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중용
 
지은이 : 김예호 (지은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출판사 : EBS BOOKS
출판일 : 2022년 11월




  • 시대를 초월해 삶을 가르치는 2600년 유학의 교과서, 황제가 처음으로 관직에 임용된 관료들에게 하사한 책, 바로 대학과 중용입니다. 태평천하를 건설하기 위해 위정자들이 갖추어야 할 도덕 실천, 앎, 통치 방법 등을 논의합니다.


    대학·중용


    평천하와 진정한 리더의 길

    ‘대학’과 ‘중용’의 탄생 배경과 문헌의 성격

    ‘대학’, 유학의 교육과 정치 매뉴얼

    주희가 ‘대학’의 기원을 추측하여 쓴 머리말의 첫 문장은 “‘대학’은 옛날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책이다”라는 내용이다. 중국의 태학은 조선 시대의 성균관과 같이 국가에서 세우고 운영한 최고 교육기관으로, 소학 과정을 마친 젊은이들이 입학해서 교육을 받던 곳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누구나 태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태학은 주로 왕이나 고위 관료 그리고 보통 선비의 자식들 가운데서 특출하게 뛰어난 사람들만 입학할 수 있는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다. 즉 다음 시대의 통치자를 키워내는 역할을 한 곳이다. 주희는 ‘대학’이 바로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기 수양의 방법과 정치가의 덕목을 가르친 교과서라는 점을 말한 것이다.


    유가 정치철학의 핵심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통해 남들을 지도하는 훌륭한 통치자가 된다’는 데에 있다. 즉 남들을 다스리기에 앞서 자기 수양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총론은 서두에서 바로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간단명료하게 제시한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으며, 지극히 선함에 머무는 데 있다.


    여기서 ‘밝은 덕을 밝히는 것(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新民)’, ‘지극히 선함에 머무는 것(止於至善)’, 이 세 가지를 ‘대학의 3강령’이라고 한다. 이처럼 개인의 도덕적 완성과 이상적인 정치의 관계를 주제로 삼아 간단명료하게 그 내용과 실현 과정을 밝히기 때문에 ‘대학’을 유학의 교육과 정치 매뉴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학’은 3강령에 이어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을 8단계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8조목’이라고 부른다.


    사물을 연구하고(격물), 앎을 이루고(치지), 뜻을 정성되게 하고(성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정심) 과정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완성된 자신의 수양(수신)을 토대로 다시 가문을 평안하게 하고(제가), 나라를 다스리고(치국), 나아가 천하를 화평하게 한다(평천하).


    ‘대학’의 3강령과 8조목은 수신의 내용을 확장해 가문과 나라를 다스린다는 유가 정치철학의 대의를 보여준다. ‘자기 자신의 타고난 생물학적 욕구를 도덕 수양을 통해 극복하고 사회질서를 회복하는 것(克己復禮)이 인()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공자로부터 비롯한 이러한 사유와 논리 구조는 이후 모든 유학 이론을 관통한다. 그런데 ‘대학’만큼 유가의 전통적 정치철학의 요점을 총론에서 명시한 후, 그것의 실현 과정을 간단명료하게 서술한 문헌은 없다.


    주희는 ‘대학’을 총론 3강령과 각론에 해당하는 8조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8번째 ‘평천하’조목은 앞의 7조목이 완성된 결과로 출현하는 상태를 의미하며 그것은 바로 공자가 말한 인()이 실행된 상태이다.


    즉, ‘자신의 밝은 덕을 밝힌다(명명덕)’라는 첫 번째 강령은 공자가 말한 ‘극기’에 해당하고 ‘백성을 새롭게 한다(신민)’라는 두 번째 강령은 공자가 말한 ‘복례’에 해당하며, 이 두 강령이 조화롭게 완성되어 그 결과 인간 삶이 최적의 상태에 이르는 ‘지극히 선함에 머무르는(지어지선)’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중용’, 끊임없이 성찰하는 군자의 셀프카메라

    ‘대학’이 교육과 정치에 관한 지침서라면, 현재 총33장으로 통용되는 ‘중용’은 수신의 내용을 형이상학적으로 더 깊이 있게 다룬 윤리 철학서라고 할 수 있다. ‘중용’ 사상의 핵심은 ‘하늘의 도(천도)’와 ‘인간의 도(인도)’를 서로 소통시키는 데 있다.


    ‘중용의 ’하늘‘은 인간에게 생명과 삶의 원리를 부여하는 존재이다. 하늘이 부여하는 그 삶의 원리가 바로 인간이 타고 나는 성품이고 하늘에게서 부여받은 이 성품은 인간이 도덕을 실천할 수 있는 씨앗이 된다.


    ‘중용’에서 하늘은 완전무결하여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고, 또한 인간은 이와 같은 하늘을 본받기 위해 정성을 다해 노력하는 존재로 정의된다.


    참된 것은 하늘의 도이고, 참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이다.


    또한, ‘중용’에서는 진정한 군자를 ‘자기 자신을 하늘에 비추어 수양하는 정성을 잠시라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으로,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이처럼 ‘중용’의 핵심 주제는 하늘이 부여한 인간 본성을 본래대로 회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이 부여한 본성에는 만물의 이치가 담겨 있기에 그 본성을 온전하게 회복할 때 비로소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의 본성을 회복하려는 도덕적인 실천 사항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책 이름으로도 쓰이는 ‘중용(中庸)이다. ’중용‘은 ’정성됨(誠)‘의 다른 표현이자, 또한 ’정성됨‘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주희는 ‘중용’이라는 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중은 편벽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으며, 지나치지도 못 미치지도 않는 것의 이름이요, 용은 평상함이다.


    ‘중용’은 유학에서 말하는 최고의 도덕 표준인데,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으며 지나침도 없고 모자람도 없이 일을 처리하는 태도를 말한다. ‘중용’은 우주 자연의 법칙인 ‘하늘의 도’와 그것을 본받아 도덕적 이상 사회를 이루려고 애쓰는 ‘인간의 도’를 서로 통하게 하는 ‘마음의 법(心法)이며, 그 본질은 ’정성됨‘이다. 이 점에서 ’중용‘은 형이상학적 성격을 지닌 유학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성됨’은 바로 하늘의 도 자체이며, 이와 합치하기 위해 ‘정성되고자 하는’ 인간의 도가 서로 소통함으로써 유학의 윤리적 정치 이상이 완성된다. 다시 말해 ‘정성됨’을 매개로 나와 세계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이러한 균형을 완전하게 이룬 인물이 바로 유학에서 이상적 인간상으로 묘사하는 진정한 군자이다.



    ‘대학’ 읽기

    큰 학문의 길, 3강령

    천하 경영의 필요충분조건

    유학의 이상은 ‘수기(자기 수양)’와 ‘치인(사람들을 다스림)’이 완벽하게 조화되어 천하 경영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대학’의 3강령은 물론이거니와 공자의 염원이 담긴 ‘논어’의 이상은 ‘수기’와 ‘치인’이 완벽하게 조화되어 인()과 선()이 통용되는 사회 환경을 형성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가장 앞서 강조하는 것은 자기 수양이다. ‘대학’에서도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천자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자기 수양을 근본으로 삼는다.


    자기 수양을 통해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로 나아가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논어’의 “자기를 극복하고 예를 회복한다”라는 것이 그렇고, ‘대학’의 “밝은 덕을 밝힘에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다”하는 것도 같은 의미로 또한 그렇다. 즉 자기 수양의 완성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로 나아가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물이어야 한다. 이렇듯 ‘수기’와 ‘치인’의 내용은 ‘선과 인이 실현되는 ’결과(평천하)와 필요충분의 관계를 형성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상호 관계가 충족된 상태에서만이 평천하, 곧 세상 가득 선과 인이 들어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러한 3강령으로 표현된 천하 경영의 필요충분조건이 갖추어지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그것이 바로 3강령을 실천하는 ‘대학’의 8조목이다.


    옛날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나라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했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닦았고, 몸을 닦으려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정성되게 했고, 뜻을 정성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앎을 이루었는데, 앎을 이루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에 있다.


    하나씩 뜯어보면, 먼저 ‘옛날에’라는 표현을 한 것은 앞으로 설명할 내용이 예부터 검증된 방법이라는 걸 강조하는 어투이다.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힌다’를 바꾸어 말하면 세 번째 강령인 ‘지극한 선에 머문다’가 된다. 그리고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은 ‘밝은 덕을 밝힌다’라는 첫 번째 강령에 해당하고, 제가, 치국은 ‘백성을 새롭게 한다’라는 두 번째 강령에 해당한다. 그리고 평천하란 이 두 강령이 이상적으로 실현된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평천하(지극한 선의 상태, 인)’를 위한 과정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에서 ‘수신(수기, 극기)’를 거쳐 ‘제가, 치국(치인, 복례)’의 상태로 연계된다. 즉 ‘대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경지인 이상적인 선과 인이 실현되는 ‘평천하’라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명명덕(수가, 극기,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과 ‘신민(치인, 복례, 제가, 치국)’이라는 논리적 구조 하에 각각 조목들은 연결된 고리처럼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8조목 각각은 하나의 논리 구조 아래 연결되어 있으므로, 만약 고리가 하나라도 끊어지면 결국 ‘평천하’의 이상을 이룰 수 없게 된다.



    ‘중용’ 읽기

    도는 무엇일까

    가깝고도 먼 ‘중용’의 도

    ‘중용’의 도 또한 세계 만물을 꿰뚫고 있는 이치이다. 그것은 천지 만물이 존재하는 공통의 본질이면서, 크고 작은 사물이 생명을 누리는 이치이기도 하다. 또 어떨 때는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이나 사람을 사귀는 행동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중용’은 이렇게 말한다.


    군자의 도는 널리 쓰이면서도 은밀한 것이다. 부부의 어리석은 수준에서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그 지극한 데에 이르면 성인도 알기 어려운 점이 있다. 부부의 못난 수준에서도 다 실천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그 지극한 데에 이르면 성인도 실천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천지가 그토록 커도 사람들은 오히려 만족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란 크기로 말하면 천하에도 실을 수 없는 만큼 큰 것이지만, 작기로 말하면 천하에 더 쪼갤 수 없을 만큼 작은 것이다.


    즉 도란 가깝게는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며, 반면 또 한편으로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성인이라 해도 알고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 은밀한 도를 실천하는 방법은 있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성인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극한 경지를 깨닫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중용’에서는 ‘군자의 도란 부부간의 평범한 삶에서 발단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 평범한 세계라 할지라도 지극한 데에 이르면 하늘과 땅에 꽉 들어차 빛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멀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정성껏 탐구하고 실천하는 것에서 도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도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서 ‘중용’에 인용된 공자의 말을 통해 살펴보자.


    군자의 도가 네 가지 있는데, 나는 그 가운데 한 가지도 잘할 수 없었다. 자식이 내게 이랬으면 하는 것을 가지고 부모를 섬겨야 하는데, 그것을 잘할 수 없었다. 신하가 내게 이랬으면 하는 것을 가지고 군주를 섬겨야 하는데, 그것을 잘할 수 없었다. 동생이 내게 이랬으면 하는 것을 가지고 형을 섬겨야 하는데 그것을 잘할 수 없었다. 친구가 내게 이랬으면 하는 것을 가지고 내가 먼저 친구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일상적인 도덕을 실천하고 평소에 말을 신중하게 하는 데에 부족한 점이 있으면 열심히 노력해서 보충하고, 여유가 있으면 다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말이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이 말을 돌아보는 것이니, 군자가 어찌 독실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중용’은 일상생활에서 도를 실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말과 행동이 맞는지 항상 반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군주에게 충성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친구와 신의를 지키며 덕행을 쌓는 것을 제시한다.


    성인, 과거에서 답을 찾다

    역사 드라마를 보면 이따금 왕과 신하가 의견이 맞지 않아 논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일반적으로 신하들이 쓰는 화법은 대체로 이렇다.


    “성군이셨던 선대왕 아무개께서는 이런 경우에 이렇게 처리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경우에는 강하게, 어떤 경우에는 완곡하게 왕에게 압력을 행사하곤 한다. 왕은 이와 같은 신하들의 화법에 때로는 무기력하다 싶을 정도로 무너진다. 그 이유는 신하들이 선대왕을 빙자해 자기주장을 펴는데 왕이 그것에 반대 입장을 고집하면 조상에게 불효하는 것이 되고, 또 성군으로 칭송된 이전의 왕들과 다른 판단을 내린다면 스스로 성군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왕과 신하들의 이 같은 대화에는 과거에 칭송되었던 성군의 정책이 지금의 일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의식이 담겨 있다. ‘대학’을 비롯한 유가의 경전에서 과거의 왕이나 군자들의 덕을 칭송하고 있는 부분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시경’에서 말하길 ‘아아! 앞선 왕들을 잊지 못한다’라고 하니, 군자는 그 현명함을 현명하다 하여 좋아하고 그 친함을 친하다 하여 좋아하고, 소인은 그 즐거움을 즐겁다 하여 좋아하고 그 이로움을 이롭다 하여 좋아하니, 이 때문에 이 세상이 다하도록 왕들을 잊지 못하는구나.


    중국은 다른 어떤 문화권보다도 역사 서술이 발달했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을 지나간 역사에서 찾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과거에서 현재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을 ‘상고주의’라고 한다.


    나는 나면서부터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열심히 그것을 구한 것이다.

    옛것을 배우고 그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라면, 스승으로 섬겨도 좋다.

    있었던 일을 논술하되 새로이 창작하지 않는다. 옛것을 믿고 옛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공자의 말로, 우리는 여기서 과거 문화에 대한 존경심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경향은 ‘대학’과 ‘중용’에도 반영되어서, 옛 성인들의 업적을 칭송한 ‘시경’의 시를 빌려 효과적으로 자기주장을 편다. ‘시경’의 시구를 ‘대학’의 열두 개, ‘중용’은 열여섯 개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시구들은 궁중에서 부르던 음악인 ‘아’에 속하던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시들의 내용은 주로 성인과 군자의 덕을 노래하는 것이다. ‘중용’에서는 성인을 “총명하고 성스러운 지혜를 지녀서 하늘의 본질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가 성인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칭송하고 있다. 이처럼 철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정통으로 내세우거나 자기주장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성인이나 성군으로 칭송된 인물들의 치적을 빌리는 것은 상고주의에 기인한 것이다.


    ‘대학’은 주로 문왕과 무왕의 덕을 칭송하며 독자들에게 최고의 정치를 펴는 인재가 되라고 격려를 하고, ‘중용’은 문왕의 덕이 끊임없이 이어져 하늘과 하나가 되었다고 칭송하며 정성을 다해 수양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 이미 과거에 있었기에 다시 실현할 수 있다는 현실성을 부여해 백성들이 분발하도록 격려하는 데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경’에서 ‘저기 있어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고 여기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밤낮으로 힘써서 영원히 칭송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한다. 군자가 이렇게 하지 않고서 일찍이 세상에 명예를 빛낸 일은 없다.


    ‘시경’에서 ‘오로지 하늘이 명한 것은 아, 깊고 멀어서 끝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늘이 하늘이라 불리는 까닭을 말한 것이다. 또 ‘아,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가, 문왕의 덕의 순수함이여!’라고 했는데, 이것은 문왕이 문왕이라 불리는 까닭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끝이 없는 순수함이었다.


    * * *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