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이 드는가?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든가? 경제적 안정을 어느 정도 얻었어도 공허함과 권태감이 생겨 방황하는가? 때때로 감정의 격동이 심해지고 우울해지는가? 이런 마음의 위기로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래서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기가 어렵다면 이 책을 읽자. 이 책은 대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행복과 인생의 본질, 인간관계의 본질, 그리고 학문과 독서와 독자적 사고의 본질 등에 대한 직설적인 조언을 담은 인생 지침서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에서 인생은 고통 그 자체지만 이 고통이 살아갈 힘을 준다고, 부와 명예는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남에게 보여주고 평가받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덜 불행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라고, 마음의 위기는 부와 명예가 아닌 내면의 풍요로 극복된다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기기에 인간은 고독해야 한다고, 다독보다는 독창적 사고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새 책이 아닌 과거의 위대한 고전부터 읽으라고 전한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현명하고 솔직한 직언으로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지친 현대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삶을 온전히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독일의 철학자. 1788년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뷰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단치히가 프로이센에 합병되자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상인 양성기관인 룽게 박사의 사립학교에 입학해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상인 실습을 중단한 후에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하지만 1년도 못가 김나지움을 자퇴한 후, 1809년 괴팅겐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했다. 한 학기 동안 의학을 공부했지만 철학에 더 흥미를 느꼈고, 결국 쇼펜하우어는 제대로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곤 1811년 가을에 베를린대학교(현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로 전학했다.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첫 저서이자 일생의 역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 저서로는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소품과 어록』 『시각과 색채에 관하여』『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등이 있다.
■ 역자 이상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 아시아학부에서 번역학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데미안』 『오늘의 지구를 공개합니다』 『나, 버지니아 울프』 『여자가 되자!』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 『파란 집의 수상한 이웃들』 등 다수가 있다.
■ 차례
엮은이의 말 _ 성찰이 깊어지고 지혜가 생기다!
옮긴이의 말 _ 누구보다 냉철하고 그 누구보다 현대적인!
1부 행복론 _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1장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하여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세 가지 인생 자산│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다│우리 개개인은 오직 자신의 의식 안에서만 살아간다│내 의식의 수준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행복의 범위는 미리 정해진 그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내면이 풍요롭다면 운명에 많은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다│사회적 지위나 부유함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안의 장점들│온전한 고독 속에 있더라도 자기 생각에서 즐거움을 얻자 │행복의 가장 첫 번째 가치는 우리 그 자체인 인격이다│우리에게 주어진 인격을 가능한 한 유리하게 이용하자│부를 얻으려 노력하기보다는 건강을 유지하고 능력을 키워라│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과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의 차이│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 행복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다│재산과 평판은 서로 영향을 주고 돕는 관계다
2장 인간을 이루는 것에 대하여
인격 외의 모든 다른 것들은 행복과 만족에 간접적일 뿐이다│그가 행복한지 알고 싶다면 그가 밝은 사람인지를 보면 된다│밝음이 활짝 꽃 피려면 건강과 움직임이 필수다│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건강이 있어야만 그 뒤에 다른 모든 것들이 있다│열에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몹시 기뻐하고 스스로 격려하자│기쁨의 근원을 내부에서 찾아야 더욱더 행복한 존재가 된다│자신의 내면에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자│지적인 생활이 한 인간을 많은 것으로부터 구해준다│인생의 기쁨을 바깥에서 찾는다면 그 행복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3장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하여
부귀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고, 만족시키기가 굉장히 어렵다│소유에 대한 만족감은 상대적인 양에 달려 있다│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어도 위로를 받지 못하는 이유│부는 바닷물과도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마르다│영원한 고통도 없고, 영원한 기쁨도 없다
4장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에 대하여
타인의 견해 그 자체는 행복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나 스스로가 부여하는 가치와 단순히 다른 이의 눈에 비치는 것│타인의 의견 속에서 살지 말고 자신의 의견 속에서 살자│남들이 뭐라고 하는지 신경 쓰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다른 사람의 의견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말자│남의 의견에 대한 관심이 걱정과 두려움을 만든다│우리의 인생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하자│허영심은 수다스럽게 만들지만 자존감은 과묵하게 만든다│좋은 평판을 듣는 것보다 용기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건 없다│일시적인 명성, 거짓된 명성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명성 그 자체가 아니라 명성을 얻는 것이 가치 있다│나의 방식으로 열정을 다했을 때 사후의 명성을 얻는다
5장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자신이 누린 기쁨보다는 자신이 피한 재앙에 주목하라│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덜 불행하게 사는 것이다│인생의 기쁨을 좇기보다는 재앙을 피해야 한다│행복을 너무 넓은 범위 위에 세우면 그 행복은 무너지기 쉽다│현재만이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다│미래의 재앙 중 다가올 것이 아주 확실한 것만 걱정하라│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일상의 모든 가혹한 현재를 소중히 여겨라│무료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러 관계를 최대한 단순화하라│큰 세상, 호화로운 삶보다 행복에 이르는 나쁜 길은 더 없다│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자극으로 공허를 이기면 불행해진다│사리 분별 있게 행동하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쉬워진다│고독에는 많은 장점 외에도 단점이 있지만 아주 적은 부분이다│비록 그들 사이에 있지만 완전히 그들과 함께 있지 않는다│남이 행복하다고 괴로워하는 자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어떤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충분히 반복해서 생각하라│이미 일어나버린 불행한 사건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마라│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모든 것에는 상상력을 억제해야만 한다│‘이것이 내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이렇게 자신에게 자주 묻자│유리한 가능성만을 추측해 현재의 우울함을 밝히려 하지 마라│생각의 서랍에서 하나를 열 때는 다른 것들은 모두 닫아두자│외부의 강제가 오기 전에 자기 강제로 그것을 방지하자│많은 불행은 모든 이에게 닥치니 단념하고 견뎌내야 한다│무언가를 행하고 만들고 배우면 끔찍한 무료함에 빠지지 않는다│삶의 무수한 사건들은 만화경의 그림과 비슷하다│시간에 이자를 빚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갑작스러운 기쁨이나 슬픔에도 담담하게 대하며 자신을 찾자│어리석게 행동하지 말고 현명하게 심사숙고하라│운명의 시련과 재난에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
6장 타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돌멩이를 내가 바꾸지 못하듯 나는 그들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자신의 지성의 척도만큼만 다른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한다│다른 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인지, 존경을 받을 것인지 택일하라│그들은 자신의 자아만 중요하지, 다른 것은 소중하지 않다│어리석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인내하라│상대를 너무 너그럽게 대하거나 다정하게만 대해서는 안 된다│그의 잘못을 용서하고 잊는다면 그는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른다│다른 사람을 내 행동의 모범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남의 의견에 반박하지 말고, 남의 잘못을 고치는 말은 삼가자│그가 내 판단을 믿게 만들려면 흥분하지 말고 냉정하게 말하라│너무나 적절한 이유가 있더라도 자화자찬에 빠져서는 안 된다│상대의 말을 믿는 척해야 할 때와 믿지 않는 척해야 할 때│각각의 사람을 대하는 절차를 기록하고 기억하라│행동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분노나 증오를 보이지 마라│격한 어조로 말하지 말고, 타인의 이해력에 맡겨라
7장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하여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음을 깨닫는 인생 후반기│인생의 계절 중 가을이 되면 하루가 짧아지지만 더 활기차다│오래 살수록 비례적으로 우리의 추억이 짧아지는 이유│젊을 땐 자신 앞의 여생이 왜 무한한 듯 길어 보일까?│서른여섯 살까지는 활력의 이자로 살아가는 우리│나이가 들수록 삶을 덜 의식적으로 살아간다│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깨닫는다│열정이 행복을 가져올 수 없기에 노년기의 삶은 슬프지 않다│노년기의 평정심이야말로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2부 인생론 _ 온전한 삶을 위한 아포리즘
1장 죽음에 의해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죽음으로 전환하는 순간을 굳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시간은 우리의 인식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인간은 생명을 가진 무가 아닌 그 어떤 것이다│자신의 내적 존재의 영원함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는 방법│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죽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이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다│과거의 종족이 죽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2장 생존의 허망함에 대하여
현실에서는 하찮은 현재라도 가장 중요했던 과거보다 우월하다│매일 저녁이 되면 우리는 하루치만큼 더 가난해진다│우리가 항상 추구하는 안정과 행복을 얻을 가능성은 없다│삶에 대한 의지의 부정이 생존으로 가는 길을 연다│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가 깨닫게 되는 사실│인생의 과제는 생계를 해결해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다│욕구를 달성하면 고통이 없어지지만 곧 권태감에 사로잡힌다
3장 세상의 고뇌에 대하여
예외인 듯 보이지만 사실 불행은 일반적으로 규칙이다│우리를 괴롭히는 사소한 일만 생각하게 되는 이유│재난이라는 것은 소극적이지 않고 적극적인 것이다│우리 개개인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일, 고난, 노력, 고통은 인간이 평생 가지고 갈 운명이다│얼마나 고통이 없었는가가 인간에게 있어 행복의 척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잘 살기를 바란다│“나는 인생을 견뎌냈다”라는 말이 아주 멋진 표현인 이유│이 세상을 고행의 장소로 보는 데 익숙해지자
4장 박식함과 학자에 대하여
돈을 벌고자 가르치는 교사, 지위를 얻고자 배우는 학생│저렇게나 읽은 책이 많으면서도 생각은 그렇지를 못하다니!│대부분의 책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지루하기만 한 이유│위대한 일을 이루어내려면 학문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5장 독자적 사고에 대하여
사고의 능력이 있는 학자는 학자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너무 많은 독서는 독자적 사고력을 갖지 못하게 한다│그저 책만 많이 읽은 사람과 세상이라는 책을 읽는 사람│독서를 통해 얻은 타인의 생각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생각의 샘이 말라버렸을 때만 독서를 해야 한다│독자적인 생각으로 알아낸 것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사상가와 단순한 학자의 차이는 독자적인 인식을 하느냐다│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른 사람의 정신에서 싹튼 것이다│평생을 독서하며 보낸 사람과 평생을 생각하며 보낸 사람│책을 읽느라 현실 세계의 모습을 완전히 외면해선 안 된다│단순한 경험 역시 독서처럼 생각을 대신하지는 못한다│독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군주와도 같다│내게 부족한 통찰력을 남의 것을 동원해 메꾸지 마라│인간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만 생각하는 존재로 부를 수 있다
6장 독서와 책에 대하여
품위 없는 무지한 부자는 마치 짐승과도 같다│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잃게 만드는 독서의 폐해를 조심하라│선천적인 재능이 없다면 독서를 해도 천박한 모방자가 된다│굳은 화석이 되어버린 도서관의 위대한 책들│두꺼운 도서 목록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이유│우리의 독서법에서는 읽지 않는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그저 새로 출판된 책만 읽는 현대의 멍청한 독자들│위대한 정신의 소유자가 쓴 책을 책꽂이에 방치하면 안 된다│상당히 드문 참된 저작물만이 영원한 저서가 된다│책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과 책을 구입하는 것을 혼동하지 마라│중요한 책은 그것이 무엇이든 곧바로 두 번 읽는 것이 좋다│옛 고전을 읽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문학과 예술의 역사는 모두 즐겁고 명랑하다
7장 교육에 대하여
자연스러운 교육과 인위적인 교육의 차이│직관이 늘 개념보다 앞서게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서둘러 책을 쥐여주기보다는 현실세계에 대해 먼저 알려주라│유년기와 청년기에는 이런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각 개개인이 지닌 능력은 인식의 성숙과 전혀 상관이 없다
8장 인생의 본질을 들려주는 비유와 우화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오목거울의 비유│아름답고 숭고한 땅과 비옥하고 기름진 땅의 차이│다른 동물들은 인간을 꺼리지만 파리는 인간의 코 위에 앉는다│천문학자와도 같은 사람과 철학자와도 같은 사람의 차이│가시가 없는 장미는 없지만, 장미가 없는 가시는 많다│좋을 때뿐 아니라 나쁠 때도 전나무는 우리와 함께 견딘다│나는 겨울이 와도 지금 그대로의 모습일 거야!│그 나무는 다른 식물들과는 달리 결코 죽지 않는다│나는 남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꽃을 피우는 거야!│나는 태양이기 때문에 떠오를 뿐, 나를 볼 수 있는 자는 나를 보아라!│참고 견뎌라. 그런 인내심이 너의 영광과 명성을 얻는 조건이다!│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은 땅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걸 본다│한 인간의 정신적인 위대함은 멀어질수록 더 커진다│모든 사물을 밝고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서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라
쇼펜하우어의 행복과 인생의 본질, 인간관계의 본질, 그리고 학문과 독서와 독자적 사고의 본질 등에 대한 직설적인 조언을 담은 인생 지침서. 현명하고 솔직한 직언으로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지친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을 온전히 살아갈 힘을 드립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
행복론 _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하여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세 가지 인생 자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 생활의 자산을 세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외적인 것, 영적인 것, 육체적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3이라는 숫자만을 가져와,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세 가지 기본 인생 자산에 기인한 것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범주는 ‘인간을 이루는 것’이다.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인격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예지와 그 함양이 포함된다. 두 번째 범주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재산과 소유물을 의미한다. 세 번째 범주는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즉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즉 남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의 견해를 말하는 그것은 명예, 지위, 명성으로 나누어진다.
우리 개개인은 오직 자신의 의식 안에서만 살아간다
개개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각각의 관점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어서 생각의 차이에 따른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세상은 빈곤하고 진부하고 하찮은 곳이거나 혹은 풍요롭고 재미있으며 또 값진 곳이기도 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들은 남의 인생에 일어난 어떤 흥미진진한 사건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그러한 사건들에 중요성을 부여한 사람들의 이해력과 그들이 가진 표현력을 부러워해야만 하는 것이다. 같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재기가 넘치는 머리는 그것을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표현할 것이지만, 반면에 아둔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머리는 그것을 그저 일상 세계에서 일어난 하나의 진부한 장면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혈질인 사람에게는 그저 하나의 흥미로운 갈등 정도인 것이 우울한 성격의 사람에게는 슬픈 일로, 그리고 무덤덤한 사람에게는 그저 의미 없는 일로 여겨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각각의 현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물이 필수 불가결하고 아주 밀접하게 연결된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것처럼 온전한 현실은 주관과 객관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그 원인이 있다. 절반의 객관은 완전히 동일하지만 주관이 다르거나, 아니면 정반대의 경우라면 현재의 현실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절반의 객관이 가장 아름답고도 훌륭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주관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다면 그저 끔찍한 현실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아무리 아름다운 경치더라도 촬영 당일의 날씨가 엉망진창이거나, 성능이 나쁜 카메라 렌즈로 촬영하는 것과 같다.
이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개개인은 마치 자신의 피부 같은 스스로의 의식 속에 들어가 있고, 오직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그를 도울 방법은 별로 없는 것이다.
행복의 가장 첫 번째 가치는 우리 그 자체인 인격이다
우리 인생의 행복에 가장 우선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것은 바로 우리 그 자체인 인격이다. 인격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되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첫 번째 자산인 인격은 다른 두 가지 범주의 자산과는 다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운명에 묶여 있지도 않고, 우리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수도 없다. 그것의 가치는 절대적인 것으로, 반대로 다른 두 가지 범주의 가치는 그저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보통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인간이 외부의 영향을 받는 것은 훨씬 적다. 오직 전지전능한 시간만이 여기에서 자신의 권리를 휘두르고, 어떠한 육체적·정신적 장점도 결국 점차 시간에 굴복하게 된다. 하지만 도덕적 성격만은 시간의 힘에서 벗어난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두 가지 범주의 자산은 시간이 직접 빼앗을 수 없기 때문에 첫 번째 범주의 자산보다는 유리할 것이다. 또 다른 장점은 다른 두 가지 범주의 자산은 객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얻을 가능성이 있고, 적어도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주관적인 것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평생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하여
소유에 대한 만족감은 상대적인 양에 달려 있다
소유에 대한 우리의 합리적인 욕구의 적절한 한계를 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소유에 대한 만족감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인 비율, 각자가 원하는 만큼과 그 소유물의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대상 소유물만 별개로 판단하는 것은 분모가 없는 분자처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얼마만큼의 재산을 소유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소유한 것이 별로 없어도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보다 100배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하나가 없어서 불행하다고 느낀다.
영원한 고통도 없고, 영원한 기쁨도 없다
큰 재산이나 유복을 잃고 난 뒤 처음으로 만나는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우리의 기분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운명이 우리의 소유물을 줄이고 나면, 우리 스스로 원하는 수준을 크게 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불행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라면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은 느끼지 않게 된다. 상처가 아문 것이다.
반대로 행복한 일이 갑자기 일어나면 우리의 요구를 억누르던 압축기가 밀려 올라가 우리의 욕구는 팽창되고, 바로 거기에 기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역시 이 과정이 완전히 끝나면 기쁨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팽창된 요구에 익숙해져 이미 달성한 소유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에 대하여
타인의 의견 속에서 살지 말고 자신의 의견 속에서 살자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며, 건강 다음으로는 우리를 유지해주는 수단, 즉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명예, 부귀, 지위, 명성에 큰 가치를 부여하긴 하지만, 이러한 필수적인 것들과 경쟁할 수도, 대체할 수도 없다. 오히려 본질적인 자산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러한 것들은 미련 없이 희생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의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타인의 의견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통찰을 얻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행복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건강, 기질, 능력, 소득, 아내와 자녀, 친구, 사는 집 등으로 정해지는 자신의 실제적이고 개인적인 상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 쓰는 것보다 이러한 진리를 아는 것이 우리의 행복에 100배는 더 중요하다.
그와 반대의 망상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명예가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와 안녕은 가치가 없으며, 우리에 대한 다른 이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명예, 즉 우리에 대한 타인의 생각이 종종 반드시 필요하다’는 단순한 진실이 근거로 삼는 과장된 말로 간주될 수 있다.
명성 그 자체가 아니라 명성을 얻는 것이 가치 있다
명성은 원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에 달려 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다. 나머지 사람도 그와 같은 명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 명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절대적 가치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유지함으로써 어떤 사람을 위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위대한 마음과 위대한 두뇌의 가치와 행복은 분명 거기에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명성 그 자체가 아니라 명성을 얻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은 사물의 실체이지만 명성은 사물의 우연한 성질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명성은 그것을 얻은 사람의 외부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그것을 통해 그는 자신에 대한 높은 평가를 확인한다. 따라서 빛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몸에서 반사되지 않으면 그 실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모든 탁월함도 명성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그 자신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확실한 증거는 되지 않는다. 공적이 없는 명성이 있고, 명성이 없는 공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몇몇은 유명하고 다른 이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는 레싱의 말은 어쩌면 너무 깔끔한 표현일 것이다.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한 인간의 가치와 무가치가 결정된다면 그 존재는 아주 비참할 것이다. 모든 존재는 오히려 그 자체를 위해 살고 존재한다. 그 때문에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하여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음을 깨닫는 인생 후반기
인생 전반부의 성격이 행복이 충족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이라면, 인생 후반부의 성격은 불행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생의 후반기가 되면 ‘모든 행복은 공상과도 같지만 고통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면 인생 후반부의 시기에는 즐거움보다는 단지 고통이 없는 안정적인 상태를 추구한다.
젊은 시절에는 인간 세계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인간 세계를 탈출한 느낌을 받는다. 첫 번째의 불쾌한 느낌은 인간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인한 것이고, 두 번째의 유쾌한 느낌은 인간 세계를 잘 알게 되어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후반기에는 음악 악절의 후반부와 마찬가지로 힘들게 애쓰는 일은 줄어들고 인생 전반부에 비해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에서 어떤 큰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깨닫고 이제는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안정적이고 그런대로 견딜 수 있는 현재를 즐기며, 심지어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깨닫는다
우리 인생의 첫 40년은 본문을 제공하고, 그 다음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을 제공한다. 이 주석은 본문의 도덕성 및 모든 미묘한 표현과 함께 텍스트의 진정한 의미와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가르친다.
인생의 끝이 다가온 무렵은 가면을 벗어버린 가장무도회의 끝 무렵과 같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만나온 사람들이 실제로 누구였는지 마침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격이 드러나고, 행동들이 결실을 맺고, 업적이 정당한 평가를 받으며 모든 망상이 무너진다. 거기에는 그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일은 인생의 마지막에 다가가서야, 그제야 세상과 타인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의 실체, 자신의 목표와 목적을 진정으로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점이다. 항상은 아니지만 자주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을 더 낮은 위치로 보아야 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더 높은 위치로 보아야 할 때도 있다. 이것은 세상의 천박함에 대해 충분한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세상보다 더 높은 곳에 자신의 목표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생론 _ 온전한 삶을 위한 아포리즘
죽음에 의해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죽음으로 전환하는 순간을 굳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일상적인 주변 환경에 있는 많은 사람 중에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어느 한 사람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묻는다면 가장 적절하고 가장 올바른 대답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당신이 죽은 다음에 당신은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런 대답을 하는 사람들은 ‘시작이라는 처음이 존재하는 영혼들은 그 끝이 없어야 한다’는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한 대답에는 두 종류의 존재가 있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무(無)도 두 종류가 있을지 모른다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죽은 뒤에 당신이 무엇이 되든 간에 – 설사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 하더라도 – 당신의 개인적인 존재가 유기체의 존재처럼 자연스럽고 적절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니까 기껏해야 죽음으로 전환하는 순간을 굳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 이 문제를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존보다 비생존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생각,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시간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만큼이나 당연히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없다. 이 존재는 본질적으로 인격적이기 때문에 인격의 종말을 손실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아마도 그의 이해와 일치하는 방식으로 가장 간단하고 경험적인 것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물질과 일시적으로 그것을 소유하는 형이상학적인 힘의 차이를 그에게 명확하게 보여주면 그를 안심시킬 수 있을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이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생명이 왔던 곳으로 가는 것이다. 이집트인이 저승의 신인 오르쿠스를 아멘테스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아멘테스는 플루타르코스(<이시스와 오시리스에 대하여> 29장)에 따르면 “빼앗는 자이자 주는 자”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돌아가는 것과 모든 것이 나오는 것이 동일한 근원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생명은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받은 대출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잠은 이 대출의 하루 이자가 될 것이다.
생존의 허망함에 대하여
현실에서는 하찮은 현재라도 가장 중요했던 과거보다 우월하다
한 번 존재했던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존재하는 것은 바로 다음 순간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 된다.
그렇기에 아무리 현실에서는 하찮은 현재라도 가장 중요했던 과거보다는 더 우월한 것이며, 현재와 과거의 관계는 유와 무의 관계와도 같다. 수천 년 동안이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여기에 존재하고, 잠시 뒤 똑같이 오랜 시간 동안 다시 존재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놀랍게도 존재하는 것이다.
가슴은 그것이 결코 옳지 않다고 말한다. 심지어 지성이 낮은 사람조차도 이런 종류의 고찰에서는 시간의 관념성을 어렴풋이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공간의 관념성과 아울러 모든 진정한 형이상학에 이르는 열쇠이다. 그것을 통해 자연과는 전혀 다른 사물의 질서를 위한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칸트가 그토록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가 깨닫게 되는 사실
우리 인생의 장면은 거친 모자이크 그림과도 같다. 가까이 가서 바라보면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서 보아야만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갈망하던 것을 얻게 되면 그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는 항상 더 나은 것을 기대하고, 동시에 과거에 지나간 것을 후회하는 심정으로 그리워한다. 반면에 현재는 당분간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뿐, 목표를 향한 길 이외의 다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한평생 일시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그다지 주목하지 않고, 즐겁게 즐기지도 않고, 지나쳐 보내버린 것이 바로 기대에 차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놀라워할 것이다. 그래서 보통 인간의 삶의 행적은 희망에 속아서 죽음을 두 팔로 껴안고 춤을 추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의지는 무슨 수를 써서도 만족하지 않아 그것이 만족될 때마다 새로운 욕망을 낳기 때문에 개개인의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지 않은 채 무한대로 간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의지란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속해 있는 세계의 주인이므로 따라서 부분이 아니라 무한한 전체에 대해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의 주인인 이 의지조차도 개체의 개별적인 현상 속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해 대부분 그저 개체를 유지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 개체는 깊은 고통에 빠진다.
인생의 본질을 들려주는 비유와 우화
모든 사물을 밝고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푸른 자두나무 위에 맺힌 영롱한 이슬처럼 자연은 모든 사물에 ‘아름다움’이라는 허식을 발랐다. 화가들과 시인들은 이것을 벗겨내고 쌓아올려 우리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 생활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 허례허식을 탐욕스럽게 들이킨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현실 생활로 돌아가면 이제 자연이 부여한 그 아름다움이라는 허례허식이 벗겨진 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그 허례허식을 완전하게 사용해버렸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미리 즐겼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지금은 모든 것이 대체로 불친절하고 무미건조하게 생각되고 종종 역겨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도록 그 허례허식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많은 아름다움을 모아서 한꺼번에 그림이나 시의 형태로 즐기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물을 밝고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미적 기쁨과 삶의 매력을 미리 즐기지 못한 자연인만이 이따금씩 사물을 그렇게 밝고 즐거운 빛으로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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