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지은이 : 임승규 외
출판사 : 한빛비즈
출판일 : 2020년 05월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덮었다.  ‘생명과학의 눈부신 성취에 힘입어 인간은 이미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제 고민할 건 과거 전염병 사례를 감안해 바이러스 공포감이 정점을 찍는 시점을 계산하는 일, 글로벌 경제가 언제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돌아설 것인지 찍기만 하면 된다’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중국 외 지역의 확진자, 사망자가 빠르게 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동금지 명령이 떨어진 미국을 포함해 유럽 주요국의 경제가 멈춰 섰고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래 최대 불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코로나19 이후’를 염두에 둔 질문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포스트 코로나


    국제경제: 코로나19,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의 원인인가?

    웰컴 투 오자크

    시장의 인질이 된 중앙은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것은 부동산 과열이었다. 지금 들어도 생소한 용어인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위기의 발단이었다. 그동안 신용을 끌어다 쓰면서 흥청망청 살았는데 막상 버블이 꺼지니 모두가 암담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은행의 부실대출을 보증하고 빚을 떠안는 방식으로 파국을 막았다. 이것이 2008년 이후 이른바 서방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민간 부문의 부채를 정부가 떠안으면서 서방 선진국 전체적으로 공공 부채가 3분의 1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개인과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투자에 실패해서 모두 허리띠 조이기에 들어가니 누군가는 돈을 써야 했다. 돈이 돌지 못하고 막히면 다 죽는 시기였다.


    결국 중앙은행이 윤전기를 돌려 돈을 찍어 내는 식으로 현금을 조달했다. 관건은 이 돈이 흐르게 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이 돈을 금융시장의 정상적인 자금 흐름에 얹는 것이 관건이었다. 중앙은행이 정부 발행 국채를 매수하는 양적완화 정책이 여기서 등장한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돈으로 매입하니 국채의 가격이 올라간다. 국채 가격이 올라가면 민간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진 국채 시장을 떠나 주식, 부동산 같은 다른 자산을 매입하기 시작한다. 이제 투자자들에게는 주식도 채권도 부동산 투자도 매력적인 기회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산가격 상승의 선순환 고리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한 듯 보였다.


    카페인에 취한 기업들

    하지만 아무리 주가가 오르고 금리가 떨어져도 실물경제는 그만큼 살아나지 못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성장세가 이어지다보니 금융시스템 붕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도입한 정책들도 쉽게 되돌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다시 하락이라도 할 것 같으면 난리가 났다.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댄 채 중앙은행의 선택을 재촉한다. 시장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퍼주는 중앙은행장들이 찬사를 받았다.


    끝없는 버블의 재생산, 그것만이 중앙은행의 살 길이었다. 시장이 중앙은행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승자는 가장 영악하게 게임의 룰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더 좋은 패는 없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유리하고, 더 큰 판돈을 거는 사람이 유리하다.


    영악한 사람이라면 이런 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우스를 통해 싼 값에 최대한 많은 돈을 조달해 그 분이 오실 때까지 걸고 또 걸면 된다. 주식시장이라면 더 많은 돈을 빌릴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구조이다. 게임의 룰이 이렇게 정해지다 보니 성실하게 일해서 월급 타가는 사람들이 힘을 낼 리 없다.


    이게 지난 10여 년 간 실물경제에서 일어난 일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지 머니(easy money)를 이용해 금융 야바위에 골몰하고 있는 사이 성실하게 자금을 조달해 공장을 짓고 직원들 복리후생과 기술개발에 힘쓴 전통적 제조 산업들은 활력을 잃는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일부 혁신기업이 엄청난 이익을 올리지만 다수의 기업들은 대규모 부채를 떠안은 채 경제의 활력을 끝없이 갉아먹는 시스템이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투자 행태도 게임의 룰에 발맞춰 더 대담해졌다. 이는 금융시장의 체력을 기저에서부터 갉아먹는 요인이 됐다. 지난해 국내 사모 헤지펀드 1위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연기 사태는 그 단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라임자산운용 사태는 탐욕에 눈 먼 일부 금융인의 일탈이 빚은 에피소드로만 치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동안 헤지펀드들은 투자자들이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그들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선전해 왔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대규모 환매에 직면한 헤지펀드들이 고객에게 제대로 돈을 돌려준 사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헤지펀드들의 고객에게 선전하는 것과 달리 펀드의 유동성이 환상에 불과해 보이는 이유이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분명히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헤지펀드들이 고객에게 약속한 수익률을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나서서, 중앙은행이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이런 자산운용 방식을 키운 것이다.


    결국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무슨 일이 벌어졌나? 다수의 증권사들이 순식간에 유동성 위기에 처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나타난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의 상당 부분은 코로나19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미 기저질환이 시장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는데 변변한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다가 막상 코로나19에 감염되자마자 발작에 빠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최상의 시나리오

    바이러스라는 외부 충격과 그에 따른 경제주체들의 활동 중단을 이번 경제위기의 근원으로 보자면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고 치료제가 개발될 경우 하루아침에 상황이 반전될 수도 있다. 대내외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낙관론은 이를 반영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적극적인 재정확대와 통화완화가 시장을 지지하고 있다.


    역사도 투자자들의 낙관론에 힘을 보태는 듯하다. 역사를 통틀어 바이러스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스페인 독감의 경우 처음 발생한 1918년부터 1920년까지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독한 놈’이었지만 세계 경제는 스페인 독감이 잦아들자마자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았다. 스페인 독감은 계절 감기처럼 잊혀졌고 대호황으로 이어진 1920년대만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상’을 회복한 듯한 이 세계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와 그에 따른 기업실적 악화, 대규모 재정 투입이라는 이 사이클의 출구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요 위축이 장기화됐을 때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디플레이션이다. 물가 하락이 자기실현적 기대경로를 통해 상품 및 서비스 전반에 지속되는 상황 말이다. 낮은 물가가 장기간 지속되는 것은 경제의 총수요보다 적은 수준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긱 경제(gig economy: 특별히 목적한 일을 위해 초단기 계약으로 인력을 섭외해 경제활동을 하는 것)가 확산될 가능성 역시 커 보인다.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택시나 배달, 고양이 산책시키기처럼 단기 계약직이 필요한 곳에 빠르게 연결될 수 있었다. 플랫폼 비즈니스와 긱 경제 간 결합의 성공 사례가 늘면서 새로운 노동 형태로서 긱 경제 확산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빠르게 늘었다.



    국내경제: 전통적인 한국형 경제 성장모델은 쇠퇴하나?

    장기성장률 저하와 국내외 환경의 변화

    장기 성장률 저하와 한국식 모델

    우리나라의 경제는 1950년대에 6.25전쟁 이후 미국의 지원을 위주로 한 원조 경제를 기반으로 사실상 시작하여 60년대의 경공업, 70년대의 중화학 공업, 그리고 80년대의 정보화 산업을 중심으로 90년대 후반의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였다. 70년대에는 평균 10% 내외의 실질 GDP 성장률을 유지하다가, 80~90년대 7~8% 내외의 성장률을 유지하였다. 이후에 2000년대에는 4~5% 내외, 2010년대에는 3% 정도로 낮아지고 있다. 8~9%의 성장률을 30년 정도 유지한 것은 이후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우리나라의 2% 정도의 성장률과 비교하면 급격한 성장을 경험한 시기이다.


    이러한 성장과 그 원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겠지만,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급격한 성장 요소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내수가 아닌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는 정경유착을 통해 대기업이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지만, 주로 해외 소비자들이 기업의 성과를 평가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객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배경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가 성장하던 당시는 미국과 구소련이 이른바 냉전을 통해 경쟁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였다. 그 반대 진영을 통칭하여 공산주의 진영이라고 할 때 그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우리나라는 이른바 자유진영의 경계로서 매우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비교적 빠르게 세계 무역 시장, 특히 선진국 시장에 물건을 수출하여 성장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이를 잘 활용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이면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을 맞이한 세대와 전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보여 준 근면성실함과 교육열, 북한과 체제 경쟁을 하던 권위주의 정부의 성장 지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또한 이병철, 정주영 등 진취적인 1세대의 기업가가 적절하게 출현하여 이러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끌었음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성장모델을 요약한다면 해외에서 원자재와 주요 기계 등을 수입해서 이를 가공하여 가치를 더한 후 완제품이나 부품을 만든 뒤 이를 해외에 수출해서 자본을 축적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최근 BTS를 키운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 새롭게 일어나는 산업은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성장은 중후장대한 장치산업이 주도했다. 이러한 한국식 모델이 정립된 후 수십 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1996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휴대폰, 석유제품 등 주요 산업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제조업 분야에서 최첨단 핵심 기술의 원천을 보유하기보다는 주로 판매 가능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기술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능력을 결합하여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 수익을 얻는 모델이 우리나라 제조업에 널리 퍼져 있는 것 또한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한민국의 성장모델은 시간이 갈수록 여러 의미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회사가 더 많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반도체 기계를 구매하고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결국 한 나라의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거나 혹은 생산 부분에서의 혁신 혹은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지속적으로 일으켜야 한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창의성을 바탕으로 혁신을 일으켜 좀 더 효율적인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산업 구조로 점진적으로 변해 가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에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갈 때는 선진국들이 이미 발생된 문제를 파악하여 성취하였기 때문에 그 길을 잘 따라서 효율적으로 쫓아가면 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길을 갈 때는 성공과 실패 속에서 위험을 안고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국내외 환경의 변화

    최근 국내외 정치ㆍ경제 환경의 변화는 한국식 경제모델에 그렇게 우호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국내에서 출생률이 낮아지고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아무래도 합계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혹은 늦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결혼의 감소와 신생아 출산의 감소는 결국 파생되는 산업의 감소와 재편을 부른다. 예를 들어 필연적으로 예축되는 산부인과의 감소, 유아, 청소년 관련 시장의 축소와 같은 예측 가능한 부분의 것들 말이다. 물론 반대급부로서 급격한 노령화로 인한 파생 수요의 증가라는 부분이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산업, 실버산업 등의 수요 증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출생률 감소,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는 결국 소비활동이 비교적 떨어지는 노년층의 증가와 더불어 전반적인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사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예전에는 지방의 웬만한 도시라고 해도 대로변의 1층 상가는 공실을 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의 신도시의 2~3년밖에 안 된 신축 건물의 1층도 심심치 않게 공실을 보게 된다. 공급과잉도 있을 것이고, 임대료도 문제일 것이고, 최저 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건비도 문제이겠지만, 그래도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하면 이러한 공실의 확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은행에서 대기업 여신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대기업의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의 규모나 성장세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이들의 여신 규모 확장세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의미로 회자되는 것이 사내 유보금이다. 사실 대기업은 기업 내에 돈을 무작정 쌓아놓을 이유는 없다. 달리 말하면 기업들은 그 돈을 투자해서 최소한 시장이자율 이상의 투자수익을 발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외부적 요인에서는 지금까지 자유무역에 우호적이었던 국제 환경의 변화가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었고, 영국의 브렉시트가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그 의도가 다음 세기의 패자를 결정하는 패권 전쟁이든 아니면 무역 분쟁이든 결국 수출 위주로 지금까지 먹고 살아온 대한민국에게는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다.


    요컨대 BTS나 스마트폰의 성공처럼 몇 가지 눈에 띄는 성공에 가려져 있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우리나라의 장기적 성장 능력과 국내외 경제 환경은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기존 산업의 생산성 증가에 비해 임금 상승은 빠르게 상승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제를 견인할 차세대 산업에 대한 논의는 추상적이며 그 실질은 잘 보이지 않았다.


    선진국들의 스타트업은 주로 엘리트 공대생들이 많았지만 우리나라의 엘리트 공대생은 높은 연봉을 받는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다. 아마도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새로운 사회시스템에 대한 전형적인 담론 부족, 거기에 실질적으로 혁신을 이룬 샘플의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사회: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하나?

    공생의 질서와 인간의 존엄성

    팬데믹 위기, 아직 오지 않았다

    21세기가 시작되며 바이러스가 유난히 극성이었다. 우리나라에도 2003년 사스, 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가 5~6년 주기로 엄습했다. 에볼라, 조류독감, 돼지열병까지 합치면 신종 바이러스가 거의 해마다 출몰한 셈이다. 그럼에도 일반 사람들에게 바이러스 전염병은 통제 가능하고,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지금부터이다. 바이러스는 빠르게 진화하고 빠르게 전염된다. 엄청난 노력과 투자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도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무용지물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는 치사율이 낮다. 그런 점에서 팬데믹(6단계)의 정점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2006년 당시 브릴리언트는 팬데믹의 최고 단계(6단계)가 오면 10억 명이 감염되고 1억 6,500만 명이 사망하고, 막대한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과연 인류는 5~6년 후에 더 강하게 진화된 바이러스의 습격을 백신 개발과 글로벌 방역 시스템으로 막아 낼 수 있을까?


    바이러스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야생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고 잡아먹으면서, 야생동물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면역체를 키워 왔다. 홀로 증식하지 못하는 바이러스는 ‘조건부 생명체’라고 한다. 감염체가 없다면 단백질과 핵산으로 이루어진 유기물이지만, 숙주에 감염되면 돌연변이와 진화를 일으킨다.


    우리 몸에 면역이 생겨서 바이러스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그 공격성은 사라진다. 우리 몸도 바이러스의 서식지이다. 아프리카의 인구과잉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지인 숲이 파괴되면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격할 가능성도 커진다. 미래에도 백신 개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 몸의 면역력이다.


    생태계의 질서와 인구 문제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바이러스는 미래 사회에서 ‘공생’의 방법을 찾으라는 자연의 메시지가 아닐까? 인간 사회가 생태계를 교란시켜 바이러스를 막아 낼 도리는 없다. 전염병 팬데믹은 생태계의 복합적 요인들이 만나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이다. 우리가 우주 자연의 질서 원리를 잘 이해하고 생태계의 조화 속에서 살아갈 때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멈춘다. 전쟁도 평화도 자연의 조건을 찾아가기 위한 활동이다.


    자연 현상에 ‘선악’은 없다.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을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죽어서도 자연의 순환질서 안에서 존재한다. 유기물인가, 무기물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의 육신도 우주 물질인 동위원소로 이루어졌다. 육신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우리가 우주이다.


    바이러스가 인간과 더불어 역사를 바꾸었다. 전염병이 인구 과잉 문제를 해소하여 역사 발전의 새로운 조건을 만들었다는 인식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할 때 냉혹하기 그지없다. 윤리적 거부감으로 그러한 역사 인식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면, 죽음을 슬퍼하거나 공포를 상상하기에 앞서 바이러스를 능가하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의 인구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 불균형과 인구과잉은 사회문제만이 아니라 생태계의 질서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일손 부족을 해소해 주지만, 인류 사회의 모순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인간이 우주 자연계에서 무엇으로 존엄한 존재인지를 밝혀 주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생태계의 공생질서를 이루고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내라는 자연의 메시지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면역력이 약한 노인층의 피해를 키웠다. 이탈리아에서는 병상과 산소호흡기가 부족하여 60대 이상 환자를 바닥에 방치했다. 스페인의 요양원과 양로원에서는 집단감염이 일어나자, 겁에 질린 요양사들이 탈출하여 노인들이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모두가 합심하고 협력해야 하지만, 의료체계가 무너지고 공포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고려장이 벌어진다.


    모든 비상시에는 노약자가 더 많은 위기에 노출된다. 그런 만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회안전망과 의료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러나 로봇이 수술하고 인공지능이 처방전을 내리게 될 미래에 국민세금으로 병원을 증설하는 것이 최선의 답일까?


    베이비부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전후부흥과 고도성장을 이끌며 후손을 위해 삶의 열정을 바쳤을 20세기의 대부(godfather)들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희생된 분들에게 감사할 일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분들이 풀지 못한 속제를 풀 수 있다면, 그 죽음은 존엄하게 기억되지 않겠는가.



    의료: 성공적인 방역체계 이후, 의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해법은?

    코로나 감염 이후의 보건ㆍ의료 변화

    유형별 의료 체계의 변화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 정책에 의해 감염관리에 변화가 많았지만, 아직까지도 감염 전문병원이나 충분한 음압 병동 확충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병원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심한 타격을 받았다. 평소 환자의 50~60% 정도만이 내원하여 진료를 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수술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의 타격보다 규모가 작은 종합병원과 일반병원의 타격이 훨씬 클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일반의원 진료 후 의뢰서가 있어야 종합병원 이상의 병원을 방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체계가 유형별로 정립되어 있지 않아 의료기관을 맘대로 선택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경증환자까지도 대형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되어 의료서비스 제공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대형병원과 상급종합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지속되면 본래의 중증환자 진료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요양병원 관리의 현실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이다.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 건강한 젊은 층의 생산인구가 줄어들지만, 반대로 건강에 취약한 고령층은 빠르게 증가한다. 일하는 사람은 적어지는데 요양해야 할 고령 인구는 계속 늘어가는 구조이므로 이는 심각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특정 종교에서의 집단감염 외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요양병원과 폐쇄병동의 집단 감염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퍼지는 감염일수록 불이익을 당하는 계층은 노년층과 취약계층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인데 극단적인 고령화 사회로 변하고 있다. 65세 이상의 초고령층과 45~64세의 중장년층이 가파르게 증가하지만, 44세 미만도 가파르게 감소하는 극단적 고령화 사회의 형태이다. 이렇게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고령층의 의료비 부담 문제 해결은 우선시되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건강 수준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수명도 늘어났지만,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질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우리나라 사회가 양극화로 진행되면서 건강의 형평성과 보건의료의 형평성 문제도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어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정부도 초고령화 사회의 현실을 앞두고 실제로 노인의 의료비용 부담에 대한 많은 연구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보다 더 현실적인 고령층에서의 요양병원 현실화 대책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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