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사이트
 
지은이 : 비나 벤카타라만(역:이경식)
출판사 : 더난출판
출판일 : 2019년 12월




  • 저자는 ‘왜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가’, ‘어째서 현재의 이익에만 치중한 결정을 내리는가’ 하는 의문을 품고, 어떻게 하면 이런 근시안적 사고를 바꿀 수 있는지 연구했다. 오늘의 만족만 추구하는 개인은 도태되고,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무너지며, 환경을 돌보지 않는 세계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지금의 선택이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잠재된 ‘포사이트’를 이끌어내 미래를 대비하라”고 조언한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과 생물학, 심리학, 경제학, 고고학 등 7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또한 실제 사례들과 각계각층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미래를 위해 더 똑똑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포사이트’를 발휘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포사이트


    미래와 관련된 곤란한 문제

    예측에 매달리지만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

    이 책은 우리가 개인 차원과 집단 차원에서 내리는 의사결정들, 즉 자신 및 다른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며 나중에 우리가 후회할 수도 있고 찬양할 수도 있는 의사결정들에 관해 다룬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무모하고 경솔한 의사결정, 다시 말해 미래의 기회나 위험을 명백하게 예고하는 신호들을 무시하는 의사결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의사결정을 여러 다양한 맥락 속에서 면밀하게 탐구함으로써 나는 우리가 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개인이 혼자 하는 것이든 집단으로 하는 것이든 간에 의사결정에는 정보와 판단이 개입된다. 미래에 대한 똑똑한 선택을 하는 판단을 나는 미래에 대한 통찰, 즉 포사이트(foresight)라고 부른다. 이 포사이트를 실천한다는 것은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다는 신화 속의 예언자 카산드라(Cassandra)가 했던 방식대로 미래를 바라보는 것과는 다르다. 카산드라의 신통한 예지력을 흉내 내고자 (또는 적어도 미래를 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수없이 많은 연구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수없이 많은 책이 동원됐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판단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지금까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포사이트를 실천한다는 것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안들(또한 통시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평가해 각각의 가중치를 결정함으로써 단지 현재의 우리뿐 아니라 미래의 우리(또는 미래 세대들)를 위해서도 최상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이는 내일로 예정돼 있는 축구 경기 때 비가 올 것임을 안다는 것과 실제로 그 경기를 보러 갈 때 우산을 들고 가는 것 사이의 차이다.


    이 책에서 나는 미래에 빚어질 결과들에 대한 정보를 근거로 많은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있지만 그 근거 정보 가운데서 실제로 유익한 정보는 없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우리는 정확한 미래를 알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 많은 가능성들에 대한 준비는 거의하지 않는다. 그 결과 무모함과 경솔함에 따른 재앙을 고스란히 덮어쓴다. 미래에 대한 대비라는 점에서 보면 완벽한 실패다. 경로를 올바르게 수정하려면 포사이트를 갈고닦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보다 낫게 만들고자 하는 기대를 우리가 모두 분명히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위한 행동을 실천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정확하게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미래를 만질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미래는 마음속에서 떠올려야만 하는 어떤 관념이지 우리가 감각기관들을 동원해서 인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체가 아니다. 이에 비해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은 대개 하나의 갈망으로서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미래의 자아가 현재의 자신에게 낯설다는 점도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주 화요일 저녁 메뉴로 자신이 무엇을 원할지 알지 못한다. 이럴진대 10년 뒤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게 될지 어떻게 정확하게 알겠는가? 미래 세대는 한층 낯설다. 우리는 지금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팽팽 돌아가는 사회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 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 발전은 미래의 모습을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게 만든다. 1960년대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이런 추세 및 이 추세가 사람들의 통찰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를 예측하면서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지금 소통하고 여행하고 일하는 방식에서 한층 크고 많은 격변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 부정적 효과의 병폐들은 21세기에 들어 누그러지기는커녕 그때보다 더 심각해졌다.



    개인과 가족

    과거와 미래의 유령들

    예측만 해서는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고대인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제한된 시야로밖에 보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연재해를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예측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비록 선거 결과와 스포츠 경기 결과는 여전히 너무도 많이 빗나가긴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진이나 홍수 또는 해수 범람이 일어나는 정확한 시간을 일별 단위나 주별 단위로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특정 지역에 닥칠 미래의 여러 위험에 대해서는 과거 세대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안다.


    21세기에 우리는 예측에 대한 새로운 강박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 덕분인데, 이 혁명은 엔지니어들이 상상하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연산 능력의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지구의 사실상 모든 곳과 가까운 우주를 관찰하는 지진 감시부대 체계라고 할 수 있는 전세계 수십억 개 기관들이 수집하는 수조 개의 데이터 측정점에 의해서 가능할 수 있었다.


    기계학습, 즉 과거의 패턴들을 학습해 미래의 추세를 추정하는 컴퓨팅 능력의 발전이 예측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 이런 도구들을 사용해 특정 고객이 어떤 제품을 구매할지, 인플루엔자의 확산이 어떻게 전개될지, 한 도시에 정전 사태가 발생할 때 어떤 구역에서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할지, 기름 유출이 바다를 어떻게 오염시킬지 등을 예측한다. 우리 시대에 예측의 초점은 흔히 임박한 미래에 맞춰진다. 예를 들면 다음 차례의 히트곡은 무엇일지, 소비자가 특정 웹사이트를 방문했을 때 어떤 광고가 방문자들의 관심을 가장 잘 사로잡을지 하는 것들이다. 기상 예보 앱의 최근 추세는 10일 또는 2주일 뒤에 날이 맑을지가 아니라 1시간 뒤에 비가 올지 안 올지를 보다 더 정확히 예측하는 데 있다.


    그런데 심지어 이런 과학적인 예측도 본질적으로는 완벽할 수 없다. 과거의 추세들에 의존해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이것만으로도 시류에 편승하는 떠들썩한 행사로 수십 억 달러의 투자금을 끌어들이고 기업과 정부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미래에 대한 강력한 예측은 물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예측을 활용할 때만 그렇다. 사람들이 예측을 그저 듣기만 할 뿐 이를 활용해 미래에 대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즉 화산 피해가 미칠 수 있는 범위 바깥으로 이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설이다. 요컨대 좋은 예측은 좋은 미래의 통찰과 동일하지 않다는 말이다.


    마음의 시간여행

    구체적인 상상과 결부되지 않은 예측은 미래의 위협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특정하게 설정된 어떤 목적에 복무하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과학적인 예측 분야에서 우리가 이룬 혁명적인 발전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수 있다. 게다가 예측할 수 없는 위협일 때는 미래에 대한 눈을 상당히 멀리 확장하지 않는 한 그 위협에 대비할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말 것이다.


    내가 내 미래 자아의 늙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때 우리는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능력에 의존할 수 있다. 이럴 때 비로소 예측은 해독과 습득이 가능해진다. 사람들이 자신이 가는 길 저 앞에 놓여 있는 길을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유와 관련해서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여러 가지 사실들을 확인했다.


    최근 여러 해 동안 서던도프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은 인간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자신이 가진 기억에 의존해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예측하는 능력, 즉 과거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상상 속에서 재배열하는 능력이라는 개념을 꾸준하게 발전시켜왔다.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면 나중에 자신에게 일어나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어떤 순간에 놓여 있는 자기 자신을 상상하면 된다. 어쩌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딸과 함께 결혼식장 통로를 걸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졸업식장에서 사각모를 허공에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맨 처음 해보는 스쿠버다이빙일 수도 있고, 로마 광장에 발을 들여놓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여러분 마음의 스크린에 영화 장면이 투사되는 것처럼, 여러분은 이런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심지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나 사람들의 박수 소리를 희미하게 들을 수도 있다.


    방금 여러분이 해본 것이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는 마음의 시간여행(mental time travel)인데, 기억을 이용해 자신의 마음을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투사할 때 과거에 있었던 일들(예컨대 어릴 때 경험한 것, 영화나 사진으로 본 것,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에서 들은 것 등)의 이미지나 감각적인 세부 사항들이 새롭게 개조된다. 미래의 어떤 순간에 놓여 있는 자신을 보려고 할 때 굳이 그것과 똑같은 과거의 순간들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의 시간여행은 특정한 습관들의 도움을 받는다. 사람은 자기 마음이 몽상의 길을 정처 없이 떠돌도록 내버려둔다. 적어도 웨즐리 대학교의 심리학지 트레이시 글리슨(Tracy Gleason)은 그렇게 믿는다. 이렇게 떠도는 마음은 보다 더 자유롭게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재조합하거나 여기에서 뭔가를 얻어낼 수 있다.


    글리슨은 어린이의 상상력을 연구하고 있는데, 많은 유명 작가들이 어린 시절에 상상 속의 친구들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6년의 어느 날이었고, 그녀는 내게 가족과 함께 가기로 계획하고 있다는 콜로라도 캠핑 여행 이야기를 해줬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캠핑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사실 그녀의 남편은 대자연 속에서 잠을 잔다는 생각 자체를 끔찍하게 여겼다. 아무튼 그녀는 그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종일 마음의 산책을 하면서 자기 가족이 맞닥뜨릴 시련이나 경험하게 될 모험을 상상했다.


    그녀는 이런 문제들을 떠올리는 동시에 또 이런 것들을 해결할 계획도 세워야 했다. 현대적인 예측자처럼 알고리듬을 갖고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으면 놓을수록 좋은 자유로운 형식의 시나리오 생성 과정에 몰두했다. 목표는 위험과 기회 모두를 포함하는 미래의 사건들을 머릿속에 창의적으로 떠올리는 것이었다.


    마음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 다시 말해 몽상을 할 때 우리는 주어진 어떤 순간이 요구하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는 어떤 것을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백일몽을 꿀 때 생각하는 내용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벤저민 베어드(Benjamin Baird)는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주로 즉흥적인 온갖 생각들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미래의 여러 상황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활동이다. 몽상은 우리가 긴급한 과제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게도 해준다.


    계기판만 바라보는 운전

    미래의 소득보다 현재의 손실 회피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집착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목표를 우리가 쉽게 측정할 수 있는 어떤 단위로써 설정한다. 그리고 이 수치가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수치를 놓고서 실패하고 있는지 또는 성공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우리는 단기적인 데이터 수치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수치들은 우리가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에 맞춰서 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수치들은 가용성 편향, 즉 자기가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을 강화한다. 하지만 때로 근접 측정치들이 우리를 노골적으로 속이기도 한다. 2014년 겨울을 워싱턴 DC에서 보내는 동안에 나는 기상학자들이 ‘극소용돌이(polar vortex, 북극이나 남극 등 극지방의 대류권 상층부부터 성층권까지에 걸쳐 형성되는 강한 저기압 소용돌이-옮긴이)’라고 명명한 것에서 발생한 차가운 북극풍의 기록적인 추위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렇게 춥던 날들의 아침 온도계는 그런 전반적인 추세를 잘못 해석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들을 감안할 때 그때가 지구상에서 가장 따뜻한 해였다는 것이다. 그 이듬해에는 미국에서 유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해 이때 미국인은 줄을 지어 SUV 차량 구매에 나섰지만, 유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높은 차량유지비를 감수해야 했다.


    우리가 선택하는 숫자상의 목표는 우리의 관점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까지도 규정한다. "모든 일은 평가(측정)될 때 비로소 종결된다"는 속담은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행한다"로 뒤집혀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계기판만 바라보는 운전이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운전을 할 때 자신이 모는 자동차가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로지 계기판의 속도와 연료 잔량만 바라보면서 앞으로 달려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현재를 중시하고 미래를 무시하도록 충동질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사실 이는 우리가 사용하려고 선택하는 도구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일러주는 표면적인 차원의 여러 측정치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 통찰을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주체성을 갖고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것에 쉽게 동요되는 모습은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까운 목표라는 미끼를 쉽게 덥석 무는 이유 중 하나는 당장의 손실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뭔가를 갈망하고 획득할 때 느끼는 행복감의 무게보다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놓칠 때 느끼는 상실감의 무게가 더 크다.



    기업과 조직

    어떤 조감도

    근시안을 탈피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부모님은 해마다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 벽장문에 표시했다. 그 표시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이처럼 어떤 지표가 꾸준히 성장할 때 집단도 마찬가지 감정을 느낀다. 어떤 조직이든 간에 자기 조직 소속의 잘 훈련된 구성원의 수, 조직이 제공하는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의 수, 영업이익, 시험에 통과한 학생의 수, 비위 사실로 징계를 받은 사람의 수 등을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수치들은 어떤 사업이나 프로그램 또는 어떤 개인의 발전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하고도 객관적인 지표인 듯 보인다. 게다가 간편하기까지 하다. 그 수치가 증가세에 있는지 감소세에 있는지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자선활동가들, 투자사들, 비영리 기관들, 정부 산하 기관들, 기업들은 모두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이 같은 수치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수치상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실제로 설정하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동일하지는 않다.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농부 또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훈련을 받을지 몰라도 이들 가운데 그 일을 자신의 새로운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서도 이들 수백 명에게 점심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어떤 기업이 지금 당장 수익을 내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파산을 향해 치달을 수 있다. 학생들이 시험에 통과하긴 하지만 이들이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배우지 못했을 수 있다.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갈 수 있다.


    이런 사건들을 바라보면 조직은 수치상의 목표에 의존하는 관행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나마 이런 수치상의 지표들마저 없다면 사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이런 지표들이 없으며 정부 산하 기관들이 만들어내는 유무형의 결과물 및 이런저런 지원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평가할 때 순전히 맹목적인 믿음과 무한정한 인내심에만 의존할 수도 있다. 또한 기업도 현재의 지지부진함이나 실패를 합리화하는 구실로 장기적인 전망을 내세울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지도자들은 잠정적인 지표 수치들이 드러내는 미래 재앙의 신호들을 무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지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다.


    이상적인 세계를 가정한다면 기업은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하는 것은 물론 미래에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수치상의 결과들은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조직이 언제 상승세를 타는지 알아보고 또한 일이 잘못돼갈 때 경로를 수정하며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을 세부적인 단계로 쪼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데이터의 수치들은 한 순간의 스냅 사진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어떤 시장이 꾸준히 규모가 커져간다든가, 기온이 지속적으로 올라간다든가, 투자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든가 하는 추세를 드러낸다.


    수치 목표의 함정

    사람들은 수치를 갖고서 어떻게든 예측을 하려고 한다. 경제 지표라는 수치상의 목표들을 사용해 조직 및 조직 구성원의 행동을 추동하려는 기업은 필연적으로 그 경제 지표의 통계적 규칙성이 사라져버리는 순간을 맞게 되며, 애초에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1975년에 이런 사실을 선언했던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의 이름을 딴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의 결과다. 굿하트는 1970년대부터 세기가 바뀔 때까지 잉글랜드은행의 금융정책 설정 과정에 자문을 한 인물이다.


    이것이 실제 현실에서 의미하는 바는 어떤 조직이 사람들에게 수치 목표를 제시하면서 이 목표를 달성할 경우 보상을 해준다고 말할 때 그 조직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의미 있는 발전들을 희생하기도 하고 심지어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는 점이다. 19세기에 있었던 일을 예로 들어보자. 유럽의 고생물학자들이 중국인 농부들을 고용해 공룡 화석을 발굴하면 뼈 한 조각마다 돈을 얼마씩 주겠다고 했다. 그 농부들은 화석을 발견하면 멀쩡하던 뼈를 일부러 부숴서 갖고 왔다. 보상을 더 많이 받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 모습은 데이트레이딩(day trading, 초단기간 내에 주가나 거래량 등의 기술적 지표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얻는 초단타 매매 기법-옮긴이)과 어딘가 닮은 점이 있다.


    단기 목표 달성에 목을 매는 기업

    다음 분기의 수익을 주주들과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에게 제시하는 관행인 이른바 가이던스 발표(issuing guidance)는 미국 의회가 사적증권소송개혁법(Private Securities Litigation Reform Act)을 의결한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이 법률은 기업이 다음 분기에 자사가 수익을 얼마나 올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데 따르는 책임을 면제해줬다. 이 법률 덕분에 기업의 경영진은 자사 주가의 단기적 부양을 위해, 또한 자신들이 받을 두둑한 보너스와 리더십에 대한 칭찬을 기대하면서 수익 예측을 부풀릴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결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자신들이 한 예측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자 자신이 예측한 수익 목표를 달성하려는 목표만으로 회사를 운영한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자신들 입으로도 그 과정에서 장기적인 성장과 개발을 위한 핵심 투자를 도외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압박감은 투자자들 때문만이 아니라 오직 단기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경영진 스스로의 욕망 때문이기도 한다. 여러 연구 논문들은 어떤 CEO가 어느 한 분기에 지분 투자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자사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투자비 지출을 삭감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렇게 해당 분기의 유일한 목표는 CEO의 예측을 충족하는 것이 돼버린다.


    이런 선택의 결과로 고용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발명은 지지부진하며 기업은 기후 변화나 K-12 교육 과정과 같은 장기적인 문제들, 즉 다음 분기로 전개되지 않으며 단기적으로는 그저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만 주게 될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기업은 또한 사람들이 연금 펀드나 퇴직금 펀드와 관련해 보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희생시킨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가 있다. 다름 아닌 거리에서 돼지저금통을 깨 동전들이 돌돌 굴러 하수구로 떨어지게 만드는 경영진의 이미지다.


    포사이트를 장려하는 조직 문화

    이글캐피털은 자산 운용자들에게 연간 보너스를 지급하지 않는다. 운용자들은 1년 단위의 업적 평가도 받지 않는다. 이들의 보상과 회사 내에서의 지분은 장기적으로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커진다. 이런 정책을 실천하는 이유를 보이킨 커리는 자산 운용자들이 이를테면 ‘연말이 되니 갑자기 페라리를 한 대 뽑고 싶어졌다’는 이유 때문에 투자 관련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글캐피털의 투자 철학에서 1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투자 결정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확인하기에는 너무도 짧다. 이글캐피털은 단기 보상 제도를 없앰으로써(마치 카지노에서 슬롯머신의 소음을 제거하고 무료 음료 특전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혹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동시에 손실의 전망을 제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사람은 당해 연도의 성과만으로 자신이 잘되거나 못될 일은 없음을 깨닫는 방향으로 훈련된다.


    본질적으로 이글캐피털의 조직 문화는 직원들의 포사이트를 장려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회사의 규모를 작게 유지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할 수 있다. 주어진 특정 시점에 이 투자사의 투자 팀 구성원은 기껏해야 6명에서 7명인데, 커리 가족으로서는 주어진 특정한 순간에 그 팀이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는지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이 그저 저 너머를 생각하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이 팀의 구성원들은 다른 사람들이 각각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투자 의사결정을 내릴 때 실제 현실에서도 그대로 전개되는지 알 수 있다. 이글캐피털이 투자하는 회사의 수는 25개에서 35개 사이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각각의 종목에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의사결정이나 리더십 그리고 해당 산업의 추세 등을 업데이트하며 따라가는 일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글캐피털의 팀이라고 해서 수치 지표를 굳이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투자자들 대부분이 바라보는 지표들은 그냥 건너뛰고, 미래의 기회임을 알려주는 것 또는 위험을 경고하는 신호라고 여겨지는 지표들에만 철저히 초점을 맞춘다. 근시안적인 수치들은 이정표들로 대치되는데, 이 이정표들은 어떤 기업의 성장이 예측한 시나리오대로 전개되는지의 여부를 반영한다.


    한 가지 사례로, 다른 투자자들이 금리가 언제 올라서 대형 은행의 주식 가치에 영향을 줄 것인지 알아내고자 애쓸 때 이글캐피털은 모건스탠리가 10년 전에 장부에 기입한 파생금융상품의 종가가 얼마인지 찾아봤다. 그 가격은 모건스탠리가 자산의 가치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적정하지 않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굼뜬 지표다. 이와 같은 이정표들은 성공의 즉각적인 전망만을 반영하는 수치들을 선택하지 않은 채 설정된 가설을 검증한다.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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