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 철학 공부』는 입문자들을 좌절시키는 난해하고 어려운 방법론을 걷어내고, 핵심 개념과 내용만 간결하게 제시한다. 군더더기 같은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필요한 지식과 정보만 명쾌하게 정리해 담아냈다. 그래서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 읽는 데 어렵지 않으며, 어느 정도 철학에 익숙한 사람도 복습 삼아 필요한 부분만 다시 찾아 읽기에도 좋다. 이는 저자가 혼자서 철학을 공부하며 깨달은 노하우를 녹여낸 결과다. 저자 자신이 철학 공부를 하면서 직접 겪은 어려움이 있었기에, 전공자들의 난해한 언어가 아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언어로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를 써낼 수 있었다.
무엇을 공부하든 처음이 가장 낯설고 어려운 법이다. 동시에, 처음에 어떻게 기초를 다지느냐가 공부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인생 처음 철학 공부』는 철학의 세계로 내딛는 첫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드넓은 철학의 세계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 공부해나갈 수 있도록 정확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 저자 폴 클라인먼(Paul Kleinman)
미국 뉴욕주 화이트 플레인스에서 자랐고,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예술 및 커뮤니케이션 아트의 라디오·텔레비전·영화 부문을 전공했다. 졸업 후 TV 방송 작가 겸 스토리 프로듀서를 지냈으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철학과 심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교양 지식에 관한 글을 썼다. 저자는 철학이나 심리학 전공자들이 자신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난해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 그래서 대중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답게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교양 입문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인생 처음 철학 공부』와 『인생 처음 심리학 공부』는 미국에서 출간 후 10년 넘게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독자의 지적 성장을 돕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 역자 이세진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철학을 만나는 시간』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등이 있다.
■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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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 철학이란 무엇일까?
철학의 풍경을 바꾼 거인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세상은 왜 변하는 걸까?
소크라테스: 진리에 이르려면 끊임없이 질문하라
플라톤: 철학은 지속적인 질문과 대화의 과정
아리스토텔레스: 앎과 행복에 이르는 방법
이븐시나: 이슬람 황금시대의 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신에게 이르는 다섯 가지 길
프랜시스 베이컨: 우상을 타파하고 과학으로 나아가다
토머스 홉스: 새로운 철학 체계를 꿈꾸다
르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바뤼흐 스피노자: 성서를 비판한 자연주의 철학자
존 로크: 더 나은 정부를 향한 열망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곧 최선이다
볼테르: 논란을 몰고 다닌 계몽의 투사
데이비드 흄: 관념론을 비판한 서양 철학의 거인
장자크 루소: 불평등을 비판하고 자유를 위해 싸우다
이마누엘 칸트: 형이상학에서 인식론으로 내딛은 발걸음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정신은 변증법을 통해 발전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우리는 최악의 세계에 산다
카를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하다
프리드리히 니체: 미친 철학자, 삶을 긍정하다
버트런드 러셀: 평화를 위해 싸운 논리주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는 탄생에서 죽음까지 달린다
장폴 사르트르: 자유는 선물인 동시에 저주다
2. 세상을 이해하는 위대한 생각들
실재론: 보편적인 것은 존재할까?
형이상학: 모든 철학의 토대가 되는 ‘제1철학’
이원론: 몸과 마음의 관계를 탐구하다
경험론 대 합리론: 앎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인식론: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쾌락주의: 오직 쾌락만이 전부다
공리주의: 행복도 계산이 될까?
계몽주의: 이성의 빛으로 시작된 일대 혁명
실존주의: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에 주목하라
자유의지: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가?
강한 결정론: 우리에게 자유는 없다
유머의 철학: 웃음에 대한 진지한 고찰
미학: 아름다움과 취향의 문제
문화철학: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
상대주의: 다른 생각을 바라보는 방법
A 이론: 시간은 위치들의 연속이다
과학철학: 과학이란 무엇인가
언어철학: 언어란 무엇인가
현상학: 의식의 모든 행위는 대상을 향한다
유명론: 보편과 추상을 모두 거부하다
윤리학: 옳고 그름의 의미를 고민하다
종교철학: 신은 왜 악을 없애지 않을까?
동양 철학: 인도 철학부터 한국의 무속신앙까지
3. 철학사를 빛낸 난제들
플라톤의 동굴: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림자일 뿐
테세우스의 배: 그 배는 과연 그 배일까?
거짓말쟁이 역설: 언어에서 생겨나는 모순
더미의 역설: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으면 대머리일까?
트롤리 문제: 철학계의 불꽃 튀는 토론거리
들판의 소: 우리가 아는 것은 정말로 아는 것일까?
죄수의 딜레마: 어떤 선택이 옳은가
쌍둥이 지구: “의미는 우리 머리 안에 있지 않아!”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철학 추천 도서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질 때가 옵니다. 하지만 철학 주변만 빙빙 맴돌기 십상입니다. 이제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철학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철학의 기초 체력을 탄탄하게 길러드리는 철학 지식을 담았습니다.
인생 처음 철학 공부
철학의 풍경을 바꾼 거인
존 로크: 더 나은 정부를 향한 열망
『인간 지성론』
존 로크의 가장 유명한 저작으로 정신, 사유, 언어, 지각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들을 다루며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인간의 사유 방식을 설명하고자 하는 체계적 철학을 제시하죠. 로크는 이 저작을 통해서 철학적 대화를 형이상학에서 인식론으로 옮겨가게 했어요.
로크는 인간에게 타고나는 근본 지식과 원리가 있다는 (플라톤이나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철학 유파들의 주장을 거부합니다. 만약 그 주장대로라면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떤 원리가 있을 텐데 그런 원리는 사실상 없으므로(대부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원리가 있긴 해도 그것이 선천적 앎의 결과는 아니므로) 그 주장은 틀렸다고 말해요.
예를 들자면, 도덕관은 사람마다 다르지요. 그렇다면 도덕적 앎은 선천적이지 않습니다. 로크는 인간은 ‘빈 서판(tabula rasa)’과도 같은 상태로 태어나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고 믿었어요. 경험은 (감각, 반성, 느낌에서 비롯되는) 단순 관념을 만듭니다. 단순 관념들은 비교, 추상, 결합을 통해 복합 관념을 이루고 지식을 만들어요. 관념은 또한 두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일차 성질: 물질과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관찰자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는 성질(크기, 모양, 운동 등).
2. 이차 성질: 물질과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있으며 관찰자가 있을 때만 지각 가능한 성질(맛, 냄새 등).
마지막으로, 로크는 플라톤의 본질 개념을 거부합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서로 다른 인간들이 똑같은 종의 개체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본질 때문이죠. 하지만 로크는 자기만의 본질론을 만들었어요. 그 토대는 (로크가 ‘명목적 본질’이라고 부른) 관찰 가능한 속성들과 그 속성들을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들(‘실재적 본질’)입니다. 가령, 우리는 관찰을 바탕으로, 또한 (관찰 가능한 속성들을 만들어낸) 개의 생물학적 구조를 바탕으로 개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고 본질을 창조할 수 있어요. 로크는 인간의 지식은 제한되어 있고 인간이 반드시 그러한 한계를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인간은 그저 자연법을 따라 살아야 했고 평화가 유지되는 한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었어요. 인간의 자기보존에 대한 권리는 자신이 생존하고 행복을 누리는 데 필요한 것들을 누릴 권리도 인간에게 있다는 뜻이지요. 그것들은 신이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신체의 주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 노동으로 만들어낸 상품과 재화에 대한 소유권이 있어요. 농사를 지어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은 자기가 일구는 땅과 그 땅에서 나는 작물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죠. 사유재산에 대한 로크의 생각에 따르면, 이러한 노동과 소유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면 소유권을 가질 수 없어야 합니다. 신은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인간은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부도덕한 사람들은 엄연히 존재하므로 개인의 사유재산과 자유를 보호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로크는 정부의 유일한 목적이 모든 사람의 행복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비록 자연권의 일부를 넘겨주어 정부를 세울지라도 이 정부는 개인이 혼자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때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정부가 더 이상 모든 사람의 행복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야 하며, 사회는 무능한 정부에 맞서 싸울 도덕적 의무가 있어요.
로크에 따르면, 정부가 바로 서면 개인과 사회가 물질적으로만 풍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번창합니다. 정부는 신이 만드는 자기보존의 자연법과 조화되는 자유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해요.
『통치론』은 로크가 기나긴 망명 생활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간 후에야 뒤늦게 출간되었지만, 실제 집필은 왕권과 의회의 갈등이 매우 깊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로크는 더 나은 형태의 정부가 있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정치철학은 서양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어요.
장자크 루소: 불평등을 비판하고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장자크 루소의 주요한 철학적 작업을 꿰뚫는 주제는 자유, 도덕성, 자연 상태에 대한 생각이에요. 그의 사상은 프랑스와 미국에서 혁명의 기초를 마련했고 서양 철학에 놀라울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그의 가장 유명한 철학·정치적 저작인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루소 철학의 본질적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일단 루소는 인간들에게 다양한 유형의 불평등이 있음을 보여줘요. 그리고 이 불평등의 유형들 가운데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무엇이 ‘자연스럽지 않은(다시 말해, 막으려면 막을 수 있는)’ 것인지 구분하고자 하죠.
루소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는 자기보존 본능과 동정심이라는 두 가지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행복하고, 그리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선악 개념이 없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오직 하나, (비록 실현되지는 않더라도) 자신을 개량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이 개선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을 바꿔놓았어요.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더불어 사회화되면서 정신이 발달하고 이성이 싹트기 시작했죠. 그렇지만 사회화는 루소가 말하는 ‘자기애’라는 원칙으로 이어집니다. 자기애는 자기를 남과 비교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남들을 지배하게끔 몰아갔죠.
인간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자기애가 발달하고 사유재산과 노동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뉘면서 약자에 대한 착취가 일어납니다.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과 전쟁을 해서라도 그러한 차별을 끝내려 할 거예요. 그렇지만 부자들은 평등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정치사회를 만들어냄으로써 가난한 자들을 속이죠. 실제로는 평등이 주어지지 않고 압제와 불평등이 사회에 영원히 뿌리박혀버립니다.
루소가 생각한 자연적 불평등
루소는 유일하게 자연에 의해 주어지는 불평등이 신체적 힘의 차이라고 봤어요. 이 불평등은 자연 상태의 인간에게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타락했고 법과 사유재산에 따른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사회계약론
장자크 루소는 우리에게 『사회계약론』과 이 책 속의 한 문장,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로 가장 잘 알려져 있죠. 그는 인간이 처음 사회를 이루기 시작했을 때는 완전히 자유롭고 평등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족쇄로 작용하면서부터 인간의 선천적 자유가 억압당했다고 말하죠.
루소는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적 권위는 사람들이 상호 보존을 목적으로 사회계약을 통해 다 같이 동의한 정치 체제에 있다고 봤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의 집단에 ‘주권’이 있다고 말하죠. 주권은 언제나 인민의 집단적 욕구를 표현해야 하며 개인의 의견이나 욕망에 연연하지 않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합니다. 루소는 이것을 ‘일반의지’라고 불러요. 이러한 일반의지는 법의 기본적인 모양새를 만들죠.
루소는 정부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을 가리지 않고) 정부와 주권 사이에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는 둘 사이의 긴장을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주권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열고 일반의지를 바탕으로 투표를 해야 한다고 봤죠. 이러한 모임은 (주권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거나 누군가 대표할 수 없기 때문에) 주권을 지닌 국민이 항상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건강한 상태의 사회에서 일반의지에 따른 투표는 사실상 만장일치의 결과를 낳죠. 또한 루소는 개인들 간의 다툼뿐만 아니라 정부와 주권의 갈등도 중재하는 법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요.
『사회계약론』은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 저작으로 손꼽힙니다. 루소는 정치적 불평등의 시대에 정부의 권리는 ‘지배당하는 사람들의 동의’에 달렸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보여주었죠. 인간의 권리와 인민의 주권에 대한 그의 급진적인 사상은 인권과 민주적 원칙들의 바탕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가 낳은 중요한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분석철학에 특히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
그의 전기 철학은 『논리철학 논고』에 담겨 있어요. 비트겐슈타인은 프레게와 러셀에게서 많은 개념을 끌어오는 동시에 논리학을 보편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에 반대했습니다. 프레게와 러셀은 논리학이 지식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궁극의 법칙들의 집합이자 토대라고 생각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그렇지 않았죠.
D. F. 피어스와 B. F. 맥기니스가 영어로 번역한 『논리철학 논고』의 일곱 가지 기본 명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세계는 일어나는 것의 총체다.
2. 일어나는 것(사실fact)은 사태들(affairs)의 존립이다.
3.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 사고다.
4. 사고는 뜻을 지닌 명제다.
5. 명제는 요소 명제의 진리함수다(요소 명제는 자기 자신의 진리함수다).
6. 진리함수의 일반 형식은 [p, ξ, N(ξ)]이다.
7.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결국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은 과학과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법칙이 없고 법칙들의 집합이 될 수도 없다고 본 것입니다. 논리학에 법칙이 있다는 추정은 논리학이 과학이라고 추정한 결과인데, 사실은 논리학은 과학과는 아예 다른 것이라는 말이지요. 논리학은 엄밀한 형식이고 내용이 없습니다. 논리학 그 자체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요. 논리학은 이야기되는 모든 것의 구조와 형식을 결정할 뿐이지요.
비트겐슈타인은 이어서 언어의 역할을 걸고넘어집니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세계 속의 사실을 설명할 때만 적절하게 쓰여요. 반면 세계 바깥의 어떤 것, 혹은 전반적인 세계와 관련된 관념이나 가치를 말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따라서 미학, 윤리학, 형이상학을 포함한 철학의 상당 부분은 언어로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윤리적 시각은 그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고 살아낸 방식의 결과예요. 그게 어떻게 언어로 옮겨지고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단 말인가요? 비트겐슈타인은 개인의 윤리적 시각은 (철학의 상당 부분과 마찬가지로) 보여줄 수 있을 뿐 설명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어서 그는 철학의 목적을 다시 정의하고, 철학은 교리가 아니므로 교조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자는 전통적 철학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논리적 분석으로 보여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을 바로잡는 사람입니다. 그는 의미 없는 명제들을 지적하면서 자기가 쓴 책조차도 위험하리만치 헛소리에 가깝다고 인정했어요.
후기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에서 철학에 교조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바로 그 책이 교조적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의 후기 작업, 특히 『철학적 탐구』는 교조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죠. 그러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에서 벗어나 모든 철학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상언어로 옮겨갑니다. 『철학적 탐구』에서는 언어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자세히 설명하고, 철학의 목적은 치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를 다루면서 의미는 단어와 현실 사이의 추상적 연결 따위가 아니라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본인의 전기 철학에 비하면 아주 크게 달라진 입장이에요.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가 고정되거나 제한되어 있지 않다고 봅니다. 단어의 의미는 모호하거나 유동적일 수 있으며 그렇더라도 여전히 효용이 있다고 보지요.
비트겐슈타인은 단어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책 전반에 걸쳐 이 개념을 자주 언급합니다. 그는 ‘언어게임’을 수시로 언급하지만 언어의 유동성과 다각화를 더 깊이 보여주기 위해 이 용어를 딱 떨어지게 정의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엄격한 정의는 없지만 이 용어를 이해하고 바르게 사용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요.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언어가 현재 널리 쓰이는 방식 그대로 적절하며, 언어의 이면을 깊이 파고들어봤자 불필요한 일반화 이상의 소득은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철학적 탐구』의 상당 부분은 심리학의 언어에 적용됩니다. 우리는 ‘사유’ ‘의도’ ‘이해’ ‘의미’ 같은 단어를 쓸 때 이 단어가 우리의 심적 과정을 가리킨다고 믿고 싶은 유혹에 빠져요. 비트겐슈타인은 이 단어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면밀하게 고찰하면서 이것들이 우리의 심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을 가리킨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관습이 법칙이 아니라 (그가 ‘삶의 양식form of life’이라고 불렀던) 사회적 맥락 속에서의 쓰임으로 정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은 언어의 사용법을 본질적으로 사회적 맥락에서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이것은 개인이 자기 내면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독자적인 언어를 만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해요(단어가 바르게 쓰였는지 알 방법이 없으므로 그러한 언어는 의미가 없겠죠).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으로 보는 것’과 ‘그것처럼 보는 것’의 차이를 통해 해석을 논합니다.
‘그것으로 보는 것’은 곧바로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보는 것’은 특정한 면을 주목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떤 것을 어떤 것처럼 본다는 것은 사실 해석을 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 이상의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가 아니면 해석을 하지 않아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 후기 모두 철학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반이론적 입장을 지지했어요. 다만 전기에는 논리를 사용해 철학 이론의 불가능성을 증명한 반면, 후기에는 철학의 치료적 성격을 장려함으로써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위대한 생각들
형이상학: 모든 철학의 토대가 되는 ‘제1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제1철학(first philosophy)’이라 부르며 굳게 믿었습니다. 형이상학은 여러 면에서 모든 철학의 토대라고 할 만해요. 존재와 실존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신에 대해서, 우리 삶에 대해서, 정신 밖의 세계는 존재하는지, 또한 실재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까다롭고도 깊이 있는 질문들을 던지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세 분야로 나누었는데 지금까지도 이 구분은 유효해요.
1. 존재론: 정신적, 물리적 실체를 포함하는 존재와 실존에 대한 연구. 그리고 변화에 대한 연구도 포함한다.
2. 보편과학: ‘제1원리들’로 여겨지는 논리와 추론에 대한 연구.
3. 자연신학: 신, 종교, 영성, 세계의 창조에 대한 연구.
형이상학에서 실존은 존재하고 있는 상태로 정의됩니다. ‘실존은 실존한다(Existence exists)’는 형이상학의 유명한 공리이죠. 인간이 갖는 모든 사유의 뿌리는 무엇을 자각하고 있다는 개념이고, 그것은 곧 어떤 것이 반드시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어떤 것이 반드시 실제로 존재한다면 실존이라는 것이 실존한다는 뜻이지요. 실존은 필연적이고, 어떤 종류의 지식을 요구합니다.
어떤 것의 실존을 부정하기 위해 그것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실존이 실존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부정의 행위 자체가 가능하지 않아요. 어떤 것이 실존하려면 그것의 정체(identity)가 있어야만 하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것으로서 실존합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려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르네 데카르트에 따르면, 그렇기 때문에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에요. 자기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역시 자기 정신을 써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정신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죠. 그러나 데카르트의 공리는 문제가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의식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도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은 오히려 실존하는 것을 지각하는 능력이에요. 의식한다는 것은 뭔가를 지각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의식이 기능하려면 실존이 요구될 뿐 아니라 실존에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의식하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의식에 대한 데카르트의 공리는 문제가 있어요. 의식을 한다는 것은 의식 외적인 것의 실존을 요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지요.
대상과 속성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을 통해 대상의 본성과 속성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형이상학은 세계가 (물리적이거나 추상적인) 대상 혹은 특수자(particular)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특수자들은 어떤 성질 혹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데 철학자들은 그 공통성을 보편자 혹은 속성이라고 부릅니다.
철학자들은 어떤 속성이 하나 이상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루면서 이른바 ‘보편자 문제’를 파고들어요. 예를 들어, 빨간 사과와 빨간 자동차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빨강’이라는 어떤 속성이 실존하는 걸까요? 빨강이 실존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사유의 여러 유파는 이 질문에 각기 나름대로 답변했습니다.
- 플라톤주의 실재론에서는 빨강이 실존하되 시공간 밖에 있다고 봅니다.
- 온건한 실재론에서는 빨강이 시공간 속에 실존한다고 봅니다.
- 유명론에서는 빨강 같은 보편자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으로만 존재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존재와 속성에 대한 관념은 형이상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인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정체성 문제
형이상학에서 정체성은 어떤 것을 그것으로 식별하게 하는 특성으로 정의됩니다. 모든 것에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유의 성질과 특성이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동일률(A=A)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수한 정체성을 지녀야 합니다.
어떤 본체의 정체성을 파악할 때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 생겨나는데, 변화와 인과가 바로 그 개념들입니다.
정체성이라고 해도 상당수는 불안정해요. 집은 무너질 수 있고, 달걀은 깨질 수 있지요. 그렇지만 그러한 사물들도 인과성에 영향을 받고 정체성에 근거해 변화를 겪습니다. 그러므로 정체성은 본체의 구성요소를 바탕으로, 그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서 검토되어야 해요. 달리 말해보자면 어떤 본체의 정체성은 그 부분들의 합입니다. 가령, 집을 설명한다는 것은 목재, 유리, 금속이 특정한 방식으로 집을 구성하고 있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혹은 원자들의 형성을 바탕으로 집을 설명할 수도 있겠지요.
정체성이 바뀌려면 (어떤 행동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인과법칙에 따르면 모든 원인에는 특정한 결과가 있어요. 그리고 그러한 결과는 본체의 고유한 정체성에 달려 있지요.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는 변화에 대한 주요 이론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편속주의: 사차원주의라고도 하며 사물에는 시간적 부분(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대상은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있어서 부분적으로만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의 삶에는 일련의 단계들이 있지요.
2. 인속주의: 대상은 존재 이력의 어느 순간에나 똑같고 온전하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잎이 다 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똑같은 나무이지요.
3. 부분과 전체로 살펴본 본질주의: 대상의 부분들이 전체 대상에 대해 본질적이라고 보는 이론입니다. 따라서 부분이 변하면 대상은 더 이상 존속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잎이 다 떨어진 나무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나무가 아니에요.
형이상학은 우리의 실존, 그리고 그러한 실존이 세계에 대해 갖는 의미를 다루기 때문에 다채롭고 광범위한 철학적 주제를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형이상학은 곧잘 철학의 토대 자체, ‘제1철학’으로 불리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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