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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의 경제
저   자 : 제이슨 솅커(역:최진선)
출판사 : 리드리드출판
출판일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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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란의 경제


    저항의 시작점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부른 공포정치

    저항과 혁명이 난무하는 역사에서 가장 전형적인 혁명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당시는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불평등했고 열악한 환경에 식량난까지 겹쳤던 시기였다. 정부 및 정치 시스템은 민중에게 매우 억압적이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정치적 대표성도 결여된 상태였다.


    프랑스 대혁명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는 ‘권력의 공백’이다. 독재 정권의 시대가 막을 내린 후 권력에 공백이 생겼다. 대혁명이 일어났지만 전제 정치와 완전한 단절을 이루지는 못한 것이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더욱더 강화된 독재 정권을 탄생시켰고, 반혁명(counterrevolution, 혁명을 반대하거나 적대하는 운동. 1790년 G. J. 당통에 의하여 처음으로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대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됨-옮긴이)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급진적 투쟁은 권력통합을 추구하는 보수의 바람이 일면서 주춤한다. 그 사이 독재적으로 권력을 통합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의 공포 정치가 자리를 차지했다.


    로베스피에르는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공포감을 조성했다. 그가 속한 자코뱅당은 대유럽 전쟁 수행을 위해 모든 식료품의 최고가격을 정했다. 그리고 국내 치안에 혁명민병대를 동원해 반혁명분자와 곡물 사재기 행위를 단속했다. 대규모 징병, 독재적 경제관리, 전면전을 위해 철저한 공포정치를 강화한 것이다. 이로써 대외 전쟁은 성공적으로 추진되었지만 국민의 반감은 높아지기만 했다.


    이에 반발한 사건이 ‘테르미도르 반동’이다. 혁명기에 프랑스는 달력을 개정해 ‘월’을 나타내는 명칭을 모두 새롭게 바꾸었다. ‘테르미도르’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테르미도르’ 월(11월)에 처형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권력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잡았다. 뒤이어 프랑스 제국(French empire)시대가 열렸다. 프랑스 제국이 수립되면서 각 대륙의 수많은 나라를 식민 통치했을 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지역에 혁명의 변화와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1899년 중국, 서구 열강에 무너지다

    혁명은 동양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말 역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혁명 중 하나는 중국에서 벌어졌다. 1899년에 시작된 ‘의화단 사건the Boxer Rebellion)’은 중국 청나라 말기에 일어난 외세 배척 운동이다. 오랫동안 중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중국 연안의 항구들을 공격해온 유럽 열강에 반발해서 일어났다. 이 점만 보면 의화단 사건은 외국 열강의 간섭과 식민주의에 대항한 반란이다.


    그러나 다른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경제’ 상황 역시 이 반란의 주요 촉발제였다. 당시 중국인들은 경제적으로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며 분노와 긴장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19세기 아편전쟁이 벌어진 이후 열악한 경제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과 겹쳐 위기는 극에 달했다. 계속된 가뭄과 홍수는 경제를 빈곤 상태에 빠지게 했고, 이미 오랜 기간 긴장 상태에 있던 정치 상황과 경제 상황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화시켰다. 이에 참을 수 없는 국민들이 일어난 것이다.


    1900년 5월, 의화단 세력은 톈진과 베이징에서 외국 공사관이 모여 있는 구역을 포위하고 외국 세력의 추방을 요구했다. 깜짝 놀란 서구 열강은 청 조정에 하루빨리 의화단을 진압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의화단과 열강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저울질하던 서태후는 의화단 세력을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민중들의 대대적 반외세 바람을 등에 업어 서구 열강을 몰아내고 자신의 권력도 지키겠다는 계산이었다.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서태후는 의화단을 베이징에 불러들이고 열강에 선전포고를 했다. 외국 공사들에게 중국을 떠나라고 통보하고, 각 지방 관아에 의화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일본, 미국, 독일, 이탈리아의 8개국 열강의 대응이 더 빨랐다. 이들은 연합군을 구성해 순식간에 톈진을 함락시키고 베이징으로 쳐들어왔다. 당황한 서태후는 “선전 포고는 본의가 아니었다. 의화단을 직접 진압하겠다.”라며 공격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연합군은 베이징을 점령하고 무자비한 약탈을 자행했다. 서태후는 초라하게 서안으로 쫓겨 갔다.


    의화단 사건이 주는 시사점이 여기에 있다. 당시 경제 상황 및 사회적 조건으로 미루어봤을 때, 혁명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서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를 안 서양 열강들은 승리의 대가로 중국 정부에서 엄청난 배당금을 뜯어갔다. 그로 인해 반란 세력과 갈등 상황이 끝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중국은 경제 발전과 성장에 있어 곤혹을 치러야 했다.


    의화단 사건은 아편전쟁과는 달리, 서양 열강의 결속으로 진압되었다. 중국을 상대로 전체 8개의 식민지 열강들이 합세함으로써 결국, 중국은 패배했다.


    1917년 러시아, 가난이 세운 사회주의 국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레닌(Lenin)이 내걸었던 슬로건은 ‘평화, 땅, 빵’이었다. 이 슬로건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의 굴욕적인 패배에 이어 농노제도에 따른 토지문제에 시민의 불만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가난했는지, 시민들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도시 노동자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그래서 1905년에 일어난 혁명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진행되었다. 레닌(Lenin)과 트로츠키(Trotsky)를 주축으로 한 공산당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치러야 했다. 내전은 구체제를 옹호하는 왕정파 백색군과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혁명파 적색군의 대립이었다. 이들은 수년간 장기적인 전쟁을 벌였다.


    내전은 백색군의 분열과 민중의 지지에 힘입어 1920년 11월 볼셰비키의 적색이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이후 1922년 12월 30일에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레닌이 이전에 민중들에게 약속한 동맹국(Central Powers)인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제국과의 평화도 이루었다.


    조셉 스탈린(Joseph Stalin)이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소련의 권력통합이 이루어졌다. 안정을 되찾았지만 알고 보면 다시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이는 테르미도르 반동의 일환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968년 유럽, 짧았던 프라하의 봄

    1968년 초,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자유화를 위한 개혁을 시도했다. 이 사건은 ‘프라하의 봄(Prague Spring)’이라 알려져 있다. 이 명칭은 1848년 발생한 ‘민중의 봄(Spring of Nations)’에서 파생되어 지 어졌다. 많은 이들이 냉전(Cold War)으로 얼어붙었던 관계가 해빙되길 바랐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1960년대 정체된 경제로 국민의 불만이 높았다. 자치권을 제한받던 슬로바키아 민족의 감정도 악화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개혁파인 두프체크는 개혁 조치를 위한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재판의 독립,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제의 폐지, 민주적인 선거법 제도의 창설,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보장, 국외여행·이주의 자유 보장, 경찰 정치의 종식, 공업·농업 부문의 개혁, 체코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 의한 연방제 이행, 자주독립에 의한 대외정책 추진, 과거에 권리를 박탈당한 모든 시민의 완전한 복권 등이다.


    두프체크는 이와 같은 개혁 조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고 했다. 언론·집회·출판 등이 자유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잠시 ‘프라하의 봄’이 유지되었다.


    1968년 8월, 소련이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5개국 군을 동원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사태가 동유럽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들은 두프체크를 비롯한 개혁파 지도자들을 소련으로 연행했고, 이로써 프라하의 봄도 끝나버렸다.


    그렇게 동유럽 지역은 철의 장막(Iron Curtain,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의 폐쇄성을 풍자한 표현-옮긴이)으로 드리워졌다.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의 정책은 소련에 의해 수립되고 그들의 지시를 받게 되었다.


    소련은 그들이 가진 막강한 힘으로 전체주의를 앞세워 동유럽인들을 무자비하게 옭아맸다. 이로써 프라하의 봄은 공산주의가 개혁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냉전으로 얼어붙은 국제 관계가 점점 해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무력진압으로 인식되었다. 1848년 실패한 유럽 혁명과 마찬가지로, 독재는 자유화 세력을 짓눌렀다. 이렇듯 프라하의 봄은 군사수단으로 진압되었지만, 유럽에 끼친 영향은 남다르다.


    1989년 소련, 경제난에 무너진 소비에트연방

    안타깝게도 소련은 ‘파산’으로 붕괴되었다. 소련은 미국을 따라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냉전이 끝나갈 무렵의 소련군은 병들고 피폐했으며 군인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소련군은 그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혁명의 발생 원인으로, ‘군사적 패배’가 혁명에 미친 영향력은 크다. 실제로 소련 정부의 운영 능력에 가장 타격을 준 사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Afghan War)이다.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무려 9년 4개월 동안 엄청난 병력을 동원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결속된 게릴라 ‘무자헤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철수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소련 정부는 재정적·정치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이끈 많은 혁명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과 다르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일이나 냉전 종식, 소련의 붕괴는 격렬한 혁명으로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어렵다.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정치적·사회적 시스 템에 의존했던 ‘경제’가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마침내 소련이 붕괴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당시 공산진영 국가들이 제시한 정치사회 시스템은 비효율적이고 억압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상대적 빈곤 속에 살아가는 국민에게 더 큰 불신만 안겨준 꼴이 되고 말았다.


    소련의 붕괴가 전반적으로 ‘폭력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독립 공화국이 되면서 소련으로부터 탈퇴했거나, 탈퇴를 시도했던 발트해 국가들과 다른 지역에서는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저항과 혁명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살펴본 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먹고사는 문제였다. 다시 말해 경제적·재정적 부분이 해결됐느냐에 달려 있었다. 빈곤으로 허덕일 때는 매우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며 혁명은 대체로 성공했다. 이는 역사상 반복되는 사실이다.


    1968년 여름엔 정권에 반발한 시위와 사회 저항 운동이 모두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서구 사회와 동유럽에 속한 국가를 비교해보았다. 어느 국가에서는 그저 시위로 끝나기도 하지만, 또 어느 국가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정부를 몰아낼 가능성을 만들었다.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서구 사회의 경제적 여건은 대체로 양호했지만 동유럽의 경제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는 점이다. 경제난을 감추기 위해 전체주의를 무기 삼아 사람들에게 겁주고 그들을 통제했다. 물론 경제 상황이 열악하다는 이유만으로 잔혹한 혁명과 정부의 전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참고 견디는 국민성을 가진 나라도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나치당의 국가 사회주의, 파시즘이 그러했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무릎을 꿇지 않았던 서구 민주주의 국가 중 소수도 마찬 가지다.


    이러한 역학 관계를 보면 사회의 불안과 큰 변동을 초래하는 핵심 요소는 심각하고 위태로운 경제 상황이다. 이를 역으로 짚어보면 경제가 안정적이라면 혁명이 발생할 가능성은 훨씬 적어진다는 의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경제 폐쇄, 경기 불황의 여파로 미국과 여러 국가에서 벌어지는 경제 상황을 고려해보자. 현재 미국 노동 시장의 여건이 역사상 최악에 속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더 나아가 2007년에서 2009년 터진 글로벌 경제 위기 때 겪었던 부동산 위기만큼 현재 부동산 시장의 흐름도 좋지 않다. 다시 한 번 부동산 위기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위험성 역시 증가하고 있다. 빈곤, 차별, 기회의 부족, 먹고사는 문제라는 경제적 용인의 절박함은 혁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현재의 변화를 올바르게 직시하면 미래에 훨씬 더 나은 결실을 맺는다. 정부와 정치 체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비경제적 위험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정 및 통화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위험 요소들이 생기지만, 일단 단기적으로 ‘비경제적 위험 요소’라는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오늘 해야 할 일에 차분하게 맞서 대응해야 한다. 그러면 안정적인 내일이 찾아온다.



    경제 도약, 미래를 꿈꾸다

    국가안보 시나리오와 ‘NOISE’ 프레임 워크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 경제, 안보 곳곳에 덮인 베일을 벗겨 냈다. 공공연한 비밀과 지금까지 간과되고 있던 위험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국가 안보에서 방심했던 부분까지 수면 위로 떠올라 정치권과 국민은 당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의료품, 의료 기기, 생필품을 비롯해 장갑과 마스크 같은 개인용 의료 보호구 등 핵심 물품을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었던 현실, 취약한 국내 공급망(supply chains, 원재료를 획득하고, 이 원재료를 중간재나 최종재로 변환하고, 최종제품을 고객에게 유통하는 조직 및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네트워크-옮긴이)의 위험성이 강조되었다.


    국가 안보의 일부가 된 공급망

    무역 리스크는 이미 미국의 국가 안보 문제이다. 특히 가공용 철강의 무역 리스크는 철강 및 알루미늄에 관한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법-옮긴이)를 추진시킨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미국통상법 301조(무역상대국 정부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한 보복 조치를 규정한 미국의 법규-옮긴이) 관세 역시 미국의 지식 재산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 미국 국가 안보의 위험 요소임을 강조한다.


    코로나19로 개인용 의료 보호구와 의료 기기들 역시 무역 논쟁의 핵심이 되었다. 이전에는 다소 경미하게 간주된 위험이 이제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험’으로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금속 자재, 개인용 의료 보호구, 식료품, 위생용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나 상품의 이동 거리가 너무 멀어 빠른 배송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안전한 공급망 유지가 본질적으로 어렵다.


    계속해서 이 문제의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의료 기기, 개인용 의료 보호구, 식료품, 위생용품, 의약품 등 필수적인 품목의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몸소 멀리 날아가는 모습이 빈번해질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로 미국인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지금은 중심을 잡아야 할 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미국이 팬데믹 사태에 이용당할 위험이 드러났다. 만일 팬데믹 사태가 미국만을 겨냥하여 발생했다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을 것이고,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염려해 급한 불끄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더 큰 위험을 초래했을 것이다. 또한 대중이 언론과 SNS의 메시지에 얼마나 취약한지, 여론이 얼마나 쉽게 사실과 무관한 주장으로 조작하는지 알았다. 이처럼 심리 공작과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경향은 또 다른 위험 요소이다.


    따라서 미국은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기술, 보건, 의료, 식료품, 소비품, 여타 공급망 등을 더 강화해야 한다. 국가의 안정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전염병이 주는 재앙은 경제난의 재앙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이러한 진단이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재 유발된 실제 상황이 그렇다. 매장마다 식료품과 휴지가 동이 나고, 많은 미국인이 집에서 자가 격리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정책 면에서 미국 연준은 잠재적으로 4조 달러를 추가해 대차대조표를 대폭 확장했다. 그리고 코로나경기부양법안(CARES : Coronavirus Air, Relief, and Economic Security)은 2조 3천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 내용을 포함했다. 현재도 더 많은 경기 부양책이 추진 중이다. 팬데믹의 준비 미흡이 감당해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NOISE’ 프레임 워크

    국가 안보 측면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해 국가 안보와 정치적 안정에 필요한 요소들을 뽑아보았다. 평온한 일상에 코로나19가 소음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점을 착안해 'NOISE' 프레임 워크라 이름을 붙였다.


    Necessities(필수품) : 식량, 물, 에너지, 주거지, 안전

    Occupations(직업) : 일, 직업, 취미

    Information(정보) : 정확하고 안전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것

    System(시스템) : 금융, 보건, 대중교통, 교육

    External(외부 요인) : 국제관계, 군사, 공급망, 무역


    첫 번째는 생존 필수품이다. 식량, 물, 에너지, 주거지, 안전이 포함된다. 이 필수품 없이는 사람들은 불안정한 위험에 노출된다. 필수적인 요소들이 안정되게 공급되면 한 국가나 경제는 급격한 동요 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두된 문제가 안전과 식량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따라서 전기나 수도와 같은 공익사업, 미국의 공급망, 사회 기본 서비스를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로 직업이다. 사람은 일할 거리가 필요하다. 은퇴 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가? 개별적으로 보면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사람들에게는 일, 직업, 취미가 필요하다. 뭐가 됐든지 일을 해야 한다.


    안정을 위한 세 번째 요소는 정보이다. 의견이 아닌 ‘확실한 정보’야말로 질서를 유지하고, 불안을 잠재우며, 사람들의 관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한다. 정확하고 완전한 정보여야 한다. 허위 정보, 왜곡된 정보, 심리 공작, 사실처럼 포장된 의견,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주관적인 해석 등은 갈등을 조장하고 불안 심리를 자극해 문제를 일으킨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가 이성적 판단을 돕는다.


    네 번째 요소는 시스템이다. 국가 안보는 금융, 보건, 대중교통, 교육을 포함해 많은 중요한 시스템들이 적절히 작동해야 보장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모든 시스템에 타격을 입히고 정상적인 작동을 어렵게 했다. 철벽같던 시스템이 무너지는 모습에 국민은 위기감을 느꼈다. 안일하게 대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스템을 보완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안보의 안정성을 위해 외부 요인도 중요하다. 국제 관계, 해외 파병 및 작전 수행, 글로벌 공급망, 무역 등이다. 다행히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국제 관계와 군사 안보와 같은 핵심 요소들은 빗겨 갔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과 무역은 직격탄을 맞았다.


    제조업과 국가 안보

    팬데믹으로 국가 안보 분야 공급업체의 업무가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비행기 제조사나 비행기 부품 제조 회사처럼 국가 안보 목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항공편 감소로 경제와 기업 사정이 악화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2차적 여파이지만 국가 안보 면에서는 1차적이고 아주 중요한 이슈이다. 향후 국가 안보 기관은 핵심 공급업체들의 경제 및 기업 리스크를 보다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방위산업에 필수 자재를 공급하는 스타트업부터 완성품을 납품하는 상장된 대형 업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앞으로 이러한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현재는 좌충우돌하고 시행착오를 일으키는 등 혼란스럽다. 이 와중에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거대 안보 기업들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대기업’이어서가 아니라 국가 안보에서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국가 안보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국가 안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걸까? 미국 국방부의 전략적 판단을 돕기 위해 나는 미국 ‘AFWIC’ 공군 부대를 위한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내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2020년 6월에 발표된 국방부 공개 보고서의 일부가 되었다.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A : 할리우드식 해피엔딩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패권 경쟁이 많이 완화된다. 양국 간의 경쟁이 과학 연구, 공급망, 백신 개발을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에 서 국제 평화와 협력을 위하여 유보된다. 초기 코로나19 관련 데이터의 불투명성, 장기적인 국제 경쟁, 아시아에 대한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헤게모니와 같은 우려 사항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B : 무역 전쟁 데탕트(국가 간의 긴장 완화, 관계 개선-옮긴이)

    2019년 말 미·중 무역 전쟁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그 희망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일부 무역 규제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일부는 완화가 된다. 향후 추가적으로 무역 규제가 있더라도, 그 규제의 정도가 상당히 제한적일 수 있다.


    경제 분야를 놓고 ‘경쟁’ 해야 한다는 의식보다는 함께 ‘공생’해야 한다는 의식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경쟁 상대에 대한 언론플레이를 줄인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C: 최고의 친구이자 적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분기마다, 해마다, 수년에 걸쳐 고조되었다. 이제 미·중 무역 전쟁은 가속 국면에 접어든다. 무역 확장법 232조, 무역 통상법 301조의 무역 규제는 의료 기기와 원자재에 대한 추가적인 관세가 부과되어 더 심화된다.


    미국과 신북미무역협정(USMCA : 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 미국·멕시코 캐나다 협정-옮긴이) 지역에서 공급되는 물품을 우선적으로 소비한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될 때 중국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무역 제한을 받는다. 미국은 경제 GDP의 한 축을 제조업이 담당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제조업 관련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지는 않는다. 로봇이 그 일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다시 살펴보며

    사실, 내가 예상한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보다 다가오는 미래의 실상은 더 심각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미래 현실에서 더 긍정적일 수도 있다. 미래란 종잡을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이다. 여기에 제시한 각기 다른 4가지의 미래 시나리오 또한 가능성 있는 예측에 불과하다.


    다시 새겨보는 NOISE 프레임 워크

    국가 안보의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NOISE 프레임 워크의 요소를 조절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 ‘안정’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요소들은 확고히 충족되지 않는다면 위험 요소로 돌변한다. 국민을 위험에 몰아넣고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NOISE 요소들이 안정적으로 충족될 때라야 국가 안보와 사회에 미치는 위험이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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