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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 오디세이
저   자 : 조지 슈피로(역:김현정)
출판사 : 비즈니스북스
출판일 : 2021년 11월




  • 시대가 바뀌면서 경제구조는 복잡해졌고 그에 따라 위험과 불확실성도 커졌다. ‘이런 시대에 경제학 이론이 무슨 힘이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시대야말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경제학자처럼 생각’해야 성급하게 결론지어 미래의 위험을 키우는 실수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경제학 오디세이


    행복 그리고 부의 효용

    다다익선: 돈은 많을수록 좋다

    존 로크: 재화는 많을수록 좋다

    베르누이 가문의 사촌들이 차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문제에 대해 논의할 무렵으로부터 100년 전이었던 1632년,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로크는 오늘날까지도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중등학교 중 하나로 여겨지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스쿨에 입학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로크는 옥스퍼드에서 고전어와 논리학, 형이상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보다 르네 데카르트 같은 현대 사상가들을 연구하기 좋아했던 로크에게는 커리큘럼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로크는 인내심을 갖고 학업을 이어나가 1656년에 학사 학위를 따고 1658년에 석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후에야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학문인 의학 공부를 한 끝에 의학 학사 학위를 땄다. 1668년, 로크는 왕립 협회 선임 연구원(Fellow to the Royal Society)이 됐으며, 그로부터 4년 후에 아이작 뉴턴도 왕립 협회 회원이 됐다.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로크는 거의 평생 동안 그다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다.


    나는 이 책에서 로크가 정부에 대해서 어떤 말을 했는지 파헤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사유 재산, 축재, 돈에 대해서 로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살펴볼 생각이다. 로크의 기본 교리는 각 개인은 적어도 자기 자신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신체는 개개인의 것이며 개개인이 행하는 모든 노동 또한 본인의 것이라는 뜻이다. 반면, 땅에서 나는 농작물은 신이 인류에게 나눠준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개인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천연자원에 자신의 노동력을 추가하면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소유가 된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나무에서 사과를 따면 그 사과는 그 여자의 것이 된다. 여자의 노동이 없다면 사과 자체에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 땅이 인류에게 준 천연 재료에 인간의 노동력이 더해져서 음식과 옷, 집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개인 재산이 생긴다. 로크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재산을 취득하고 축재하는 것이 노동의 공정한 결실이라고 여겼으며, 이를 정당한 노력으로 여겼다. 사실 로크는 “시민 사회의 주된 목표는 재산 보존”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천연자원은 대개 희귀하다. 또한 많은 천연자원이 쉽게 상한다. 로크는 축적한 재산을 쓸모없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그는 이렇게 서술했다.


    “동물을 사냥하거나 식물을 채집한 사람은 상하기 전에 축적한 재산을 모두 사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것을 취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친 셈이 된다.”


    지금까지의 결론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개인적 소비(personal consumption) 용도로 사용 가능한 양은 축적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 전체가 가진 시간의 일부만 사용해도 자신과 가족이 먹기에 충분한 양의 고기를 사냥하고, 충분한 농작물을 채집하고, 충분한 곡식을 수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라면 좀 더 많은 노동력을 쏟아 부어 추가로 재산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로크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다.


    “바로 여기서 돈의 용도가 생겨난다. 돈은 상할 걱정 없이 영속적으로 보관할 수 있으며, 상호 동의하에 진정으로 유용하지만 쉽게 상하는 생활용품을 주는 대가로 돈을 받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여 축재를 가능케 하고 정당화시키는 돈이 생겨난 것이다. “일주일 내에 썩어버릴 자두를 주고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견과류를 얻었다면 그것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공재산을 전혀 낭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중략) 견과류를 주고 마음에 드는 색깔의 금속을 얻거나, 양을 주고 조개껍질을 얻거나, 양모를 주고 반짝이는 조약돌이나 다이아몬드를 얻은 다음 이런 것들을 평생 간직한다면, 이번에도 역시 타인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


    로크는 돈이 생겨나자 인간의 본성에 따라 사람들이 부를 늘릴 기회를 잡고자 애쓰게 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웃들 사이에서 용도와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낸 사람은 머지않아 소유물을 늘려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욕심과 소유욕, 심지어 탐욕도 정상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모든 사람이 “내구성 있는 것들을 원하는 만큼 쌓아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크는 “근면성의 정도에 따라 인간이 갖는 부의 양이 달라지는 만큼 화폐의 발명은 사람들에게 부를 존속시키고 늘릴 기회를 주기” 때문에 소득과 부의 차이는 완전히 정당화된다고 생각했다. 로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인간이 불균형하고 불공평한 땅 소유에 동의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인간은 암묵적이고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그 어떤 타인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축적 가능한 여분의 금과 은을 받는 대신 자신이 직접 모두 소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양의 산물을 생산해낼 정도로 많은 땅을 정당하게 소유하는 방식을 찾아냈다.”


    따라서 로크도 아리스티포스와 에피쿠로스가 그랬듯 재화가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재화가 쉽게 상하는 것이라면, ‘돈은 많을수록 좋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둔화하는 효용의 속도

    위대한 철학자가 말하는 부의 상대성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여기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본성과 행동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부와 사람들이 부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영광스럽고, 올바르며, 행복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참고로 이 책은 니코마코스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그의 아버지 혹은 아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4권에서 묘사한 덕이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특징 중 하나가 관대함(generosity)이다. 도량이 넓은 사람은 적당한 대상에게 적당한 정도의 부를 내주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자비롭고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행동으로는 신전을 건설하거나, 신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성가대에 참가하거나, 전함에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거나, 주민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것 등이 있었다. 덕이 있는 사람은 기꺼이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기부를 해야 한다. 덕이 있는 행동 자체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기부하거나 윤리적 동기가 아닌 다른 이유로 기부하는 사람은 관대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고귀한 것이라기보다는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유불급, 즉 지나쳐서도 안 된다. 맨 먼저 찾아오는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기부해서도 안 되며,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줘서도 안 되고, 적절하지 않은 때에 나눠줘서도 안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자신의 부를 내버려둬서도 안 된다고 경고한다. 부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내버려두면 계속해서 궁핍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고귀한 명분에 이바지할 능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부를 박애주의적인 명분에 낭비하는 사람도 관대하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헤프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이쯤 되면 “고귀하고 관대하다고 보기에 적당한 기부 금액은 얼마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숫자를 파고드는 대신 다른 각도로 이 질문에 접근해 박애주의적인 인물의 계층을 네 단계로 나누었다. 먼저 도량이 큰(magnanimous) 사람들이 있다. 이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오직 부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또 그래야만 하는 값이 나가는 선물을 이용해 공명을 세운다.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사람이 분수에 넘치는 기부를 통해 돈이 많은 시민들을 모방하려 들면 파산하게 되어 미래에 더 많은 선행을 베풀지 못하게 된다. 그다음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고귀한 명분을 지지하는 관대한(generous) 부류다. 이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돈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는 돈의 능력을 가치 있게 여긴다. 세 번째, 완전히 바닥은 아니지만 거의 바닥에 있는 부류는 구두쇠(stingy)다. 가격을 흥정하고, 원칙을 무시하며, 높은 비용에 대한 불만을 멈추지 않고, 고귀한 행사를 준비할 때조차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인색한 사람들이다. 이런 태도 때문에 늠름한 행동의 아름다움이 퇴색된다. 구두쇠보다 더욱 아래에 있는 부류는 마치 결혼 피로연처럼 보일 정도로 호화로운 만찬을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허세 가득한 허풍쟁이(boastful braggart)다. 관대해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이들은 친절한 마음이나 시민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인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 부를 과시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선 행위 분류체계에서 돈의 액수, 즉 수치를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부금의 규모는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3단 노가 달린 갤리선 전체를 무장시킬 의무를 지닌 사령관의 지출은 종교 행사에 자금을 대는 고대 그리스의 신성한 종교 사절단, 아키테오로스(Architheoros)의 지출과는 다르다. 누군가의 기부가 적당한지 판단할 때는 전함, 신전, 시민을 위한 연회 등 기부하는 물건이나 행사의 비용을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기부자의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부자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가에 따라 올바른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부자가 신전을 짓거나, 제물을 바치거나, 스포츠 경기를 주최하기 위해 돈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사람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량이 넓은지 판단할 때 절대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관대함을 평가할 때는 어떤 사람이 가진 전체 부의 규모와 비교해야 한다. 기부자가 제공한 기증품의 규모가 아니라 기부자의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관대한 사람은 자신의 부와 비례해 기부한다. 설사 기부금의 액수 자체는 적더라도 상대적으로 부의 규모가 적은 사람이 내놓은 것이라면 오히려 더욱 관대하다고 볼 수 있다.”


    금액 자체를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그보다는 개인이 보유한 부의 규모에 비례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또 다른 매우 중요한 저서에 좀 더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정치학(Politika)’은 정치 철학에 관한 책이다. 경제학은 이 분야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기 때문에 책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제7권에서 만족감에는 세 가지 원천이 있으며, 세속적인 소유물을 뜻하는 외적인 선, 신체적 행복을 뜻하는 육체적인 선, 용기, 절제, 강인한 성격을 뜻하는 정신적인 선이 인간에게 만족감을 준다고 기술했다. 정신적인 선은 항상 다다익선이며 상한선도 없다. 육체적인 선 역시 아마도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외적인 선, 즉 우리가 금이나 부동산, 소처럼 부와 동일시하는 것들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이 가장 흥미롭다.


    “다른 수단들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선에도 제약이 있다. 세상의 모든 유용한 것들은 이런 성질을 갖고 있어서 지나치게 많아지면 소유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소유자에게 아무런 효용도 주지 못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말 같지 않은가? 쿠키나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억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따르면 포만감이나 메스꺼움이 효용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는 유일한 이유가 아니다. 물론 조금이라도 증가한다면 말이다. 밭, 소, 쟁기 같은 수많은 외적인 선은 소유주의 부를 증가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지나치게 부가 늘어난 탓에 유지와 관리에 대한 염려가 유용성을 넘어서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유가 무엇이건 일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추가로 부가 늘어나더라도 효용이 추가로 늘어나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명시한다.



    과학의 여왕이 된 수학

    한계주의 삼인방의 등장

    당시 경제학 분야에서는 양적 추론(quantitative reasoning)보다는 간단한 계산, 즉흥적인 관찰, 일화적 근거가 우세했다. 1870년대 중반이 되기 전에는 경제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수학을 적용하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1870년대 중반이 되자 갑자기 다행스럽게도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며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세 나라 출신의 세 남성이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들은 모든 경제적인 결정의 토대가 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 돈이 제공하는 효용이며, 따라서 수학적인 계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세 사람은 바로 영국의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와 스위스의 레옹 발라,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였다.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 경제학을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다

    제번스는 뉴질랜드 뉴사우스웨일스은행에서 근무 중이던 병약한 형 허버트에게 쓴 편지에서 효용의 개념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사실 경제학에 관한 글을 쓰며 제번스가 제시한 이론은 원론적으로 완전히 수학에 가까웠다. 기하학 문제를 풀 때처럼 엄격한 방식으로 정의와 공리, 법칙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제번스는 가장 중요한 공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무엇이 됐건 인간이 소비해야만 하는 상품의 양이 늘어난다고 생각해보자. 상품의 양이 늘어날수록 소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이나 편익의 정도는 줄어든다. 식사를 시작할 때에 비해 식사가 끝날 때 먹는 기쁨이 줄어드는 것을 하나의 예로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제번스의 논문은 맨 처음 영국과학진흥협회에 제출했을 때도, 4년 후에 ‘통계학회지(Journal of the Statistical Society)’에 기고했을 때도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1871년에 제번스의 대표작 ‘정치경제학 이론(The Theory of Political Economy)’이 출판되고 나서야 제번스의 발상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경제학은 변화를 거듭했고 다시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 책은 제번스 생전에 첫 번째 판과 두 번째 판이 출판됐으며 홀로 남은 제번스의 아내가 세 번째 판 출판을 감독했고 네 번째 판은 제번스의 아들이 관리했다. 그 후에도 여러 판이 출판됐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책이 출판되고 있다. 그만큼 제번스의 ‘정치경제학 이론’은 경제학 분야에서 매우 영향력이 큰 저서 중 하나다.


    제번스는 제1장 도입부에서 이론을 발전시키는 내내 자신을 인도해 준 두 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물론 첫 번째 원칙은 효용의 개념이었다.


    “반복되는 생각과 질문을 통해 재화의 가치가 전적으로 효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다소 새로운 의견에 도달하게 됐다.”


    제번스의 주장이 참신했던 이유는 당시에는 특정한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이 물건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제번스는 당시 4년 전에 출판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콕 집어 “노동이 가치가 생겨나는 원인이라고 명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편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필수적인 결과로 뒤따를 수밖에 없는 만족스러운 교환 이론에 도달하려면” 인간이 소유한 상품이 늘어나거나 줄어들 때 효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세심하게 분석하기만 하면 된다. 제번스는 성급하거나 무분별하게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강조했다. 사실 그는 10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으며 자신이 생각해낸 개념의 진실에 대해 수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제안한 개념의 근본적인 정확성에 의문을 가질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두 번째 원칙은 경제학의 전반적인 특징에 관한 것으로, 이 원칙이 효용에 관한 내용보다 더욱 획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제번스의 두 번째 원칙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경제학 공부 방식에 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 당시에는 서술, 타당성 주장, 일화, 사례를 기반으로 한 증거를 활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제번스는 경제학을 물리학과 천문학 같은 제대로 된 학문 분야로 발전시키려면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제학이 하나의 학문이라면 수학적인 학문이 되어야 하는 것이 틀림없다.” 제번스는 명백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기 위해 “우리의 학문은 수학적이어야 한다.”라며 “이 학문이 ‘양’에 관한 내용을 다루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제번스가 이야기한 수학은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같은 단순 연산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도구, 즉 미분학이었다. 제번스는 “미분학의 도움 없이는 경제학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명시했다. 그는 당시 경제학자들의 행태를 조롱하기도 했는데, 수학적인 기호와 주장을 거부하는 전통 경제학자들을 비꼬며 “어쩌면 그들은 빨간불이 파랗다고 주장해 빨간불을 바꾸려 들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또 거기서 더 나아가 과학자, 심지어 물리학이나 천문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도 공격했다.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이론을 설명한다는 이유로 수학을 배제시키는 그 행위가 오히려 글을 더 복잡하고 이상하게 만든다고 그는 지적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수학 기호는 “우리가 표현해야 하는 개념과 관계에 맞춰진 완벽한 언어 체계를 구성한다.” 요컨대,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수학 논리와 수학 기호가 필수적이다.


    레옹 발라: 문학가에서 수리경제학의 아버지로

    제번스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유럽 대륙에서 제번스가 풀고자 했던 바로 그 문제를 풀고 있었다. 1834년에 태어난 프랑스인 레옹 발라(Léon Walras)는 제번스보다 한 살 많았다. 1801년에 태어난 레옹 발라의 아버지 오귀스트 발라(Auguste Walras)는 당시 프랑스 최고의 명문 고등교육 기관이었던 에콜노르말(École Normale)의 유망한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에콜노르말 졸업생들이 그랬듯 당시 경제학 입문 과목을 독학으로 공부한 오귀스트 발라는 학업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갔다. 그는 잠깐 동안 프랑스 북부의 지방 도시 에브뢰에 위치한 에브뢰대학교에서 철학 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학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중심부에 있는 명문 대학으로 옮겨가야 했지만 그에게 그런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경제학 분야의 교수 자리가 대개 과학 쪽 인재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가 탄탄하거나 실세들과 인맥이 있는 사업가와 정치인들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았던 오귀스트는 대학에서 뛰어난 명성을 쌓는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지방 학교의 교장이 되어 앙투안 오귀스탱 쿠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같은 자신의 옛 급우들이 학계에서 명성을 쌓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경제학에 관한 글을 썼을 뿐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집필한 여러 논문 덕에 말년에 들어서 비로소 교수직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오귀스트가 교수로 재직하게 된 학교는 학업 중심지와는 거리가 먼 프랑스 북부의 캉대학교(University of Caen)였다. 말년에 겨우 얻은 그의 교수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귀스트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지닌 과학자였던 터라 대학 운영을 맡은 무지한 종교 지도자 및 성직자들과 사사건건 충돌했던 것이다. 강사로서, 그리고 대학 관리자로서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음에도 결국 그는 불명예스럽게 학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양이 늘어날수록 한계효용은 줄어든다

    발라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순수경제학 요론, 혹은 사회적 부 이론(Éléments d’ Économie Politique Pure, ou Théorie de la Richesse Sociale)’은 1874년과 1877년에 두 권으로 나뉘어 처음 출판됐다. 1889년, 1896년, 1900년에도 추가로 책이 발행됐으며 발라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재발행됐다. 경제 사상사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이 책에는 수많은 생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다소 구체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발라의 최대 업적이라고 평가하는 일반균형 이론(theory of general equilibrium)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만 이야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일반균형 이론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수준으로 가격이 조정된다는 점에서 상업과 거래를 통해서 모든 상품 시장(markets for commodities)이 결국 균형 상태에 도달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발라는 가격이 미지의 변수 역할을 하는 수요와 공급을 표현하는 연립방정식을 가정해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수학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방정식과 변수를 계산해 원칙적으로 이 연립방정식은 풀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이는 곧, 방정식을 풀고 시장을 균형 상태에 도달하게 하는 가격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어떻게 이 가격에 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아 있었다. 발라는 모든 시장의 공통분모 역할을 하는 하나의 상품, 즉 계산화폐(numéraire)가 등장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모든 가격은 우리가 돈(money)이라고 알고 있는 이 계산화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발라가 모색(tâtonnement)이라고 부른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서 상인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올바른 가격에 접근하게 된다. 몇 차례에 걸친 조정과 미세 조정을 거쳐 가격은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값에 이르게 된다.


    발라가 진행한 연구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자신이 택한 주제에 수학적인 요소를 더했다는 것이다. 친구인 쿠르노의 영향을 받은 레옹 발라의 아버지 오귀스트 발라는 무려 1830년대부터 바로 이런 식의 경제학 접근 방법을 신봉했다. 쿠르노의 ‘부의 이론의 수학적 원리에 관한 연구’가 정치경제학 연구에 수학의 개념을 도입한 첫 번째 출판 시도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쿠르노가 이야기하는 수학이란 단순히 회계(accounting) 목적을 위해 수학 기호와 산술 연산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쿠르노가 말하는 수학은 여러 변수 안에 숨어 있는 ‘관계성’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격한 논리였다. 쿠르노는 이렇게 기술했다.


    “수학적 분석에 능통한 사람들은 수학이 단순히 수치로 표현 가능한 크기를 계산하기 위해 사용될 뿐 아니라 변수 간의 관계, 그리고 함수 간의 관계를 찾기 위해서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영향 덕분에 발라는 오랫동안 수학적인 경제학 이론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맨 처음에 로잔 아카데미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발송한 서신에서도 수학적인 토대를 기반으로 정치경제학을 가르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엄격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아버지의 정의를 고수한 탓에, 혹은 효심 때문에 아버지의 정의를 부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제대로 뜻을 펼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아버지 오귀스트는 아들 발라가 한계효용이라고 밝힌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희소성(rareté)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했다. 발라는 ‘순수경제학 요론’ 초판에서 약간 난해한 방식으로 “소유한 한 단위의 재화로 만족되는 마지막 요구의 강도”라고 기술했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30파운드의 재화를 갖고 있다면, 서른 번째로 주어지는 1파운드가 돈의 주인에게 제공하는 효용이 바로 ‘희소성’이라는 것이다. 발라는 1874년에 ‘경제학자 저널’에 기고한 ‘수학적인 교환 이론의 원리(Principe d'une théorie mathématique de l'échange)’라는 글에서 이미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발라는 “희소성이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양을 고려한 실질적인 효용의 도함수”라고 주장하며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 이동 거리의 도함수를 속도로 정의하는 것과 정확히 같다.”라고 설명했다. 어떤가! 이것이 바로 한계효용의 수학적인 정의다.


    발라에게는 양이 늘어날수록 상품의 한계효용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너무도 뻔해서 ‘순수경제학 요론’ 초판에서 관련 내용을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간 듯 보인다. 발라는 일정한 양을 넘어서면 소비자들은 더 이상의 재화를 원치 않게 되며, 그 지점에 도달하면 소비자들이 가진 모든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에 설사 가격이 0이 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양이 늘어나면 재화의 효용은 점차 줄어들어 0이 된다. 발라는 재화의 효용 때문에 가격이 올라갈수록 수요 곡선이 아래쪽으로 꺾인다고 지적한 후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소유한 양이 줄어들수록 희소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이렇게 하여 발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는 방향이 반대인 원칙을 만들어내게 됐다. 발라는 “그리고 반대로”라는 말을 덧붙였고 그 내용 덕에 “양이 늘어날수록 한계효용은 줄어든다.”라는 발라의 표현이 더욱 잘 알려지게 됐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후 재판을 인쇄할 때 발라는 상품 축적에 대해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가장 시급한 욕구를 채워주는 첫 번째 단위에서부터 포만감이 생긴 후에 주어지는 마지막 단위에 이르는 모든 단위의 재화에는 집중 효용체감(diminishing intensive utility)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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