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이야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늘 있던 일이니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여긴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과거에는 그 중심에 위계가 있었고 어떻게든 구세대가 신세대를 따라오게 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위계질서가 주효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물론 위계가 마냥 악덕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프렌티스 교수가 설명하듯이 6.25 전쟁으로 모든 게 무너져 내렸던 한국을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철저한 위계 체계 아래에서 상명하복의 정신으로 일사불란하게 일했다. 불만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시스템을 유지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질서라 여겨 군말 없이 따랐다. 그렇지만 세상은 변했고 계속 변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위계의 양상도 바뀌었다. 기성세대 관점에서 MZ세대 성향이 바람직하든 바람직하지 않든 간에 이들이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중심 세대라는 현실을 ‘사실’ 판단해야 한다. MZ세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의 경험과 노하우를 경시해서는 곤란하다. 취하고 따를 것을 ‘사실’ 판단해야 한다.
‘이윤 추구’를 넘어 ‘탈위계’를 실현하는 ‘초기업’으로
“조직의 이익이 나의 이익”이라는 기치 또한 주저앉은 지 오래다. 모든 주입 시도는 실패한다. 프렌티스 교수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일찍부터 이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단순한 위계질서만으로는 조직이 영속할 수 없기에, 끊임없이 혁신을 도모하고 구성원들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기업, 즉 ‘초기업(supercorporate)’을 지향해왔다. ‘초기업’은 개인의 능력 구별과 동등한 참여 그리고 ‘탈위계’를 실현하려는 기업의 궁극적 이상향이다. 프렌티스 교수가 한국을 ‘초기업 사회’로 바라본 것은 기업 규모 말고도 기업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역할, 특히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관점이다. 프렌티스 교수는 학자인 자신에게서도 불합리한 구별 짓기 요소를 발견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기성세대이든 MZ세대이든 간에 저마다 느끼게 되는 성찰 지점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을 문제 해결의 실마리로 삼으면 된다.
■ 저자 마이클 프렌티스
인류학자(언어·문화인류학).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시간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강의했고,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국제교류재단 박사 후 연구 펠로우십을 거친 뒤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대학교 기업 조직 디지털 보안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학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영국 셰필드대학교 동아시아학부 한국학 교수로서 ‘한국의 이해’, ‘동아시아 대중문화와 디지털 사회’, ‘동아시아 젠더와 정체성’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다.
프렌티스 교수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기업 대상 인류학 연구를 시작했는데, 단순한 탁상 연구가 아닌 실제로 한국 기업 현장에 근무하면서 국내 직장생활의 다양한 측면이 위계, 통제, 구별, 참여, 나아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의 더 폭넓은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수의 논문을 먼저 발표했다. 대표적으로 「상호텍스트성 다루기: 한국 기업 문서 전반의 전시와 규율(Managing Intertextuality: Display and Discipline across Documents at a Korean Firm)」(2015), 「파워포인트의 권력: 한국 기업의 내재적 권위, 문서 취향, 제도적 질서(The Powers in PowerPoint: Embedded Authorities, Documentary Tastes, and Institutional Orders in Corporate Korea)」(2019), 「자본주의의 낡은 정신: 한국 직장에서의 남성적 타성(Old Spirits of Capitalism: Masculine Alterity in/as the Korean Office)」(2020) 등이 있으며, 특히 「조직 수평화에 저항하기: 한국 기업 내 직함, 아이덴티티 인프라, 그리고 기호학(Resisting flatness: Job titles, identity infrastructures, and semiotics in the office)」(2020)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전공 수업 분석 문헌으로 쓰였다. 이렇게 10년 동안 이뤄진 민족지학적 현장 연구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초기업』이다.
■ 역자 이영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 살면서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세대 감각』『제4의 시대』『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어떤 선택의 재검토』『시스템 에러』『제프 베조스, 발명과 방황』『2029 기계가 멈추는 날』『모두 거짓말을 한다』『항상 이기는 조직』『세계미래보고서 2055』『유엔미래보고서 2050』『4차 산업혁명과 투자의 미래』『위안화의 역습』『포모 사피엔스』 등이 있다.
■ 차례
한국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
들어가며_탈위계가 낳은 보이지 않는 선
한국은 초기업 사회|구별과 참여의 정제와 관리|위계와 구별을 되돌아보다|이 책의 구성
제1장_새로운 타워
새로운 세대의 소유권과 기업의 계모|새로운 브랜드 세계관|사회기술적 구별 짓기|지주회사의 뒤축|만들어진 구별과 숨겨진 위계
나눠진 인물 유형|‘나이든 남성 관리자’라는 유형|새로운 저항 문화|관리 역량 모델링|차별화에서 구별 짓기로
제4장_상도그룹 파헤치기
구별되는 전문성|설문 조사에서 배제된 계열사|권위의 배후지|지연되는 구별 짓기
제5장_민주주의를 방해하는 것
전환적인 이벤트|소액주주의 횡포|주주총회 관리|제도적 문제|민주적 방해, 새로운 분배
제6장_가상의 탈출
스크린 속으로|비밀 여가 활동|타인의 구별 짓기에 포함된다는 것
나오며_초기업을 향하여
숨겨진 구별 찾기|구별과 참여 사이의 직장 윤리
더 이야기할 것들_현장 연구와 그 의의
현장 찾기: 오염되지 않은 연구 환경|현장 속에서: ‘전문성’이라는 구별 짓기|현장 그 이후: 낮은 수준 프로젝트의 가치|이 책의 의의: 위계를 넘어서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대한민국 직장생활 한복판에 뛰어든 미국의 인류학자가, 기존 위계질서가 더는 조직의 성장을 견인하지 못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와 기업의 과도기적 문제를 현장 실증 연구 분석하였습니다.
초기업
새로운 타워
한국의 대기업 내부 질서에는 여러 형태의 위계가 교차하는 훨씬 더 복잡한 현실이 숨어 있다. 이 장에서 나는 철강 업계의 속성을 보여주는 명확한 내부 질서와 관리 위계 구조를 확립한 한국의 대표적 기업 그룹이 아니라, 때로는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것이 형성되고 있는 상도그룹의 내부 질서 규정 과정을 살필 것이다. 내가 상도에서 일하며 연구를 진행하던 때가 바로 새롭게 상도의 질서가 구축되던 시기였다. 처음으로 상도 타워 이주를 통해서, 그다음에는 중앙집중식 관리라는 도전적 영역으로의 이동을 통해서였다.
새로운 수직 공간 안에 직원들을 모은 상도 타워 내 상황은 조직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낳았다. 타워 최상층에 들어선 지주회사는 이 대기업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 구성원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새로운 비전의 원천이었다. 이런 규정 과정의 특정 영역은 상도그룹이 기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의 전반적인 상승과 딱 맞아떨어졌다. 이는 대부분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쳤고 한국 기업계가 더 진보했음을 시사했다. 상도그룹 자체로 보면 한국 대기업 예상 기업 순위에서 더 눈에 띄는 위치로 올라가고 있었다. 다른 영역에서는 새로운 구별 짓기와 직원 간 또는 조직 간 차이를 어떻게 제시해야 하는지 재개념화하는 방식을 도입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대조를 끌어내고 있었다.
학자들은 행복한 공동 참여 이미지를 직원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위계 구조 부과와 대비시키면서 탈위계적 기업의 이상을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의 이상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위계를 은밀히 부과하는 데 도움이 되곤 한다. 사회학자 하겐 구(Hagen Koo)는 1990년대 한국 기업들이 “교육 프로그램, 여가 활동 동아리 및 기타 소규모 그룹 활동, 축제, 노래 경연대회, 노동조합 지도부를 위한 야유회와 해외여행” 등을 만들어 “기업 문화 운동”에 투자한 사례를 언급했다. 구 교수에 따르면 사실상 이런 프로그램들은 간접적인 노동 회유 방법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와 같은 모든 기업 문화는 가부장적 언어와 상징을 이용해 공통의 경제적 운명을 공유하는 유사 가족을 재창조했다.
‘초기업 이상’을 바탕으로 바라보면 구별과 참여라는 개념은 본질에서 대립하는 게 아니라 기업 관리와 조직 생활의 다양한 영역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추상적 의미에서 관리 영역은 제품, 사람, 전략, 돈, 위험 등 경제 생활의 특정 범위를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지배하거나 질서를 세우려고 시도하는 관심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관리가 추상적인 개념에서 문서, 회의, 보고 등과 같은 업무나 사건을 표시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조직 생활 내면을 고려하면, 개념 상의 구별 짓기와 참여의 형태가 늘 현실의 삶을 반영하거나 현실의 삶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해 새로운 기업 비전을 통해 외부인들에게 높은 수준의 명확한 관리 전략으로 보이거나 기업 구조에 담겨 있는 듯 보이는 것들도 영역에 따라 복잡하게 전환돼야 한다. 특히 지주회사의 고위급 전문가들이 직원들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구별 짓기와 참여 방식을 창안하는 일은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창안하는 과정에서 위계 및 권력 구조와의 부정적 연관이 되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별 짓기의 기반영문 직함에서의 구별짓기
상도의 오너 경영진은 HR팀에 직원들의 실제 업무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면서 글로벌 표준에도 부합하는 통일된 영문 직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영문 직제마저 별개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상도가 아직 온전한 하나의 그룹으로 통합되지 않았다는 증거로 인식했다. 그동안 영문 직함은 사실상 명함에 표기하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한국 내에서만 사업을 영위하는 이들도 한글로 표기된 명함 앞면을 뒤집으면 같은 내용이 영어로 적혀 있다. 비즈니스의 다른 측면과 비교할 때 두 가지 언어로 표기된 명함에 기능적 의미는 없다.
그렇지만 영어 직함은 구별 짓기의 작은 창으로서 상당한 무게를 갖고 있다. 특정 임직원이 자신의 위치, 특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 위치를 어떻게 보는지에 꽤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영어 직함은 대중의 선망을 얻는 언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이면서 그 사람이 영어를 구사하거나 국제 비즈니스를 수행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영문 직함을 업데이트하는 일은 복잡한 사회적 절차가 필요했다. 영어 직급과 직함 번역은 그 속에 있는 일련의 암묵적 구별을 확정하는 작업이었다. 여기에는 당면한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한국의 직함 체계 자체가 더는 실제 직제와 관련이 없는 낡은 시스템을 반영하고 있었다. 직급은 승진과만 연결되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에 필요한 것을 촉진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기업에서 팀장이 이끄는 팀 개념을 도입한 이유는 작업 단위가 함께 협력하도록 독려하고 영업이나 생산 같은 팀 평가 지표의 원천이 되는 데 필요한 동기를 결합하기 위해서였다. 팀장은 개별 팀원들이 수행하는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이는 묵시적으로 직계 간소화의 초기 형태였다. 한국에서 연공서열이 책임과 분리된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후 팀장은 관리 직급과 별개로 선정됐다.
둘째,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완전히 다른 고용 시스템과 구조를 갖고 있다. 상도의 관리자들은 미국 기업에 사원, 대리, 과장 같은 선형적 관리 궤도를 따르는 기본 직급이 없다는 데 놀라움을 표시했다. 한국 기업의 공식 직함은 벤치마크 대상으로 여기던 영어권 국가 기업들보다 훨씬 더 정교했다.
나는 세계 철강 업계의 다양한 직함 기준을 조사한 다음 두 가지 방식을 추천했다. 첫 번째로는 상도그룹 계열사들의 다양한 직급을 통일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상도 자회사의 조직도를 살펴보던 중 회사에서 가장 높은 직급인 최고경영자, CEO를 사장, 부회장, 대표이사, 부사장이라고 제각각 달리 부르고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이 모든 것의 영문 직함을 ‘CEO’로 통일해서 각 계열사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장 팀장은 검토 과정에서 내 제안 내용을 폐기했다. 그는 한국 기업에서 임원의 직함은 단순히 총칭적 표현이 아닌 매우 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각각의 임원은 자신의 경력과 정치적 결정에 따라 특정 직함을 갖게 된다. 예컨대 일부 CEO는 부회장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자신이 여느 CEO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조직 구조에서의 위치를 문자 그대로 가리킨다는 측면에서라면 직함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두 번째로 나는 현재 영문 직함에 ‘manager’가 명시된 모든 직함을 ‘associate’로 바꾸자고 권고했다. 기능적 측면에서 진짜 관리자는 부장이나 차장이 아닌 팀장이었다. 나는 ‘Associate’, ‘Junior Associate’, ‘Senior Associate’라는 새 직함을 추천했다. 영어권 국가 기업들에서 직급에 붙이는 방식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 팀장은 다시 내게 와서 우리가 실제로 이런 제안을 한다면 그룹 전직원이 지주회사에 부정적 감정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명시적 의미에서 아무리 ‘associate’가 정확하더라도 ‘manager’에서 ‘associate’로 바뀌면 강등이라 비치리라는 것이다.
그때 장 팀장은 내게 상도, 더 넓게는 한국 기업들의 직함 인프라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가르쳐줬다. 그동안 나는 다양하지만 불완전한 신호들로 이뤄진 추상적 체계로 이해했었는데, 그는 각각의 회사마다 고유한 편성이 있다고 알려줬다. 기존 역할을 새로운 사람들로 채우는 미국 기업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조직이 사람, 특히 조직에 오래 머문 사람들을 위해 역할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한국 기업은 몇 년마다 한 번씩 극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사업 단위 조직과 부서 이름을 바꾼다. 이는 효율을 높이고자 사업 구조를 재정비하는 게 아닌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직위로 옮겨가면서 임원들 사이의 차별성을 재정비해야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상도의 계열사들이 같은 그룹에 속하고 심지어 같은 건물에서 일하면서도 그 역할들이 다르게 보였던 이유다. 담당, 부본부장, 부문장 같은 다소 드문 직함은 각 조직의 구체적 목적에 맞춘 독특한 호칭으로 존재한다. 이런 점은 수직적 권위의 힘을 반영한다기보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연출 의례(presentational ritual)’라고 부른 것에 대한 지속적 필요를 반영한다. 이 같은 의례는 형식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향한 존중과 인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직원들이 한 조직에서 계속 일하게 되면 HR팀과 같은 부서는 의미론적으로 한 단계 높은 직함을 부여해 그들에게 상징적인 선물을 제공한다. 요컨대 한국 기업에서 성공한 직원이나 임원은 부장, 영업담당, 팀당 등의 직함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HR관리자는 명목상 국제 표준에 부합하도록 직급 및 직함의 작은 구별을 영어로 번역하는 한편 직장 내 의례를 존중해야 하는 필요까지 반영했다. 이런 의미에서 구별 짓기 인프라를 관리하는 일은 일반적인 조직 범주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일반적인 직함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특정 조직 범주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것
소액주주의 횡포
한국의 이 ‘회의 강탈자들’은 대개 뚜렷한 소속 없이 여러 기업의 주식을 조금씩 소유한 개인 주주들이다. 이들의 정체는 확실치 않은데, 해당 기업의 예전 직원일 수도 있고 아니면 회계 전문가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들 대부분은 주주총회 때 기업으로부터 금품이나 다른 재화를 갈취할 수 있을 정도로 상법과 해당 기업의 재무제표 및 최근 사업 활동에 대해 잘 아는 노인들이다. 주주 활동가가 기업 지배 구조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의식적 목표를 갖고 있다면, 총회꾼은 기업을 협박해 금전적·물질적 대가 형태로 개인적 이익을 얻겠다는 목적으로 주주총회를 방해한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난동을 일으켜 부정한 돈벌이에 성공한다. 주총에서 질의응답은 소액주주가 경영진에게 궁금한 부분을 질문하거나 결의안을 제안하도록 법률로 보장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소액주주도 발언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그 권리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1981년 총회꾼 횡포를 자세히 묘사한 기사에 따르면 이들은 그야말로 질의 응답 시간을 독차지해버린다. 그렇다고 이들이 하는 질문이 그저 횡설수설이나 소음은 아니다. 매우 적절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또 다른 기사는 2004년 한 기업 주총에서 어떤 총회꾼이 이사회를 향해 “대주주에 빌려준 돈이 왜 이렇게 많은가요?”, “사옥을 확장했는데 왜 이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죠?”같은 질문을 했다고 전한다.
각종 매체 보도는 다른 투자자들의 말을 인용해 총회꾼들의 행동을 항의, 소란, 훼방, 무리한 요구 등 극적으로 묘사했다.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온라인 게시판에 ‘경제 민주화’ 범주로 분류된 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한 이는 그들을 교란자라고지칭하면서 정부에 총회꾼을 막는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청원은 총회꾼의 계속되는 주총 참석으로 한국 증권 시장이 암시장처럼 전락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나라는 후진국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주주총회 관리
한국 상장회사 협의회와 개별 기업 모두 저마다 총회꾼으로 알려진 이들의 목록을 확보하고 있다. 상도 지주회사 재무 관리자도 유명한 총회꾼 명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입구에서 명단과 신분증을 대조하던 시절에는 이 목록을 총회꾼 방어에 활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주주 참석권 침해 문제 때문에 이를 이용해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대신 이 목록으로 누구에게 돈이나 선물을 줘야 하는지 파악한다고 했다. 2007년 한국 상장회사 협의회는 횡포가 종식되기를 희망하며 총회꾼 문제를 위한 지원 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악명 높은 총회꾼들의 이름, 주소, 특징 등을 포함한 데이터베이스와 모범 사례 연구 자료를 만들어 회원사에 배부하고, 기업들이 상담을 요청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했다. 한국 상장회사 협의회의 이런 노력이 추구하는 목표는 기업들이 따를 수 있는 주주총회 운영의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었다.
이와 더불어 한국 상장회사 협의회는 ‘주주총회 운영 요령’이라는 일련의 지침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주총과 같은 심의 기관의 기본 원칙을 되풀이해 강조하고 회의 운영의 일반적 절차를 개술했다. 주총 의장의 적절한 역할과 권한 그리고 주주의 질문을 처리하는 방법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이런 권한을 설명하면서 의장이 문제가 있는 주주를 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의를 허용하는 데에도 동등한 확정적 권리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회의 진행이 중단될 정도거나 거짓 신원을 제시하는 등 몇몇 경우에만 청중을 퇴장시킬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주총 규범은 기업 이사회 및 기타 구성원에게 허용된 권한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것을 제한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슈퍼 주총 데이로 한꺼번에 주주총회를 열어 총회꾼의 방해를 분산시키는 이유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주총을 개최하기로 조정함으로써 여러 기업 주식을 보유한 총회꾼이 여러 기업 주총에 연달아 참석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런 기업 간 결탁은 사람 몸이 하나라는 신체적 한계를 이용한 방식이다. 총회꾼은 물론 모든 주주는 한 번에 한 곳의 주주총회에만 참석할 수 있다. 그런데 주총 동시 개최는 재무 일정이 유사한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같은 시기에 주총을 계획한 우연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시간까지 정확히 이리하고 장소가 분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참고로 월마트나 버크셔 해서웨이 같은 미국 기업은 여기에 변화를 더 줘서,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곳을 주총 장소로 잡는 것도 모자라 대대적인 축하 이벤트나 즐길 거리를 잔뜩 마련해 주의를 더 분산시킨다. 이에 비하면 대부분 한국 기업 주총은 서울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회의 형식을 유지한다. 그래도 슈퍼 주총 데이 방식은 총회꾼의 잇따른 참석과 횡포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는 있으나, 그와 동시에 여러 기업에 정당한 이해관계를 가진 진실한 주주와 주총을 취재하려는 매체들에 피해를 준다.
주주총회는 특정 역할, 절차, 목적이 있는 의례적인 이벤트다. 기업행위자들을 구속하고 소액 주주에게 발언권이 허용되는 이벤트인 동시에 기업이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거대한 이벤트다. 준비 과정도 녹록치 않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기업은 주주총회 자체의 더 넓은 맥락을 관리하는 방식을 제어할 수 있다. 상법이 인정하고 규정한 회의를 개최하는 데 필요한 일이기에 기업 행위자는 원하지 않는 손님의 접근을 제한할 재량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본래는 바라지 않았던 외부인에 대한 구별을 관리할 하나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가상의 탈출
동아시아 기업들의 퇴근 후 친목 활동에 관한 기존 설명은 ‘사회적 도피’와 ‘사회적 의무’라는 두 가지 관점을 오갔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플라스(David Plath)는 ‘퇴근 후(After Hours)’라는 저서에서 1950년대 전후 일본 기업들의 퇴근 후 활동을 사무실 기반 업무 패턴이 초래한 소외와 개인화로부터 공동체 감각을 회복하는 집단 교류의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여가는 집에서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닌 조직의 일원으로서 경험해야 하는 것이었다. 반면 인류학자 로드니 클라크(Rodney Clark)는 ‘일본 기업(The Japanese Company)’에서 마작, 야구, 등산 같은 취미 활동을 동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은 그들에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비공식적인 활동에 도구적 목적을 중첩하는 방식은 중국의 정치 및 경제 관계 연구에서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었던 ‘꽌시(關係, 관계)’에 관한 문헌에서도 자주 언급됐다. 호의를 바탕으로 하는 복잡한네트워크와 관련된 꽌시를 살피면 퇴근 후 활동의 치료적 측면과 도구적 측면이 서로 반대이거나 별개가 아니라 중첨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2016년 한국에서는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발효됐다. 이 법은 교사, 언론인, 정치인, 공무원, 기업 관계자 등의 환심을 사는 데 이용된 선물 및 접대 문화를 표적으로 삼았다. 금지 품목은 상품권, 식사 대접, 명절 선물, 성 접대, 무료 또는 할인 골프 라운딩 등이었다. 그동안 여가를 이용한 친목은 뇌물로서 모호한 영역이었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호감을 구하는 이상적인 프레임을 제공할 수 있었다.
퇴근 후 친목 활동이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면서 회식 규모가 줄었으며 실제로 대다수 직장인은 회식을 팀 중심 이벤트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도 사회적 압력과 개인 평가 요소, 즉 기업에 대한 충성과는 관련 없어 보이지만 노는 행위 자체에 숨겨진 진지함과 강렬함이 있다. 탈출이 될 수도 있고 의무가 될 수도 있는 퇴근 후 친목 활동의 이중성은 어느 직장 생활에서나 경험할 수 있다. 참여하기를 바라는 직원이 있는 한편 저항하고 회피하는 직원도 있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음주와 야근 그리고 직원 개인 및 회사의 평판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방지하면서 더 건전하고 수용적인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도록 ‘회식’이라는 용어를 재규정했다. 물론 직원이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는지가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없애는 일도 필요하다. 사무실 밖 친목 활동이 직원들로 하여금 또 다른 압박을 느낄 수 있는 구별 짓기로 이어지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직원들이 어떤 범주를 강요받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구별이 다른 사람들, 특히 상사의 취향에 맞춰져야 한다고 느끼는지다.
팀장은 한국 기업 조직 구조의 핵심 교점이다. 기본 업무 단위 책임자로서 팀원 개인을 평가하고 업무 역량을 키우고, 직장 생활에서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팀원은 팀장의 취향과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수 있다. 상사에게 구별 짓기가 되는 활동은 직원에게도 구별 짓기 활동이 될 수 있다. 서로 연결 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직원들의 퇴근 후 친목 활동을 마련하지 않는 관리자는 기업 관점에서 조직에 불이익을 주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
“사람 좋다는 것이 조직 관점에서는 팀에 불리할 수도 있어요.”
술자리나 회식이 모두 조직에서는 정치 일부인데,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조직 정치를 포기하는 셈이기에 결국 팀원들이 개인적 야망을 성취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초기업을 향하여
초기업 이상은 탈 위계적인 직장 생활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긴장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에서 대기업과 전문직은 교육 과정의 핵심 종착점이자 중산층의 경제적 이동성이 발현되는 지점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기에 그 열망의 중심엔 과거의 위계적 절충과 다르게 직장을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긍정적인 협력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구별을 최소화해야 하는지, 아니면 구별을 더욱 강화해 직장을 더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고 보상하는 능력 본위 체제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불편한 질문이 자리잡고 있다.
‘구별’, ‘위계’, ‘참여’는 한국의 최근 발전 궤적의 시차를 정의하는 세 가지 개념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현대 한국의 발전은 1960년대에 시작해 오늘날까지 ‘경제 성장’이라는 거대한 서사 일부로 계속되고 있는 연간 GDP성장률 속의 측정 가능하고 가시적인 ‘구별’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국가 차원의 구별 짓기는 그 분위기와 질에서만큼은 변화를 보이나, 한국이라는 국가의 발전 과정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은 변화 조짐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역사를 ‘위계’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경제 성장’과 궤를 함께 하는 일련의 사실을 살펴보면 노동탄압, 정부 부패, 부의 재벌 집중화,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배, 나아가 최근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 문제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 각각의 문제, 그리고 분명히 많은 다른 문제들은 남성과 여성, 국가와 시민, 재벌과 노동자, 대규모 노조와 비노조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사이에 다양한 관계에 퍼져 있는 위계를 가리킨다.
‘참여’도 마찬가지다. 참여, 연대, 팀워크, 민주주의 등의 개념은 한국인들이 권력자의 권위, 정확히는 강자들의 구별 짓기 행태를 거부하는 도심에서의 대규모 시위 같은 사회 및 노동 운동을 함축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처럼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따라 한국은 ‘구별’을 강화하는 과정으로도, ‘위계’가 심화하는 과정으로도, ‘참여’가 보편화하는 과정으로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구별, 특히 기업에 의해 또는 기업 내에서 이뤄지는 구별 짓기는 기업이 합리성을 도모하고자 노동력에 질서를 부여하고 직원들 사이의 열정, 통찰력, 영향력 등 자의적이고 측정하기 어려운 인위적 차별점을 만드는 전략으로 취급됐다. 그리고 참여는 다른 형태의 숨겨진 불평등을 감추고자 내세우는 대면 상호작용 또는 급진적 수평화 노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이 같은 비판과 별개로 상도그룹의 민족지학적 초상은 한국의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점차 위계를 배제하고 있는 기업들의 다른 기대감으로 형성된 초기업 이상의 일부로서 구별과 참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대다수 직원의 참여가 직장 동료와 보내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동일한 상호작용에서구별이 이뤄지기에, 직장 생활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런 긴장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장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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