, 이전에 관학잡지 <르뷔 시앙티피크>에 소개된 적도 있다.


    프리깃함 벨풀호는 함께 항해하다가 폭풍우 때문에 흩어진 순양함 르베르소호를 찾느라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태양이 작열하는 정오 무렵, 갑자기 감시병이 파손된 구명정을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감시병이 가리키는 쪽을 모든 장교와 병사들이 쳐다보았다. 그들은 분명 구명정을 밧줄로 연결해서 만든 뗏목을 보았다. 뗏목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조난 신호 깃발이 펄럭였다. 하지만 그것은 집단환각에 불과했다.


    이 사례는 앞에서 설명한 집단환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한쪽에는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군중이 있고, 반대편에는 감시병이 표류하는 구명정을 가리키며 제시한 암시가 있다. 그 암시는 장교와 병사 등 모든 목격자에게 전염된다.


    군중의 관찰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대체로 한 사람의 착각이 모두에게 전염되는 암시된 결과일 수 있다. 군중의 증언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는 걸 증명해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군중은 감정을 단순하고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결국에는 의심하거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군중의 감정은 여성들처럼 순식간에 극단을 치닫는다. 가볍게 내뱉은 의혹이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박한 증거로 돌변한다. 독립된 개인에게는 별로 힘을 얻지 못하는 반감이나 반론도 군중 속의 개인에게는 곧바로 흉포한 증오로 변한다.


    군중은 감정이 격해지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과도한 감정에만 자극을 받는다.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은 웅변가는 격정적인 단어를 무람없이 사용해야 한다. 과장하고 단언하고 반복하되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해서는 안된다. 이는 대중 집회의 웅변가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연설 기법이다. 게다가 군중은 자기 영웅도 똑같이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기를 바란다.


    군중은 단순하고 극단적인 감정만 느낀다. 그들은 자신에게 암시된 의견과 사상, 신념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고,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거나 절대적 오류로 치부한다. 이성적 추론 대신 암시를 통해 결정되는 신념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신념이 몹시 편협하고 인간의 영혼에 얼마나 포악한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독선과 편협성은 군중에게 뚜렷이 드러나는 감정이다. 군중은 이런 감정을 편하게 느끼고, 자극을 받는 순간 쉽게 받아들이며 힘들이지 않고 실행에 옮긴다. 군중은 힘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순종하지만 호의적인 사람에게는 별다른 감동을 받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호의는 유약함이 겉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군중이 온후한 지도자에게 동조한 적은 없었다.


    군중의 도덕 수준이 대체로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말해,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는 파괴적이고 야만적인 본능이 원시시대로부터 내려온 잔재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독자적으로 살면서 그런 본능을 충족하려면 위험이 따른다. 하지만 무책임한 군중의 일원이 되어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면 자유롭게 본능대로 행한다.


    군중은 살인과 방화 등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면, 헌신과 자기희생, 무사무욕 같은 고결한 행위를 독립된 개인보다 훨씬 잘 해낼 수도 있다. 특히 군중 속의 개인에게 영예와 명예, 신앙, 조국애를 내세우며 호소하면 감동한 개인은 자기 목숨을 바치기까지 한다. 프랑스 역사만 살펴봐도 십자군이나 1973년에 활약한 의용대처럼 비슷한 사례가 무수히 많다. 집단만이 그런 우대한 무사무욕과 헌신을 보인다.


    군중의 사상, 추론, 상상력

    군중에게 암시되는 사상은 어떤 것이든 간에 절대적이고 단순한 형태를 갖출 때 힘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사상은 이미지 형태로 제시된다. 그래야 군중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로 표현된 사상은 논리적 유사성이나 연속성으로 연결되지 않고 환등기 슬라이드처럼 서로 교체될 수 있다. 달리 말해 슬라이드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상자에서 어떤 것이라도 꺼내어 교체하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사상은 단순한 형태를 띠어야 군중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군중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철저한 변화를 거쳐야 한다. 특히 수준이 약간 높은 철학 사상이나 과학 사상을 군중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한 단계 한 단계 낮추려면 철저한 수정작업이 필요하다. 이 같은 작업은 군중의 범주나 군중이 속한 민족의 범주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수정은 항상 수준을 낮추고 단순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사상이 군중의 정신에 뿌리내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사상에서 벗어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사상적으로 군중은 학자나 철학자보다 항상 몇 세대씩 늦다. 오늘날 정치인들은 기본적 사상엔 오류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더는 믿지 않는 원칙에 따라 통치할 수 밖에 없다.


    군중은 이성적으로 정확히 추론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비판 정신을 갖는다거나 진위를 변별할 수 없으므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군중은 강요된 판단만 받아들일 뿐이고 토론을 거쳐서 채택된 판단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추론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렇듯 군중의 상상력도 무척 활발하고 격정적이며 주변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 혹은 사고가 군중의 머릿속에 환기한 이미지는 현실만큼이나 생생하다. 군중은 잠자는 사람과 비슷하다.


    잠자는 동안에는 이성의 활동이 잠시 정지되어 강렬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나타날 수 있지만 잠자는 동안에도 그가 깊이 생각하거나 이성적으로 추론할 능력이 없으므로 사실 같지 않은 일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사실 같지 않은 일’이 군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군중은 이미지로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지로만 감동을 받는다. 또 이미지만이 군중에게 겁을 주거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을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


    군중의 상상력에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은 하나같이 강렬하고 명확한 이미지 형태를 띤다. 달리 말해, 부수적인 해석이 필요 없는 이미지여야 한다. 덧붙이자면, 경이롭거나 신비한 이미지여야 한다. 위대한 승리라든지 크나큰 기적, 흉악한 범죄, 원대한 희망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것을 군중에게 총괄해서 소개해야지 원인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서는 안된다.



    군중의 의견과 신념

    군중의 의견과 신념에 영향을 주는 직접 요인

    군중의 상상력은 특히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이미지가 항상 주변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어와 경구를 적절히 사용하면 군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를 언제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이른 옛날 마법사들의 주문처럼 신비로운 힘을 갖는다. 단어와 경구는 군중의 머릿속에 끔찍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고 그것을 잠잠케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치적 격변이나 신념의 변화가 있고 난 뒤 군중이 어떤 단어에 담긴 이미지에 깊은 반감을 품게 되었을 때,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가장 먼저 그 단어부터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물론 이때 사물이나 사건 자체까지 건드릴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오랜 옛날부터 물려받은 정신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인두세는 토지세로, 염세는 소비세로, 상납금은 간접세와 종합세로, 장인세와 동업조합세는 사업면허세로 바꾸었다.


    경험은 군중의 정신에 진실을 확고히 심어주고, 지나치게 위험해진 환상을 걷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효과를 거두려면 많은 사람이 같은 일을 경험해야하고,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어야 한다.


    가장 중대한 경험은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20년 동안 수백만 명이 죽고 유럽 전역이 뒤흔들린 후에야 사람들은 순수이성만으로 한 사회를 철저히 쇄신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또 50년 동안 두 번의 치명적인 파멸을 경험한 후에야 독재자는 자신을 찬양하는 국민에게 큰 희생을 치르게 한다는 걸 입증했다.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경험이었지만 국민들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듯하다.


    군중은 이성적 추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생각들을 대략적으로 짝지은 결과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군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방법을 아는 연설가는 감정에 호소할 뿐 이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논리 법칙은 군중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중을 설득하려면 먼저 군중에게 자극이 될 만한 감정을 철저히 파악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는 척한 다음, 기초적인 연상 작용으로 잘 암시된 이미지를 환기하며 그들의 감정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가야 한다.


    이성으로 군중을 끌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해야 하는 걸까? 감히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인간이 이성적으로만 판단하고 행동했다면, 환상에 사로잡혀 열정적이고 대담하게 문명의 길로 인류를 끌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를 끌어가는 무의식의 산물인 환상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군중의 지도자와 그들의 설득 수단

    동물이든 인간이든 상당수의 살아 있는 존재가 모이면 그들은 본능에 따라 우두머리의 권위 아래로 들어간다. 인간 군중의 경우, 실제 우두머리는 대체로 앞장서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는 그런 위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의지를 중심으로 군중의 의견이 형성되고 하나가 된다. 지도자는 이질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군중을 조직하는 제1요인이고, 그들이 여러 파벌로 조직되도록 디딤돌을 놓는다.


    군중의 지도자는 두 부류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역동적이고 강하지만 일시적인 의지를 가진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강하면서도 지속적인 의지를 가진 부류다. 물론 두 번째 부류에 속한 지도자가 첫 번째보다 훨씬 드물다. 첫 번째 부류는 난폭하고 용감하며 대담해서 기습 공격을 주도하고, 위험을 무릅쓴 채 군중을 이끌 뿐 아니라, 신병을 영웅으로 만드는데 뛰어나다. 이런 부류의 지도자는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졌더라도 그 힘이 일시적이어서 힘을 일으킨 역동적인 상태를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두 번째 부류의 지도자, 즉 지속적인 의지를 가진 지도자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훨씬 큰 영향력을 갖는다. 이런 유형의 지도자로는 종교를 창시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예컨대 사도 바울, 마호메트, 콜럼버스가 있다. 그들이 지적인지 아니면 편협한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결국에는 세상이 그들 편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집요하고 지속적인 의지는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보기 어렵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구부러뜨릴 정도로 강력하다.


    군중을 자극해 곧바로 어떤 행동을 취하게 하려면, 예컨대 왕궁을 약탈하거나 목숨을 걸고 진지 또는 바리케이드를 지키게 하려면 신속한 암시로 군중에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 암시를 할 때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군중이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암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하고, 특히 군중을 이끄는 지도자는 내가 뒤에서 ‘위신’이라고 부르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확언과 반복, 전염을 통해 확산된 사상은 결국 ‘위신’이라는 신비한 힘을 얻어서 강력해진다.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이든 인간이든 지금까지 모든 지배자는 ‘위신’이라는 단어에 담긴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기반으로 권위를 인정받았다. 우리는 그 단어의 의미를 알지만, 단어의 쓰임이 워낙 다양해서 뜻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위신에는 감탄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이 포함될 수 있다.


    위신이 탄생하는데 많은 요인이 개입할 수 있음을 본다. 물론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성공이다. 성공한 사람과 인정받은 사상은 그 사실 자체로 더는 반론이 제기되지 않는다. 성공이 위신의 주된 토대 중 하나라는 증거는 성공의 빛이 퇴색하면 뒤이어 위신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군중에게 찬양받던 영웅도 실패하면 곧바로 야유를 받는다. 위신이 클수록 이런 반동도 더욱 크고 강렬해질 것이다.


    군중의 신념과 의견의 가변 한계

    군중의 신념과 의견은 두 부류로 뚜렷이 구분된다. 첫째 부류는 수 세기 동안 지속되고 문명 전체가 근거로 삼고 있는 원대한 신념이다. 예컨대 과거에는 봉건주의, 기독교 사상, 종교 개혁 사상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민족주의 원칙과 민주주의 사상, 사회주의 사상이 대표적이다. 둘째 부류는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의견이다. 물론 이런 의견도 각 시대에 명멸하는 보편적 이해에서 파생한다. 낭만주의, 자연주의, 신비주의 등을 탄생시킨 이론들이 여기 속한다.


    군중에게 일시적인 의견을 심기는 쉽지만 지속적인 신념을 심기는 어렵다. 또 지속적인 신념이 한번 심기면 제거하기가 몹시 어렵다. 대개는 폭력 혁명을 대가로 치러야 바꿀 수 있다. 신념이 군중의 영혼에 영향력을 거의 상실해야 혁명도 그런 힘을 발휘한다. 그때 혁명은 이미 거의 폐기되었지만 습관의 멍에 때문에 완전히 없애지 못할 것을 최종적으로 쓸어버린다. 요컨대 혁명이 시작되면 신념은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예부터 민족들은 일반적 신념을 획득하는 게 유익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신념이 사라지면 그들에게 몰락의 시간이 왔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로마인들은 로마를 광적으로 숭배했고, 그것을 신념으로 삼아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신념이 사그라졌을 때 로마도 몰락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로마 문명을 파괴한 야만인들은 공통된 신념을 획득한 후에야 어느 정도 연대하며 혼란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로운 신념이 군중의 정신에 뿌리내리면 군중의 관습과 예술과 행위가 그 영향을 받아 변한다. 신념이 군중에게 미치는 지배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행동가들은 그 신념을 실천하려는 생각에 여념이 없고, 입법자들은 그것을 적용하려고만 하며, 철학자와 예술가와 작가는 그것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는데만 열중한다. 


    신념과 관습은 우리 삶의 지극히 사소한 행동까지 지배하기 때문에 독립심이 강한 사람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우리 정신에 무의식적으로 발휘되는 지배력이야말로 진정한 폭정이다. 그런 폭정에는 맞서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티베리우스, 칭기즈 칸, 나폴레옹도 분명 무서운 폭군이었지만, 모세나 석가모니, 예수, 마호메트, 루터 역시 무덤 속에 있으면서도 인간의 정신을 훨씬 더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음모는 폭군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확고히 정립된 신념에 대해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변하지 않는 신념의 힘을 살펴보았다. 그런 신념 위에는 끊임없이 명멸하는 의견과 사상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층이 있다. 어떤 것은 하루 만에 사라지고,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해도 한 세대를 넘기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미 지적했듯이 이런 의견이 겪는 변화는 실제적이라기보다 피상적인 경우가 많고 언제나 민족의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


    오늘날 군중의 의견은 과거 어느 때보다 유동적이고 변덕스러운 것 같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과거의 신념이 점점 더 영향력을 상실하다 보니 옛날만큼 일시적 의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이에 따라 방향을 제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적 신념이 약회되면 과거도, 미래도 없는 개별 의견이 무수히 생겨난다. 둘째, 군중의 힘은 점점 더 커지는 반면 그 힘을 억제하는 수단은 점점 줄어들어 군중 가운데서 보이던 사상의 유동성이 아무런 제약 없이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최근 여론 매체가 급속히 증가해서 군중 앞에 상반된 의견들을 끊임없이 내놓기 때문이다. 각각의 의견이 야기하는 암시는 다른 암시 때문에 곧바로 소멸된다. 그 결과 어떤 의견도 확산되지 못하고 금세 사그라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다시 말해, 어떤 의견이 충분히 퍼져나가 일반화되기 전에 소멸한다.



    3부 군중의 분류와 다양한 종류

    범죄자 군중

    군중은 법적으로 범죄자일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일반적인 이유는 강력한 암시에 있다. 바스티유 감옥의 지휘관 드 로네가 살해당한 일을 정형적인 예로 인용할 수 있다 바스티유가 점령된 후 지휘관은 흥분한 군중에 에워싸여 무자비하게 폭행당했다. 목매달아 죽이자, 목을 베자, 말꼬리에 매달자는 주장이 빗발쳤다. 그는 몸부림치며 저항하다가 실수로 누군가를 발로 찼다.


    발길질을 당한 사람이 그의 목을 베자고 제안하고 군중은 이에 환호했다. 그는 실직한 요리사였고 바스티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려고 그것에 간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는 전체 의견이 그랬기 때문에 그 행위를 애국이라 판단했고, 자기 손으로 이 괴물을 죽이면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결국 드 로네의 목을 자르는데 성공했다.


    학살에 가담한 군중은 대략 300명이었고 이질적인 군중의 완벽한 전형이었다. 극소수의 건달을 제외하면 가게 점원, 구두 수선공, 자물쇠 제조공, 이발사, 석공, 갖가지 직업에 종사하던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암시에 걸린 그들은 앞서 언급한 요리사처럼 자신들이 애국을 한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판사와 사형집행인 역할을 동시에 했지만, 자신들이 범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유권자 군중

    유권자 군중, 즉 공직자를 선출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집단은 이질적 군중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명확히 규정된 역할, 즉 여러 후보 중에서 선택하는 역할만 행사하기 때문에 유권자 군중에게서는 앞서 언급한 특성 중 일부만 관찰할 수 있다. 유권자 군중은 미약한 이성적 추론 능력, 비판 정신 결여, 과민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성향이 있다. 그들의 결정에서 지도자들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들의 결정에서 지도자들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앞에서 열거한 요인들, 즉 확언과 반복, 위신, 전염 같은 요인도 찾을 수 있다.


    이성적 추론이 유권자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선거 관련 집회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나면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을 것이다. 선거 관련 집회에서는 확언과 비방, 때로는 주먹다짐까지 오가지만 이성적 대화는 전혀 없다. 


    제한적으로든 보편적으로든, 공화국과 군주국 어느 체제에서 실시되든, 프랑스와 벨기에,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어느 국가에서 실시되든 군중의 투표는 엇비슷하다. 군중 투표에서 해당 민족의 무의식적인 열망과 욕구가 드러난다. 나라마다 당선자들의 평균은 그 민족의 평균적인 정신 구조를 나타낸다. 세대가 바뀌어도 이 같은 사실은 거의 변함없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민족이란 근본 개념을 맞닥뜨리게 된다. 또한 민족의 중요성에서 파생되는 개념, 즉 제도와 통치 방식이 국민의 삶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개념도 다시 확인한다. 한 국가의 국민은 자기가 속한 민족의 고유한 정신에 큰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조상 대대로 내려오며 쌓인 잔재들의 합이 곧 민족정신이므로 그 잔재들이 국민을 이끌고 간다. 민족 그리고 일상에서 매일 해야 하는 일, 이런 것들이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는 불가사의한 지배자들이다.


    의회군중

    의회는 익명성을 띠지 않는 이질적 군중의 표본이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의원을 선출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의회 자체의 특성은 매우 유사하다. 민족의 영향으로 그 특성이 옅어지거나 과장되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 전혀 다른 국가의 의회는 토론과 표결 방식이 상당히 비슷하며 자국 정부에 똑같은 어려움을 안겨준다. 게다가 의회제도는 문명화된 모든 민족이 꿈꾸는 이상이다.


    의회제도에는 심리학적으로는 틀렸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생각, 즉 어떤 문제에 대해 다수가 소수보다 더 현명하고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하지만 의회에서도 군중의 일반적인 특성 등 자극에 쉽게 흥분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성향, 피암시성, 과장된 감정, 지도자의 지배적 역할 등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의회는 일정한 순간에만 군중이 된다. 의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많은 경우 본래의 독자성을 유지한다, 그래서 의회는 고도로 전문적인 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 법을 만드는 실제 주역은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법안을 준비한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엄격히 말해, 표결된 법은 개인의 작품이지 의회의 작품이 아니다.


    당연히 이런 법이 가장 훌륭하다. 그런데 바람직하지 않은 일련의 수정이 거듭되면서 법안이 집단의 작품으로 변질되면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한다. 군중의 작품은 언제 어디서나 독립된 개인의 작품보다 열등하다. 혼란스럽거나 미숙한 대책들로부터 의회를 구해내는 것은 전문가들이다. 따라서 전문가는 일시적인 지도자다. 의회는 전문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지만 전문가는 의회에 영향을 미친다.


    운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긴 해도 의회를 의회는 여러 국가가 지금까지 찾아낸 최적의 정치 체제이며 개인의 폭정이란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적의 제도다.


    우리 시대에 앞서 존재한 문명들의 흥망성쇠를 간략히 조사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런 문명의 여명기에는 다양한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이주와 침략, 정복을 통해 우연히 한곳에 모인다. 반쯤 공인된 지배자의 법이 혈통이 다르고 언어와 믿음도 다른 그들을 하나로 이어준 끈이었다. 이처럼 이질적이고 어수선한 집합체에서 군중심리의 특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일시적인 결집력, 영웅적 행동, 유약함, 충동성과 폭력성 등을 보여주지만 어떤 것도 지속되지 않는다. 그들은 야만인과 다를 바 없다.


    민족은 줄기차게 투쟁을 되풀이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 어떤 이상을 획득한 뒤에야 야만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로마 숭배든, 아테네의 힘이든, 알라의 승리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형성 과정에 있는 민족의 모든 구성원에게 감정과 생각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한 것을 이상으로 제시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단계에서 고유한 제도와 신념, 예술을 지닌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


    민족은 꿈과 이상을 추구하며, 문명에 찬란함과 활력과 위대함을 부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차근차근 갖추어갈 것이다. 물론 민족은 어떤 시기에 이르면 다시 군중이 되겠지만, 그때 군중이 가진 변덕스러운 특성의 이면에는 견고한 기반, 즉 민족의 영혼이 있기에 동요하는 폭을 좁히고 우연을 억제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창조를 끝낸 뒤 파괴를 시작한다.


    과거부터 지녀온 이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민족은 결국 거유한 정신 구조마저 완전히 잃는다. 이때 민족은 무수히 많은 독립된 개인이 되고, 원래 상태였던 군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그 민족은 일관성도 없고 내일도 없고, 그야말로 덧없는 특성을 띤다. 문명은 이제 더는 안정되지 않고 모든 것이 우연에 맡겨진다. 평민이 지배하고 야만의 시대가 시작된다.


    문명은 오랜 과거가 만들어낸 외형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여전히 눈부시게 보일 수 있지만, 더는 떠받쳐주는 게 없어서 폭우가 몰아치면 곧바로 무너져버릴 낡은 건물에 불과하다. 어떠한 꿈을 추구하며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의 단계에 올라섰다가 그 꿈이 힘을 잃자마자 쇠락하고 무너져 내리는 현상, 이런 것이야말로 민족의 흥망성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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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