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기업, 즉 가족이 지배적 의결권을 가지는 기업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에서는 가족기업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실제로 가족기업의 비율도 상당히 높은데, 2006년 기준 43%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 책에서는 그중 선구적인 기업을 선정해 소개하는데,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ㆍ 선구적인 고임금, 노동시간 단축, 기업 내부의 복리후생제도와 시설의 자발적인 도입 및 확충
ㆍ 사회적 공헌 실천과 공익재단 설립
ㆍ 혁신적인 제품과 기술의 개발, 다각화 등의 기업전략
ㆍ 타사에 미치는 영향도, 명성, 실적 등
이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인 푸거, 크루프, 자이스, 보쉬, 베텔스만, BMW, 포르쉐, 폭스바겐, 머크 등 9개사의 역사와 특성을 살펴보면서 영세 사업장에서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각 기업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종업원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는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기업을 운영해왔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 저자 요시모리 마사루
일본 요코하마 국립대학교 명예교수로 1938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출생하였으며, 1961년 도쿄 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학업을 이어갔다. 1965년 6월 프랑스 퐁텐블로 인시아드(INSEAD)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하였고, 1967년 도쿄도립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1985년 3월 프랑스 몽펠리에 제1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1975년부터 인시아드 조교수, 파리 제9대학 도피누 객원 교수, 파리 제3대학 상임 강사 등을 역임한 후 1985년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1985년부터 1994년까지 국제대학교 대학원 국제경영 연구과 교수를 지냈고,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요코하마 국립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후 2004년 3월 퇴임하였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방송대학교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2009년 3월 정년 퇴임 이후 2014년까지 객원 교수로서 대학원 학생 지도와 수업을 담당했다.
■ 역자
배원기
공인회계사 경영학 박사, 재단법인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상임이사이다.
1978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같은 과 석사(1985) 및 박사(2000)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교 4학년 때인 1977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여 1978년부터 삼일회계법인, 김&장 법률사무소, KPMG삼정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활동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현재는 신한회계법인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1983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계 회계사무소인 쿠퍼스앤드라이브랜드(Coopers & Lybrand, 현 PwC)의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하였으며, 귀국 이후에는 주로 한일 간의 경제교류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저서로는 ‘가업승계의 기술’, ‘당신의 이웃 한국인과 친해지는 법(あなたの隣の韓國人とうまくつきあう法)‘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비영리단체의 바람직한 운영원칙‘이 있다. 공저로는 ’함께 못사는 나라로 가고 있다‘, ’정부사용매뉴얼‘, ’비영리법인(NPO)의 회계와 세무 입문‘ 등이 있다.
재단법인 동아시아경제연구원
고 조이제 박사(1936~2020)의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이라는 비전,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기본 재산 출연, ‘공익법인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의 허가로 1988년 12월 29일 설립됐다. 우리나라와 아시아 각국의 경제·사회 발전 및 경제공동체에 관한 연구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차례
한글판을 펴내며
프롤로그: 독일의 가족기업은 왜 사회적 명성이 높을까?
제I부 독일 기업의 제도·사상·역사
1장 소유구조와 기업 형태
독일 100대 기업의 소유구조
독일 vs. 프랑스 vs. 영국
독일의 다양한 기업 형태: 총 17종류
기업 형태의 진화 과정: 무한책임출자자의 유한책임화
기업 형태의 제도 간 경쟁: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맺는말
제2장 공익재단과 기업지배구조
공익재단의 설립 동기
독일 공익재단의 특성별 분류
공익재단의 기관 구조
공익재단, 설립기업, 가족집단 간의 지배 관계
제3장 독일 기업공동체의 사상과 역사적 배경
공동결정제도의 법적 근거
공동결정제도의 역사
‘소유권의 사회적 책임’의 이념적 배경
‘소유권의 사회적 책임’ 조항의 입법 담당자
제II부 독일의 대표적인 9개 가족기업
제1장 독일의 대표적인 가족기업을 소개하며
사례 기업의 선택 기준
공익재단을 설립한 기업
공익재단을 설립하지 않은 기업
제2장 공익재단과 기업지배구조
공익재단의 설립 동기
독일 공익재단의 특성별 분류
공익재단의 기관 구조
공익재단, 설립기업, 가족집단 간의 지배 관계
제3장 크루프
철강으로 부를 이룬 크루프 가문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과 크루프
크루프 가문의 기업이념
크루프공익재단
창업자 프리드리히 크루프(1787~1826)
2세대 알프레트 크루프(1812~1887)
3세대 프리드리히 알프레트 크루프(1854~1902)
4세대 베르타 크루프(1886~1957), 구스타프 크루프(1870~1950)
5세대 알프리트 크루프(1907~1967)
맺는말
제4장 자이스
창업자 카를 자이스
프롤레타리아의 아들, 에른스트 아베
아베와 자이스의 협력 관계
자이스의 기술력을 끌어올린 오토 쇼트
공익재단 설립: 아베의 설립 동기
재단지배기업의 탄생
공익재단 종업원의 복지 향상 및 유지
예나대학교에 기부하다
제3 제국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동서독 재통일부터 2004년 재단 정관 개정까지
재단지배기구의 개혁
앞으로의 과제
맺는말
BMW, 폭스바겐, 포르쉐, 푸거, 자이스, 보쉬, 베텔스만, 머크… 가족기업으로 시작한 이들 독일 기업들은 어떻게 세계적 브랜드가 되었을까요? 이들의 역사를 통해 독일 사회 전반의 기업문화 및 노사상생 관계 등 소유와 경영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한 모범 사례를 제안합니다.
독일 100년 기업 이야기
프롤로그: 독일의 가족기업은 왜 사회적 명성이 높을까?
독일은 가족기업 대국이며, 이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 가족기업의 혁신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의 발언은 독일에서 널리 퍼졌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가족기업을 ‘독일 경제의 견인차’라고 찬사를 보내며, 2014년 여름에 일본과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레이저 가공 기계의 세계적인 기업 트럼프(Trumpf)를 견학했다. 메르켈 총리 밑에서 연방정부의 경제·기술부 장관을 지낸 라이너 브뤼덜레는 ‘가족기업이 독일 경제의 기둥’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특집 기사에서 오늘날 가족기업에 주목하지 않는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치인들이 가족기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실업자 수가 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용인 수에서 60%를 차지하는 독일 가족기업이 고용을 10%늘리면 6%의 고용 증가가 일어난다. 이는 40%를 차지하는 나머지 비가족기업의 4% 고용 증가보다 당연히 영향이 크다. 실제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세계적 불황을 포함하여 2006-2010년 독일 고용자 수의 변화 추이를 보면, 가족기업 최대 500개사에서는 9% 증가했다. 반면 독일의 주요 주가지수인 DAX를 구성하는 기업 중 가족기업 4개사를 제외한 26개 비가족기업에서는 7% 감소했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9개사는 모두 대규모 가족기업이다. 이들의 일반적인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실천적 학자로서, 그의 책에서 선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공헌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고 천명하고, 특히 전략을 강조했다. 기업이 성장하고 영속성을 가지려면 ① 경영이념, ② 기업문화, ③ 기업윤리, ④ 기업전략, ⑤ 기업지배구조 등 다섯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이 중 개발하기가 가장 어렵고, 재무적 리스크가 큰 것이 ‘전략’이다. 전략 이외의 네 가지 요소는 기업가 자신이 결정하고 변경하거나 통제가 가능한 반면, 전략의 성패는 기업이 아니라 고객과 시장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전략은 시장 동향을 예측하고 이에 맞는 혁신적인 제품 및 서비스와 기술을 개발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측이 항상 적중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 환경이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에는 위험이 따른다. 그럼에도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업가정신이 요구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가족기업은 창업 초창기에 혁신적인 사업에서 성공하여 번영의 바탕을 마련했다. 푸거는 16세기에 직물 생산업에서 도매무역상으로 업종을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화폐주조에 쓰여서 수요가 많은 은(銀)의 채굴 및 정제업으로도 확장하여 제후들에게 대부해줌으로써 막대한 부를 쌓았고, 그 일부로 아우크스부르크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빈곤자 주택을 건축했다. 크루프는 선진국 영국을 능가하는 품질의 철강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다. 이를 통해 이음새 없는 철도 휠을 개발하여 세계적인 철도 건설 수요에 대응하였으며, 그 후 대포와 군함 등 무기제조업의 수직적 통합을 통해 다각화를 실현했다. 자이스는 현미경·천체망원경·쌍안경 등의 분야에서, 보쉬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내연기관용 점화플러그 분야에서, 출판업을 영위하는 베텔스만은 소형 밴을 이용한 이동서점 분야에서 성공하여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독일의 최근 노동조건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연간 24일간의 유급휴가: 취업 6개월 후부터 적용하며 일요일과 법정 공휴일은 제외함. 노동협약, 개별 계약, 공동결정에 따라 구서독 지역 근로자의 약 80%(약 6주간)가, 구동독 가족기업에서는 57%가 적용받음
● 연금: 최종 월급의 75% (퇴직금 제도는 없음)
● 연말수당: 1개월분의 급여
● 해고: 거의 불가능하며, 노동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명기되지 않음. 다만, 중대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등의 경우에는 즉시 해고됨
● 일요일·공휴일의 노동은 원칙적으로 금지됨
이런 노동 조건이 자리 잡기까지는 19세기 대규모 가족기업인 크루프, 자이스, 보쉬가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베텔스만이 노동 조건을 더욱 개선하고 종업원의 이익참여제도를 도입하여 모델이 되고 있다.
경영전략의 성공에 따른 이익 증가분을 직원들에게 배분하면, 경영자의 신뢰가 높아지고 노자(勞資) 및 노사(勞使)가 서로 통합하고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그 결과 회사가 더욱 발전하고 큰 수익을 얻게 되면, 가족 경영자는 공익재단을 설립한다. 푸거, 크루프, 자이스, 보쉬, 베텔스만, BMW가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공익재단은 기업의 성공, 높은 윤리관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를 통해 회사와 그 제품은 사회로부터 더욱 신뢰받게 된다.
공익재단은 후계자 문제 등 여러 가지 가족기업 고유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가족기업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기업공동체, 노동공동체다. 가족기업이 강점을 발휘하는 것이 기업공동체, 노동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기업의 가족은 일반적으로 자산 대부분을 자신의 가족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가족과 출자자가 동일하고,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상장 비가족기업에서와 같이 주주와 경영자 간의 이해가 대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의 성과는 더욱 향상된다.
독일의 대부분 가족기업은 상장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주주의 압력 속에 단기 이익을 추구할 이유가 없다. 가족기업은 가족 세대를 시간 축으로 하는 장기지향적 단기 의사결정 과정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큰 장점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핵심 역량에 경영 자원을 집중하여 적절한 전략을 수립하고, 승계한 시점보다 높은 실적을 실현하여 차세대에 물려준다. 이에 비해 상장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임기가 계약상 5년 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계약을 갱신할 수 있지만 그 재임기간이 가족기업 임원들의 재임기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짧다. 이 때문에 경영자의 행동이 보수화되고 임기 중에 결과가 나오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어 중·장기적인 전망이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상장 비가족기업의 경영자보다 가족기업의 경영자가 위험을 감수하기 쉽다. 상장 비가족기업의 경영자는 실패했을 때 경질이나 강등 등 책임을 지게 될 뿐만 아니라 사내는 물론 주주로부터의 비판에 직면한다. 이에 비해 가족기업 소유자가 경영자라면 실패했더라도 자신과 가족의 자산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것일 뿐 상장 비가족기업과 같이 주주로부터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또한 가족기업 소유경영자는 과도한 위험은 피하고자 한다. 실패했을 때 자기와 가족 직원의 생활 기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가족기업이 2008년 리먼 사태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 이후 높은 재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비가족기업과 비교하여 실적이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즉, 가족기업이 창업자로부터 이어진 기업을 성공적으로 차세대에 계승하기 위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건실한 재무 정책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소유와 지배에 따른 강력하고 광범위한 권한에 따라 의사관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주식이 널리 분산되어 있는 상장 비가족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천이 어렵다. 내부 저항 세력은 물론 외부 투자자의 비판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약간의 예외적인 기업을 제외하고 경영부진 상태의 대부분 상장 비가족기업에서 볼 수 있다. 존망의 위기인데도 무위(無爲) 무책(無策)의 상태에 있는 대기업이 많다. 이에 비해 가족기업의 경영자는 상장된 경우에도 더 대담하게 결정하고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공익재단과 기업지배구조
소유권의 사회적 책임이 기업을 공익재단 설립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가족, 비가족을 불문하고 많은 기업이 공익재단을 설립한다. 독일재단연방협회에 따르면, 1990년에 기업이 새로 설립한 공익재단은 181개였으며 그 후로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01년에는 829건으로 급증했고, 2007년에는 1,134건에 달했다. 2007년 9월 세법이 개정되면서 대폭적인 세액공제가 도입되고 이것이 기존 공익재단에 적용됐기 때문이다.
독일 가족기업이 공익재단을 설립하는 동기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목적을 실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 가족지배와 기업독립성의 영속화
● 창업자의 경영이념 및 기업문화의 존속
● 후계 경영자의 재산상속 문제 해결
● 회사의 신뢰성 제고
● 상속분할에 따른 가족기업 재산의 분산 방지
● 사회적 공헌
● 종업원의 자부심 고취 및 회사와의 일체화
● 가족지배와 기업지배구조의 통합
● 기업지배구조, 특히 기업윤리의 강조와 준수
● 창업자의 위업을 영구적으로 기념함
● 가족 생활 기반의 유지 및 확보
● 적대적 기업인수 방어
● 상속세, 기타 세금의 절감
압도적 다수인 71%가 재단 설립의 가장 큰 동기가 장기적으로 설립자의 의사가 확실히 실현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 뒤를 이어 43%가 창업자 사후에 창업자 자신 또는 그 자손이 창업자의 생애 발자취를 사회공헌의 형태로 남길 수 있다는 점을 꼽았고, 41%가 국세기본법에 따른 세금 우대 조치를 가장 매력적인 장점이라고 응답했다.
가족이 기업을 설립하고 공익재단도 설립한 것이기 때문에, 가족이 가장 큰 권한과 책임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위해서 가족집단에서 가족 대표가 선임되며, 그 대표가 설립기업과 공익재단을 운영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예외적인 사례로 크루프를 들 수 있는데, 가족이 설립기업과 공익재단에서 활동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창업자 및 그 자손의 공헌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이는 창업자의 기업이념, 기업문화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공익재단의 존재 자체가 큰 모순에 빠진다. 공익재단은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하나, 창업자의 실적과 자손의 의사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설립되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선임된 1명 이상의 가족 대표가 공익재단평의회에서 감독자의 역할을 한다. 즉, 회의를 비롯한 여러 방식을 통해 설립자의 의사가 표명된 정관이 문제없이 실시되고 있는지를 가족의 관점에서 감독한다.
설립기업이 비윤리적 행위나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경우 당연히 설립기업은 물론 공익재단도 사회적 신뢰성을 잃게 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공익재단의 가족 대표가 설립기업의 감독이사회 및 윤리위원회 등에서 윤리 규정의 준수 상황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제안을 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이 설립기업의 최고경영자 또는 감독이사회 회장으로서 취임할 것인지, 아니면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취임할 것인지는 가족기업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이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감독이사회 임원으로서 가족 대표와 비가족 구성원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를 활용하는 것이 유용하다.
독일 기업공동체의 사상과 역사적 배경
독일 가족기업이 종업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공익재단을 통해 공익활동을 펼쳐나가며 기업공동체를 형성하는 데에는 어떤 사상적·역사적 배경이 작용했을까? 독일의 공동체 중시 경향은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독일의 경제제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의 공동결정제도가 단적인 예다. 이에 대해 독일 내외에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독일은 EU 최강의 경제 대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해왔다. 유럽의 나머지 국가와 비교할 때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노동자측 대표에게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공동결정권을 주고 있다. 공동결정제도는 독일의 기업지배구조와 기업경영 및 자본주의의 성격까지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공동결정은 기업의 번영을 공동 목표로 하는 노자의 협력관계를 전제로 하며, 이를 사회적 파트너십이라고 한다. 그 법적 근거는 ‘소유권의 사회적 책임’이며, 현행 기본법(헌법)에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역사가 오래되어, 원류를 찾자면 1830~18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수공업·염전·탄광·금속·해운업 등에는 상부상조금고가 있었으며, 종업원 스스로 선임하는 대표자가 구성하는 위원회에서 관리했다. 19세기 중반에 많은 제조 대기업에서는 기업 내 복리후생제도의 운영진은 종업원이 선임하되, 공장 소유주가 지명하는 종업원 대표가 노동자위원회를 구성해서 운영된다. 위원회의 업무 내용은 대부분 대기업에서 거일 동일했으며 종업원의 채용, 취업규칙의 준수, 공장주에게 제안하는 절차, 공장의 규율 유지, 공원들 간 분쟁의 중개, 수습공이나 젊은 노동자의 감독, 결혼허가증의 교부 등을 공장주와의 협의를 통해 진행했다. 더 진전된 단계에서는 사고 예방, 제안개선제도, 임금 및 노동시간의 결정, 그리고 이익배분까지도 공장위원회의 직무였다.
1918년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1월 15일에, 노동조합 대표와 사용자 대표가 위원회의 설치를 군수 공장 뿐만 아니라 모든 공장에 의무화하기로 합의했다. 1년 뒤인 1919년에는 ‘노동자는 고용주와 함께 대등한 입장에서 임금과 근로 조건의 결정과 생산능력의 전반적, 경제적 발전에 참여하는 자격을 가진다. 쌍방의 조직 및 협정은 이를 승인한다’라는 바이마르헌법 제165조에 따라 사업장위원회의 설치가 의무화됐다. 또한 그 상부 조직으로 전국경제협의회가 규정됐다. 그리고 이 규정은 1929년에 사업장위원회법으로 구체화됐다. 이에 따라 20명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에는 사업장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됐고, 위원회에는 인사·노무·경제 문제에 관하여 경영자와 협의하여 공동결정할 권리가 주어졌다. 이것이 오늘날 독일 사업장위원회의 직접적인 모체다. 2년 후에는 사업장위원회 소속 2명의 노동자 대표위원을 감독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법이 시행됐고, 이것이 지금까지 실시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6년 점령군의 법에 따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업장위원회의 설립이 인정됐다. 1947~1948년 영국의 점령지역에서는 군정부와 노동조합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다. 해체가 예정되어 있던 철강 기업의 감독이사회를 자본 측 대표와 노동 대표가 각각 50%의 비율로 구성하고, 노동조합의 승인을 조건으로 노무담당이사 1명을 경영이사회에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1950년 1월,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은 이 감독이사회를 다른 산업 분야의 기업에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비슷하게 사업장위원회의 경영조직법에 관한 협상이 진행됐지만 의회 안팎에서 저항이 이어지면서 난항을 겪었다. 노조 측은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완전한 공동결정을 요구하고 파업을 불사한다고 선언했으며, 실제로 인쇄·제지 노조는 신문 발행 회사에서 이틀 동안 파업을 감행함으로써 정부를 압박했다. 1952년 6월, 2년이 넘는 협상 끝에 노조 측의 반대를 물리치고 법안이 성립됐다.
독일의 대표적인 가족기업: 베텔스만
가족소유비율 100%. 서적·잡지 출판, 라디오·TV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7년 부친으로부터 이 회사를 승계한 아들 라인하르트 몬 시기에 급격히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1947년을 실질적인 창업연도로 봤다. 미국 최대 출판 기업인 랜덤하우스(Random House) 등을 인수했으며, 출판 업계에서 세계적인 지위를 유지한다. 종업원의 재산형성, 이익참여 등을 위한 복리후생제도가 충실하다. 크루프, 자이스, 보쉬가 갖추고 있는 제도를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공익재단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며, 명성이 높고 영향력을 가진 공익재단 중 하나다.
베텔스만의 오늘에 이르는 성공은 2009년 작고한 5세대 소유경영자 라인하르트 몬(1921~2009)의 기여로 이뤄졌다. 그 기업이념과 기업문화의 중심은 창업 이래 줄곧 ‘사회적 책임’의 실천이었다. 높은 기업연금, 경영참여 및 경영 정보 공유를 위한 제반 제도, 그중에서도 제일 획기적이었던 종업원 이익참여제도는 ‘베텔스만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이념의 연장선에서 독일 최대의 공익재단을 설립하여 독일의 제반 제도 개혁을 목적으로, 정책 제안을 주로 하고 있다. 대상 분야는 정치·사회·교육·경제·건강·문화·국제협력 등이며, 그 제안은 중앙정부의 정책실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역대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인사와도 인연도 튼튼하다.
라인하르트에게는 지금까지 살펴본 대규모 가족기업의 소유자와 크게 다른 점이 있는데, 첫 번째로 투명성을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신조와 경영 방식 대부분을 책으로 엮어 공개했다. 두 번째, 그는 책에 쓴 대로 실천하고 그 결과를 서적과 잡지 인터뷰 등을 통해 발표했다. 전 사원에게 실시한 만족도 조사의 결과를 인터넷에 공개한 적도 있다. 전략적으로는 획기적인 서적 판매 방식과 지속적인 다각화 기업인수, 글로벌화로 고수익을 실현했다. 내부 조직과 관련해서는 직원·관리자와 비가족 경영자에게 폭넓은 권한 이양과 이익 책임에 근거한 사업부제 경영을 실시했다.
이와 같은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족 일가의 완전한 소유, 지배, 경영이 관철되고 있다. 따라서 주식공개은 배제됐고, 종업원의 이익참여를 독려하는 독창적인 제도를 통해 종업원이 회사에 제공하는 차입금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자력 성장’을 실현하고 기업의 독립성을 유지해왔다. 이런 지배구조는 2009년 라인하르트 사망 후 그의 아내 리즈 몬이 계승했다. 오늘날 베텔스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를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남편의 전권을 계승한 리즈에 의해 베텔스만의 전 조직은 역사적 전환기를 맞았다. 그녀와 두 자녀를 중심으로 한 3명의 지도력이 주시되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가족기업: 머크
가족 소유 비율 70%. 머크 가문은 3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진 제약 기업이며, 가족에 의한 기업지배구조가 기업의 장수에 기여하고 있다. 그 특징은 가족의 정의, 조직, 가족 간의 직접적인 교류기회,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비가족 경영자를 가족과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공익재단은 설립하지 않았지만, 아프리카의 풍토병 대응을 위한 약품 제공 등의 공익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2년 기준 ‘독일 100대 기업’중에서 이 회사는 의약품·화학 기업으로는 바이엘 사노피, 프레제니우스, 베링거에 이어 55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4년 매출 111억 유로(약 15조 원), 66개국에 3만 6,000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머크의 의약품 사업부문은 스위스의 세로노를 인수해서 암 치료 불임 치료, 성장 장애 등의 의료용 의약품과 건강 보조제를 포함한 일반 의약품 사업을 영위한다. 그리고 화학 사업부문에서는 액정 기술을 중심으로 전자기기, 바이오산업 등의 용도에 맞춘 특수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머크의 기업이념으로 적재적소, 소유와 경영의 분리, 후계자 육성, 정보 공유가 강조된다. ‘가족 사이의 불화 분열은 가족기업에 치명적이다’라는 이유로 머크에서는 결속력과 친화력이 차세대에 전할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여겨지며, 다양한 형태로 강화되고 있다. 출자자총회는 이를 위한 중요한 기회로 활용된다. 즉 총회가 종료되는 저녁은 가족, 부부, 전 경영이사, 남녀노소 등 150~160명이 모여 서로 집에서 친목회를 개최하며 유대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가족 경영자도 ‘양자대우’로 이 회의에 초대된다. 또한 차세대 가족공동체 교육·훈련의 하나로 21세 미만의 출자자를 위한 연수회가 국내 및 국외에서 개최된다. 연수에서 참가자들은 기업의 활동 상황을 이해하고, 출자자의 역할을 인식하는 교육을 받는다.
머크는 가족 무한책임출자자로서의 책임의식이 강하기에 기업지배구조의 실효성도 높다. 업무집행책임자도 무한책임출자자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강할 것이다. 가족 대표는 기술 수준이 낮은 제네릭 의약품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 의약품으로 전략적 전환을 시도했고, 이에 반대한 비가족 전 최고경영책임자는 해임됐다. 이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보다는 오히려 소유와 경영의 일치에 가깝다. 가족기업 E-머크합자회사의 경영이사회는 가족과 비가족 경영자의 이해와 경영 방침의 조정 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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