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정신현상학
 
지은이 : 이병창
출판사 : EBS BOOKS
출판일 : 2022년 12월




  • 자유의지는 어떻게 형성될까요? 근대철학의 두 줄기인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종합한 칸트의 철학을 비판하며 인간 정신의 형성 과정에 대한 독자적 이론을 제시합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


    자유의지의 철학자, 헤겔

    자유의지의 문제

    철학은 오랫동안 이론 문제에만 너무 집착했다. 세계의 근거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물음이 철학을 지배했다. 설혹 윤리학에서 규범의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이 역시 이론적으로 다루어졌을 뿐이다. 어떤 규범을 발견하더라도, 규범을 실천하는 의지는 또 다른 문제인데도, 철학은 이런 의지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실천적 의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유의지이다. 의지는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 자신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거기서 나는 자신의 의지가 억압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실천적으로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즉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이 과연 그 자신에게 합당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철학에서는 이것을 흔히 정의의 문제라고 한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사회는 갈등과 고통이 심하다.


    정의의 문제는 자유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내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할 때 나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때 내가 원하는 것이 내 뜻대로 정한 것이라면 이 때문에 내가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원한 것이 나에게 주어져야 마땅한데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분노하면서 나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서는 자유가 없다.


    앞에서 나의 결정이라는 문제를 형식적인 차원에서 자유의지의 문제라고 한다면, 정의의 문제는 실질적인 자유의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실천적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자기 결정과 정의라고 본다면 이 두 가지는 모두 자유의지로 귀결된다.


    자유의지를 단순히 규범적 차원에서 다룬다면 그것은 윤리학의 범위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하는 자유의 체계가 현명한 지도자, 즉 철인왕의 지시에 따르는 훈육의 체계보다 더 나은가? 다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소수는 희생해도 마땅한가? 이 질문들은 이론적 문제, 가치의 문제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 능력은 어떻게 출현할까? 또는 내가 나의 탐욕을 배제하고 오히려 자발적으로 정의로운 것을 선택하는 도덕적 능력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문제를 다룬다면 그것은 실천적인 의지의 문제이다. 철학은 이제 이 의미에서 실천적 의지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정신현상학’ 읽기

    의식

    ‘정신현상학’에서 1장 감각적 확신, 2장 지각, 3장 지성 장을 한데 묶어서 뒤에 나오는 자기의식 장에 대비해 의식 장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여기서 대상은 의식에 대해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 의식 장에서는 인식론적 문제가 다루어지며,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성질, 속성, 형상, 본질이라는 네 가지 개념을 구별하는 것이다.


    성질이란 개별적 대상에서부터 추상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사물의 일반성을 말한다. 이런 일반성 가운데 개별 사물에 속하는 우연적 성질과 그 종류의 사물 모두에 속하는 필연적 성질이 구별된다. 이 후자를 철학에서는 속성이라 한다. 이것이 소피스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철학사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문제이다. 속성 가운데 그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별해주는 속성을 형상이라 한다. 철학사적으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이 이를 논의했다.


    헤겔을 이해하는 데서 더 결정적인 것은 본질 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형상과 본질을 섞어서 쓰지만, 양자는 엄격하게 구분된다. 본질은 사물을 계속해서 그 사물로 만들어주는 형상이다. 예를 들어 역학적 물체는 형상을 가지지만 사실 자기를 지속하지는 못한다. 반면 생물체의 형상은 자기를 재생산하면서 지속하니, 그것이 생물체의 본질이 된다. 본질을 형상과 구분한 최초의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감각

    인식의 최초 단계를 이루는 것은 감각 또는 감각적 확신이다. 이 감각은 인간의 의식이 자기 밖의 대상에 직접 부딪히면서 생겨난 인식이다. 그 인식이 있다면, 의식과 대상 사이에 어떤 것도 개입하지 않으니 양자는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합치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통해 인식된 것이니 그 인식은 나로서는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것이다.


    과연 이 인식이 있을까? 이 직접적인 감각은 나중에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이 추구했던 원초적 명제에 해당하는 것이 되겠지만, 이 인식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식은 이미 일정한 개념을 사용해 이루어지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손가락으로 어떤 것을 지시하면서 그것을 ‘여기’, ‘지금’이라 해도, 이런 말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일반적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서 그것이 내가 지시한 것이라 할 때 그 ‘나’라는 말 역시 그 말을 사용하는 자에 따라서 누구라도 될 수 있다.


    헤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손가락으로 지시만 하면서 그것이 내가 말하려는 것이라고 해도, 이 순수한 개별적 감각은 곧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며 그 자신조차도 조금 전에 자기가 지시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국 맛, 그것이 무엇인지는 어렴풋할 뿐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감각 또는 감각적 확신은 직접적 인식이라는 자기의 요구를 충실하게 실현하지 못한다. 이 개념과 실제의 차이라는 모순을 통해 인식은 감각적인 개별성이 아니라 사물의 일반적인 성질을 인식하려 하며 여기서 감각은 지각으로 이행한다.


    지각

    사실 감각적 확신이란 하나의 추정일 뿐 실제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실제로 세계를 대상으로 하여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지각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여러 사물에서 공통된 일반적 성질을 추상한다. 하나의 사물을 어떤 사물과 비교하는가에 따라 다른 성질이 출현한다. 이런 지각론의 발전은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사물의 형상을 제시하기까지 지속된다. 헤겔은 이런 지각 이론의 발전을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를 보자. 하나의 사물은 여러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사물은 그릇, 즉 매체와 같을까? 사물이 그릇과 같은 것이라면 그 속에서 여러 성질이 공존하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물이 개체라면, 이런 성질은 단순히 공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서로 구분 불가능할 정도로 뒤섞여서 하나로 통일되어야 할 것이다.


    성질이 단순히 그릇에 담긴 것이라면 이 성질은 그 사물 즉 그릇에 내재하는, 고유한 것이라 하기 어렵다. 반면 서로 구분 불가능하게 뒤섞여 있다면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써 문제가 해결될까? 지각 이론의 두 번째 단계에서 헤겔은 소크라테스, 플라톤적인 형상 이론을 설명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성질에 차별을 둔다고 하자. 그런데 사물에 필연적이며 따라서 내재하는 성질은 보통 두 개 이상 있다. 예를 들어 소금의 짠맛과 입방체이다. 둘 다 모든 소금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일반적 성질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소금 속에 내재하는 성질로 두 가지 성질이 모두 들어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소금이란 하나의 통일적인 개체 즉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결국, 둘 중의 하나는 일차적이고 다른 하나는 부차적이라고 구분할 수밖에 없다. 플라톤은 이런 일차적인 속성을 사물의 형상이라고 규정하고 헤겔은 이를 ‘대자적인 성질’이라고 말한다. 둘 다 필연적인 속성이니, 둘 중의 어느 것이 일차적이어야 할까?


    플라톤은 속성의 일차성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소금을 설탕과 비교할 때 소금의 짠맛이 소금을 소금으로 만드는 일차적 속성, 즉 형상이다. 그러나 소금을 밀가루와 비교해보면 소금의 입방체 구조가 밀가루로부터 구분시켜주는 형상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일종의 미봉책이다. 헤겔은 이 구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여기서 기본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구분된 것은 서로 내적인 통일체를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자는 서로 공존하면서 다만 외면적으로 관계할 뿐이니 아직은 이런 구분을 통해 진정한 통일체로서 개체가 출현하지 않는다.


    헤겔은 일차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은 내적인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헤겔은 내적 통일을 법칙 개념에서 발견한다. 이 법칙은 두 가지 요소가 서로 관계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파악하는 것이 곧 지성이다.


    지성

    지성에서 헤겔이 다루는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이라는 개념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법칙과 힘이라는 개념이다. 이 과정에 대한 헤겔의 서술은 헤겔적 사유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제 헤겔의 서술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지각 장의 끝에서 헤겔은 두 개의 일반적 속성이 하나로 불가분의 통일을 이루는 것은 두 가지가 법칙으로 관계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 통일을 위해서 법칙 관계는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상호작용의 방식으로 결합해야 할 것이다. 헤겔은 이런 두 개의 속성이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이제 힘의 유희로서 파악한다.


    1) 힘의 유희

    이때 그가 참고로 하는 사유의 모델은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시작된 불의 모델이다. 촛불은 상승하는 힘과 하강하는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두 힘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고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니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를 로고스(Logos, 질서)라 했다.


    불의 비유 또는 미분 관계를 기초로 해서 헤겔은 두 요소가 이루는 법칙 관계 내부에는 두 대립하는 힘이 상호 운동하고 있다고 본다. 그 힘은 곧 수축하는 힘과 표출하는 힘인데, 양자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표출하는 힘은 수축하는 힘을 수축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수축하는 힘이 그렇게 하도록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이 힘의 모습을 연상하려면 태극의 도식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사물의 법칙이 이렇게 힘의 유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개별 법칙을 일반화하면서 드러나게 된다. 개별 법칙에서는 법칙 관계를 이루는 두 요소가 이 법칙 또는 형식과 무관한 자립적인 성질 또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 법칙에서는 이 내용이 사라지고 순수한 힘의 관계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지상에서 낙하법칙이나 조수간만의 법칙을 일반화하면 만유인력이라는 힘의 개념이 나온다. 만유인력은 인력과 척력이라는 힘의 관계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처음에 전기는 유리 전기와 수지 전기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전기 현상이 순수하게 일반화되면서 +전기와 -전기라는 순수한 힘의 관계로 표현된다.


    2) 생명 개념의 출현

    헤겔은 이제 힘, 즉 일반 법칙과 개별 법칙 사이의 관계가 사물의 층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통해 유기체에서 생명 개념을 도출한다.


    개별 법칙과 전체 법칙의 관계를 보자. 이 관계는 사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역학적 물체의 세계에서 예를 들어 +, - 전기의 순수한 힘은 구체적으로 수지, 유리를 비롯한 물체 속의 전기로 나타난다. 여기서 전체는 부분을 포괄하지만, 부분은 자립적 요소를 갖고 있어서 전체에 대해 외면적으로 관계한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생명체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생명의 내적인 힘은 외적인 세포를 통해 표현되지만, 이 관계는 외면적인 관계가 아니다. 내적인 관계이다. 즉 개별 세포는 신진대사를 통해 끊임없이 바뀌지만, 전체 유기적인 구조는 유지되면서 생명체는 자기의 형상을 계속 유지한다.


    헤겔에 따르면 생명체에서 자기를 계속 생산하는 형상으로서 본질이 출현한다. 이런 본질은 동시에 세포 조직을 통해 자기를 개체화하니, 생명체에서만 비로소 개체가 개체로서 출현하면서 다른 개체와 구별되는 개체화가 출현한다. 반면 역학적인 물체는 자신을 개체화하는 힘을 갖지 못한다. 헤겔은 생물체의 경우 개체로, 반면 물체의 경우는 개별자로 표현한다.


    인륜적 정신

    이성 장이 인식적 과정이라는 점에서 의식 장에 대응한다면, 정신 장은 실천적 의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자기의식 장을 반복한다. 자기의식 장이 개인이 형식적 자유에 이르는 과정이라면, 정신 장은 개인이 실질적 자유의지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역사를 전체적으로 볼 때, ‘인륜의 시대’인 그리스 시대에서 ‘법적 상태’인 로마 및 중세까지는 인륜적 실체에서 아직 미분화된 개인이 자립성을 획득하면서 개인적 자아가 발전하는 시대이다. 헤겔이 ‘자기 소외된 정신’의 시대로 표현한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개인적 자아가 자기를 극복하여 일반적 자아로 발전한다.


    인륜성(습속)의 시대

    1) 그리스 정신

    그리스 정신의 개념 즉 전체적 윤곽을 제시해보자. 그리스 인륜적 실체는 가족과 국가로 분열되어 있다. 가족 속에서 개인은 미분화 상태에 있어서 개인은 그 통일성을 내적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다. 반면 국가에서 개인은 독립적으로 출현하면서 국가의 명령을 관습적인 방식으로 수행한다. 국가의 명령은 개인에게 습속으로 주어진 당위일 뿐, 개인은 이를 자각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 헤겔은 가족의 통일성을 신의 법칙이라고 하며 국가의 명령은 인간의 법칙이라고 규정한다.


    2) 두 실체로의 분화

    그리스 정신에 대한 헤겔의 논의는 a, b소절에 걸쳐 있다. a소절은 그리스 정신에서 두 원리 즉 가족과 국가가 고요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어서 b소절은 개인이 행동에 나서면서 이런 균형이 깨어진다는 것을 설명한다. 우선 a소절을 살펴보자.


    개인이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국가는 개인을 외적으로 통일하려 한다. 헤겔은 이런 국가 속의 개인을 공민으로 규정한다.


    도시국가 속에서 개별 공민은 처음에는 관습적으로 국가의 명령을 받아들인다. 국가의 명령은 무조건 관철되며 정부는 법을 공공연하게 집행하고 그 힘의 행사에는 어떤 소추도 면제되어 있다.


    반면 가족에서 개인은 미분화되어 있으며 가족 사이에는 내적인 통일성이 존재한다. 이 내적 통일성은 자연적인 것으로 나타나니, 곧 혈연적 통일성이다. 이 혈연성은 혈족의 신인 부뚜막의 신을 통해 상징된다.


    3) 두 실체의 상호 연관

    이상과 같이 가족과 국가의 원리를 제시한 다음 헤겔은 각 실체가 고립적이지 않으며 자기 속에 이미 다른 실체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어서 양자는 상호 이행, 상호 침투하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먼저 국가를 보자. 국가는 개인을 통일하는 배타적 일자가 되어 고유한 의지를 지녀야 한다. 개인은 점차 자기를 자각하면서 자립화하는 경향성을 지니므로 국가는 해체될 위험에 처한다. 국가는 이 위험을 피하려 여러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국가는 때때로 전쟁을 통해 개인이 자립화하는 경향성을 파괴하곤 한다. 그런데도 개인의 자립화 경향성은 그치지 않는다. 개인은 자기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국가를 수단으로 삼으려 하므로 국가는 이를 제어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국가는 최종적으로는 가족의 자연적 통일성에 기초해 자신의 통일성을 강화하는 힘을 얻는다. 다시 말해 국가는 가족의 원리를 요청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시대 국가가 민족국가(Nation)가 된 것이다.


    가족의 경우 내적 통일성은 자연적으로 해체된다. 가족 관계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의 관계로 발전한다. 남편과 아내는 성관계를 기반으로 자연적 통일에 머무르지만, 부모와 자식은 이미 자연적 통일을 넘어서 서로 동정심을 통해 결합한다. 마지막으로 형제와 자매는 자연적 관계를 벗어나 서로 대등한 무차별적 관계가 되면서 여기서 가족을 파괴하는 개인화의 원리가 출현한다.


    4) 범법과 죄의식

    b소절에 이르러 헤겔은 균형 속에 있는 그리스 인륜적 실체가 파괴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파괴를 매개하는 것은 각 실체를 대변하는 인간의 행동이다. 이 부분에 관한 헤겔의 서술은 대부분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가) 행위의 단호함

    그리스 정신에서 각 집단에 속한 개인은 자기 집단의 원리를 아무런 저항감 없이 수행한다. 가족의 경우에 개인은 혈연을 대신할 뿐이다. 국가 속의 공민도 관습적으로 국가의 명령을 수행한다. 그는 정부의 명령에 대해 의혹을 품지 않는다. 어느 실체에서나 그 대변자는 자신이 속한 실체의 원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어떤 주저함도 없이 수행한다.


    나) 범법과 운명

    문제는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와 가족이라는 인륜적 실체의 두 측면이 서로 침투하고 서로 결합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행위자가 자기가 속한 집단의 법칙을 의심과 주저함이 없이 수행하면 그는 이미 자기 실체 속에 침투해 있는 대립하는 실체의 법칙을 해치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자기와 대립하는 실체의 법칙을 통해 보복받는다. 대립하는 것의 균형이라는 그리스 정신의 법칙은 한쪽이 다른 쪽을 해치면 다른 쪽이 이에 반발하면서 균형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균형의 법칙은 그리스 시대 운명이라는 개념으로 출현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범법에 대한 운명의 처벌을 받는다.


    다) 죄의식과 몰락

    개인은 한편으로 자기가 속한 실체의 법칙을 결단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저지른다. 소포클레스의 초기 비극 ‘오이디푸스’의 경우 무지는 자기 행위에 대한 무지이지만, 후기 작품인 ‘안티고네’에서 무지는 자신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에 대한 무지이다. 예를 들어 ‘안티고네’에서 안티고네와 클레온은 자기가 다른 실체의 법칙을 해친다는 것을 알고 행위를 수행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자신에 속한 실체의 법칙은 정당한 것이지만 다른 실체의 법칙은 부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른 실체의 법칙 역시 그 자신의 법칙만큼이나 정당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대립하는 실체의 법칙으로부터 보복당하면서 비로소 자기가 해친 실체의 법칙 역시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보복을 통해 그는 자신의 실체와 대립하는 실체가 서로 내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마침내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이렇게 운명의 보복을 당해 몰락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감추어져 있는 실체의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다가간다.


    5) 제국의 등장

    전체적으로 본다면, 국가는 가족에 대해 승리한다. 가족의 힘은 지하에만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은 그에 대해 복수하게 된다. 왜냐하면, 국가는 가족의 힘이 없이는 단결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 국가는 양자의 통일체로서 민족국가라는 형식으로 존재했다.


    민족 자체가 자연적인 것으로서 그 자체가 개별성을 지니므로, 이 시기에 다양한 민족국가가 출현하면서 서로 대립한다. 하지만 개별 국가는 그 법칙이 우연한 개별성인 민족성에 기초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몰락하며 마침내 세계 제국이 세워진다. 그것이 로마에서 등장한 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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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