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조건 성공하는 사업만 한다
 
지은이 : 애덤 데이비드슨(역:정미나)
출판사 : 비즈니스북스
출판일 : 2020년 09월




  • 명문대 졸업장이나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 특별한 기술 없이도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저자는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백 곳의 기업을 조사하였다. 또한 MIT부터 구글 연구소까지 풍부한 자료 조사 역시 읽을거리를 더해준다. 이렇게 생생한 사례와 꼼꼼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저자는 성공한 사업의 공통점을 뽑아 절대 실패하지 않는 뉴노멀 시대의 비즈니스 법칙으로 정리했다. 


    나는 무조건 성공하는 사업만 한다


    비즈니스 불패의 법칙: 고객·가격·제품의 정의를 다시 내려라

    21세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19세기와 20세기의 최고 성공 요소를 결합해야 한다. 먼저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고 또 잘하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 여러 가지 재능을 조합해서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잘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서는 자기성찰과 실험이 필요하다.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다. 나도 30대가 되어서야 나만의 분야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만의 특별한 재능을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 누구나 다 알 만큼 두드러질 수도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열정을 찾는 일은 사업에서 성공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자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당신의 관심사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연결시켜라. 당신만의 특별한 열정과 재능을 찾았다면 그 열정과 재능을 가장 필요로 할 만한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관련 업계의 잡지나 모임, 온라인 게시판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처음에는 당신의 제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신의 열정과 재능과 잘 맞는 고객층을 찾고 나면 현재의 경제에서 수익성 있는 틈새를 개척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쉬워진다.


    이런 고객층을 발견했다면 다음 단계로 그들의 피드백을 경청한다. 동시에 당신의 고객이 되지 않기로 결정한 이들의 피드백도 똑같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지금은 더 이상 ‘획일적’ 경제의 시대가 아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상품과 재능을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하는 시대다.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하라

    현대 경제에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상품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것, 다시 말해 엄청난 규모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웹사이트에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트위터를 활용해 구매자를 확보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가치를 창출할 때는, 즉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어낼 때는 규모에 승부를 걸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대규모로 상품을 생산해서 수익을 내는 것은 대기업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치의 창출은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이자면 자기 주장이 아주 강한 소수의 고객층이 관심을 보일 만한 분야나 다른 사람들은 하기 힘든 분야에 집중해야만 수익성이 있다.


    상품을 더 많이 만들거나 고객이 더 많아질수록 상품이나 서비스의 탁월함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당신과 고객 모두가 원하는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조정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규모는 대량 판매 시장의 몫으로 놔둬라. 핵심은 양이 아니라 품질과 고객과의 소통에 있다.


    소수의 열혈 고객이 다수의 무관심한 고객보다 낫다

    가치의 가격을 책정하는 데에는 적절한 판매 대상이 필요하다. 작별 인사는 그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업을 위해서는 기존 고객 중에 상당수와 관계를 끊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과 반대되는 내용이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아마도 고객 대다수가 당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 가치에 대해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소수의 고객들만이 당신의 가치를 알아보고 적절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당신의 가치를 가장 확실히 알아봐 주는 고객을 위해 최대의 가치를 도출하는 활동에 주력할 수 있다.


    너무 급히 작별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 고객과의 관계를 끊는 속도는 재정 상태나 전환 계획, 장기 고객들에게 거래 종료를 요구하는 일에 대한 부담감의 정도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좌우된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다 파산에 직면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더디게 움직여 당신의 가치를 충분히 알아보지 못하고 그 가치에 맞는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느라 매여 있어서도 안 된다.


    결국 최고의 고객은 당신을 찾아오는 고객이다. 적절한 틈새를 찾아내 틈새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나중엔 공략 고객층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아져서 당신이 찾아 나설 필요도 없이 새로운 고객들이 먼저 연락을 해오게 된다. 틈새가 좁을수록 공격적 영업 전략을 펴지 않아도 관심을 가진 고객이 연락해 올 가능성이 크다.


    당신의 열정, 가격 책정, 가치, 공략 고객층은 한 물건의 서로 다른 면과 같다. 성공의 본질은 한 사람의 특별한 열정과 재능의 조합이 특정 고객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된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고객에게 실질적 가치를 창출해주고 결과적으로 그 가치는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가격이 된다. 짧게 말해 이 모든 요소는 동일한 핵심의 서로 다른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정도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그 어떤 요소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용감한 이들이 바꿔낸 돈 버는 방식: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잊지 마라

    제이슨 블루머(Jason Blumer)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꿔주는 사람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300개가 넘는 기업이 블루머 덕분에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영세기업 운영자 수십 명이 블루머의 가르침 덕분에 더 부자가 되고 더 행복해지고 더 높은 성취감을 얻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블루머는 회계사다. 그냥 회계사가 아니라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사업에 혁신을 일으켜주는 회계사다. 다시 말해 ‘회계사’라고 할 때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블루머의 고객들은 대개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의 영세기업 운영자다. 주로 그래픽 디자이너, 홍보 컨설턴트, 디지털 업체 사장들로, 실력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데도 먹고살 만큼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블루머에게 일을 의뢰한다.


    블루머는 이런 고객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일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지, 다른 사람은 할 수 없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 영역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어본다. 자신이 고객에게 전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신중히 규정해보라며 도전 의식을 북돋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수개월에 걸쳐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더욱 강압적으로 사업가들을 이끌면서 그들이 새롭게 거듭나 더 적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고객들에게 훨씬 더 큰 가치를 제공하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도와준다.


    회계를 싫어했던 회계사가 찾은 돌파구

    블루머가 삶의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3년 어느 쌀쌀한 아침이었다. 그날 새벽 6시 막 지나 눈을 뜬 블루머는 쳇바퀴 같은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회계학을 선택한 주된 이유는 아버지의 직업이 회계사였고 회계 말고 뭘 공부해야 할지 막막해서였다. 이 무렵 지금의 아내인 제니퍼를 만나 결혼도 했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제니퍼가 임신하자 블루머는 회계사로 일할 직장을 찾았다.


    자신을 채용해준 첫 회사에 바로 입사해서 일을 해보니 일한 시간과 의뢰인 수에 따라 돈을 받게 되어 있었다. 블루머는 여섯 번 도전한 끝에 겨우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특별할 것 없는 회계사였지만 금세 연봉을 6만 달러나 받게 되었다. 이 정도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북부 지역에서는 아주 쏠쏠한 벌이였다.


    당시의 블루머에게 그 일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면 이상하게 쳐다봤을 것이다. 그에게 일을 좋아하고 말고는 의미가 없었다. 일이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고 운이 좋으면 취미생활도 즐길 만한 여윳돈을 벌기 위해 하는 활동일 뿐이었다.


    2003년 가을 블루머는 그린빌에서 대략90분 거리의 소도시에 위치한 어느 공장에서 운명적 일을 맡게 되었다. 오래된 낡은 공장이었는데(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블루머의 비밀 유지 요청에 따라 변경되었다.) 대형 국영기업이 이 공장을 매입하면서 블루머에게 회계감사를 의뢰했다.


    당시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북부 지역의 경제는 직물 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수많은 주민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했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고등학교를 마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차피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든 없든 직물 공장에 취직하게 될 테니 일찌감치 취직해서 집안 살림에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고 근속연수를 쌓는 편이 낫다는 게 부모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직물 산업은 기술이 발달하고 대중국 무역이 증가하며 미국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하룻밤 사이에 닥친 일처럼 갑자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화 기계가 목화솜에서 실을 뽑아내고 그 실로 섬유로 만들어냈다. 마치 역병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1995년부터 2003년 사이에 사우스캐롤라이나 불부 지역에서 열심히 일할 만한 경제활동 연령의 주민들은 완전히 사라졌고(물론 더 나은 기회가 있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 것이지만) 늙고 노쇠한 이들만 남았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험이다

    블루머는 이런 어려움에 처한 소도시 여러 곳을 지나면서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의뢰인 중 상당수가 직물 회사 아니면 직물 회사에 일감을 주는 기업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일을 의뢰한 만한 기업은 얼마나 남게 될까? 따지고 보면 회계일도 직물 산업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도 점점 정교해지는 회계 소프트웨어 덕분에 수백만 명이 직접 세금 처리를 할 수 있었다. 또 유럽과 아시아의 해외 회계사들이 인터넷을 통해 믿을 만한 회계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며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었다.


    블루머는 인기 있는 새 회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나올 때마다 열심히 공부해서 회사 내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통했다. 이것은 회사에게 큰 가치를 주었다. 회계가 점점 자동화되는 상황에서 직원 중 하나가 적절한 디지털 수단을 정해 다른 회계사들에게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회계 분야의 가혹한 논리에 따르면 프로그램을 배우는 데 사용하는 시간은 수임료를 청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블루머의 가동률은 자주 7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고 60퍼센트를 찍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동률 55퍼센트를 기록한 회계사는 곧바로 해고되는 경우가 많아서 블루머는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항상 불안했다. 점심을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때우고 바로 일을 이어가는 식으로 몇 주 동안이나 일해야 한 달 가동률을 90퍼센트 이상으로 올릴 수 있었다.


    대신 블루머는 비참함을 감수했다. 그런 일은 재미도 보람도 없었다. 사실 회계감사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면서 진행하는 회계감사는 인수하는 쪽의 고위 임원이 적절한 실사를 모두 수행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블루머가 맡는 의뢰의 상당수가 이런 식의 회계감사처럼 형식적인 일이었다. 정말 일할 맛이 나지 않았다.


    회계의 등장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블루머는 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던 공장의 회계감사 일을 마쳤을 때 아내에게 자신의 꿈을 털어놓았다. 꿈을 꿀 때가 아니라거나 두 아이와 주택담보 대출 혹은 책임감을 거론하며 말릴지도 모른다고 어느 정도 각오한 채 이야기를 꺼냈지만 아내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더라도(실제로 힘들어졌지만) 한번 꿈을 펼쳐보라며 선뜻 지지해주었다.


    블루머는 연봉 6만 달러의 직장을 그만두고 파산 직전인 아버지의 회계 회사에 들어갔다. 사실 그곳은 ‘회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아버지의 집 2층 침실에 달랑 책상 하나가 있을 뿐이었고 의뢰인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시기가 블루머의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블루머는 꿈을 이루기 위해 크나큰 후퇴를 감행했다. 하지만 동시에 블루머에게는 이때가 마법 같은 시기였다. 회계 업무는 단순했다. 은퇴자들의 소득 신고서를 작성해주는 것은 수개월에 걸쳐 쓰러져가는 공장의 회계감사를 하는 것보다 한결 쉬웠다. 노동 시간이 예전보다 짧아져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해볼 여유 시간도 있었다.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종류의 책과 팟캐스트, 블로그를 살펴보며 회계를 통해 의뢰인에게 새롭고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줄 방법과 관련된 자신의 직관을 철저히 검토했다. 영화 〈오션스 일레븐〉이 연상되는 활동도 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갖추고 있으면서 특정 당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모다 팀을 짰다.


    창의적 회계사를 위한 독립선언문

    블루머가 가장 처음으로 찾아낸 중요한 인물은 회계사가 시간 단위로 수임료를 받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통찰가 론 베이커(Ron Baker)였다. 그는 자유주의 경제 성향을 가진 보수주의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블루머보다 열다섯 살이 많고 1980년대에 대형 회계법인인 KPMG에서 회계사로 일하며 블루머와 다를 바 없이 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회계감사와 소득 신고서 작성 업무를 맡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자신과 다른 KPMG 회계사들은 의뢰인과 전형적 계약을 맺어 의뢰인의 장부를 검토하면 대체로 몇 분 만에 몇 가지 사실을 간파해냈다. 그 분야의 풍부한 전문 지식 덕분에 회사가 장부를 형편없이 관리하는지 아닌지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많은 기업에서는 수십 년 전에 정해진 뒤에 좀처럼 재검토되지 않는 규칙에 따라 재무 기록이 관리되는데 오래된 기업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한편이다. 대다수 사람은 재무 기록이 법규화된 원칙에 따라 표준적인 방법으로 관리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재무 기록은 관리하기 위한 규정과 법규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규정과 법규에는 기업이 재량에 따라 처리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하다.


    베이커는 기업에서 장부를 이런 식으로 설계하지 않는 경우를 너무도 자주 보았다. 베이커는 이런 문제를 한눈에 간파한 후 재무 보고서를 잘 활용해 가장 다르기 어려운 문제들을 가려내고 해결 방법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회사의 임원진에게 빠르게 제안할 수 있었다.


    베이커는 노련함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업에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가져다줄 만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의 초안을 떠올리는 데는 대부분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기업의 재무 기록에서는 결함이 너무 명확하게 보여서 몇 초 만에 아주 유용한 통찰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베이커는 그런 통찰에 대해서는 수임료를 따로 받지 않았다. 거의 모든 회계사가 그렇듯 베이커 역시 시간 단위로 수임료를 받았다.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


    그러다 회계사는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가치에 따라 수임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춘 회계사들이 자신의 시간을 통찰력을 제공하는 데에만 할애하여 더 많은 수입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방식은 회계업계 전반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젊은 회계사들은 기계적 역할을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더 나아가 회계사들이 컴퓨터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단순한 회계 서비스를 아웃소싱하여 더 높은 부가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지루하고 시시한 업무를 다른 사람이나 기계에 맡기고 그로 인해 생긴 여유 시간에 전문가로서의 노련함을 활용해 흥미진진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최고의 상품을 만든다: 제품 뒤에 숨어 있는 열정을 어떻게 고객에게 전달할 것인가?

    내가 메간 필립스의 실무 진행 모습을 직접 볼 기회를 얻은 것은 필립스의 초대로 새로운 고객이자 세레스 랜치(Serres Ranch)의 소유주인 세레스 일가를 함께 만나러 갔을 때였다. 1800년대 말에 이 일가의 선조인 진 투츠 세레스(Jean Toots Serres)가 프랑스에서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농장 하나를 인수했다. 그곳은 세레스 일가가 인수하기 수십 년 전 남북전쟁의 영웅으로 ‘파이팅 조(Fighting Joe )’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조지프 후커(Joseph Hooker)소장이 이미 작물을 심었을 정도로 캘리포니아 와인 양조사 중에서도 유서가 깊은 곳이다.


    그날 필립스와 만난 세레스 일가 사람들은 지난 100년 동안 이전 세대가 모두 그랬듯 4대째 이 땅에서 자고 자라 농장을 꾸려가는 중이었다. 세레스 랜치는 와인메이커들 사이에서 유명하며 200에이커(80만 9,371제곱미터)에 이르는 이 농장은 미국의 대표적 와인 몇 종의 원료로 쓰일 만큼 누구나 탐내는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와인 생산지에서는 대체로 포도 재배를 감독하는 농장주가 곧 와인메이커이기도 해서 포도를 와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여러 단계를 직접 관리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농장주와 와인메이커가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 대개 포도를 재배하는 사업과 포도를 구입해 와인을 양조하는 사업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흙투성이 농부들이 만든 최고급 와인

    세레스가의 자식들은 부모님이 일하는 포도밭 사이에 앉아 놀며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이 땅을 친숙하게 느껴왔다. 가장 최근 세대인 서른여섯 살의 존, 서른세 살의 벅, 스물여덟 살의 테일러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포도와 땅, 그리고 와인의 품질에 도움이 되거나 해가 될 만한 온갖 변수에 대해 끊임없이 배웠다.


    포도밭 소유주와 포도를 구입하는 고객은 독특한 관계로 맺어진다. 포도밭 소유주는 그 땅과 그 땅에서 자라는 포도를 아주 잘 알고 있고 포도를 구입하는 고객은 그 땅에서 어떤 포도가 생산되길 바라는지에 대해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래서 언제 어디에 어떤 포도를 심고 어떻게 재배해서 언제 수확할지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포도밭 소유주와 포도 구입 고객이 함께 정한다. 세레스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의 특성을 가장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놓고 오래전부터 논의해왔다.


    한참을 헤맨 끝에 길쭉하고 나지막한 붉은색 농가에 도착했다. 세레즈가의 막내인 테일러는 회의 자리에서 가족의 대변자로서 충분히 생각해서 신중하고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했다. 특히 필립스에게 마케팅 자문을 맡기기로 선택한 이유와 자신들이 구상 중인 계획에 대해 들려주었다.


    테일러는 가격과 품질로 와인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며 세레스 랜치가 뛰어난 포도를 재배하는 곳이라는 명성을 얻기를 바랐다. 테일러는 와인으로 돈을 벌고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도를 재배해 대량으로 판매해 온 가업에 변화를 줄 생각은 없다며 본인의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테일러는 이어서 두 번째 전략도 설명했다. 그런 완벽한 와인을 만들 때까지 기꺼이 수년을 기다릴 테지만 비교적 저렴한 와인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내놓고 싶다고도 했다. 즉, 세레스가가 와인 생산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10년 내에 업계에서 인지도를 다지는 동시에 와인 양조 사업에서도 실력을 키울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테일러는 두 종류의 와인을 통해 자신과 가족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포도와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을 전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와인의 명칭, 와인병 디자인, 저렴한 와인의 적정 가격, 와인의 판매 방식과 판로 등에 대해서는 감을 잡지 못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바로 그때야말로 수년 동안 내가 간절히 목격하고 싶어 하던 순간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그 가치를 잠재 고객층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프랑스를 팔 것인가, 후커 장군을 팔 것인가?

    필립스는 가장 먼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그들이 생산할 와인의 정체성과 본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장자인 존은 자신들의 와인에 프랑스의 유산을 내세우면 어떨지 제안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필립스가 특별히 프랑스 스타일을 활용해 와인을 양조할 생각인지, 또 프랑스 스타일이 그들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인지를 물어봤다. 남매들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세레스 남매는 와인의 라벨에 ‘파이팅 조’라는 명칭과 함께 주먹을 쥐고 두 손을 치켜세운 남자의 그림을 같이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때 필립스가 또 한 번 나서며 파이팅 조의 이야기가 남매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부분인지 물었다. 남매는 이야깃거리로 삼기에는 재미있지만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때 남매의 아버지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남매의 아버지가 오가는 대화를 잠시 말없이 듣고 있다가 말했다. “저희는 뛰어난 맛의 와인을 만들 줄 알아요. 그런 와인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만들어왔어요.” “저희는 훨씬 더 품질 높은 와인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저희가 원하는 건 최고급의 우수한 와인이에요. 겉만 번지르르한 고급 와인 말고 진짜 고급 와인 말이에요.”


    놀랍게도 회의실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 지 3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새 와인이 전달할 메시지의 핵심 요소 몇 가지가 정해졌다. 이 가족의 진정한 이미지와 가족의 특별한 전통과 열정, 노력과 지식이 전달되어야 했다.


    이런 와인의 마케팅을 구상할 때는 진실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이런 소비층은 결국 상품에 담긴 진실을 알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레스가가 생산하는 와인을 과시적이기까지 한 프랑스 스타일의 고급 와인으로 마케팅을 할 경우에 소비자들은 세레스가 가족을 만나보고 그들이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실력은 뛰어나지만 매우 미국적이어서 고급스럽고 과시적인 프랑스 스타일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혹스러워 할 것이다. 반면에 이 가족의 진실성을 드러내주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는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의 관계를 탄탄히 다져줄 것이다.


    나는 세레스가 가족을 만나고 온 몇 주 뒤에 필립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필립스는 6단계의 헥스 메소드에서 네 번째 단계를 밟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의 브랜드 포지셔닝 회의에서 눈물을 비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좀 높아지고 호탕한 웃음이 터지면서 모두가 매우 만족하는 해결책이 나왔다. 세레스 랜치 와인의 라벨에는 밭고랑 형상의 이미지와 소의 뒷모습을 닮은 형상으로 디자인된 ‘SR’이라는 브랜드를 담기로 정해졌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