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트렌드 2021
 
지은이 : 김용섭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0년 10월




  • 2020년을 장악한 코로나19 팬데믹은 개인의 일상부터 기업과 국가의 경영까지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우리가 세워 놓은 2020년의 계획들은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변한 사회가 유발시킨 생존 본능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과 비즈니스, 사회와 문화, 소비를 바꿀 것이다.

    딱딱한 지표와 복잡한 통계를 나열하는 대신 일상 속 사례와 스토리텔링을 활용하여 내년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는 2013년부터 시작된 이래 2020년까지 꾸준하게 소비 주체와 성향의 변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성장, 산업 구조와 조직 문화의 변화, 취향 소비와 경험 공유 등의 이슈를 주목해 왔다. 이 주제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화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격변을 거치며 메가트렌드가 되었다.



    라이프 트렌드 2021


    CULTURE CODE

    세이프티 퍼스트: 불안이 만든 새로운 기회

    안전 민감증과 팬데믹 효과: 생각지도 못한 전화위복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의 반대말은 안전 민감증, 혹은 안전 과민증일 것이다. 평소 한국인에게는 안전 불감증이 문제가 되었지, 안전 민감증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안전 불감증 문제는 큰 사고나 재난을 겪으면 늘 제기되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은 좀 달랐다. 꽤 오래 지속된 데다 광범위하게 모두 해당되고 일상에서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전 국민에게 개인위생 관리를 이토록 오랫동안 집요하게 요구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덕분에 손 씻기와 기침 예절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수십 년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태도 변화를 팬데믹이 계기가 되어 이뤄 낸 것이다. 마스크를 필두로 손 소독제, 손 소독기, 체온계 등 위생용품이 역대급으로 많이 팔렸고, 관련 업계는 최대 호황을 누렸다. 안전 민감증이 보편화되었을 정도로 비위생 대신 결벽에 가까운 위생을 안겨 주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는 데도 기여했지만 결정적으로 그동안 상존하던 다른 감염병 발생도 크게 줄어든 것이다.


    수족구병, 눈병, 식중독은 대표적인 여름철 바이러스 질환이자 유행병이다. 그런데 2020년 여름에는 좀 달랐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영유아들이 주로 걸리는 수족구병(전국 95개 의료 기관의 표본 감시 자료) 환자가 2019년 25주차(6월 14~20일)에는 외래 환자 1000명당 42.7명이었는데, 2020년 25주차에는 1000명당 1.2명이었다. 거의 1/35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눈병(92개 의료 기관의 표본 감시 자료)도 2019년 25주차에는 1000명당 15.5명이었는데 2020년 25주차에는 1000명당 6.7명이었다. 거의 1/3가량으로 줄어든 셈이다. 식중독을 유발하는 노로 바이러스 감염(70개 의료 기관의 표본 감시 자료)은 팬데믹 이전인 2020년 1월 1주차(12월 29일~1월 4일)에 감염자가 307명이었다. 그런데 9주차(2월 23~29일)에는 76명이었고, 25주차(6월 14~20일)에는 12명이었다. 2019년 25주차에 감염자는 67명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1/5로 줄어든 것인데 확실히 팬데믹 효과로 볼 수 있다. 급성 호흡기 감염증을 유발하는 리노바이러스 감염(214개 의료 기관의 표본 감시 자료)은 2019년 25주차에 651명이었으나 2020년 25주차에는 178명으로 거의 1/4로 줄었다. 급성 호흡기 감염병이나 인플루엔자(독감)도 봄철에 기승을 부렸지만 2020년 봄에는 상대적으로 크게 줄었다.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현황을 집계했더니 2020년 18주차(4월 26일~5월 2일)에 아데노 · 리노 · 사라코로나 등 7개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 감염병 입원 환자가 3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시기에는 2046명이 발생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감소폭이다. 그동안 서로 거리 두기를 하고, 사람 앞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기침을 할 때에는 옷으로 가리고, 손 소독제를 이용해 손도 수시로 씻고, 덜 돌아다니고 사람도 덜 만났다. 개인위생 관리 강화가 이렇게나 감염병에 효과적이었음을 새삼 확인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으려 애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감염병 유발 바이러스도 차단된 것이다. 팬데믹의 긍정적 효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부활한 거대 담론의 시대

    팬데믹이 준 선물: 입으로 하는 혁신이 진짜 혁신으로 바뀌는 계기

    취업 사이트 글래스도어(Glassdoor)에 따르면 애플, 구글, 넷플릭스, IBM, 힐튼,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등은 특정 부문에 대학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기업은 확대 중이며, 대학 무용론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기업은 직원 교육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대학의 역할이 사라진 셈이다. 결국 대학이 살아남으려면 그들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1088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를 현대적 의미에서의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1109년에 설립된 파리대학교, 1167년에 설립된 옥스퍼드대학교, 1209년에 설립된 케임브리지대학교 등 800~900년간 이어져 온 대학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동안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과거 대학의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래서 대학 교육에 대한 무용론은 21세기에 들어서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IT 산업이 주도권을 가지면서 더더욱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었다. 사회와 산업은 많이 바뀌었는데 대학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그래서 수십 년간 대학 교육 현실을 지적하며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혁신이 되지는 않았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고,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혁신에 소극적으로 임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고 버틸 여력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전자에 박사가 3000명 정도 있다고 한다. 이제 대학의 경쟁 상대는 다른 대학이 아니라 삼성이나 SK와 같은 기업이 될 것이다. 대학의 역할이 변할 것이다.” 염재호 전 고려대학교 총장의 이야기로, 대학이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다. 더 이상 교육 기관으로서의 대학은 한계가 있다. 교육도 과거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 “변화(인쇄술)를 무시한 중세 대학이 몰락했듯, 지금 대학도 변하지 않으면 같은 운명이 된다. 정부는 대학의 원격 강의 비율 제한을 풀어야 한다.” 이는 서승환 연세대학교 총장이 《조선일보》와의 2020년 5월 12일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20년 2월에 총장이 된 서승환 총장의 공약 중 하나가 온라인 강의 플랫폼 ‘Y-Ednet’이었는데, 7월에 도입 계획을 승인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네요”라고 말한 것이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대학 교육의 새로운 방향이 시작되었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Y-Ednet은 전국의 대학들이 비슷한 커리큘럼과 같은 과목의 수업을 중복되게 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 낭비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전국의 경제학과는 100여 개로 이중 80%가 비슷한 커리큘럼으로 운영된다. 오프라인에서는 이 방법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온라인에서는 방법이 생긴다. 전국의 경제학과들의 모든 기본 수업을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고 각 대학교의 교수들은 각자 전문 분야를 살려 소수 과목에 집중해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연세대학교가 이를 주도하며 나선 것은 이런 변화에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서다. 즉 온라인 강의가 전면화되면 우수한 교육 콘텐츠를 가진 대학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고 경쟁력이 취약한 대학들은 사실상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기존의 SKY라는 강력한 입지를 가진 연세대학교가 향후 대학 교육이 전면 혁신되는 상황에서도 강력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먼저 나선 셈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수업 확산 상황에서, 콘텐츠의 질만 따져 보니 한국방송통신대학교나 사이버대학교가 훨씬 낫다는 평가가 나왔다.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 예배가 늘어나니,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말고도 설교나 콘텐츠가 좋은 교회의 온라인 예배를 보는 사람이 늘었다. 결국 여기서도 권위가 지워지고 실력이 남은 셈이다. 기존 기득권은 이런 변화가 싫겠지만 실력이 좋은 이들이 기회를 더 가지는 것은 가장 합리적이면서 공정하다. 2030세대를 비롯해 사회가 보편적으로 지지할 변화인 것이다.


    거대 위기 시대가 거대 담론을 요구한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자 가장 선진화된 사회 시스템을 가진 나라라고 자부했지만 팬데믹 위기 앞에서 무력화되었는데 이는 단지 미국만의 위기가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팬데믹 위기에서 좀 더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서구 사회의 우위 의식과 주도권이 달라지는 계기도 되었다. 거대 담론의 부활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겪을 트렌드다. 대침체 때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임시방편으로 넘겼다. IT 산업이 모든 산업의 주도권을 가진 시대에, 기술과 산업은 성장해도 일자리는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는 뉴 노멀에 대한 대안은 찾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인종 차별 문제가 쟁점일 정도로, 그들의 현실은 사회적 진화에 걸맞지 않다.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기후 위기와 환경 부분에 있어서 오히려 퇴보했다. 여전히 인권, 환경, 양극화 문제 등이 가장 중요한 시대지만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그린 뉴딜 정책이 대두되었지만, 산업을 위한 ‘뉴딜’과 환경을 위한 ‘그린’ 중 어느 것이 우선인지 혼재되어 있다. 이는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결국 심각한 위기 앞에서는 임시방편 해결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거대 양당이 다음 정권 집권을 두고 싸움만 벌일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거대 담론을 두고 통합적이고 건설적인 싸움을 벌일 때다.


    거대 위기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는 결국 사람과 공동체의 위기다. 팬데믹은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고 앞으로도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잠시 거리 두기를 하며 일시적 단절을 겪기는 했지만 우리는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중요한 이슈가 바로 공동체다. 뉴욕시 보건국에 따르면, 맨해튼에서 고소득 백인들의 거주지 중 하나인 그래머시파크(Gramercy Park)와 퀸즈에서 흑인과 라틴계가 많이 사는 외곽 지역인 파로커웨이(Far Rockaway)의 코로나19 치사율이 15배 정도 차이가 났다. 부의 불평등(양극화)은 전염병의 치사율 격차로 이어진 것인데 이것은 뉴욕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양극화 문제는 그전에도 심각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 심각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대응이 더 요구된다.


    양극화와 함께 대두된 이슈가 소외 계층이 겪는 디바이드(Divide) 문제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언컨택트 서비스도 더 가속화되었다. 금융 서비스, 쇼핑, 심지어 주차 요금 결제나 카페에서 커피 주문에서도 IT 기술을 활용한 언컨택트 서비스가 점점 증가한다. 키오스크(Kiosk)나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사람들, 스마트폰이나 카드, 디지털 계좌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주차 요금을 정산하기도, 커피나 햄버거를 사 먹기도 어렵게 됐다. 편리를 위한 기술이지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디바이드가 곧 언컨택트 디바이드가 되고 있다.


    언컨택트 디바이드는 주로 노인, 농어민, 장애인, 저소득층이 겪게 되는데 이중에서도 노인과 농어민에게 더 심각하다.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스웨덴에서도 언컨택트 디바이드 문제 때문에 다시 현금을 취급하는 은행 점포나 ATM 기기가 늘었다. 정부와 사회의 대응이 필요한 문제가 바로 언컨택트 디바이드인 것이다. 언컨택트가 초래할 일자리 감소도 중요한 사회적 문제다. 컨택트 사회에 기반한 일자리는 언컨택트 사회로 전환된 이후 어떻게 재배치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대응이 미흡할수록 공동체 안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더 커진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 사회가 풀어 가야 할 숙제가 많기 때문에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거대 담론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 모든 국가에게 주어진 숙제다.


    극단적 개인주의: 믿을 것은 나뿐이다

    극단적 개인주의는 철저하게 자신의 관점, 가치관,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단순히 ‘나만 잘살면 돼!’ 정도가 아니라 ‘내가 잘살려면 사회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돼!’로 진화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부당한 짓을 해서라도 남을 짓누르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사회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라면 성공도 실패도 모두 각자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 찬스’나 낙하산에는 강한 적대감과 거부감을 가진다. 기성세대는 그렇지 않다. 인맥과 ‘빽’도 실력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람이 꽤 많았다. 우리는 지금의 10~30대가 부모의 능력으로 저지른 대학 입시 부정이나 기업의 취업 특혜 문제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고 강한 적대감을 보이는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른 이슈에는 둔감하고 무심하지만 공정성과 투명성을 해치는 이슈에는 집단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개인주의자들이 가장 안심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극단적 개인주의가 어떤 이슈를 만들어 낼지, 우리의 일상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Weak Ties)』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뤘던 2020년 트렌드는 바로 느슨한 연대다. 끈끈한 연대로 대표되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아니라, 각자 잘 놀다가 필요할 때에만 가끔씩, 서로 끈끈하지 않아도 충분한 연결을 이루는 개인주의적 문화가 가족, 인맥,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 줬다. 느슨한 연대가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그 속에서 다양한 욕망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을 다루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2020년에 우리는 팬데믹 시대를 살게 되었고, 느슨한 연대 트렌드는 더욱 확산되었다. 느슨한 연대와 연결되는 것이 극단적 개인주의이다. 물론 극단적 개인주의에도 그림자는 있고 때로는 위험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집단’이 아닌 ‘개인’이 훨씬 우선되는 시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면서 더더욱 실감했다. 역시 믿을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 이를 위해 자기 능력을 키우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어떤 재테크를 하든 충분한 돈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주린이와 재테크 열풍: 믿을 것은 돈뿐이다

    2020년 상반기에 사상 최대 신규 주식 계좌가 개설되었다고 한다. 주식 초보를 일컫는 ‘주린이(주식+어린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일 정도로 널리 퍼졌고, ‘동학 개미 운동’이라는 말은 2020년 올해의 신조어로 꼽혀도 손색없을 정도로 유행했다. 2018년을 뜨겁게 달군 비트코인 광풍의 중심에 2030세대가 있었는데, 2020년의 동학 개미 열풍도 2030세대가 주도했다. 2030세대에게는 열심히 일하면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내 집 마련 정도는 하면서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성세대의 생각이 애초에 없다. 기성세대에게는 저축만으로도 돈을 벌던 시대가 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81~1990년까지 은행 예금 이자율은 평균 10.22%였다. 1991~2000년까지는 9.58%였다. 은행에 그냥 넣어 두기만 해도 원금 보장에 약 10%의 수익률까지 보장되는 말도 안 되는 시대가 20년 전이었다. 심지어 1998년, IMF가 금융 기관에 높은 BIS 비율을 요구하자 예금 유치를 위해 1년 정기 예금 이자 20%, 3년 정기 65%를 준다고 광고한 은행도 있었다. 물론 이런 이자율은 특별한 경우였지만 10% 초중반대의 이자율을 적용한 금융 기관은 많았다. 은행에 예금만 해도 10% 넘는 수익률을 거두었던 기성세대와 0%대 정기 예금 이자가 당연해진 시대의 2030세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참고로 2001~2010년 은행 예금 이자율 평균은 4.33%, 2011~2018년은 2.37%다).


    열심히 일해도 부자는커녕 가난해지는 워킹 푸어를 면하기 어렵고, 평생 안 먹고 안 쓰고 모아도 집 한 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 공무원 등 양질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다. 금수저는 물려받을 재산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이들이 소박하게 자기 집 하나 가지려면 부동산, 주식 투자 등 큰돈을 벌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 꿈을 노동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으니 투자로 이뤄야 한다. 애초에 투자 자금이 적기 때문에 안정적 투자로는 큰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을 노린다. 비트코인 광풍 때 등록금을 날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빚을 냈다가 또 날린 20대들의 무모함을 비난하기에 앞서 ‘어떤 대학생이 수백만 원으로 100억을 벌었다’라는 허황된 투기적 메시지에라도 기대고 싶은 그들의 절박함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들은 인생 역전의 기회라고 봤을 것이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성을 잃고 집착했을 것이다.



    LIFE STYLE

    원격 근무 확산의 나비 효과

    원격/재택 근무 확산이 직장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재택근무는 냉정한 성과(능력)주의를 만들어 내는데 이때 절대(투명) 평가가 핵심이다. 그런데 한국식 조직 문화는 위계 구조만 강한 것이 아니라 임직원 각자가 가진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하거나 겹치는 경우가 많다. 상사들이 직접 만나 끈끈한 관계를 맺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모호한 지시를 하는 경우도 많고, 후배의 성과를 가로채거나 묻어가는 이도 존재한다. 후배들로서는 이런 상황에 불만을 가져도 위계 구조가 가진 힘과 사내 정치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상대 평가는 상사가 평가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팬데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격/재택 근무를 하더라도 권한, 책임, 평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고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권한과 책임 분산을 통해 빠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효율성 향상을 꾀하며 능력 있는 직원들에게 더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가 대세여야 한다. 그중 OKR(Objective and Key Results)이 대두되고 있다. OKR은 인텔에서 시작되어 구글과 실리콘밸리 기업들로 번져 간 성과 관리 측정 기법으로, 회사가 큰 목표를 세우면 부서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작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회사의 일방향성이 아닌 회사, 부서, 직원이 쌍방향성으로 목표를 만들어 이뤄 간다. 기존 기업들의 성과 관리 평가가 1년 단위인 것과 달리, 주와 분기 단위로 목표 관리를 함으로써 급변하는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기존에는 하반기에 다음 연간 계획과 목표를 세우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한두 달 앞도 명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도록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연 단위로 예측하고 대응하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원격/재택 근무가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알파벳), 페이스북은 전면적으로 원격/재택 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시가 총액이 가장 비싼 톱(Top) 5 기업인데 이중 4개가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했다. 이들 외에도 실리콘밸리에는 테슬라, 넷플릭스, 우버, 트위터, 인텔, 엔비디아 등 글로벌 산업을 주도하는 IT 기업이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이들은 그동안 실리콘밸리에 멋지고 큰 사옥을 가진 것으로 경쟁 아닌 경쟁을 해 왔다. 유능한 인재와 투자금이 실리콘밸리로 모이면서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아주 풍족한 도시가 되었지만 그만큼 집값도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땅은 제한적인데, 이곳에서 시작한 스타트업들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고 다른 글로벌 기업들과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교통 체증과 주거 비용이 폭등할 수밖에 없다. 만약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기업들이 전면적으로 원격/재택 근무를 도입하기 시작하면 직원들도 상대적으로 덜 비싼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기업도 사무실 공간을 줄일 여력이 생기지 않을까? 재택/원격 근무가 확산되면 주거용, 업무용 부동산 시장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실리콘밸리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그 주변 위성 도시들이 포함된 광역 도시권을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San Francisco Bay Area)라고 하는데 실리콘밸리도 여기에 포함된다. 실리콘밸리는 샌타클래라(Santa Clara) 계곡이 위치한 팰로앨토(Palo Alto)에서 새너제이(San Jose)까지의 지역으로 이곳에만 크고 작은 4000여 개의 기업이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의 주거용 부동산 매매가와 임대료는 미국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제한적이니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베이에어리어뉴스그룹의 《머큐리뉴스》가 부동산 정보 사이트인 줌퍼(Zumper)의 정보를 바탕으로 2020년 7월과 그 1년 전인 2019년 7월의 월세(렌트비) 추이를 분석했더니 방 1개짜리 아파트의 월세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1.8%, 마운틴뷰 -15.1%, 멘로 파크 -13.5%, 쿠퍼티노 -15.7%, 새너제이 -8%, 서니베일 -5.2%였다. 방 2개짜리 아파트으 월세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9.6%, 마운틴뷰 –5.8%, 멘로 파크 –12.9%, 쿠퍼티노 –14.6%, 새너제이 –4.7%, 서니베일 –3.1%였다.


    월세가 보편적인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전세 제도가 존재하고 한국적 부동산 시장만의 특수성이 있어서 원격/재택 근무가 당장 집값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년 후라면 어떨까. 대기업들이 원격/재택 근무를 더 확산시키고 0%대의 역대 최저 금리 시대가 도래했으며 부동산 투기에 대한 정부의 근절 대책이 계속 추가되는 상황에서, 전세라는 한국만의 특수 제도는 시장 논리만으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월세든 매매든 실수요 중심이 강화될수록 원격/재택 근무가 부동산 시장에 초래한 영향은 조금씩 드러나게 될 것이다. 주거용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업무용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이 생길 수 있다. 대기업들이 수년 새 빌딩이나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팬데믹 효과와 원격/재택 근무 확산으로 인해 큰 사옥을 가질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피스 임대 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20년에 촉발된 변화가 2021년에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로컬 & 메타버스: 공간의 새로운 중심이 되는 두 가지 욕망

    로컬(Local)과 메타버스(Metaverse)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더 커진 욕망의 공간으로서, 우리가 더 많이 찾게 되면서 더 중요해지고 있다. 지역(지방)과 현지인을 뜻하는 로컬과 가상 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는 서로 참 먼 느낌이었다. 말 자체도 이질적이고, 의미하는 공간도 서로 멀었다. 하나는 시골 느낌이면서 인간적이고 아날로그이지만 다른 하나는 미래 느낌이면서 디지털이다. 사실 둘을 서로 이질적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구시대적 관점이기도 하다.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 중에서도 우리의 실제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이 그대로 재현된다. 물리적 현실 공간이 아닌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현실과 다름없이 사회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라이프스타일과 욕망을 드러낸다. 가상 세계 속 인물이라고 해서 완전한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자신을 대신해 아바타를 내세울 뿐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도 무의미해졌다.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 혼합 현실(Mixed Reality, MR)이 두 공간을 이미 연결시켰을 뿐 아니라 우리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일상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늘 손에 꽉 쥐고 있는 스마트폰은 두 공간을 넘나드는 게이트이며,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서로 결합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구분이 모호해졌다. 우리 사회는 대도시가 중심이자 주인공이고, 로컬과 메타버스는 둘 다 주류가 아니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로컬은 새로운 도피처이자 평소 접하지 못했던 차별적 공간이고, 메타버스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욕망을 해소할 대안 공간이다. 그러고 보니 이 둘의 연결 고리로 대도시가 있다.


    로컬에 대한 환상이 무너져야 로컬이 진화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는 전염병에 취약한 도시 구조다. 로컬의 삶은 대도시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선택인데 우리는 팬데믹을 거치며 대도시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추가했다. 치열한 경쟁, 팍팍한 삶, 극심한 양극화가 싫어 대도시를 떠나고 싶었는데 이제는 여기에 더해 좀 더 안전하게 살기 위해 대도시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팬데믹이 초래한 원격/재택 근무의 확산 또한 대도시 대신 로컬을 주목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팬데믹이 로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촉진시킨 것이다.


    로컬은 수년째 뜨거운 트렌드 화두였다. 그동안 ‘트렌드로서의 로컬’은 서울로 대표되는 인구 밀도가 높고 경제 기반이 튼튼하지만 양극화가 극심한 대도시에 대한 저항이자 반발 혹은 세계화에 대한 저항으로 여겨졌다. 세계와 연결된 메가 시티가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조금 느리지만 좀 더 인간적이고 자기 주도권을 잃지 않는 삶의 방식을 얘기했다. 그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다양한 로컬 비즈니스가 등장했고, 대도시가 그려 낸 자본주의적 성공 방식에서 벗어난 다양성이 대두되었다. 적게 벌고 적당히 즐겁게 사는 일상에 대한 욕망이 부각된 것이다. 이런 흐름에 3040세대가 반응했고 20대 중 일부가 동참했다. 5060세대가 귀촌과 귀농이라는 이름으로 로컬로의 이동을 주도했던 과거에 다른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은퇴한 사람들이 찾던 로컬에서 한창 일할 젊은 세대가 찾는 로컬로 바뀐 것은 아주 큰 변화다.


    ‘제주 살이’가 유행처럼 번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왕이면 제주에서 로컬의 삶을 시작해 보려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우리가 로컬에 대해 가진 판타지 때문이며, 그만큼 대도시에서의 삶이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던 셈이다. 하지만 판타지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일상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제주 살이를 위해 떠난 이들 덕분에 제주는 꿈의 종착역인 양 뜨겁게 주목받았지만 이제는 몇 년 전에 비해 제주 유입 인구가 크게 줄었다. 호남지방통계청이 2020년 5월 26일에 발표한 ‘2000년 이후 20년간(2000~2019년) 제주 인구 이동 추이’ 보도자료에 따르면, 제주에서 유출되는 인구보다 유입되는 인구가 많아져 인구 순유입으로 전환된 것은 2010년이다. 당시 437명이 순유입된 이후 10년째 계속 순유입이 많은 상태다. 2000년에 -2358명, 2005년에 –805명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 인구는 순유출이 더 많았다. 그러다가 2010년대 들어서 제주로의 귀촌이나 한 달 살기가 주목받으면서 유행처럼 번졌고 순유입의 시대를 맞았다. 특히 2015년 1만 4257명, 2016년 1만 4632명, 2017년 1만 4005명으로 순유입의 절정기를 맞았고, 2018년 8853명으로 떨어지더니 2019년 2936명으로 급락했다. 순유입 정점이었던 2016년 대비 2019년의 순유입은 -80% 수준이다. 여전히 순유입이 더 많기는 하지만 추세로 보면 확실히 크게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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