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사상가이자 작가의 한 사람으로 지금도 삶에 대한 지침, 성찰, 자아, 그리고 주변 세계와의 조화를 추구할 것을 세계인에게 권장하고 있다. 초월주의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던 에머슨은 개인의 무한한 잠재력과 자연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에세이, 강연, 시로 알려 왔다. 자립심과 개성, 자연, 그리고 사회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해야 개인의 삶과 우리 사회가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메시지이다.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하는 문명, 그에 따른 사회와 문화의 변화 속에 우리의 어려움과 도전이 커지는 가운데, 에머슨의 지혜로 자신을 성찰하고 하루하루 마주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저자 석필
언론사에서 잠시 근무한 뒤, 책을 쓰고 번역하는 일을 해왔다. 미루기로 점철된 지난날이 한스럽기만 하다. 뒤늦게나마 미루는 버릇을 차버리고 여생을 열심히 살아볼 작정이다. 책상에 몇 시간을 붙어 앉아 일하니 정신이 건강해지는 것 같고 두려움도 가셨다.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에너지를 일에 다 쏟게 되기를 소망한다. 긍정적 사고에 빠져 50년 넘게 살아온 결과, 긍정적 사고가 부정적 사고보다 부작용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면이라는 생각을 정리해서 최근에 《긍정아, 너를 믿지 못하겠다》, 《쫄지 마, 더 잘할 수 있어》, 《하드워킹의 기적》을 펴냈다. 저서와 번역서, 대필 작품을 포함 100여 권을 펴냈다.
■ 차례
편역자의 말
제1부. 에머슨의 생애와 작품
영혼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한 ‘콩코드의 현자’
01. 어린 시절, 가족, 교육
02. 젊은 시절
03. 문학 경력과 초월주의
04. 폴렌스비 호숫가의 철학자 캠프
05. 남북전쟁 시기
06. 말년과 죽음
07. 생활 방식과 믿음
08. 인종과 노예제도
09. 유산과 평가
10. 주요 작품
제2부. 에머슨이 남긴 지혜
1장. 자신을 믿어라ㆍ56
2장. 자연의 부름ㆍ72
3장. 비상하는 길ㆍ96
4장. 가치 있는 삶ㆍ118
5장. 사회와 인간관계ㆍ142
6장. 성찰의 길ㆍ174
7장. 상상력과 창의성ㆍ204
랠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사상가이자 작가의 한 사람으로 지금도 삶에 대한 지침, 성찰, 자아, 그리고 주변 세계와의 조화를 추구할 것을 세계인에게 권장하고 있다. 이 책은 평생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에머슨의 생애과 인생 명언을 총정리했다.
에머슨이 바라본 세상
편역자의 말
랠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으로, 지금도 전 세계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자기 성찰과 자아를 중요하게 여기며, 주변 세계와 조화로운 삶을 추구할 것을 세계인에게 권장한다.
초월주의 운동의 중심이었던 에머슨은 개인의 무한한 잠재력과 자연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에세이, 강연, 시로 알려 왔다. 자립심과 개성, 자연, 그리고 사회와의 조화로운 관계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해야 개인의 삶과 우리 사회가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메시지이다.
에머슨은 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골라 번역해 소개한다.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하는 문명, 그에 따른 사회와 문화의 변화 속에서 우리의 어려움과 도전이 커지는 가운데, 에머슨의 지혜로 자신을 성찰하고 하루하루 마주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에머슨의 생애와 작품 세계
에머슨의 중요한 에세이 대부분은 먼저 강연을 하고, 그 내용을 수정해 쓴 것이다. 에세이집 『에세이: 첫 번째 시리즈』와 그다음에 발표한 『에세이: 두 번째 시리즈』는 그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유명한 에세이인 자기 신뢰, 초월적 영혼, 동심원들, 시인, 경험 등도 이 책들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필력은 이러한 에세이를 쓴 1830년대 중반부터 1840년대 중반까지 가장 왕성했다.
에머슨은 1833년 10월 9일 미국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매사추세츠주 뉴턴에서 살았다. 1834년 10월에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로 이사해 나중에 ‘올드 맨스’라 불리게 되는 저택에서 의부 조부인 에즈라 리플리 박사와 함께 살았다.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제공하던 라이시움 운동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에머슨은 강연자로서 경력을 쌓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1833년 11월 5일, 그는 보스턴에서 자연사의 용도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파리에서의 경험을 확장 설명한 이 강연은 그가 앞으로 진행할 약 1,500회 강연의 시작이었다. 이 강연에서 그는 나중에 첫 번째 에세이인 자연에서 발전시키게 될 중요한 신념과 아이디어의 일부를 제시했다.
“자연은 언어와 같고, 우리가 배우는 새로운 사실은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분해되어 사전 속에 처박힌 죽은 언어가 아니라, 깊은 의미와 보편적인 메시지로 결합된 언어이다. 내가 이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것은 단지 새로운 규칙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언어로 쓰인 방대한 책을 읽기 위해서이다.”
1836년 9월 8일, 에머슨은 자연을 출판하기 하루 전, 프레더릭 헨리 헨지, 조지 퍼트남, 조지 리플리와 만나 뜻이 맞는 다른 지식인들과의 주기적인 모임을 계획했다. 이것이 초월주의 클럽 활동의 시작으로 이 클럽은 초월주의 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에머슨은 특정 철학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자아를 찾는 것, 자유로워지는 것,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의 중요성, 그리고 우리의 내면과 자연의 관계 탐구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썼다. 에머슨에게 ‘자연’은 자연주의적이기보다 철학적이었다.
“우주는 자연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말처럼 에머슨은 신이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는 견해를 거부하고 세상을 범신론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미국 낭만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여러 사상가, 작가, 시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는 모든 강의를 통해 개인의 무한성이라는 한 가지 교리를 가르친다”고 썼다. 에머슨은 같은 초월주의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멘토이자 친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에머슨은 노예제도를 완강히 반대했지만,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이 주제로 강연하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나 1837년 11월 초부터, 즉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전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강연했다. 처음에는 에머슨의 친구들과 가족 중 일부가 에머슨보다 노예 폐지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다가 1844년부터 에머슨이 노예제도를 매우 강력하게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주제로 여러 차례 강연했으며, 콩코드를 방문한 존 브라운을 자기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대륙 횡단 철도가 완공된 지 2년 만인 1871년 봄, 에머슨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그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브리검 영을 비롯한 여러 중요 인물을 만났다.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에서는 당시 젊고 아직 유명하지 않았던 존 뮤어를 만났다. 뮤어에게는 에머슨과의 만남이 자신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당시 에머슨의 종교적 견해는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모든 것이 신과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모든 것이 신성하다고 믿었다. 비평가들은 에머슨이 신들 가운데 핵심적인 신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헨리 웨어 주니어는 에머슨이 ‘우주의 아버지’를 제거해 우리를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처럼’ 만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인종에 대한 에머슨의 생각은 민족주의와 민족 우월주의라는 그의 신념과 얽혀 있었는데, 이는 당시 미국에 널리 퍼져 있던 견해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는 당대의 인종 이론과 자연과학 이론을 피력함으로써 인종 발달 이론을 지지했다. 그 당시 정치적 다툼과 다른 인종의 노예화는 피할 수 없는 인종 갈등이며,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미국 연방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갈등이 변증법적 변화 과정에 필수적이며 국가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에머슨은 이후의 저술에서 결국 다양한 유럽 인종이 미국 내에서 혼합됨으로써 미국의 패권에 기여할 수 있는 우월한 혼혈 인종이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펼쳤다.
에머슨의 유산은 그의 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다양한 사상가와 작가에게 꾸준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월트 휘트먼,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같은 동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프리드리히 니체,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 같은 저명한 인물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월트 휘트먼, 헨리 데이비드 소로, 윌리엄 제임스 등은 에머슨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허먼 멜빌, 너새니얼 호손, 헨리 제임스는 에머슨에 비판적이지만, 그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T. S. 엘리엇은 에머슨의 에세이를 부담스러워했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지 말고 당신 자신에 충실하라. 당신이 평생 키워 온 재능은 늘 온전하고 완전하게 공유할 수 있는 바로 당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재능을 사용하려고 하면 절반만 소유한 것 같아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만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기 전까지는 누구도 당신을 알 수 없다. 셰익스피어, 프랭클린, 워싱턴, 베이컨, 뉴턴을 누가 가르칠 수 있었을까? 위대한 인물은 모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다.
무엇을 하든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길을 결정하든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항상 있기 마련이다. 비판자의 말이 옳다고 믿고 싶게 만드는 어려움은 항상 존재한다. 행동 방침을 세우고 끝까지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군인에게 필요한 것과 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승리해야 하지만, 그 승리를 위해서는 용감한 남성과 여성이 필요하다.
자연은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데, 이는 사람들이 시인도 동시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진실과 예술성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떨어져 있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작품에 끌릴 것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는다. 이는 모든 사람이 진실에 의존하고 자신을 표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든, 예술이든, 탐욕이든, 정치이든, 일이든, 놀이이든, 우리는 모두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공유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은 절반만 완성된 존재이며, 나머지 절반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세상의 전반적인 아름다움을 얼마나 잘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인, 화가, 조각가, 음악가, 건축가를 포함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이 아름다움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들의 창작 열정은 이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예술은 인간의 창의성을 통해 걸러진 자연이다.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감상하는 누군가에 의해 재구성되고 표현되는 방식이다.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실제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어떤 일을 해 본 사람은 두려움 없이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말을 잘 아는 기수는 말이 점프를 좋아하더라도 안전하게 탈 수 있다. 경험이 풍부한 군인은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기 때문에 피할 수 있다. 단순한 사명감보다 경험이 더 나은 군인을 만든다. 위험에 익숙해지는 것이 위험을 더 잘 아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지레짐작으로 겁먹지 않는다. 또한 전사하는 모든 병사는 적군에게 그의 몸무게만큼 납을 소모하게 만든다는 삭스 원수(Marshal Saxe)의 룰을 이해하게 된다.
자연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힘은 인간의 의지이다. 많은 사람은 의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약하고 종속적인 것처럼 보이며, 이로 인해 그들은 영웅과 종교를 원한다. 올바른 길은 하나뿐으로, 진정한 영웅은 이 길을 명확하게 보고 일념으로 추구하며, 이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에머슨이 남긴 지혜
하늘 아래 어린 학생에게는 그와 세상이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는 마치 자신이 나뭇잎이고 세상이 꽃인 것처럼 모든 것과의 연결성을 느낀다. 그는 이 근원이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인지 궁금해한다. 이런 생각이 너무 대담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자신의 영혼을 소중히 여길 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더 많은 것을 배우기를 고대할 것이다. 그는 자연과 영혼이 서로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법칙은 그 자신의 마음과 같다. 자연은 그에게 그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가 자연을 덜 알수록 그는 자신을 덜 알게 된다. 결국 “너 자신을 알라”는 옛 충고와 “자연을 연구하라”는 새로운 충고는 같은 말이다.
사람은 자연과 연결되는 중심으로서, 액체든 고체든 유형이든 원소든 모든 것과의 연결을 확장한다. 지구가 자전하고 모든 흙과 바위 조각이 정오가 되면 태양 바로 밑으로 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모든 부분, 모든 행동, 모든 화학 물질, 모든 결정, 모든 먼지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모든 것은 연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운(運)에만 의존하지 마라. 많은 사람은 운에 기대어 큰 위험을 감수하며 엄청난 성공을 바라거나 실패를 두려워한다. 대신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 즉 당신 자신의 행동과 노력에 집중하라. 당신은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성공을 통제할 수 있고, 운의 부침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정치적 승리, 임대료 상승, 아픈 사람의 회복, 부재중인 친구의 귀환, 또는 다른 유리한 사건 등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고, 좋은 날이 당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믿지 마라. 당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다. 당신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원칙의 승리뿐이다.
세상의 가식을 뚫고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다. 오해, 낡은 전통, 큰 실수는 당신 자신이 용인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그것들을 거짓으로 인식하면 이미 문제를 극복한 것이다.
자기 신뢰는 영웅주의의 본질이다. 그것은 전쟁 중인 영혼의 상태이며, 그 궁극적인 목표는 거짓과 잘못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자 악의 세력에 의해 가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견디는 힘이다. 이것은 항상 진실을 말하고 공경하며, 친절하고 환영하며, 자제력이 있고, 속이 좁음과 업신여김당하는 것을 경멸한다. 계속해 나아가고 두려움이 없으며 지치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일상의 사소함에서 유머를 찾는다.
친구는 내가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앞에서 나는 내 생각을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이 절대 벗어던지지 않는 가장 밑바닥에 깔린 위선, 에의, 사려 깊음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하나의 화학 원자가 다른 원자와 만나는 단순함과 온전함으로 대할 수 있는, 너무나 진실하고 평등한 사람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우정은 충동적인 행동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다. 모든 좋은 것의 핵심인 사랑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헌신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 친구를 유치한 장난이 아닌, 진지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는 친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가 가진 인격의 힘을 믿어야 한다.
시의 본질은 언제나 형언할 수 없고, 언제나 새로우며, 언제나 놀랍다. 미묘한 영향과 시대를 초월한 본질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하는 말의 깊이를 의식하지 않은 채 순수하게, 숨을 쉬듯이 쉽게 심오한 문장을 내뱉는다. 시의 마법은 중력처럼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모든 것은 전환, 전이, 변형을 가르친다. 인간의 힘은 창조가 아니라 전이에 있고, 인간의 운명은 장수가 아니라 이동에 있다. 우리는 잠수했다가 새로운 장소에 다시 나타난다.
삶은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의 과정이다.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도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만 진정한 만족이 있을 수 있다.
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힘 때문에 개인의 욕망은 압도되고, 우리의 시도나 결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독특한 재능은 당신을 통해, 나의 재능은 나를 통해 드러난다.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통제 없이 드러나게 된다. 아이디어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은 경로를 통해 머릿속에 들어오고, 의도적으로 열지 않은 경로를 통해 떠난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모든 책은 이전에 나온 것을 인용하고, 모든 집은 숲, 광산, 채석장에서 얻은 재료로 지어져 본질에서 대지를 인용하며, 모든 사람은 모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성을 지니고 있어 우리 모두는 혈통의 살아 있는 인용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발전해 나가면서 내일 어떻게 느낄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일상과 기본적인 행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만, 진정으로 큰 변화와 우리 영혼의 전반적인 방향은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인생의 이러한 주요한 측면은 신이 감추고 있어서 예측할 수 없다. 진리가 신성하고 유익하다는 것은 알지만, 진리가 나에게 정확히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경험해야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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