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나야 할 단 하나의 논어
 
지은이 : 판덩
출판사 : 미디어숲
출판일 : 2024년 01월




  • 동서양의 문화적 장벽을 허물고, 중국과 서양의 고전을 넘나들며, 현실 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논어’를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논어’에 담긴 2천 년 전 공자의 지혜와 처세를 배우고, 이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당신이 만나야 할 단 하나의 논어


    학이(學而) : 배움, 그 위대함에 천하가 숙연해진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 변화될 내일을 위해 논어를 펼쳐라

    공자가 이른다.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직역하면 이와 같다. ‘지식을 배운 뒤 복습하고 사용해 보면 좋지 않겠는가? 뜻이 맞는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기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내가 운영하는 ‘판덩독서’에서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매일 듣는데도 어째서 제 삶은 더 좋아지지 않는 걸까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건 지식을 이해하는 것이고, 익힌다는 건 배운 지식을 꾸준히 응용하고 시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예기」에 이런 말이 있다.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확하게 분별하며, 성실히 실천해야 한다.”


    학습의 중요성을 다섯 단계로 설명한 문장이다. 여기에서도 마지막에 ‘행’이라는 한자를 통해 배움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평상시 우리가 마주하는 배움에 대한 어려움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아예 배우려 하지 않는 경우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공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논어』는 주로 스승인 공자와 제자들이 대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배우고 있거나 배우겠다는 마음을 가진 제자들과 토론하면서 배우지 않는 경우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배우기만 하고 응용과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경우이다. 배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일 경우, 배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배움이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쉽고 빠른 지름길로 가고 싶은 초조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배움에 있어서 초조해하는 사람들에게 공자는 말한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고, 단숨에 목표를 이루려 하지 말고, 배우고 제때 익히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캐럴 드웩 저자의 마인드셋』에서도 언급한,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평생 배우며 성장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면 실수와 좌절도 하나의 학습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배움의 재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공자가 생존했던 시대보다 훨씬 풍요롭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올 때 주로 두 가지 이유로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는 생활 리듬이 깨지는 것, 다른 하나는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신에게 생긴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일단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왔다는 것은 ‘나와 마음이 맞아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괜히 지레 겁을 먹고 불편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맞으니 그 친구는 나의 개인적인 상황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고, 상대방이 불편해할 일들도 알아서 피할 것이다. 또 만약 불편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솔직히 말해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세 가지 말은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다. 먼저, “배우고 제때 익힌다.”는 공자의 말은 공부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다음으로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온다.”라는 문장은 사람과 협력하고 대응하는 법을 알려준다.


    마지막 문장을 보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이는 수련의 경지를 설명해 준다. ‘배우고 제때 익히는 것’은 개인의 학습,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은 협력 방법,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것’은 수행의 결과이다. 공자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한 번에 설파한 듯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을 만나거나, 방법은 알지만 할 수 없을 때는 ‘배워서 제때 익히고’라는 구절을 떠올리자. 외부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에 담긴 뜻을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일을 완벽하게 해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이해해 주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라는 <학이>의 문장을 마음속으로 암송해보자.


    우리가 이 세 가지 문장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면 삶에서 가장 어렵고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담담한 마음으로 문제를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모습이 바로 군자의 모습이다.



    위정(爲政) : 현인 공자, 정치를 논하다

    비여북신(譬如北辰) : 북극성처럼 든든하게 빛을 발하는 리더의 덕목

    공자가 정치에 대해서 말했다. “덕으로 정치한다는 건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뭇별들이 둘러싸는 것과 같다.”


    정치를 밤하늘에 맴도는 별들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한 공자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노자의 말을 먼저 살펴보자. 노자가 정치에 대해 말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다.”


    노자는 정치를 해물찜 요리에 비유했다. 작은 생선 여러 마리를 냄비에 넣고 삶으면 여러 마리가 겹쳐 있어 잘 익지 않으니 자꾸 뒤적거리게 된다. 그러면 생선 살은 터지고 뭉개진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통치자가 작은 일을 사사건건 간섭하다가는 나라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후대 사람들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가 백성들을 혹사시키고, 재물을 낭비하며 사사로이 정치를 했다고 입을 모은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복잡한 공정이며 복잡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복잡 시스템’은 무엇일까? 복잡함과 단순함은 상대적이다. ‘단순 시스템’은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예를 들어 도요타 자동차의 생산라인은 오류를 파악하고 줄여나가는 것을 반복하며 자동차 품질을 향상한다. 전체 자동차 제작을 위해 차대, 바퀴, 엔진, 변속기, 모터, 전자 시스템 등 모든 부분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파악한 후 조립을 진행한다. 세세한 일을 무한 반복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가면 결국 모든 부분이 개선이 된다. 이것이 바로 단순 시스템이다.


    반면 사회와 가정, 교육, 국가와 같은 시스템은 복잡한 구조에 속한다. 생태계, 생물계, 자연계도 복잡 시스템이다. 복잡 시스템의 특징은 흐름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어떤 모델을 제시해도 부분조차 파악할 수 없다. 분석이 쉽지 않고, 어느 부분에 문제가 발생하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어른들은 아이의 운명에 변화를 줄 깨달음과 교육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를 교육하는 일은 자동차를 제조하는 일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런 복잡 시스템은 부분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전체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단순 시스템과 다르다. 단순 시스템이 자동차를 제조하는 것이라면, 복잡 시스템은 숲을 키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숲을 조성하는 것은 토양, 기온, 환경, 방향을 통해 모든 생물 사이의 조화와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토양에서 자라난 싹이 나무로 성장하기를 기다리고, 푸른 풀들이 돋아나길 기다리며, 전체의 생태가 균형을 이루어 숲이 조성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파악하고 간섭할 수 있는 부분이 아주 적은 것이다.


    순자도 복잡 시스템에 관해서 노자와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경영학자로도 볼 수 있는 순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임금이 요점을 파악하는 걸 좋아하면 모든 일이 상세하게 처리되고, 임금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파악하는 걸 좋아하면 모든 일이 황폐해진다.”


    순자의 말을 쉽게 풀이하자면, 한 회사에 중요한 업무가 세 가지가 있을 때, 사장은 그것만 중점적으로 파악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상세하게 처리된다.”라는 것은 구체적인 임무마다 책임자가 있어 각자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어지는 순자의 문장인 “임금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파악하는 걸 좋아하면 모든 일이 황폐해진다.”는 것은 지도자가 책임자가 있는 분야까지 파고들어 불필요하게 참견하면 일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로 다시 돌아가자. 공자는 “덕으로 정치한다.”는 말을 한다. 이는 규칙으로 다스려야 할 뿐만 아니라 덕행으로도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는 경영자를 북극성에 비유했다. 이것은 리더의 방향성을 강조한 비유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조직의 전체 방향을 계획해 구성원 모두가 우주의 별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정해진 방향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창업자는 직원의 리더이며, 기업의 가장 중요한 브레인이다. 자신이 누구보다 영리해, 모든 일에 간여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창업자의 책임은 모두가 바라볼 공통의 비전을 세우고, 모두가 동일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분에만 충실하고 다른 일은 각 책임자에게 맡기는 것, 이것이 바로 창업자가 복잡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이다.


    “덕으로 정치한다는 건 북극성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뭇별들이 둘러싸는 것과 같다.”는 공자의 말처럼 진중하고 굳건히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옹야(雍也) :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중용지위덕야(中庸之爲德也) : 가장 편안함에 이르는 길, 이것이 중용이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용이다. 하지만 중용을 따르는 백성들은 드물다.”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용의 뜻을 어떤 일을 할 때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중간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용은 어정쩡하게 중간에 머물며 이해타산을 따지는 기회주의가 아니다. 진정한 중용의 도는 가장 적절하고 편안한 상태로 다가서기 쉽지 않은 경지이다. 심지어 공자도 자기 자신이 중용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중용에 이른 사람 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참다운 중용’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공자는 “백성 중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 드물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실천하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용에 이르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 중용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우리는 그저 중간 즈음에 머무는 것이 중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보수적이고 안일한 태도일 뿐이다.


    무력을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자. 폭력은 나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중용은 어정쩡한 태도로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불의 앞에서 용감한 것이 바로 중용이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치와 인색함의 중용은 관대함이다. 자만함과 열등감 사이에서 중용은 ‘자신감’이다.


    배움에도 중용이 있다. 무지하면서 배우길 싫어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종일 책만 보는 것도 좋지 않다. 중용은 배움을 즐기는 것이다. 육아에도 중용이 있다. 원칙 없이 아이를 지나치게 예뻐하는 건 옳지 않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더 옳지 않다. 원칙을 가지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중용이다.


    회사 경영에도 중용이 있다. 경영인이 직원들에게 회사의 모든 일을 맡기는 것은 방임이다. 반면 무엇이든 관여하고 결정하는 것은 독단이다. 경영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 중용이다.


    ‘중용’은 가장 알맞은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알맞게 하려면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구하고 연구해야 한다. 반면 사람들은 옳고 그름, 흑백논리, 이것 아니면 저것과 같이 극단적이고 단순한 답을 좋아한다. 인터넷에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는 콘텐츠는 어떤 것일까? 연예인들의 스캔들, 폭로성 기사, 미담, 맛집 등 짧고 단순하면서 극단적인 내용들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하는 것을 사람들은 어려워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가 복잡한 절차를 싫어하더라도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배움의 장점이다.



    태백(泰伯) : 시(詩)와 예(禮)와 악(樂)으로 만나는 배움의 철학

    공이무례즉로(恭而無禮則勞) : 모든 일에 예를 갖추면 지나침이 없다

    “공경하면서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 신중하면서 예가 없으면 두려워지며, 용맹스러우면서 예가 없으면 어지럽고, 강직하면서 예가 없으면 헐뜯게 된다.”


    “군자가 가족과 돈독하면 백성들은 어짊이 흥기하고, 오랜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각박해지지 않는다.”


    공자는 ‘중용의 도’를 강조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지나침이 없는 것이 중용이다. 『논어』에 종종 등장하는 “공경하면서 예가 없으면”이나 “신중하면서 예가 없으면”이라는 말과 비슷한 구절들은 ‘예’를 통해 행동을 절제하는 중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자는 좋은 미덕일지라도 예로 절제하지 않으면 의미를 상실한다고 했다.


    “공경하면서 예가 없으면 수고롭고”라는 구절을 살펴보자. ‘수고롭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아주 명확하다. 예로 절제하지 않은 과도한 공경은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자신의 에너지만 소비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계산적으로 공손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도움을 얻고 싶어서 겉으로 자기를 낮추며 행동한다면, 기준과 한계가 없는 탓에 수고롭기만 할 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외국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상대 나라의 예의범절을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지나치게 자신을 낮춘다면 오히려 예의를 잃을 수 있다.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신중하면서 예가 없으면 두려워진다.”라는 것은 신중함은 좋지만 지나치면 유약해진다는 의미이다. 어떤 상황을 마주쳤을 때 너무 신중하면 자신의 뜻을 신속하게 행동에 옮길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가령 도둑질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가정해 보자.


    지나치게 신중해서 그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방관을 넘어서 악행을 돕는 꼴이 된다. 이른바 지나친 신중함은 ‘일상의 악덕’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공자는 신중함에도 기준을 가지고 자신이 어디까지 절제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용맹스러우면서 예가 없으면 어지럽다.”라는 구절은 공자의 제자 자로를 떠올리게 한다. 자로는 용맹스러웠지만 절제가 부족했다. 용감하지만 예가 없다면 제멋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 심하게는 분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다. 공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통하는 세 가지 미덕을 말했다. 지혜로움, 어짊, 용맹스러움이다. 용맹은 그만큼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공자는 용맹스러움에도 경계와 규범, 그리고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지는 구절 “강직하면서 예가 없으면 헐뜯게 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강직하면 상대방에게 가혹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이 강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강직한 겉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부족한 소양을 감추려 하기 때문이다.


    강직함은 넓은 도량에서 나온다. 강직함은 도에 부합하게 행동하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마음을 비운 무심함'이다. 겉으로만 강직한 척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부족한 소양을 감추려는 위장이다. 강직한 사람은 상대방을 헐뜯거나 상처를 주지 않는다.


    다음 문장을 살펴보자. “군자가 가족과 돈독하면 백성들은 어짊이 흥기하고”라는 구절에서 ‘돈독하다’라는 것은 두텁다는 뜻이다. 가족과 돈독하게 지낸다는 것은 식구들의 잘못을 용인하거나 보호해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군자는 가족이 출중한 덕행을 갖춘 사람이 되길 바라고,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이어지는 “오랜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각박해지지 않는다.”라는 구절에서 ‘각박하다’는 매정하다 혹은 야박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군자가 자신의 지위가 높아졌다는 이유로 오랜 친구를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고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백성도 야박하거나 매정해지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중용의 도를 강조했다. 중용은 예와 도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예에 부합하는 것은 규범의 경계를 아는 것이다. 예를 모른다면 솔직하게 물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공자는 태묘에 들어갔을 때 모든 예법을 물어보았다. 이에 누군가가 ‘정말 예를 알고 있냐’고 의문을 제기하자 공자는 “모르는 것을 물어서 정확하게 아는 것이 예”라고 대답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예를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살아가면서 자신을 반성하며 천천히 일의 경계를 배우고 기준을 명확히 세우며 예로써 절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에 부합하는 사람은 과격하지 않고, 극단적이지 않고, 무모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중용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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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