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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
저   자 : 로버트 스키델스키(역:장진영)
출판사 : 안타레스
출판일 : 2021년 05월

  • 더 나은 삶의 위한 경제학


    경제학 방법론에서 비롯된 모든 문제

    불가능한 법칙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제학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해의 위기를 예측한 경제학자들은 적었다. 그러자 경제학을 공부하던 학생들이 물었다.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하거나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정책을 제시할 수 없다면 경제학을 공부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경제학자 개개인의 무능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학의 ‘방법론(methodology)’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방법론이라고 하니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경제학자들의 방법론은 경제가 어떻게 그리고 왜 잘못됐는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경제를 연구하고자 유별난 방법을 개발했고, 이 밖에 다른 방법을 활용한 경제 연구는 경제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연구 대상이 되는 인간의 경제 활동은 신고전주의적 방식으로 정의된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방법론을 멸시하기도 했다.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 1915~2009)은 “할 수 있는 자들은 과학을 하고, 할 수 없는 자들은 방법론에 대해 떠들어라”라고 썼다. 프랭크 한(Frank Hahn, 1925~2013)도 “나는 젊은이들에게 방법론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경제학도들이 철학을 배우면 다음은 무엇을 할텐가”라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의 경제학자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성을 찾게 해주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사고의 방식이 아니라 사고의 대상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자연과학자들은 방법론을 고심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자 발전시켜온 방법들이 진실을 밝히는 데 적절하다고 믿는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연구 방법론에 관한 성찰은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에서부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0~1955)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실리적 목적을 위해 자연과학의 방법론은 늘 고정돼 있다.


    어쨌든 대부분 경제학자는 자연과학자들과 동일한 노선을 따른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인간 로봇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들은 이 기계와 같은 생명체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에 관한 ‘법칙(law)’을 수립하는 데 목표를 둔다. 아직은 완전한 법칙이 마련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 신경과학자들이 인간 뇌에 관한 연구를 완료하면 마침내 자연과학을 따라잡을 것이다.


    인간은 유일무이하게 창의적인 동물이다. 자아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한다. 주변 환경 및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기 행동의 도덕적 타당성을 고민하고 새로운 환경에 창조적으로 적응한다. 인간은 사고력과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과 세계의 미래를 수정해나간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게임을 유지할 수 없다. 경제학이 마련할 수 있는 법칙은 기껏해야 ‘경향(tendency)’이다.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 것인가

    경제 성장을 향한 여러 시도들

    경제학의 궁극적 목적은 빈곤을 없애고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열어주는 것이다. ‘빈곤 퇴치’는 최초의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인간 조건의 개선이었다. 그런데 수 세기에 걸쳐 수단이 목적이 되면서 이제는 누구도 경제 성장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게 됐다. 특히 기본적 필요를 이미 충족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것을 가진 부유한 국가에서도 경제 성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제학은 경제 성장에 무엇을 기여했을까?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 시대 이후 경제학이 부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빈곤과 폭력을 감소시켜 경제생활 향상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권력 추구와 달리 부를 향한 분투는 제로섬 게임일 필요가 없음을 제시했고, 사회를 훨씬 더 자애롭게 해주는 공공 정책도 마련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경제학만의 도움이었을까? 그에 앞서 이미 경제 성장에 이롭도록 시장 제도와 법률이 수립됐고, 이른바 ‘자본주의 정신(spirit of capitalism)’이 뿌리내렸으며, 혁신적인 기술이 활용됐다. 당시 애덤 스미스는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과학’을 정립했다. 과학적인 경제학은 인류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에서 이와 같은 역동적인 요소가 어떻게 활용돼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과거의 오래된 나쁜 습관으로 회귀하지 않도록 막았다. 이는 상업 사회에 지적이고 심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했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지적 충돌은 경제 성장에 관한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경제 성장에서 제도가 하는 역할 또는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애덤 스미스와 그의 뒤를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국가를 경제적 독점으로 인식하고 생산자 집단을 무역 규제 음모의 주체로 여기곤 했다. 이 편견은 주류 경제학으로 이어져 경제학 이론에 충실히 반영됐다.


    이에 반해 프리드리히 리스트를 따르는 개발 경제학은 국가 또한 기업이며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생산자 집단도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이해했다. 경제 성장과 관련한 국가의 역할은 경제학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18세기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물질적 부의 성장이 인구 통제, 자본재 축적(투자), 시장 확장(무역)에 달려 있다고 정확히 추측했다. 번영을 이루려면 사회가 출산율을 관리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 생산량이 일부를 저장하고, 시장을 개발해 자유롭게 거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엄청난 통찰이었다. 경제학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은 통찰력 덕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가 이런 활동에 유익한 제도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재산분배의 효율적 측면에서만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부유한 이유를 설명할 뿐이다.


    무역과 자본 축적

    애덤 스미스에게 분업은 제2의 경제 성장 동력이었다. 노동 분업 옹호는 자유무역 옹호로 이어졌다. 분업의 필요성은 핀(pin) 공장 사례에서 잘 드러났다. 그는 핀 공장 노동자 1명이 하루에 핀 5개를 생산하는 대신 5명이 100개를 만들 수 있으므로, 주어진 노동 시간에서 핀의 생산 단가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업무를 전문화하고 노동력을 분산시키는 이 분업 원리를 지역과 국가로 확대해 적용할 수 있으며, 그러면 국가의 부가 증가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자유무역 원리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곳에 사는 이유는 서로 사이좋게 거래하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무역은 자연적 우위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스코틀랜드에서 직접 와인을 생산하는 것보다 지중해 지역에서 수입하면 더 좋은 와인을 얻을 수 있다. 자연적 우위를 바탕으로 거래하면 같은 물건을 두고 경쟁하는 것보다 덜 파괴적이다. 각 국가가 서로 다른 물건을 생산하므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상호보완적인 무역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거나 생산에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재화를 서로 수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임금 및 직업 경쟁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연적 우위에만 기댄 무역은 분업을 제한한다. 다행히 이 한계는 데이비드 리카도 덕분에 극복됐다. 그는 무역이 복지를 향상하기에 자연적 우위에만 묶여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자연적 우위가 적더라도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면 분업으로 전문화해 무역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비교우위론(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예를 들어 연구도 잘하고 타자기도 잘 다루는 교수가 있다고 할 때, 타자 업무는 비서에게 맡기고 연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포르투갈은 와인 생산에 집중하고 직물은 영국이 맡아야 한다. 비록 포르투갈이 영국보다 와인과 직물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지만, 직물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와인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과 더불어 연역 추론의 전형적인 사례다. 리카도는 포르투갈이 직물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영국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할 경우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은 무시했다. 무역이 실제로 비교우위론에 따라 발전하는지를 경험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도 경시했다. 오늘날까지 국가 간 교역 흐름이 비교우위의 법칙을 따랐다는 결정적 증거 또한 나온 바 없다. 



    경제는 균형을 이룰 수 있는가

    균형과 중력

    ‘균형(equilibrium)’은 경제학에서 질서의 원칙이다. 균형은 시장 거래의 자발적인 결과로 간주된다. 이 관점에 따르면 질서를 유지하는 대안 시스템, 즉 권력에 기초한 대체 시스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시장은 사회적 협력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 작업을 수행한다. 국가의 역할은 ‘법과 질서’라는 정치적 의무 몇 가지로 제한할 수 있다. 따라서 ‘시장 균형’은 권력 행사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에 경제학이 전통적으로 내놓은 대답이다.


    엄밀히 말하면 균형은 ‘개념적으로’ 안정된 시스템을 뜻한다. 균형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이 균형 개념을 물리학과 공유한다. 자연에는 균형을 유지하려는 힘이 존재한다. 균형이 깨지면, 깨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반대 힘이 작동한다. 전자를 아무리 세게 밀어도 왔다 갔다 하다가 ‘중력(gravity)’ 때문에 결국 멈춘다.


    물리학의 발전 과정에서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는 달이 지구 주위를 돌며 그리는 곡선을 통해 균형 작용을 엿봤다. 케플러(Johnes Kepler, 1571~1630)는 그 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했고,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중력 개념으로 궤도를 설명했다. 중력을 맨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력은 케플러의 관측과 그 이후 관측된 수많은 현상을 설명하고자 세운 ‘가설’이었다. 고대인들은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천사들이 붙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기에 중력 가설은 엄청난 과학적 진보였다. 오늘날 중력은 이미 증명이 끝난 ‘사실’이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


    경제적 균형은 수요와 공급의 반작용으로 성립한다. 수요와 공급 그래프는 수요량과 공급량에 따른 가격 변화를 보여준다. 공급량이 줄어들면 가격은 올라가고 수요량은 줄어든다. 반대로 공급량이 늘어나면 가격은 내려가고 수요량은 늘어난다. 토마토 농가가 병충해를 당해 토마토가 부족해지면,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자들은 토마토를 덜 구입(수요)할 것이다. 반면 농가에서 토마토를 너무 많이 재배하면, 공급량이 늘어나 가격이 하락해서 일부 농가는 다른 작물을 재배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토마토 시장은 이런 식으로 균형을 찾게 된다. 경국 공급자와 수요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서 토마토 가격이 형성될 것이다.


    폴 새뮤얼슨은 이를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가격이 오르내리면서 마침내 균형 상태에 도달한다”고 요약했다. 그러므로 경쟁적인 수요와 공급 계획은 가격 균형을 어지럽히는 요인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다.



    권력이 판치는 시장에서 권력을 숨기다

    권력이 빠진 경제학

    ‘권력’은 정치학의 주된 주제다. 권력은 어떻게 획득되는가? 권력은 어떻게 이용되는가? 권력은 어떻게 정당성을 갖는가? 그런데 경제학은 권력을 다루지 않는다. 적어도 개념적으로 경제학은 비강제적 관계, 다시 말해 시장의 자발적 거래가 연구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정치학과 경제학은 인간 삶의 서로 다른 영역으로 다루는 것일까? 정치학은 권력관계로 형성되는 정치적 영역을, 경제학은 자발적 계약으로 형성되는 경제적 영역을 탐구하는 것일까?


    정치경제학은 이 두 영역을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와 연합하면서 학문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치경제학의 비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권력관계와 경제관계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치경제학에 관한 연구는 소외됐다.


    권력을 논하고자 할 때 마주하는 첫 번째 과제는 권력의 의미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권력은 처벌이나 억제력을 이용해 누군가의 바람에 사람들이 순응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권력과 권위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이다. 권위는 어떤 인물의 인격, 지성, 경험, 지위 등의 용인된 우월성에 의해 확립된다. 이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인정된 권리를 부여한다. 예컨대 의사에게 권위는 있지만 권력은 없다.


    권위와 권력은 다른 개념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권위가 권력과 분리될 수도 없다. 우리는 ‘법의 위엄’이 권력과 별개 또는 권력 위에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부자를 위한 법’, ‘빈자를 위한 법’이 존재한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권력에 관한 영향력 있는 이론을 제시한 스티븐 룩스(Steven Lukes, 1941~)는 권력을 ‘직설적(blunt) 권력’과 ‘어젠다(agenda) 권력’ 그리고 ‘헤게모니적(hegemonic) 권력’으로 분류했다.



    왜 경제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가

    경제의 역사는 통계의 원천

    표준적인 관점은 역사가 경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관찰 분야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이론을 시험하고 변수들의 관계를 추정하고 추가적인 경향을 예측하도록 돕는 경험적 증거의 출처다. 경제사의 기본 도구는 일정 기간 연속적으로 관측된 기록을 통계로 계열화한 ‘시계열(time series)’이다.


    시계열 분석은 계량경제학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미래의 관계를 추정하거나 과거의 관계를 시험하고 검증할 때 시간에 따른 두 개 이상의 경제 변수들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측정하고자 시계열 분석을 이용한다. 역사적 데이터는 계량경제학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의 원천으로서 비교 데이터를 연결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계량경제학의 데이터베이스가 엄청나게 확장됐다.


    하지만 계량경제학은 이론을 시험하는 방법으로서 과대 포장됐다. 경제 모델의 구체화 문제 말고도 충분한 관측치를 얻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약점도 있다. 결국 조건들이 고정돼 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높은 세금이 경제 성장을 방해할까? 이를 뒷받침할 결정적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은 결코 증명될 수 없다.


    역사의 비전을 계량경제학자들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로버트 솔로가 지적했듯이, 새로운 경제사를 쓰면서 경제학에서 했던 것과 “동일한 함수, 동일한 회귀, 사상을 대체할 t-값의 동일한 치환”을 나쁜 데이터를 활용해 찾는다. 새로운 경제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인식의 범위를 넓히기보다 단순히 똑같고 불분명한 정보를 여기저기 공급한다. 계량경제학은 필연적으로 역사적이지만 역사의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학은 경제사에 배운 나쁜 습관 외에는 경제사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를 바로잡는 경제학

    경제학자들이 과거를 연구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경제사를 제대로 쓰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학은 역사를 바로잡았다. 유명한 사례가 로버트 포겔(Robert Fogel, 1926~2013)과 스탠리 앵거먼(Stanley Engerman, 1936~)의 연구에 등장한다. 두 사람은 미국의 노예 제도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노예 노동력을 이용한 대량 생산은 매우 효율적이었고, 알려진 사실과는 다르게 ‘노예 사육’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노예들의 일상적인 식단과 의료 서비스 수준 등 물질적 조건도 오히려 북부의 “자유노동자의 삶에 비해 유리했다”는 것이다. 이는 노예 제도에 대한 기존 설명과는 대조적이었다.


    포겔과 앵거먼에 따르면 노예 노동이 비도덕적 생산방식이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었는데도 정치 논리로 인해 폐지됐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주장이 노예 제도를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흑인 미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포겔과 앵거먼의 연구는 ‘남북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결과를 분명히 해주기에 중요한 통찰이다.


    닉 크래프츠(Nick Crafts, 1949~)의 연구는 영국 산업 혁명을 영향력 있게 재해석한 사례다. 그는 산업 혁명 기간 동안 영국의 경제 성장을 분석하고자 다양한 산업군의 성장률을 측정했다. 그 결과 전체 성장률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낮았고 면화와 철강 부문에 집중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자 몇몇 경제사학자들이 크래프츠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그 시기를 산업 혁명이라고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경제학과 경제사를 생산적으로 구분하려면 경제학자는 정형화된 사실을 근거로 다양한 가설을 만들어야 하며, 경제사학자는 다른 모델과 다른 증거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경제학자라면 정복하기보다 탐구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전지적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경제학이 해결해야 할 학문적 문제

    주류 경제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인간 행동을 오해한다. 하나는 인간에게 이해득실을 따지는 ‘계산력’을 과도하게 부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행동이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하려는 지나친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은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로 인간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간 행동에서 ‘불확실성’ 과 ‘애착’이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 케인스의 말처럼 경제학의 오류는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전제의 보편성 부재”에 있다.


    인간 행동에 대한 경제학의 설명과 실제로 보이는 인간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다. 주류 경제학은 인간이 사리사용을 계산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손보지 않은 채 빅데이터와 컴퓨팅의 힘으로 그 차이를 메우려고만 한다. 그 결과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대중이 실제로 느끼는 것의 괴리가 더욱 커지면서 사회적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말의 마음’을 충분히 깊이 들여다보지 않은 탓이다. 


    경제를 이해하는 다른 접근방식

    우리가 확인한 두 가지 문제, 즉 ‘보편성이 부족한 전제(인식론)’와 미완이 ‘현실 지도(존재론)’라는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다. 우리에게는 인식론적 측면에서 더 겸손하고 존재론적 측면에서 더 풍부한 경제학이 필요하다.


    내가 하려는 주장은 경제학이 개인주의와 연역적 추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완벽하기보다 부분적인 예측 가능성 논리로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경제학은 경제를 독자적 행동 논리를 가진 전문적 활동이 아닌, 인간의 삶과 노력의 한 측면으로 보는 더 넓은 관점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을 연결해야 한다.


    내가 제안한 접근법으로 경제 분석 영역을 넓히는 것에 대해 주제를 너무 모호하게 만든다고 비판할 수 있다. 폴 크루그먼의 관점이 그렇다. 그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산만하고 비수학적인 방법론’을 채택한 사상가들은, 설령 아무리 유창하더라도 다른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둘째, ‘통제되고 유치한 경제 모델’이 유용한 진실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첫 번째 이유는 현재 유행하는 경제학 방법론에 관한 견해이며, 두 번째는 더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


    나는 기존의 ‘통제되고 유치한 경제 모델’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만큼 낡은 지식을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엄격하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모델화할 수 없는 것들은 설명에서 빠진다. 하지만 그로 인한 이해 부족은 쉽게 나쁜 정책을 낳을 수 있다. 경제학자들이 1970년대까지 수확 체증이나 과점 경쟁을 모델화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경쟁 경제의 ‘유치한’ 모델을 고수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토니 로슨은 급진적인 질문을 던졌다. 만약 경제학의 연구 주제가 다른 사회과학의 연구 주제와 같다면, 경제학과 다른 사회학을 구분할 이유는 무엇인가? 통합된 사회과학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답은 경제학은 다른 사회과학에는 없는 ‘닫힌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닫힌 세계에서는 정략적 예측이 가능하다. 목표가 주어지고, 규칙이 정해져 있으며, 오직 제한된 움직임만 허락되는 게임의 세계와 비슷하다. 경제학에서 이 세계는 늘 존재했고 오늘도 존재한다. 그것들은 미시경제학의 중요한 재료다.


    경제학이라는 건물의 1층에 윤리학을 다시 입주시켜야 한다. 인간의 욕구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경제학은 아무 제한 없이 부만 축적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류를 파괴로 몰아가는 정책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몇몇 경제학자들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자들 모두가 인식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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