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이 힘드냐고 아들러가 물었다
 
지은이 : 오구라 히로시
출판사 : 지니의서재
출판일 : 2024년 01월




  • 추상적 개념과 어려운 전문 용어로 가득한 심리학 책들과 달리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고민과 행동을 통해 아들러 심리학을 설명합니다. 직장 내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흥미를 돋우면서도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을 알기 쉽게 안내합니다.


    회사생활이 힘드냐고 아들러가 물었다


    스스로 다그쳐도 의욕이 없어져요

    ‘후유. 오늘도 늦잠 자는 바람에 조깅을 빼먹었네. 난 왜 이리도 의지가 약할까.’ 겨우 지각을 면하고 후다닥 자리에 앉은 나는 ‘휴우!’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러 팀장은 미국의 아들러 심리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한다. 그 대학원은 허구한 날 밤샘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웬만해선 졸업하지 못하는 냉엄한 세계라고 들었다. 그러니 그는 의지가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떠한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기와 조깅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료. 무슨 일이지? 아침부터 크게 한숨을 쉬고 말이야. 혹시 자네 자신을 탓하고 있나?”


    “네. 오늘도 조깅을 못했어요. 팀장님은 오늘도 달리셨죠?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해요.”


    “그래서 자신을 탓했구먼. ‘지금처럼 해서는 안 돼.’ 라고 기합도 넣고 말이야. 어때, 맞지?” 


    “팀장님, 자신을 다그치는 게 뭐 문제가 있나요? 매일 조깅 하나 못 하는 자신을 용서하면 점점 나태해지잖아요. ‘현재’를 ‘부정’해야 발전하지 않나요? 지금 상황에 만족하면 무엇이 달라지겠어요!”


    “정말 그럴까?”


    “자네는 오늘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 조깅을 빼먹었어.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야. 하지만 자네의 주관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지. 그중 어느 쪽을 택할지는 자네에게 달렸네. 하나는 ‘못 한 일’에 주목해서 못난 자신을 탓하는 거야. 이를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부정적인 주목’이라고 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못난 인간이다.’라고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하는 거지.” 맞는 말이다. 나는 늘 그래왔다. 그럼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


    “다른 하나는 ‘잘하고 있는 일’에 주목하는 거야. ‘못 한 일’이 아니라 ‘잘하고 있는 일’에 주목해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지. 이를 ‘긍정적 주목’이라고 해. 내가 열심히 하고 있구나. 이렇게 자신의 용기를 북돋으며 마음의 연료를 채우는 거야.”


    “잘하고 있는 일을 보란 말인가요?”


    “그래! 료, 자네는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 ‘잘하고’ 있잖나! 왜 굳이 ‘못 한 일’에 주목해서 괴로워하지?”


    “제가 뭘 잘하고 있단 말씀이세요? 오늘 아침에도 늦잠을 자느라 조깅을 빼먹었고, 그저께도…. 결국 이번 주에는 조깅을 이틀밖에 못 했어요.”


    “일주일에 이틀이라고? 빙고! 그러야! 그거! 바로 그거라고!”


    “중요하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 자네는 아주 ‘잘하고’ 있어! 일주일에 무려 이틀이나 조깅을 했잖은가. 대단한 일이지. 조깅을 시작하기 전인 반 년 전에는 조깅을 해 본 적이 없었잖은가.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이틀이나 일찍 일어나 조깅한 뒤 회사로 출근해 일도 하고. 그런데 왜 ‘잘하고 있는 일’에 주목하지 않는 거지?”


    “질문 하나 하지. 자네 인생에서 ‘내가 발전했구나.’라고 생각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게.”


    딱 한 번 있었다. 회사에서 신상품을 개발했을 때 신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 전화를 돌린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만나주겠다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달리해 보고, 목소리에 완급을 주기도 하고 전화 거는 상대를 홍보부서가 아닌 영업부서로 바꿔 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자 돌아오는 반응이 달려졌다. 그 당시 나는 확실히 발전했다. 거의 3년이 지난 일이지만 말이다. 나는 머뭇거리며 그때의 경험을 들러 팀장에게 이야기했다.


    “바로 그거야! 그런 걸 말하는 거야! 그때의 일을 떠올려 봐. 자네는 그때 잇따라 약속이 잡혀서 ‘잘하고 있는 자신’에게 주목했던 거야. 기분이 어땠지? ‘이제 그만할래. 지금만큼만 유지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나? 아니면 ‘좋았어.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잘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나?”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때 나는 확실히 공격적으로 나갔다. 결코 지금까지 실적에 만족하며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만족할수록 ‘더, 조금 더!’를 외치며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알겠지, 사람은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 때 뭐든지 가능해져.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가득해지면 저절로 ‘더, 조금 더!’, ‘조금 더!’하면서 우월해지려고 하지. 능력이 모자란 사람도 치켜세우면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지. 어렵게 말하면 ‘존(zone) 경험’ 이나 ‘플로(flow) 상태’인 거야.”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성공 경험을 쌓아 자신감을 얻으면 ‘더 잘하자, 힘내자.’라는 기분이 드니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주목’이란 ‘당연한 일’에도 주목하는 거야. 아침에 회사에 간다, 이를 닦는다,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한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등등 모두 훌륭하잖은가. 전부 ‘잘하고 있는’ 일들이지.”


    “사람이 하는 행동의 95%는 ‘잘하고 있는’ 행동이야. 그런데 우리는 겨우 5%밖에 안 되는 ‘못 한’ 행동에 주목하고 있지. ‘잘하고 있는’ 95%를 무시해 버리는 거야. 그러니 힘이 솟아날 리가 없지. 당연히 의욕도 생기지 않고 말이야.”


    확실히 맞는 말이다. 나 스스로 잘하고 있는 95%를 무시하고, 못 하는 5%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며 스스로 책망하고 있었다. 그러니 의욕이 샘솟아 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들러 심리학을 아직 완전하게 모르지만 굉장한 것 같다. 나는 들러 팀장과 만난 지 불과 이틀 만에 인생을 재발견하고 있다. 



    긍정의 마인드를 외치는 데 지쳤어요

    ‘휴우, 오늘도 전철이 장난 아니게 붐비는군. 아, 우울하다.’ 전철 안에서 답답한 한숨을 쉬는 순간 들러 팀장이 내준 두 번째 숙제 ‘다각도로 보는 리프레이밍’이 떠올랐다. 나는 재빨리 나를 타일렀다. ‘지긋지긋하지 않아!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은 생각에 잠기기 가장 좋은 시간이니까. 책도 읽을 수 있고. 정말 행복하잖아!’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부정적인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시선을 돌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들러 팀장이 보였다. 키가 150cm도 채 안 되는 들러 팀장은 만원 전철의 인파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었다. 무척이나 힘들고 불쾌하겠다 싶던 그때, 들러 팀장이 중얼거리는 말이 들렸다. “휴우, 만원 전철은 ‘너무 싫어!’ 최악의 기분이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팀장님, 제가 들었는데요, 방금 전철에서 ‘최악의 기분’이라고 중얼거리지 않으셨나요? 팀장님은 항상 ‘부정적인 면에 주목하지 말고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으면서 팀장님은 부정적인 발언을 하시네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자네는 ‘주목’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나?” 나는 ‘주목하지 말자’고 했을 뿐이야. 보는 것 자체가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지? 자네와 나는 만원 전철에서 불쾌한 기분이 들었어. 그건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불쾌함을 느꼈다면 상황을 똑바로 본 거야. 그렇지만 주목하지는 않아. 계속 쳐다보지 않는다는 말이지.”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면 안 돼. 없던 일로 해서는 안 된단 말일세. ‘부인’, ‘억압’,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 자체를 똑바로 보는 거야. 자신에게 솔직해야 해.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지. 그걸 못 본 척하면 안 되고 똑바로 인정해야 하지. ‘자기 개념’과 ‘자기 경험’을 일치시키는 것! 이것을 심리 상담에서는 ‘자기 일치’라고 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야.”


    ‘만원 전철은 불쾌하지 않다. 최고다.’라고 ‘부인’하고 ‘억압’하며 ‘왜곡’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너무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그야말로 정신 건강을 해치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런 식으로 자신을 억누르고, 거짓말하고, 진심을 계속 가두어 둔다면 틀림없이 스트레스로 병이 난다. 그러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냥 보는 거야. 일절 평가하지 말고 ‘또 그러네,’라는 식으로 말이야. 만원 전철은 불쾌하지. 그래도 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유의미하게 활용하자. 책이라도 읽을까? 생각에 잠겨볼까? 시간을 의미있게 쓰는 쪽에 주목해 보자.”



    나는 열등한 데다 뒤처졌어요

    꿈에서도 나는 초조해하고 있다. 순위 꼴찌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그때 5천만 엔짜리 큰 일거리가 날아든다. 해냈다! 목표를 달성했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전화가 울리고 취소하겠다는 연락을 받는다. 이제는 재기 불능이라며 머리를 감싸쥐는 순간 잠에서 깬다.


    또 같은 꿈을 꾸었다. 이러다 꼴찌는 맡아놨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나 때문에 영업 1과의 매출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다. 모두를 볼 면목이 없다. 차라리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그래. 이럴 때일수록 들러 팀장의 가르침을 떠올리자. 우선, 못한 일이 아니라 잘하고 있는 일에 주목한다. 뒤에서 세 번째, 그래도 꼴등은 아니잖아. 매출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 버젓이 천만 엔 이상을 기록했어.


    하지만 그래도 말이야. 아무리 해도 입사 동기 쓰요시와 나 사이에 이렇게나 큰 차이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요지부동이다. 변하지 않는 사실.


    “팀장님, 쓰요시와 나는 입사 동기인데 왜 이렇게 결과가 다를까요? 정말 죄송한데요. 주신 숙제를 전부 몇 번이고 시도해봤어요. 물론 효과가 있을 때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소용없어요. 이렇게 확연히 차이가 나니까요.” “맞아. 확실히 이직 시장에서 쓰요시는 연봉 천만 엔의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어. 이직 시장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


    “쓰요시도 자네의 ‘인간으로서’는 완전히 평등해. 우열도 위아래도 없지. 두 사람 모두 정말 소중하고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하고!” 그 말은 형식적인 위로이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실적이 높든, 헤드헌터가 연락하든 그런 것은 일절 관계없어! 자네가 ‘사람’이라는 것 그 자체로도 이미 훌륭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지!” 아무리 그런 소리를 한다 한들 이번만큼은 들러 팀장의 말이 전혀 와닿지 않았다.


    “료! 자네 어머니가 이 자리에 계셨다면 어땠을까? 쓰요시에 비해 자네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씀하셨을까? 어? 자네를 열등한 인간이라고 하셨을까?” 어머니라는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어머니는 계속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어머니가 보기에는 내가 쓰요시보다 못한 인간일 리가 없다.


    “자네는 말이야, 지금 ‘기능 가치’와 ‘존재 가치’를 뒤죽박죽 섞고 있어. 바꿔 말하면 ‘Doing(행동 방식)’ 과 ‘Being(존재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지. 자네는 ‘Doing’이 서툴러서 ‘기능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들러 팀장이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자네는 자네의 아주 소중한 ‘Being’, 즉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있어. ‘영업 성적이 나쁜 사람은 인간으로 쓸모없다. 열등한 존재다.’라고 결론 내리며 자기 인격까지 부정하고 있는 거야. 자신에게 아주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거지. 절대 초조해할 필요 없네. 그런 것은 경험과 훈련,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하물며 스스로 부정할 필요는 추호도 없지.


    자네는 자네다우면 돼. 자네는 지금 이대로도 훌륭하지. 실적이 좋든 나쁘든 결점이 있어도 상관없어. 그런 별것 아닌 일로 자네의 ‘존재 가치’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돼. 자네는 훌륭한 사람이야. 나는 자네를 정말 좋아한다고!”


    * 기능 가치와 존재 가치는 별개의 것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스는 공동체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목표 달성을 추구하는 영리 기업의 대표 게젤샤프트(기능 공동체/이익사회)와 존속과 안심감을 추구하는 지연 및 혈연관계로 대표되는 게마인샤프트(가치 공동체/공동사회)의 두 가지다.


    이 두 가지는 ‘기능 가치’와 ‘존재 가치’를 기반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우리는 대부분 영리 기업이라는 게젤샤프트를 삶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기업의 논리인 ‘기능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능 가치’가 전부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기능 가치’와 ‘존재 가치’는 별개이다. 그러니 회사 내 ‘기능 가치’의 높고 낮음으로 자기 ‘존재 가치’를 규정짓지 말아야 한다. 설령 인사 평가가 낮더라도, 회사에 다니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만 있어도, 그 사람의 ‘존재 가치’는 변함이 없다.


    이 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고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간으로서 토대가 튼튼해지고 사소한 일로 흔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사람은 ‘기능 가치’의 높낮이에 일희일비하고 항상 감정이 요동친다. 그러면 점점 더 ‘기능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해결책은 단 한 가지다. 근거 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결정까지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자기 수용’이라고 부른다. 자기 수용에서 세상을 멋지게 살아갈 힘이 나온다. ‘기능 가치’에 감정이나 심리가 좌우되어서는 결코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울 수 없다.



    나도 상대를 칭찬하고 인정하고 싶다고요

    들러 팀장이 온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 동안 용기를 북돋우는 방법을 배웠고, Being(존재 방식)을 바꾸었다. 이제는 기능 가치보다 먼저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울 줄 안다. 언제부터인지 나의 영업 성적이 부쩍 오르기 시작했다. 고객과 만나는 약속도 이제는 아주 쉽게 잡을 수 있게 됐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점점 성과가 올랐다. 아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그저 괴로웠던 영업이 더는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용기 있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잘 알아. 그래서 기능 가치가 없어도 자신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동료가 있고, 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 긴장을 풀고 있지. 그러니 지나치게 경쟁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 기아 상태에 있지 않으니 긴장을 풀고 일을 즐길 여유가 있단 말이야. 그리고 협조할 수도 있고.”


    “용기란 어려움을 극복하는 활력이야. 용기가 있다는 말은 ‘나는 상대방에게 공헌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로 나는 가치 있고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태라는 뜻이야.”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용기는 무슨 일을 할 때 도전할 수 있는 정신 아니던가?


    “자네가 누군가의 용기를 북돋울 때, 아마 상대는 ‘자신에게 능력이 있고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그의 표정은 확 밝게 빛날 테고. 그러면 그에 이끌려 자네의 표정 역시 빛날 거야. 그 순간 자네는 ‘나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라고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어. 상대에게 용기를 주는 그 순간에 자네도 용기를 얻는 거야. 상대방의 용기를 북돋우면 자신도 용기를 얻게 되는 순환이지.”


    상대방의 용기를 북돋우면 자신도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용기를 꺾으면 자신의 용기도 꺾인다. 상대의 용기를 북돋우는 긍정의 순환, 상대의 용기를 꺾는 부정의 순환, 이 얼마나 극단적이고 정반대의 관계인가.



    인간관계도 어렵고, 공동체 감각 키우기도 힘들어요

    세코 과장은 자사의 주력 차종인 골든의 연비가 좋다는 점을 호소하는 광고 캠페인을 구상해 달라고 했다. 서구 셀럽들이 너도나도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선호하고 있다. 그러니 돈이 많은 셀럽들도 앞다투어 연비를 신경쓰게 되었다. 이 회사도 필사적으로 엔진과 차체를 개량하여 연비를 낮추었다.


    하지만 나는 소문을 떠올렸다. 로열자동차의 연비 데이터가 미심쩍다는 내용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광고업계뿐 아니라 일본, 아니 세계가 뒤흔들릴 문제이다. 물론 그와 관련된 광고 캠페인을 맡은 광고대행사도 규탄당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말은 소문일 뿐이다.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모처럼 받은 광고 캠페인 의뢰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지금 나는 계약을 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들러 팀장에게도 ‘공동체 감각’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공동체 감각이다. 나 개인뿐만 아니라 영업 1과와 회사 전체의 이익을 생각한다는 것은 ‘공동체 감각’ 그 자체다. 그렇다면 이번 캠페인을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나는 어딘가 석연치 않아 망설여졌다.


    아차. 잊고 있었다. 들러 팀장은 지금 후쿠오카에 내려가 있다. 하필 이럴 때 휴가 중이라니. 그래! 로열자동차 건이라는 사실은 비밀로 하고 유에게 은근슬쩍 물어보자.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유! 좀 가르쳐줬으면 하는 게 있어. ‘공동체 감각’이라고 있잖아. 예를 들면 눈앞의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럴 때 자신보다 상대를 배려해서 그 사실을 비밀로 하는 편이 공동체 감각에 부합하는 걸까? 아니면 부정행위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공동체 감각에 더 맞는 걸까?


    “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들러가 말했어. ‘상반된 사회 요구의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영원의 시각에서 보라. 그러면 맞서기 어려운 요구, 두려움에서 오는 잘못된 사물의 관점, 불안과 왜곡된 목적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규칙을 생각할 수 있다.’라고 말이야.” 


    “예를 들어 눈앞의 사람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나 회사 전체를 보고, 나아가 학교와 회사의 이익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공동체로서 사회 전반이나 나라 전체의 이익을 보고, 더 나아가 나라보다 세계와 우주 전체의 이익을 보는 거지.”


    나는 용기를 내 로열자동차의 세코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일부러 척추를 꼿꼿이 세우며 말문을 열었다. 수화기 너머로 세코 팀장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서 조금 떼고 욕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로열자동차로부터 계약 건을 따내지 못해 매출에 큰 손실을 내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계약했던 캠페인마저 취소되어 크게 뒤처졌다.


    이후 로열자동차의 연비 데이터 부정 조작 사건이 언론에 발표되면서 그 회사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광고 제작을 거절함으로써 차를 살 예정이었던 사용자에게 피해주는 일은 없었다.


    *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기업이나 학교, 지역사회 등 조직에 소속되어 목표 달성을 추구하다 보면 ‘과연 조직의 판단이 옳은 것일까?’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도 어떠한 이유로 이직을 결심하고 회사를 퇴직할 때 ‘나의 이기심 때문에 지금 회사에 폐를 끼치게 됐어. 내 판단이 옳은 것일까?’라고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럴 때일수록 이번 장에서 배운 ‘더 큰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가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자신이 소속된 조직에는 이익이 되지만 더 큰 사회 전반에 손해를 끼친다면, 후자를 우선시하여 판단해야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이직함으로써 신세를 진 회사에 폐를 끼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회사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그쪽을 우선시하는 것이 더 좋은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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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