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걸러지고 검증된 최고의인문서적들을 통해 우리는 각 시대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기도 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를 거울에 비추어보듯 반영하여 그 해답을찾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문학의 정점에 있는 철학은 인간과 세상, 자유와 이상, 가치와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찾는 학문으로써, 깊이 있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능력,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을 한눈에 꿰뚫는 통찰력을 키워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막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해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청소년 시기에 철학 공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공을 향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가치관으로 소신 있게 개인의자유와 개성을 추구하며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사회를 함께 이루려는 노력의 정신적 뿌리가 될것이다.
철학적 사고를 키워주는 이 책은 인간의 기원,인간의 본질, 인간의 의미, 인간의 진화 등 네 가지 분야로 나누어 인간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철학자들이 어떻게 철학적 사고를 길렀는지,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인생은 무엇인지, 철학자들의 삶의 이상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 저자관제
■ 감수플라톤철학연구소
■ 역자정주은 고려대학교 중문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으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자 및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과학적사고의 기초를 위한 철학형 사유』『동물, 무대에 오르다』『‘노’ 라고 말하는 아이』『몸,예술로 말하다』『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하는 황금법칙』『스마트 탐정 바오다다』 등이 있다.
■ 차례 서문 - 철학자와 어린이 스핑크스의수수께끼
철학형 지혜 1 인간의기원 첫번째 이야기 토템과 신화 두번째 이야기 만물의 어머니, 대지 세번째 이야기 정기가 낳은 존재 네번째 이야기 창조주가 만든 존재 다섯번째 이야기 인간은 자연의 산물 여섯번째 이야기 인간은 노동의 산물 일곱번째이야기 과학적 가설
철학형 지혜 2인간의 본질 첫번째 이야기 영혼과 육체의 충돌 두번째 이야기 타고난 지적 욕구 세번째 이야기 타고난 쾌락욕구 네번째 이야기 인간은 기계 다섯번째 이야기 자유 의지 여섯번째 이야기 본능과 충동 일곱번째 이야기 인간은사회관계의 총체
철학형 지혜 3 선과악의 투쟁 첫번째 이야기 천사와 짐승 두번째 이야기 공자와 맹자의 성선설 세번째 이야기 양주의 자기중심주의 네번째 이야기 도가의 자연주의 다섯번째 이야기 성 삼품설
철학형 지혜 4 인간의 진화 첫번째 이야기 자유의 왕국이라는 이상 두번째이야기 인간과 자연 세번째 이야기 인간과 사회 네번째 이야기 인간과 자아
인간의 기원, 본질, 의미, 진화 등 네 가지 분야를 통해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인생은 무엇인지, 철학자들의 삶의 이상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인생의 깨달음을 던져주는 철학형 지혜
인간의 기원
첫번째 이야기 토템과 신화
'토템'이란 말은 북미 인디안 부족의 방언인 Ototemn에서 유래한 말로 '친족, 친족의 상징물'이라는 뜻이 있어요. 원시인들은 신성한 힘을 지녔다고 믿는 특정한 동식물이나 자연 현상을 부족의 상징물로 삼아 숭배했어요. 씨족사회에서 토템은 신성한 힘을 상징했어요. 사람들은 토템 숭배를 통해 자연과 자연에 깃든 신에 대한 존경과 경외감을 표현했어요.
그 대상은 다양하지만 모든 토템숭배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바로 인간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에 관한 궁금함, 조상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원시인들은 인간 삶의 근원인 만물을 통해 산과 물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곳곳에 신성한 존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은 자연스럽게 토템신앙을 발달시켰어요. 일단 어떤 동물이나 식물에 신성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믿으면 먼저 이를 그림으로 그렸어요. 그런 다음 신을 숭배하듯 이것들을 숭배했지요. 이 때문에 대부분의 토템은 생명력이 충만하고 강인하며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장수와 다산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지요.
인간은 씨족과 토템이 특별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토템이 가진 신성한 힘은 사악한 존재를 처단해 씨족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어요. 이 사실은 최근 대량으로 출토되는 벽화와 토기, 그릇 등에 형상화된 토템을 통해 알 수 있어요.
매와 뱀은 가장 강인하고 사나운 동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많은 씨족들은 매와 뱀을 토템으로 숭배했답니다.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신화에 따르면 독수리는 창조주이자 천지만물의 시조라고 해요. 남아프리카 부시맨의 신화에서는 뱀이 변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하고요. 또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자바족은 뱀의 형상을 한 여신이 만물을 창조했다고 믿었어요.
초기 토템신화는 대부분 인간의 기원과 탄생을 다룬 이야기였어요. 선사시대에 중국 대륙에는 많은 씨족 부락이 출현했어요. 그들은 부족별로 서로 다른 토템신앙을 만들었어요. 토템마다 흥미로운 탄생신화를 갖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야기도 있어요.
중국 전설에 따르면 천지를 창조한 건 반고라는 신이었대요. 그는 용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용 머리와 뱀 몸은 반고를 상징하는 토템이 되었어요. 이 밖에도 자연 현상을 상징화한 토템을 통해 중국인의 조상이 해, 달, 별 등을 숭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신화는 현실에서 소재를 얻은 다음, 환상을 덧입혀 토템을 의인화했어요. 신화로 거듭난 토템은 곧바로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으면서 부족민들의 추앙을 받게 됐어요. 토템이 금기시하는 것이나 신앙시하는 것은 신화의 힘을 빌려 불변의 진리로 재탄생하게 되었어요. 물론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구석이 있긴 해요. 하지만 이런 신화가 아직까지도 전해지는 이유는 그것을 믿어서가 아니에요. 진짜 이유는 신화 속에 살아 숨 쉬는 인물과 풍부한 상상력 안에 수천 년 전 원시시대의 기운이 녹아 있기 때문이에요.
원시인들이 처음으로 세상을 인식한 그 순간부터 인간의 의식은 발전하기 시작했어요. 토템과 신화는 원시인들의 일기나 마찬가지예요.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부호로 자신들의 성장기를 기록한 것이랍니다. 머리 아홉 개 달린 새나 거인, 신들의 모습과 이야기 하나 하나가 모두 그 시절에 대한 기록이에요.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멀고 먼 원시시대를 그려볼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시 원주민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바람, 수확의 기쁨, 투쟁과 평화를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는 신화를 통해 토템이 일종의 포기선언이면서도 희망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대자연에 비해 인간은 너무도 나약한 존재였어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인간은 토템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했어요. 그러므로 토템이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였다는 사실은 바꿔 생각해보면 인간이 자신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해요. 약한 인간은 강한 대자연과 충돌할 때마다 토템에게 더 큰 힘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어요. 토템의 힘이 강할수록 어려움이 닥쳤을 때 더 잘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이 과정에서 자연은 더욱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고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었어요.
신화는 원시시대의 사고방식으로 만들어졌어요. 신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성이 눈뜨기 시작했다는 뜻이지요. 원시인들은 토템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면서 그 안에 인간의 탄생과정을 담았어요. 사용하는 단어가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복잡해졌어요. 그러는 사이 한 사람의 환상에서 시작된 신화는 공동체의 의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바뀌었고 인간의 의식도 더불어 성장하게 되었어요.
인간의 본질
다섯번째 이야기 자유 의지
태초에 시작된 인간의 자아 찾기 여정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 고된 여정에서 감성과 이성이라는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된 인간은 두 팀으로 나뉘어 길을 떠났어요. 그 결과 '기계', '지적욕구', '쾌락' 등의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감성의 길을 걸었든 이성의 길을 걸었든 인간의 본성은 이성이고 사회를 통해 인간을 통제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어요. 그러나 19세기 들어서 주류에 순응하지 않고 딴죽을 거는 사상가들이 나타났어요. 인간 본성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 그들은 신도 정신도 아니고 물질도 느낌도 아닌 그저 맹목적이고 본능적인 의지가 인간이라고 주장했어요.
갈수록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비이성적인 성향을 탐구하는 데 몰두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어느 틈에 주류의 자리를 꿰차고 사회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기존의 틀을 박차고 나온 것은 19세기 독일의 의지주의였어요. 대표적인 인물은 '삶에 대한 의지'를 주장한 쇼펜하우어와 '권력의지'를 주장한 니체였어요.
쇼펜하우어와 이성주의의 대부였던 헤겔은 같은 시대를 살았어요. 당시 헤겔의 이성주의는 사상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어요.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본질은 이성'이라고 하는 헤겔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며 "나는 내 의지대로 된다."라고 주장했어요.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파격'이었어요. 쇼펜하우어는 단 한마디로 창조주, 정신 실체, 물질 실체에서 만물의 근원을 찾던 낡은 생각을 부정하고 태양, 달, 지구 및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삶에 대한 의지의 발현으로 만들었어요.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내면과 외면이 지금의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은 모두 인간이 가진 의지 덕분이라고 했어요. 그는 인간이 의지를 갖고 있기에 기억, 성격, 지혜 등 모든 심리활동과 육체활동을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했어요.
왜 갓 태어난 아기들에게 머리가 있는 것일까요?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아기들도 선천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럼 혈관, 심장, 입, 위 등은 왜 있는 거지요? 이에 대해서도 쇼펜하우어의 대답은 똑같아요. "태어나기 전부터 혈액을 흐르게 하려는 의지,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의지는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의지는 삶을 향한 막을 수 없는 충동이에요. 그것은 언제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결코 만족할 줄을 몰라요. 마치 가슴에 숨겨둔 한 마리 맹수처럼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지요. 삶에 대한 의지는 끊임없이 자아를 실현하고 생명을 연장시켜 결국 삶을 유지하고 자손을 번식시키도록 만들어요. 삶에 대한 본능적인 의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가지고 있어요. 다만 동물의 삶에 대한 의지는 무의식적일 때가 많지만 인간의 의지는 의식적이라는 차이가 있어요.
쇼펜하우어의 삶에 대한 의지는 철학, 문학 등 사상계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니체였어요. 니체는 "쇼펜하우어는 현대인들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도록 했다."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생각에 늘 찬성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는 인간이 비이성적인 의지라는 생각에는 동의했지만 단순히 삶에 대한 의지에 불과하다는 주장에는 반대했어요.
니체는 인간의 삶을 끝없는 자기극복의 과정이라고 보았어요. 삶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고 발전하는 것을 말해요. 이를 바탕으로 니체는 삶의 의지는 권력 의지라고 주장했어요. 다시 말해 인간의 본질은 현재의 자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존재로 발전해 나가면서 정복하고 통제하고 재창조하려는 강력한 생명력이에요.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변하지 않는 본성이란 없어요. 권력 의지의 본질은 끊임없이 창조하고 초월하는 거예요. 니체는 세상을 경악시킨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을 통해 인간이 곧 신이고 자기 자신의 주인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렇다면 니체는 인간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창조해 낸 존재이며 동물을 초월한 결과물이에요. 인간의 귀천과 능력은 모두 얼마나 초월하고 창조하느냐에 달려있어요.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어요. 성적이든 성격이든 아니면 경제력이든 인간관계든 누구나 스스로에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에요. 이때 그런 부분을 극복하고 새로운 자아를 창조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인간의 창조능력에 달려있어요.
창조에는 기회와 모험이 공존하고 있어요. 니체는 "인간 자체가 모험이다."라고 했어요.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탐색해고 도전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아를 실현하라고 외쳤어요.
모험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쓰라린 실패를 안겨줄 수도 있어요. 강자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고 약자에게는 충격이 될 거예요. 약자는 언제나 위험 앞에서 꼬리를 내리면서도 창조의 기회를 놓칠까봐 불안해하고 고민해요. 하지만 강자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설령 뜻밖의 실패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지요.
선과 악의 투쟁
천사와 짐승
셰익스피어는 주옥같은 작품들로 시공을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어요. 그는 번뜩이는 지혜가 담긴 격언으로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본질적인 부분을 자극했어요. "인간은 절반은 천사, 절반은 짐승이다."라는 말도 그래요.
천사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온화한 얼굴에 새하얀 날개를 달고 있는 존재를 생각할 거예요. 반짝반짝 눈부시게 빛나는 그들은 천국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행복한 소식을 전해 주지요. 천사는 매우 상냥하고 친근한 존재예요. 『성경』에 따르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예요. 전지전능한 하느님은 무한한 사랑을 갖고 있으니 그의 사자인 천사도 당연히 그렇겠지요?
이와 반대로 짐승이라고 하면 다들 늑대며 호랑이며 사자 같은 포악하고 사나운 동물을 떠올려요. 짐승들은 상대가 약하다고 해서 동정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굶주린 짐승들은 약한 동물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지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짐승들의 눈은 마치 레이더처럼 사방을 샅샅이 훑어요. 그러고는 미친 듯이 먹잇감을 찾아다녀요. 안타깝게 짐승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동물은 날카로운 발톱에 산 채로 찢겨 죽게 돼요.
인간은 상반된 두 가지 본성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본능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짐승과 같은 본성이에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천사와 같은 이성적 정신이에요.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천사와 짐승 사이를 오가요. 그 중에는 천사가 되는 사람도 있고 짐승이 되는 사람도 있지요. 철학자들의 입장도 두 갈래로 나뉘었어요. 어떤 철학자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므로 인간의 행동과 삶은 언제나 선을 추구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와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는 철학자도 적지 않았어요. 어떤 입장이든 철학자들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본성이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과연 선할까요 아니면 악할까요? 이러한 논쟁은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어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중국 선진의 공자와 맹자까지 동서양의 철학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할 것처럼 인간 본성 중에 자연스러운 속성은 악(惡)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들은 한목소리로 악이 인간을 유혹해 식욕과 물욕, 정욕을 생기게 한다고 했어요. 플라톤은 농민과 상인을 두고 태생적인 정욕의 노예라고 주장하기도 했어요. 육체적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곧 사악한 것으로 보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게 있어요. 처음부터 '선'을 이성이나 도덕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은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소크라테스의 '지식이 곧 미덕'이라는 말처럼 지적인 사람일수록 더 선한 행동을 하고 고상한 품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어요.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의 사상계가 시종일관 탐구했던 문제도 바로 인간의 선악이었어요. 시간은 2000년 전 선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위대한 사상가였던 공자와 맹자, 노자 등은 인간의 행위를 관찰하고 마음을 연구했어요. 그러고 나서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각기 다른 결론을 내렸어요. 왜냐하면 다른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과연 선한지 아니면 악한지에 대해 답을 내려야 했거든요. 그 결과, 다양한 견해가 쏟아져 나왔답니다.
인성은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곤 했어요. 대표적인 사상가로는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 그와 정반대의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와 양주, 자연성을 내세운 도가, 성삼품설의 동중서, 심성론을 제기한 성리학 등이 있어요. 이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였어요. 성선설은 전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쳤고 가장 많은 인정을 받았어요.
인간을 천사가 아니면 짐승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처럼 전혀 다른 둘 사이에도 공통점은 있어요. 사람은 모두 행복해지길 바라기 때문에 짐승이 아닌 천사에 가까워지려고 한다는 점이에요. 인간은 분명히 짐승과는 달라요. 설령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더라도 되도록 천사의 본성을 발휘해 짐승의 본성을 억눌러야 해요.
선한 본성도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 그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정해져요. 한번 마약에 빠진 사람은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지요. 설령 그것이 짐승만도 못한 짓이라 하더라도 결코 주저하지 않아요. 돈에 눈이 멀어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나 다름없어요. 진정한 '사람'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에요. 사리사욕에 빠져 짐승의 이빨을 드러낸다면 결코 진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요.
우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선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는 더 많은 지식을 배우고 도덕적 수양을 쌓아야 해요. 그렇게 해서 이성과 도덕의 힘으로 사악한 충동을 억제해야 해요. 이것은 사람이 짐승 같은 본능에서 멀어져 사람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랍니다.
인간의 진화
인간과 자연
지난 30년 동안 지구상의 자원 중에 3분의 1이 완전히 없어졌고 숲은 12%나 사라졌어요. 생물종도 3분의 1이 자취를 감췄고 인간이 마실 수 있는 물은 55%나 줄어들었어요.
1999년과 2000년에 발생한 가뭄, 홍수, 태풍, 폭우, 허리케인 등의 자연재해는 반세기 전보다 다섯 배나 늘었어요. 매년 평균 2.11억 명이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었어요. 전쟁으로 인한 피해지수와 비교해보면 7배나 많아요.
현재 도시 거주민 중 약 70%(15억 명)가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있고 이로 인해 매년 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매일 15,000명이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죽어요. 더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죽는다는 거예요. 또한 매일 55,000 헥타르에 달하는 숲이 파괴되고 있고 161km²라는 엄청난 면적의 토지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매일 14만 대의 새 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세계 각지에 세워진 400여 기의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26톤의 핵폐기물을 쏟아내고 있어요. 게다가 매일 12,000배럴의 석유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어요.
하루가 다르게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수치들이 쏟아져 나오자 환경 전문가들의 발걸음도 급해졌어요. 그들은 "지구는 50년 뒤에 멸망할 것이다."라고 경고하며 하루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했어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선택의 길 위에 서게 되었어요.
먼저 일분일초라도 빨리,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더 이상 지원을 약탈하지 않는 길이 있어요. 또 다른 길은 지구를 대신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는 거예요.
1972년 로마클럽(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국제적인 시야에서 해결하려는 미래연구기관)은 첫 번째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에서 깜짝 놀랄만한 예측을 내놓았어요. 보고서에 따르면 만약 지금의 세계인구, 산업화, 자원 소모, 환경오염, 식량생산의 흐름이 바뀌지 않고 지속된다면 다음 세기의 어느 순간에 지구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게 돼요. 그때가 되면 지구의 멸망을 막을 수 없어요. 전 지구적 생태 위기에 대한 로마클럽의 보고서가 발표되자 세계는 두려움에 휩싸였어요.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보고서의 예측이 하나씩 맞아떨어졌어요. 오늘날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어요. 그래서 전 세계가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지난 100년 동안 물질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 인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발전을 이루었어요. 인간이 생산해 낸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어요. 그러나 갖가지 상품을 만들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자연자원을 가져다 썼어요. 그러면서도 이 때문에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오수는 아무렇게나 대자연으로 내보냈어요. 소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동식물과 각종 상품을 소비하고 나서 발생한 많은 양의 쓰레기와 폐기 가스를 그대로 대자연에 버렸어요. 자연은 귀중한 자원을 내준 대가로 고작 쓰레기를 얻었을 뿐이에요. 이제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이기적인 행위를 받아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1998년, 중국 대륙 위를 흐르던 장강, 눈강, 송화강과 같은 큰 강들에게서는 지난날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고요하게 흐르던 강들은 그 동안 감춰왔던 잔인한 발톱을 드러냈어요. 홍수로 불어난 강물이 인간을 향해 마수를 뻗쳐온 거예요. 그 결과 장강 중하류 지역의 농경지와 마을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어요.
홍수는 매년 발생하는 자연재해였어요. 그런데 어째서 그 해에만 그토록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것일까요? 그것은 자연재해이자 동시에 인재였어요. 사람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 장강, 눈강, 송화강 상류에서 많은 양의 나무를 베어냈어요. 이 때문에 1950년대 초 40%에 달했던 녹지는 20%로 줄어들었어요. 숲의 면적이 줄어들자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흙도 늘어났어요. 짙푸른 물탱크는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어요. 자기를 받아주던 숲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자 폭우는 흙더미를 몰고 강으로 쏟아져 들어갔어요. 강바닥에 진흙이 쌓이면서 자연히 물의 높이가 올라갔고 결국 심각한 홍수 피해로 이어지게 된 것이지요.
20세기는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둔 빛의 시대였어요. 또한 자연재해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 어둠의 시대였어요. 세우고 파괴하고 자연을 정복하면서도 자연에게 정복당한 시대였던 것이지요. 의학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여 인간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살게 되었어요. 하지만 1950년대부터 기상과 관련된 사망지수는 오히려 매년 5% 속도로 늘어나고 있어요. 농업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났지만 식품에 남아있는 농약을 먹고 죽는 사람은 해마다 늘고 있어요. 산업의 발달로 인간을 위한 편의시설이 늘어났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나무들이 잘려나갔어요. 사람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 주변에는 스모그와 먼지, 폐기 가스, 산성비, 오수가 넘쳐나고 있어요.
오랫동안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오만하고 이기적인지, 얼마나 욕심이 많고 무자비한지 그리고 얼마나 안목이 좁은지 전혀 깨닫지 못했어요. 인간의 약탈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자연이 반격을 시작하자 이제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어요. 하천이 옆으로 흘러넘치고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고 방사능이 인간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금에서야 인간은 깨달았어요. '자연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구나!'
자연은 마음대로 빼앗아도 되는 대상이 아니며 바라는 것은 무엇이나 내어주는 존재도 아니에요. 자연을 아끼는 것은 우리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지구를 구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미래를 구하는 것이에요. 다른 생물처럼 인간도 대자연으로부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어요.
대자연의 품속에서 자란 인간은 마침내 미개한 시대에서 벗어나 문명 시대로 들어섰어요.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기적을 이룸과 동시에 욕심과 무지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어요. 인간의 행위로 환경은 오염되고 생태환경은 악화되었어요.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며 인간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바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만 인간에게 미래가 있다는 진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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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